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아빠!! 드디어 원표의 사랑을 확인받을 수 있을 기회가 왔어요!!”
태연,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아빠를 찾는다.
“아빠,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천장이나 현관문에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매달아 둔다면서요? 그 아래 소녀가 서 있으면 누구나 뽀뽀를 해도 그날만은 허용이 된대요.”
“그래, 그런 풍습이 있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에서 보면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겨우살이 장식 밑에 같이 서 있다가 키스를 하면서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도 나와. 그런데 그건 서양 얘기고….”
“맞죠, 맞죠? 그러니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저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서 원표의 사랑을 확인하겠다고요! 드디어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는 거죠~. 내 친구 말자 아빠가 지방에 갔다가 겨우살이를 사오셨는데 저한테 빌려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얏호!”
아빠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밖에 되지 않은 딸이 남자친구에게 뽀뽀를 받겠다고 깡충거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별로다. 아니, 매우 언짢다. 금쪽같은 딸의 볼에 자신 말고 다른 사내 녀석이 뽀뽀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아빠는 한참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근데 태연아~. 네 생각처럼 겨우살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식물은 아니란다. 겨우살이의 고대 영어 이름은 ‘mistletan’인데, ‘mistle’는 배설물(dung)을 뜻하고 ‘tan’은 가지(twig)를 뜻하지. 새가 겨우살이의 열매를 먹은 뒤 씨가 섞인 ‘배설물’을 ‘나뭇가지’에 남기면, 그 나무(기주나무)에서 영양분을 빨아먹으면서 살아가는 기생나무라는 뜻이야.”
“엥? 기생나무요? 기생충처럼 다른데 붙어서 산다고요?”
“100% 기생은 아니고 반쯤 기생을 한다고 보면 돼.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다른 나무의 줄기에 뿌리를 내려 수분과 양분을 빨아먹는 거지. 우리나라에는 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이렇게 4가지 종류의 기생 겨우살이가 분포한단다.”
“뭐, 그럼 어때요. 뽀뽀할 기회만 만들어주면 되지. 흥!”
“아이고, 이름도 진짜 한심하지 뭐냐. 겨울에 산다고 ‘겨우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겨우 살아간다’는 뜻이야. 게다가 자기가 양분을 빨아먹는 기주나무를 힘들게 하다가 결국 죽이는 경우도 허다하단다. 기주나무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데 말이야. 정말 바보 같지 않니? 이렇게 바보 같은 나무 밑에서 뽀뽀를 받겠다니 한심해, 한심해!!”
“그래도 말자가 하는 말을 들으니 약으로도 쓰이는 나무라는데요?”

[그림]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이는 호랑가시나무. 사진 출처 : SXC
“와, 그런 심오한 스토리가 있는 줄은 또 몰랐어요.”
“겨우살이는 한방에서도 상당히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단다. 근육과 뼈를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낮추는 약재, 특히 뽕나무에 붙어 자라는 겨우살이는 상기생(桑寄生)이라고 해서 상당히 귀한 약재로 인정받고 있지. 또 최근에는 국산 겨우살이에서 추출한 M11C(비렉틴 구성물질)가 뛰어난 항암효과와 면역활성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단다.”
“그 봐요, 멋진 나무라니깐!”
“그러면 뭐하니. 몸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멸종위기로까지 몰리고 있는걸. 산을 끼고 있는 관광지마다 겨우살이 줄기를 말려 파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다, 관광객들이 직접 무단으로 채취하는 경우도 많아서 씨가 말라가고 있어요. 이렇게 멸종위기가 된 나무를…! 꼭 장식으로까지 만들어서…!! 원표인가 원숭인가 하는 그 녀석한테 사랑을 확인받아야 하겠냐?”
“그러니까 멸종되기 전에 빨리 확인을 받아야죠~. 아빠는 이 사랑스러운 딸이 노처녀로 늙어 죽는 꼴을 보고 싶으신 거예요? 아님 쫌 예쁘게 낳아 주시던가! 제가 오죽하면 불쌍한 나무까지 엮어서 어떻게 뽀뽀 좀 한 번 받아보려 하겠냐고욧!”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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