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어느 요구르트 제조회사가 ‘생명연장의 꿈’이란 광고카피와 함께 과학자의 이름을 상품명으로 쓴 적이 있다. 바로 유산균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러시아 생물학자 ‘일리아 일리치 메치니코프(1845~1916)’의 이야기다. 자신의 이름이 무단으로 사용됐지만 지하의 메치니코프가 불만을 갖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요구르트 상표 덕분에 메치니코프라는 이름이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으니 말이다.

과학적으로 유산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였다. 1857년 그는 포도를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산균을 발견했지만 유산균의 유용성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반면 메치니코프는 유산균의 유용성을 알아내, 그 발효유인 요구르트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07년 메치니코프는 ‘생명연장’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장 속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과 숙변 물질이 인체에 독소를 만들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는 또 유산균 발효유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불가리아와 코카서스 지방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어 유산균 발효유의 섭취가 수명을 늘려준다고 주장했다.

매일 철저하게 청결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도 입과 위, 장, 항문 등을 포함한 구간에는 수많은 세균이 살고 있다. 이 세균들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자궁에서 무균상태이던 태아가 세상에 나오면서 질이나 공기 등을 통해 세균에 감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산 하루가 지나고 첫 변부터 대장균, 장구균, 클로스트리움균 같은 부패균, 포도상구균, 유산간균 등이 나타난다. 우리 몸 안에서 유해한 세균과 유익한 세균 간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들 세균은 변 1g당 약 10억~100억 마리가 살고 있다. 이중 비피더스균은 생후 이틀 정도 지나면 나타나고, 4~5일째부터는 다른 종류의 장내세균도 생겨난다. 이때 장내세균들은 서서히 세력 균형을 이루는데, 유해한 세균이 많아지면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유익한 세균이 많아지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메치니코프는 이 내용을 발표하며 유산균 과학에 대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1908년 독일인 의학자 파울 에를리히와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것은 유기체 내의 세포에 의해 미생물이 파괴된다는 ‘식세포 작용(phagocytosis)’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식세포 작용이란 세포가 주위 환경으로부터 고형입자를 잡아들이는 활동을 뜻한다.

1882년 러시아 오뎃사대에서 교수직을 그만 둔 메치니코프는 이탈리아 시실리 섬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집을 짓고 개인 연구실을 꾸민 그는 불가사리나 해면이 먹이를 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불가사리와 해면의 일부 종은 신체가 투명해 육안으로 모든 대사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메치니코프는 매우 진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불가사리 유충의 체내에서 붉은색 염료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너무나 멋진 광경이어서 그는 이 장면을 자꾸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윽고 그는 불가사리의 유리세포(遊離細胞)가 붉은색 염료를 없애듯 체내에 침입한 유해한 세균도 삼키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유리세포란 일정한 조직을 이루지 않고 개개의 세포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세포를 말하는데 혈액세포와 림프구, 생식세포들이 해당된다.

메치니코프는 면역학 연구를 통해 세균의 침입으로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것은 백혈구가 상처 주위로 모여든 결과임을 알아냈다. 또 백혈구가 세균을 없애는 식세포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곧이어 자신의 연구를 지지해 준 파스퇴르를 찾아가 백혈구의 식세포 작용을 계속 연구했다. 1895년 파스퇴르는 메치니코프에게 자신의 계승자 자리인 파스퇴르연구소 소장 자리를 물려주고 숨을 거뒀다.

1901년 메치니코프는 ‘감염병의 면역’이란 책을 출판했다. 그는 뛰어난 문장력과 논리력으로 자신의 연구를 설득력 있게 집필해 나갔다. 이 책에서 메치니코프는 ‘식세포와 세균과의 싸움이 면역의 기본이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와 독일 코흐연구소는 당시 면역학 분야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에 메치니코프의 업적은 프랑스에서는 인정받았지만 독일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독일 생리학자 에밀 아돌프 폰 베링도 “나는 토끼의 혈청이 디프테리아균이나 파상풍균을 물리치는 것을 실증했다. 그러나 세균에 대한 면역성은 식세포가 아닌 동물의 혈청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독일 학자들이 모두 베링의 편에 서서 메치니코프를 공격해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몇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이 논쟁은 20년 넘게 계속됐는데,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화학과 교수였던 라이너스 폴링에 의해 두 쪽 모두 옳은 것으로 판결났다. 독일은 항원항체반응에 의한 면역을 주장한 것이고, 프랑스는 식세포 작용을 주장한 것이었다.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메치니코프는 말년에 노화 연구에 집중했다. 그는 식세포 작용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장내 세균의 독소와 생체의 노화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의 부패가 인간노화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의 부패를 막으면 노화를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장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메치니코프는 ‘유산균 발효유’라고 답했다.

메치니코프는 유산음료를 마시면 누구나 150살까지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술과 담배를 끊었고 락토바실러스 불가리쿠스라는 균을 배양해 자주 마셨다. 유산음료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1916년 7월 16일 메치니코프는 당시로서는 고령인 71세의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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