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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간지 ‘라이프 매거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꼽았다. 이보다 앞서 2005년 말 크로아티아는 테슬라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06년을 ‘니콜라 테슬라의 해’로 정했고, 세르비아는 2006년 3월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이름을 ‘테슬라 공항’으로 바꿨다.

테슬라를 두고 미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가 서로 자기 나라의 발명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테슬라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과학자 테슬라,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세계가 이렇게 새롭게 주목을 하는 것일까?

테슬라는 현대 전기문명을 완성한 천재 과학자다. 현대 전기 문명의 근간이 되는 교류를 발명했으며, 수많은 전기 실험으로 ‘거의 모든 현대기술의 원조’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시대를 앞선 과학적 통찰력과 독특한 삶 덕분에 많은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과학향기링크

그의 업적을 대표하는 교류발전기와 송·배전 시스템은 웨스팅하우스사(社)에서 일하면서 만들어냈다. 교류는 전기가 흐르는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전기다. 직류에 비해 적은 손실로 전류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현대 전기 문명을 일으킨 원천기술이다. 이 발명은 1895년 웨스팅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발전기를 사용한 수력발전소를 만들면서 빛을 보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은 등 수많은 전기문명이 테슬라의 교류 전기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1891년에는 유명한 테슬라코일(Tesla Coil)을 제작했다. 테슬라코일은 간단한 장치로 수십만 볼트의 전압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당시 60Hz에 불과했던 가정용 전기를 수천Hz의 고주파로 바꾸며 엄청난 고전압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를 사용해 테슬라는 최초의 형광등과 네온등도 만들었다.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테슬라코일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테슬라코일을 이용하면 물체에 자기장을 걸어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이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말 개봉한 ‘프레스티지’(Prestige) 영화를 보면 마술사 로버트가 순간이동마술을 펼치기 위해 테슬라를 찾아가 테슬라코일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테슬라코일의 유명세와 신비주의를 따르는 추종자 덕분에 테슬라는 ‘몽상가’ ‘미친 과학자’ ‘마술가’ 등의 호칭도 갖고 있다.

또 테슬라는 한 발 앞선 발명가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알려 줬다. 그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후대 과학자들이 테슬라의 이론으로 만들어낸 기기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테슬라코일을 이용한 실험 도중 라디오 신호를 같은 진동수로 공명시키면 송수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리는 현재 라디오나 TV 등에 응용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무선조종장치를 연구하던 테슬라는 현대 로봇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무렵 잠수함을 탐지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2차 대전에서 레이더로 실용화됐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의 발명노트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

테슬라의 발명을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는 전기기계용 전류전환장치, 발전기용 조절기, 무선통신기술, 고주파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리고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최초의 X선 사진, 레이더 등도 그의 작품이다.

많은 발명품을 만들고 현대 과학기술을 예견하고 아이디어를 준 테슬라는 그의 업적만큼 살았을 때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라이벌이었던 에디슨 때문에 그의 업적은 많이 가려졌다. 1882년 테슬라가 에디슨 연구소에 들어가 발전기와 전동기를 연구할 때부터 에디슨은 천재적인 테슬라의 재능을 질투에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초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안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류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고,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사표를 던진다.

직류방식을 고집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압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실험을 하고,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집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는 교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자신의 특허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1915년 뉴욕타임즈에 테슬라와 에디슨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났지만 결국 둘 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데, 테슬라가 에디슨과 함께 상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이한 삶처럼 그의 성격도 특이했다. 식사 전 광택이 나도록 스푼을 닦아야 하는 결벽증이 있었고, 손수건은 하얀 비단으로 된 것만 썼다. 호텔방의 호실은 3의 배수여야만 했고, 비둘기에 집착해 말년 그의 호텔방에는 비둘기 새장이 가득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발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테슬라는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러나 세상은 시대를 앞서갔던 테슬라를 잊지 않았다. 1961년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IUPAP)의 표준단위 및 그 정의에 관한 위원회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이름을 딴 T(Tesla)주1)를 쓰기로 했다. 전기를 이용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던 테슬라의 이름에 걸맞는 단위라 하겠다. 이를 통해 테슬라의 이름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나게 되길 기대한다.
(글 : 남연정 과학전문 기자)


주1) 1T : 1㎡ 당 1Wb의 자기력선속밀도를 가리키는 단위. 자기장에 수직인 단위면적당 자기력선속으로 자기유도 된 정도를 나타낸다.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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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어느 날, 한 청년이 자신의 중학생 시절 수학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편지 맨 마지막 줄에 3√6064321219라는 괴상한 날짜를 적어 보내 수학 선생님을 난처하게 했다. 3√a은 세 번 곱해서 a가 되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3√8은 세 번 곱해서 8이 되는 수, 즉 2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3√6064321219 를 계산하면, 세 번 곱해서 6064321219가 되는 수는 약 1823.5908이다. 따라서 편지를 작성한 해는 1823년이다. 나머지 소수점 이하는 1년을 단위로 하였을 때의 소수이기 때문에 날짜로 고치면 365×0.5908=215.64일이 된다. 소수점이하를 반올림하면 1823년에서 216일째 되는 날, 즉 편지를 적은 날짜는 1823년 8월 4일이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두뇌를 지녔던 이 청년은 바로 ‘아벨상’의 주인공 아벨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아드리안이 “수학자로 200년 동안 할 일을 했다”며 “이 젊은 노르웨이인 머리에는 과연 어떤 것이 들어 있을까”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일찍이 천재성을 꽃피운 닐스 헨릭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은 1802년 노르웨이의 핀도에서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나 수학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수학자로서 그가 이뤄낸 성과 중 가장 손꼽히는 업적은 ‘5차 이상의 방정식은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방정식은 아벨의 주 분야였다. 중학교 수학을 배운 사람은 1차 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방정식의 일반해는 처음 1차에서 시작하여 2차, 3차, 4차 방정식으로 차수를 한 단계씩 높여가며 구해졌다. 2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는 방법이 발견되자, 수학자들은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해 3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고, 또 4차 방정식의 일반해는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했다. 이런 식으로 하여 4차 방정식까지 근을 구하는 공식을 알아낸 것은 16세기쯤이다.

이쯤 되면 5차 방정식의 일반해도 4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하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5차 방정식에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기라성 같은 수학자들이 5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찾는 데 도전했지만, 근을 구하는 방법은 좀처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씨름하기를 무려 300년. 그러나 19세기 초가 되도록 5차 방정식의 일반해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수학자들을 지치게 만든 5차 방정식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뜻밖에도 22세의 젊은 수학자, 아벨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식을 찾는 데 매달려 있을 때, 아벨은 ‘과연, 근이 존재할까? 혹 근의 공식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 문제에 접근했다. 그 결과 “5차 방정식을 푸는 근의 공식은 없다”라고 결론짓고,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아벨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즉 어떤 법칙이 정의돼 있는 집합의 원소에 임의의 두 원소를 결합해 그 결과 역시 그 집합의 원소가 될 때, 이를 ‘군’(群, group)이라 하는 이론이다. 이 군이론은 오늘날 통신, 공개 키 암호, 양자학 등에 응용되고 있다. 어쨌든 아벨은 이로써 약 3세기 동안 수학의 난제였던 5차 방정식 난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1824년 아벨은 5차 방정식의 일반해가 없음을 증명한 논문을 출간해 당시 수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가우스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 논문은 읽혀지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져, 한낮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당시 가우스는 ‘5차 방정식의 해는 반드시 존재한다’라고 생각했었다. 5년 뒤 아벨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곁에서 죽음을 슬퍼했던 수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가 죽은 뒤 되살아났다. 아벨이 죽은 지 이틀 후에 뒤늦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아벨의 천재성을 인정한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그를 교수로 채용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 이듬해엔 프랑스 학사원에서도 학사원상을 수여한다는 통보가 왔다. 이미 늦은 일이었지만 세상이 아벨의 천재성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또 아벨은 노벨상과 견줄 만한 아벨상의 제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의 상이 없다. 천재 수학자 아벨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아벨상은 매년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학자에게 수여된다. 노르웨이 정부는 아벨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2002년 3백억원의 기금으로 아벨상을 제정하고, 2003년부터 순수ㆍ응용수학 분야의 심도 있고 영향력 있는 연구성과에 대해 아벨상을 주고 있다. 연령에 관계없이 매년 1명에게 수상하는 것이 원칙이나, 공동 연구로 큰 성과를 낸 경우 공동 수여할 수 있다. 상금은 92만 달러(약 8억4000만 원)이다.

살아있을 때는 다른 수학자들에게 번번이 묵살돼 불운한 삶을 살았던 수학자 아벨은 아벨상과 함께 ‘아벨의 적분’ ‘아벨의 정리’ ‘아벨 방정식’ ‘아벨군’ 등 많은 수학용어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불행하고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오히려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셈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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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용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차 이상의 방정식은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5차 이상의 방정식의 해를 대수적 연산에 의해 일반적으로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지 해 자체가 없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n차방정식의 해가 n개 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대수학의 기본정리이고, 이것을 가우스가 증명한 것입니다.

    2008.06.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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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과학자를 모델로 우표를 발행한 적은 없다. 그러나 북한은 두 차례나 한 명의 과학자를 기념한 우표를 발행했다. 바로 합성섬유인 ‘비날론’의 발명자 고 리승기 박사(1905~1996)가 주인공이다. 리 박사는 196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크게 이름을 떨친 과학자로,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그에 관한 대중용 전기가 출판될 정도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리 박사는 1905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츠야마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뒤 1931년 교토제국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했다. 훗날 그가 쓴 자서전에 따르면 가난한 형편 탓에 대학 시절 결핵을 앓기도 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원래 리 박사가 연구하기 원했던 분야는 합성섬유였지만 조선인 출신이 일본에서 직장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도 교수였던 기타(喜田)의 추천으로 처음에는 아스팔트를 연구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아스팔트와 관련한 다수의 특허를 취득하는 성과를 올린 리 박사는 곧이어 자신이 원하던 합성섬유를 연구할 기회를 잡는다. 바로 교토제국대 부설 일본화학섬유연구소에 연구강사로 임용된 것이다.

1938년 미국 듀퐁사가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하면서 세계 각국에 합성섬유 연구 열풍이 불었다. 원래 세계적인 비단, 면직물 수출국이었던 일본도 합성섬유 연구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달리 일본은 폴리비닐알콜(polyvinylalcohol, PVA) 계열의 고분자 화합물을 원료로 쓸 수 있는지 연구했다. 나일론은 석유를 원료로 필요했지만 폴리비닐알콜은 석회석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석유가 나지 않는 일본에 적합했다. 또 PVC로 만든 합성섬유는 나일론이나 아크릴 섬유에 비해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뛰어나 면직물을 대용하는데 유리했다.

마침내 1939년 리 박사는 PVC로 ‘합성섬유 1호’를 개발했다. 합성섬유 1호는 단순한 개인적인 영광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리 박사가 거둔 성공은 조선인의 자랑이 되기에 충분했다. 과학잡지 ‘과학조선’은 조선인 과학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리승기를 지목했고, 종합잡지 ‘조광’(朝光)도 ‘세계의 학계에 파문을 던진 합성1호의 기염-리승기 박사의 고심 연구달성’(1939년 12월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이를 두고 리 박사는 자서전에서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거론하며 자신의 연구 성과가 일본 과학의 성과로 귀속된다는 사실에 무척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리 박사의 연구가 공업화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완전한 실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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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합성섬유 1호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쉽게 수축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처리를 하는 경우 착색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리 박사는 제조 공정 중에 포르말린 대신 아세트알데히드를 넣는 방법을 고안해 1942년 무렵까지 합성섬유 1호의 대부분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가 서둘러 상업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당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어서 자신의 연구가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품 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리 박사의 의도대로 합성섬유 1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업화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편 리 박사는 헌병에게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빌미로 일본 오사카 감옥에 갔다가 거기서 광복을 맞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리 박사는 서울대 공대학장, 대한화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지만 얼마 뒤인 1950년 7월 31일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평양에 간다. 리 박사의 월북 배경을 둘러싸고 어떤 이들은 그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에 기울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네다섯 차례에 걸친 끈질긴 월북 권유를 물리쳤고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당시 남한은 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반면 북한은 해외에 거주한 조선 과학자까지 초빙해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지원했다. 아마 리 박사에게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에서의 근무와 비날론연구소 설립을 제안한 것이 그가 월북한 가장 큰 요인으로 추측된다. 흥남의 질소비료공장은 당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대공장으로, 카바이드와 아세틸렌, 아세트산, 아세트알데히드 등을 생산했다. 이들은 모두 합성섬유를 만드는 원료였다.

김일성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 연간 2만톤의 비날론을 생산하는 공장이 완공됐다. 석회석과 무연탄, 전기를 이용해 만든 카바이드를 기본 원료로 삼아 만드는 비날론(Vinalon)은 비닐알코올을 축약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비닐론(Vinylon)이라 불린다. 그 뒤 ‘주체사상’이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비날론은 ‘주체섬유’로 불릴 만큼 획기적인 성과였다.

무엇보다 비날론은 조선인인 리 박사가 개발했고, 질감이 조선의 전통 옷인 면과 비슷하며,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회석을 원료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공업화와 체제 건설의 역사와 나란히 서술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리 박사에게 노력영웅 칭호와 제1회 과학부문 인민상을 수여했다. 병으로 드러누웠을 때 김일성이 그에게 100년 된 산삼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광복 이후 남한에서 과학자를 우대했다면 리 박사가 서울대 응용화학과에서 길러낸 제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월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미군정이 한국을 일본의 영토로 간주해 서울대의 학제개편을 미국식으로 강요한 탓에 담양으로 낙향했을 때도 “아편쟁이가 아편을 잊지 못하듯 비날론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한국인 과학자의 해외 두뇌유출을 걱정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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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한테나 대단한거지.. 저건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들도 다 만들수 있는거 아닌가? 너무 띄워줄필요는 없는듯

    2008.06.12 22:26
    • 문준섭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을 잘 읽어보시지,... 시기가 일제 강점기 직후랍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님이 말하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없었습니다.

      2008.06.12 22:38
    • 비날론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소기업이 아니라 지금 이런사람있으면 대용연료를 연구해서 연료걱정을 안 해도 될것같아요,비날론공장도 삼성만한 대 기업,,북한에서 하나밖에 없는 대 화학연합기업소,,

      2008.06.13 07:11
    • 허허..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각이 좀 얕으신듯? 간단히 말하자면.. 님은 에디슨을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으시겠네요?? 미국에서나 대단한 사람이지 뭐 요즘 어지간한 중소기업 어디서든 만들수 있는 물건들만 개발했으니??

      2008.06.13 10:22
    •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이론.. 볏신..
      글을 똥꾸녘으로 읽냐?

      2008.06.13 11:12
  2. 글쎄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때는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없었단다.

    2008.06.12 22:38
  3. Favicon of http://gescape.tistory.com BlogIcon God-Raja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님
    지금 나일론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처음 발견하여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만들지를 연구하는게 어렵고
    그것을 처음 해낸다는건 대단한 업적이죠

    2008.06.12 22:45
  4. B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은 외국 화학책 읽다보면 종종 나올정도로( 화학책에 실린다는건 엄청 대단한 겁니다...) 유명한분인데
    이상하게 한국에선 별로 안유명하던....
    북한으로 넘어간 분이셔서 그런지 쳇

    2008.06.12 22:52
  5. 대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같은 쓰레기 나라에 저런 분이 계셨다니.

    하긴 일본식 교육제도를 겪어서 그나마 저런분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네요

    2008.06.12 23:08
    • -=-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같은 쓰레기나라..??

      한국에 사는 너도 쓰레기겠네 그럼? ㅉㅉㅉ

      2008.06.13 01:30
    • 비날론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한데요 이승기박사의고향이 한국이었다는걸 영광으로 생각 하세요,,그분이 고향이 한국이라 마음고생을 엄청 하셨어요,한국같은 쓰레기나라 란말이 거슬리네요

      2008.06.13 07:09
    •  댓글주소  수정/삭제

      짱깨ㅆHㄲI가 어디서 한글은 배워가꼬 여기서 키보드질이냐..

      2008.06.13 11:13
  6. 글쎄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롬버스 달걀 이야기부터 읽어보려무나.

    하여튼 북한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얕잡아 보는것도 문제야.. ㅉㅉㅉ

    2008.06.13 00:16
  7. 비날론사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날론 공장이 북한 함흥시에 있고 이승기박사가 연구한 공장설비는구식이여서 일본에서 수직방사기를 들여와서 했는데요
    북한에서 2,8비날론연합기업소는 한국에서의삼성대기업과같은 하나밖에 없는 대화학공장,,,,,,다른것을 다 떠나서 그런 유명한 박사의고향이 한국이란것이 자랑스럽고 ,,그분도 고향이 남한이라는 이유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분의업적은 나이론이 아니라 비날론 입니다,석회와무연탄을 구워서 카바이드만들고 거기에서 화학적인 공정,,아세틸렌-활성탄-중합-합성-방사을 거쳐서 마감에는 비날론섬유(실)이란 것인데요,,옷감으로도 ,고깃그물로도,,암튼 안 씌이는데가 없죠?

    2008.06.13 07:16
  8. 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북했다는 또는 북한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잘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분들이 제법 많군요...
    그냥 아쉬울 따름입니다. 글들도 이런 식으로 분단된 조국을 분명 원하지 않았을텐데...

    2008.06.13 09:57
  9. 승기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줄꺼야~ 내 남은 모든 사랑을~

    2008.06.13 12:21
  10. 진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많은 분들이 월북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매국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지식이 깨어 있는 많은 분들이 월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월북하나 만으로 모든 자료가 말소 되어 있는것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서울대.. 이권 개입보다는... 이승만 정권과 매국친일파의 득세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2008.06.13 12:46
  11. Favicon of http://wideworld.tistory.com BlogIcon atonc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제가 탈북하신 분들 많이 만나보면서 느끼는거지만 북한 사람들 정말 똑똑하더라구요^^
    엘리트계층들은 보통이 아니세요 한민족으로 자부심이 느껴지더라니까요

    2008.06.26 19: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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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것 하나만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숭례문(남대문) 대신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근거는 무엇일까.

한글은 띄어쓰기가 발달된 언어지만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다음 예를 보자.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대를 앞서간 천재문학가 이상이 쓴 시 ‘오감도 제1호’의 일부다. 이 시는 봉건적 질서와 식민지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기존 문법의 띄어쓰기를 무시했다. 일상의 가장 상식적인 질서를 거부한 셈이다. 하지만 시를 읽는데 무리는 없다. 그렇다면 영어를 이렇게 쓰면 어떨까.

“Tobeornottobethatisthequestion.”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런데 붙여 써놓으니 그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다. 원문대로 띄어쓰기를 하면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햄릿의 대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글이 영어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 하나의 예다.

영어는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옆으로 늘어 쓰는 반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한데 모아 글자를 하나씩 만들고 이 글자(음절)를 이어 쓴다. 한마디로 영어는 늘어 쓰는 데 비해 한글은 모아쓰는 방식을 취한다는 얘기다. 한글은 글자마다 의미가 있어 띄어쓰기를 안 하더라도 대강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명사 전체의 70%가 한자어이고 명사에 붙는 은·는·이·가·도 같은 조사를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젊은이들은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글자수 제한 때문에 대부분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보낸다.

또 한글은 영어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더 많다. 이것도 모아쓰기의 장점이다. 우리 눈의 망막에 초점이 맺히는 곳에는 보통 6~10개의 글자가 들어온다. 따라서 똑같은 글자수가 눈에 들어올 경우, 한글을 읽을 때 영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한국인은 우수하다’(Koreans are excellent)란 문장을 예로 들면 한글 문장은 전체가, 영어 문장은 Koreans만 한눈에 들어온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소리에 따라 기록하는 소리글자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서도 인식하는 한글도 소리글자일까? 이는 뇌의 일부가 망가져 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를 연구해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소리글자인 영어와 비교하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난독증환자가 ‘책상’이란 글자를 읽으면 ‘책책…상상…책상!’이라고 발음한다. ‘ㅊ…ㅐ…ㄱ…’ 이런 식이 아니란 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어권 난독증 환자는 다르게 발음한다. 즉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나눠 말한다. 책상에 해당하는 단어인 ‘desk’를 발음한다면 ‘d…e…s…k…desk!’라고 말하는 식이다. 한글이 철자가 아니라 소리를 따라 기억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 머릿속의 국어사전은 시각적인 철자 모양이 아니라 발음 소리로 저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ㄱㄴㄷ’ 순으로 분류된 뒤 ‘ㅏㅑㅓㅕ’ 순으로 나눠진 국어사전과 다른 방식이라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철자로 기억하는 대신 음절로 기억하면 자음과 모음으로 단어를 만드는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남기춘 교수팀이 단어를 인식할 때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에서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철자이웃은 한 단어와 철자 하나가 같은 단어이고, 음운이웃은 한 단어와 발음 하나가 같은 단어를 말한다. ‘반란’(‘발란’으로 읽음)이란 단어를 예로 들면 반구, 반도, 반대 등이 철자이웃이고 발달, 발표, 발명 등이 음운이웃이다.

남 교수팀은 36명을 대상으로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많은 단어, 철자이웃은 많지만 음운이웃이 적은 단어, 철자이웃은 적지만 음운이웃이 많은 단어, 철자이웃과 음운이웃이 모두 적은 단어를 각각 17개를 제시하며 단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했다.

실험 결과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어휘 판단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머릿속의 국어사전이 음운(소리)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으로 음운이웃이 많으면 그 이웃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져 판단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연구팀은 풀이했다.

또 연구팀이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단어가 뇌에서 음운 정보를 바탕으로 처리되는지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확인한 결과 측두엽을 비롯해 음운 정보를 처리하는데 관여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됐다. 특히 음운이웃이 많은 경우가 적은 경우에 비해 활성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났다.

세종대왕이 소리글자로 창제한 한글이 한국인의 뇌 속에도 소리글자로 깊이 박혀있다는 사실이 현대과학으로 밝혀지고 있는 셈이다. 한글날을 맞아 소리글자인 한글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글 : 이충환 과학칼럼니스트)

※ 소리글자(표음문자)는 소리나는 대로 쓰는 글자입니다. 소리글자에는 음운글자, 음소글자가 있습니다. 음운글자는 일어처럼 ‘가’라는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が’로 표시되는 글자를 말합니다. 한글과 영어는 음소글자입니다. ‘가’라를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한글은 ‘ㄱ+ㅏ’, 영어는 ‘g + a’로 표시하는 글자입니다. 한자는 소리글자가 아니라 뜻글자(표의문자)입니다.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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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ㅡ.ㅡ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은 지극히 개인 주관적인 글이네요.

    한글 정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지만,

    한국인의 입장으로 쓴 내용이고, 개인중심적으로 쓴 글이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관점과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To be or not to be 아까 처음 보자 마자 한눈에 솔직히 전 들어왔습니다, 생각보다 되게 쉬었구요

    다른 영어도 붙혀서 써보세요, 생각보다 되게 쉽고 한눈에 들어오는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008.06.12 15:22
  2. ㅇㅇ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근거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말 비하하는건 아니지만

    그건 아마 저희가 한국사람이기때문이 아닐까요? 글쓴분이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한국사람인 이상 한국어를 매일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고 태어나서부터 써왔기때문에

    당연히 친숙하죠. 솔직히 억지같습니다. 그런건 과학적 근거가 없어보이네요;;

    기분나쁘면 죄송하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2008.06.12 21:57
    • Rh피네  댓글주소  수정/삭제

      니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뭔데.. 댈수도 없는 근거로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지마라..그리고 세계언어학회지 먼지에서는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고 했단다..언어중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언어는 한글이란다.. 니가 쓴말중에 ..사실은 사실입니다란 말이 짜증나게 마음에 안든다.. 깨뿔도 모르면서 웬사실이란 말을 쓰냐..

      2008.06.13 02:17
  3. 연어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입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도 그랬다죠.
    한글이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과학적이라고
    한국인들의 문맹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답니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이 미개한 부족에게 문자를 가르치기 위해 한글을 이용해야 한다고 하던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그밖에도 한국의 인터넷이 이렇게 빨리 발전 할 수 있는게 한글 때문이랍니다.
    영어나,중국어나,일본어는 같은 시간에 한글만큼 빠르게 키보드 타이프를 칠 수 없다고 하네요.

    2008.06.12 23:54
  4. 나랏말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위부터 두 분께 문법책에 있는 1단원 3번째 장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글을 읽은 후에 위의 글을 읽으면 좀더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군요^^
    한글은 기본적으로 문자역사상 가장 발달된 형태인 음운자질문자로
    창제자와 시기, 창제방법, 사상이 밝혀진 뛰어난 문자입니다
    한글에 대해 좀더 안 다음에 이 글에 대해 논박하시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2008.06.13 00:01
  5. 테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하는 사람들한테는 햄릿의 문장이 한눈에 확... 들어올수도....
    한글이니깐 우리한테 띄어쓰기 없어도 쉬운것과 같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2008.06.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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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웰빙’ 혼합차가 한창 인기다. 길을 가는 여성들의 손은 테이크아웃 커피 대신 혼합차병을 들고 있다. 이런 유행이 가능한 데에는 갖고 다니기 쉬운 용기, 즉 페트병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만일 유리병이나 캔에 담겼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혼합차 페트병은 생수병과 좀 다르다. 훨씬 단단하고, 뚜껑이 있는 주둥이 부분이 투명하지 않고 하얀 색이다. 혼합차 성분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다. 생수를 시작으로 탄산음료, 과즙음료, 맥주, 혼합차까지 페트병이 담을 수 있는 음료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능성을 갖는 페트병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변신을 거듭하는 페트병에 대해 알아보자.

페트(PET)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alate)의 약자로 플라스틱의 한 종류다. 플라스틱은 그 구성성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칫솔, 볼펜 같은 플라스틱제 생활용품은 주로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든다. 가볍고 싸고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병은 거의 100% 페트재질이다. 다른 재질에 비해 페트가 병으로 많이 쓰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페트는 투명도가 유리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나다. PE나 PP가 따라갈 수 없다. 기체 투과도도 중요한 요소다. 내용물이 물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탄산음료나 주스가 되면 병의 자격조건이 까다로워진다. 병속의 이산화탄소가 빠져 나가도 안 되고 바깥의 공기 중 산소가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가 생긴다. 페트는 PE나 PP에 비해 기체 차단성이 50배나 더 높다.

페트의 높은 강도도 장점이다. 같은 두께일 경우 PE나 PP에 비해 페트가 더 단단하다. 비슷한 강도를 지닌 병을 만들 경우 그만큼 재료를 아낄 수 있다. 단열성도 뛰어나서 영하 160℃까지 내려가는 국제우주정거장 표면에 페트재질의 단열층이 붙어있을 정도다. 이런 여러 장점 덕분에 음료를 담을 용기로 페트가 선택됐다.

같은 재질로 돼 있지만 페트병은 내용물에 따라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페트재질 자체도 조금씩 다르다. 경제성과 기능성을 고려해 목적에 맞는 최적의 조건을 찾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수병과 콜라병을 놓고 보면 같은 용량일 경우 생수병이 더 두께가 더 얇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밑 부분이다. 생수병은 편평한데 비해 콜라병은 굴곡이 있다. 자세히 보면 밑이 반구처럼 볼록한 병을 세우기 위해 둘레로 대여섯 개의 지지대, 즉 발이 있는 형태다. 톡 쏘는 탄산음료를 담고 있으니까 병모양도 튀게 만든 것일까?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 페트병이 이렇게 독특한 모양을 한 이유는 내부의 압력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병 내부의 압력이 2.5~3.5기압이나 된다. 생수병 모양이라면 아래 부분이 압력을 이기기 못해 불룩 튀어나오게 된다.

따라서 제조된 날부터 소비자가 마실 때까지 고압의 내용물을 담고 있으려면 내부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페트병이 담고 있는 내용물의 성질, 보관조건에 따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한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적의 모양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생수병에 탄산음료를 넣고 시뮬레이션해보면 힘을 많이 받는 병 밑 가운데 부분이 불룩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페트병이 담는 음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웰빙 음료, 맥주 등을 담을 기능성 페트병도 개발되고 있다. 웰빙 음료는 대체로 미생물에 취약하다. 생수는 영양분이 없고 탄산음료는 산성이라 미생물이 자라기 어렵다. 그런데 웰빙 음료는 보통 중성이고 영양분이 있어 미생물이 자라는데도 ‘웰빙’이다.

균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90℃ 정도의 고온에서 병에 내용물을 넣는다. 그런데 일반 페트병이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하는 온도는 75℃로 90℃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물렁물렁해지는 온도를 90℃ 이상 끌어올리는 공정이 필요하다. 특히 주입하는 액체가 처음 닿는 병목 부분은 조금만 변형이 생겨도 뚜껑이 꼭 닫히지 않으므로 더 확실해야 한다. 병목 부분은 따로 적외선을 쬐여 온도를 높여준 뒤 서서히 식혀주는 결정화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분자들이 더욱 촘촘하게 배열된 고분자가 얻어지고 겉모습은 불투명한 흰색이 된다.

기체가 드나드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차단하는 페트병도 나왔다. 맥주는 이산화탄소가 톡 쏘는 게 제 맛이다. 사람들이 가장 쾌감을 느끼는 병속 압력은 2.5기압. 탄산음료의 경우 미리 3.5기압의 이산화탄소를 넣어 유통과정에서 조금 빠져 나가도 탄산의 느낌을 주도록 한다. 그러나 맥주는 자연발효 과정에서 탄산이 생성되는데 2.5기압 정도밖에 안 된다. 따라서 공기 유입이 완전히 차단되는 페트병이 필요하다. 맥주 패트병은 안팎의 페트재질 층 사이에 기체 차단성이 높은 특수 합성수지 필름이 놓여있다.

세계적으로 페트병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년에 나오는 페트병은 150만t에 이른다. 무겁고 깨지는 유리, 속이 안 보이고 한 번 따면 다 먹어야 하는 알루미늄 캔. 페트병에 익숙해질수록 이런 불편함이 더 거슬린다. 게다가 이제는 담지 못하는 내용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능성 페트병이 나오고 있다. 이제 모든 병은 페트로 통하는 게 아닐까.
(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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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세하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수있어서 유익하군요...

    2008.06.12 15:34
  2. Favicon of http://www.mayspider.com BlogIcon 메이스파이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왜 맥주는 캔이나 병으로만 담아서 팔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몇년 뒤에 펫트병에 담긴 맥주를 팔더군요,그런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네요,..

    2008.06.12 16:23
  3. 유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경적인 것도 이야기 해주시지. 너무 pet병 좋은 점만 칭찬 하셨네

    2008.06.12 23:48
    • 공감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게다가 페트병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만큼 석유의 수요도 많아지는데...
      요즘 기름값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데에는 전세계적으로 페트병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것도 한몫할 것 같아요. 비닐봉투 한개 만드는데도 자동차를 움직일수있을정도의 석유가 들어간다는데 페트병 하나는 얼마나 많이 들까나...그런 얘기도 좀 써주시면 좋겠는데...^^;;

      2008.06.13 00:09
    • Favicon of http://blog.daum.net/yssub2000 BlogIcon 페키니즈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리님이 말씀하신것은 석유에 관련된 이야기가아니라 환경호르몬쪽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신것 같은데요..... 근데 정말 플라스틱 몸에 안좋습니다... 2006년에 방영한 sbs 스페셜을 한번 봐보시길.... 1부 제목이 '우리아이가 위험하다'고 2부제목이 '여성의 몸을 가진 남자아이들 원인은 환경호르몬'입니다.... 환경호르몬 정말 위험합니다.

      2008.06.13 08:26
  4. Favicon of http://daumtop.tistory.com BlogIcon TISTORY 운영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티스토리 입니다^^

    회원님의 포스트가 현재 다음 첫화면 카페.블로그 영역에 보여지고 있습니다. 카페.블로그 영역은 다음 첫화면에서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님께서 작성해 주신 유익하고 재미있는 포스트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음 첫화면에 소개 하게 되었으니, 혹시 노출에 문제가 있으시다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스토리와 함께 회원님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08.06.13 11: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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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화재로 불타 버린 숭례문에 대해 문화재청은 “2006년 작성해놓은 ‘숭례문 정밀실측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원형 그대로 복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2005년 숭례문 각 부분을 정밀하게 측정한 도면 182장과 1961년 중건 당시 도면 12장이 포함돼 있다. 숭례문에 쓰인 모든 목부재와 기와, 돌의 크기를 mm단위로 쟀을 정도로 정밀하게 기록돼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계획과 달리 숭례문의 완전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숭례문의 기둥과 보로 쓰인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위층 대들보 위 기둥에 얹혀 있는 마룻보와 고주(高柱, 높은 기둥)는 조선 태조 숭례문 창건 당시의 목재였다. 화재로 불타 버린 숭례문 기둥에 쓰인 소나무는 과연 최고 목질의 나무였을까.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가 소나무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며 궁궐이나 중요한 목조건물을 지을 때 많이 쓰였다. 내구성도 느티나무가 더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경북 경산 임당동 원삼국고분이나 부산 부천동 초기 가야 고분, 신라 천마총, 고려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 16개는 모두 느티나무가 쓰였다.

박상진 경북대 임산공학과 명예교수는 “건물의 기둥으로 소나무를 사용할 때 100년을 버틴다면 느티나무는 300년은 버틸 수 있다”며 “느티나무의 비중은 1cm³당 0.70∼0.74g으로 소나무의 0.45∼0.50g보다 커서 마찰이나 충격에 훨씬 강하다”고 설명했다. 느티나무 목재는 나뭇결이 곱고 황갈색 빛깔에 윤이 난다. 또 벌레 먹는 일이 적고 다듬기까지 좋아 고급목재로 쓰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널리 쓰였다. 느티나무가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말기 몽골의 침입이나 무신정변 같은 사회 혼란을 겪으면서 축대벽을 쌓거나 건물을 짓느라 숲 속의 느티나무를 마구 벤 탓이다. 간혹 마을 인근에 느티나무가 자랐지만 이런 나무는 쓸 수 없었다. 울창한 숲 속에서 자란 나무는 ‘콩나물’처럼 곧고 기다란 형태를 지닌다. 반면 열린 공간에서 자란 나무는 키가 2~3m만 자라도 가지가 사방으로 돋아나 기둥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궁궐이나 사찰 같은 목조건물을 지으려면 10m 이상 곧게 자란 나무가 필요하다. 기둥으로 쓸 수 있는 나무가 필요했던 조선 왕조는 느티나무를 대신해 숲에 늘어난 소나무에 주목했다. 특히 경북 봉화나 울진, 강원지역의 금강소나무나 안면도 소나무는 전봇대처럼 곧게 자라나 이 조건에 맞았다. 그래서 이 지역은 민가에서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출입을 막았다.

곧고 크게 자라는 나무로 전나무도 있다. 하지만, 금강소나무는 나무 바깥쪽의 변재보다 안쪽의 심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미생물이나 흰개미의 공격에 더 강하다. 심재가 2차 대사산물이나 송진 같은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왕실에서 금강소나무를 궁궐 목재로 고집한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금강소나무는 다른 소나무보다 단단하다. 생장이 더뎌 나이테가 촘촘하기 때문인데, 가령 다른 나무가 1cm 자라는 데 1년이 걸린다면 금강소나무는 3년이 걸릴 정도다.

나무의 강도로 치자면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가 으뜸이다. 참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생하기 때문에 목재를 구하기도 쉽다. 그러나 참나무는 비중이 1cm³당 0.8g으로 너무 무겁다. 비중이 크면 목재가 단단해서 대패질이나 톱질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건축 자재로 이용하려면 적당한 강도와 가공하기 편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지름 1m가 넘는 금강소나무가 국내에 별로 없으며, 있어도 개인 소유로 정부가 활용하기 쉽지 않다. 금강소나무를 구하지 못해 숭례문 복원이 쉽지 않게 되자 일부에선 ‘더글러스 퍼’(Douglas-fir)란 나무를 수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 자라는 더글러스 퍼는 금강소나무와 재질이 비슷하며 색상이 붉어 정서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숭례문 복원에 외국에서 자란 목재를 쓴다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선 궁궐의 보수나 복원을 위해 별도의 숲을 관리하고 있다. 가령 일본에서 3대 아름다운 숲으로 꼽히는 기소지방의 편백나무림은 일본 왕가의 조상신을 모시는 이세신궁(伊勢神宮)의 보수에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고자 마련된 곳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산림청이나 문화재청이 앞장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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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말 저녁에 드라마 ‘대왕 세종’이 방영 중이다. 흔히 세종대왕을 한글을 창제한 왕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세종 시대 조선의 과학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당시 장영실과 같은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사학자들은 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났던 과학기술자가 있다고 한다. 누굴까?

과학사학자들에 따르면 장영실이 노비출신 등 극적인 개인사 때문에 일반인에게 최고 인기 과학자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세종 시대 최고 과학자로 ‘이순지, 이천, 정인지’를,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이순지와 이천’을 꼽았다. 이 중 이천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 과학기술자다.

특이하게도 이천은 원래 학자가 아닌 ‘무인’ 출신이다. 그는 고려말 1376년에 태어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시절에 무과 급제해 10대 후반에 무인의 길에 들어섰다. 무인이던 그가 태종, 정종 때까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떻게 과학기술자로 나서게 됐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세종 때의 기록은 잘 남아 있다. 1418년 세종이 왕위에 등극하던 해에 이천은 공조 참판으로 재직하면서 왕실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만들었다. 당시 왕실에서 사용하던 제사 그릇인 제기는 쇠로 만들었는데, 이천이 만든 제기는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했다. 이 제기를 눈여겨본 세종은 곧바로 이천을 불렀다.

세종은 이천이 쇠를 다루는 천재적인 기술을 가진 것을 알아보고 기존의 활자를 개량하는 일을 맡겼다. ‘쇠를 떡 주무르듯’ 다루는 이천이었지만 활자 제작 기술은 처음이었고, 전혀 알지 못했다. 이에 이천은 김돈, 김빈, 장영실, 이세형, 정척, 이순지 등 당시 과학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공역을 관장하며 새 활자 개발을 위해 온갖 연구를 거듭했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조선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조선 태종 때 주자소를 세우고 청동으로 만든 금속활자 ‘계미자’(癸未字)를 제작했다. 하지만, 모양이 크고, 가지런하지 못하며, 주조가 거친 기술적 문제가 있었다. 특히 활자를 고정하는 밀랍이 녹으면서 글자가 쏠리고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활자 개량에 나선지 2년 만인 1420년 새로운 활자 ‘경자자’(庚子字)가 만들어졌다. 이천은 밀랍 대신 녹지 않는 대나무를 끼워 넣는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해 인쇄할 때 활자가 밀리지 않도록 했다. 그는 이를 개량하고 발전시켜 더 완벽해진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냈다.

당시 하루에 인쇄할 수 있는 최대 장수가 4장이던 활자 기술을 갑인자는 하루에 40장을 찍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갑인자는 경자자보다 모양이 좀 크고, 글자체가 바르고 깨끗한 필서체로 능률이 경자자보다 2배나 높아졌다. 현재 ‘갑인자’로 찍어 낸 ‘대학연의’와 같은 책은 15세기에 전 세계에서 제작된 인쇄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세종은 책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학문을 백성에게 전파하고자 금속활자에 관심을 뒀다.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 천문의기 제작의 총책임을 맡았던 과학기술자도 바로 이천이다. 그는 장영실과 함께 혼천의와 간의를 비롯한 일성정시의 등의 해시계를 제작했다. 간의와 앙부일구 등의 기기를 정인지와 정초가 설계하면 이를 최종적으로 만드는 일을 이천이 담당해 훌륭한 결과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세종이 궁에 설치한 천문대인 간의대는 당시 세계 최고의 천문대로 학계에서 평가받는데, 이 간의대를 건축한 이도 이천이다. 천문 관측 기기 제작에 대한 이천의 업적은 금속활자 업적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세종 시대 과학기술의 밑바탕이 된 도량형의 표준화도 그가 이룩한 중요 성과다. 그는 저울을 개량해 전국 관청에 나눠줬다. 이 저울은 전국 관청에서 세금을 부과할 때 등 다양하게 사용돼 저울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줄였다.

이천은 도성을 쌓는 건축술, 군선이나 화포 개량 같은 군사 분야, 하물며 악기 제조에까지 그의 기술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대마도를 정벌할 때에 사용하고자 선체가 크면서도 빨리 달릴 수 있는 쾌속선을, 물에 잠기는 부분이 썩지 않도록 판자와 판자를 이중으로 붙이는 방법인 갑조법을 개발했다. 평안도 절제사로 지내면서는 조선식 대형포인 조립식 총통완구를 독창적으로 개발했다. 또한, 박연과 더불어 금, 솔, 대쟁, 아쟁, 생, 우회 등 많은 악기를 만들고, 무희와 악공들의 관복을 제도화하는데도 앞장섰다.

이렇게 이천은 수많은 발명품 뒤에서 뛰어난 기술로 공을 세웠다. 그는 문종 1년인 1451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무인이면서 놀라운 기술력을 지녔던 천재적인 과학기술자 이천, 그는 ‘갑옷 입은 과학기술자’였다.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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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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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sfd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플안습.....ㅋㅋㅋㅋ

      2008.06.12 03:06
    2. 미옹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조선시대 과학자라고는 '장영실' 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은 우리 역사 교육이 그만큼 경직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어요. 너무 암기에만 치우친 역사 공부라 고등학교 졸업 후에 역사 서적을 읽어도, 주어진 내용을 그냥 받아들이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본다거나 더 탐구를 한다거나 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취약한 것 같아요.
      기본적인 내용을 기억하되,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역사공부가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기를 바랍니다.

      2008.06.12 04:29
    3. 자작나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기술자 중에서 후기의 '이천약' 도 유명하지요.
      솔직히 역사 내용들 죽 살펴보니 '장영실, 이천약' 2명은 정말 대단한 듯...

      2008.06.12 09:27
    4. 재밌는 사실이네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 몰랐던 사실을 배우고 가는군요. 재밌네요. ^^

      2008.06.12 09:47
    5.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 알았네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장영실이나 이천이나 기술자라고 불러야지 과학자라고 부르는건 아닌듯 하네요. 과학사를 보면 과거에는 과학자와 기술자가 다르다고 해야되나 다른영역에있다가 근대에오면서 서로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어 구분을 잘 안하게 되었죠.

      2008.06.12 11:18
      • 대발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히려 예전에는 과학자와 기술자의 구분이 명확지 않았다고 봅니다. 오히려 과학자와 기술자가 구분이 가능해진 것은 근현대에 와서라고 생각합니다만....

        2008.06.12 22:29
    6. 근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정도 레벨로 과학자 운운하는 건 다른 나라랑 비교할 때 너무한 거 아닌가요?

      2008.06.12 11:47
    7. 윗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정도 레벨로 과학자도 아니면 다른 나라는 원시인이게요 ?
      현 시대의 다른나라를 말하는 지능은 아닐테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2008.06.12 13:23
    8. 잘읽고갑니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옛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들이란 들여다보면 볼수록 속터지는 것도 있지만 재밌고 유익한것도 많고, 알아두어야할 것도 많네요.... 올바르고 다양한 지식을 많이 많이 알게될수있어 좋네요... 댓글을 읽다보니 과학자와 기술자의 차이가 궁금해지네요..알듯 애매한듯.. 저작권과 실용신안의 차이 정도되려나? 아 궁금.

      2008.06.12 14:40

    육상에서 가장 키 큰 동물은? 누구나 쉽게 짐작하다시피 기린이다. 기린은 어느 동물보다도 월등히 크다. 아마도 공룡 이래로 가장 키 큰 동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해 왔다. 기린은 새끼 때에도 타 동물 보다 역시 키가 훨씬 크다. 그래서 기린이 분만 할 때 보면 그 긴 새끼 목이 마치 떡 기계에서 가래 떡 뽑아 나오듯 스르륵 하고 서서히 빠져나오는 걸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머리가 그저 툭하니 빠져 나온다.

    이처럼 긴 목을 가진 기린은 여러 가지 용도로 목을 사용한다.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따 먹을 때 편리하게 이용하기도 하고, 짝짓기를 위한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린은 일부다처제의 습성을 지녔는데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싸움은 격렬해서 때론 다투다가 한쪽이 죽기도 한다. 이때 그들이 목을 번갈아 부딪치는 싸움을 ‘넥킹(necking)’이라고 한다.

    사실 기린은 독특한 신체 구조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절대 내서는 안 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사람들도 고혈압이 생기면 화를 죽이고 살아야 하듯 기린은 선천적으로 고혈압 환자라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기린은 키가 5m가 넘고, 심장에서 머리까지 3m나 된다. 강한 압력으로 심장에서 머리로 혈액을 뿜어주는 것이다. 기린의 혈압은 160~260mmHg로 사람의 두 배나 된다. 이토록 혈압이 높게 유지되려면 가장 강해야 할 것은 물론 심장이다. 그래서 심장의 근육도 두껍고 심장 크기 또한 몸의 비율에 비해 크다. 11㎏에 달하는 기린의 거대한 심장은 강한 힘으로 펌프 운동을 하고, 뇌로 혈액을 급속히 올려 보낸다.

    기린의 혈관계에는 다른 동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혈압조절계라는 특수조직이 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기린은 물조차 마시지 못한다. 목을 숙이면 기린의 머리로 다량의 피가 몰리게 되는데, 특수조직이 조절해 주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몰린 피가 뇌의 모세혈관을 전반적으로 파괴시켜 바로 뇌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조물주는 기린에게 ‘원더네트(wonder net)’ 와 ‘정맥판’이라는 놀라운 특수혈관조직을 선물로 주었다.

    원더네트는 목과 머리 사이에 동맥피와 정맥피가 얽혀있는 모세혈관 다발로 되어있다. 이 원더네트는 마치 역의 개찰구처럼 피의 뇌 입·출입을 조절한다. 심장에서 오는 동맥피는 이곳을 거쳐야 뇌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을 거치는 동안 높은 혈압의 피는 정상적인 혈압으로 완충이 되어 뇌로 들어간다. 목 정맥은 정맥판을 작동시켜 뇌로 정맥피가 역류되는 것을 방지한다.

    기린뿐만 아니라 펭귄도 원더네트가 있어서 극지방에서 추위를 견디는 것이 가능하다. 원더네트를 거치면서 심장으로부터 오는 따뜻한 동맥피는 적당히 차가워지고 발끝에서 올라오는 정맥피는 적당히 따뜻해진다. 발바닥 온도는 몸보다 낮은 수준에서 얼지 않을 만큼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특수조직이 무리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기린도 목을 숙일 때 스스로 다리를 벌려 몸을 최대한 낮추어 목에 걸리는 부하를 경감시키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장치들은 가동시키는 데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포식자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기린은 물을 마실 때 항상 몇몇씩 모여 교대로 마신다. 그리고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신 다음 오랫동안 마시질 않는다. 몸의 수분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오줌도 굉장히 농축시켜서 내보내고 똥도 마치 토끼 똥처럼 둥글둥글 구슬모양으로 ‘후드득’ 하고 항문에서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린다.

    이 밖에도 기린은 흥미로운 점이 많은 동물이다. 다른 동물과는 성대가 달라 소리를 못 낸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초음파를 보낸다는 설도 있다. 기린은 툴툴거리는 듯한 소리를 낼 수 있으나 매우 조용한 동물이라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워낙 드물다.

    또한, 기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가 바로 40cm가 넘는 혀이다. 혀의 앞부분은 검고 뒷부분은 빨갛다. 검은 부분은 단단한 조직으로 되어 있어 가시가 달린 가지도 문제없이 감아 올 수 있다. 기린의 뿔은 보통 높게 솟은 두개만 보이지만 피부 위에 솟은 돌기를 모두 뿔이라고 본다면 코 위에도 뿔이 하나 있고 귀 뒤에도 각각 하나씩의 뿔이 있어 모두 5개를 가진 셈이 된다. 기린의 뿔은 별다른 기능은 없다. 다른 동물을 헤치기 위해서라면 뿔이 날카롭고 크겠지만 기린의 뿔은 작고 뿔에 살이 돋아나 있어서 싸우는 용도로도 적당치 않다.

    기린은 큰 키 때문에 초원의 초식동물들에게 거의 맏형이나 같은 존재이다. 기린 주변에 여러 초식동물들이 모여 사는데 그들은 기린이 뛰면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달린다. 그건 틀림없이 위험한 동물이나 물건이 반경 2km안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린도 위기에 몰리면 긴 다리를 이용해 주로 앞발공격을 한다. 그 발차기에 제대로 걸리면 아무리 사자라도 견딜 수 없다.

    기린은 걷는 모양 역시 특이하다. 다른 동물들은 앞발이 나가면 반대쪽 뒷발이 동시에 나가는 지그재그 방식인데, 기린은 한쪽 다리가 일시에 이동하고 나서 이번에 반대쪽 다리가 이동한다. 예를 들면 왼쪽 앞·뒷다리가 동시에 이동한 다음에 오른쪽 앞·뒷다리가 동시에 이동하는 것이다. 뛸 때는 또 다르다. 앞쪽다리가 동시에 이동하고 그 다음에 뒤쪽다리가 동시에 이동한다. 기린은 참 알면 알수록 특이한 동물이다.

    더구나 초원의 마지막 수호자로 불리는 기린은 자연 파괴의 ‘바로미터’가 된다. 기린이 살 수 없는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닐 것이다.

    글 :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수의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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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kugotit.tistory.com BlogIcon 젤가디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린에 관한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동물들도 화를 내고 그런게 있을까요? 다른동물들은 화를 낼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2008.06.11 14:53

    중국 대지진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타산지석이 아닌가 싶다. 사실 천재로 인해 최근 가장 큰 인명피해를 본 곳은 태풍으로 인한 미얀마이다. 그러나 중국 지진이 세간의 관심이 집중 되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는 점과 지진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건축물이 그렇게 할 뿐이라는 암묵적 인재 인식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진자체로 보자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하는 천재임이 틀림없다. 중국의 대지진을 보고 우리나라도 언제 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우리의 내진 설계에 대해 되짚어 보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도대체 마구 흔들어 대는 지진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지진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지진에 잘 견디기 위해서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가 우리의 관건이다. 지진에 견디는 방법은 크게 내진(耐震)ㆍ면진(免震)ㆍ제진(制震)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내진은 지진력을 구조물의 내력으로 감당해내자는 개념이고, 면진은 지진력의 전달을 줄이자는 개념이며 제진은 지진력에 맞대응을 하자는 능동적 개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선 내진의 핵심은 철근콘크리트 내진벽으로 건물을 단단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옛말도 있듯이 지진이 나면 사람들이 대피할 정도의 시간을 벌어주는 지연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건물은 금이 가거나 파괴되어 나중에 사용할 수는 없다. 이 방법을 보통 내진설계라고 하며, 광의의 개념으로 면진과 제진의 개념을 포함하기도 한다.

    면진은 지진을 면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쉽다. 예를 들어 건물에 바퀴달린 신발을 신긴다거나, 스카이 콩콩처럼 스프링을 달았다고 상상해보자! 지진이란 땅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땅과 건물을 분리시켜, 건축물과 땅 사이에 진동충격 완충장치로서 볼 베어링이나 스프링, 방진고무 패드를 설치하여 땅의 흔들림의 양을 건물에 보다 적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짦은 주기의 지진파가 강하고 긴 주기의 지진파는 약하다는 성질을 이용해서 건물의 진동주기를 길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지반과 건물의 연결부에 구조물을 삽입하여 건물의 고유진동주기를 강제적으로 늘리면 지진의 강주기 대역을 피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현재의 면진방법은 건물과 땅이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고 땅과 건물이 만나는 면을 최소로 한 것이다. 건물과 땅이 완전히 분리만 된다면 지진피해를 극소화 할 수 있겠지만 건물이 공중에 떠있지 않는 이상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는 액체가 진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건물을 배처럼 띄워서 짓자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공상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역사의 진보는 이러한 만화 같은 상상으로부터 출발했다.

    1921년 일본 제국 호텔 건축 당시 건축부지는 무른 땅이었다. 일본 건축 관계자들은 지진에 안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건축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땅이 무르면 진동을 흡수해 더 안전하지 않은가? 건물이 반드시 땅에 고정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물은 떠 있으면 안 되는가?"라고 역설하였고, 그의 주장은 제국 호텔이 1923년 일본 관동 대 지진을 견디어 냄으로써 입증되었다. 그러니 배처럼 떠 있는 건축물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생각된다.

    진동주기를 구하는 공식 f=(1/2π)√(K/M)주1에 따르면 건물이 무거울 때 진동주기가 짧아져 덜 흔들리게 된다. 지진이라는 적의 공격에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내진이나 면진은 수동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여 지진의 진동에 반대방향으로 건물을 움직이도록 하는 능동적인 방법도 있다. 이를 제진이라 한다.

    제진은 진동의 반대방향으로 건물을 움직여 지진의 충격을 상쇄시키는 방법이다. 제진의 방법으로 힘을 발생시키느냐 감소시키느냐에 따라 소극적 방법과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뉜다. 즉, 구조물에 입력되는 지반진동과 구조물의 응답을 계산하여 이와 반대되는 방향의 제어력을 인위적으로 구조물에 가하거나, 입력되는 진동의 주기성분을 즉각적으로 분석하여 공진을 피할 수 있도록 구조물의 진동특성을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진동이 발생하면 건물에 부착된 무거운 물체(TMD주2)나 물(TLD주3)이 건물의 진동주기와 같은 주기로 흔들려 진동을 제어하는 방법이 소극적 제진방법이라면, 진동이 발생하면 센서를 통해 컴퓨터에 전달되고 컴퓨터가 건물에 부착된 무거운 물체를 액츄에이터(actuator)로 움직이도록 하는 방식(AMD주4)이 적극적 제진방법이다. 이 경우 TMD의 질량 추 무게는 건물 중량의 1/300 이상이 보통이며, 컴퓨터에는 지진시 질량 추의 움직임 판단을 위해 건축물 주변의 지진데이터나 건물의 고유진동 데이터 등이 기록된다.

    최상의 공격이 방어일 수가 있으며, 공격과 방어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때가 있다. 이처럼 설계자도 지진에 견디는 설계를 하기 위해 건물의 층수ㆍ용도(전망대 탑 또는 다리)ㆍ구조 등에 따라 선택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3층 이상에만 건축물에 내진설계가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규정 된 법에 얽매이거나 중국과 같이 경제성의 논리로 내진설계를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대형 건축물의 내진 설계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소형건축물의 내진에도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가져야겠다.

    글 : 이재인 어린이건축교실운영위원

    주1)
    f=(1/2π)√(K/M) (f:진동주기(Hertz), K:딱딱함 정도, M:하중)
    스프링 상수(M) 값에 의한 이론적인 진동수 값

    주2)
    TMD (Tuned Mass Damper) : 동조 질량 댐퍼

    주3)
    TLD (Tuned Liquid Damper) : 동조 액체 댐퍼

    주4)
    AMD (Active Mass Damper) : 능동 질량 댐퍼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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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제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축물의기초부분과 건축물의본체사이에 스프링 또는 러버패드등을 삽입하여 공사한실제의사진도 올려주세요^^

      2008.06.10 15:02
    2. Favicon of https://www.designlog.org BlogIcon 마루[maru]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MD가 소극적 제진 방법이라는 사실을 이 글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관련 글이 있어 트랙백 걸어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8.06.11 08: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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