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꼼짝 마! 천연 모기 퇴치제 만들기

고민하다가 결국 일을 쳤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자는 게 내 좌우명이다. 언제부터였느냐면 오늘부터.

다시마 숲에 사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유모에게 들은 것만 합쳐도 귀에 딱지가 다시마 길이만큼 앉았을 거다. 그 유모는 또 자기 유모에게서 들었다네? 아니 그럼 대체 그 마녀는 몇 살이나 먹었다는 거야? 지상 생물에 비하면 우리 수명이 좀 긴 편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500살이 넘은 건 심하지 않나. 얼마 전에 최고령 군인으로 훈장 받은 거북 대원수도 230살인데.

정식 의사 면허는 없지만 성형이나 피부 미용 쪽은 또 그렇게 잘 해준다네. 이것도 유모에게서 들은 거다. 지금도 비늘을 빛나게 하는 약을 계속 사 먹고 있다던데, 내 눈이 옹이구멍인지 아니면 마녀가 사이비인지 전혀 빛나 보이지 않는다. 속이 좀 쓰리지만 내 눈 문제로 덮어 두자. 왜냐하면 나도 오늘 상담을 받으러 갔거든.

정말 방법이 없었다. 지상 사람들은 인어를 괴물로 본다는데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니면 약으로 잡아먹는다면서? 뭐라더라, 우릴 먹으면 불로불사한다는 전설이 동방 어디 섬나라에 전해 내려온다는데 그거 다 뻥이다. 그럼 우린 왜 늙어 죽겠냐고. 게다가 우린 지상 생물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아, 피 냄새 나면 일단 씹고 보는 상어는 빼고. 인어는 고고하단 말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교육 받고 자랐다. 물 냄새도 안 나는데다 쓰레기만 버려대는 인간 따위 뭐가 맛있다고. 게다가 그 인간 왕자 생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대는데 먹이로 삼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래 어차피 내 일기장이니까 쓰는 건데 그놈, 아니 그 분이 좀 심하게 잘생기긴 했다. 꼬리만 달렸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 보는 건데! 인간들은 왜 다리 같은 쓸데없는 기관을 달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아가미도 없잖아. 그럼 물속에서 어떻게 숨을 쉬지?

어쨌든 인간 남자에게 반했다. 물 위에 나가서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해보려면 인간이 되는 거 외엔 방법이 없다. 이 동네에서 그 비법 아는 사람은 마녀뿐이다. 오케이, 결론은 모두 나왔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뒷문으로 몰래 나와 다시마 숲까지 헤엄쳤다. 진짜 오지게 멀더라. 얼마 전에 물 위로 올라간다고 체력 쌓는 특훈을 받아둔 게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택시 불렀을 거다. 그럼 아바마마 귀에 직통으로 들어간다.

마녀는 그냥 좀 깐깐하게 생긴 할머니였다. 내 사정을 듣더니 코웃음 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 할머니 아니면 방법이 없기에 억지로 참았다. 그간 내 인내심이 허무하게 대충 이야기 들어주고 키랑 몸무게 좀 재보더니 진찰 끝났으니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오라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걸로 끝이냐 했더니 원래 상담은 짧게 끝내는 거라나? 그러면서 전복 껍데기는 두 개나 받아갔다. 어차피 국민의 세금으로 낸 거니 국민이 돌려받아야 한다나? 흥. 세금도 안 내는 무허가 의사인 주제에.

열째 날

오늘은 휴일이기에 아침 먹고 바로 다시마 숲으로 갔다. 휴일에도 공부 좀 하라고 가정교사는 늘 쫑알대지만 자신도 휴일에 쉬면서 왜 날 일하게 만드나? 이런 애들이 꼭 주말에 인터넷 쇼핑몰 전화 안 받는다고 짜증내지.

할머니는 여전히 떫은 표정을 짓고 계셨다. 껍데기 내는 사람은 나인데 왜 욕먹는 것까지 내 몫인가. 같이 떫은 표정을 짓고 맞서자니 이젠 대놓고 한숨까지 쉰다. 어린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나 어쩐다나. 아 진짜, 저 얼마 전에 성인식 했거든요? 애 아니거든요? 물론 무서워서, 아니 체통을 지키기 위해 속으로만 외쳤다.

할머니 왈, 성형과 다이어트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란다. 마음에 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짓은 오히려 독이라고 입에 침을 물었다. 왜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지 못하냐고 난리를 치는데 오히려 내가 반문하고 싶어졌다. 잘생긴 왕자님께 한눈에 반한 것은 맞지만, 인간이 되고 싶다는 건 오롯이 내 소망인데 그게 왜 나를 위한 게 아닌 거지? 혹시 연애해본 적 없으신가. 역시 무서워서 물어보지는 못했다. 자존심 잘못 건드려서 이상한 약 받으면 나만 손해다.

한동안 설교를 늘어놓더니 인간이 무서운 생물이라나 어쨌다나. 그건 저도 충분히 알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왕자님이 좋은 거구요, 어쨌든 입 다물고 속으로만 꽥꽥거렸다. 그래도 그렇게 다리를 달고 싶으냐고 묻는다. 지상의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물 밖에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효율이 떨어지는 행위인지, 자신을 받쳐주는 부력이 없는 곳에서 받는 중력이 얼마나 무겁고 강한지에 대한 잔소리도 이어졌다. 그뿐이랴, 다리를 달면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마치 난파선에 가득한 뾰족한 도기 조각에 몸을 맡긴 채 뒹구는 것 같은 고통 속에 매 분, 매 초를 견뎌야 할 거라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확실히 마지막 엄포는 좀 강력했다. 하지만 설마 말미잘 선생네 치과보다 더 아플까. 으, 쓰다 보니 신경을 건드리는 그 촉수 드릴 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다.

아 참 이거 잊으면 안 되지. 오늘 지불, 아니 강탈당한 껍데기는 무려 네 장…. 경찰에 확 찌를까 보다.


열일곱째 날

가정교사가 몸이 안 좋다고 일찍 퇴근해버렸다. 나는 조퇴도 안 시켜주면서…. 하지만 수업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치료 받는 시간이 길어지니 아바마마께 이르진 않았다. 난 착한 학생이다.

이제 다시마 숲까지는 눈 감고도 간다. 기껏 갔더니 이상한 약을 만들면서 나한테도 일을 시켰다. 지상에서 꼭 필요한 약이라던데 그러면 본인이 만들어서 날 주면 되지 않나. 분량이 얼마 없다고, 나도 방법을 알고 있으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라며 뭐라 뭐라 변명은 하시던데 그건 넘어가자.

어쨌든 국화라는 지상 식물에서 추출한 기름, 아 맞다 시트로렐라 오일, 거기에 깨끗한 물과 톡 쏘는 냄새가 나는 알코올이라는 약품을 섞은 아주 간단한 약이었다. 굉장히 좋은 향이 나던데, 할머니 말로는 역시 지상에서 나는 레몬이라는 과일의 향과 똑같단다. 봐, 지상은 이렇게 좋은 곳이잖아. 물론 바닷속에 가득한 물 냄새를 좋아하긴 하지만 난파선에서 찾은 예쁜 병 속의 향이 더 좋단 말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이 약은 지상에 사는 모기라는 생물을 쫓을 때 사용하면 된단다. 인간이나 인어, 다른 동물의 피를 빨고 사는 해충이라나. 우리가 바닷속의 벌레를 거느리는 것 같이 지상의 인간들도 그 곤충이라는 벌레를 거느리고 지도하면 될 텐데 할머니 말로는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아바마마 말씀처럼 지상의 인간이 우리보다 하등하기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인간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선입견은 버려야지!

모기도 바닷속 벌레처럼 수컷과 암컷이 있다고 한다. 수컷은 꽃의 달콤한 꿀을 먹고 살지만 암컷은 피를 좋아한다고, 암컷이 알을 낳기 위해서는 동물의 피에서 영양분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모기는 2m 이상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쁘지만 인간이나 동물의 땀 속에 섞인 성분은 20m 밖에서도 감지할 정도로 촉각이 발달했다나.

할머니는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자연의 섭리니 그냥 피하라고 했지만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되면 정말 싫을 것 같긴 하다. 모기가 긴 관으로 피부를 쿡 찔러서 피를 쭉쭉 빨고 나면 모기 침 속의 성분 때문에 물린 곳이 빨갛게 붓고 가렵다던데…. 내 보들보들하고 하얀 피부가 울긋불긋해지다니 그건 정말 싫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이상한 병도 옮기고 다닌다니 끔찍해. 아니 왜 인간은 그런 곤충 하나 제대로 못 다스리는 거냐고! 내가 가서 비법이라도 전수해줄까 보다.

물속의 온도에 익숙해져 있는 내 피부가 밖에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모기가 좋아하는 땀이 많이 날지 어떨지도. 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서 물이 나온다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할머니는 이번에 만든 약을 자주 뿌리면 시트로렐라 오일을 싫어하는 모기가 가까이 오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어도 되나. 만에 하나 모기에 물린 자리가 부어오르면 침 같은 거 함부로 발라서 균 들어가게 만들지 말고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다음 제대로 된 치료제를 바르라는 명령도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 또 들은 주의사항. 인간들은 약이 안개처럼 뿜어지는 스프레이? 뭐 그런 걸로 모기를 잡는다던데, 그 안에는 환경호르몬인 ‘퍼메트린’이 들어있다나. 환경호르몬은 나도 잘 안다. 얼마 전에 괜히 바닷가까지 놀러갔던 꼬맹이 물고기 몇 마리가 갑자기 여자애로 변해서 다들 난리 났더랬지. 걔들 분명 남자애였는데! 퍼메트린은 그런 성분은 없지만 피부나 눈이 따끔거리거나 염증이 나고 기침, 재채기, 코 막힘, 호흡 곤란 같은 증세도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 무서운 약을 함부로 뿌려대다니, 역시 인간들은 어리석다. 뭐 적정량을 사용하고 환기를 잘 하면 좋다고 하지만….
오늘은 약 만들었다고 껍데기를 열 장이나 빼앗아갔다. 레몬 향이 좋아서 봐준다, 쳇.


스물넷째 날

지금 내 손에는 병이 하나 들려있다. 마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처럼 맑은 푸른빛을 띠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는 유리병. 하지만 난 이 액체의 원래 정체를 알지. 이게 끓기 전에는 분명 시궁창 냄새를 풀풀 풍겨대던 구중중한 녹색의 걸쭉한 놈이었다고! 무슨 마법처럼 - 음, 확실히 그 할머니 직업은 마녀지만 - 지금 색으로 변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펄쩍 뛰어 오르다가 냄비에 지느러미 끝을 데어버린 건 속 쓰린 일이다.

이 액체, 이 꺼림칙한 약을 먹으면 난 인간이 된다. 그 왕자님처럼 기다랗고 가느다란 다리로 배 위를 사뿐사뿐 걸어 다닐 수 있겠지. 지느러미 끝을 아무리 세워 봐도 되지 않았던 일을 해낼 수 있는 거다! 내일 아침, 아무도 없는 새벽에 몰래 바닷가로 올라가 약을 죽 들이키면 모든 게 끝난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이 이제 열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이 영 두근대지 않는다. 사랑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하는 거라던데, 그럼 내 사랑은 이미 식은 걸까. 큰 언니가 놀리던 말마따나 열여섯 짜리의 첫 사랑은 십육일이면 끝나버리는 건가. 그럴 리 없다. 아직도 왕자님 얼굴만 떠올리면 얼굴부터 지느러미 끝까지 빨개진단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두근대긴 한다. 그런데 영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아니다. 괜찮을까 하는 두근거림이다. 아 망했어. 괜히 그 마녀에게 상담했나봐. 그 할머니 세 번 만났더니 이렇게 이상한 말만 머릿속에 새겨 놓고…. 뭐? 내 목소리를 받아 가? 왕자님의 고백을 듣지 못하면 물거품이 돼?! 왜 그런 중요한 말을 나중에야 말하냐고! 미리 들으면 내가 도망갈 것 같아서 그랬나? 그래, 그게 분명하다. 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갖고 놀면서 전복 껍데기를 최대한 많이 뜯어내려던 속셈이 분명하다. 하여간 ‘사이비’자 붙은 것들은 다 똑같아. 그 딴 마녀를 믿고 용돈을 탈탈 턴 내가 미친 인어지.

그러니까 이 두근거림은 분명 두려워서일 거다. 아무래도 지상의 생활은 많이 낯설겠지. 다리가 생길 때는 정말 아프다던데, 그건 괜찮을까. 걷는 건 더 힘들 텐데, 아가미가 없으면 숨도 못 쉴 텐데. 무엇보다 걱정인 건 이거다. 왕자님도 날 좋아해줄까. 인간은 자신과 다른 종족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꽉 막힌 생물이라고 들었다. 내게 다리가 생기더라도 물속에서의 습관은 그대로 남아있을 텐데, 그걸 보고 날 마녀 같은 존재로 보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이제 난 말도 못 할 텐데,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저 왕자님이 좋을 뿐이라고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혹시라도 날 버리면 어떡하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각오한 바지만, 물거품이 되는 건 너무 무서운데….

아니 아니,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하자. 내가 결정한 길이다. 불평도 책임 전가도 할 생각이 없다. 최대한 노력해서 어떻게든 좋은 결말을 이끌어 내고 말겠어. 같은 이야기라도 염세적이고 불운했던 동화작가가 썼는지, 미국의 떼돈 버는 회사에서 각색했는지에 따라 배드와 해피를 오갈 수 있는 게 동화 엔딩의 묘미 아니겠어? 엥? 내가 왜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거지? 뭐가 씌었나? 음, 어쨌든 넘어가고.

물속에서 쓰는 마지막 일기다. 그러길 바란다. 결전은 내일 아침.
왕자님, 제가 곧 가요. 제 레몬 향을 좋아해 주시길.

ps.
오늘은 전복 껍데기 안 털렸다. 내 목소리와 등가교환할 거라나?
고로 경찰에 찌르진 않겠음. 이상 끝.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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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수제 치약 만드는 비법!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늙으면 기억이 깜빡깜빡해서 말이다. 아, 그래. 그 때 내가 그렇게 집을 두 개 부쉈다고 했지. 지금이야 이렇게 비리비리한 노인네다만, 그 땐 한 체력 했거든. 숨결이 얼마나 강했던지 말이다, 후 하고 불면 지푸라기 집도 나무 집도 훅 하고 날아갔다는 거 아니겠니.

그런데 그놈의 돼지들이 웬 발이 그렇게 빠른지, 아주 쌩 하니 사라지더란 말이지. 도저히 따라잡질 못하겠는 거야. 내가 그놈들보다는 훨씬 날씬하고 초콜릿 복근까지 겸비했건만! 첫 번째 집을 부니 첫 번째 놈이 튀어서 두 번째 놈 집에 들어가고, 그 집도 불어버렸더니 두 놈이 한꺼번에 튀어서 세 번째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 들어가더라고. 그래, 헥헥하며 숨 가다듬고 놀란 근육 푸느라 스트레칭도 해주고, 있는 힘껏 공기 들이마신 뒤 세 번째 집도 좀 불어볼까 했는데 기껏 마신 숨이 김빠지듯이 피익 나와 버렸지. 요놈은 머리가 좀 돌아가는지 단단한 벽돌로 집을 만들었더란 거야.

어디 틈이 없을까 싶어 빙빙 돌다 보니 구석에 약간 금이 가 있더라고. 옳거니 부실공사다, 하며 그쪽을 향해 숨을 불어댔어. 한 번, 두 번, 세 번을 불었더니 집이 흔들흔들! 한 게 아니라 갑자기 뭐가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나는 거야. 늑대 간 떨어지게 이게 무슨 짓이냐! 소리라도 빽 지르려고 그쪽을 봤더니 아까 그 첫째, 둘째 놈이랑 똑같이 생긴 돼지 한 마리가 문고리를 붙잡고 씩씩대고 있지 뭐냐. 응? 알아서 문 열어주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래, 나도 얼씨구나 문으로 줄달음쳤는데 그 놈이 손부터 먼저 내밀더니 날 막아. 나머지 한쪽 손은 코를 움켜잡고 있더구나. 얼굴은 시뻘개져서 말이다.

“네 이놈, 잡아 먹겠…!”
“아 진짜! 못 참겠네. 이거 봐요, 아저씨! 매너가 꽝이잖아요!”

침까지 뚝뚝 흘리면서 달려들었더니 하는 말 봐라? 귀, 코가 다 막혀서 멍하니 있노라니 그놈이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해.

“뭐가 자꾸 퀴퀴한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 우리 형들이 이거 맡아본 냄새라며 벌벌 떨잖아요. 늑대다, 하고. 아니 무슨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어디서 거짓말이냐고 그랬더니 자기들 코는 개보다 정확하대요. 그래서 냄새나는 데 찾아서 헤매 돌다 보니까 저번 태풍 때 금갔던 그 벽이네? 바깥 정탐한답시고 거기 얼굴 들이댔다가 진짜 저 세상 가는 줄 알았어요. 대체 뭘 드시고 오신 거예요.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잖아요!”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었다, 이놈아!”
“그런데! 왜! 삼십년은 쓰레기장에서 묵힌 우유 찌꺼기 같은 냄새가 나는 거냐고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울분을 터뜨린 그놈은 다시 쪼르르 집으로 들어가더라고. 어이쿠 이거 놓치겠구나 싶어 재빨리 따라 들어가려 하는데 그놈이 다시 쪼르르 기어 나와.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손전등이랑 작은 거울을 든 이상한 차림새로 말이다. 그놈은 그대로 내 입을 쩍 벌리더니 거기 머리를 쑤셔 넣어. 날 잡수셔~하는 자세였다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몸으로는 내 아래턱을 누른 채 손 하나로 윗 턱을 있는 힘껏 벌리고 있어서 깨물 수도 없고 죽을 맛이었지. 거울과 손전등으로 온 입을 쑤셔대는 힘은 또 왜 그리 센지. 한참을 깔짝대던 그놈이 머리를 쑥 빼더니 또 얼굴이 시뻘개져서 숨을 헉헉 몰아쉬어.

“아~, 아저씨 이 안 닦으셨구나~?”
“야, 이 닦는 늑대 봤어?”
“아, 아저씨는 늑대였지. 어쨌든 이는 닦고 살아야죠! 하루 세 번, 밥 먹은 뒤 바로!”
“네 말마따나 난 사람이 아니라서 상관없거든?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사람 기준 강요하지 말아줄래?”
“지금 우리 보세요.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집에서 살고 있잖아요. 아저씨도 두 발로 걸으면서 잘도 말하고 있고요. 동화 속 의인화 몰라요? 사람 기준 좀 맞춰 주라고요. 아 귀찮으니까 말은 여기까지! 좀 와 봐요.”

세상에, 돼지에게 귀를 잡혀 집에 질질 끌려 들어간 늑대 이야기 들어봤니? 부끄럽지만 그게 나란다. 그런데 난 그 때 얼이 이미 빠질 대로 빠진 상태라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어. 굳이 변명을 하나 더 하자면 돼지 새끼들 쫓아다니느라 이틀간 굶은 것도 치명타였지. 어쨌든 날 집안으로 끌고 들어간 그 놈은 뭘 또 뒤지더니 쑥 내밀어. 무슨 솔 같은 거랑 커다란 튜브더구나.

“자요. 저기 세면대에서 빨리 이 닦고 와요. 3분간 칫솔질 하는 거 잊지 말고요!”
“나 이 안 닦는다고! 방법 모른다고!”
“으으 진짜 귀찮게 하는 아저씨네. 잠깐만 있어 봐요, 내가 닦아줄 테니까. 어서 입 벌려요, 빨리~!”

솔에다가 튜브 안에 든 허연 덩어리를 쭉 짠 그놈은 솔을 입가에 대고 쿡쿡 찌르면서 막 재촉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뭐에 홀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단다. 그랬더니 이놈이 내 입속으로 솔을 쑤셔 박고 이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하더구나. 거품이 입 안을 가득 메우면서 맵고 톡 쏘는 맛이 온 입을 지배하는데, 아이고 죽겠더라고.

“밥을 먹잖아요? 그럼 음식찌꺼기가 이빨 사이에 끼겠죠? 거기에 이 음식찌꺼기 좀 먹겠다고 세균이 모인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빨을 계속 안 닦잖아요? 찌꺼기와 세균이 계속 쌓이겠죠? 이러면 눈에 보이는 커다란 덩어리로 커져요. 이거 이름이 플라크에요. 그 왜 텔레비전 광고에 가끔 나오잖아요. 플라크를 없앱시다 어쩌고 하면서. 잠깐, 좀 더 벌려봐요. 어금니 닦아야죠!”

그 놈은 인정사정없이 솔로 이를 문지르면서 끊임없이 조잘댔어.

“플라크까지는 괜찮아요. 얘들은 이를 잘 닦으면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아저씨처럼 그걸 몇 년이고 그대로 냅두면 말이에요, 침에 있는 석회 성분과 결합해서 아주 단단한 치석이 되거든요. 이건 돌처럼 딱딱해서 치과에 가야 없앨 수 있다고요. 치석이 생기기 시작하면 세균이 이를 공격해 충치를 만들기 쉬울 뿐 아니라 잇몸도 상할 수 있으니까 정기적으로 치과에서 스케일링 받는 거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치약 삼키지 말고 어서 뱉어요. 여기 물로 가글하고!”

시키는 대로 치약을 뱉고 물로 헹구고 나니까 입안이 좀 상쾌해진 것 같더라? 그래도 죽어도 인정하기 싫어서 불퉁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자니 그 놈이 조금 주눅 든…, 표정을 했을 것 같아? 설마 그럴 리가. 솔을 박박 씻어 헹구면서 여전히 나불대더라고. 거기에 아까 도망갔던 그놈 형제들이 뒤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어. 이거 한 마리라도 잡아먹으면 딱 좋겠구먼, 이상하게 식욕이 사라지는 거야.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를 닦으면 식욕 감소 효과도 있다나 뭐라나.

플라크나 치석 안 만들려면 하루 세 번, 밥 먹고 난 뒤에 이를 닦는 게 좋아요. 치약에는 플라크, 치석을 없애주는 연마제랑 입안을 시원하게 소독하는 소독제가 들어있으니까 이 닦을 때 적정량의 치약을 쓰는 게 좋아요. 충치를 예방하는 불소도 들어 있곤 해요. 물론 치약보다는 제대로 된 칫솔질이 더 중요하지만요.”

정리를 마친 놈이 날 돌아보며 씩 웃어. 그러더니 손끝으로 뒤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더라. 내가 앉을까보냐 하며 노려보고 있자니, 그놈은 어깨를 으쓱하고 척척 걸어가서는 의자에 앉아. 옆에는 그놈 형제들이 나란히 앉고. 오, 한 입에 세 마리를 먹으라는 이야기구나 싶어 입을 쩍 벌리고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이놈이 또 웃네?

“먹히는 게 그리 기쁘냐?”
“그게 아니라 제가 한 짓이 제가 생각해도 기특해서요. 봐요, 이 닦으니까 훨씬 낫잖아요.”
“아 그래. 뭐 어쨌든 네가 시키는 대로 하고 왔으니 이제 잡아먹어도 되는 거냐?”
“아니 잠깐! 아저씨, 이가 지금 반짝반짝하잖아요? 민트향 콸콸 풍기죠? 그런데도 우리 먹고 싶어요?”
“민트향이고 자시고 난 지금 배가 고파 죽겠거든?”
“생각해 보세요. 우리 돼지잖아요. 게다가 아저씨는 늑대구요.”
“그러니까 잡아먹겠다고!”
“늑대가 돼지에 소금 치고 후추 뿌려 허브 향 솔솔 나게 구워 먹는다는 이야긴 못 들어봤으니 아저씬 분명 우릴 살아있는 그대로 냠냠 드시겠죠? 그런데 우린 돼지잖아요. 끈적끈적한 지방에 콸콸 흐르는 피가 아저씨 이빨에 쩍쩍 달라붙을 거라고요. 게다가 내장이라도 잘못 건드려 봐요. 저 오늘 아침에 인간 마을에서 나온 신선한 음식쓰레기 좀 먹은 상태거든요? 그게 또 이빨에…, 으윽. 저 같으면 그렇게 반짝반짝한 이로 이런 거 못 먹어요. 독창적 먹이 찾기, 예를 들면 상큼한 상추 무침?”
“아이돌 팬이었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대신 제가 좀 좋은 이야기 해드릴게요. 아까 아저씨에게 드린 건 우리가 쓰던 치약 맞는데, 그거 집에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형들, 재료 좀 가져와볼래?”

뭘 또 주섬주섬 늘어놓나 싶어서 멍하니 보고 있자니 하얀 가루들을 섞고 민트 냄새 나는 뭔가를 떨어뜨려 또 섞고 물과 기름을 따로 섞어서 한꺼번에 반죽해 버리지 않겠냐. 응? 너희 말이 맞긴 맞다.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새 그냥 잡아먹으면 되지. 그런데 사실 그쯤 오면 이것들이 어디까지 하는가 보고 싶은 호기심도 생기잖냐. 원래 늑대가 머리도 좋고 호기심도 많은 종족이란다.

지금 제가 만든 게 치약이에요. 이렇게 포일에 문지르면 색이 싹 날아가잖아요. 탄산칼슘이랑 탄산마그네슘이 연마제 역할을 해서 그래요. 붕사는 소독제 역할을 하죠. 글리세린은 요렇게 촉촉한 크림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넣는 거구요. 민트향은 상큼한 향을 주기 위해서 넣는 건데 너무 많이 넣으면 오히려 역겨운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참, 이 실험은 어디까지나 치약 구성물이나 원리를 배우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실험해서 만들었다고 냅다 입에 넣지 말고 이 닦을 땐 그냥 파는 치약 쓰세요. 이걸로 이 닦았다가 무슨 일 생겨도 우린 몰라요.”
“나한테 설명하랴 독자에게 설명하랴 참 바쁘구나.”
“이런 글에 나오는 캐릭터의 운명이죠. 어쨌든, 제 볼일은 모두 끝났어요. 설명도 다 했고 아저씨 입도 상큼해졌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이제 결말을 짓죠. 오케이?”
“내가 너흴 잡아먹어야 제대로 된 결말이 지어지지 않겠니? 그런 의미에서, 잘 먹겠습니다~.”

드디어 먹을 때가 왔다! 눈물까지 날 것 같은 기쁜 기분으로 다시 한 번 입을 쩍 벌리는데 그놈이 한숨을 쉬더니 뭐라 중얼거려. 뭐라더라? 내가 여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화를 자초하네 어쩌네?

“자꾸 결말 결말 하시는데 이 동화 원래 결말 모르시죠?”
“알게 뭐냐. 일단 너부터 잡아먹고 읽어볼게.”
“아니 아니, 이거 미리 아셔야 해요. 꼭! 반드시! 절대로!”

그놈이 워낙 절박하게 굴길래 난 또 멈칫했지. 그러자 그놈이 또 귀를 잡고 끌더니 귓속말로 소곤대더라고. 지 말마따나 이는 열심히 잘 닦는지 민트향이 솔솔 풍기는 게, 먹으면 참 맛있겠다~ 싶은 마음만 굴뚝같더구나. 그런데 그놈 하는 말은 전혀 향기롭지 않았어. 뭐라고 했는지 아니?

“결말은 이래요. 제가 아저씨를 속여서 저기 굴뚝으로 들어오게 하거든요? 그리고 전 미리 물이 팔팔 끓는 솥을 벽난로에 걸어두죠. 자, 그럼 어떻게 될까~요?”
“굴뚝? 끓는 물? 소옽?!”
“아저씨 표정 보니까 눈치 채신 거 같네요.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미 늦었는데….”

어느새 준비했는지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하나씩 장착한 세 놈이 슬슬 일어났지. 그 모습은 정말이지 아주 으스스했단다. 그 새 날은 어두워지고 방을 비추는 건 벽난로 불빛 뿐. 그걸 등지고 서서 씨익 웃는 돼지 세 마리의 이빨은 하얗게 빛났지. 마치 내 목을 노리는 단검처럼.

“동화 속 결말처럼 이제 아저씨는 솥으로 멋지게 다이빙~! 푹푹 삶긴 뒤에 우리의 맛있는 식사거리가 된단 말씀!”
“하지만 너희들 초식동물 아니었냐. 어떻게 늑대를…”
“모르시나 본데 돼지는 잡식동물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그놈들을 아기 돼지 삼형제랬더냐. 아기 돼지라면 자고로 좀 보들보들하고 연약하고 귀여운 맛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느새 흉악범 삼인조로 변한 것들이 낄낄대며 다가오는데,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 뿐이었지. 아니야, 내가 겁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너희가 정말 그놈들 표정을 봤어야 해.

“잘 먹겠습니다!”

덮쳐 오는 세 개의 그림자는 어쩜 그리 크고 흉악하든지! 난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단다. 낄낄거리는 그놈의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계속, 계속 쫓아오는 것 같아서 비명까지 질러대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사흘간 먹이에 입도 못 대고 끙끙 앓다가 너희 할머니를 만난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 그 후 사십년 간 그 동네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 부끄럽지만 이 할애비는 아직도 그놈들의 하얀 이빨이 어둠 속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악몽을 꾸고 벌떡 일어나곤 한단다. 너희들도 돼지 조심하거라. 이상한 소재로 집 지으면서 치약 만들고 노는 애들은 특히!

그러니까 교훈이 뭐냐고? 밥 챙겨먹고 다니려면 이빨부터 잘 닦으란 이야기다 이놈들아!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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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TV 오락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짠돌 씨 부부는 비타민의 효능을 소개하는 코너가 나오자 쾌재를 불렀다. 아이들이 채소를 통 먹지 않으려고 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터였다. 오늘 오후에는 햄버거의 햄 사이에 끼워 넣은 양상추까지 골라내는 통에 야단을 쳐 겨우 먹였다. 프로그램에서 비타민C가 좋다고 설명하는 ‘서방신기’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였다.

“와~ 비타민C가 저렇게 좋다니 나 비타민C 많이 먹을래.”
“나도 나도. 엄마 비타민C 많이 든 음식이 뭐야?”
아이들의 180도 돌변한 태도에 짠돌 씨 부부는 흡족했다. 엄마 아빠의 말은 콧방귀 뀌며 무시하더니 서방신기의 말이라고 태도가 변한 건 괘씸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비타민이 많이 든 음식만 골라 먹으려고 하는 통에 새로운 고민꺼리가 생겼다.

“엄마, 오렌지주스와 포도주스 중에 어느 게 비타민C가 많아?”
“비타민 음료 중에 뭐가 비타민C가 젤 많이 들었어?”
아이들이 질문 공세에 짠돌 씨는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호주의 두 중학생이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비타민 음료 리베나에 비타민C가 거의 없다는 걸 밝혀 과장광고 판정을 받게 한 사건이 생각났다.
‘오호~ 우리 아이들도 영재성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귀찮은 마음 대신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밀려왔다.

“좋아, 아빠가 비타민C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알아내는 방법을 알려주지.”
“와~ 정말?”
“아빠 보기보다 엄청 똑똑하다.”

[실험방법]
1. 실험준비 : 비타민C 음료 2종류, 요오드 소독약(약국에서 판매), 종이컵, 녹말, 스포이트(빨대로 대체 가능)
2. 녹말 1/2 티스푼을 찬물(약 100ml)에 녹여 녹말물을 만든다.
3. 비타민C 음료를 컵에 20ml 따른다.
4. 녹말물을 각 음료가 담긴 컵에 50ml씩 넣는다.
5. 요오드 소독약을 한 방울 씩 떨어뜨린다.
6. 색깔이 먼저 보라색으로 변하는 쪽이 비타민이 적게 든 음료다.

“자~ 이쪽 비타민 음료의 색이 먼저 보라색으로 바뀌었으니 비타민이 적게 든 음료야.”
“와와~ 아빠 엄청 신기해.”
“아빠. 근데 왜 요오드를 계속 넣으니까 보라색으로 변하는 거야?”

“그건 녹말과 요오드가 만나면 색이 보라색으로 변하기 때문이야.”
“녹말과 요오드가 만나면…. 맞아! 학교에서 녹말에 요오드 넣으면 색이 보라색으로 변한다고 배운 거 같아. 근데 왜 처음에 조금 넣었을 때는 안 변해?”

“후훗- 그게 핵심이지. (역시 우리 아이는 영재?) 그건 말이지 녹말 이외에도 다른 것이 요오드와 만나기 때문이지.”
“녹말 이외에 뭐가 또 요오드와 만나는데?”
“비타민 음료를 넣었으니까 비타민C가 만나는 거 아냐?”

“오~ 우리 아들 똑똑하다. 맞아. 비타민C가 요오드와 만나. 그것도 녹말보다 더 빨리.”
“더 빨리?”
“그래. 비타민C가 녹말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더 빨리 움직이거든. 그러니까 비타민C가 있을 때는 녹말이 요오드를 만날 기회가 없는 거야. 비타민C와 요오드가 만났을 때는 색깔이 변하지 않아.”
“아~ 오빠랑 내가 간식 먹을 때 오빠가 너무 빨리 먹어서 내가 못 먹는 거와 같은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런 먹보 같으니라고.) 비타민C가 있는 동안에는 요오드를 넣어도 녹말-요오드 반응이 일어날 수 없어. 그런데 비타민C가 요오드와 모두 만나서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되겠어. 이제 동작이 느린 녹말과 만나는 거야.”
“맞아. 오빠가 간식을 많이 먹고 배가 부르게 되면 나도 간식을 먹을 수 있어.”
“그리고 녹말과 요오드가 만나는 순간!”
(동시에) “색이 보라색으로 바뀐다.”
“그렇지. 그래서 색이 늦게 바뀌는 것일수록 비타민C가 많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살아있는 교육을 했다는 생각에 짠돌 씨의 마음이 뿌듯해졌다.

다음 날 아침.
서랍을 열던 짠돌 씨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내 비타민제 다 어디 갔어!”
짠돌 씨가 인터넷 쇼핑몰을 몇 시간 동안 뒤져서 고심 끝에 최저가로 산 비타민제가 통만 남고 알맹이가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마루에 나와 보니 식탁 위에 곱게 빻은 비타민제 가루가 요오드를 흠뻑 머금고 있었다.
“아빠, 이 비타민제 진짜 맞네. 열심히 먹어~.”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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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주말 오후. 짠돌 씨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방에서 구르며 주말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은 뜨거웠고 매미 소리는 청명하며 짠돌 씨 마음도 평화로웠다. 매주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드디어 집에서 제대로 ‘뻗을 수’ 있게 됐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막신과 막희 남매는 늦은 점심으로 시킨 피자를 먹느라 짠돌 씨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 이 행복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라.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막희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불길한 신호다.
“엄마. 콜라 더 없어~?”
“어머나. 작은 거라 그런지 벌써 다 마셨구나. 이제 더 없는데 어쩌지.”
“헉, 막희 너 벌써 다 마셨어? 나도 콜라 마시고 싶은데~!”
“냉장고 안에 오렌지 쥬스 있어. 그거라도 마시렴.”
“싫어~ 콜라 사줘요 엄마. 나 콜라 마시고 싶어~!”

집안일을 하느라 손을 놓을 수 없는 초보주부 김 씨. 뜨거운 햇볕 아래 단 둘만 심부름 보내기엔 너무 어린 남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 사람의 고개는 조용히 짠돌 씨를 향했다. “뭐? 나보고 사오라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짠돌 씨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눈빛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으니…. 결국 짠돌 씨는 한숨과 함께 일어서서 부엌으로 나갔다. 눈을 반짝이는 남매를 바라보며 짠돌 씨는 입을 열었다.

“콜라 대신 톡 쏘는 사이다는 어떠니?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단다.”
“어머. 자기, 사이다도 만들 수 있어?”
“그럼~ 물론이지. 얘들아, 같이 만들어 마실래?”
“응, 좋아!”
“와~ 실험이다~”

[실험방법]
준비물 : 그릇, 얼음, 소금, 컵, 물, 설탕, 소다, 구연산, 레몬수
1. 그릇에 얼음과 소금을 넣는다.
2. 컵에 생수를 150mL 정도 담아 그릇에 담가놓는다.
3. 설탕은 두 스푼 넣는다.
4. 소다를 아주 조금 넣고 물에 녹인다.
5. 구연산을 소다를 넣은 양만큼 조금 넣고 랩으로 막아둔다. 이때 레몬수를 넣는다.
6. 1분 뒤 마셔본다. 사이다와 비슷한 맛이 난다.

“아빠, 진짜 사이다는 아니지만 사이다 같아. 거품도 나고 소리도 나.”
“그렇지? 소다와 구연산이 만나서 탄산가스를 만들어서 톡 쏘는 맛을 내는 거란다.”
“그럼 진짜 사이다도 이렇게 만드는 거야?”
“우리가 사먹는 사이다는 물에 이산화탄소를 녹인 액체인데 원래 이산화탄소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단다. 그래서 물에 이산화탄소를 녹이기 위해서 높은 압력을 가하는 거지. 이산화탄소가 녹을 만큼 많이 들어가면 사이다병 내부의 압력이 밖(사이다병 외부=대기)의 압력보다 높아지게 돼. 이 상태에서 뚜껑을 열면 사이다 내부보다 밖의 압력이 낮아서 물속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들이 나오면서 거품이 보이게 되는 거란다.”
“그럼 사이다의 비밀은 이산화탄소를 높은 압력으로 물에 녹인 거네? 그럼 우리가 만든 사이다는 어떻게 한 거야 자기야? 높은 압력을 가할 수 없잖아.”
“그래서 구연산과 소다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 거야. 아까 얼음물에 컵을 담가 놓은 이유도 얼음으로 온도를 낮추게 되면 이산화탄소가 기체로 날아가는 것을 조금은 막을 수 있게 때문이지.”
“그럼 얼음에 소금을 넣은 이유는 뭐야? 그냥 얼음만 넣어도 되잖아.”
“얼음에 소금을 넣게 되면 처음에는 빠르게 얼음이 녹지만 어느 정도 온도가 내려가게 되면 소금이 얼음의 온도를 더 낮게 해주게 되어서 얼음끼리 서로 붙어. 이때 온도가 영하 20℃까지 내려가지. 소금을 넣으면 온도가 더 내려가기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날아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막을 수 있어.”
“아빤 역시 대단해~!”

기쁜 표정으로 수제 사이다를 마시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짠돌 씨는 뿌듯해졌다. 시달린다 어쩐다 해도 역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최고다. 이산화탄소가 올라오며 내는 쏴아~ 소리와 창 밖 매미 소리가 겹쳐 공기를 시원하게 물들였다. 어느새 오후 5시. 짠돌 씨의 주말이 또 하나 저물어가고 있었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Tip
구연산과 소다가 반응하여 거품이 생길 때 소리도 들어보면 재밌습니다.
진짜 사이다처럼 거품이 나고 냄새도 비슷합니다.
거품이나 소리를 더 내고 싶으면 소다와 구연산을 더 넣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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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소풍이나 가볼까?”
짠돌 씨가 아이들에게 먼저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주말마다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시달리느니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와~ 아빠. 어디로 가는데? 난 공원이 좋더라.”
“서방신기 콘서트는 어떨까? 요즘 신곡도 나왔다고 하던데.”
옆에서 듣고 있던 초보주부 김 씨가 상황을 정리했다.
“요새 서울광장에서 문화공연 한다던데 거기 가요.”

서울광장에 도착한 짠돌 씨 가족은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 저 기계는 뭐에요? 물 나오는 거!”
“아~ 저건 잔디밭이나 농장에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라는 기계란다.”
아이들은 신기한지 그 옆으로 다가가서 놀다가 온 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돌아왔다.

“아빠. 스프링클러를 보니 전기선이 안보여요. 전에 아빠가 ‘우리 집에 있는 기계들은 다 전기를 엄청나게 처먹는 것들이야’라고 말했잖아요. 전기도 없이 어떻게 움직이지?”
집에서 했던 실험의 결과인가. 호기심이 왕성해진 아이들을 보니 짠돌 씨의 마음이 뿌듯해졌다. 아내는 아이들의 옷을 갈아 입히느라 정신이 없다.

“왜 그럴까? 힌트를 주자면 스프링클러는 전기가 아닌 물로 움직여.”
“어. 그래요? 어떻게 물로 움직이지?”
“좋아. 여기서 실험을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지. 막희야, 어서 캔 음료수 먹던 거 마저 마시고 아빠 주련. 당신은 뜨개질 하던 실 좀 줘 봐요. 난 어디 못이 없나 찾아봐야지.”

[실험 방법]
1. 준비물 : 음료수 캔, 실 , 물, 송곳(본문은 못이지만 송곳으로 실험했습니다.)
2. 송곳으로 캔 바닥 가까운 옆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4개의 구멍을 뚫는다.
3. 송곳으로 각각의 구멍을 한쪽으로 눌러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도록 한다. 구멍의 크기는 송곳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 크기로 한다. 크게 뚫을수록 깡통이 잘 돌아간다.
4. 캔 뚜껑 손잡이를 똑바로 세운 뒤 뚜껑 연결부위에 실을 맨다.
5. 구멍을 막고 캔에 물을 가득 채워 넣은 뒤 구멍을 막는다.
6. 구멍을 막던 손을 놓으면 캔이 돌아간다.

※구멍의 개수를 늘리면 깡통의 회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러나 깡통에 물을 넣고 손으로 막기 힘들기 때문에 적절한 개수로 뚫으세요.

“우와~ 캔이 막 돌아요~!”
“스프링클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물을 뿜어내요.”

“스프링클러의 기본 원리는 이 캔이 도는 것과 똑같아.”
“에이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 스프링클러는 팍팍 절도 있게 끊어서 돌지만 얘는 그냥 빙빙 돌기만 하잖아.”
“하하~. 그건 스프링클러에 좀 특수한 장치가 달려있어서 그래. 물을 모았다가 스프링의 힘으로 밀면서 하는데…. 어쨌든 기본 원리가 이거랑 같은 거야.”
“알겠어, 아빠. 우리가 그건 봐주도록 하지. 계속 설명해봐.”
(※스프링클러는 수압으로 움직입니다. 이를 위해서 펌프가 필요하니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데 전력 소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프링클러의 노즐은 수압을 모았다가 일정 수압 이상이 되면 분출합니다. 물은 잘게 만들어 멀리 뿌리고, 이때 생기는 힘으로 노즐은 일정한 각도로 회전하게 됩니다.)

이것들이…. 가장의 권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군. 하긴, 언제는 있었나.
“자~ 저번에 우리 물 풍선 만들어서 놀던 기억나지?”
“네.”
“그때 풍선에 물을 넣은 뒤 풍선 입구에서 손을 떼면 어떻게 됐었지?”
“물이 막 빠져 나오면서 풍선은 뒤로 날아갔어!”
“맞아, 내가 조준을 잘못하는 바람에 오빠 옷을 다 버렸지.”
“그래, 이것도 똑같은 원리란다. 바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야. 모든 물체에 가해지는 힘은 반대 방향으로 똑같은 힘이 작용하는 거야. 봐~. 캔 구멍을 막고 있던 손가락을 떼면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지? 물이 나오는 반대 방향으로 물 풍선이 움직이듯 깡통도 물이 나오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야. 여러 구멍에서 나오는 힘이 합쳐지면, 깡통이 빙빙 돌게 되지.”
“음…. 그럼 내가 막희에게 알밤을 먹이면 내 손도 아픈 게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 때문이야?”
“그렇다고 할 수…. 막신아, 동생 좀 그만 때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어 돌아보니 아내가 째려보고 있다. 실험을 재현하며 설명하려다 자리가 온통 물바다가 됐고 애들 옷도 다시 흠뻑 젖은 것이다.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는 법. 아빠가 옷을 다 버리는데 기여했으니 오늘 빨래도 아빠가 기여해야겠지?”
공원에 나가 어찌 하루를 버텨 보려던 짠돌 씨의 계획은 또 수포로 돌아갔다. 그날 밤 짠돌 씨 화장실에는 밤 늦도록 빨래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글: 과학향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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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왜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걸까. 편곡과 녹음이 조금씩 세련되지기는 하지만 기본 멜로디나 가사는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지겨운 곡을 왜 항상 들어야 하는 걸까. 12월도 어느새 23일, 불빛도 사람들도 화려하게 반짝이는 거리를 걸으며 짠돌 씨는 투덜거렸다.

따지고 보면 캐롤송에는 아무 죄가 없었다. 일정한 속도로 돌며 중위도 지역에 4계절을 만들어 내는 지구 역시. 더 따지고 보면 짠돌 씨에게도 죄는 없었다. 이 계절에 사고 아닌 사고를 쳐서 사람을 지방 공장으로 부른 계열사에게도 죄는 없으리라. 사고 수습을 위해 2박 3일 지방 출장을 명한 상사도 이하생략이다. 속으로 죄를 따질 곳을 이리저리 찾다가 지친 짠돌 씨는 투덜거림 대신 한숨을 내쉬며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반짝이는 네온사인 밑 작은 트리를 억지로 외면하며 들어선 모텔 방은 작고, 춥고, 황량했다.

[아빠~! 언제 와?]

노트북을 켜고 메신저를 연결하자마자 웹캠 화면에 막희가 가득 찼다. 막희 뒤로 보이는 트리는 12월 초 함께 마트에 갔을 때 구입한 녀석이다. 짠돌 씨는 피로에 찌든 얼굴 피부를 문질러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막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응. 아빠 두 밤만 더 자면 돌아가.”
[두 밤 지나면 크리스마스잖아!]
“맞아. 크리스마스 밤에 집에 갈 거야.”
[싫어~! 아빠 없으면 산타 할아버지도 안 오시잖아~! 선물 없잖아~!!]

나보다 산타 할아버지가 더 중요하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꾹 씹어 삼키며 짠돌 씨는 다시 한 번 억지 미소를 지었다. 이 귀엽고 철없는 막내와는 절대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 짠돌 씨는 그저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올해 산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 밤에 오시는 걸로 하자~. 아빠가 멋진 선물 사 갖고 갈게. 막희야, 알았지?”
[안 돼! 그럼 지금 당장 선물 줘!]
“…아빠 지금 대구에 있어. KTX 타고 가도 2시간은 넘게 걸…. 아냐아냐, 지금 그럼 여기서 선물 보여 줄게. 대신 엄마 바꿔 주라, 응?”

빼액 소리가 스피커로 튀어 나오기 전에 재주 좋게 막희를 달랜 짠돌 씨는 아내 김 씨를 호출했다. 여기서 뭘 갖고 가는 건 불가능해도 ‘만드는 방법’은 설명할 수 있다. 뒤는 아내가 알아서 잘 해주리라. 아니나 다를까, 메신저 대화창에 쳐 넣은 준비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김 씨는 손가락을 흔들어 아들 막신을 불렀다. 이 손발 착착 맞는 모자가 분명 자신을 구할 것이다. 짠돌 씨는 도리도리 잼잼 하듯 쥐었다 편 손가락을 키보드에 살포시 얹었다. 지금부터는 만드는 법 강의 시간이다. 분당 500타의 속도로 달리는 손가락이, 제법 훈훈한 기가 돌기 시작한 작은 방에 경쾌한 소리를 새겨갔다.

[자기가 말한 대로 다 만들었어. 루돌프도 붙였고. 이제 어떻게 하면 돼?]
“막희 앞, 평평한 곳에 두고 스위치를 켜. 아, 너무 막희 쪽에 바싹 붙이지 말고. 카페트 위도 안 돼!”
[어머, 막희야~! 이것 좀 봐. 루돌프 퉁퉁 튀어 다니는 거 보여?]
[우와~! 루돌프가 막 점프해!]

갑자기 낸 아이디어였긴 결과물에 함께 감탄하며 웹캠 화면 너머 웃는 가족들을 지켜봤다.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은 예상 외로 좋은 평가를 얻은 듯하다. 계속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며 덜덜 움직이는 ‘루돌프 진동차’에 푹 빠져 있는 막희가 그 증거였다.

[이거 왜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 아빠?]
“역시 중요한 질문은 네가 하는구나. 진동차에 달린 모터, 즉 전동기에 뚜껑을 어떻게 끼웠지?”
[중간이 아니라 좀 옆에 꽂아 놨어.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전동기가 돌아갈 때 잘 보면 그 뚜껑이 불규칙하게 돌아갈 거야. 그럼 무게중심도 바뀌면서 차가 덜덜 떨게 돼.”

[무게중심? 자 중간에 손가락 얹어서 균형 잡고 하는 거 맞지?]
“아, 넌 학교에서 배웠겠구나. 무게중심은 정확히 말하면 물체를 이루는 입자들의 위치를 평균 낸 지점을 말해. 거기를 받치면 물체의 균형이 잡히는 거지. 자나 둥근 뚜껑 같이 좌우가 대칭되는 물체는 기하학적 중심이 바로 무게중심이야. 자, 생각해 봐. 자에 손가락을 얹을 때처럼 무게중심을 잘 잡으면 물체가 균형을 이루잖아. 그게 계속 바뀌거나 중심을 못 잡으면 어떻게 될까?”

[넘어지거나 비틀대겠지. …아, 그래서 차가 덜덜 떠는 거구나.]
“그렇지~. 무게중심을 잘 받치면 물체 전체를 들 수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은 그 물체의 평형점이라고 할 수 있어.”
[자기야. 갑자기 난입해서 미안한데, 이거 방향은 못 바꿔? 계속 제자리에서 돌 뿐이라서 막희가 슬슬 싫증내려고 해….]
“아! 다리 사이에 끼운 막대기를 빼. 그럼 막 뛰면서 아무 데로나 가.”
[그것만 하면 돼?]

“못도 앞은 짧게, 뒤는 길게 박아놨잖아. 그럼 짧은 앞의 못을 중심으로 차가 돌게 되거든. 반대로 못 다리 길이를 조절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낼 수도 있어. 막희 손 안 찔리도록 조심하면서 시켜 봐.”

[응. …그나저나 자기 진짜 금요일 밤에 오는 거야? 휴일인데 더 일찍은 못 와?]
“여기 수습이 금요일 낮이나 돼야 끝날 거 같아. 모처럼 연휴인데 미안….”
[나는 괜찮은데, 애들이 난리라서 그러지. 알았어. 일인데 어쩔 수 없지 뭐. 대신에 올 때 진짜 선물 사와. 저 자동차, 분명 오늘 밤에 부서질 거 같아. 루돌프는 이미 너덜너덜~.]
“…자기마저….”
[아, 막희야! 안 되겠다, 자기야. 일단 메신저 꺼야겠다. 내가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부산스러운 목소리와 더불어 꺼진 웹캠 창에는 따스한 가족의 모습 대신 짠돌 씨의 허탈한 표정만 비춰지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대화창을 끄고 노트북 전원까지 꺼버리려던 짠돌 씨는 상태표시줄에서 깜빡이는 작고 긴 네모를 발견했다. 다시 띄운 대화창에는 파일 전송 안내가 남아있었다. ‘메리_크리스마스_선물_받아요.mp3’.

다운 받은 파일을 실행시키고 침대에 누운 짠돌 씨는 스피커에서 흐르는 목소리에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변성기가 얼마 남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와 아직 발음이 엉성한 귀여운 목소리가 겹쳐져 방을 물들였다. 가끔 킥킥대는 배경음은 아마 녹음한 이의 웃음이리라. 익숙한 목소리들에, 녹음기 앞에 모여 앉아 입을 모았을 세 명의 모습이 떠올랐다. mp3 플레이어의 무한 반복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다시 누운 짠돌 씨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노이즈가 끼고 화음도 엉망이었지만, 지금껏 들은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캐롤송이 귀와 마음을 감싸고 있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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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눈이 왔다. 뽀얗게 내려앉은 작은 알갱이가 고왔다. 바닥을 덮은 하얀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돌린 시선 끝에 아직 공중을 맴도는 작은 싸라기들이 있었다. 휘날리는 하얀 점에 절로 손이 갔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으면 어쩐지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환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손을 움직이던 짠돌씨는 손끝에 닿은 싸라기 조각을 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현실 도피는 여기까지.

이른 눈이 왔다. 짠돌 씨네 집 안에. 동글동글한 스티로폼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 거실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집 꼬라지가 왜 이런지 설명해줄 사~람? 이왕이면 육하원칙 맞춰서 100자 이내로.”

정전기 때문에 통통 튀며 굴러 온 스티로폼 알갱이를 발로 쳐내며 짠돌씨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스티로폼을 마구 뿜어내는 괴물이 집에 쳐들어온 게 아닌 이상 범인은 어차피 뻔하다. 바닥을 덮은 하얀 알갱이들 위에서 괴성을 지르며 뒹굴던 막희를 억지로 붙잡고 머리카락을 애써 털어내던 아내 김씨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막신이가 자유탐구 과제가 필요하대서 같이 스티로폼을 자르다가 이 꼴이 됐어. 좀 큰 알갱이는 막희가 1인용 소파 터뜨렸을 때 튀어 나온 거야. 내일이 토요일이라 다행이지.”
“요구사항에 맞춘 깔끔한 답변 고마워 자기야. 왜 터뜨렸는지는 굳이 안 물을게.”
“내 잘못이야 아빠. 막희가 스티로폼 알갱이를 너무 좋아하길래 그만 소파 안에 많다고 불어 버렸어….”
“굳이 안 들어도 될 말까지 억지로 해줘서 정말 고맙다 아들아.”

발끝을 바닥에 문질러 알갱이를 떼어내려 애를 쓰던 짠돌씨는 결국 양말을 벗어 던졌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옷가지도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 하필이면 정전기의 산실인 울 소재였다 - 아무리 그래도 어린 아들 딸 앞에서 그런 비교육적인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짠돌 씨는 알갱이를 털어낸 양말을 화장실에 던져 넣고 돌아와 아들의 어깨를 툭 쳤다.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줄을 반쯤 놓은 채 스티로폼 알갱이를 손톱으로 꾹꾹 누르고 있던 막신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자유탐구 과제는 아직 못 했지? 일단 그것부터 처리하자.”
“아빠….”
“자기야. 칼날이 나갔는지 스티로폼이 잘 안 잘려. 이 꼴 보면 알잖아~. 알갱이 한 두 개 더 늘린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좀….”
“깨끗하게 잘 잘리는 칼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걱정 마. 내가 만들어 줄게.”

모처럼 온 활약 기회를 공으로 놓칠 순 없지!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난 짠돌 씨는 다리를 탈탈 털며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장 윗서랍에는 필요한 공구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분명히 필요할 거라고 본인이 우겨 모아놓은 아이스크림 막대들도.

“이게 정말 쓰일 날이 있구나. 난 우리집 신발장이 아이스크림 막대에 눌려 무너지는 줄만 알았지.”
“…자기야, 맺힌 한은 나중에 풀고 지금은 실험에 집중하자? 응?”
“그런 의미에서 질문! 아빠, 이 선이 뭐야?”
“알아서 분위기 파악까지 하다니, 장하다 우리 아들! 이건 니크롬선이야. 니켈과 크롬의 합금이고 다리미나 헤어드라이어 안에 들어 있어. 왜 그런지 한 번 맞혀 볼래? 힌트는 지금 아빠가 하는 실험!”
“음…, 열이 잘 난다?”

“오, 정답! 니크롬선 같은 금속 안에는 원자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전자들이 있는데, 금속 양쪽에 전압을 걸어 주면 이 전자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이게 전류야. 그런데 전기가 흐를 때는 거의 대부분 이 흐름을 방해하는 힘이 작용한단다. 전기저항이라고 하지. 전기저항이 큰 금속일수록 작은 양의 전류로도 많은 열이나 빛을 낼 수 있단다. 니크롬선도 전기저항이 커서 전류가 그대로 흐르지 않고 열이나 빛으로 잘 바뀌어. 단 이번 실험에서는 1.5v 건전지 두 개만 사용했기 때문에 빛은 나지 않아.”

“그럼 지금 스티로폼이 잘 잘리는 것도 저항 때문이야?”
“응. 아까 니크롬선이 열을 잘 낸다고 했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건전지가 연결된 니크롬선은 뜨겁게 달궈져 있어. 앗! 자기야, 막희 좀 말려! 아주 뜨겁지는 않지만 손으로 만지면 위험하다고!”

오랜만의 등장에 심취한 탓일까. 어느새 다가와 전지에 연결된 니크롬선을 만지려 드는 막내둥이의 손에 기겁한 채 짠돌씨는 펄쩍 뛰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스티로폼을 보고 있던 김씨도 함께 펄쩍 뛰며 막희를 꼭 안았다. 품에서 버둥대던 막희는 “저거 만지면 손 다쳐서 너 좋아하는 물놀이 못 해”라는 김씨의 말에 헛된 저항을 멈췄다. 짠돌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스위치를 내렸다. 스티로폼도 다 잘랐겠다, 더 이상 위험한 짓은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뭐, 어디 불붙을 정도로 아주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열이 나고 있어서 화상을 입거나 살을 베일 가능성은 크니까 독자 여러분도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아빠, 그런데 스티로폼이 왜 잘리는지는 설명 안 해줬잖아.”

“아, 미안! 음, 그러니까 스티로폼의 주성분은 발포 플라스틱인데 얘들은 열에 약하거든. 그래서 뜨거운 니크롬선이 지나가면 그 부분이 녹아서 잘려 나가는 거야. 니크롬선이 가늘고 팽팽할수록 깨끗하게 잘린단다. 단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대고 있으면 주변의 스티로폼까지 다 녹아 버리니까, 한 번에 쫙~ 하고 잘라야 해.”

“그렇구나~! 설명도 멋지고, 실험도 잘 하고 아빠 최고! 그럼 난 과제하러 갈게!”
“아니 그럴 것까지야~. …가 아니라, 어디 가?! 아빠 혼자 이걸 다 치우라고?!”

가지런히 잘린 스티로폼 조각을 안으며 벌떡 일어난 막신은 방으로 사라졌다. 협박에 입은 다물었지만 여전히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고 있는 막희를 달래느라 아내 김씨도 안방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거실에 남은 건 정전기 댄스를 추며 어지럽게 널린 하얀 알갱이들과 역할을 다 한 전기칼과 짠돌씨뿐. 대체 이놈의 글쓴이는 내게 무슨 원한이 있길래 매 번 나만 골탕 먹이는 거야? 투덜대는 짠돌 씨의 움직임에 따라 바짓단에 들러붙은 스티로폼들만 요리조리 흔들거렸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준비물 : 니크롬선, 전지끼우개, 1.5v 전지 두 개, 전선, 나무막대, 스위치, 스티로폼, 양면테이프, 칼

* 니크롬선은 전파상이나 대형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전지끼우개와 스위치도 문구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 나무막대는 나무젓가락으로 대체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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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꿀꺽꿀꺽~ 물 먹는 새 만들기

“고무고무, 예전보다 좀 마른 거 같지 않아?”
“아, 물주는 거 깜빡했다. 잠깐만. 금방 가져 올게.”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짠돌 씨는 속으로 혀를 찼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무나무에게 한동안 물을 주지 않은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고무고무’라는 애칭을 가진 고무나무를 위해 빈 페트병에 물을 담아 베란다로 허겁지겁 달려간 짠돌 씨는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녀석, 미안하다. 물 많이 먹고 다시 통통해지렴.

“아빠, 고무고무 목 많이 말랐나 봐. 물이 막 사라져.”
“응. 너무 오래 내버려둬서 흙까지 바싹 마른 거 같네. 아빠가 제대로 못 챙겨서 미안해.”

가뭄에 물 만난 고기마냥 물을 쑥쑥 흡수하는 마른 흙을 보며 짠돌 씨는 또 한 번 혀를 찼다. 별로 춥지 않은 날씨 탓에 건조한 가을이 온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게 실수였다.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아 고무고무의 잎을 만지작거리던 막희가 뭔가를 떠올린 듯 박수를 쳤다. 이럴 땐 십중팔구 짠돌 씨가 ‘귀찮아지는’ 일이 생긴다. 이미 눈치 챈 아내 김 씨는 슬금슬금 베란다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아빠, 아빠! 나 되게 신기한 거 깨달았어!”
“음, 막희야…. 아빠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얘…기 하면 안 될…? 아냐. 미안해. 마음껏 얘기하렴.”
“있잖아, 흙이 고무고무에게 맘마를 주는 거야!”
“엥? 뭐라고?”
“그러니까! 흙이 먼저 물을 먹고 고무고무가 먹을 수 있도록 맛있게 만들어서 다시 고무고무에게 주는 거라고!”
“저…, 막희야. 아빠가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 좀 더 쉽게 말해주면 안 될까?”

막희는 미간을 좁히며 팔짱을 끼고 과장되게 한숨 쉬었다. “이런 바보 아빠를 봤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에 짠돌 씨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난! 고무나무에! 물 준! 죄밖에! 없을! 뿐이고!

“아빠가 물주면 흙이 먼저 먹잖아.”
“먹…, 응. 쑥쑥 잘 먹지.”
“그러면 고무고무가 먹을 게 없잖아.”
“….”
“찬 물을 고무고무가 먼저 먹으면 고무고무가 탈나니까, 흙이 먼저 먹고 따뜻하게 데워서 토해내는 거야. 흙 뱃속에 있는 좋은 것도 잔뜩 넣어서 고무고무 많이 먹어라~ 하는 거지. 어때? 나 똑똑하지?”

흙이 무슨 어미새냐…. 아이답게 기발하다면 기발한 생각이고 과학적으로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저 미묘한 비틀림은 대체 어쩐다냐. 그렇다고 유치원생 앞에서 모세관 현상이니 반투막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을 군번도 아니었다. 허리에 팔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막희를 멍하니 바라보며 짠돌 씨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으으. 생각할수록 머리 아프다. 누가 나 좀 구해 줘~! 이때 김 씨가 달려나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막희 똑똑하네~! 그럼 막희 생각이 진짜 맞는지 어떤지 한 번 실험해 볼까?”

실험을 시작하고 10분 후, 불에 달궈 구부린 피펫 사이로 붉은색 물이 흘러 들어갔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새’를 주시하던 막희가 순간 탄성을 질렀다. 뒤 꽁무니를 푹 숙이며 물을 뱉어낸 새가 다시 앞으로 힘차게 고개를 숙이며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

“엄마엄마, 얘 정말 물 잘 먹는다! 왜 이런 거야?”
“응, 고무고무가 물 먹는 비결은 ‘모세관 현상’ 때문이야.”
“모세관?”
“아주 가는 관을 모세관이라고 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무고무 같은 식물의 뿌리나 줄기 속에는 모세관이 다발을 이루고 있단다. 이런 모세관 속에 물이 들어가서 외부보다 높이 올라가는 현상을 모세관 현상이라고 하지.”
“웅, 잘 모르겠어.”

“막희에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네. 음, 막희야. 거기 가느다란 빨대를 여기 빨간 물속에 잠깐 담궈 볼래? 잘 봐, 물 끝이 밖의 물보다 더 올라와있지? 이게 모세관 현상이야.”
“왜 이렇게 되는 거야?”

“물은 자기들끼리 뭉치는 버릇이 있어. 또 관의 벽에도 잘 달라붙지. 그래서 좁은 관을 통과할 때 똘똘 뭉쳐서 위로 쑥쑥 잘 올라가는 거야. 관이 가늘수록 이런 현상이 잘 일어나. 엄마가 만든 새도 부리가 좁고 가늘잖아? 그래서 물을 꿀꺽꿀꺽 잘 마신단다.”

“그런데 왜 이게 고무고무와 관련이 있어? 흙이 물 토해주는 게 아니야?”
“막희 말도 반쯤은 맞아. 고무고무에 물을 주면 흙 속에 있는 빈 공간(공극)에 물이 스며들거든. 흙에 뻗어있던 고무고무의 뿌리가 이 물을 빨아 들이지. 고무고무의 뿌리 속 물이 흙 속의 물보다 이것저것 녹은 게 많아서 더 진해. 이렇게 물의 진하기가 차이 나면 물은 덜 진한 데서 더 진한 곳으로 움직이려 하거든. 왜, 엄마가 김치 담글 때 배추를 소금물 속에 넣으면 배추 숨이 확 죽잖아. 그건 배추 속 물이 바깥의 진한 소금물로 빠져 나가서 그래.”

“그렇게 고무고무 속으로 들어간 물이 모세관 현상 때문에 잎이나 줄기로 이동하는 거지?”
“오우, 정답. 과학을 배운 막신이는 더 빨리 이해하는구나.”
“자기야. 이노무 새는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거야?”
“빨아들일 물이 없을 때까지는 아마. 그리고 ‘이노무’ 같은 단어 붙이지 마!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히 만든 건데….”
“엄마 화났다~. 아빠 나쁘다~.”
“막희는 울릴 뻔 하고, 엄마도 화나게 하고. 오늘도 아빠 체면 확 구기네?”
“…나, 가서 고무고무에게 물이나 더 주고 올게.”

베란다로 향하는 가장의 처량한 어깨 뒤 거실의 웃음소리는 더욱 도드라졌다. 쓸쓸한 가을 바람에 잎을 떨고 있는 고무나무를 쓰다듬으며 짠돌 씨는 속으로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내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실험을 찾고 찾고 또 찾아, 다음 달에는 반드시 체면을 탈환하련다! 사람이 주먹을 쥐든 분루를 삼키든, 고무나무와 피펫 새는 아무 말 없이 물만 꿀꺽꿀꺽 마셔댈 뿐이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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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uwa.tistory.com BlogIcon 뿌와쨔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신기해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2009.11.02 06:02 신고

평일 오전의 대형 할인 마트는 주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하고 쾌적했다. 식재료 코너 사이에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카트라이더의 본능을 발산하며 짠돌 씨는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제 스톱! 슬슬 카트라이더 놀이는 그만 하고 돌아가자. 장 다 봤잖아. 몇 시간 있으면 애들도 돌아올 테고….”
“조금만 더 하면 안 될…, 아냐! 아냐! 자기 말이 맞아. 얼른 돌아가자.”

짠돌 씨는 아내의 눈초리가 위험 수위까지 올라간 것을 용케 눈치 채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에 입맛을 쩍쩍 다시며 괜히 주변만 살피던 그의 눈에 완구 코너가 들어왔다. 아차, 그러고 보니 노느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막신이랑 막희에게 여행 못 가는 대신 장난감 사 주기로 했는데….”
“그랬어? 마침 잘 됐네. 그럼 여기서 사.”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어쨌든 멋지고 재미있고 신기한 장난감일 터. 무엇을 어떻게 고르느냐는 둘째 치고, 아내 손에서 돈을 얻어내는 것 자체가 넘을 수 없는 난관이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 테니까 저쪽 문구 코너 가서 네오디뮴 자석 두 개랑 1.5v 건전지 한 쌍만 사 와.”
“도, 돈은?”
“그쪽 주머니에 고이 접혀 쉬고 계시는 비상금으로도 충분하거든요? 난 먼저 이 짐들 계산할 테니까 자석 사들고 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눈초리를 뾰족하게 세운 채 총총 사라지는 김 씨의 등을 따라, 대형 마트의 에어컨 바람을 뛰어 넘는 시베리아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짠돌 씨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켜쥐며 문구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흑, 그냥 출근할 걸….

다행히 시베리아 강풍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멎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김 씨가 뭔가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거실에 멀뚱히 앉아 아내의 종종걸음을 멍하니 구경하던 짠돌 씨는 아내가 내민 종이와 가위를 보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별 오려 줘. 예쁘고 균형 잡힌 모양 만드는 거 알지?”
“으응, 노력해 볼게….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이걸로 뭘 할 거야?”
“일단 보기나 해. 생각보다 꽤 재미있을 걸?”

잠시 꼼지락 대던 김 씨가 “짜잔~”하며 내어놓은 것은 못과 자석, 전선이 붙은 작은 전지. 그리 거창하게 굴더니 겨우 이거냐고 짠돌 씨가 궁시렁 준비운동을 하는 순간, 자석과 자석 밑에 붙은 별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이 전지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보고 김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표정 걸작이야. 실험보다 자기 표정이 더 재미있다~.”
“이게 무슨 조화야? 자석이 대체 왜 돌아가는 거지?”
“전자기력 때문에 그래. 아마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을 텐데, 기억 나?”
“음, 어렴풋하긴 하지만…. 전류가 흐르는 선 주변에도 자기장이 생긴다는 그거?”

“정답~! 자석 주변에 자석의 힘이 작용하는 걸 자기장이라고 해. 그런데 자기가 말한 것처럼 전류가 흐를 때도 주변에 자기장이 생기거든. 그래서 전류가 흐르는 전선으로 전자석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왜, 공사할 때 보면 철근을 커다란 판에 붙여서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커다란 차 있잖아? 그 판이 전자석이야. 우리가 흔히 자석이라 부르는 ‘영구자석’과 다르게 전자석은 전류의 양에 따라 자기장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고 영구자석보다 자기장 자체도 훨씬 강하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어.”

“그럼 전자석과 같은 원리로 이 자석이 돌아가는 건가?”
“이건 자기장 두 개가 만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야. 둥근 네오디뮴 자석 주변에는 가만히 있어도 자기장이 생기겠지? 그런데 자석, 못, 전지를 전선으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르면서 또 하나의 자기장이 생기거든. 이 두 자기장 사이에 인력과 척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못이 돌아가는 거지.”

“인력, 척력…. 아, 자석이 서로 당기거나 밀어내는 힘을 말하는 거지? 전류로 생기는 자기장에도 그런 힘이 있구나.”
“어엿한 자기장이니까 당연하지. 아까 얘기했듯이 전자석은 자기장의 세기를 아주 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MRI 같은 의료 기기에도 쓰여. MRI 찍을 때 들어가는 커다란 원형 터널이 전자석이야.

“오오, 그렇군! 참,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밑에 별을 붙였어?”
“자석만 두면 돌아가는 게 잘 안 보이거든. 별 같은 걸 붙여 놓으면 훨씬 보기도 좋고 재미도 있으니까….”
“왜 하필 별이야?”
“왜냐하면….”

묘하게 말끝을 흐리는 김 씨의 볼이 조금씩 빨개졌다. 짠돌 씨는 짓궂은 미소를 띠며 아내에게 좀 더 가까이 얼굴을 디밀었다. 아까 ‘별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은 그 순간, 뇌 깊숙한 곳에서 살포시 떠올랐던 기억. 풋풋하고 달콤했던 그 가을의 풍경.

“내가 맞혀 볼까? 첫 데이트 때 종이별을 가득 오려줬던 거 기억한 거지? 그지?”

안 그래도 전기 팽이 보느라 얼굴을 가까이 했던 두 사람이다. ‘지이이이이’ 팽이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듯 이어지는 가운데 남편과 아내의 눈은 살포시 감겼다. 공기에 핑크빛이 맴돌고, 그리고…!

“학교 다녀왔습니다! 신종 플루 때문에 오늘 단축 수업…!”
“……”
“……”
“…인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인가 봐요. 다시 학교 가겠습니다. 두 분, 계속 하세요.”

얼굴을 가까이 하던 때보다 10배는 빠른 속도로 후다닥 떨어진 두 사람과 힘차게 열렸다 조용히 닫힌 현관문, 못과 자석이 분리된 채 바닥에서 뒹구는 팽이와 창문 너머에서 무심히 반짝이는 가을 햇살. 일상인 듯 일상이 아닌 듯 묘한 경계선에 선 어떤 것들이 흩어진 정오 무렵의 집안에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적절히 배합된 아들의 목소리만 긴 여운을 남겼다.



[실험 Tip]
- 못에 찔리지 않게 주의하세요.
- 잘 돌지 않을 경우 건전지의 전압이나 자석의 세기를 올려서 실험하세요.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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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는 지금 잔뜩 뿔이 나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님 때문이다. 방학이 되면 바로 바다에 데려가 주겠노라고, 3월 초부터 새끼손가락 걸고 굳게 약속한 기억은 대체 어디 갔단 말인가. 혹시라도 아빠의 특기 ‘결정적일 때만 건망증’과 엄마의 특기 ‘못 들은 척 딴청하기’가 발동될까봐 생각날 때마다 불러댄 바다바다바다바다 노래도 결국 헛된 노력에 불과했단 말인가. 주말마다 두 분께서 검사하시는 일기장에 또박또박한 글씨로 7월에 바다 가서 할 일들을 꼬박꼬박 적어왔거늘, 시간 낭비 밖에 안 됐단 생각이 든다.

“아까부터 얘기했지? 아빠 회사 사정 때문에 휴가가 미뤄졌다고….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8월 말까지만 기다리면 되는데 왜 자꾸 화만 내니?”

“몰라! 엄마 바보! 아빠도 바보! 아빠 회사는 바보 곱하기 바보!”

솔직히 말해 그녀도 딸 못지않게 가족 바다 여행을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딴 팀원들에게 휴가 다 양보하고 굳이 8월 마지막 주로 휴가를 옮긴 남편을 향한 분노를 쿠션에 냅다 쏟아 붓고 싶은 심정이었다(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이 나이 먹고 11살짜리 딸이랑 똑같은 짓을 하기에는 이성의 힘이 좀 더 강했다.

‘이거 안 달래면 또 석달 열흘 들들 볶일 텐데 어쩌면 좋을까. 아 잠깐, 혹시?’

엄마는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나이스 아이디어에 저도 모르게 손을 맞잡았다. ‘좋은 생각이 났다’ 제스쳐를 취하는 엄마를 본 딸의 눈빛도 순간 반짝였다. 미소가 피어오르는 입꼬리를 차마 내리지 못 하고 애리를 돌아본 엄마는 은근한 목소리로 서두를 깔았다.

“애리야. 너 종이공작 좋아하지?”

“…그게 바다랑 무슨 상관이야!”

“이대로 바다도 못 가고 7월 내내 방학 숙제만 하는 것도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애리 책상 위에 작은 바다를 하나 만들어 줄게.”

“엄마. 접속어 앞 뒤 내용이 안 맞아.”

“말 끊지 말고 계속 들어 봐. 이 바다가 신기한 게 말이지, 아무리 뒤집고 흔들어도 바다는 바다고 하늘은 하늘이거든? 거기다 애리가 만든 배도 하나 척 하니 띄우는 거야. 그럼 더 근사해지겠지? 신기하고 예쁜 바다를 계속 보면서 바다 여행을 계획하는 건 어떨까? 그럼 8월 말 여행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재미있을 것 같…, 으으응, 별로 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오, 넘어온다, 아니 이미 반 이상 넘어왔다!

“만약 아빠가 이대로 바다를 완전히 잊어버린 척 하면 어쩔 거야? 그럴 때 작은 바다를 내밀면서 ‘아빠~, 기억하고 계시겠죠?’ 이렇게 한 마디 해 주는 거지. 어때? 어때?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만들어 줘!”

건망증에는 ‘건망증 완전 대비법’으로 대응한다. 모녀의 손발 짝짝 맞는 플레이는 빠른 재료 준비로 이어졌다. 햇빛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 화학약품상을 돌고 와서도 지치지 않는 애리의 눈동자에 역시 내 유전자 반이 섞인 인재라며 감탄하던 엄마는 피로감을 애써 감추며 실험에 돌입했다.

“우리가 사 온 약품 이름이 뭐라고?”
“메틸렌클로라이드.”
“정답! 메틸렌클로라이드는 세탁소 같은 데서 쓰는 약품이야. 물보다 비중이 크고 기체로 잘 변하는 성질이 있어. 냄새도, 자 봐, 독하지? 그러니까 실험하는 동안 메틸렌클로라이드 냄새를 직접 맡는 건 금지! 또 환기도 잘 시켜야 해.”

“그런데 엄마, 물과 메틸렌클로라이드는 왜 안 섞여?”

물은 화학에서 얘기하는 극성을 갖고 있고 메틸렌클로라이드는 무극성이야. 극성은 극성끼리, 무극성은 무극성끼리 서로 잘 섞이거든. 반대로 극성과 무극성이 만나면 섞이지 않아. 물과 기름도 이렇게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안 섞이는 거지.”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메틸렌클로라이드 색이 예쁘게 변했으니까 넘어갈게. 이것도 메틸렌클로라이드 성질 때문이야?”

“우리 딸 너무 똑똑한데? 맞아. 우리가 아까 넣은 게 유성펜이잖아. ‘유성’은 기름 성분에 잘 녹는다는 얘기거든. 메틸렌클로라이드도 기름 성분을 잘 녹이는 ‘유기 용매’ 중 하나야. 그래서 유성펜 색소를 빨아 들여서 파랗게 변한 거지. 반대로 수성펜은 물에 잘 녹는단다.”

“엄마가 설명하는 동안 종이배도 다 만들었어. 종이배 밑바닥에 색연필도 칠했고…. 이건 왜 이런 거야?”

색연필도 메틸렌클로라이드와 친한 성질을 갖고 있거든. 핀셋으로 종이배를 집어 넣어봐. 옳지. 어때, 바닥이 메틸렌클로라이드와 딱 붙어 있지?”

“올~, 신기하다~.”

물을 먹은 종이배는 메틸렌클로라이드보다 가볍고 물보다 무거워. 게다가 색연필 때문에 메틸렌클로라이드 표면과 항상 붙어 있거든. 그래서 종이배를 넣은 병을 아무리 흔들고 뒤집어도, 바다는 항상 밑에~ 종이배는 항상 바다 위에~ 살랑살랑 예쁘게 떠다니는 거지.”

전화로 휴가 연기 공지를 때렸을 때 상상했던 분위기와 180도 다른 집안 공기. 훈훈하기 짝이 없는 아내와 딸의 표정에, 애리 아빠는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 한 채 현관에 들어섰다. 딸의 손에서 반짝이는 작은 병과, 병 속의 파란 액체와, 그 위에 뜬 하얀 배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의미하는 한 단어를 깨닫기 전까지는.

고지식하게 ‘왜 우리가 바다를 늦게 갈 수밖에 없는가’ 설명을 늘어놓으려는 남편을 재빨리 꼬집은 애리 엄마는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커다란 병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자신의 손바닥 크기만한 병을 받아든 아빠는 순간 눈시울을 촉촉하게 적실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종이배에 세 가족의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애리야. 멋대로 약속 깨서 미안…. 아빠, 휴가 다시 당길까?”
“아빠 일이 더 중요하잖아요. 7월 말에 안 가도 괜찮아요. 대신 약속만 지켜주세요. 책상 위의 바다도 좋지만, 역시 아빠엄마랑 진짜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요.”

“애, 애리야~!”
“감동적인 장면 깨서 미안한데, 그 병 옆으로 한 번 돌려 볼래 자기야?”

배 뒷면에 새겨진 글귀. ‘이번에도 약속 깨면 10년 동안 용돈 동결’
찰랑이는 작고 푸른 바다 위에,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아빠의 표정이 함께 일렁였다.



[실험 Tip]
- 유리병(바이알병)과 메틸렌클로라이드는 각각 과학기구상, 화공약품상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물과 메틸렌클로라이드 용액을 섞어 쓰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가급적 2개의 스포이드를 따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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