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숲 속의 공주님은 그간 잠잔 시간이 아까워 마음이 바쁘다. “백 년 동안이나 자다니,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공주님은 인터넷 검색으로 뉴스를 샅샅이 뒤지고, 밀린 영화보기와 잡지 읽기 등 세상 읽기에 바쁜 일정을 시작했다. 한편으로 그간 못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낮에는 말 타기, 밤에는 춤추기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잠자는 시간만큼 아까운 게 없다니까.”

밤에도 궁전의 조명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놓고, 며칠씩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매끈매끈 우윳빛 피부는 사라지고 눈 밑은 거뭇하고 낯빛이 흑색이었다. 최근 들어 무기력하고 짜증도 늘었다. 공주는 궁중 마법사를 불렀다.

“공주님, 밤에는 주무셔야 해요. 푹 주무시고 나면 다시 아름다운 얼굴색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최근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공주는 마법사의 조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누우며 이리저리 뒤척거리다보니 날이 밝고 말았다.

‘아니, 백 년 동안 잠을 잔 내가 하룻밤을 제대로 못 자다니!’

거울 속 공주의 모습은 더욱 초췌하다.

“저런, 공주님! 잠을 설치셨군요. 그간 밤에 활동을 너무 많이 하셔서 생체리듬이 깨진 거예요. 주ㆍ야간 교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겪는 수면장애지요. 최근 카페인과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과하게 드셨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 어떻게 하면 내가 다시 잠을 제대로 수 있을까? 다시 사악한 마녀를 불러야 하는 걸까요?”

건강하게 잘 자는 사람들은 며칠 못 자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기 쉽다. 잠의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잘 자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기면발작, 폐쇄성수면무호흡증, 아프리카수면병, 치명성가계불면증 등 잠을 ‘제대로’ 못 자게 하는 증세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해도 그렇다.

특히 아프리카수면병은 연간 50만 명이 감염되고 그 중 5만 여명이 숨질 정도로 치명적인 질병이다. 또 치명성가계불면증은 불면증으로 시작해 공포와 환각을 경험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희귀병이다. 광우병처럼 프리온으로 알려진 방어성 세포 단백질이 뇌의 시상 부분을 공격해 잠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이 병의 원인이다.

건강한 사람은 잠을 잘 잔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잠을 못 자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무척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질 낮은 수면과 수면 부족 등을 겪는 사람이 감기에 대한 저항력조차 낮았던 것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팀이 21~55세의 건강한 남녀 153명을 대상으로 연속 14일간 수면시간과 수면효율, 피로도 등을 조사한 뒤 이들을 격리하고 라이노 바이러스가 든 액체를 코에 분무한 뒤 5일간 감기 발생 여부를 감시했다. 그 결과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미만인 집단은 8시간 이상인 집단에 비해 약 3배가 더 감기에 걸렸다.

큰 병에 걸리면 고통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게 통념이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고통이 더욱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멤피스의 암연구네트워크 에드워드 스테판스키 박사팀이 암환자 1만 14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면에 문제 있는 환자는 통증, 피로, 우울감을 더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울증에 걸렸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수면장애 자체가 일종의 정신질환이며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는 파격적인 연구도 나오고 있다. 수면부족이 체내 호르몬에 영향을 끼쳐 스트레스 조절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수면장애가 원인이라면 정신질환 약이 아니라 수면치료와 수면제를 복용하는 걸로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수면장애와 정신질환 사이의 연관성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잠의 중요성을 알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아픈가, 아프기 때문에 잠을 못 자는가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걸로 보인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잠들지 못한다. 도시를 대낮처럼 밝히는 조명, 다양한 밤 문화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한 야간이동, 스트레스,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과 각종 약물의 복용 등 현대인의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성인의 반 정도가 단기 불면증을 겪고, 10%는 급성 불면증을 겪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면장애 환자는 5만 1000명에서 22만 8000명으로 4.5배 증가했다. 수면장애에 의한 건강보험 진료비도 해마다 늘어나 2001년 44억 원에서 2008년 194억 원으로 증가했다. 수면장애 환자가 연평균 20% 이상 증가하므로 앞으로 사회가 지불해야 할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수면장애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액손발데스 호의 알래스카 해안 기름 유출사고,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인도 보팔 화학공장 가스노출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모두 0시를 넘은 심야 시간이었다. 이 치명적인 재앙에 관리자의 수면 부족과 순간의 졸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질 나쁜 수면과 수면부족은 각종 질병과 사고의 원인이 되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게 만든다. 자신의 건강과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오늘밤 하던 일과 걱정을 모두 접어두고 깊이 잠들어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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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꼬마텔레루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얼마전부터 멜라토닌을 먹고 있는데요, 역시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알콜인 것 같아요...ㅠ
    남들은 자기 위해 술을 먹는 것보다 차라리 안 자는 게 건강에 더 좋다고 하지만,
    정말 그 고통,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하룻밤을 꼬박 세우고도 밤에 또다시 잠이 안와 소주를 물처럼 들이키는 기분...
    하아....^^;;

    2009.12.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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