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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0 과학자들의 진실게임 - 그 법칙은 내꺼야!
이곳은 과학수사대입니다. 저 과학탐정은 과학사에 여러 억울한 일들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열심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학계의 여러 분이 저를 찾아오시지요. 어찌나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들이 많은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답니다.

“똑똑”

“아, 또 오셨군요. 이제 상담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내 이름은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라오.”

“아~ 휘트스톤 경이라면 영국의 물리학자가 아니십니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흠흠. 과학을 좀 아는 친구로군. 그렇다면 얘기하기가 쉽겠어.”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전기학이론 ‘휘트스톤 브리지’의 발명가이시고, 3차원 입체 영상을 관측하는 데 쓰이는 장치를 개발하셨죠. 그야말로 과학자로 발명가로 종횡무진 공이 많으시니까요.”

“으흠, 내가 온 것도 그 때문인데. 내가 좀 욕심쟁이로 비칠까 걱정이 되긴 하네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지 싶어서. 자네 혹시 플레이페어 암호(playfair cipher)라고 아는가?”

“영화 ‘내셔널 트레저:비밀의 책’에 나오는 바로 그 암호 기법이 아닙니까? 그건 왜요?”

“실은 그걸 내가 발명했다네. 1854년의 일이지. 날짜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1854년 3월26일이었지.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름은 플레이페어 경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어. 이름을 바로 잡을 방법이 없겠나?”

“그런데 어쩌다 플레이페어 경의 이름이 붙게 된 겁니까?”

“내 암호법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네. 2차 보어전쟁이나 세계 1차 대전에서 이 암호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플레이페어 경의 공일세. 이상한 것은 플레이페어가 이 암호법을 공표했을 때, 원래 내가 발명했다고 밝혔는데도 이름은 플레이페어 암호가 되었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

“참 이상하고, 애석한 일이네요. 하지만 플레이페어 암호를 휘트스톤 경이 만들었다는 진실만큼은 세상이 알고 있으니,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 과학사의 세계에선 휘트스톤 경보다 훨씬 억울한 일을 당한 과학자도 많답니다.”

그렇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본인의 이름을 걸지 못하고 사라져간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과적인 업적에 스스로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학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하지만 과학법칙의 이름이 처음 그 법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으로 붙여지지 않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심지어 시카고대학의 통계학 교수인 스티글러는 ‘어떤 과학상의 발견도 원래의 발견자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는다.’라고 천명했다. 바로 스티글러의 명명법칙(Stigler’s law of eponymy)이다.

가우스분포라고 불리는 정규분포는 1733년 드무아브르가 처음으로 발표했고, 1812년 라플라스가 그 결과를 확장해서 발표했다. 물론 가우스도 이 법칙에 공헌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실험 오차가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가정하에 최소제곱법의 정합성을 증명해냈다. 하지만 그것은 드무아브르의 첫 발표가 있고 나서도 한참 뒤인 1809년의 일이다.

예는 이뿐이 아니다. 식중독균인 살모넬라 엔테리카는 1885년에 발견되었다. 이 박테리아의 이름은 발견된 실험실을 운영하던 다니엘 엘머 살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실제로 그는 이 발견에 기여한 것이 없다. 실제 발견자는 티오발트 스미스라는 젊은 연구원이었다. 더 유명한 과학자에게 덜 알려진 학자의 공까지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게하르트 아르마우어 한센은 1873년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였다. 그는 하지만 이 박테리아를 배양하거나 실제로 나병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한센은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많은 샘플을 알베르트 네이서에게 주었는데 네이서는 이 박테리아에 대한 생체 염색을 수행해 1880년 나병의 원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한센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1870년 이후 수행한 연구에 대한 긴 논문을 발표했다. 결국 학계는 한센의 공로를 인정하고 네이서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19세기 말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사이먼 뉴컴은 작은 숫자로 시작하는 숫자들이 9나 8로 시작하는 숫자들보다 자주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숫자들에게 각 숫자가 첫 자리에 나오는 빈도를 계산할 수 있는 수학적 법칙을 만들었다. 이 논문은 1881년에 발표되었다. 이로부터 무려 57년 뒤에 물리학자 프랭크 벤포드가 첫 자리 숫자의 특이한 빈도 분포에 대해 발표했다. 벤포드는 뉴컴의 논문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최초의 발견자는 뉴컴이었지만, 법칙은 벤포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이처럼 과학 법칙에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라, 그 발견의 가치를 높인 후대의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초의 발견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명명되더라도 더 유명하고 지위가 높아서 눈에 잘 띄는 사람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전구의 발명가는 에디슨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1년 전에 영국의 물리학자 조셉 윌슨 스완이 최초의 전구를 발명했다. 에디슨은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발명했다.

“과학탐정, 자네 얘길 듣고 보니 연구 성과에 자기 이름을 걸지 못하는 과학자가 한둘이 아니겠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방법이 있겠는가?”

“하하.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연구 결과가 쏟아져 어떤 사람이 최초의 발견, 발명자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적자생존의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논문은 종의 기원이 나오기 1년 전 1858년 러셀 월러스가 발표한 논문이었습니다. 표절이라는 설도 있지만, 동시에 연구가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지요. 열역학 제1법칙에 해당하는 에너지 보존법칙 역시 로베르트 마이어, 헬름홀츠, 제임스 줄 등에 의해 1840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발표가 있으면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공평하게 법칙의 이름을 정하기란 어려워집니다.”

“오호, 그런 경우는 법칙에 사람 이름을 넣을 수가 없겠군. 마이어-헬름홀츠-줄 에너지 보존법칙은 너무 길어서 곤란하겠지.”

“네, 게다가 과학적인 발견은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묻혀 있는 경우가 많지요. 아시다시피 멘델의 유전학 연구는 발표된 지 34년이 지난 뒤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후대에 법칙의 이름이 정해질 경우 원래의 최초의 발견자가 누구였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잘못된 이름을 붙이기 십상이지요. 누구든 이름을 정하는 사람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갈 과학사의 발견들이니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이름을 붙이길 빌 수밖에요.”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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