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울 근교 야산에서 마을 주민이 풀로 덮여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시신은 많이 부패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유기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많이 훼손되어 얼굴 형태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신분증이 있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발견된 곳은 풀이 사람의 허리까지 자라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부검 결과 교통사고에 의해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누군가 교통사고를 내고 피해자를 그곳으로 유기한 후 도망한 것으로 보였다.

주변을 지나던 목격자의 신고로 용의차량이 수배되었고 용의자가 잡혔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의 차량에 대한 감정과 동시에 그의 옷 등도 압수되어 정밀한 분석이 실시되었다. 감정 결과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을 할 수 있었는데 물론 목격자의 신고가 큰 역할을 하였지만 더욱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의 옷과 차량에서 발견된 씨앗이었다. 그의 옷과 차량의 깔판에서 쇠무릎의 씨앗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낸 뒤 피해자가 숨진 것으로 판단하여 사고 지점과 가까운 인적인 드문 곳에 피해자를 유기하고 도망친 것이다.

위의 사건과 같이 범인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 또는 범죄에 사용된 차량 등에 식물, 식물편, 씨앗, 꽃가루, 이끼류 등 다양한 형태의 식물류 등이 부착될 수 있다. 피해자 또는 용의자와 관련된 물건에서 채취한 이런 증거물들을 분석하여 현장의 식물 등과 동일성 여부를 감정하거나 연구하는 분야를 수사식물학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분야의 전문가가 거의 없는 형편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었고 관련 전문 서적도 많은 편이며 다양한 사건에서 범죄를 입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위의 사건이 만약 봄에 일어났다면 범인의 옷에는 그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식물의 꽃가루 등이 묻었을 것이다. 꽃가루는 특히 봄에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이들 꽃가루를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면 종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양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범인의 옷 등에 묻은 꽃가루를 채취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어떤 식물의 꽃가루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관찰된 것을 현장에 주로 분포하는 꽃가루의 모양과 비교하면 범인이 그곳에 갔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종자(씨앗)가 옷 등에 잘 달라붙는 경우도 많은데,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쇠무릎 같은 식물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이들의 종자들은 옷 등에 쉽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고 세탁을 하더라도 어딘가에 일부라도 남아 있기 때문에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습한 곳이라면 이끼 등이 항상 존재하는데 범인이 그곳에 접촉을 하였다면, 신발의 틈과 옷 등에 이끼 등이 묻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들을 채취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동일한 종류의 이끼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끼와 관련해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야산에서 자살한 것 같은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여러 가지 분석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자살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수사관은 나무 밑동에 이끼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변사자가 자살을 했다면 그 나무를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그 이끼가 변사자의 신발에 묻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변사자의 신발에서 나무 밑동의 이끼와 같은 종류의 이끼가 발견되는지를 분석 의뢰했다. 감정 결과 그의 신발에서는 나무 밑동의 이끼가 전혀 검출되지 않아 타살로 확신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물론 자살 타살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이 있지만 이러한 감정도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유용한 방법 중 하나이다.

식물의 잎 및 줄기 등의 일부가 발견된 경우는 어떡해야 할까? 가을, 겨울과 같이 잎이 없는 때 또는 이미 말라버린 낙엽 또는 마른 풀에서도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를 알 수 있을까? 이 경우도 어떤 종의 잎 또는 줄기의 일부인지 또는 마른 것일지라도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봄, 여름뿐만 아니라 가을, 겨울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사식물학에도 유전자분석 방법이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다. 식물분류를 위해 DNA 분석이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같은 종 내에서의 개체식별은 그렇게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유전자분석을 통한 개체 식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범죄사건에 적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잃어버린 고가의 소나무를 유전자분석을 통해서 찾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수사식물학은 우리 주위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는 식물류들을 분석함으로써 과학수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범행을 증명하고 범인을 확인하는 과학수사 분석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증거와 모든 분석 결과가 과학수사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글 : 박기원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실장)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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