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의 색체 향연이 끝난 겨울 산의 모습은 황량하다. 메마른 풀과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고요함만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산허리에 올라 목을 축이고 한참을 둘러봐도 움직이는 것은 작은 새들뿐. 박새나 곤줄박이, 멧비둘기가 간혹 기웃거리다 사라진다. 새들은 작은 몸집에도 날아다녀 쉽게 눈에 띄지만 산짐승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노출된 흙이나 눈 쌓인 길가에서 야생동물의 발자국과 배설물은 어김없이 발견된다. 우연히 야생동물을 만날 때 그들이 왜 그 시각에 그 곳을 지나는지 알 수 없지만 흔적을 찾아 뒤쫓게 되면 책을 보지 않아도 그들의 생태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동물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동물원이 아닌 산이나 강가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덩치 큰 포유동물은 보호색이 강하고 울음소리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그만큼 자기와 다른 생물종과는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하지만 수컷과 암컷이 만나 사랑을 하거나 경쟁자와 영역다툼을 하기 위해서 야생동물은 반드시 자신의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다. 우리도 그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야생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셈이다.

일반인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야생동물의 흔적은 바로 고양이 발자국이다. 시내 주택가뿐 아니라 인근 야산에도 많은 수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 동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고양이의 발자국과 개의 발자국이 언뜻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와 개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고양이의 발자국은 개에 비해 원형에 가깝고 발톱 자국이 없다. 물론 진흙땅을 밟거나 뛰어 내디딜 때는 고양이도 발자국에 발톱 자국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발톱을 숨기다 사냥하거나 경쟁자와 싸울 때 발톱을 사용한다. 또한 개 발자국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반면 고양이는 발자국이 비대칭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면 왼발 자국인지 오른발 자국인지 알 수 있다.

관찰의 시선을 발자국에서 발걸음으로 넓히면 고양이의 성격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고양이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주 까다롭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도 발을 끌지 않고 또박또박 내딛는다. 즉 개들보다 발을 더 높이 들어 올려 걷는다는 얘기다.

나무 가지나 줄기 끝에서만 시작되고 사라지는 발자국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청설모의 발자국이다. 다람쥐의 발자국일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울에는 만날 수 없다. 걷지 않고 주로 뛰어 다니는 청설모는 앞발 자국 2개와 뒷발 자국 2개가 규칙적으로 나란히 찍힌다. 또 청설모는 까치처럼 나뭇가지를 빼곡히 모아 침엽수나 땅바닥에 둥지를 튼다. 까치는 주로 활엽수에 둥지를 트는 것이 일반적이니 나무를 보면 청설모집과 까치집을 구별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이나 하천 등지에 가면 평소 보지 못한 ‘V’자 모양의 발자국을 발견할지 모른다. 바로 고라니다. 겨울철 철새 구경을 위해 철원 일대를 찾거나 한강변 김포습지, 상암동의 하늘공원에 가보면 쉽게 고라니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V자 모양의 발자국은 사슴이나 노루, 산양, 염소일 수도 있다. 이들은 배설물도 까만 구슬모양인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고라니나 노루의 배설물에선 은은한 계피향이 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고라니와 노루를 구별할 수 있을까. 이럴 땐 발자국 주변의 나무줄기를 살펴라. 사슴과 동물들은 뿔을 날카롭게 유지하고 영역표시를 하기 위해 나무에 뿔을 간다. 나무를 긁은 자국이 땅바닥에서 30cm 아래면 사슴이나 노루나 또는 산양이고 40cm 위면 고라니다. 뿔을 비비는 사슴과 동물은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송곳니로 긁는 고라니는 고개를 쳐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라니는 뿔이 없어 송곳니로 영역 표시를 한다.

산 속에서 누구나 쉽게 발견하는 야생동물의 흔적은 여기저기 땅을 파헤쳐 놓는 자국이다. 바로 ‘반항아’처럼 거친 멧돼지의 흔적이다. 멧돼지는 봄나물이나 고사리, 칡 같은 식물의 뿌리를 즐겨 먹는데, 겨울에도 쥐가 굴에 저장해 놓은 도토리를 찾기 위해 주둥이로 땅을 뒤엎는다. 만약 두 개의 발굽과 함께 ‘며느리발톱’이 선명하게 찍힌 자국(그림 참조)을 발견했다면 멀지 않은 곳에 멧돼지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실 야생동물의 흔적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큰 발자국은 몸집이 큰 동물이라는 뜻이고 선명한 발자국은 최근에 지나갔다는 얘기다. 똥에 풀이 섞여 있으면 초식동물의 것이고 뼈와 털이 섞여 있으면 육식동물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숲에서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은 20종을 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집안에 움츠리고 있지만 말고 자연에 나와 야생동물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어떨까.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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