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이기는 법! 손냉장고 만들기

개미 5호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게 태어난 이유이자 삶의 전부니까요.
베짱이는 오늘도 열심히 노래를 합니다. 그게 태어난 이유이자 삶의 전부니까요.
개미 5호와 베짱이가 만난 것은 태어난 이유도, 삶의 전부도 아니었지만요.

맛난 애벌레의 냄새를 따라 쭉 직진하던 개미 5호의 작은 귀에 시원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소리입니다. 올해 늦봄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직 풀벌레의 소리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개미 5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습니다. 풀 위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녹색 베짱이가 보입니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빛이 뜨겁지도 않은지 고개를 쳐든 베짱이는 날개를 부비며 시원한 소리를 계속 내어갔습니다. 그저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날개를 서로 비벼댈 뿐인데 어쩜 저렇게 좋은 소리가 나는 걸까요. 노래를 하는 베짱이를 한참 바라보던 개미 5호는 자신의 일을 깨닫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집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유충이 한가득입니다. 개미 5호의 긴 그림자를 따라 언제까지고 끊이지 않는 노랫소리만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이틀이 지난 뒤 새 먹이를 찾아 땅 위로 나온 개미 5호는 문득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졌습니다. 다행히 같은 장소에는 같은 베짱이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자신은 이 무더위 속에도 먹이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데 어쩜 저렇게 노래만 부를 수 있을까요. 고개를 갸웃대며 고민하던 개미 5호는 다시 몸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노래만 들을 때가 아닙니다. 오늘은 아직 어떤 먹이도 못 찾았으니까요.

다시 이틀이 지난 뒤, 인간들이 남긴 것 같은 소시지 조각을 물고 돌아가던 개미 5호는 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베짱이를 만났습니다. 여전히 노래만 부르고 있는 중입니다. 개미 5호는 문득 베짱이가 이럴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조용히 풀 위로 기어 올라간 개미 5호는 베짱이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도록 살짝 떨어져 소시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베짱이가 이쪽의 기척을 눈치 챈 듯 고개를 돌렸습니다.

개미 5호는 고개를 갸웃대며 물었습니다.

“너는 매일 여기서 노래만 하는구나. 일은 안 하니?”

베짱이가 날개를 계속 비벼대며 대답했습니다.

“노래가 내 일이야.”
“그럼 넌 가수니?”

베짱이는 계속 노래했습니다.

“아니. 난 다른 메뚜기목 곤충들과 똑같은, 그저 한 마리의 수컷 베짱이일 뿐이야.”

이번에는 베짱이가 물었습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나는 일개미야. 먹이를 모으는 것이 내 일이지.”
“그 먹이는 네가 먹는 거니?”
“아니. 나는 유충을 위한 먹이 당번이야.”
“그럼 네가 먹을 먹이를 네가 잡지 않는 거야? 왜?”
“내 먹이를 모으는 당번은 따로 있어. 그게 우리의 규칙이야.”

베짱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와중에도 날개는 쉬지 않습니다. 개미 5호는 어쩐지 베짱이의 ‘일’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쉬이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듬이를 뒤로 쭉 넘긴 베짱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내가 먹을 먹이는 내 손으로 잡아. 내 짝도 내 손으로 찾지. 그러기 위해서 짝을 찾는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하지만 넌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

개미 5호도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또 인정하기 어려운 말이 나옵니다. 기껏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베짱이의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나는 짝을 찾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여왕님을 제외하고 짝을 짓는 개미는 없으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짝을 찾아야 해. 그게 베짱이의 숙명이지.”

베짱이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개미 5호는 자신에게 없는 날개 대신 더듬이를 살짝 비벼 보았습니다. 더듬이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여왕개미님께 달린 하얀 날개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미 5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짝을 짓는 일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네 일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 그건 내 일과는 다르지만 네게는 몹시 중요한 일일 테지.”
“응. 우린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베짱이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개미 5호도 더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저물어 가는 햇살 끝에 연녹색 날개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이틀이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났습니다. 새 먹이를 찾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개미 5호는 베짱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늦더위가 한창인 시기입니다. 햇빛을 빨아들이는 까만 몸을 힘겹게 이끌며 먹이를 찾아오던 길에 더위 탓인지 길을 조금 헤매고 말았습니다. 혼란스러워하던 개미 5호의 옆을 익숙한 소리가 스쳐갑니다. 베짱이의 노래입니다. 풀을 헤치고 나아간 개미 5호의 눈앞에 베짱이가 열심히 날개를 비벼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다른 곳에 앉아 있습니다.

“너구나.”

베짱이는 개미 5호를 알아보고 반색했습니다. 개미 5호도 더듬이를 떨어 인사에 답했습니다. 베짱이는 자신이 앉아 있던 곳에서 다리를 일으키며 더듬이를 까닥여 보였습니다.

“너도 여기 앉아봐.”
“그건 인간의 물건이잖니.”
“그래. 하지만 이건 좋은 거야. 어서 앉아보렴.”

베짱이가 앉아있는 물체는 커다란 비닐봉지입니다. 인간들이 종종 버리는 것과 같은 모습이지만 훨씬 크고, 또 훨씬 통통했습니다. 처음 일을 나갔을 때 먹이인 줄 알고 물어왔다가 얼마나 혼이 났던지 아직도 비닐만 보면 몸을 떠는 개미 5호는, 그래도 조심스럽게 앞다리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일은 중요하니까요.

“물?”
“그래. 그대로 몸을 얹어 봐.”

개미 5호는 머뭇거리면서도 앞다리와 중간다리를 놀려 몸을 얹어 보았습니다. 베짱이가 하던 것처럼 배를 내려놓자 지금껏 느꼈던 열기와 정반대의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쌉니다.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개미 5호는 감탄사를 뱉었습니다.

“와!”
“시원하지?”

베짱이는 더듬이를 까닥이며 날개를 비벼댔습니다. 청량한 노랫소리가 마치 웃음처럼 들립니다. 개미 5호 옆에 나란히 몸을 누인 베짱이는 저무는 노을 속에 날개를 더욱 세게 떨어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개미 5호는 점점 내려앉는 밤의 공기와 배에 닿는 시원한 감촉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풀숲 여기저기서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걸 보면, 베짱이의 친구들도 이곳저곳에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개미 5호도, 베짱이도 몰랐지만 이들이 앉아있는 커다란 비닐봉지는 인간들이 실험을 하다 남기고 간 것입니다. 그 안에는 질산암모늄이라는 약품과 물이 들어있습니다. 질산암모늄은 물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때문에 봉투가 아주 차가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진행되면서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반응을 흡열반응이라고 합니다.

“겨울에는 더운 빛이 없고 공기가 아주 차갑다고 들었어. 하지만 나는 더울 때 태어났고 아직 겨울을 겪은 적이 없지. 그래서 이걸 발견했을 때는 아주 기뻤어. 차갑다는 게 뭔지 알 게 됐으니까 말이야.”

베짱이는 저녁때보다 더욱 높은 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개미 5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차갑다는 느낌을 네게도 나눠주고 싶었어. 널 위한 선물이야.”
“왜 내게 선물을 주는 건데?”“너는 남의 일을 이해해주려고 했으니까. 다른 개미들은 모두 나를 비웃었거든. 하지만 넌 달랐지.”
“그렇구나.”

역시 둘은 모르지만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는 발열반응이 흡열반응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발열반응은 열을 내놓는 반응이기 때문에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변의 온도는 높아지니까요. 겨울철에 사용하는 주머니 난로는 발열반응에 의한 열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것 역시 언젠가 개미 5호의 눈앞에 선물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겨울이 와도 노래를 할 거니?”
“그때까지 짝을 찾지 못하면 노래를 해야겠지.”
“짝은 왜 찾아야 하는 거야?”
“짝을 찾아야 알을 낳고 또 다른 베짱이가 태어날 테니까.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게 내 일이야.”
“그렇구나.”

어느새 태양빛 대신 별빛이 사방에 내려앉았습니다. 배를 대고 있던 봉투도 어느새 주변 공기와 같이 미지근해졌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들의 합창소리만은 더욱 높아져 갑니다. 개미 5호는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지금 돌아가면 상사에게 혼날 겁니다. 솔직히 합창소리에 파묻혀 이대로 밤을 지새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베짱이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데 개미가 자신의 일을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상사에게 혼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나는 갈게.”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렴.”

베짱이는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웅했습니다. 개미 5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봉투에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동료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봉투에 오르기 전 내려놓았던 먹이를 물고 개미 5호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봉투 위에서 날개를 떠는 베짱이는 어쩐지 평소보다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어쩌면 이 밤에 베짱이는 자신의 일을 다 해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주변에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개미 5호는 바삐 발걸음을 놀렸습니다. 집에는 아직 많은 유충들이 자신이 물고 오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더위가 물러나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풀숲에는 더 많은 노랫소리들이 어지럽게 섞이기 시작했기에 그 속에서 베짱이의 노래를 찾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유충들은 쑥쑥 자라나 번데기가 됐고 여왕개미는 다시 새 알을 낳았습니다. 개미 5호는 새로 깨어나는 유충을 위해 더 많은 먹이를 물어 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틀과 또 이틀과 다른 이틀이 쌓여가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개미 5호는 베짱이를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찬바람이 아주 세게 부는 날, 분명 베짱이가 말한 겨울이 온 날 개미 5호는 더 이상 베짱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늦여름의 더위 속에 배를 감싸던 서늘한 감촉을 떠올렸습니다. 겨울을 나기 전 마지막 먹이 찾기에 나서며 개미 5호는 혹시나 해서 풀숲에 머리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낡고 해진 비닐봉지 위에 베짱이가 앉아있었습니다. 하지만 날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리도, 더듬이도 딱딱하게 굳어 있을 뿐입니다. 개미 5호는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자신의 더듬이를 비벼 보았습니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베짱이의 노랫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베짱이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그게 베짱이의 수명이었으니까요.
개미 5호는 베짱이의 몸을 끌고 와 겨울나기용 먹이로 저장했습니다. 그게 개미의 일이니까요.
베짱이와 개미 5호가 짧은 순간을 함께 한 것은 둘의 수명도, 일도 아니었지만요.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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