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린 식물은 수동적이고 동물은 능동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식물 역시도 동물과 거의 비슷한 세포조직을 가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고, 비록 느리긴 해도 주위 환경에 따라 치밀한 생존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늪지대의 식충식물처럼 아예 내놓고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도 있고 여름철 담쟁이넝쿨은 게코 도마뱀처럼 엄청난 속도로 담벼락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버드나무 같은 식물은 씨앗을 멀리 날리는 공중전, 몇백 년 세월을 한 자리에서 버텨내는 육상전 그리고 수중전에다 지하대전까지 동물들로선 감히 상상을 초월한 입체 전략을 구사한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겨울나기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동물 중 많은 수가 추위가 닥치면 우선 줄행랑 전법을 구사한다. 철새들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로 순록처럼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식물로서는 이런 전략은 불가능하다. 대신 재빨리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북극권에 가까운 툰드라에는 키 큰 나무는 거의 없고 순록의 주 먹이원인 지의류나 이끼, 작은 들풀만이 사는데, 이들은 겨울철에 겨우 생존만 유지하다가 여름철 잠깐 따뜻해지는 틈을 타 온갖 화려한 꽃을 피워 대지를 갑작스레 수놓아 버린다.

줄행랑 전법 중엔 이런 것도 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거나 장거리 이동에 익숙하지 않은 텃세권을 가진 동물들은, 마치 식물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즉 겨울잠을 잔다. 식물의 겨울철 뿌리와 같이 따뜻한 땅 밑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그렇게 겨울을 보낸다. 동면 쥐나 개구리처럼 완전한 식물 형의 겨울잠도 있고, 너구리나 곰처럼 반 가사 상태로 지내기도 한다. 식물 측에선 겨울철에 바깥에 조금 나와 있는 살아있는 잎인 ‘로제트’를 만드는 질경이나 민들레가 반 가사 상태로 겨울을 나는 식물이라 하겠다. 이들은 따뜻한 기운만 받으면 겨울에도 성장하고 봄엔 어느 식물보다 빨리 성장 가도를 달릴 수가 있다.

체내 순환계의 부동액으로 체액을 얼지 않도록 지키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남극의 차가운 바다에는 펭귄 말고도 다양한 물고기들이 산다. 우리나라에도 유난히 겨울에 활발한 물고기들이 있는데 바로 ‘빙어’이다. 이 남극의 물고기들이나 빙어는 몸 안 순환계에 부동액을 만들어 몸 안 체액이 전혀 얼지 않게 만들 수 있고 영하의 물속에서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 복잡한 순환계를 가진 포유동물로서는 이 부동액성 혈액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채택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식물에선 체액 보존으로 겨울나기는 아주 보편적이다. 소나무나 주목 같은 상록수가 겨울철 내내 푸를 수 있는 것도 기온 하강에 따라 농도 진한 부동액으로 수액 전환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복잡한 신경조직이나 순환조직이 없는 식물로선 계절에 따라 체액조성을 달리해도 생활에 거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 겨울은 얼지 않도록 진하게, 여름은 순환이 잘 되게끔 묽게, 봄에는 에너지가 높은 달짝지근한 수액을 만들어내고 가을엔 낙엽이 지도록 흐르는 양을 살짝 줄이기도 한다.

털이 많은 동,식물들은 털을 이용해 겨울나기를 한다. 북극곰이나 여우는 겨울이 오기 전 이미 따뜻한 털옷으로 단장하고 추위를 이겨낸다. 식물은 어떨까? 물론 이런 단순한 전략은 식물에겐 너무나 평범한 일이다. 목련은 겨울철에 유난히 꽃눈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꽃눈들은 두터운 털옷을 미리 갈아입고 겨울철에 그 속에 커다란 꽃망울을 숨긴 채 포근하게 겨울을 보내다 봄이 되면 일제히 꽃망울부터 터트린다.

꽃눈이 작아서 그렇지 벚꽃이나 개나리 역시 마찬가지다. 마로니에나무도 커다란 꽃눈을 가지고 있는데 겨울철 내내 완벽한 방한이 이루어지는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아교양 물질을 만들어 이 꽃눈을 촉촉이 감싼다. 식물의 꽃눈이나 잎눈은 이미 여름부터 가을까지 준비되고 동물들의 털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고 계절에 앞서 차분히 준비된다. 여름털은 겨울부터 서서히 만들어진다. 생물의 모든 것은 이렇듯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털갈이, 꽃눈 어느 것 하나라도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겨울 이겨내기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바로 건강의 척도다. 건강하지 못한 동식물은 겨울철을 견뎌 낼 수가 없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모든 동식물은 거의 자기 능력의 100% 이상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나기는 이미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여름부터 가을에 거쳐 준비되어야 한다. 청설모는 부지런히 도토리 같은 식량을 모아 두어야 하고, 곰도 평소 잘 먹지 않는 동물성 먹이인 연어를 먹어 몸을 두 배 이상 살찌워야 한다. 고구마나 감자 역시 겨울을 나기 위해 땅속줄기나 뿌리를 급속히 살찌우는 것이지만 인간은 이 식물의 전략을 교묘히 파고들어 식량으로 이용한다.

때론 과감한 희생도 필요하다. 낙엽 활엽수들은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모든 잎을 떨어내야 하고, 들풀들 역시 대부분 땅 윗부분 전체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극단적이 비유 같지만 동물들도 동상으로 썩은 팔다리는 즉시 없애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면 큰 틀에서 동물이나 식물이나 환경에 대처하는 생존 전략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겨울나무를 꼭 껴안아주면 그도 어느 정도 따뜻함을 느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글 :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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