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맨하탄프로젝트의 수장이었음에도 원폭 투하 후 참회의 인생을 살았다는 오펜하이머, 그와 함께 맨하탄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세계 물리학계의 거장 닐스 보어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학은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야누스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 후 인구 증가에 의한 식량 부족을 해결하고 동시에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을 위해 독가스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 프리츠 하버 또한 그러했다.

19세기 유럽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자연스레 유럽에 기존 농업 방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식량문제를 야기했다. 땅속의 질소 화합물은 식물이 자라는 데 필수요소인데, 식량이 더 필요할수록 자연스레 질소 화합물의 양은 줄어들게 된다. 그 시기 이를 대신할 질소화합물은 칠레산 초석이었으나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고 그나마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과학자들은 산화질소라는 화합물을 만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번개가 칠 때 우연히 산화질소(NO)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전기를 이용하면 질소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필요한 전기 스파크 온도가 2,000도~3,000도의 고온이었기에 현실성이 없었다.

이때 과학자들은 공기의 약 80%를 차지하는 질소를 수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방법을 그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 비료를 만드는 방법은 대부분 개발한다 해도 경제성이 없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질화 칼슘과 수소를 고온에서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생산해 내는 방법이 연구 중이었지만 투입되는 양에 비해 생산량이 너무 적어 이 또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5년 하버가 1,000도에서 철을 촉매로 사용해 질소와 수소로부터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대단한 발견이었다. 처음에 하버도 산화질소를 만드는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앞서 말했듯 현실성이 없어서 암모니아를 만드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하버는 암모니아를 만들 때 높은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르 샤틀리에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어떤 반응이 진행된 후 평형상태에 도달하면 더 이상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데 이 평형상태에서 어떤 교란 요소를 가미하면 그 교란 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압력이 증가하면 반응은 압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때 질소와 수소가 차지하는 부피가 암모니아가 점유하는 부피보다 2배가 더 크다. 그러므로 반응은 부피를 줄여서 압력을 줄이는 방향 즉 암모니아가 생성되는 방향으로 일어나게 된다. 즉 높은 압력을 가해서 암모니아의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하버가 생각해 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단한 연구 끝에 촉매를 오스뮴 가루로 바꿔 1,000도에서 500도로 생성 온도를 낮춰 암모니아를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하버는 경제성과 현실성 있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완성시켰다.

이에 힘입어 하버는 한 비료회사와 합작해서 하루 20t 이상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그에게는 인간의 식량난을 해소한 위대한 과학자라는 칭호도 따라 붙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에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물론 그에게는 부도 따랐다. 엄청난 기술료를 비료회사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암모니아 합성법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무기 개발에 활용된 것이다. 핵이 원래는 인류를 위해서였지만 핵폭탄으로 인간에게 해를 주듯 암모니아 합성법도 그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자 독일은 탄약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이 부족하게 되었다. 이때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을 활용해 대량의 질산을 생산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전쟁이 나자 하버는 전쟁을 지원하는 화학부서의 책임을 맡아 무기 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부서에는 TNT 원료와 고성능 수류탄 연구, 탄약의 원료인 질산염 연구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가 진행되었다. 말 그대로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과학자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즉,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암모니아 합성법이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주는 살생용 무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염소를 이용해 독가스를 개발했는데 그에게 ‘독가스의 아버지’라는 오명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독가스 사용은 고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전환하려는 수단으로 독일이 생각해 낸 악수였다. 물론 이 독가스 개발에도 하버의 능력과 조직이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염소는 독성이 강한데다 널리 퍼뜨릴 수 있고 영하 32도가 되어야 액체로 변하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투입이 가능한 강력한 무기다. 이후 하버의 연구진은 포스겐과 비소, 청산을 함유한 유기화합물을 독가스로 활용했는데 이는 염소보다 독성이 훨씬 강했다.

이러한 독가스로 인해 연합군 병사들은 무수히 죽어갔고 전쟁의 향방은 독일의 승리로 매듭짓는 듯했다. 그러나 독일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연합군 측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독가스와 보호 마스크를 개발하여 전투에 임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가스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암모니아 합성법이 두 얼굴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개발자인 프리츠 하버 또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래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답고 싶어 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출세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기독교도가 되었고 독일 국민임을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아내는 자살을 했고 향후에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독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독가스의 아버지’ 답게 향후 전범자 명단에 올라 숨어다니기까지 했다.

결국 그는 스위스의 어느 초라한 호텔방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엄청난 부와 명성, 명예를 얻은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의 말로는 초라했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하버는 전범으로 이름이 올랐고, 인류의 기아를 해결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공은 전쟁이라는 그늘에 묻혀버렸다. 두 얼굴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일생은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글 : 임성아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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