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끈 쾅! 한 시간이 넘는 긴 실랑이 끝에 급기야 태연의 방 문짝이 나가 떨어지고 만다. 발목이 삐었을 때는 침이 최고라는 엄마, 아빠와 죽는 한이 있어도 침은 맞지 않겠다는 태연의 발버둥 사이에서 엉뚱하게 방문만 부서지고 만 것.

“침을 맞느니 차라리 마늘 백만 개를 까먹고 곰이 돼버릴 거예욧!! 저의 소중하고 신성하고 아름다운 발목에 불온하며 사악하기 그지없는 침 따위를 꽂을 생각은 애시 당초 하지도 마시라고욧!”

“아무리 내 딸이지만 네 괴력은 진정 어메이징하구나. 무슨 초등학생이 문짝을 다 떼냐! 침술의 효과는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이미 인정을 다 했어요. 침이 신경을 자극하면 뇌로 그 자극이 전달돼 엔도르핀 등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가설이지. 아직 해부학적인 실체를 찾지 못했고, 치료 원리에 대한 한의학과 서양의학 간 관점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거봐, 거봐, 해부학적인 실체가 없다고 아빠 입으로도 방금 얘기하셨잖아요! 아빠는 과학자면서 어떻게 그리도 비과학적인 침술의 세계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딸내미를 내모시냐고욧!”

태연이 제아무리 괴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이다. 엄마, 아빠의 합공에 밀려 바닥을 질질 끌며 결국 한의원으로 끌려가고 만다.

“차라리 병원에 가자고요. 주사처럼 한방 딱 맞고 끝나는 건 괜찮은데, 침은 엄청 오래 꽂고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세 시간? 네 시간? 거기다 찌릿찌릿 전기까지 통하게 하고, 이건 고문이지 치료가 아니에요. 인류 역사상 이렇게 끔찍한 고문은 없었다고욧!”

“과장 좀 적당히 해라. 침을 꽂아놓는 건 기껏 30분 정도야. 한방에서는 기(氣)가 인체를 순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이라고 하고, 양방에서는 침 자극을 줬을 때 아세틸콜린이란 신경전달물질이 15분 이후부터 분비된 뒤 30분에 멈추기 때문에 30분이 적당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이런 일반적인 침 말고도 침술은 상당히 다양하단다. 약물을 넣은 약침(藥鍼), 레이저를 이용하는 광침(光鍼), 침에 아로마 오일을 입히는 향침(香鍼), 침에 전류를 흘려 자극을 주는 전침(電鍼) 등 여러 가지 요법이 있어. 방금 네가 말한 그 침은 전침을 말하는 것 같구나.”

“악!! 제발 전기침 같은 그런 사악한 단어는 제 귀에 들리지 않게 해주세요.”

“그럴 순 없지. 지금 네가 병원에 가서 맞을 침이 바로 그건데 말이야. 전기침은 전선이 연결된 커다란 집게를 침에 연결해서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침의 효과를 높이는 요법이란다. 환자가 움직이거나 힘을 주면 침이 구부러지거나 뽑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치료법은 아니지. 하지만 최근에 KAIST 연구진이 개발한 ‘초소형 스마트 침 시스템’ 덕분에 치료가 훨씬 쉬워졌어요. 이 스마트 침은 복잡한 선도 필요 없고, 지능형IC를 붙인 500원짜리 동전만한 패치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다, 값도 기존 전기침 치료기의 1/100밖에 안된단다.때문에 너같이 침 맞기 싫어하는 애들에겐 아주 딱 이란 말이지. 게다가 치료 중에 환자의 생체 신호 변화를 모니터링 할 수도 있는 아주 과학적인 시스템이기도 해. 한방과 현대과학의 아름다운 만남이랄까?”


그림 ‘스마트 전기침 시스템’은 전기침 패치, 침, 전도성 실로 구성된다. 사진 제공 : KAIST

“흥! 그럼 제가 치료 도중 침 공포증으로 기절이라도 하게 되면 그 스마트한 시스템이 참으로 모니터링을 잘 해주겠네요. 아버지, 전 발목을 삐고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어요. 삔 다리를 부여잡고 전국체전에 나가 100m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이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 태연과 엄마 아빠는 드디어 한의원에 도착한다. 집에서 한의원까지 겨우 10분 거리를 오는 동안 사막을 횡단한 사람들처럼 완전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드디어 진료실이 문을 여는 순간, 태연은 공포로 실신할 지경이 된다.

“아이고, 귀여운 통통이 예쁜 아가씨가 오셨네? 아니다, 완벽한 이목구비 사이사이에 살짝쿵 자리 잡은 살을 보니 비만치료를 하러 왔나보구나! 전기침이 살 빼는데 효과가 쏠쏠하니까 한번 놔줘 볼까? 하나도 안 아프니까 걱정 말고. 약 60kg으로 보이는 너의 비대한 몸을 45kg으로 만들어 보자꾸나~!”

“고뢔요오~~??!! 전기침으로 살도 뺄 수 있다고요? 홍홍홍. 제가 침을 얼마나 잘 맞는 아이인지 의사선생님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심지어는 제 롤모델이 고슴도치라니깐요? 호호호. 빨리 원하시는 대로 맘껏 꽂아주시겠어요? 고슴도치를 엄마~ 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이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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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CD의 변신, 스펙트럼 분광기 만들기

빛은 무슨 색일까요? 우리 눈으로 보는 빛은 하얀색이지요. 하지만 화창한 날 야외에서 비눗방울을 불면 비눗방울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한낮에 아스팔트 바닥에 흘려져 있는 기름에서도 무지개를 볼 수 있지요. 또 CD나 DVD 뒷면을 형광등에 비춰 봐도 무지개를 발견할 수 있어요. 빛은 어떤 경우에 이렇게 여러 가지 색으로 나눠져 보이는 걸까요? 또 여러 가지 색으로 나눠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여러 가지 색깔이 혼합돼 있어요. 각 색깔에 따라 파장이 다르지요. 때문에 직진하다가 좁은 틈이나 장애물을 만나면 각기 다른 각도로 나눠져요. 이 때 여러 가지 색의 띠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스펙트럼이라고 해요.

프리즘을 이용하면 빛의 스펙트럼을 잘 관찰할 수 있어요. 프리즘은 빛의 굴절을 잘 보여주기 위해 유리 등으로 만든 투명한 물체예요.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무지개 색으로 나뉘어진답니다. 이 7가지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해요. 맨 위에 보이는 빨간색이 가장 작은 각도로 꺾이고 맨 아래 보이는 보라색이 가장 큰 각도로 꺾인답니다. 이렇게 빛이 프리즘에 부딪혀 굴절하면서 여러 색의 빛으로 나뉘는 현상을 ‘빛의 분산’이라고 해요.

이런 현상을 이용해 재미있는 실험을 할 수 있어요. 쓰지 않는 CD를 이용해 스펙트럼 분광기를 만들어 볼까요?


[교과과정]
초 6-1 빛
중 2 빛과 파동

[학습주제]
빛의 굴절과 분산
빛의 스펙트럼 관찰하기




※ 분광기를 만들 때 상자 안쪽으로 낸 구멍에서만 빛이 들어오도록 상자의 나머지 이음새 부분은 검정 테이프로 잘 막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빛의 스펙트럼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답니다. 분광기로 태양빛을 볼 때는 직접 보면 안돼요. 태양에서 벗어난 밝은 하늘을 보거나 흰 벽에 반사된 빛을 봐 주세요.

분광기로 빛의 스펙트럼을 관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CD 표면은 매끈해 보이지만 가운데를 중심으로 나선형의 촘촘한 선이 그어져 있어요. 때문에 CD를 통과한 빛은 그대로 직진하지 않고 좁은 틈이 파원이 되어 여러 각도로 퍼져 나가게 돼요. 이런 현상을 빛의 회절이라고 해요. 이때 빛의 파장에 따라 퍼지는 각도에 차이가 생겨요. 또 옆에 있는 틈으로 들어온 빛과도 만나지요. 따라서 CD를 사이에 두고 빛이 들어오는 반대편에서는 다양한 파장을 갖는 빛의 파동이 섞이게 돼요. 이 때 파동의 모양이 정반대이면 상쇄되고, 나머지 빛의 파동은 합성돼 우리 눈에 스펙트럼으로 보이게 되는 거랍니다.

일반적으로 CD 표면의 선 사이 간격은 1.6㎛(1㎛=100만분의 1m)예요. 이는 1mm당 6백여 개의 선이 그어져 있는 것과 같아요. CD 표면에 평행으로 들어온 빛은 선이 그어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산란되거나 투과된답니다.

분광기로 태양빛을 볼 때와 백열전구를 볼 때, 형광등이나 가로등(나트륨등)을 볼 때 스펙트럼이 다른 것을 관찰할 수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펙트럼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무지개와 같이 연속적인 색의 띠는 연속 스펙트럼이라 하고, 나트륨 전등이나 색이 있는 전등에서 나오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킬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색의 띠는 선 스펙트럼이라고 해요.

햇빛, 백열전구, 환등기 빛 등의 백색광을 분광기로 보면 연속 스펙트럼을 관찰할 수 있어요. 형광등, 백열등, 손전등의 빛은 모두 무지개 색이 나타나지만, 형광등의 빛은 푸른색 부분이 강하게 나타나고 백열등이나 손전등의 빛은 붉은색 부분이 강하게 나타난답니다.

빛의 회절 현상은 현재 각종 산업, 특히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장치와 같은 각종 광학장치와 소자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답니다.

[다운로드 : CD분광기 도면]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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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만 들어가면 사라진다! 마술카드 만들기

물속에 들어가면 유난히 다리가 굵고 짧아 보이죠? 물이 담긴 컵에 빨대를 꽂으면 빨대가 꺾여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빛의 굴절’ 때문이랍니다.

빛은 일반적으로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물질을 통과하는지에 따라 직진하는 속도가 달라지지요. 때문에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 두 물질의 경계면에서 빛이 꺾이는 굴절현상이 나타난답니다. 빛이 굴절되는 정도는 굴절률이라고 해요. 굴절률이 큰 물질을 통과할수록 빛의 속도는 느려져요. 물속에 있는 물체가 원래보다 떠 보이거나, 물에 꽂은 빨대가 꺾여 보이는 이유도 공기와 물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런 빛의 성질을 이용하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신기한 마술을 선보일 수 있어요. 물속에 담그기만 하면 사라지는 마법의 카드! 한번 만들어 볼까요?

[교과과정]
초 3-2 빛과 그림자
초 6-1 빛
중 2 빛과 파동

[학습주제]
빛의 굴절과 전반사 현상 이해




실험에서 물속에 넣은 카드를 비스듬하게 보면 물에 잠긴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마술의 원리는 바로 ‘전반사’예요. OHP 필름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굴절되지 못하고 전반사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마치 카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된답니다. 카드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관찰해 보세요. 전반사 현상을 잘 관찰하려면 실험을 하는 동안 같은 위치에서 관찰해야 한답니다.

물질의 표면에서는 빛의 굴절뿐 아니라 반사도 함께 일어나요. 간혹 밀도가 높은 물질에서 밀도가 낮은 물질로 빛이 이동할 때 입사각에 따라 빛이 물질 안으로 전부 반사돼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전반사’라고 해요.

전반사는 굴절률이 큰 매질에서 작은 매질로 빛이 들어갈 때 경계면에서 굴절되지 않고 모두 반사되는 현상을 말해요. 빛의 입사각이 특정 각도보다 클 때 일어난답니다. 빛을 조금의 손실도 없이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보내는 광섬유는 전반사를 이용한 대표적인 예지요.

광섬유는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섬유로, 빛의 손실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매우 적어 송수신하는 데이터의 손실률이 낮고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광섬유 중심부에는 굴절률이 높은 유리, 바깥쪽은 굴절률이 낮은 유리로 이루어져 중심부 유리를 통과하는 빛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반사가 일어난답니다. 광섬유 내부에서 전반사되는 빛은 그 모양 그대로 안쪽 벽면을 따라 반사돼요.

또 다른 예로 다이아몬드를 들 수 있어요. 다이아몬드의 반짝이는 광택도 내부에서 전반사된 빛이 만들어낸 마술이랍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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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몽몽이가 나를 무시하는 이유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태연은 오늘따라 아빠가 너무 좋다. 쭉쭉 늘어나는 피부도 좋고, 세상 그 어떤 쿠션보다 푹신한 배는 살짝 기대기만 해도 콜콜 잠이 들 정도로 느낌이 좋다. 태연은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워 떠날 줄을 모른다. 이때 멀찍이서 부녀를 바라보고 있던 강아지 몽몽이가 갑자기 뛰어들어 태연의 손가락을 깨무는 것이 아닌가!

“아야!! 저리가, 저리!”

태연은 깜짝 놀라 몽몽이를 떼어놓고는 발로 찬다. 그런데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 몽몽이는 겁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태연에게 짖어대고, 몽몽이를 무섭게 때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아빠는 몽몽이를 조용히 개집 안으로 넣어주는 게 아닌가! 태연은 어마어마한 배신감에 휩싸인다.

“아빠, 어쩜 이럴 수가 있어요. 몽몽이가 주인인 저를 물었는데 어떻게 때려주지도 않고 그냥 두시는 거예욧! 솔직히 말해 보세요. 저랑 몽몽이랑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구해주실 거예요? 아빠는 내가 개만도 못한 거죠, 그렇죠?”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손이나 좀 보자. 다행히 살짝 물린 자국만 있고 상처는 나지 않았구나. 태연아, 개를 인간처럼 생각하고 교육하거나 체벌하면 안 돼요. 개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파악해서 혼내야지. 아빠도 지금 너를 문 몽몽이에게 어마어마하게 화가 나 있지만 개의 심리상태를 판단해서 이성적으로 교육하려고 때려주지 않은 거야.”

“흥! 그 말이 정말이라면 증명을 해보세요!”

흔히 개는 모두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연구팀이 애완견 78마리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개도 사람처럼 개성이 아주 뚜렷하단다. 연구팀에 따르면 애완견 각각을 부지런함·게으름, 우호적·공격적, 안정·불안정, 똑똑함·어리석음 등 4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는구나. 이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몽몽이는 게으르고, 공격적이며, 불안정하고, 어리석은 유형의 개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몽몽이에게는 훨씬 다양하고 고차원적인 교육이 필요해.”

“그러니까 어떤 교육이요!”

흔히 개의 조상은 무리를 짓고 살면서 강한 서열의식을 갖고 있던 늑대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아무리 집에서 인간에 의해 키워진다 해도 늑대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래서 개는 같은 개들 사이에서는 물론 사람들까지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지 낮은지를 끊임없이 가려내려고 하고, 자신과 서열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공격해서 우열을 가리려고 한단다. 오늘 몽몽이가 너에게 덤빈 것도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서열을 가려보고 싶었던 거야. 사랑하는 아빠한테 태연이가 안겨 있으니까 샘이 났고, 자신의 서열이 더 높다는 것을 증명해서 아빠의 품을 몽몽이가 차지하고 싶었던 거지. 실제로 미국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물린 사람이 매년 50여 만 명에 이를 정도로 애완견이 주인을 무는 것은 흔한 일이야.”

“뭐야, 그럼 몽몽이가 저를 동급으로 봤다는 거잖아요. 기막혀 정말. 내가 저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바로 그거야. 너무 예뻐해 줬기 때문에 우습게 본 거지. 개가 명령에 복종할 때만 예뻐하는 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그냥 예뻐만 해주면 그 사람을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한단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아빠가 아닌 태연이가 몽몽이에게 밥을 주는 게 좋겠어. 개는 밥 주는 사람을 가장 좋아하지만 또 가장 무서워하거든. 생명줄을 쥐고 있는 존재니까 말이야. 또 ‘앉아’, ‘일어서’ 같은 복종훈련을 시키면서 먹이를 주는 것도 몽몽이를 순종시키는 한 방법이란다. 그렇게 너에게 복종하게 되면 언젠가 벌러덩 뒤집어져서 너에게 배를 보여줄지도 몰라. 그건 최고의 복종심을 의미하는 행동이거든.”

“흥, 나를 그동안 아랫것으로 생각했다 이거지? 몽몽이 너 오늘부터 죽었어!”

“너무 미워하지 마라. 그래도 몽몽이 덕에 네가 사람 됐다는 생각에 아빠는 그저 고맙기만 할 때가 많아요.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반려동물(伴侶動物)과 매일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타인에게 친밀감을 훨씬 잘 표현할 수 있고, 애견 먹이주기와 목욕시키기 같은 일을 담당하면서 책임감 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구나. 특히 애정이 결핍돼 있거나 오랜 질환으로 인해 우울증 등 정서적인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어. 심지어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까지 높다고 해.”

“예에?? 몽몽이처럼 게으르고 머리 나쁜 강아지한테 뭐 배울게 있다고 성공을 한대요?”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인들 가운데 95%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고, 75%의 기업인들이 현재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단다. 이 같은 수치는 조사를 실시했던 1983년 당시 미국 가구 수의 반려동물 보유 평균인 53%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어. 때문에 반려동물이 성공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을 통한 경험이 기업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열정과 감정훈련, 책임감 같은 특성을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하고 있단다.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는 몽몽이를 현명하게 교육할게요. 그래서 미국 500대 기업인에 들 정도로 엄청나게 성공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아빠, 제 소원 한 번만 들어주세요. 몽몽이 한 대만 쥐어박을 수 있게 해주세요. 너무 억울해서 오늘밤 잠을 못잘 것 같단 말이에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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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멸종위기에 빠졌다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과일로, 우리나라에서도 과일로 먹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선 주식일 만큼 중요한 식량.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 이 설명이 가리키는 과일은 무엇일까? 바로 ‘바나나’다.

바나나는 그냥 날로 먹거나 샐러드 등 디저트용 음식에 첨가해서, 혹은 과자, 음료 등 가공식품으로 먹는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다. 그 역사와 숨은 이야기 또한 많은 과일이기도 하다.

바나나는 높이가 3m에서 크게는 10m까지 되는 나무에서 열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나나는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풀에서 열린다. 바나나 농장에서는 바나나를 수확하자마자 베어버린다. 바나나가 한번 열린 줄기에는 다시 바나나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나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림 1]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풀에서 열린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바나나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말레이 반도 부근에서 재배되기 시작했을 만큼 그 역사가 길다. 이후 원주민의 교류에 의해 각지로 전파되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백 종의 바나나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중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용하는 바나나는 단 1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야생 바나나들인데, 이 야생 바나나는 열매 속에 크고 딱딱한 씨를 가득 품고 있어 먹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처음 재배할 당시만 해도 바나나 열매가 아닌 뿌리를 캐 먹기 위해 경작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씨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오늘날의 바나나가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씨가 없는 바나나는 어떻게 번식을 할까? 열매를 수확한 후 밑동을 잘라내면 6개월 후 땅속줄기에서 새로운 어린줄기가 자라게 된다. 뿌리를 잘라 옮겨심기만 해도 바나나가 열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바나나만 얻게 된다. 씨 없는 바나나의 경작으로 인간들은 바나나를 먹기 쉬워졌는지 몰라도, 바나나 입장에서는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져 그만큼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병충해가 휩쓸 경우 전멸당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한 품종인데, 처음부터 이 품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까지는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품종이 주를 이뤘다. 이 품종은 맛과 향이 진하고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단 점 덕분에 상품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파나마병은 푸사륨(fusarium) 속 곰팡이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병으로, ‘바나나 암’이라 불릴 만큼 바나나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이 병에 걸리면 잎이 갈색으로 변한 후 말라죽게 된다. 그로 미셸은 이 병에 저항성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바나나 농장들은 바나나가 집단 폐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1960년대 그로 미셸은 생산이 중단됐다.

하지만 인류는 바나나를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1960년대 중반,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 품종을 간신히 찾아냈다. 그로 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후 그로 미셸 품종은 사라지고 캐번디시 품종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림 2] 야생 바나나는 크고 딱딱한 씨가 가득 차 식용으로 먹기 힘들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1980년대 대만에서 캐번디시 품종이 파나마병 증상으로 말라죽기 시작했다. 분명 캐번디시 품종은 파나마병에 내성이 있는 종이었지만, 변종 파나마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에서 재배되던 캐번디시 70%가 사멸했다. 현재까지 파나마병의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아 바나나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변종 파나마병은 대만을 시작으로 중국, 인도, 호주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로써 단 한 종뿐인 식용 바나나 캐번디시 역시 멸종 위험에 노출됐다.

그렇다면 변종 파나마병에도 강한 바나나 품종을 개발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지만, 바나나의 품종개량은 그리 쉽지 않다. 앞서 밝혔듯, 씨가 없는 바나나는 번식력이 전혀 없다. 이런 식물을 품종개량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자손을 길러내 원하는 특성을 모두 담은 후 다시 씨 없는(번식력이 없는) 식물로 만드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은 병충해에 강하고 맛이 좋은 바나나 품종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단지 과일이 아닌 인류의 좋은 먹거리이자 식량인 바나나, 유전적으로 취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한 신품종이 하루 빨리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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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놀이 백전백승의 비법을 알려주마

태연과 사촌은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집에서 만났다. 이들은 결의에 가득찬 표정으로 뒷동산에 오른다. 일명 대머리 언덕으로 불리는 널찍한 산등성이는 누가 봐도 연날리기 최적의 장소다.

“자, 오늘은 반드시 지존을 가리기로 하자. 우리가 어찌어찌하다 동갑으로 태어났으나, 서열 없이 마구 이름을 부르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는 법! 그리하여 오늘 이 대머리 언덕에서 역사적인 서열정하기를 하고자 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태연과 사촌의 연이 동시에 하늘을 나른다. 이때 태연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제 밤늦도록 아빠에게 배운 과학적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촌, 난 과학적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너한테 도저히 질 수가 없네. 연실을 잡아당기면 왜 연이 높이 뜨는 줄 알아?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 때문일세. 유체의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반대로 속도가 감소하면 압력이 커진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지.”

“잘난 척 하시기는. 그거랑 연날리기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무식한 인생 같으니라고~! 잘 보게. 연줄을 잡아당기면 연의 앞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네. 그렇게 되면 유체(공기)가 지나가는 단면적 길이가 연의 윗부분은 길고 연의 아랫부분은 짧아지게 되지. 당연히 길이가 긴 윗부분을 지나는 공기가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고, 속도가 빨라진 만큼 압력은 떨어지게 된다네. 이때 압력이 높은 아래쪽에서 낮은 위쪽으로 공기가 움직이면서 물체가 비행하도록 해주는 힘, 즉 ‘양력’이 생기는 것이지. 이러한 연유로 연줄을 앞으로 잡아당기면 연이 위로 쑥 올라가게 된다는 말씀이네.”

태연은 사촌 앞에서 얼레를 돌려 연실을 감는다. 아빠의 말처럼 연이 쑥~ 하고 솟아오른다. 완전 의기양양해진 태연은 이번엔 항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을 따라 연은 뒤로 밀려나는 힘, 즉 항력을 받게 되지. 그리고 항력을 받으면 연은 밑으로 내려간다네. 다시 말해 연을 당기면 양력에 의해 올라가고 연실을 풀면 항력에 의해 밑으로 내려간단 말씀이지. 연싸움에서 상대방의 연 실을 끊을 때도 이런 원리를 이용하면 된다네. 상대방의 연이 공중에 정지해 있을 때 내 연실을 그 위에 올려 건 다음, 실을 재빨리 풀어주면 내 연이 밑으로 쑥 내려가면서 상대방 연실을 끊게 되는 거… 악!!!”

태연이 연싸움의 승리비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순간, 태연의 연이 똑 끊어지면서 하늘로 훌훌 날아가 버린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이미 일격을 당한 것! 사촌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태연아, 과학도 좋지만 실전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이래봬도 난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과학자인 아빠한테 들은 대로 달달 외워서 원리를 설명한 건 참으로 가상하지만, 솔직히 공부도 내가 너보다 훨씬 더 잘하고. 이쯤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태연은 분노와 오기로 두 눈이 이글이글 탄다.
“흥! 원리도 모른 채 운 좋게 이긴 주제에 감히 나에게 오빠로 불리기 원하다니 가당치 않구나! 그럼 이번에는 수학적 원리로 가득한 윷놀이로 승부를 겨뤄보자꾸나!”

사촌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윷판과 윷을 꺼낸다. 태연은 머릿속으로 어젯밤 아빠가 해 준 얘기를 급히 떠올린다.

‘태연아, 윷짝의 윗면과 아랫면이 나올 확률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도가 나올 확률은 1/4, 개는 3/8, 걸은 1/4, 윷과 모는 1/16이야. 즉 ‘개-도·걸-윷·모’ 순으로 나온다는 거지. 그런데 윷짝은 정확한 반원 형태가 아니라 반원을 넘어 아래가 약간 잘려진 불룩한 모양이거든. 이런 형태적 특징을 고려하면 ‘걸-개-윷-도-모’ 순으로 윷짝이 많이 나온단다. 그러니까 윷판을 쓸 때 이런 확률을 생각해뒀다가 지름길로 가는 순간을 잘 포착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윷놀이를 할 수 있어. 전통놀이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과학에 있다니, 정말 놀랍지 않니?’

태연은 마구 머리를 굴려 윷판을 써본다. 그런데 이 무슨 확률을 거스르는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오늘따라 나오기 힘들다는 도만 계속해서 나오고, 윷이나 모는 나와 줄 생각을 않는다. 결국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 돼 태연은 패배할 위기에 처한다. 바로 이때, 아빠가 태연과 사촌의 경합을 구경하기 위해 대머리 동산에 나타난다.

“어떻게 돼 가고 있냐? 오빠의 탄생이냐, 혹은 누나의 탄생이냐?”

“아빠! 내가 아빠 말만 믿고 전통놀이 결투를 신청한 게 잘못이었어요. 과학보다 실전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전통놀이 말고 몸무게나 얼굴너비 같은 걸로 서열을 정하는 게 낫다고 했잖아요. 몸무게로 치면 내가 그냥 누나도 아니고 큰누나인데 저렇게 비쩍 마른 녀석한테 오빠라고 해야 하다니, 이건 정말 악몽이야~ 설날의 악몽!!”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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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전동 윷놀이 만들기

제비 다리몽둥이 와작 부러뜨려 받은 씨앗도 제대로 된 씨앗이긴 한 모양이다. 번쩍번쩍한 기왓장 사이를 넘고 타며 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아따 저 놈들 탐스럽구만, 하나 나눠주면 안 되겠나? 입맛 쩝쩝 다시며 그리 물어오는 이웃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놀부가 대체 어떤 위인인가. 친동생 줄 재산도 없는데 담 넘어 이웃에게 넘어갈 박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대문 꾹 닫아걸고 박 여물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황금 햇살 쏟아지는 어느 가을날 드디어 박을 뚝뚝 따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대박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요놈이 잘 말라야 타지. 말은 그리 하며 창고 안에 꼭꼭 숨기는 세상눈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겠나. 기왓장 걸친 박 넝쿨이 시커멓게 말라 죽어 뚝뚝 떨어지는 정월 초하루에 그제야 두 내외 마당에 고급 비단 턱 하니 깔아놓고 박을 똘똘 굴려 나온다.

드디어 타는구려.
타야지.
뭐가 나올까요.
봐야 알지.

불퉁하게 이야기하지만 내외 입술이 짐짓 실룩대는 것이 기쁘기 한성에 한량없는 속내가 절로 드러난다. 요걸 탈까 조걸 탈까. 느릿느릿 움직이는 놀부 손길에 속 타는 놀부 마누라가 툭 튀어 나와 하나를 들고 자리에 폭 주저앉으니, 늦가을 마당 먼지가 풀썩풀썩. 입 삐죽하게 내밀고 배 실룩대던 놀부도 제 성질은 급한지라 같이 푹 주저앉아 톱을 든다. 박 하나를 슬근슬근 타보자꾸나.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데구루루 굴러 나오니 이것이 무엇이냐?

수수깡?
수수깡일세 그려.

또르르 또르르. 맑은 소리와 함께 구르는 긴 대 하나에 내외는 멍해져서 잠시 손을 멈추고 박 안을 기웃기웃한다. 방금 구른 놈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다시 한 번 표정이 멍해진다. 이것은 꽝인게야. 꽝이겠지요. 서로를 위안하듯 건넨 말을 다시 톱에 싣고 두 번째 놈을 타보자꾸나. 그래 또 박에서 뭔가가 펑 하더니 데구루루 나오는구나.

이 고철 덩어리는 뭣이야?
거 참 작구만.

슬슬 언성이 높아지는 품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으렷다. 손 안에 쑥 들어갈 작은 철 덩어리를 만지작대는 놀부 마누라는 이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그래도 가장입네 ‘커험’ 헛기침을 한 놀부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박 하나를 더 집어 들고 오니 이미 덩어리를 집어 던진 마누라가 째려본다. 아 그래, 가엾은 짐승 하나 해치고 얻은 재물이 겨우 요것이었소? 눈으로 전해지는 말에 놀부가 또 한 번 헛기침을 커험.

내 눈이 어두워 채 여물지 못한 놈을 고른 게지. 이번엔 뭔가 재미난 게 나오지 않겠소?
에잉 나와야지. 안 나오면 내 열불 올라 서방 다리를 고만 똑 부러뜨릴 지경이오.
아이구야 말도 무섭게 하시는구만.
내가 누구 옆에서 살며 심성 다 버려 이렇소.

오가는 말만큼 톱질도 험해지니 박 껍데기를 벅벅 긁어대는 소리만 눈 시리게 찬 하늘 아래 크게 울리는구나. 다시 한 번 펑 하더니 이번엔 여러 개가 우르르.

아이구야 나왔구만.
그런데 이게 또 뭣이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종지 같은 게 하나, 긴 선이 여러 개. 그래 종지야 물 뜨러 갈 때 쓴다 치더라도 요 놈의 선들은 어디 쓸까? 남은 박이고 뭐고 죄다 깨부술 기세로 창고로 달려가는 마누라 치맛자락 붙잡고 놀부가 사정사정 하니 박이 아까워서기도 하고 제 다리가 걱정되기도 해서다. 그 때 뾰로롱 날아드는 놈이 하나 있으니, 까맣고 하얀 깃털 맵시 있게 기른 제비 한 마리다.

성질도 급하게 벌써 타셨소. 제가 늦었네요.

입에 문 덩어리를 내려놓으며 재잘재잘 높은 소리로 소리를 내는데 다리 한 가운데가 볼록한 것이 지난 늦여름 운 없이 잡힌 그 제비가 맞는 듯하다. 놀부가 끄응 하니 마누라도 끄응 하는 것이 저들이 저지른 짓이 기억나기 때문이렷다. 내외가 이러든 말든 제비는 힘차게 뱅뱅 돌며 마당에 내려앉아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맑은 눈빛이 비단 위를 요로조리 훑더니 표정이 더욱 환해진다. 예전에 당한 일쯤 아무 문제없다는 태도다.

윷놀이를 합시다요.
윷놀이?
그렇소이다. 그게 다 윷놀이용 물품입지요.

다리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요리조리 콩콩 뛰며 부리로 재료를 모아댄 제비가 다시 한 번 높은 소리로 재촉을 해댄다. 윷놀이, 윷놀이, 윷놀이를 합시다요. 정월 초하루에 윷놀이 하는 거야 알고는 있다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나 그러했지. 게으르고 일도 안 하면서 식솔만 주렁주렁 늘려가는 흥부네를 보다 못해 내쫓은 날 이후로 윷가락을 본 기억도 없다. 그러던 말던 혼자 쫑쫑 정신없이 오가던 제비 놈은 어디서 칼 하나를 덥석 물어와 턱 내려놓는다. 시퍼렇게 날선 칼날에 놀부 마누라는 제풀에 아이고 비명을 지르는데 제비 눈빛이 부드러운 게 사람 해칠 낯은 아니다.

먼저 수수깡을 잘라야 합니다요. 어서요.
거, 내가 저지른 짓은 말이다.
거 참, 시간 없어요. 정월 초하루 해는 성질이 두 내외분보다 급해서 금세 꼴딱 집니다요. 어서 자르자구요. 그래그래, 그렇게 반쪽으로 자르면 됩니다요.

어찌나 재촉 해대는지 사죄도 후회도 죄다 날리고 일단은 칼을 잡아 본다. 시키는 대로 이래저래 잘라보니 어찌 윷가락 비슷한 놈이 네 조각 뚝딱 나오렷다. 마누라가 정성스레 표시 그려 넣는 새에 가장은 종지에 철 덩어리와 선을 연결하느라 낑낑댄다. 시끄러운 제비 놈이 물고 온 또 다른 덩어리에 연결하니 종지가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깜짝 놀라 놓칠 뻔하기도 한다. 그새 제법 윷가락 형태를 갖춘 수수깡 조각을 들고 온 마누라는 신기한지 종지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제비 말에 따르면 전동기라나.

자 이제 한 번 윷가락 넣고 종지를 휙 뒤집어 보세요. 가만히 있는 종지에 수수깡 조각을 넣고 뒤집으면 조각들은 바닥에 쏟아지겠지요? 다시 전동기를 돌리며 넣어 보면, 아이고 안 떨어집죠. 요 때 딱 전동기를 멈추면 윷가락이 우르르르, 저는 걸이네요. 먼저 가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종지를 들었다 놨다, 윷가락을 떨어뜨렸다 놨다 하는 동안 어디서 찾았는지 먼지 쌓인 말판을 들고 온 것은 놀부 마누라다. 한 십오 년 둘이서 산 게 헛세월은 아니었나 보다. 제비가 걸이오, 놀부가 개요, 놀부 마누라는 윷이라 한 번 더 던져 도요. 한동안 전동기 도는 푸르르 소리만 이어지다가 또 제비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돌아가는 종지 속에 있는 수수깡 윷가락은 처음 움직이던 방향대로 직진하려는 성질 때문에 종이컵 바깥방향으로 힘을 받습니다. 이런 성질을 관성이라 하지요. 놀부가 계속 마음과 달리 심술을 부리고 흥부가 계속 가난하게 사는 것도 생활 속의 관성이랄까. 아이고 요 말은 과학과는 관계없지만요. 그렇게 튀어나가려는 윷가락들을 이 종지가 막아 주고 있기 때문에 튀어나가거나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식으로 풀면 원심력과 구심력도 설명할 수 있습지요. 빙글빙글 도는 원운동을 하는 물체는 원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을 받아요. 하지만 원 안으로 향하는 구심력이 또 작용하기 때문에 계속 원 위에 있을 수 있지요. 그러다가 전동기를 딱 멈추면 이런저런 힘도 사라지고 윷가락들은 바닥에 우르르 쏟아집니다요. 고걸 보고 말을 움직이면 되지요.

그 사이에도 말이 차례대로 오가니 조용조용 어느새 놀부 마누라의 승리. 어찌나 조용하게 해갔는지 이긴 사람도 밋밋하고 진 놈도 덤덤하니 슬슬 넘어가는 햇살만 말판을 붉게 비춘다. 이쪽저쪽 눈치를 보던 제비가 이때다 하며 날개를 펄럭이니 내외가 깜짝.

그래 두 분이 하시면 재미없죠잉?
시끄럽다 이 녀석아.
거 원래 윷놀이라는 게 여러 무리가 해야 재미난 법입니다요.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옛적 만주 벌판에 부여가 있던 시절 그 나라 사람들이 각 부족의 가축을 경쟁적으로 키우기 위해 윷놀이를 했다 하네요. 도, 개, 걸, 윷, 모 이게 다 가축 이름이라 이 소립니다요. 이 집에 가축은 많은데 사람은 적으니 도부터 모까지 언제 다 키우실 겝니까. 이왕 하실 거면 사람 많은 집에 가서 같이 즐기시는 게 어떠신가요. 그러니 동생 분 댁으로 가시죠.
뭐라고?
아이고, 말 못 알아들으시는 척 하긴. 거 바로 옆 고을에 있잖습니까. 요새 새로 지어서 그렇게 쾌적하다던데. 정월 초하루에 인사도 할 겸 해서 한 번 같이 가십시다. 저도 신세진 게 있다 보니 같이 인사드리면 좋을 것 같고요.
싫다. 내가 왜.
정월 초하루 하면 새해를 시작하는 커다란 명절이지요. 원래 명절은 가족 친척 모여 인사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허물도 좀 덮어주고 지내다 오는 그런 날 아닙니까요.
사이 나쁘고 척지고 원한 쌓인 이들끼리 그 날 하루만 그러면 뭐한대. 그게 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허상이여.
아 거야 저도 알고 있지요. 그래도 말입니다. 또 마음 상해서 다시 1년 내내 싸우더라도 하루쯤은 다 같이 웃으며 윷도 굴리고 말도 옮기고 머리싸움도 하고 그리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윷가락 종지에 척 하니 모아놓고 혼자 신나게 떠들어대는 제비의 주둥아리 끝은 왜 그리 뾰족한지. 과거의 제 언사가 그대로 돌아와 마음을 찌르는 듯해 놀부 입만 괜히 더 나온다.

동생분만 부자 되니 배알 좀 꼴리셨죠? 아이고 말씀 안 하셔도 다 압니다요. 굳이 그렇게 착한 척 안 해도 척 보면 딱 아니겠소.
요놈의 제비, 주둥아리도 확 부러뜨려줄까.
말씀 그렇게 하셔도 절대 못 하시는 것도 압니다요. 제 다리 망가뜨리시고 계속 마음에 걸려하신 것도 말입죠.
에끼 이 놈 헛소리도 작작….
아 뭐가 그리 어렵습니까. 한쪽 성별 노동력만 쏘옥 빼내서 종일 음식을 만들거나 시댁친정 어디에 먼저가 어디에 오래 있느냐로 언성 높여야 하는 그런 명절이란 이름의 착취도 아니고 그냥 이웃 고을 동생 분 집에 잠깐 인사가서 윷가락이나 좀 던져보자는 건데. 이 기회를 틈타 화해할 방법도 찾아 보시구요. 심술은 좀 있지만 물려받은 재산 잘 보존해 키우신 건 형님이오, 게으르고 능력 없지만 바보같이 착한 태도로 인심 모은 건 동생이니 형제의 힘을 합치면 훨씬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언제까지 시샘하고 부러워하고 또 후회만 하면서 지내실 겁니까.

어서 가시지요, 명절은 그런 날이니까요. 노래하듯 같은 구절을 반복하며 날아오른 제비의 모습은 이미 저 위의 한 점이 된다. 말마따나 성질 급한 해가 꼴딱 넘어가 언덕에 걸리고, 높이 솟아오른 해 마냥 둥글고 통통한 박들도 이젠 반 갈린 바가지로 변해 마당 여기저기서 데구루루. 제비 따라 대문 밖으로는 나왔다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끝을 세워 뒷짐 지고 올려다 본 정월 초하루 하늘은 어느새 밤으로 덮여 간다. 한 발 내밀었다가 뒤로 돌렸다가, 내 발이 말인가, 도와 뒷도만 반복하는구나. 느릿한 발걸음을 따라 혼잣말이 길게 늘어졌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법이라오. 같이 늘어진 마누라의 농에 내외가 함께 피식. 성질 급한 해 덕분에 밤이 긴 것이 그저 다행이다. 어느 쪽이든, 집으로 갈 수는 있을 테니.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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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선 어떤 음식 먹을까?


2012년 새해 첫 새벽. 어둑어둑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태연의 ‘야호!’ 소리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자기 방 침대에서 팔딱 뛰어나와 엄마 아빠 침대로 쏙 들어간 태연은 어마어마한 길몽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크고 잘생긴 용이 나타났어요. 그것도 검정색 흑룡이 저한테 찡끗 윙크를 하는 거예요. 근데 윙크하는 눈이 이뻐~ 완전 송중기야~~. 그런 다음 송중기 흑룡이 제 손을 잡고 하늘로 막 승천을 해서, 우주선 안으로 쏙 들어가는 거 있죠. 그리고는 파란 지구별을 바라보며 향긋한 커피를 한 잔 마셨어요. 그 다음에 뭐라고 고백을 한 줄 아세요? ‘다른 여자들이 그냥 용이라면, 넌 흑룡이야.’ 이러는 거예요. 이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꿈일까요? 새해에는 연예인이 되려는 걸까요?”

엄마와 아빠는 새벽부터 이게 뭔 일인가 싶다. 개꿈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딸의 꿈 얘기에 기가 찬다.
“아이고, 우리 태연이가 새해 아침부터 아주 좋은 꿈을 꿨구나.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스토리인데…. 여보, 용 나오면 태몽 아냐?
“아빠!! 새해 아침부터 진짜 이럴 거예요?”
“맞아요. 당신은 애한테 꼭 그렇게 장난부터 치더라. 우리 태연이가 뉴스에서 흑룡의 해라는 말이 하도 자주 나오니까 그런 꿈을 꿨나보구나. 암튼 용꿈은 좋은 거니까, 한 해 동안 좋을 일만 있을 거야.”

태연, 엄마의 말에 기분이 조금 풀린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태연의 배꼽시계가 꼬르륵 꼬르륵 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흑룡씨랑 우주선에서 먹은 게 하필 커피라서 실망이었어요. 센스 있는 남자라면 우주선에서 따끈한 순대국에, 파전 한 접시쯤은 먹게 해줘야하는 거 아니에요?”

“글쎄다, 그런데 아직 우주식품으로 순대국과 파전이 승인이 안 돼 있어서 좀 힘들 것 같구나.”

“엥? 그럼 우주에서는 승인 받은 음식만 먹어야 해요?

“그렇단다. 한식 중에는 2008년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먹었던 김치, 라면, 수정과, 생식바 등 4종과 2010년에 개발한 비빔밥, 불고기, 미역국, 오디음료 등 4종, 그리고 2011년 12월에 승인된 부안참뽕 바지락죽, 부안참뽕 잼, 상주곶감초콜릿, 당침블루베리, 단호박죽, 카레밥, 닭죽, 닭갈비, 사골우거지국 이렇게 모두 17가지 음식만이 우주식품으로 인정을 받았어.

“허걱, 겨우 17가지…. 갑자기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싸악~ 사라졌어요. 전 토종이라서 한식을 먹어야 기운이 나걸랑요. 그런데 우주식품으로 승인받는 게 왜 힘들어요?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그냥 먹으면 안 돼요?”

“우주식품은 오래 둬도 부패하지 않도록 철저히 살균해서 미생물을 최소화해야 한단다. 우주인이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말이야. 또 우주선에서는 조리를 하는 게 힘드니까 포장만 벗겨 그대로 먹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데워 먹는 정도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해. 뿐만 아니라 1kg의 물체를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쏴 올리는데 약 5,000만원이라는 큰돈이 든단다. 때문에 동결건조 시켜 극도로 가볍게 만든 식품이 대부분이지.”

“그렇구나~. 그런데 잼이나 죽은 그렇다 치고, 사골우거지국이나 라면처럼 국물 있는 음식은 어떻게 먹어요?”

“국물 있는 음식은 낮은 온도에서 급속냉동 시킨 다음, 물 분자를 다 빼내고 블록 형태로 만들어서 우주로 가져간단다. 여기에 섭씨 약 70도 정도의 따뜻한 물을 붓고 빨대로 빨아 먹는 거지. 그리고 우주 라면은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비빔면 형태에 가깝단다. 분말수프가 뿌려진 채 포장된 라면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 비벼먹는 거지.”

“먹는 장소는요? 식탁도 없이 둥둥 떠다니면서 먹나요?”

“떠다니며 먹는 게 좋은 사람은 그래도 되겠지만, 보통은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는구나. 다만 음식이 떠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음식 용기마다 벨크로가 붙어있다는 게 지상과는 다르지. 또 식탁에는 진공청소기같이 음식물 부스러기를 빨아들이는 흡입구도 있단다. 작은 음식물 부스러기라도 공중에 떠다니다가 기계에 빨려들어 고장을 일으키거나 우주인의 몸속에 들어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극도로 조심하는 거지.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물을 훌훌 마셔야 하는 건데, 빨대로 빨아먹어야 한다니 영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도 맛은 생각보다 상당히 좋을 거야. 우주정거장에서는 우주인들이 입맛을 잃는 게 큰 고민거리거든. 무중력 속에서는 혈액이 상체로 몰려 얼굴과 목이 붓고 냄새와 미각도 둔해지면서 입맛을 잃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되면 우주인들의 체력이 떨어져 우주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단다. 때문에 우주인들이 최대한 입맛을 잃지 않도록 음식의 ‘맛’에 엄청난 신경을 쓴다는구나.

“아, 진짜요? 그 얘기 들으니까 다시 제2의 이소연이 되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드는데요! 꼭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요. 13년 평생 단 한 번도 입맛이 떨어져본 적이 없는 저도, 우주정거장에서는 정말 식욕이 떨어질까요? 저도 ‘입맛이 없다’는 느낌이 뭔지 꼭 한 번 경험해 보고 싶거든요. 꼭!!!”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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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사랑을 이뤄주는 나무가 있다!

“아빠, 아빠!! 드디어 원표의 사랑을 확인받을 수 있을 기회가 왔어요!!”

태연,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아빠를 찾는다.

“아빠,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천장이나 현관문에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매달아 둔다면서요? 그 아래 소녀가 서 있으면 누구나 뽀뽀를 해도 그날만은 허용이 된대요.”

“그래, 그런 풍습이 있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에서 보면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겨우살이 장식 밑에 같이 서 있다가 키스를 하면서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도 나와. 그런데 그건 서양 얘기고….”

“맞죠, 맞죠? 그러니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저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서 원표의 사랑을 확인하겠다고요! 드디어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는 거죠~. 내 친구 말자 아빠가 지방에 갔다가 겨우살이를 사오셨는데 저한테 빌려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얏호!”

아빠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밖에 되지 않은 딸이 남자친구에게 뽀뽀를 받겠다고 깡충거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별로다. 아니, 매우 언짢다. 금쪽같은 딸의 볼에 자신 말고 다른 사내 녀석이 뽀뽀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아빠는 한참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근데 태연아~. 네 생각처럼 겨우살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식물은 아니란다. 겨우살이의 고대 영어 이름은 ‘mistletan’인데, ‘mistle’는 배설물(dung)을 뜻하고 ‘tan’은 가지(twig)를 뜻하지. 새가 겨우살이의 열매를 먹은 뒤 씨가 섞인 ‘배설물’을 ‘나뭇가지’에 남기면, 그 나무(기주나무)에서 영양분을 빨아먹으면서 살아가는 기생나무라는 뜻이야.

“엥? 기생나무요? 기생충처럼 다른데 붙어서 산다고요?”

“100% 기생은 아니고 반쯤 기생을 한다고 보면 돼.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다른 나무의 줄기에 뿌리를 내려 수분과 양분을 빨아먹는 거지. 우리나라에는 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이렇게 4가지 종류의 기생 겨우살이가 분포한단다.”

“뭐, 그럼 어때요. 뽀뽀할 기회만 만들어주면 되지. 흥!”

“아이고, 이름도 진짜 한심하지 뭐냐. 겨울에 산다고 ‘겨우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겨우 살아간다’는 뜻이야. 게다가 자기가 양분을 빨아먹는 기주나무를 힘들게 하다가 결국 죽이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기주나무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데 말이야. 정말 바보 같지 않니? 이렇게 바보 같은 나무 밑에서 뽀뽀를 받겠다니 한심해, 한심해!!”

“그래도 말자가 하는 말을 들으니 약으로도 쓰이는 나무라는데요?”


[그림]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이는 호랑가시나무. 사진 출처 : SXC
“그야 그렇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겨우살이는 귀신을 쫓고 온갖 병을 고치는 신비의 약으로 알려져 왔단다. 특히 유럽 사람들은 참나무 겨우살이를 하늘이 내린 풀이라고 신성시하는 것은 물론 불사신의 상징으로 믿기도 했어. 사람들이 하도 겨우살이를 대단하게 여기니까, 심지어 중세 교회에서는 겨우살이 장식 풍습을 고대의 우상숭배전통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금지하기까지 했지. 그러자 사람들은 겨우살이 대신 호랑가시나무를 매달게 됐다는구나. 크리스마스 장식할 때 꼭 쓰이는 입이 뾰족하고 붉은 열매가 예쁘게 달려있는 나무가 바로 호랑가시나무야. 본 적 있지? 날카로운 가시는 예수님이 쓴 가시관을, 붉은 열매는 흘린 피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나무는 신성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란다. 이때부터 호랑가시나무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다는 얘기도 있어.”

“와, 그런 심오한 스토리가 있는 줄은 또 몰랐어요.”

겨우살이는 한방에서도 상당히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단다. 근육과 뼈를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낮추는 약재, 특히 뽕나무에 붙어 자라는 겨우살이는 상기생(桑寄生)이라고 해서 상당히 귀한 약재로 인정받고 있지. 또 최근에는 국산 겨우살이에서 추출한 M11C(비렉틴 구성물질)가 뛰어난 항암효과와 면역활성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단다.”

“그 봐요, 멋진 나무라니깐!”

“그러면 뭐하니. 몸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멸종위기로까지 몰리고 있는걸. 산을 끼고 있는 관광지마다 겨우살이 줄기를 말려 파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다, 관광객들이 직접 무단으로 채취하는 경우도 많아서 씨가 말라가고 있어요. 이렇게 멸종위기가 된 나무를…! 꼭 장식으로까지 만들어서…!! 원표인가 원숭인가 하는 그 녀석한테 사랑을 확인받아야 하겠냐?”

“그러니까 멸종되기 전에 빨리 확인을 받아야죠~. 아빠는 이 사랑스러운 딸이 노처녀로 늙어 죽는 꼴을 보고 싶으신 거예요? 아님 쫌 예쁘게 낳아 주시던가! 제가 오죽하면 불쌍한 나무까지 엮어서 어떻게 뽀뽀 좀 한 번 받아보려 하겠냐고욧!”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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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관리, 어렵지 않아요~

엄마 아빠와 태연이 가사분담을 주제로 가족회의 중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일을 덜 맡을까, 치열한 두뇌싸움과 눈치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 이제 각자의 주장을 들어봤으니까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을 내리겠어요. 태연 엄마는 주방에 관한 모든 것, 즉 요리와 설거지를 일임해 주세요. 나는 퇴근 후에도 할 수 있는 빨래와 청소를 맡을 테니까. 아무래도 이런 건 힘센 남자가 더 잘 하는 분야인 데다가, 당신의 가냘픈 허리가 힘든 청소 땜에 다치는 건 정말 싫고… 기타 등등….”

아빠는 또 다시 엄마에 대한 무한 애정공세에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짜증이 난 태연은 버럭 큰소리를 낸다.

“아, 그러니까 전 뭘 하냐고욧!”

“넌 몽몽이 화장실 청소와 목욕, 그리고 온 집안의 가습 관리를 맡는 게 어떻겠니?”

“어머머, 정말요? 넵, 열심히 하겠습니닷!!”

뭔가 엄청 귀찮은 일을 떠맡을 줄 알았던 태연, 이게 웬 떡이냐~ 싶다. 여태 하던 몽몽이 관리에 겨우 가습 하나만 추가되다니…!!

“자, 그럼 저는 가습을 하러 가겠습니다. 가습기통에 물만 떨어지지 않게 하면 되는 거죠?”

“음, 그것 말고 주의할 게 몇 가지 더 있단다. 지난 봄 임산부들 사이에 집단 발생해서 5명이나 사망했던 폐 손상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세정제) 때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살균제에 들어있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포스페이트’를 비롯한 4가지 화학약품은 샴푸나 조리기기 세척제, 곰팡이 제거제 같은 용도로 쓰이는 독한 성분이야. 당연히 사용한 뒤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몸에 남아있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물질들이지. 그런데 이걸 가습기에 넣어 수증기와 함께 공기 중에 퍼지게 하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에 직접 닿게 되고, 당연히 폐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왜 임산부들만 더 피해를 본 거예요?”

“임산부들은 외출을 잘 못하잖아. 그래서 방안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뱃속의 아기를 위해 특별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려고 가습기 살균제를 꼭꼭 챙겨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단다. 게다가 임신 8개월 이상이 되면 숨이 가빠지면서 평소보다 호흡량이 30%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독성물질에 똑같이 노출돼도 흡입량은 더 많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렇구나. 정말 안타깝네요. 그런데 그 사건이랑 제가 가습기 물 채워 넣으러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 제가 세척제 쓸까봐 그러세요? 에이,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세척제 대신 온몸으로 철저한 세척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그래. 첫째, 가습기에 넣는 물은 매일 갈아주되 끓였다가 식힌 물이 가장 좋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수기 물을 넣어야 해. 아빠가 명하노니, 넌 꼭 끓였다 식힌 물을 쓰도록 하여라. 둘째, 가습기 통은 일주일에 한번 씩 청소해줘야 한단다. 물통의 경우 1/4정도 물을 남긴 후 마구 흔들어서 세척한 다음 밤새 바짝 말려야 하고, 본채 안쪽은 부드러운 청소 브러시를 이용해서 구석구석까지 아주 꼼꼼하게 닦아줘야 해.

셋째, 가습기를 무조건 계속 틀어놓으면 오히려 실내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세균이나 집먼지진드기,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잠들기 한 시간 전부터 켜고 아침에 일어나면 꺼야 해. 가습기를 끈 다음엔 꼭 환기를 해주는 것도 잊지 말도록! 아,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티트리 오일도 한 두 방울 꼭 가습기 통에 떨어뜨려 주겠니? 상큼한 아로마 향도 맡을 수 있는데다, 원래 티트리 오일이 강력한 살균효과가 있거든. 그래서 여드름이나 상처, 세균질환 같은데 발라도 아주 좋아. 가습기통에 넣으면 당연히 물도 소독되니까 꼭 잊지 말아라. 암튼, 부탁해~~!”

“머, 머가 이렇게 복잡해요! 초등학생한테 이렇게 과중한 일을 시키시다니, 이건 아동학대라고요!”

“정 그렇게 힘들다면, 가습기를 대체할 방법들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구나. 방에다 빨래 널기, 숯에다 수시로 물 뿌리기, 수족관에 물고기 키우기, 키가 크고 잎이 넓은 관엽식물 키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단다. 한 가기만 해가지곤 가습기를 대체하기 힘들 것 같고, 빨래 널기랑 물고기 키우기 정도만 하면 어떻겠니? 어항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지만 빨래는 매일 해야 해.”

“빨래는 원래 아빠 담당이잖아요!!”

“어허? 그랬나? 네가 가습을 담당한 덕분에 아빠가 해야 할 빨래까지 도와주게 됐구나. 이런 착한 것 같으니. 이참에 찌인~하게 효도 한 번 한다는 셈 치고 열심히 빨래를 널어보렴~!”

“아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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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addylife.tistory.com BlogIcon 아빠생각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에도 똑같은 글이 달렸네요..아주 유용한 글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유의깊게 보시는것 같네요..
    암튼 잘봤구요.. 늘 번창하세요.... 도장 콕 찍고 갑니다..

    2011.12.18 18:34 신고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태연 버럭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유망 직종 및 모든 자격증에 대한 자료를 무료로 제공 받을수 있습니다..

      유망 자격증을 종류별로 무료 자료 신청가능하다고 하네요..

      신청 해보세요 -> http://license119.com/newki

      2012.06.21 09:51
  2. Favicon of https://daddylife.tistory.com BlogIcon 아빠생각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고 여기는 읽을거리가 정말 많네요....링크추가하고 자주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2011.12.18 18: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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