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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2 숨겨진 북한의 최고 과학자, 리승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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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과학자를 모델로 우표를 발행한 적은 없다. 그러나 북한은 두 차례나 한 명의 과학자를 기념한 우표를 발행했다. 바로 합성섬유인 ‘비날론’의 발명자 고 리승기 박사(1905~1996)가 주인공이다. 리 박사는 196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크게 이름을 떨친 과학자로,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그에 관한 대중용 전기가 출판될 정도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리 박사는 1905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츠야마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뒤 1931년 교토제국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했다. 훗날 그가 쓴 자서전에 따르면 가난한 형편 탓에 대학 시절 결핵을 앓기도 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원래 리 박사가 연구하기 원했던 분야는 합성섬유였지만 조선인 출신이 일본에서 직장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도 교수였던 기타(喜田)의 추천으로 처음에는 아스팔트를 연구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아스팔트와 관련한 다수의 특허를 취득하는 성과를 올린 리 박사는 곧이어 자신이 원하던 합성섬유를 연구할 기회를 잡는다. 바로 교토제국대 부설 일본화학섬유연구소에 연구강사로 임용된 것이다.

1938년 미국 듀퐁사가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하면서 세계 각국에 합성섬유 연구 열풍이 불었다. 원래 세계적인 비단, 면직물 수출국이었던 일본도 합성섬유 연구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달리 일본은 폴리비닐알콜(polyvinylalcohol, PVA)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을 원료로 쓸 수 있는지 연구했다. 나일론은 석유를 원료로 필요했지만 폴리비닐알콜은 석회석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석유가 나지 않는 일본에 적합했다. 또 PVC로 만든 합성섬유는 나일론이나 아크릴 섬유에 비해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뛰어나 면직물을 대용하는데 유리했다.

마침내 1939년 리 박사는 PVC로 ‘합성섬유 1호’를 개발했다. 합성섬유 1호는 단순한 개인적인 영광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리 박사가 거둔 성공은 조선인의 자랑이 되기에 충분했다. 과학잡지 ‘과학조선’은 조선인 과학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리승기를 지목했고, 종합잡지 ‘조광’(朝光)도 ‘세계의 학계에 파문을 던진 합성1호의 기염-리승기 박사의 고심 연구달성’(1939년 12월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이를 두고 리 박사는 자서전에서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거론하며 자신의 연구 성과가 일본 과학의 성과로 귀속된다는 사실에 무척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리 박사의 연구가 공업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완전한 실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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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합성섬유 1호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쉽게 수축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처리를 하는 경우 착색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리 박사는 제조 공정 중에 포르말린 대신 아세트알데히드를 넣는 방법을 고안해 1942년 무렵까지 합성섬유 1호의 대부분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가 서둘러 상업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당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어서 자신의 연구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품 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리 박사의 의도대로 합성섬유 1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업화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편 리 박사는 헌병에게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빌미로 일본 오사카 감옥에 갔다가 거기서 광복을 맞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리 박사는 서울대 공대학장, 대한화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지만 얼마 뒤인 1950년 7월 31일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평양에 간다. 리 박사의 월북 배경을 둘러싸고 어떤 이들은 그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에 기울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네다섯 차례에 걸친 끈질긴 월북 권유를 물리쳤고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당시 남한은 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반면 북한은 해외에 거주한 조선 과학자까지 초빙해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지원했다. 아마 리 박사에게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에서의 근무와 비날론연구소 설립을 제안한 것이 그가 월북한 가장 큰 요인으로 추측된다.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은 당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대공장으로, 카바이드와 아세틸렌, 아세트산, 아세트알데히드 등을 생산했다. 이들은 모두 합성섬유를 만드는 원료였다.

김일성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 연간 2만톤의 비날론을 생산하는 공장이 완공됐다. 석회석과 무연탄, 전기를 이용해 만든 카바이드를 기본 원료로 삼아 만드는 비날론(Vinalon)은 비닐알코올을 축약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비닐론(Vinylon)이라 불린다. 그 뒤 ‘주체사상’이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비날론은 ‘주체섬유’로 불릴 만큼 획기적인 성과였다.

무엇보다 비날론은 조선인인 리 박사가 개발했고, 질감이 조선의 전통 옷인 면과 비슷하며,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회석을 원료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공업화와 체제 건설의 역사와 나란히 서술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리 박사에게 노력영웅 칭호와 제1회 과학부문 인민상을 수여했다. 병으로 드러누웠을 때 김일성이 그에게 100년 된 산삼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광복 이후 남한에서 과학자를 우대했다면 리 박사가 서울대 응용화학과에서 길러낸 제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월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미군정이 한국을 일본의 영토로 간주해 서울대의 학제개편을 미국식으로 강요한 탓에 담양으로 낙향했을 때도 “아편쟁이가 아편을 잊지 못하듯 비날론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한국인 과학자의 해외 두뇌유출을 걱정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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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한테나 대단한거지.. 저건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들도 다 만들수 있는거 아닌가? 너무 띄워줄필요는 없는듯

    2008.06.12 22:26
    • 문준섭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을 잘 읽어보시지,... 시기가 일제 강점기 직후랍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님이 말하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없었습니다.

      2008.06.12 22:38
    • 비날론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소기업이 아니라 지금 이런사람있으면 대용연료를 연구해서 연료걱정을 안 해도 될것같아요,비날론공장도 삼성만한 대 기업,,북한에서 하나밖에 없는 대 화학연합기업소,,

      2008.06.13 07:11
    • 허허..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각이 좀 얕으신듯? 간단히 말하자면.. 님은 에디슨을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으시겠네요?? 미국에서나 대단한 사람이지 뭐 요즘 어지간한 중소기업 어디서든 만들수 있는 물건들만 개발했으니??

      2008.06.13 10:22
    •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이론.. 볏신..
      글을 똥꾸녘으로 읽냐?

      2008.06.13 11:12
  2. 글쎄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때는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없었단다.

    2008.06.12 22:38
  3. Favicon of http://gescape.tistory.com BlogIcon God-Raj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님
    지금 나일론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처음 발견하여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만들지를 연구하는게 어렵고
    그것을 처음 해낸다는건 대단한 업적이죠

    2008.06.12 22:45
  4. B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은 외국 화학책 읽다보면 종종 나올정도로( 화학책에 실린다는건 엄청 대단한 겁니다...) 유명한분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선 별로 안유명하던....
    북한으로 넘어간 분이셔서 그런지 쳇

    2008.06.12 22:52
  5. 대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같은 쓰레기 나라에 저런 분이 계셨다니.

    하긴 일본식 교육제도를 겪어서 그나마 저런분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네요

    2008.06.12 23:08
    • -=-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같은 쓰레기나라..??

      한국에 사는 너도 쓰레기겠네 그럼? ㅉㅉㅉ

      2008.06.13 01:30
    • 비날론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한데요 이승기박사의고향이 한국이었다는걸 영광으로 생각 하세요,,그분이 고향이 한국이라 마음고생을 엄청 하셨어요,한국같은 쓰레기나라 란말이 거슬리네요

      2008.06.13 07:09
    •  댓글주소  수정/삭제

      짱깨ㅆHㄲI가 어디서 한글은 배워가꼬 여기서 키보드질이냐..

      2008.06.13 11:13
  6. 글쎄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롬버스 달걀 이야기부터 읽어보려무나.

    하여튼 북한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얕잡아 보는것도 문제야.. ㅉㅉㅉ

    2008.06.13 00:16
  7. 비날론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날론 공장이 북한 함흥시에 있고 이승기박사가 연구한 공장설비는구식이여서 일본에서 수직방사기를 들여와서 했는데요
    북한에서 2,8비날론연합기업소는 한국에서의삼성대기업과같은 하나밖에 없는 대화학공장,,,,,,다른것을 다 떠나서 그런 유명한 박사의고향이 한국이란것이 자랑스럽고 ,,그분도 고향이 남한이라는 이유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분의업적은 나이론이 아니라 비날론 입니다,석회와무연탄을 구워서 카바이드만들고 거기에서 화학적인 공정,,아세틸렌-활성탄-중합-합성-방사을 거쳐서 마감에는 비날론섬유(실)이란 것인데요,,옷감으로도 ,고깃그물로도,,암튼 안 씌이는데가 없죠?

    2008.06.13 07:16
  8. 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북했다는 또는 북한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잘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분들이 제법 많군요...
    그냥 아쉬울 따름입니다. 글들도 이런 식으로 분단된 조국을 분명 원하지 않았을텐데...

    2008.06.13 09:57
  9. 승기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줄꺼야~ 내 남은 모든 사랑을~

    2008.06.13 12:21
  10. 진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많은 분들이 월북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매국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지식이 깨어 있는 많은 분들이 월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월북하나 만으로 모든 자료가 말소 되어 있는것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서울대.. 이권 개입보다는... 이승만 정권과 매국친일파의 득세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2008.06.13 12:46
  11. Favicon of https://wideworld.tistory.com BlogIcon mac1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제가 탈북하신 분들 많이 만나보면서 느끼는거지만 북한 사람들 정말 똑똑하더라구요^^
    엘리트계층들은 보통이 아니세요 한민족으로 자부심이 느껴지더라니까요

    2008.06.26 19: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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