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초여름. 깔끔한 정장에 옆이 살짝 올라간 중절모까지 쓰고 한껏 멋을 낸 김갑수 노인이 거울 앞에 섰다. 아무리 뜯어봐도 한 점 흠 없는 노신사다. 만족감에 ‘씨익’ 웃음을 짓는 김 노인. 그러나 집을 나서면서 그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지난해 뇌졸중을 앓으면서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오는 바람에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다.

김 노인이 도착한 곳은 고향친구 박민수 노인의 칠순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한 한정식 전문점. 식당 안에는 벌써 고향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김 노인을 기다라고 있다.

“어이, 친구들 잘 있었는가?”

“갑수 오나? 늦었구먼. 지금 민수 아들내외가 칠순 선물을 꺼냈는디, 뭐가 들었을까나?”

“옷 아니면 여행상품권이겠지 뭐.”

그러나 아들 내외가 꺼낸 선물은 다름 아닌 ‘게임기’였다! 순간 좌중이 술렁이더니,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역시 민수 아들이 효자는 효자여. 저게 TV화면을 보면서 네모난 판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그 위피트인가, 아래피트인가 하는 그 게임기잖여.”

<일본 닌텐도 사의 가정용 게임 소프트웨어 ‘위핏(Wii Fit)’.>

“애들도 아니고 체신머리없이 뭔 게임기여?”

“이 친구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먼.”

말인즉 이랬다. 이 게임기를 만든 일본 기업 닌텐도는 사용자가 게임판 위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신의 건강정보를 담고, 인터넷을 통해 이 데이터들을 자동으로 보건지도사에게 보내는 ‘원격건강지도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것.

다시 말해 이 게임판이 측정기 역할을 해서 체중 변화와 몸의 밸런스, 일정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걸음 수, 기초체력 등의 정보를 모은 다음 자동으로 건강관리 전문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체중을 얼마 줄여야 한다’, ‘균형 있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 등의 의견을 보내오면, 사용자는 TV화면에 뜬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 건강을 지켜나간다는 것이다. 게임기 사용자와 건강관리 전문가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어 평상시에도 아주 간단하게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저 게임기가 최고의 효도선물이여. 센스 있는 자식들은 벌써 다 사드렸댜. 부럽구먼 부러워. 우리 애들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든디.”

“아직 칠순잔치 안 했잖여. 그때 선물하겄지.”

“하긴, 그럴라나?”

그때 잔치를 진행하던 사회자가 두 번째 선물을 꺼내들었다.

“게임기가 끝이 아닙니다. 오늘 박민수 어르신 자제분께서는 칠순잔치 건강 선물 삼종세트를 준비하셨다고 하는데요. 두 번째가 바로 이 휴대전화입니다. 이 휴대전화는 적외선 통신을 이용해서 집에 있는 체중계, 혈압계, 만보계 등에 기록된 어르신들의 건강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데요. 그렇게 수집한 정보는 보건소에 전달돼 원격 건강검진에 활용됩니다.

연세가 들수록 건강검진은 자주하는 게 좋다는 거 다 아시죠? 우리 어르신들, 하루하루 건강이 다르다는 푸념도 자주 하시잖아요. 그런데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전화기가 알아서 매일 건강정보 수집해 줘, 보건지도사가 개인별 정보를 분석해서 건강 관리해 줘, 거기다 건강에 도움 되는 전문적인 조언까지 휴대전화로 날려주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자, 박민수 어르신, 이 휴대전화로 지금의 건강 100세까지 지켜가세요.”

사회자의 넉살좋은 언변에 여기저기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걸 처음 안 김 노인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이런 서비스가 언제부터 있었던겨?”

“이 친구가 아들 따라서 외국 몇 달 댕겨오드니 아무 것두 모르네. 일본에서는 작년 그러니께 2009년 2월부터 이 서비스가 실시됐구, 인천 송도 시에서도 이미 휴대전화를 이용한 원격 건강검진 서비스를 하고 있잖여.”

“아, 그랬어?”

“아이구, 조용히 혀 봐. 지금 세 번째 선물 푸는 모양인디? 아니, 그 유명한 똑똑이 화장실아녀? 민수 아들이 참 속이 깊어. 멀리 사는 부모님 건강관리 할라고 저거까지 준비하고 말여.”

<다이와(大和)하우스공업과 토토(TOTO)가 공동으로 개발한 재택
건강시스템인 ‘인텔리전스 화장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 번째 선물상자 속에서 나온 화장실 시스템은 김 노인도 탐내는 제품이었다. 일명 ‘인텔리전스 화장실’. 소변을 보는 것만으로 요당치, 혈압, 체지방, 체중을 측정할 수 있어 2005년 판매되자마자 세간의 관심을 주목시킨 제품으로, 2008년 12월 판매를 시작한 ‘인텔리전스 화장실 II’는 요 온도(심부 체온)와 BMI(체질량지수)까지 측정할 수 있어 더욱 인기다.

새로 첨부된 요 온도 측정 기능은 수시로 체온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 감기 같은 병에 걸린 사실을 빠르게 알 수 있게 해주고, 여성의 경우 특유의 호르몬 밸런스를 알려줘 월경 시기나 배란일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또 BMI 측정 기능은 건강관리에서 체중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체질량지수를 하루에도 수차례 알려줌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게을러지지 않고 꾸준히 운동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준다.

“우리 옆집에 이 노인 있잖여. 그 건강염려증 환자라는 사람. 그 사람도 작년에 저 똑똑이 화장실 사고부터는 건강걱정이 한층 덜해졌다고 하드라고.”

“그려. 나두 이참에 하나 살까혀.”

“난 말여, 자네 작년에 뇌졸중 걸린 것도, 저 원격 건강관리 게임기나 휴대전화, 그리구 똑똑이 화장실 같은 걸로 매일매일 건강을 관리했으믄 어쩌면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다 지 복이지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김 노인의 얼굴빛은 어두워졌다.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고 상담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시스템을 미리 알고 잘 갖춰뒀더라면’ 하는 후회였다. 김 노인의 눈에는 마비된 오른쪽 반신을 지탱해주는 지팡이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러나 이내 김 노인의 표정은 미소로 바뀌었다.

‘그려, 나는 좀 늦었지만 첨단 과학기술 덕분에 우리 애들하고 손주 녀석들은 언제 어디서나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의료 환경 속에 살 수 있게 됐고, 덕분에 큰 병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었으니께 얼마나 좋은감. 요즘엔 평균수명이 100살은 될 거라니께 나도 앞으로 30년은 그 덕을 볼 것이고 말이여. 살면 살수록 과학기술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여.’

글 : 김희정 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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