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년 5월 12일,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그라운드는 훈련 전부터 분주했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의 지시사항을 귀 기울여 듣더니, X밴드 모양의 초경량 조끼를 입었다. 그라운드 주변에는 12개의 무선 수신기가 라인을 따라 설치됐다. 가로 10cm, 세로 20cm 크기인 수신기 베이스스테이션(BS)이 4m 높이에 달려 있었다. 한 쪽에는 흰색 텐트의 지휘본부도 마련됐다.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기 위해 설치한 ‘무선 경기력측정시스템’이다.

#2. NFC 숙소 4층 휴게실은 코칭스태프까지 30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49㎡(약 15평)이다. 이 공간 한쪽에 낯선 기계가 있었으니, 네덜란드 비캣사의 ‘고지대 트레이너’다. 이 기계는 방 안의 산소를 빼내 고지대에 있는 것과 유사한 환경을 만든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산소방’을 사랑방처럼 이용했다.

2010년 6월 11일, 드디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개막한다. 원정 첫 16강을 목표로 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이들의 투혼에 첨단과학이 더해졌으니 2002년의 기적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극전사들이 남아공 월드컵을 위해 사용한 첨단 훈련을 살짝 들여다봤다.

태극전사의 훈련을 도와준 첫 번째 장비는 무선 경기력측정시스템으로 일종의 선수 위치추적 장치다. 선수들은 무선신호를 송출하는 V자 모양의 계측기를 가슴에 달고 훈련하며, 여기서 나온 심장박동 정보와 위치정보가 무선으로 수신기에 전달된다.

이 시스템의 원리는 ‘지역위치측정(Local Position Measurement)’으로 해석되는 LPM기술이다. 수신기는 선수의 이동거리와 심박수 변화양상을 측정해 메인컴퓨터로 전송한다. 뿐만 아니라 선수의 속도, 활동시간, 회복능력과 동선 등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속도와 가속, 움직임의 방향 등이 0.001초 단위로 기록되므로 아주 사소한 걸음까지도 분석이 가능한 셈이다.

이전까지 대표팀 선수의 체력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사용했던 장비는 가슴에 달았던 고무밴드형 심박측정 장치다. 이 장비는 훈련이 끝난 뒤 장비를 수거해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므로 작업이 번거로운 단점이 있다.

반면 이번에 도입한 시스템은 선수들의 움직임과 속도, 심장박동수, 활동시간, 회복능력 수치 등을 바로바로 점검할 수 있다. 코칭스태프가 휴대용단말기를 갖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 게다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박주영 선수의 가슴에 X자 밴드가 보인다. 여기에 장착된 수신기로 선수의 이동거리와 심박수 변화양상, 속도, 활동시간, 회복능력, 동선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


코칭스태프는 이 데이터를 통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할 수 있다. 높아진 심박수를 통해 선수의 피로도를 파악하고, 정상수치로 돌아오는 시간을 통해 회복능력을 평가한다. 자체 연습경기를 할 때는 선수의 움직임을 쫓으며 전술수행능력도 살필 수 있다. 각 선수별로 체력과 전술 수행능력 등이 낱낱이 밝혀져 효율적인 훈련방법을 찾거나 부상을 막는 데도 효과적이다.

파주 NFC에 설치된 12개의 무선 송수신장치는 대표팀이 오스트리아-남아공으로 전지훈련을 다니는 내내 함께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캠프는 물론 남아공 현지 베이스캠프인 루스텐버그에도 설치됐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전문가도 남아공까지 태극전사와 동행했다.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려면 훈련장 지형에 따른 세심한 조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달간 차곡차곡 누적된 데이터는 가장 컨디션이 좋은 태극전사를 경기에 내보내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허정무 감독 역시 “데이터를 체크하고 축척해 선수의 몸 상태와 능력을 확인하는데 쓰겠다”며 “월드컵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다.

 
<산소방에 설치된 고지대 트레이너 장비의 모습. 에어컨을 조작하듯 버튼을 누르면 산소량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어 해발 1300~3000m에 있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

또 하나의 첨단장비는 ‘산소방’이다. 선수들의 휴게실에는 고지대 트레이너라는 장비가 있어 방 안의 산소를 빼내고 고지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에어컨을 켜는 것과 비슷하게 버튼을 누르면 산소량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해발 1,300~3,000m에 있는 효과까지 낼 수 있다. 이곳에서 상대국의 경기도 보고, 휴식도 취한 선수들은 고지대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설악산 대청봉이 1,710m, 지리산 반야봉이 1,732m 정도인데, 한국이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을 치를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는 이보다 높은 1,753m다.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한 뒤에 펼쳐질 경기장 역시 이 정도 높이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고지대에 잘 적응해야 승리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고지대는 공기밀도가 평지보다 낮아 산소량이 적다. 따라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쉽게 피로가 찾아온다. 일반적으로 높이가 100m 높아질 때마다 산소분압도 1.13%씩 낮아지므로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산소분압이 19% 줄고, 산소 섭취능력은 8~9%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90분 내내 달려야 하는 선수들의 체력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송준섭 대표팀 주치의는 “하루 한 시간 정도 산소방에서 쉬는 것만으로도 혈액 속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능력이 높아진다는 논문 보고가 있다”며 “산소방에서 2,500m 이상의 환경을 간접경험한 심리적·생리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지대 적응 훈련은 1,000m대에서 하고, 휴식은 2,000~3,000m 산소분압으로 조정한 마스크를 쓰고 하는 식이다. 산소방에서 고지대를 경험한 태극전사들은 산소마스크도 챙겼다. 휴대가 간편하기 때문에, 훈련 외 쉬는 시간에 틈틈이 착용해 고지대를 완전히 정복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태극전사의 투혼에 첨단과학이 더해졌다. 대표팀 선수들이 땀 흘리는 그라운드 주변엔 12개의 무선수신기가, 숙소 휴게실엔 산소방이, 또 산소마스크까지 이들의 훈련을 도왔다. 그래서인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태극전사들이 최선을 다해 온 국민이 다시 한 번 부둥켜안을 그 날을 기다려본다.
 
글 : 조은지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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