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지만 다른 감기와 냉방병

 

태연과 아빠 엄마, 오늘도 아침밥을 먹자마자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름 하여 뱅크피서를 위해서다. 하루 종일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 아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책도 보고 옥수수도 뜯으며 더위를 피하는 뱅크피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강 넉살을 가진 아빠는, 몹시 염치없는 이 상황에서도 경비아저씨와 절친까지 맺었다. 

“그러니까 이런 증상이라는 거지? 두통이나 피로감, 어지러움과 함께 소화불량, 복부팽만감, 그리고 복통과 설사가 수시로 반복되고,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는 데다, 집중도 안 되고, 어떨 때는 팔다리가 욱신욱신 쑤시면서 허리까지 아프다 이거잖아.” 

“헐! 족집게셔. 어떻게 딱딱 알아맞히나 그래?” 

“감기인 듯 감기 아닌 감기 같은 증상이지? 낮에는 심하다가 저녁에 집에 가면 덜하고.” 

“흐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다니, 혹시 그동안 스토킹 한 거 아닌가?” 

“김경비는 어쩜, 오버하는 것까지 딱 내 스타일이이란 말이야. 허허. 암튼, 지금까지 얘기한 증상들은 몽땅 냉방병에 관한 걸세. 이렇게 추운 데서 일하려니 냉방병을 피하기 어려웠겠지.” 

“역시, 친구가 과학자니까 참 좋구먼. 그런데 시원한 데 있으면 몸도 정신도 더 짱짱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짱짱해지기는커녕 몽롱해지는 이런 병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거야?” 

안과 밖의 온도가 5~8°C 이상 벌어지는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말초혈관이 빠르게 수축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요.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드니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기운 없으면서 졸리게 되지. 또 위장으로 가는 혈류량도 줄어 소화기 쪽도 영 시원찮고 말이야. 거기다 자율신경계 기능에도 변화가 생겨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여성의 경우 생리가 불규칙해지기도 해요. 근육이 뻐근하게 쑤실 때도 잦고.” 

“아, 이제야 싹 다 이해가 되는구먼. 남들은 시원한 데서 일한다고 날 부러워하지만, 냉방병이라는 슬픈 직업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그런데 대체 우리 몸은 온도 차이에 왜 이리 예민한 건가?” 

“우리 몸은 빠른 변화를 아주 싫어한다네. 세포 하나하나를 재정비해가며 변화에 적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 환절기만 되면 감기 같은 각종 감염병이 늘어나는 이유도, 인체가 빠른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라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는 한 달 동안의 계절변화에도 쩔쩔매는 데, 하루에도 몇 번씩 5~8°C씩 온도가 오락가락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사람은 이래서 배워야 하는 걸세.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감기인 줄 알고 며칠째 종합감기약만 열심히 챙겨먹었지 뭔가.” 

“많은 사람이 감기와 냉방병을 헷갈리는데, 이걸 구분하는 팁을 하나 줌세. 기침이나 가래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감기, 없으면 냉방병일 가능성이 높고. 그리고 냉방을 하지 않을 때 증상이 호전되면 냉방병,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 증상이 이어지면 십중팔구 감기라네. 알겠나?” 

“오호, 아주 명쾌하구만! 그럼, 끝으로 하나만 더 물어봄세. 대체 이 냉방병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가 있나?” 

“음, 묘약이 딱 하나 있긴 하지. 에어컨을 끄고 하루 이틀만 지나면 금방 몸이 좋아진다네.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마사지를 해서 혈액순환을 도와주면 더 빨리 호전되고 말이야. 또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지 말고 가끔 20~30분씩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도 냉방병을 예방하는 훌륭한 방법이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네에겐 그림의 떡일 테니, 긴팔 옷을 입거나 목에 작은 수건 같은 걸 둘러서 체온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막는 게 최선일 것 같구먼.” 

“음, 그런데 미안하지만, 사실 내 병은 냉방병이 아니네.” 

“아니 여태까지 듣고는, 갑자기 무슨 냉방병 걸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사실, 나의 두통이나 근육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복통, 설사는 실내외 기온 차 때문이 아니라네. 달랑 의자 10개가 전부인 작은 은행지점에 자네 가족이 벌써 사흘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을 치고 있다는 게 내 병의 근원이야. 위에서는 어떻게 좀 해보라고 자꾸만 나를 닦달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하도 스트레스가 쌓여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네. 이보게 친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만 나가주면 안 되겠나? 친구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말일세. 흑흑.” 

“난 또 뭐라고. 성격이 왜 이리 급한가? 우물가서 숭늉 찾겠구먼. 허허. 조금만 더 참아보게, 나도 이제 휴가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참말로 뻔뻔하구먼. 벼룩도 갖고 있다는 그 낯짝이 왜 자네에게만 없는 것인가. 흑흑”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더 격렬하게 아무 말도 안 들린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건강검진기에 담긴 과학원리

‘내가 비만일까? 아닐까?’ 이 같은 궁금증이 생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로카 지표(Brocas index)’라는 공식을 사용해 비만 여부를 계산한다. 명칭은 생소해도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알려주면, ‘아하!’라고 무릎을 칠 것이다. 평소에 많이 접해본 공식이기 때문이다. 

브로카 지표는 바로 자신의 키(cm)에서 100을 뺀 뒤에 0.9를 곱해서 표준체중을 구하는 공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180cm일 경우, 180에서 100을 뺀 80에 0.9를 곱했을 때 나오는 값인 72kg이 표준체중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식으로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은 자신의 몸무게와 키만 알면 되므로 간편해서 좋다. 하지만, 정확성면에서 보자면 문제가 있다. 이들 지표를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보디빌더처럼 근육량이 많은 사람들도 비만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몸속 지방량을 정확하면서도 손쉽게 측정할 수 있는 체성분분석기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 건강검진기 중 하나인 체성분분석기를 사용하면 같은 몸무게와 키를 가졌다 하더라도, 체내 지방량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 체성분분석기의 원리는 옴의 법칙 

인체를 구성하는 성분은 크게 체수분과 체지방, 그리고 단백질 및 무기질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체성분분석기로 측정했을 때 나오는 분석 결과표에 ‘세포 내 수분 00.0ℓ, 세포 외 수분 00.0ℓ, 단백질 00.0kg, 무기질 0.00kg, 체지방 00.0kg’로 표시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맨발로 체성분분석기 위에 올라가 손잡이를 양손으로 1~2분 정도만 잡고 있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몸 속의 성분들을 분석할 수 있을까. 갑자기 체성분분석기의 원리가 궁금해진다. 

체성분분석기는 저항이 크면 전류가 적게 흐른다는 ‘옴의 법칙(Ohms law)’과 관련이 있다. 공식으로 정의하면 전압(V)=전류(I)×저항(R)으로서, 전류의 세기는 두 점 사이의 전위차에 비례하고 전기저항에 반비례함을 나타내는 법칙이다. 

우리 몸은 70% 정도가 물로 이뤄져 있지만 지방에는 수분이 없어 전류가 흐르기 힘들다. 지방이 많다는 것은 저항이 크다는 의미다. 반면에 지방을 뺀 근육은 73%가 수분이어서 저항이 작다. 

이런 원리로 체성분분석기는 우리 몸에 600마이크로암페어(μA) 정도의 약한 전류를 흘려서 발생하는 저항값으로 체지방 등을 분석해낸다. 저항값이 크다면 체지방이 많다고 판단할 수 있다. 

체지방 외에도 체성분분석기는 흘려주는 전류의 주파수를 다양하게 보내 세포내 수분과 세포외 수분을 구분해 측정할 수 있다. 저주파 전류는 세포막을 잘 통과하지 못하지만 고주파 전류는 세포 속까지 흐른다. 

이때 저주파와 고주파 전류가 흐르면서 나타나는 저항값의 차이를 이용해 세포 안팎에 있는 수분량 비율을 구할 수 있다. 세포외 수분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 전체의 40% 이상이면 부종으로 판단하는데, 부종은 신부전이나 심부전, 그리고 간경변 등의 원인이 되는 증상이다. 

■ 안압이 높아지는 것은 눈 건강의 적신호 

체성분분석기 외에 우리가 자주 접하는 건강검진기 중 안압측정기나 폐활량측정기는 어떤 원리로, 그렇게 즉시 안압과 폐활량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까. 

안과에는 가면 흔히 하는 시력검사 말고도 안압검사라는 것이 있다. 안압이 높아진다는 것은 눈 건강에 있어 적신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안압이 높아지게 되면 망막 신경이 손상되면서, 녹내장 등의 질환이 발생하게 된다. 
 

사진. 안압측정기(출처: wikipedia)



안압이 생기는 원인은 안구 안에 차있는 방수액이 잘 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수액은 원래 새로 생성되고 배출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배출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안압이 올라가게 된다. 

안압측정기는 이 같은 현상을 이용해 안압을 측정한다. 카메라로 눈을 촬영해 자동으로 각막의 가운데 쪽으로 노즐을 맞춘 뒤, 압축공기를 순간적으로 분사한다. 이 때 공기압력이 각막의 일정 면적을 눌러 안구를 평평하게 만들 때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뒤, 계산식에 넣어 안압을 산출하는 것이 안압측정기의 원리다. 방수액의 순환 장애로 가득 차 있는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안압도 높아진다. 

반면에 폐활량 검사는 폐의 크기를 재는 것이다. 원래는 들이쉬는 숨의 양을 측정해야 하지만, 폐 속에 기기를 넣을 수 없기 때문에 반대로 내쉬는 숨의 양을 측정해 추정하는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쉰 뒤 7~8초까지 계속 내쉰 공기의 양으로 측정하는 것이 기본적인 검사 방법이다. 정상 상태에서는 처음 1초 동안 전체 날숨의 70% 이상이 나오지만, 천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70%가 채 안 된다. 

이 밖에도 활용 빈도수가 높은 건강검진기로는 혈당측정기가 있다. 혈당측정기는 혈액 내에 존재하는 혈당, 즉 글루코오스(Glucose)의 양을 측정하는 진단기기다. 개인의 혈당 수치를 간단하게 검사해, 신체 활동이나 섭취한 음식에 따른 혈당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뇨병 및 관련 질환의 관리에 필수적인 건강검진기다. 

혈당측정기는 크게 혈당측정기기(Meter)와 혈당스트립(Strip)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혈당측정기기는 혈액 내 혈당의 농도를 검출하는 기기로서, 수천에서 수만 번 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혈당스트립은 혈액을 묻힐 수 있게 화학적으로 제조된 검사지를 말한다. 혈액 내의 혈당과 반응해, 전기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효소를 포함한다. 

혈당측정의 원리는 크게 ‘광도측정법’과 ‘전기화학측정법’으로 구분된다. 광도측정법은 포도당이 효소와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간물질이 염료와 반응해 색이 변하게 되면, 여기에 빛을 쪼여 측정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전기화학측정법은 포도당이 효소와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전자를 전달해주는 매개체를 이용해 전극으로 전달할 때, 여기서 흐르는 전류를 측정해 혈당의 양을 파악한다. 

내 몸의 상태를 검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르고 있던 병을 알 수 있고, 또 병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원리가 가득한 건강검진으로 나와 가족의 건강한 삶을 지키자.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개코보다 코끼리 코!


현존하는 지상 최대의 동물인 코끼리는 이름처럼 코가 가장 긴 동물이다. 코라고 부르지만, 사실 윗입술과 코가 합쳐진 기관이다. 무려 15만 개의 근육으로 이뤄져 있어서 수백kg 이상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인터넷에는 성난 코끼리가 코로 나뭇가지를 잡고 흔들거나 던져서 사나운 맹수를 퇴치하는 동영상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래서 코끼리에게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천적이 없다. 

■ 후각 수용체 유전자가 개의 2배, 사람의 5배 

최근 과학자들은 코끼리 코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밝혀냈다. 일본 도쿄대 응용생화학과 니무라 요시히토 교수팀은 아프리카코끼리를 비롯해 오랑우탄, 쥐, 개 등 포유동물 13종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OR유전자, Olfactory Receptor)를 비교했다. 놀랍게도 아프리카코끼리에게 약 2,000개에 달하는 OR유전자가 있었다. 냄새를 잘 맡기로 유명한 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였다. 유인원과 인간에 비하면 5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동물의 후각 능력은 OR유전자의 수와 밀접한 상관이 있다. OR유전자가 많으면 훨씬 더 다양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린다 벅 교수는 2004년 냄새분자와 코 안에 있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짝이 맞으면 뇌로 신호를 보내 냄새를 인지한다는 후각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냄새분자가 수용체와 결합하는 패턴으로 어떤 냄새인지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냄새를 맡으려면 다양한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필요하다. 즉, 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OR유전자가 많아야 한다. OR유전자는 재조합 기능이 없어서 유전자 하나가 화학물질 하나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야생코끼리의 후각이 뛰어나다는 건 일찌감치 밝혀진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2007년 11월 의학 전문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는 아프리카코끼리가 먼발치에서 코만 한 번 벌름거려도 위협적인 부족과 그렇지 않은 부족을 구별해낸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영국 세인드앤드루스대의 진화심리학자 리처드 바이른 교수는 아프리카 케냐 지방에 사는 야생코끼리들이 그 지역에 사는 마사이족 사람에게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물론 마사이족은 종종 코끼리를 사냥해 왔기 때문에 코끼리가 공격하는 게 당연했는데,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었다. 마사이족이 아닌 다른 사람일 경우에는 바로 눈앞에서 코끼리에게 뾰족한 창을 휘둘러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사냥하는 부족 농사짓는 부족, 냄새로 구별한다 

연구팀은 다양한 행동 실험을 통해 아프리카코끼리가 마사이족의 빨간 옷과 고유의 사냥 자세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후각으로도 마사이족을 구분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마사이족 사람과 다른 부족 사람이 입었던, 같은 색상의 옷을 코끼리에게 주고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마사이족 옷에만 난폭한 행동을 보였다. 

바이른 교수팀은 3개월 뒤인 2008년 2월, 코끼리들이 가족 구성원이 매일 어디에 있는지를 그들의 소변 냄새로 파악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야생코끼리는 거대한 모계 가족을 이뤄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함께 여행하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서로를 보호해준다. 각 코끼리는 더 작은 무리로 나눠지거나 혼자 무리에서 떨어지더라도 서로 지나간 경로를 파악하면서 따라가야 한다. 이 때 후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땅바닥에서 코끼리 소변 샘플을 모았다. 소변의 주인공은 가족 구성원이 아닐 수도 있고, 무리의 선두에 있거나 한참 뒤처져 있을 수도 있었다. 연구팀은 소변 샘플의 냄새를 코끼리들에게 맡도록 하고 얼마나 많은 코끼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관심을 보이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가족 구성원이 아니거나 이미 앞서간 코끼리의 소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반면, 뒤에서 걷고 있는 코끼리의 소변 냄새에는 오랫동안 관심을 보였다. 자기보다 뒤에 있는 코끼리의 소변 냄새가 난다는 게 이상했던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행동으로부터 코끼리가 가족 구성원이 누구인지, 또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코끼리의 후각은 얼마나 뛰어날까. 스웨덴 린셰핑대 생물학과 마티아스 라스카 교수팀은 아시아 코끼리 세 마리를 대상으로 후각능력이 얼마나 정밀한지 연구한 결과를 2012년 12월 학술지 ‘화학감각(Chemical Senses)’에 발표했다. 원소의 종류나 위치가 한두 개 정도만 달라 화학구조가 매우 비슷한 냄새 분자 2개를 각 통로에 흘린 뒤, 먹이가 있는 곳의 냄새를 맞출 수 있는지 시험했다. 그 결과, 코끼리는 실험에 쓰인 총 12쌍의 냄새 분자를 높은 확률로 구별했다. 같은 테스트를 받은 원숭이나 물개, 꿀벌, 사람보다 훨씬 나은 성적이었다. 

■ 후각은 생존환경에 따라 퇴화하기도 발달하기도 

원래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조상들은 지구에 처음 등장했을 때 후각 수용체 수가 비슷했다. 그런데, 왜 후손들의 후각 능력은 달라진 걸까. 그리고 코끼리의 후각 능력은 왜 이토록 뛰어난 걸까. 요시히토 교수팀은 최신 컴퓨터 기법을 통해 후각 수용체 유전자, 즉 OR유전자의 진화 역사도 추적했다. 1만 가지 종류의 OR유전자를 연구한 결과, 13종의 포유동물이 공유한 것은 겨우 3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어떤 원시 유전자는 코끼리에서 84개의 유전자로 확장된 데 비해, 인간과 유인원에서는 유전자 1개로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진화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생존환경에 따라 필요 없는 수용체(유전자)는 퇴화하고 필요한 수용체는 늘어났을 것이다. 요시히토 교수는 “영장류 같은 고등 동물일수록 시각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OR유전자가 퇴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절반으로 줄어든 데 비해 쥐나 코끼리에서는 늘어났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코끼리에게 탁월한 후각능력이 필요했다는 건 그만큼 코끼리가 살기 어려웠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글 : 우아영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의 여정


뉴호라이즌스호는 2006년 1월 19일 미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명왕성을 향해 발사됐다. 약 9년 반을 날아 지난 7월 14일에 명왕성을 통과했다. 현실적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빛으로 4시간 30분의 거리인 약 50억km의 태양계 최외곽에서 명왕성 탐사선인 뉴호라이즌스호의 소식이 전해졌다. 우주의 신비와 인류의 우주과학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경외심을 자아냈지만, 사실 이 탐사선은 지구를 떠나기도 쉽지 않았던 미운오리새끼였다. 

명왕성은 태양계의 다른 천체에 비해서 탐사 우선순위가 낮은 편이었다. 명왕성이 있는 태양계 최외곽을 탐사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 그에 비해 얼음뿐인 천체에서 과학적으로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1년에 NASA(미항공우주국)의 명왕성 탐사 프로젝트가 확정되기 전까지 몇 번이나 이 프로젝트는 취소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는 탐사선을 제작하고 있는 과정에서도 예산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사실 훨씬 이전에 한 탐사선이 명왕성을 방문할 뻔 했다. 1970년대 미국의 태양계 그랜드 투어 계획인 ‘보이저호’의 초기 계획에 명왕성도 여행 일정에 포함됐었다. 하지만 당시 NASA는 명왕성보다는 더욱 흥미로운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관한 근접 탐사를 원했고, 비행경로가 다른 명왕성으로는 보이저호를 보낼 수가 없었다. 명왕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보이저3호에 관한 논의를 하기도 했었지만, 그뿐이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명왕성 탐사 계획이 불사조처럼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내에 ‘명왕성 바라기’와 같은 천문학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특히 이들은 1989년 명왕성의 근일점 통과를 계기로 대기층 존재에 관한 관측이 이루어지자 한층 고무됐다. 명왕성은 그냥 얼음뿐인 죽은 천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태양에서 멀어지면 대기가 얼어붙게 돼 탐사 가치는 떨어지게 됐고, 긴 공전주기 때문에 다시 248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특히 2006년 2월 이전까지 탐사선을 발사 할 수 있다면 거리도 해왕성 근처로 가깝고, 중간에 목성의 중력을 이용한다면 10년 정도로 도착할 수 있는 절호의 조건에 놓여있는 상태였다. 

이에 자신의 생애동안 다시 올 수 없는 이런 천문학적인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앨런 스턴(현재 탐사선 조사 책임자이자 뉴호라이즌스호의 이름 작명자)과 같은 일단의 천문학자들이 NASA를 계속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뉴호라이즌스호의 근접으로 180km 높이의 대기층이 발견되면서 이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명왕성 계획이 승인됐지만, 문제는 또 그때부터였다. 탐사선을 제작할 시간조차 부족한 ‘런치 윈도우(launch window, 발사 가능 시간)’ 마감을 불과 5년을 남겨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탐사선 제작은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맡았고 이들은 초고속으로 탐사선을 제작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보다는 기존의 기술이나 부품을 재활용했다. 당시 이 대학에는 제작이 완료돼 발사를 기다리던 ‘콘투어’라는 혜성핵 탐사선이 있었고, 이 탐사선의 스페어 장비를 많이 활용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예비 부품을 활용한 대표적 예가 흔히 원자력 전지로 불리는 ‘방사성 동위 원소 전지’다. 원자력 전지는 1821년 독일의 제베크가 발견한 제베크 효과를 이용한 전지로, 2종의 금속을 둥근 모양으로 접속하고 두 점 사이에 온도차를 주면 기전력이 발생해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전류가 생기려면 금속의 한 쪽을 계속 뜨겁게 해야 한다. 방사능 물질은 오랜 시간 열을 방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용한 것이 원자력 전지다. 

뉴호라이즌스호에는 이전 외행성 탐사선용으로 개발됐던 남은 플로토늄을 사용하려 했지만 수량이 모자라 러시아로부터 수입해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원자력 전지는 로켓이 폭발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방사능 물질이 노출되지 않도록 특수하게 제작됐다. 원자력 전지로부터 나오는 방사선으로부터 관측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중간에 연료탱크를 차단벽으로 사용했다. 

탐사선을 제작하는 동안 과학자들이 씨름한 가장 큰 문제는 전력과 무게였다. 원자력 전지로부터 나오는 전력이 100W(와트)짜리 가정용 전등 2개 정도에 해당하는 전력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장비들을 장착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부착되지 못한 것이 ‘리액션 휠’이라고 하는 일종의 전자석 팽이로 로켓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탐사선의 자세를 제어할 수 있는 장비다. 모든 인공위성에 장착되는 필수장비지만 전력과 무게 문제로 실릴 수 없었고, 뉴호라이즌스호는 평소에는 자체 회전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회전을 멈추고 연료를 사용하는 추력기로 자세를 제어하게 됐다. 

이외에도 카메라와 같은 관측 장비는 촬영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플랫폼위에 장착되는데, 무게를 줄이기 위해 고정형으로 설치하게 됐다. 이 때문에 촬영을 위해 탐사선 전체를 움직여야 했고, 촬영하는 동안에는 지구와 통신이 끊어지는 단점이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뉴호라이즌스호의 근접 비행당시 지구에서는 바로바로 근접 사진을 받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무게에 민감한 이유는 바로 ‘속도’ 때문이었다. 

명왕성으로 가능한 빨리 보내기 위해서는 ‘태양계 탈출 속도(제3속도)’로 뉴호라이즌스호가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야 했다.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로켓의 전체 무게에 비해 탐사선이 가벼워야만 했던 것이다. 573t(톤)의 발사용 로켓 무게에 비해 뉴호라이즌스호는 478kg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감량의 덕분에 뉴호라이즌스호는 지구 중력을 벗어난 당시 속도가 초속 37km로 인간이 만든 탐사선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지구중력을 탈출했다. 불과 9시간 만에 달을 지났고 13개월 만에 목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성까지 23개월이 걸린 ‘보이저호’에 비하면 얼마나 빠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목성에서 다시 중력 도움으로 속도를 높여 더욱 빨리 명왕성에 도착했다. 

탐사선 제작과 발사, 운영에 이르기까지 중급 규모인 800억 원에 불과한 탐사 예산으로 진행된 뉴호라이즌스호는 앞으로 9개월간 계속해서 명왕성을 근접 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동안 획득한 정보를 바로 지구로 보내올 것이다. 이후 NASA가 계속 운영을 승인할 경우, 탐사선은 카이퍼 벨트(Kuiper Belt, 태양으로부터 약 30~50AU 정도의 거리에 위치, 단주기혜성의 기원) 속에서 탐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비행경로 상에 위치한 2-3개의 천체를 후보로 찾고 있다. 

뉴호라이즌스호의 장비들은 마치 우주복처럼 18겹의 다층 박막 단열재로 둘러싸여 있어 태양계 최외곽의 극한에서도 전자장비들이 정상 작동할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2019년경에도 살아남아 카이퍼 벨트의 천체들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약 50억 년 전 태양계 행성 초기에 카이퍼 벨트 바깥 행성들도 탄생했고, 태양계의 극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이후 그렇게 빨리 노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명왕성과 카이퍼 벨트상의 천체들에 대한 탐사는 행성의 형성 역사를 고고학적으로 파헤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록 지구에서의 출발은 미운오리새끼처럼 시작됐지만, 뉴호라이즌스호의 활약으로 인류의 새로운 지평은 계속 넓혀질 것이다. 

글 :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전염병의 제왕, 천연두가 박멸하기까지

가뭄과 역병은 역사적으로 큰 위기다. 한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패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라가 망하는 원인을 딱 한 가지로 속단할 순 없지만, 기근(饑饉, 흉년으로 양식이 모자라 굶주리는 현상)은 명나라를 멸망에 이른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메르스라는 전염병과 극심한 가뭄으로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조선시대 후기, 한반도에는 전염성이 강하고 사망률도 높은 병이 창궐했다. 바로 천연두였다. 전염병의 제왕이라고도 불리는 천연두는 19세기 후반까지 한반도에 남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던 지석영(1855~1935)은 천연두의 창궐로 한의학의 한계를 몸소 경험했고, 서양에서 실시하고 있는 종두법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 전염병의 제왕, 천연두 

천연두(天然痘, smallpox)는 두창(痘瘡), 포창(疱瘡)이라고도 하고 속칭으로 마마(媽媽) 또는 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연두는 19세기 영국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우두접종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대유행을 되풀이하며 많은 사망자를 냈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천연두는 고열과 함께 전신에 발진이 나타났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연했던 여러 가지 전염병 중 감염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2주 정도를 버티면 흉터를 남기고 사라지지만 2주를 버티기 힘들었고, 낫더라도 흉한 곰보 자국을 남겼다. 

천연두는 인류 최초의 전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천연두로 3억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천연두가 발생했던 시기를 추정해 보자면,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람세스 5세 파라오의 미이라 피부에서 천연두 발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람세스 5세가 살았던 시기에도 천연두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루이 15세, 스페인의 루이스 1세, 러시아의 페트리아 1세와 같은 한 나라의 군주도 천연두의 위력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아즈텍 정복 전쟁에서 천연두는 특히 맹위를 떨쳤다. 당시 에스파냐의 군대는 약 600명뿐이었다. 하지만 아즈텍 원주민은 에스파냐 군대보다 30배가 넘었다. 에스파냐 군대는 자신들보다 30배나 많은 아즈텍 원주민을 이길 수가 없었으나, 에스파냐 군대에 섞여 있던 노예로부터 괴질이 퍼졌다. 이 괴질은 순식간에 주변지역을 휩쓸었고, 면역이 없던 아즈텍 원주민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이 괴질은 나중에 천연두로 밝혀졌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1만 명 이상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 31개 국가에서 풍토병으로 남아 있었으나 예방접종을 실시하면서, 마침내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에 천연두 멸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그 이후에는 천연두 예방접종을 권장하지 않았고, 1993년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에 우두법을 보급한 지석영 

지석영은 우리나라에 우두법을 본격적으로 보급한 인물이다.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지석영은 한의학자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아버지 덕분에 한의사인 박영선에게 한학과 의학을 배울 수 있었다. 종두법의 하나인 우두법에 대해 처음 접한 것도 스승인 박영선을 통해서였다. 박영선은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우두종두법에 대한 <종두귀감>이라는 책을 가져와, 이를 토대로 제자들에게 강의했다. 지석영도 그 제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종두귀감>을 읽고 강의를 들었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지석영은 20일을 걸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의 한 의원의 군의관이 종두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석영의 열정에 감동한 군의관이 약 두 달간 종두법을 가르쳐줬다. 여기서 가져온 두묘(痘苗, 두창에 걸린 소에서 뽑아낸 유백색의 우장(牛漿). 천연두 백신의 원료로 사용 함)와 종두침, 접종 기구를 들고 돌아온 지석영은 자신의 어린 처남에게 첫 종두를 접종했다. 그리고 그 마을 어린이 40여 명에게 접종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우두 접종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부산에서 가져온 두묘는 곧 바닥을 드러냈고,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접종하기 위해서는 두묘 제조기술이 필요했다. 

지석영은 1880년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게 됐고, 가서 우두술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왔다. 귀국한 후에는 서울에 종두장을 차렸고, 본격적으로 우두접종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천연두가 멸종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지석영은 우두접종을 의무실시 했고, 전라도나 충청도에도 우두국을 설치해 종두법을 가르쳤다. 1890년대 후반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글 연구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07년에는 한글 연구를 위해 국문연구소를 설립했다. 하지만, 친일개화정권 당시의 친일 행적은 지석영의 일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일본어에 능통했던 지석영은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온 일본군의 통역과 길 안내를 도맡기도 했다. 

■ 천연두를 몰아내기 위해 지석영만 노력했다?! 

지석영은 천연두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석영만 그런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천연두의 예방접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지석영이 도입했다는 우두법이 그 중 하나고, 나머지 하나는 인두법이다. 인두법이란 천연두 환자에게서 시료를 얻어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얻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두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인두법에는 환자의 옷을 입거나, 고름이나 딱지를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방법 등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방법을 시행됐다. 하지만, 천연두 환자에게서 시료를 채취하는 방법이 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시료를 채취하려는 한의사가 감염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오랜 시간 지나면서 인두법은 노하우가 쌓이게 됐고, 천연두의 예방 접종으로 널리 보급됐다. 

정약용은 지석영이 도입했다는 우두법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이 어렸을 때, 천연두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기 때문에 종두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가 직접 우두법을 시행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정약용은 천연두에 관심이 높아 인두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우두법에 대해서도 소개한 인물이다. 지석영만 천연두와 싸워온 사람으로 추대하기에는 억울한 사람이 많다.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COOKING의 과학] 국민 음식 닭고기로 여름나기

 

먹는 것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죠. 모두가 어려웠던 옛날에는 무조건 많이 먹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요즘 트렌드는 맛있는 음식을 건강하게 먹는 것입니다. 그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TV 프로그램에서는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늘어났고, 최근에는 메인 시간대에 편성되면서 대중의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블로그나 카페에 다양한 요리법이나 영양소에 대한 내용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2015년 과학향기에서는 [COOKING의 과학]이라는 코너를 신설해 매월 제철 음식을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영양소도 함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과학향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음식을 전공해서인지 여름철이면 늘 받는 질문이 있다. 더운 여름을 견디기 가장 좋은 보양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지치고 피곤한 여름의 해결책으로 보양식을 떠올리는 것이다. 실제 우리 조상들은 건강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계절에 따른 바른 음식 먹기’라고 보았다. 그래서 제 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주재료로 한 영양분위주의 보신 음식을 꼭 챙겨먹었다. 예로 한 여름 더위로 몸이 허약해 질 때쯤 해서 장만해 먹는 복(伏) 날 음식이 있다. 복날 음식이라면 개를 잡아 파, 마늘과 들깨 잎을 넣고 끓이는 개장국을 떠 올리지만 이는 주로 남쪽 지방의 풍습이었다. 서울 중부지역에서는 민어탕 그리고 닭에 인삼과 찹쌀을 넣고 끓인 삼계탕, 육개장, 그리고 장어 등이 유명했다. 

이렇게 다양한 보양식이 있지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영양 공급원이 될 수 있는 닭고기에 대해서 알아보자.닭고기를 이용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인 삼계탕은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과 마늘, 대추, 인삼을 넣고 물을 부어 푹 끓인 음식으로 과거에는 계삼탕이라고 했다. 연계(軟鷄, 영계)를 백숙으로 푹 곤 것을 ‘영계백숙’이라 했는데, 여기에 인삼을 넣어 계삼탕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삼계탕으로 부른다.그런데 지금은 삼계탕이 서민 음식이 됐고 오히려 보신탕이 서민이 먹기에는 부담이 가는 특식이 돼 버렸다. 서울 반가 사람들이 즐겼던 백성 ‘民(민)’자를 쓴 민어(民魚) 또한 비싼 생선이 돼 먹기에 부담스럽게 됐다. 

삼계탕은 한 사람이 혼자 먹기에 알맞은, 작은 크기의 어린 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그 안에 불린 찹쌀과 인삼, 대추, 마늘 등을 넣는다. 안에 넣은 재료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않도록 실로 묶고 물에 넣어 서서히 끓인다. 삼계탕 맛의 비결은 신선한 닭과 뚝배기에 뜨겁게 끓여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삼계탕 외에도 여름철 보양식으로 추천할 만한 닭으로 만든 음식들이 많다. 

임자(깨)를 넣어 끓인 임자수탕도 복날 음식 중 하나다. 닭을 푹 삶아 건져 살은 뜯어 놓고 닭 육수는 기름기를 걷어내고 차게 식힌다. 흰깨를 볶아 넣어서 곱게 가는데, 이 때 닭 국물을 붓고 갈아서 체에 거른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고명으로는 고기 완자와 오이, 고추, 표고 등에 녹말가루를 묻혀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내고, 황색 지단과 미나리 지단을 만들어 골패형으로 썬다. 대접에 닭고기와 고명을 두루 얹고 깻국을 부어서 낸다.깨의 고소함과 닭 국물이 잘 어우러져 맛도 좋고 영양적으로도 아주 우수하다. 

그리고 ‘초교탕’은 궁중에서 즐기던 닭 음식이다. 삶은 닭고기를 가늘게 가르고 도라지, 표고, 미나리 등을 합해 밀가루와 달걀을 풀어 한 수저씩 끓는 장국에 떠 넣어 끓인 탕이다. 비슷한 이름의 닭요리로 ‘초계탕’이 있는데 이는 닭을 토막 내어 끓이다가 오이, 석이, 표고, 목이 등을 골패형으로 썰어 볶아 넣고 달걀지단을 올린 탕이다. 요즘은 닭으로 맵게 끓인 국을 육개장에 비유해 ‘닭개장’이라고 하는데 닭을 푹 삶은 다음 살을 뜯어서 갖은 양념을 해 육개장처럼 맵게 끓인 것으로 주로 여름철에 많이 먹는다. 

이렇게 닭고기는 과거부터 우리 조상들과 매우 가까운 식재료였다. 이미 중국인이 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마한에 긴 꼬리 닭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닭 사육 역사는 2,000여 년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고구려 무용총에도 긴 꼬리 닭 그림이 존재하며, 삼국시대 무사들은 닭의 용맹함을 얻기 위해 닭의 꼬리 깃으로 모자를 장식했다. 고려시대 궁중에서는 시간을 알리는 닭을 사육하고, 한 해를 보내며 잡귀를 쫓는 의식에 제물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도 오계와 같은 닭을 식용, 약용으로 활용한 사례가 <식료찬요>, <동의보감>등에 기록돼 있다. 심지어 조선 중기 화가 변상벽은 ‘자웅동추’라는 꼬리가 긴 닭 그림을 남겼고 후배화가인 마군후는 이 그림에 닭에 인삼과 약재가 어우러지면 최고의 공을 세운다고 썼으니 재미있다. 

그럼, 닭고기는 어떻게 보관하는 것이 좋을까? 닭고기는 다른 고기에 비해 부패되기 쉬우므로 구입 후 바로 조리해서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양이 많거나 조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때는 반드시 냉장고에 넣어두고(1∼5℃) 하루 이틀 안에 조리하는 것이 좋다. 닭고기는 다른 고기에 비해 고깃결이 부드럽기 때문에 얼려서 보관하면 맛이 떨어진다. 손질법은 지방 부분을 제거한 뒤 조리에 사용하는데, 모래주머니나 내장류는 흐르는 물에 잘 씻어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전체적인 생 닭고기의 일반성분은 단백질 20.7%, 지방 4.8%, 무기질 1.3% 정도며, 칼로리는 100g당 173kcal이다. 닭고기는 지방이 많고 칼로리가 높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칼로리의 경우, 날개가 204kcal로 높지만, 가슴살(101kcal), 다리살(104kcal) 등은 삼겹살(210kcal), 쇠고기 등심(224kcal)에 비해 낮다. 그리고 콜레스테롤에 영향을 주는 지방은 주로 껍질에 분포하므로 이를 제거하면 과다한 지방 섭취를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닭고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특히 닭 가슴살은 다른 동물성 식품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22.9%로 월등히 높아 체중조절에 신경 쓰는 운동선수나 여성들에게 필수 건강식으로 이용된다. 또한 소화흡수가 잘되기 때문에 이가 불편한 노인이나 어린이, 회복기 환자들 및 임산부에게도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닭고기의 단백질은 전체 함량과 메티오닌 등 필수아미노산이 쇠고기보다 더 높고 두뇌 성장을 돕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함유황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풍부해 간장의 해독작용, 콜레스테롤 합성 또는 분해, 지방간 예방, 항동맥경화, 정력 감퇴를 예방한다. 닭 날개 부위에 풍부한 콜라겐 성분은 피부 탄력과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적이다. 피부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필수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이 육류 중 가장 높다. 또한 닭고기에는 불포화지방산 중 오메가3 지방산인 리놀렌산이 함유돼있어 암, 동맥경화, 심장병 등의 예방을 돕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린다. 특히 닭가슴살에는 피로회복물질인 이미다졸디펩티드가 100g당 약 200mg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해진 여름철에 더욱 효과적이다. 

이와 같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무엇보다 닭고기가 강자라고 추천하지만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오히려 한 여름 더위로 소화 기능이 약해 질 우려가 있을 때는 고단백 고기류보다 죽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날에 죽을 쑤어 먹으면 논이 생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니 보신을 더함과 빼줌의 양 측면에서 다 생각해 준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더욱이 죽으로는 콩과 쌀을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 만든 콩죽을 제일로 삼았는데 이 또한 콩 속의 질 좋은 식물성 단백질 효과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뜨거운 여름철 보양식의 진정한 강자는 다름 아닌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보양식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글 :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쿨토시와 쿨매트로 여름을 시원하게!


유난히 땀이 많은 과학 씨, 올 여름 ‘냉장고’ 셔츠를 한 벌 장만하기로 했다. 살얼음이 날리고 소름이 돋는 광고 영상에 혹했다. 땀이 날수록 시원해진다니 나를 위해 준비된 옷이 아닌가! 기능성 의류를 파는 매장 몇 곳을 돌아다니던 과학 씨는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프린트된 버추얼 아이스큐브가 냉장 효과를….” 
“쿨링 도트가 삽입돼 수분이 빠르게….” 
“아스킨 소재로 자외선 차단 효과가….” 
“아이스필과 메쉬를 믹스한 아이템으로….” 

기능성 의류는 ‘고어텍스’ 하나만 알면 OK이던 때가 그리웠다. 아이스와 쿨을 강조하는 설명을 들은 탓인지, 그저 빵빵한 에어컨 덕분인지 옷감에선 서늘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래도 옷인데 입으면 더 덥지, 시원할 리가 있을까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는 겁니까?” 
“시원해서 좋다고 또 사러 오는 분들도 많고,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상품이에요.” 
“시원하면 얼마나, 어떻게 시원하다는 건지, 인증마크 같은 건 없나요?” 

*** 

올 여름 아웃도어, 스포츠 의류 시장은 그야말로 냉전(冷戰)이다. 더 ‘시원하게!’를 외치며 앞 다투어 제품을 내놓고 광고에 열을 올린다. 사용했다는 소재며 기법이 제각각이라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업체별로 개발해 홍보하는 터라 기능성을 입증할 만한 공통의 수치나 테스트 결과도 없다. 선전은 요란한데 제품을 선택할 기준은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매년 심해지는 무더위에 냉감(冷疳) 소재에 관한 특허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06년까지는 한 해 1~2건에 불과하던 특허출원이 최근 몇 년 간은 한해 9건 정도 늘었고, 분야도 의류와 원단 외에 매트, 방석, 모자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냉감 원단은 땀 흡수가 빠르고, 금방 마르며, 바람이 잘 통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냉감 섬유로 쿨맥스(Coolmax)가 있다. 섬유 단면이 직사각형이라 단면이 둥근 일반 섬유보다 습기를 빠르게 배출한다. 새로 주목받는 소재 중 하나인 아스킨(Askin)은 독특한 횡단면 구조를 지닌 폴리에스터 섬유다. 피부와의 접촉면이 넓어 열을 빠르게 방출하고 빨리 마르는 특성에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갖춰 스포츠 의류와 수영복 외에도 커튼 등의 생활용품 소재로 쓰인다. 

주위 열을 흡수하는 열흡수성 냉감 소재도 있다. 상변환물질(Phase Change Material, PCM)이라 불리는 것으로 상온에서는 고체로 존재하다 주변 온도가 오르면 형태가 변하면서 열을 흡수하며 녹는 성질이 있다. 주변 온도가 대략 28℃를 넘으면 열을 흡수해 녹기 시작한다. 198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복을 위해 처음 개발됐다. ‘쿨매트’와 ‘쿨토시’ 등도 이 소재를 이용한다. 이 소재를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캡슐로 만들어 의류에 삽입하는 제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의류 외에도 방열이 필요한 전자제품이나 벽지 등 활용도가 다양하다. 

쿨토시의 기본적인 원리는 기화열이다. 기화열이란 액체가 증발하면서 기체가 될 때, 표면의 열을 가져가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뿌려놓은 물이 마를 때, 기체로 변하면서 주위의 열을 흡수하면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쿨토시도 안의 땀이 마르면서 기체로 변하는데, 이 때 열을 흡수하면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쿨매트는 상변환물질의 성질을 이용한 냉각젤에 의한 것이다. 흡열과 발열을 조절하는 냉각젤로 만들어져, 체온이 닿으면 열을 흡수하면서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일정시간(보통 1시간)이 지나면 냉각젤의 냉기가 소진돼 시원함이 떨어진다. 

그밖에도 업체마다 개발한 새로운 제품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달고 ‘쿨한’ 춘추전국을 이루고 있다. 냉감 소재에도 천하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까? SF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1년 내내 한 벌로 버티려면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해줄 만능 온도조절 의류가 필요하다. 

미국 메사추세스공과대학(MIT) 대학원생인 크란티 키란 비스타쿨라가 개발한 옷에서 그런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비스타쿨라는 컴퓨터와 같은 전자기기 냉각 장치에 사용되는 ‘펠티에 효과’를 이용해 의류를 개발했다. 펠티에 효과는 두 종류의 금속 접합부에 전기가 흐를 때 한 쪽은 온도가 올라가고 한 쪽은 내려가는 현상이다. 비스타쿨라는 별도의 냉각팬 없이 초소형 장치로 0~100℃까지 4단계 온도 조절이 가능한 의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 하이데라바드 지역에 다마이노베이션(Dhama Innovations)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의류와 의료기기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은 미래의 의류를 찾기 위한 놀라운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의 연평균 온도는 대략 27℃지만, 여름철 한낮에는 50℃까지 치솟는다. 이곳에 사는 사하라 은색 개미는 최대 53.6℃의 온도를 견딜 수 있다. 10mm 정도의 몸은 미세한 털로 덮여 있는데, 삼각형으로 된 독특한 단면의 털은 태양빛을 반사할 뿐 아니라 이미 흡수한 열도 방출하는 기능이 있다. 한편 고려대학교 윤석구 교수 연구팀은 2014년 호주에 사는 악마가시 도마뱀의 피부에서 영감을 얻어 소형 전자 기기의 방열필름을 디자인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구 기온의 상승과 전자기기 소형화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냉각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건물 지붕에서 차량, 대규모 공업단지에서 초소형 전자기기까지 더 시원해져야 한다는 게 화두다. 우리 몸을 둘러싼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불, 옷, 모자, 신발에서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까지 ‘쿨’과 ‘아이스’를 내세운 상품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 해도 선뜻 혹할 만큼, 지금은 무더운 여름이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악의 가뭄, 엘니뇨 때문?!


마른장마가 계속 되면서 가뭄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제9호 태풍 ‘찬홈’의 영향으로 제주 등 일부 남부 지역에 누적강수량이 1,200㎜에 달했지만, 제주나 남해안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되면서 가뭄 해갈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제 가뭄이 심한 중부지방의 강수량은 서울 38.5㎜, 파주 53.4㎜, 춘천 30.2㎜ 등에 그쳤다. 

박용진 기상청 통보관은 “가뭄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100㎜ 이상 비가 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서울에 내린 강수량은 1㎜로 같은 기간 최근 30년 평년치(98㎜)의 1% 수준이다. 반면 폭염은 기록적이다. 5월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가 하면, 찬홈이 지나간 14일에는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치솟는 등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통 6월 말부터 시작되는 장마의 영향으로 7월 상순에 많은 비가 내리는 게 한반도 여름 기후의 특징이다. 장마전선은 북태평양고기압과 오호츠크해고기압이 만나는 경계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올해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이전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때문에 장마전선이 북상하지 못하면서 마른장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슈퍼 엘니뇨 발생 가능성 제기 

스페인어로 ‘남자아이’라는 뜻의 엘니뇨는 적도 부근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약 2~7년 주기로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가 나타나는 이유는 열대지역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무역풍이 약화되면 서쪽에 있는 따뜻한 해수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동태평양 지역의 차가운 물이 표층으로 올라오는 용승(湧昇, upwelling)현상을 억제해 이곳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게 된다. 

열대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해당 지역에 막대한 양의 열과 수증기가 대기로 공급된다. 이는 지구의 기압계에 영향을 미쳐 특정 지역에선 고기압을, 다른 지역에서는 저기압을 강화시킨다. 고기압의 세력이 강해진 곳에선 폭염 등 고온현상이, 저기압이 심해지면 폭우, 홍수가 발생한다. 

현재 엘니뇨 감시구역(북위 5도~남위 5도, 서경 120~170도)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1.3도 높은 상태로, 중간 강도의 엘니뇨를 보이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하반기에는 강한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고, 호주 기상청도 “이번 엘니뇨는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1997~1998년 이후 가장 강력한 ‘슈퍼 엘니뇨’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엘니뇨 발생 주기 역시 점차 짧아지고 있다. 기상청 관측 자료를 보면 과거에는 4~6년 간격을 두고 엘니뇨가 발생했다. 1953년 봄~가을 발생한 엘니뇨는 4년 뒤인 1957년 봄에 다시 나타났다. 이후 엘니뇨가 또 다시 발생한 건 6년이 지난 1963년이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는 발생주기가 2002년 봄, 2004년 여름, 2006년 가을, 2009년 여름(발생 시기 기준)으로 2,3년 터울로 나타나고 있다. 1951년 이래 올해까지 엘니뇨는 총 20차례 발생했다. 

엘니뇨는 한반도의 날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겨울에 엘니뇨가 발생한 해에는 이상고온 현상이나 폭설피해가 잦았고, 여름철에는 집중호우가 발생했었다. 다만 봄과 여름에 엘니뇨가 발생한 해에는 장마 기간이 짧았다. 1994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엘니뇨가 이어졌던 당시 중부지방은 10일, 남부는 6일 만에 장마가 끝이 났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엘니뇨가 발생하면 집중호우로 강수량이 많아지고, 태풍도 평년보다 많이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올해 1~7월까지 발생한 태풍은 12개다. 1981~2010년 30년 평균(7.6개)보다 1.57배 많다. 

■ 한반도 영향 미치는 태풍 세기 커져 

문제는 엘니뇨 발생이 한반도의 태풍 피해를 키운다는 점이다. 태풍은 수온이 27도 이상의 따뜻한 저위도 지역에서 발생한다. 이후 수증기를 에너지 삼아 세력을 키운다. 그러나 북상하면서 차가운 해역과 만나게 되고, 수증기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세력이 약화되는 경우가 잦았다. 강한 태풍이 발생해도 한반도가 위치한 중위도 지역으로 올라오면 위력이 많이 약해졌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반도 인근 해수면 온도는 한여름에도 25도를 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해수면 온도가 전 세계 평균보다 급하게 오르고 있어, 엘니뇨의 영향으로 발생한 태풍이 중위도에 올라와서도 세력이 약화되지 않고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관측을 시작한 1904년 이래 국내에서 재산피해를 많이 낸 태풍 10개 중 6개가 2000년 이후 발생했다. 

그만큼 태풍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뜻이다. 1937~2014년에 발생한 1일 최대풍속 상위 10위 태풍 가운데 6개 역시 모두 2000년 이후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1~5위까지 모두 2000년 이후 발생한 태풍이었는데, 1위 매미(2003년, 최대풍속 초속 60m) 2위 쁘라삐룬(2000년, 최대풍속 초속 58.3m), 3위 루사(2002년, 최대풍속 초속 56.7m), 4위 나리(2007년, 최대풍속 초속 52.4m), 5위 볼라벤(2012년, 최대풍속 초속 51.8m)이었다. 

태풍의 강도는 중심의 최대 풍속에 따라 약한 태풍(최대 풍속 초속 17~25m 미만), 중간 태풍(초속 25~33m 미만), 강한 태풍(초속 33~44m 미만), 매우 강한 태풍(초속 44m 이상)으로 분류한다. 초속 15m의 바람은 건물에 붙은 간판을 떨어뜨리고, 초속 25m 바람은 지붕이나 기왓장을 뜯어 날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 

최대 풍속이 초속 65m인 슈퍼태풍은 철탑마저 휘어지게 할 정도로 강력한데, 2005년 8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가 대표적인 예다. 카트리나로 사망이나 실종된 사람은 최소 2,500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당시 800억 달러(약 91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슈퍼태풍이 국내에 온 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슈퍼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경우, 수 m의 해일이 부산을 덮치고, 하루에 비가 1,000㎜ 이상 퍼부어 서울 여의도가 물에 잠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우로 소양강댐마저 무너져 내렸다. 

최근 우리나라 기상청이 태풍 찬홈의 이동 경로를 미국, 일본, 중국과 비교해 가장 부정확한 예보를 했다. 태풍에는 장사가 없다. 정확한 예보와 그에 따른 적절한 대비가 중요한 때이다. 

글 : 변태섭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만화] 오~ 진실이시여! 리플리증후군


기말고사가 끝난 뒤로 태연의 일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게으르다. 세수와 샤워는 물론 양치도 하지 않아 입에서 곰삭은 청국장 냄새가 나고, 방은 온갖 과자봉지들로 뒤덮인 쓰레기장에 가깝다. 

“방 좀 치우라고 했지! 바퀴벌레 사육이라도 할 참이냐, 어?” 

“아이, 왜 그러세요. 평균 90점 넘으면 무한자유를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뭐, 불가능할 줄 알고 약속한 거지. 암튼, 정말 90점 넘은 거 맞아? 만날 60점만 맞던 네가 고득점 딸로 거듭났다는 게 영 실감이 안 된단 말이야. 성적표는 언제 나오니?” 

그런데 ‘성적표’라는 단어에 순간 태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러더니 자꾸만 손으로 입과 코를 만지작대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더니,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 앉는다. 

“딱 걸렸어. 성적표 나올 때까지 게으르게 한 번 살아보려고 거짓말한 거였구나!” 

“헉, 점쟁이 빤쓰라도 빌려 입으신 거예요? 죄송해요. 실은 말숙이가 리플리증후군이라는 걸 알려줬는데, ‘나는 90점이다, 틀림없이 90점일 것이다’라고 계속 생각을 하면 정말 그렇게 믿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해본 건데, 제 연기가 그렇게 형편없었어요?” 

“뭘 알려면 좀 제대로 알아라.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은 ‘허구의 세계를 진짜로 믿어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정신과적으로 보면 일종의 망상장애야. 성취욕은 아주 큰데 실제로 성취할 능력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열등감에 빠진 나머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거짓으로 만든 지위나 신분 등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거지. 네가 한 단순 자기암시와 망상장애는 전혀 다른 거라고! 게다가 얼굴을 만지고 자세를 바꾸는 것은 네가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딱 그 몸짓이란 말이다. 누굴 속이려고 들어, 이 녀석아!” 

“어쨌거나 리플리증후군에 걸려도 거짓말을 하는 건 맞네요. 그냥 거짓말과 정확히 뭐가 다른 거예요?” 

“보통 거짓말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숨기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하게 되는데,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본인도 잘 알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단다. 그래서 심장도 벌렁벌렁 뛰고 자기도 모르게 아까 네가 했던 것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거지. 반면에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려서 죄책감 같은 감정이 거의 없어요. 얼마 전에 세계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 동시 입학했다고 거짓말을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학생도 자신이 진실을 말했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는구나. 리플리증후군인 거지.” 

“그 얘기는 저도 들었어요. 그게 리플리증후군이었구나. 근데 리플리가 무슨 뜻이에요?” 

“뜻이라기 보단 소설 속 인물 이름이야. 미국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955년 작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 나오는 인물인데, 호텔 종업원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재벌 2세 친구를 죽이고는 완벽하게 그 친구 행세를 하는 사람이지. 소설 속 리플리는 실제로 자기가 재벌 2세라고 철석같이 믿고 산단다. 이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리플리 같은 정신과적 증상에 관심이 집중됐고 ‘리플리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거지. 이후에도 리플리증후군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계속 만들어졌는데 아빠와 비슷하게 생긴 ‘알랭 드롱’이 주연한 1960년 작 ‘태양은 가득히’나, 역시 아빠를 꼭 빼닮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2002년 작 ‘Catch Me If You Can’ 등이 그것이란다.” 

“만약 그들이 아빠를 닮지 않았다면 아빠는 거짓말쟁이일까요, 리플리증후군에 걸린 걸까요? 흠, 뜨끔 하는 표정을 보니 거짓말쟁이시군요. 암튼, 그럼 이 병은 어떻게 치료해야 해요?” 

“글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료가 아주 어렵단다. 일단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이 거짓말로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처럼 대단하지도 멋있지도 않다는 걸 인정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는 구나. 현실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두려움과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다시 망상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는 거야.” 

“휴, 좀 안쓰럽긴 하네요. 그럼 영 방법이 없는 거예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란다. 현실 속 자신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주는 거야. 현실의 내가 맘에 든다면 굳이 허구 속으로 숨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자연히 치료가 되겠지.” 

“그럼 저도 치료해 주세요. 현실 속 60점도 충분히 훌륭한 점수라고 느낄 수 있도록 ‘60점이나 맞다니 태연이 넌 정말 대단해!’라고 칭찬을 해달란 말이에요. 그럼 저도 아빠의 외모가 현실 속에서도 매력만점이라고 말해 드릴게요. 헤헤. 이 정도면 완전 공정한 거래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태연이, 너!!”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트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야생 침팬지의 냉장고를 부탁해


전래동화 중에 무엇이든 심하게 아껴서 쓰던 자린고비 이야기가 전해진다. 너무 흔들다 닳아버릴까 염려해서 부채는 세워두고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식탁에 앉았던 파리가 다리에 된장을 묻히고 날아가자 아까운 나머지 뒤쫓아 가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소금간이 된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두고 맨밥을 먹으며 쳐다보다가 “아이고 짜다” 하고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반찬을 대신했다는 내용이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먹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하는 음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유행이다. 내가 아닌 남이 열심히 음식을 먹으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열광을 하며 심지어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현상이라 외신들도 먹방 현상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식사는 가족, 친구, 동료처럼 친근한 사이끼리만 함께할 수 있는 행동이다. 식당에 가서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밥을 먹게 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경험이 그리워질 때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 먹방을 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매번 다른 요리와 반찬을 즐기기가 어려워진 것도 원인이다. 유명 레스토랑의 음식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인기를 끄는 것도 먹방과 비슷한 현상이 진작부터 시작됐다는 증거다. 

이제는 먹방의 시대를 지나 남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즐기는 ‘쿡방’이 인기다.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이 비법을 전수하고 설명하는 방송이었다면, 지금의 쿡방은 경력이 오래된 요리연구가들을 ‘셰프(Chef)’라 부르며 연예인처럼 동경하고 환호를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요리를 따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만들고 맛보는 장면 자체를 좋아해서 방송을 본다. 생활 속에서 직접 요리를 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경이로움도 한몫을 한다. 

칼과 불을 이용해 원래 날것이던 재료를 변화시켜 맛있는 음식을 탄생시키는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나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요리를 잘하는 쪽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게 당연하다. 18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의 법률가 겸 저술가 제임스 보즈웰(James Boswell)은 인간을 요리하는 동물(Cooking Animal)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으며, 식재료를 지지고 볶고 굽고 찌고 삶고 끓이는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하버드대학교 인류학 교수는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먹음으로써 인류의 진화가 촉진됐다며 ‘화식(火食) 진화설’을 주장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던 랭엄 교수는 주식이 되는 열대과일과 덩이뿌리를 시식했다가 깜짝 놀랐다. 쓴맛이 강하고 질겨서 제대로 씹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600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지금에 이르렀다. 요리라는 고난이도의 과정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면 그 출발점이 궁금해진다. 랭엄 교수는 10년이 넘는 증거 수집 끝에 2009년 요리의 중요성을 담은 책 ‘요리 본능(Catching Fire)’을 펴냈다. 

날것을 그대로 먹는 생식이 몸에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전 세계에서 수렵채집 민족으로 살아가는 부족 중에서 생식을 하는 사례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랭엄 교수는 식재료를 불에 익혔을 때 맛과 영양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실제로 날달걀을 섭취했을 때, 소화를 통해 흡수되는 단백질은 50% 수준이지만 익혀서 먹으면 90% 이상의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생식을 고집하면 낮은 소화 흡수율로 인해 체중이 계속 감소하며 결국에는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 조건이 나빠진다. 

불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 것은 여러 장점을 준다. 첫째로는 소화가 쉬운 상태로 식재료가 변화하면서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 체력적으로 유리하다. 뇌는 근육보다 22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익혀먹지 않고는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유인원에 가까운 호모 하빌리스에서 뇌 용량이 1.5배 커져 두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불을 이용한 요리가 필수적이다. 

둘째로는 요리는 식재료를 연하게 바꾸므로 섭취와 소화에 필요한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침팬지는 주간 활동시간의 절반에 달하는 6시간을 매일 음식을 씹는 데 소비하지만, 인간은 1시간 정도만 씹으면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요리 덕분에 소화시간도 짧아져 노동시간도 그만큼 더 많이 확보하게 됐다. 셋째로는 음식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식재료를 불에 익히면 영양분이 파괴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성이 제거되는 이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패에 관여하는 세균과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보존기간도 늘어난다. 

불에 익힌 식재료가 맛과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면 동물들도 요리된 음식을 선호할까.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랭엄 교수의 주장을 토대로 최근 2년 동안 아프리카 콩고의 야생에서 실제 실험을 진행했다. 날고구마 조각을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흔들며 1분 동안 기다리면 마치 요리가 된 것처럼 익힌 고구마로 바꿔주는 장치를 설치하고 반응을 지켜봤다. 

연구진이 제공한 날고구마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지 않고 1분을 기다려서 익힌 고구마로 바꿔간 침팬지의 비율은 90%에 달했다. 심지어 나중에 요리해 먹기 위해 날고구마를 쌓아두는 모습도 보였다. 침팬지가 맛과 영양을 위해서라면 인내심을 발휘할 줄도 알고, 식재료를 변화시키는 과정과 필요성도 문제없이 이해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등산을 하다보면 ‘산에 사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하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대부분은 불에 익힌 식재료들이어서 섭취와 소화에 편리하다. 그러나 동물은 인간처럼 조리 기구나 요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등산객들이 주는 익힌 음식에 길들여지면 야생에서 생식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 요리는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 3 4 5 6 7 8 ··· 90 
BLOG main image
생활에 밎줄 긋는 과학이야기♡ -KISTI의 과학향기-
by 과학향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78)
과학향기 기사 (892)
과학향기 이벤트 (1)
과학향기 독자참여 (1)
이런주제 어때요? (1)

달력

«   2021/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
Clicky Web Analy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