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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등산의 과학

과학향기 기사/Sci-Fusion 2010. 11. 1. 00:00 by 과학향기
높고 청아한 가을 하늘, 코끝을 간질이는 상쾌한 바람, 예쁘게 물들고 있는 단풍잎들…. 요즘 같으면 정말이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하지만 평일 내내 집, 회사만 공간 이동한 처지에 이런 마음은 그야말로 ‘사치’다. 게다가 사무실 의자에만 파묻혀 지냈더니 온몸은 찌뿌드드, 눈 밑은 퀭하니 점차 사람 몰골을 잃어가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누가 28세 꽃다운 처자라고 생각하겠는가. 안 되겠다, 이번 주말에도 방바닥을 뒹굴며 보낼 수는 없다! 봄부터 등산을 하려고 큰맘 먹고 준비해뒀던 등산장비들을 꺼내 가을 산행에 나서야겠다. 그것도 1박 2일로!

등산복과 등산장비를 꼼꼼히 챙기고 정복할 산을 결정한다. 가을 산 하면 단풍, 단풍 하면…, 아, 설악산! 등산 초보인 나 ‘나향기’에게 ‘단풍’은 곧 설악산이다. 바로 산행 코스를 짜기 시작한다. 가을 산은 해가 지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얼핏 떠오른다. 1박 2일 코스이기 때문에 큰 일교차도 고려해야지.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첨단 기능을 갖춘 등산복을 마련해 뒀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왠지 정상까지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럼 출발해 볼까~

<나향기의 내 멋대로 산행 일지>

2010년 10월 24일 오전 10시
“설악산이다~” 라는 감탄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산세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고 묵묵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점심은 어디서 먹지?’, ‘저녁 전에 대피소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가야겠어.’ 라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아저씨가 어디까지 가냐며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소청봉까지 가는 게 목표예요.”라는 내 대답에
“그럼 이 산에서 밤을 지새울 계획인 거예요?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체온을 쉽게 뺏길 수 있어요. 근데 그렇게 얇게 입고 안 춥겠어요?”라는 걱정 어린 답변이 돌아온다. 자세히 보니 나보다 한두 살 많을까, 앳된 얼굴이다.
“괜찮아요~. 그냥 보기엔 얇아 보여도 발열성 소재로 만들어진 등산복이거든요.”
“무슨 등산복? 그거 메이커 이름이예요?”
“호호~ 메이커 이름이 아니라 옷에 특별한 기능이 포함됐다는 거예요. 이 옷에는 세라믹과 옥, 백탄 숯을 섞어 만든 열선인 ‘탄소섬유 발열체’가 들어있어 보온성이 좋아요. 옷의 등 부위, 양쪽 주머니, 왼쪽 가슴 안주머니까지 열선이 연결되어 있죠. 가슴 안쪽 주머니는 배터리가 내장되어 섭씨 38~50도까지 5단계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고요.
“기술이 좋긴 좋네요~ 난 단순히 등산복은 무조건 고어텍스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쩝”

“고어텍스도 등산복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죠. 외부의 물은 막아주고 땀은 배출해주니까요."
“아, 그럼 고어텍스도 첨단 소재에 들어가는 건가요?”
“네, 원래 고어텍스는 ‘멤브레인’이라는 소재를 고성능 직물에 접합한 후 특수한 방법으로 봉합해 방수기능을 갖춘 원단을 말해요. 멤브레인 소재는 제곱인치당 80억 개 이상의 미세한 구멍이 있는데, 물방울보다 2만 배 작고 수증기 분자보다는 700배 크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은 통과하지 못하고 내부에서 발생하는 땀이나 수증기는 외부로 배출할 수 있는 거예요”
“정말 똑똑하시네요~ (그렇게 안 봤는데… 하하)”

2010년 10월 24일 오후 1시
이렇게 정체 모를 남자와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산을 오르고 있는데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점심시간이 됐음을 알린다. 역시 오랜만에 운동을 했더니 식욕이 돋는다. 앉을 장소를 찾은 후 배낭을 풀어 식기들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앗, 저 남자의 식기가 반짝반짝 빛난다. 저건 말로만 듣던 티타늄 식기?

“저기요, 그 식기들 티타늄인가요?”
“흠흠,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장거리 산행에는 뭐니뭐니해도 무게가 중요하단 말이죠. 이거 한 번 들어봐요. 정말 가볍지 않나요?”
“네, 가볍네요. 원래 티타늄은 우주공학이나 군사용으로 개발된 소재 중 하나잖아요. 무게로만 따진다면 알루미늄이 더 가볍지만 너무 물러서 문제지요. 티타늄은 강도가 철보다 2배, 알루미늄보다 6배나 강하기 때문에 튼튼하고 가벼운 휴대용 식기로 만들면 좋아요.

밥을 다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산길을 오른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오전보다 산행이 훨씬 익숙해졌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주변 경치도 눈에 들어온다. 울긋불긋 예쁘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 가던 일행들도 사라졌다. 길을 잃었나! 갑자기 이 산속에서 조난당하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불현듯 스친 생각, ‘아, 스마트폰이 있었지’

등산복 주머니에서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등산지도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실행한다. 등산지도 앱은 GPS를 이용해 현재 내가 있는 위치를 알려준다. 현재 있는 봉우리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침반 기능을 이용해 목적지인 소청대피소까지 가는 길을 파악한다. 고맙게도 앞으로 남은 거리도 알려준다.

2010년 10월 24일 오후 8시
드디어 소청대피소 도착. 오늘은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등산객들 사이에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저기요, 저만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 마음과 달리 갑자기 불평이 튀어나온다.
“아니, 전 먼저 가버린 줄 알았어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찾아와서 다행이네요.”

이렇게 말하며 사람 좋게 웃는 그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되며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내일 일찍 하산하기 위해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자리를 잡고 침낭을 까는데 저쪽에서 담요를 덮고 있던 그 남자가 침낭을 부럽게 쳐다본다.
“침낭이 좋아 보이네요. 거기도 무슨 첨단 기능이 들어 있나요?”
“네. 이 침낭에는 악취 제거 기능이 있어요. 티타늄옥사이드 코팅이 되어 있는데, 맑은 날에 펼쳐놓고 햇빛을 받으면 냄새 분자와 반응해 파괴시키는 거에요. 이런 반응으로 땀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인 이소길초산(isovaleric acid)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지요. 제가 좀 깔끔한 성격이라서… 호호~”
이 얘기를 마지막으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2010년 10월 25일 오전 6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온몸이 콕콕 쑤시는 아픔에 잠이 확 달아난다. 역시 운동은 평소에 꾸준히 해야 하는 모양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산할 준비를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던 배낭은 이것저것 싸 왔던 먹을거리가 줄어드니 홀쭉하게 느껴질 정도다. 배낭의 공기를 빼야겠다.
“아니 그건 또 뭐예요?” 언제 왔는지 그 남자는 바람이 빠지는 배낭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이 배낭은 딱딱한 플라스틱이나 금속 대신 공기 프레임을 사용하거든요. 배낭 등받이에 호스를 끼우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단단한 프레임이 만들어져요. 이젠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져서 공기를 빼내 부드럽게 만드는 거예요”

어느새 친해진 그 남자와 얘기를 나누며 하산하는 길. 어제부터 들이마신 맑은 공기와 그림 같은 풍경에 몸과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다. 그래, 매주 등산을 해야겠어!
“저도요!” 옆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소리친다. 내 혼잣말을 들었나보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어쨌거나 이번 결심은 꼭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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