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비만을 부르는 가을 우울증

 

태연, 우수수 잎을 떨구는 공원의 나무들 사이에서 단박에 아빠를 찾아낸다. 푸짐한 몸집을 감싼 짙은 고동색 바바리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눈에 띈다. 

“아빠! 빨리 집으로 가요. 엄마가 당장 아빠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부끄러운 복장은 무언가요. 흡사, 바바리 입은 까똑 누렁강아지 이모티콘 같단 말이에요.” 

“싫다. 난 집에 가지 않겠어. 이제 나의 길을 가련다. My Way!”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빠가 아무리 바바리를 깃 세워 입고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는다 해도, 엄마의 이상형인 그 프랑스 배우 알랭드롱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이상형이 아니라 이상한 형 같다고요.” 

“넌 모른다. 엄마도 몰라.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몰라요.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 남자의 마음도 쿵하고 함께 떨어진다는 것을. 낙엽이 신발에 밟혀 뭉그러질 때 남자의 심장도 부서진다는 것을.” 

“엄마가요, 아빠가 가을 어쩌구 이상한 얘기를 꺼내시면 그냥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말해 주라고 하셨어요.” 

“음, 틀린 말은 아니야. 계절성 우울증 즉,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는 특정 계절에만 몸이 나른해지고, 기분이 저하되는 우울한 증상이란다. 정신과적인 질환을 앓아본 적 없는 멀쩡한 사람도 약 15% 정도는 가을과 겨울에 이런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2~3% 정도는 계절성 정동장애라는 병명을 갖게 되지. 

“정말요? 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계절에 따른 일조량의 변화 때문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단다. 밝은 빛을 많이 쬐면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같이 행복한 기분을 만드는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데,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확 줄어드니까 당연히 이런 호르몬 분비도 줄어들고, 우울해진다는 거지. 

“아, 그럼 계절성 정동장애는 주로 남자들이 걸리나 봐요? 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진 않아. 계절과 상관없이 여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고, 사춘기 후부터 증가해서 노년이 되면 발병률이 줄어든단다. 또 낮에 햇볕 쬘 기회가 적은 순환근무자들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지. 그런데도 남자가 많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뭐랄까, 가을과 함께 소멸되는 청춘의 생동감이 남자에게 더 치명적인 고통으로 다가오는 거랄까…” 

“그러니까 결론은, 여자가 더 우울한데 남자가 더 오버한다 그거잖아요. 암튼, 남자들은 다 애라니깐. 그런데 단지 조금 우울한 감정일 뿐이고 봄이 돼서 햇빛 쨍쨍해지면 다시 기분이 좋아질 텐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특히 우리같은 비만인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보통의 우울증은 밥맛이 떨어지고 불면증이 오지만, 계절성 정동장애는 정 반대야. 식욕이 급증하고, 특히 달달한 간식에 집착하게 되며, 먹어도, 먹어도 심지어는 먹고 있어도 배가 고픈 증상에 시달린단 말이다. 거기다 잠에 관여하는 멜라토닌이 증가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무기력하고 졸려요. 폭식을 거듭하며 계속 잠을 잔다면 어떻게 되겠니. 당연히 비만인이 되겠지! 그리하여 내년 봄 햇빛이 쨍쨍해질 때 우울한 기분은 사라질지 모르나, 비대해진 몸매는 사라지지 않는 비극을 겪게 된단다.” 

“헐! 여태 들어본 병 가운데 가장 악독한 병이에욧! 계절성 정동장애는 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단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도록 볕을 많이 쬐는 게 좋단다. 병원에서도 밝을 빛을 쪼여주는 광치료를 주로 하고 있지. 또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볕이 좋은 날 야외 운동을 하면 가장 좋겠지.” 

“아, 그래서 아빠도 햇볕을 쬐려고 공원에 나오신 거였구나.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모셔올 때, 꼭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그게 뭔데?” 

“바바리코트 안쪽에 가득 품고 있을 초콜릿을 먼저 압수하라고 하셨어요. 계절성 정동장애 때문에 단것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진 아빠가, 엄마한테 뺏기지 않고 혼자 초콜릿을 다 드시려고 몰래 공원에 나간 게 틀림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어디 한 번 검사해 볼까요?” 

태연, 아빠 코트를 확 열어젖힌다. 종류별로 쏟아지는 수십 개의 초콜릿! 

“헤헤, 딱 걸리셨네요. 엄마한테 눈감아 드리는 조건으로 반반 나누는 건 어떠실지…?”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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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배고픔에 지는 당신, 참아라!


여름을 앞두고 다이어트 돌입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식욕은 마음처럼 줄지 않는다. 든든히 밥을 먹고 후식까지 챙겨먹었지만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출출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막상 군것질을 하고 나면 배부르다는 행복감보다 괜히 먹었다는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바로 ‘가짜’ 배고픔에 속았을 때다. 

우리 뇌의 시상하부는 몸에 필요한 에너지(열량)가 부족하면 ‘배고픔’이라는 신호를 보내 음식물 섭취를 유도한다. 문제는 열량이 부족하지 않을 때도 뇌가 배고픔의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는 것. 하지만 가짜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은 원인과 증상이 다른 만큼 차이점만 잘 알아만 둔다면 오히려 가짜 배고픔을 이용해 보다 효과적으로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다. 

■ 스트레스 받아도 배가 고프다 

가짜 배고픔의 대표적인 속임수는 ‘당’이다. 혈중 당분이 떨어지면 우리 몸은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혈당이 떨어졌다는 의미가 열량 부족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순간만 이겨낸다면 쌓여있는 지방을 효과적으로 태울 수 있다. 체내 혈당이 떨어지면 우리 몸은 먼저 간이나 근육에 축적된 글리코겐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쓰다가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를 마련한다. 지방 분해 단계에 접어들기까지는 대략 한 시간.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바로 음식을 먹으면 혈당은 올라가고 지방은 그대로 쌓여 오히려 살이 찐다. 

스트레스도 가짜 배고픔을 유발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울적해지면 체내 세로토닌의 수가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교감신경에 작용해 혈압과 호흡 횟수를 늘려 우리 몸에 활기를 주고 기억과 학습능력을 비롯해 소화나 장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로토닌이 떨어지면 우리 몸은 피드백 작용에 따라 세로토닌의 분비량을 늘리려고 한다. 이 때 우리 몸이 사용하는 방법이 배고픔이다. 특히 단 음식을 찾게 하는데 이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세로토닌은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통해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트립토판이 뇌에 도달하려면 인슐린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의 분비를 유도하기 위해 혈당을 높이는 단 음식을 찾게 뇌에서 신호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데 코르티솔은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량을 감소시켜 식욕을 돋운다. 폭식증 환자 중에는 만성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과다 분비된 코르티솔이 끊임없이 식탐을 부르고 배고픔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상황 자체도 가짜 배고픔을 만든다. 우리 몸은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아도 평소 섭취하는 열량보다 조금만 적게 먹으면 이를 채우기 위해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에너지 부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순간을 이겨내다 보면 어느 새 우리 몸도 변화에 적응하면서 더 이상 배고픔의 신호를 보내지 않게 된다. 

푸짐한 안주를 먹고도 과음 뒤에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가짜다. 술은 위와 장에서 흡수돼 간에서 해독작용을 거친다. 간은 해독작용 외에도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변화시켜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과음을 하게 되면 간이 해독작용으로 바빠지면서 포도당을 만드는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자연히 혈당은 떨어지고 뇌는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지만, 이 역시 일시적인 현상이다. 이 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과식으로 이어지면 비만을 유발하는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음주 후 배고픔이 느껴질 때는 야식보다 꿀물이나 초콜릿 등으로 당분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 식후 3시간, 특정 메뉴가 먹고 싶다면 ‘가짜’ 배고픔 

가짜와 진짜 배고픔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고프다고 느낄 때 내 몸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다. 진짜 배고픔은 배고픈 느낌이 서서히 커지면서 속이 쓰리거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살짝 어지럽거나 가벼운 두통, 기분이 쳐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정 음식보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상관없다 느끼고 먹고 나서는 만족과 행복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 가짜 배고픔은 슬프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 느끼는 경우가 많고 초콜릿처럼 달거나 떡볶이처럼 매운 것과 같은 특정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또 배가 불러와도 계속 먹으려고 하고, 먹은 뒤에는 행복감보다 공허함과 자책감이 밀려오는 경우가 많다. 

증상으로 구분이 어려울 때는 물을 한 컵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식사한지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배가 고프다면 물을 한 컵(약 200mL) 마셔보자. 물을 마시고 20분 후에도 여전히 공복감이 있다는 이는 진짜 배고픔이다. 

■ 가짜 배고픔에는 오히려 강도 높은 운동과 고단백 식사가 도움 

가짜 배고픔을 이겨내는 방법에는 무엇보다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생활 습관의 변화로도 약간의 도움은 받을 수 있다. 우선 가짜 배고픔을 느꼈을 때, 짧은 시간에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엔도르핀뿐이다. 엔도르핀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우리가 통증을 느낄 때 진통제 역할을 한다. 유산소 운동보다는 스쿼시나 축구, 농구처럼 강도 높은 운동을 짧은 시간에 할 때 많이 분비된다. 

단백질 섭취도 중요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논문을 살펴보면 총 칼로리는 같게 하면서 각각 단백질과 탄수화물, 불포화지방산을 강화한 식단을 각 실험군에게 6주간 섭취하게 했다. 그 결과, 단백질을 강화한 식단을 먹은 실험군이 다른 두 식단을 유지한 실험군에 비해 식욕 억제 효과가 두드러지게 높았다. 

체중 조절이 날씬한 몸매를 뽐내고자 할 때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비만은 만성질환의 위험 인자로 꼽히는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가짜 배고픔에 조금은 단호하게 대처해 보는 건 어떨까. 효과적인 체중감량은 물론 더 건강한 삶을 사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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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꽃 피는 봄, 만개하는 우울증

 


태연과 아빠 멍~한 표정으로 창가에 턱을 괴고 아파트 뒷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바라본다. 은은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이고, 휘잉~ 바람이 불자 꽃잎 하나가 창문 안으로 살랑대며 들어온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봄날이다. 그러나 태연과 아빠, 표정이 영 어둡다.

“딸아, 꽃이 폈구나.”
“그러게요.”
“벚꽃이구나.”
“그러니깐요.”
“넌 왜 기분이 엉망이냐?”
“아빠는 왜 우울하세요?”

“이게 다 계절 탓이지. 원래 봄이 되면 우울증이 많이 발병하거든. 건강보험공단이 최근 4년(2009~2012년)간 우울증으로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2~3월에 가장 환자가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구나. 또 통계청 발표를 봐도 4~5월 자살률이 제일 높고. 암튼 봄이 우울을 부른다는 얘기지.”

“헐. 날 따뜻해지고 꽃피면 기분이 좋아져야지, 도대체 왜 더 엉망이 되는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의사들도 도통 그걸 모르겠다는구나. 흔히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해진다고 하는데, 세로토닌은 일조량이 많을수록 분비가 활발해지거든. 그렇다면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치기 시작할 때 겨울철 우울증도 슬슬 사라져야 한다는 건데, 거꾸로 더 우울한 사람이 많아지니 의사들도 답답할 노릇이겠지.”

“전,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저보다 백만 배는 못생긴 말숙이는 삼시세끼 진수성찬 차려줄 거 같은 차승원 아저씨 닮은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꽃미모인 저는 12년 평생 모태솔로라는 게 기막혀서 우울한 거예요. 거기다 날씨는 왜 또 이리 화창한지, 더 꿀꿀해요.”

“그래, 의사들도 그런 말을 하더구나. 계절은 더없이 화려해지는데 자신만 초라한 거 같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우울한 것일 수 있다고 말이야. 또 계절이 바뀌면서 감정기복이 심해진 탓일 수도 있고, 진학·취업·승진과 같은 자꾸만 생겨나는 새로운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는 구나. 원인은 명확치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울증 급증이 심각한 문제라는 거야. 의욕과 집중력이 떨어져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건 물론이고, 소화불량과 체중증가, 수면장애…, 심하면 자살시도까지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헐, 몸무게까지 늘어난다고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에요! 아빠, 이 망할 놈에 우울함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제일 좋은 건 햇볕을 쬐는 거지. 하루 30분 이상 따뜻한 볕을 쬐며 산책을 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져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구나. 또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즐거운 거리를 만들거나, 편한 사람과 신나게 수다를 떠는 것도 도움이 되지. 그리고 무엇보다 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란다.”

“엥? 뇌 건강에 좋은 음식이 따로 있어요?”

“그럼, 우울증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에 염증이 있는 경우가 30% 정도 많은 데, 이 염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들이 따로 있단다. 미국의 건강정보 사이트 ‘에브리데이헬스닷컴(Everyday Health.com)’이 밝힌 염증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보면, 가장 좋은 건 녹색잎채소라는 구나. 시금치, 케일 같은 초록색 채소는 염증 치료 효과가 뛰어나고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것까지 막아주지. 또 식물 중에서 오메가-3 지방산을 가장 많이 함유한 호두나 뇌에 좋은 지방이 다량으로 들어있는 아보카도 그리고 각종 베리류, 버섯, 양파, 마늘, 토마토, 콩류도 도움이 된단다.”

“음…, 피자와 치킨이 빠져있는 게 흠이긴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음식 위주로 먹어볼게요. 그런데 과연 엄마가 이런 재료로 요리를 해줄까요? 엄마도 요즘 우울함이 상당하시던데요. 리모컨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 홈쇼핑 채널만 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러게 말이다. 아빠도 지금 그것 때문에 지금 기분이 엉망이야. 엄마가 우울하니까 홈쇼핑에 빠져 매일같이 택배가 오고, 아빠 지갑은 점점 얇아지고, 우울한 마음에 자꾸 먹었더니 배는 남산만 하게 불러오고, 이 꽃다운 계절에 나 혼자 살찌는 거 같아서 더 우울해지는…, 흑, 악순환이야. 딸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음, 이럴 땐 솔직한 게 최고죠. 엄마~아! 아빠가 엄마 때문에 우울해 죽겠대요! 아빠 배 나온 것도 다 엄마 때문이고, 엄마는 완전 쇼핑중독녀래요!!”

“태…, 태연아!”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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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풀무치가 거무스름한 황충으로?!


자연이 별다른 심술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따갑던 여름 햇살이 비켜나간 자리에는 여름내 햇살을 듬뿍 머금고 자란 황금 들판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전남 해남군 일대 간척지에서는 움직이는 시커먼 물체들이 황금 들녘의 빛을 잃게 만들 만큼 대규모로 출현해 농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게 만들었다. 이들은 차라리 재앙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대규모로 출몰해 가을걷이를 앞둔 논밭의 생명력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이러한 악몽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풀무치의 약충이었다.

풀무치(Migratory Locust)는 메뚜기목 메뚜기과 풀무치속에 속하는 곤충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다. 풀무치는 1년에 한 번 번식을 하며, 짝짓기 후 암컷은 긴 삽 모양의 산란관을 땅 속 깊숙이 밀어 넣어 여러 개의 알주머니를 낳은 뒤 생을 마감한다. 변온동물인 곤충에게 추운 겨울은 그야말로 혹독한 계절이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알의 상태로 겨울을 넘기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리고 이듬해 초여름에 깨어난 풀무치는 7월에서 10월 사이에 성충으로 자랐다가 다시 번식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일생을 반복한다.

메뚜기목에 속하는 다른 동료들처럼 알에서 깨어난 풀무치 유충은 몇 번의 탈피 이후 번데기 상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성충이 되는 불완전 변태를 한다. 이렇게 불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들의 유충을 약충(nymph)이라고 한다. 즉, 이번에 해남 지역에 나타난 괴생명체의 정체는 아직 성충이 되기 전 단계인 풀무치의 약충 떼였던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들의 유충은 크기만 약간 작고 날개가 온전하지 않을 뿐 겉모습은 성충과 거의 유사하다. 게다가 풀무치 자체가 다 자라면 몸길이가 5~7cm에 달할 정도로 제법 큰 곤충이기 때문에 약충이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원래 풀무치는 ‘풀’+‘묻히다’, 즉 풀 속에 묻혀 있는 듯 보인다는 이름처럼 초록색을 띈다. 풀빛을 닮은 풀무치 몸의 색은 천적인 새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보호색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알들의 부화율이 높아져서 약충과 성충들의 개체 밀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몸의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색이 변하고 군집을 이룬 풀무치는 황충(蝗蟲)이라고 해 이름도 달리 불리는데, 이때의 황충은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악몽에 가까운 재앙을 의미하는 이름이 된다.



풀무치는 단독 생활을 할 때는 몸빛이 녹색(왼쪽)이지만, 군집을 이루게 되면 몸의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식욕이 증가한다(오른쪽).




보통 황충 무리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천억 마리에 이르는 개체수를 자랑한다. 이들 각각은 하루에 자신의 몸무게의 2배에 달하는 양을 먹어 치운다. 그래서 황충떼가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마치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듯이 황폐화되기 십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황충의 출현은 오래전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다. 성경에는 모세가 동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에 이 지역에 내려진 10가지 재앙 중의 하나로 황충의 습격이 등장한 바 있으며, 1784년 남아프리카에서는 3천억 마리의 황충이 3,000㎢의 농지를 초토화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무엇 때문에 평범하게 풀숲에 숨어 있던 초록색 풀무치들이 일순간에 시커멓고 무시무시한 약탈자로 변모하는 것일까?

황충으로 인한 피해의 역사가 길고 광범위하듯이 이들의 행동 패턴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행해졌다. 그 중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학 연구팀은 황충의 변신을 유도하는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연쇄 반응을 유인하는 촉매제)는 바로 ‘밀도’라는 것을 알아낸 바 있다. 이들은 일정한 실험 구역 내에 메뚜기과에 속하는 곤충들을 풀어 넣고, 이들이 밀도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연구했다. 개체수가 적고 밀도가 낮을 때는 이들은 각자 행동하며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나,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 이들의 밀도가 1㎡당 20마리가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식욕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1㎡당 20마리의 개체 밀도가 이들의 ‘임계(臨界) 전환점’이며, 이는 곧 메뚜기과 곤충들에게 황충으로 변신하라는 일종의 명령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임계 포인트를 넘어가면 이들의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에, 온순했던 이들이 황충으로 변모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이 내놓았다. 이들은 메뚜기과에 속하는 사막메뚜기를 연구한 끝에, 이들이 사는 곳이 유난히 건조해지면 먹잇감이 부족해진 메뚜기들은 아직 먹을 만 한 풀이 남아 있는 장소로 이동하다가 한 곳으로 모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부딪치거나 냄새를 맡는 것과 같은 접촉이 이루어지면, 이것이 자극제가 되어 체내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로토닌(serotonin)은 인간의 뇌에서도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세로토닌은 극단적인 흥분과 부정적 감정을 조절해 평상심을 유지하고 상쾌한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며 공황장애나 불안 장애, 섭식 장애와 같은 심리학적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연구팀은 사막메뚜기의 숫자가 임계 전환점을 넘어가도 세로토닌 분비를 억제시키는 약물을 이용하면 이들이 비교적 온순한 단독형 메뚜기로 남아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개체수가 임계 전환점 이하일지라도 세로토닌을 외부에서 주입하면 집단을 이루며 황충의 특성을 보이도록 변모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즉, 메뚜기과 곤충들의 집단행동과 황충으로의 변모 뒤에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황충의 형성 매커니즘을 밝혀,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지난 2014년 8월 말, 해남 지방에서 발생했던 풀무치떼는 다행히도 친환경 방제제를 이용해 일단 더 큰 피해는 막았다. 하지만 작년의 갈색 여치 출몰에 이어 풀무치까지, 최근 몇 년 새 황충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재앙의 전조가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한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개체 수 증가의 원인으로는 마른장마로 인해 알의 유실이 감소돼 부화율이 높아진 것과 친환경 농법의 확산으로 곤충의 생존 조건이 좋아진 것, 곤충의 천적인 새들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 등이 지목되고 있다.

풀무치의 생존 한계인 10월이 시작됐으니 곧 가을바람과 함께 이들의 개체 수는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원인 파악과 그에 대한 대비책이 불명확하다면 앞으로 이들이 또다시 출현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풀무치에 대한 생활사나 습성에 대한 연구로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평범한 풀무치의 날갯짓이 대재앙의 전조로 이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동시에 황금빛 들녘의 풍성함을 지켜 농부들의 얼굴에 근심이 서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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