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근의 야산에서 꽤 오래된 것 같은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산속까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 구더기들이 코와 입 등에 들끓고 있었다. 시신은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육안으로는 누구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그의 옷과 소지품 등에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신원을 알 수 없어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될 수 없었고, 미궁에 빠진 수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이었다.

신원 확인이 안 되는 시신의 경우는 시신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인 성별, 연령 등을 확인하는 검사를 한다. 치아의 마모정도로 연령을 측정함으로써 변사자의 대략의 나이를 알 수 있으며, 두개골에 대한 법의인류학적 판단으로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알 수 있어 수사 범위를 좁힐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추정되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과 비교가 되어야지만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체가 발견된 수사에 있어서 시신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면 일단 시신이 언제 그곳에 유기되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곳에 유기된 날짜를 역 추적하여 그때에 실종된 사람을 중심으로 수사를 하게 되면 변사자의 신원 확인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기된 날짜를 역 추적하는 것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용의자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시신이 유기된 시간을 중심으로 용의자들의 행적을 정밀하게 검사함으로써 범행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마리가 된 것은 바로 구더기였다. 구더기하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더럽다, 징그럽다’라는 단어가 연상되는데, 과연 이것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까? 구더기들의 생활사 중 어느 단계인가를 관찰하면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발견 당시까지 성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여 거꾸로 시간을 역산하면 거의 정확한 사망 시점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파리가 시신의 코, 입 등 서식에 알맞은 곳에 알 또는 유충(쉬파리는 구더기를 낳는다)을 낳는다. 이들 유충은 성장을 거쳐 번데기로 되고 성충인 파리로 된다. 이때 유충(구더기)이 단계별 (1령, 2령, 3령 및 번데기)로 성장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여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유충은 온도, 습도 등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에 따른 성장 속도 등을 연구하여 이를 반영한 후 사후경과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더욱 그의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시신이 유기된 지 오래된 경우도 어떤 종류의 곤충이 공격을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여 부패 과정에서 관여하는 지표 종들과 비교함으로써 사후 경과시간을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시체를 공격하는 생물 중 약 85%는 곤충이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면서 곤충들은 그들의 생활 습성과 주요 먹이습성에 따라 시간을 두고 모여든다. 가장 먼저 시체에 접근하는 곤충은 검정 파리, 쉬파리와 같은 파리들이다. 이들은 몇 분 안에 시신에 도착하여 부패가 진행된 후 2주까지 시신에 머물기 때문에 초기의 사후 경과시간의 지표로 비교적 정확하다. 그 후 송장벌레와 같은 딱정벌레가 파리의 알과 구더기를 먹기 위해 몰려들고, 그다음으로 개미나 말벌 같은 잡식성 곤충들이 달려든다.

이렇듯 범죄와 관련된 여러 가지의 정보 및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시신의 주변에서 관찰되는 여러 곤충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법곤충학이다. 법곤충학을 이용한 사건의 해결은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 처음으로 사건에 적용된 이후 1960년대 들어서는 동물의 사체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서 사체의 부패가 진행되는 단계에 따라 이에 관여하는 곤충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많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결과는 법곤충학의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과학수사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범죄는 일어나게 마련이고 이러한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과학수사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수사는 모든 학문적 영역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흉악 범죄의 경우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 중 법곤충학도 매우 중요한 분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추후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과학 수사에서는 구더기 같은 작은 생물마저도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과학수사 관련자들의 이러한 노력이 있는 한, 모든 범죄는 반드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 수법이 변화하는 것만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과학도 진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박기원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실장)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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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관련된 만화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여검시관 히카루, 법의관 사요코 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는 '비밀' 이 있습니다. MRI수사로 죽은 사람의 뇌를 보고 뇌에 기억된 영상을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가정으로 그린 만화와 애니메이션입니다. 사건의 현장을 화면으로 볼 수 있어서 범죄자를 잡고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예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잔인한 장면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감염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비밀' 을 엿본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2008.09.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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