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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01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화학자, 라부아지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화학자, 라부아지에

“우리는 사실에만 의존해야 한다. 사실이란 자연이 준 것이라서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실험결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억지로)진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실험과 관찰이 주는 자연적인 길을 따라야 한다”

이 말을 남긴 인물은 1743년 8월 26일 태어난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Lavoisier, 1743~1794)다. 객관적인 실험을 중시한 라부아지에는 ‘질량보존의 법칙’ 등 중요한 업적을 많이 남겨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불운을 맞는다.

라부아지에는 과학계에서 소위 ‘엄친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였고 집안은 부유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법학 공부를 했지만 자연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1768년 세금징수원이 됐음에도 같은 해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등 과학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림 1]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88년 그린 라부아지에와 그의 부인.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그가 남긴 업적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질량보존의 법칙일 것이다. 이 법칙은 쉽게 말해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반응물질의 질량과 화학반응 후 생성된 물질의 질량이 같다는 것이다. 즉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물질들은 화학반응 후 생성된 물질들로 변하기 때문에 물질이 소멸되거나 없던 물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부아지에 이전의 과학자들이 화학실험을 할 때 대충 눈짐작으로 반응물질을 다뤘다면, 라부아지에는 정확한 양을 측정해서 객관적인 실험결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1774년 정립된 이 법칙은 기초과학의 근간이 됐다.

‘산소’를 ‘산소’라 명명한 라부아지에

다른 중요한 업적으로는 연소 반응을 할 때 필요한 기체에 처음으로 ‘산소’라는 이름을 붙이고 원소로 정의했다는 것이다.

사실 산소를 발견한 과학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꽤 논란이 일었었다. 현재 알려진 최초의 발견자는 1772년경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다. 1774년에 이와 관련된 내용을 라부아지에에게 편지로 보냈으나 라부아지에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한편 1774년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도 ‘탈(脫)플로지스톤 공기(비(非)플로지스톤 공기)’라는 이름으로 산소를 발견했다. 라부아지에는 그해 10월 파리를 방문한 프리스틀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았다.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기체가 자신이 연구하던 연소와 관련돼 있다고 생각했다. 연소와 관련된 공기의 일부가 이 기체와 대응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추가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1785년 2월 27일부터 3월 1일에 걸쳐 라부아지에는 물의 분석과 합성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고열을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으며 반대로 수소와 산소 기체를 이용해 물을 합성해 보이기도 했다. 또 물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수소와 산소의 질량을 측정해 보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라부아지에는 물은 원소가 아닌 서로 다른 두 원소의 화합물이란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라부아지에의 새로운 연소 이론은 단순히 플로지스톤설을 반증했다는 것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 라부아지에의 연소 이론은 호흡, 발효, 부패 등 산소와 연관된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는데도 도입됐다. 이렇듯 새로운 이론의 도입 후 수많은 산과 염기, 염이 발견됐다. 수많은 화합물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방법이 필요했고 이는 곧 화학적 명명법 정리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원소의 개념 역시 재정립됐다. 그는 원소를 ‘화학 분석이 도달한 현실적 한계’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체계의 확립은 근대화학의 기초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세금징수원들이 부패의 온상으로 몰리면서 결국 51세의 나이에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사형 당하기 전 재판장에게 중요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2주일만 재판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프랑스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며 사형에 처했다. 만일 라부아지에에게 2주일의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 실험은 어쩌면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연구가 됐을지도 모른다.

라부아지에가 처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대한 처형이 완전히 그릇됐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천문학자 제롬 랄랑드는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책을 썼으며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공동묘지에 버려졌던 그의 시신을 찾아 매우 성대한 장례식도 치렀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였을 뿐이다. 그의 동료였던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가 남겼던 한마디가 그의 죽음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를 알려준다.

“이 머리를 베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같은 두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족히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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