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벨 과학상의 주인공은 누구?

매년 10월이면 전 세계인과 연구자들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행사가 열린다. 특정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거나 중요한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을 골라서 거액의 상금을 전달한다. 선정위원이 모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각국에서는 기쁨의 박수와 아쉬움의 한숨이 뒤섞인다. 시작된 지 114년이나 됐지만 갈수록 인기와 권위가 동시에 높아지는 이 행사의 주인공은 바로 ‘노벨상’이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이 만들었다. 노벨은 거대한 폭발력을 가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바람에 ‘죽음의 상인’이라고도 불렸다.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던 그는 재산의 90% 이상을 노벨상 제정과 수상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 5년이 지난 1901년부터 물리학, 생리의학, 화학 등 과학 분야와 문학, 평화를 합쳐 5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스웨덴 중앙은행이 경제학상을 추가 제정하면서 이제는 매년 10월이면 6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을 선정해 12월 시상식에서 각 10억 원이 넘는 상금을 전달한다. 

올해 노벨상은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이, 마지막으로 12일에는 경제학상이 결정됐다. 선정일이 다가올수록 각국 언론에서는 예상 수상자를 점찍어두고 분석 기사와 관련 자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하루하루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곳곳에서는 환호와 탄식의 목소리가 교차됐다. 

노벨상 중에서 과학 분야의 수상자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생리의학상은 투유유 중국 전통아카데미 주임교수, 오무라 사토시 일본 키타사토대학교 명예교수, 윌리엄 캠벨 미국 드류대학교 명예연구원 등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저개발국가에서 주로 유행하는 감염성 질환을 퇴치하는 성분을 찾아낸 공로가 인정됐다. 투유유 교수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오무라 사토시 교수와 윌리엄 캠벨 연구원은 사상충증과 림프사상충증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말라리아는 주로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데 전체 환자 수가 2억 명을 넘고, 사망자만 매년 수백 만 명이 넘는다. 환자의 90%가 아프리카에 거주하고 80%가 5세 이하일 정도로 경제적 취약계층을 주로 괴롭히는 질병이다. 투유유 교수는 길가에 흔하게 피어나는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신 성분을 추출해내 중국 남부와 베트남의 말라리아 확산을 막았다. 박사학위도 없고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데 고대 의학서적 속 전통재료를 연구한 것만으로 노벨상을 받아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흑파리에게 물려서 기생충이 감염되는 사상충증도 피해자 대부분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동에 거주한다. 사상충이 눈의 망막으로 침투해 시력을 잃기도 하고 림프사상충이 온몸에 퍼져 팔다리가 붓고 피부가 썩어 들어가기도 한다.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집 근처 흙 속에 사는 스테렙토마이세스 박테리아에서 50여 가지의 항생제 원료를 얻어냈다. 당시 미국 제약회사 머크(Merck&Co., Inc.) 소속이었던 윌리엄 캠벨 연구원은 그중 이버맥틴이라는 성분이 기생충 감염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저렴한 가격의 사상충증 치료제를 개발해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물리학상은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와 아서 맥도널드 캐나다 퀸즈대학교 교수가 함께 받았다. 이들은 우주의 기본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성미자는 타우, 뮤온, 전자 등 3가지 종류가 있으며 1cm3 공간에 초당 1천억 개가 지나갈 정도로 우주 어느 곳에든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고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도 하지 않아 물체에 부딪혀도 튕기지 않고 그대로 통과해 지나간다. 그래서 질량은커녕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일도 어려워서 유령입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지타 교수는 1km 깊이의 지하에 설치된 슈퍼가미오칸데 검출기를 이용해 1998년 중성미자 간의 관계를 밝혀냈다. 지구 대기권 내에서는 중성미자가 뮤온과 전자의 두 상태 사이에서 계속 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맥도널드 교수는 캐나다 서드버리 관측소에서 중성미자의 변환을 확인했다. 태양의 핵융합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중성미자가 지구에 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중간에 상태가 바뀌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중성미자가 직접 검출되지 않는다면 상태가 바뀐 것이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중성미자는 우주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지금도 매초마다 수십 조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생활한다. 중성미자의 비밀을 풀어낸다면 지금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연구 성과와 새로운 개발품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측된다. 

화학상은 토머스 린달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명예소장, 폴 모드리치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 아지즈 산자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 등 3인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일부 손상된 DNA가 스스로를 치료하는 과정을 밝혀낸 덕분에 유전자 차원에서 암을 치료하는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네 가지 염기체의 서열에 의해 특성이 달라진다. 어떤 순서로 결합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DNA의 염기체는 태어날 때부터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독성물질에 노출되거나 가혹한 환경에서 거주할 경우 DNA가 손상돼 각종 질병이 생기고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린달 소장은 DNA 스스로 잘못된 염기체를 잘라내고 새로운 염기체로 대체하는 현상을 발견했고, 모드리치 교수는 한 쌍으로 이루어진 DNA가 서로의 염기체 중에서 짝이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는 현상을 규명했다. 산자르 교수는 자외선으로 손상된 DNA는 염기체뿐만 아니라 뉴클레오티드 성분까지 복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 전체의 거대한 시각에서 수상자들의 연구는 하나의 조그만 성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난치병 극복과 우주의 기본구조 규명이라는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줬다. 올해도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학문 자체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저절로 영예가 주어지지 않을까.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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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노벨 화학상, 컴퓨터 프로그램이 주역?

2013년 노벨 화학상은 복잡하고 큰 분자의 화학반응을 컴퓨터에서 계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생화학 및 화학과의 아리에 워셜 교수를 비롯해 하버드대 화학과의 마틴 카플러스 교수, 스탠퍼드대 구조생물학과의 마이클 레비트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특별히도 이번 수상자 중 아리에 워셜 교수는 지난 10월 28~29일 고려대에서 진행한 미래과학콘서트에 초청돼 국내 예비 과학도들과 뜻깊은 만남을 갖기도 했다.

세 과학자는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도 고분자의 움직임과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참(CHARMM)’을 개발했다. 참은 화학은 물론 생명과학과 소재공학 분야에 실로 큰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이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기에 노벨 화학상의 영광을 안겼을까.

포켓볼 열다섯 개가 당구대 위에 놓여 있다. 큐대를 들어 흰 공을 치면 열다섯 개 공이 어떻게 움직일까. 분자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원자들은 당구대 위의 포켓볼처럼 복잡하고 어지럽게 움직인다. 수천, 수만, 때로는 수백만 개의 공이 3차원 공간에 놓여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X-선 회절기, 핵자기 공명 분광기, 극저온 고성능 전자현미경 등 실험기기가 개발되면서 간단한 결정과 나노 구조체는 물론 단백질이나 핵산 같은 복잡한 생체 분자의 구조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포켓볼로 치면 처음에 공이 놓인 위치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을 쳤을 때 전체 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다. 분자의 구체적인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전체 원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예측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분야에서 첫 번째 큰 업적이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과의 존 포플 교수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의 월터 콘 교수가 만든 ‘가우시안’이다.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양자화학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분자구조만 알면 가우시안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전자들의 상태와 에너지를 쉽게 계산할 수 있어 지금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개발자들은 19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우시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양자역학으로 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원자가 100개 이하인 경우에만 문제를 풀 수 있다. 생체 분자 중에는 원자가 수만 개 이상인 고분자가 수없이 많다. 이런 고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1970년 하버드대 카플러스 교수 역시 이런 새로운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 카플러스 교수는 산소 분자와 헤모글로빈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었다. 헤모글로빈은 9,500여 개의 원자를 가진 고분자다. 헤모글로빈과 산소가 결합할 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지만, 기존 가우시안으로는 불가능했다.

카플러스 교수는 고분자 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를 방문했다. 당시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분자가 상호작용할 때 생기는 포텐셜 에너지 변화를 연구하고 있던 워셜 교수는 양자역학과 뉴턴역학을 프로그램에 나눠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전자인 파이(π) 전자에는 양자역학을 적용해 분석하고, 원자 간 결합에 이용되는 시그마(σ) 전자와 원자핵에는 고전물리학의 뉴턴역학을 적용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1972년 카플러스 교수와 워셜 교수는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 분석방식을 발표했다. 이번 화학상의 업적인 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라이소자임 반응을 연구한 레비트 교수와 워셜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1976년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분자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모델을 발표했다. 이로써 닫혀있던 새장을 활짝 열어준 것처럼 참은 훨씬 광범위한 연구분야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즈음이면 참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 이름이 없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고만 불렸다. 참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붙은 건 1983년 카플러스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현재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연구실에서 참을 사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부터 단백질이나 핵산, 생체막과 같은 생체 분자 연구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탄소나노튜브와 같은 나노 구조체의 분자 모델을 만들거나 실리콘 웨이퍼의 증착 반응을 연구하는 데도 참은 꼭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컴퓨터 안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필자를 비롯해 하버드대 카플러스 교수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과 연구원 대부분이 참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참의 초기 버전을 발전시켜 앰버(AMBER), 그로모스(GROMOS), 엑스-플로어(X-PLOR)와 같은 분자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유사한 프로그램들의 기초를 제공했다. 현재까지 연구자 80여 명이 소스코드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고, 50여 개 연구실이 참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참 개발 회의에서 참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있다.

컴퓨터가 발전하는 만큼 참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연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70년대 중반에는 원자 892개로 이뤄진 BPTI라는 효소 억제제를 연구했다면 지금은 원자 10만 개가 넘는 리보솜을 연구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한양대는 미국국립보건연구소와 하버드대, 미시간대와 함께 참을 개발하고 유지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필요한 경우 분자를 적절히 분할한 다음 병렬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분산처리 할 수 있는 코드가 이미 개발돼 있다. 공동 연구를 통해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코드를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은 컴퓨터 메모리가 허용하는 한 분자계의 크기에 제한받지 않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다. 유기체의 모든 원자들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물분자, 이온까지 포함해 실제에 가깝게 분자들의 화학반응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DNA 합성효소, RNA 합성효소, 이온 채널, ATP 분해효소와 같은 인체 내 다양한 생명 반응 또한 연구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하면 세포 내 소기관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 연구에도 참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참이 앞으로 또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글 : 원영도 한양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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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연구 이그노벨상, 올해의 주인공은?

“Please Stop, Im bored!(그만둬요, 너무 지루하다고요!)”

8살 남짓한 여자 아이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연구자에게 다가와 두 마디의 말을 날린다. 주어진 60초의 시간을 모두 썼으니 멈추라는 의미다. 시상식장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고, 당황한 수상자의 반응은 웃음소리를 더 키운다. 재밌고 기발한 연구를 골라 상을 주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다운 장면이다. 연구자가 수상소감을 그만둘 때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스위티 푸(Ms. Sweetie Poo)’의 활약은 매년 행사를 더 즐겁게 만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위티 푸와 함께 신나는 이그노벨상이 돌아왔다.

미국 하버드대의 잡지, ‘기발한 과학 연구(AIR)’는 2013년 9월 12일 하버드대 선더스 극장에서 제23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을 열었다. 수상 목록을 보면 황당하고 우습지만 이런 연구가 영 엉터리는 아니다. ‘처음엔 사람들을 웃기지만, 그런 뒤에 생각하게 하는(first makes people laugh, and then makes them think)’ 연구라는 원칙으로 선정되기 때문이다.

올해 심리학상을 수상한 연구는 일상과 가까운 ‘술’에 대한 연구라 더욱 흥미롭다. 우리는 흔히 술을 마시면 안 예쁘던 여자도 매력적이고, 못 생겼던 남자도 멋져 보인다고 말한다. 이른바 ‘비어 고글(beer goggle)’ 현상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로랑 베규(Laurent Bègue)와 미국의 브래드 부시맨(Brad Bushman) 등으로 이뤄진 공동 연구진은 이와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놨다. ‘술 취한 사람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술 취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발표하게 했다. 그러자 맨 정신일 때보다 훨씬 똑똑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게 드러났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술에 취하면 사랑을 고백하기 쉬운지도 모른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의학상은 심장을 이식한 쥐에 오페라를 들려준 일본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그냥 두고, 다른 쪽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들려줬다. 그 결과 음악을 듣지 않은 쪽은 평균 1주일 뒤에 죽었지만 오페라를 감상한 쪽은 3주 넘게 살았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음악이 동물의 면역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상식장에서 이들이 생쥐로 분장하고 ‘라 트라비아’를 부르는 바람에 관객들은 더 크게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만 선정되는 노벨상과 달리 이그노벨상은 사망한 과학자에게도 주어진다. 올해 안전공학상을 받은 미국의 발명가 구스타노 피조(Gustano Pizzo)도 2006년 타계한 사람이다. 그는 비행기 납치범을 낙하산에 묶어 경찰에게 내려 보내는 방법을 고안해 1972년 미국 특허를 받았는데, 이것이 올해 안전공학상 부분에 뽑혔다.

이 시스템은 납치범을 함정에 빠뜨린 뒤 캡슐에 넣고 비행기 밖으로 떨어뜨리도록 설계됐다. 캡슐은 추락하면서 전파를 보내 현재 위치를 알리고 낙하산을 펼쳐 무사히 착륙한다. 그러면 미리 도착한 경찰이 캡슐 속 납치범을 체포하게 되는 것이다. 특허를 받은 지 한참 지났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피조의 발명품은 이그노벨상 덕분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을지 연구한 이탈리아 알베르토 미네티(Alberto Minetti) 교수팀은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 중력(중력가속도 9.8㎨)의 16% 정도인 달의 중력에서 사람이 물갈퀴를 부지런히 구르면 물에 빠지지 않는다. 만약 달에 호수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는 결과보다 실험 과정이 재미있다. 사람을 인공장치로 매달고 물갈퀴를 신겨 어린이 수영장 수면 위에서 직접 달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인공장치는 줄의 세기를 조절해 중력을 줄였고, 물갈퀴는 가라앉기 전에 물을 박차는 데 도움을 줬다. 중력을 줄여 가벼워진 인간은 바실리스크도마뱀처럼 수면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건 ‘말도 안 된다’고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이 연구가 보여줬다.

화학상은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 나는 이유를 보다 자세히 밝힌 일본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지만 연구자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덕분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양파의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마지막 단계를 담당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괜한 수고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논문은 네이처에 실릴 정도로 학술적인 의미를 인정받았다.

앉아 있는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는 시간을 측정한 연구는 확률상을 받았다. 영국의 버트 톨감(Bert Tolkamp) 박사팀은 암소 73마리의 다리에 센서를 붙이고, 앉았다 서는 변화를 컴퓨터로 측정해 통계를 냈다. 그 결과 암소는 누운 지 15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일어설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서 있는 암소가 언제 누울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호기심을 채우려 너무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연구는 암소의 발정이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데 쓸모 있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이그노벨상 취지에 꼭 맞게 우습지만 의미 있는 연구인 셈이다.

생물학-천문학 통합상을 받은 주인공은 쇠똥구리를 연구한 스웨덴의 마리 데크(Marie Dacke) 박사팀이다. 쇠똥구리는 주로 일직선으로 움직여 자신이 만든 쇠똥경단을 빠르게 옮기는데, 이때 태양이나 달을 보고 방향을 찾는다. 그렇다면 달이 없는 밤에는 어떻게 할까. 데크 박사팀은 이런 상황에서 쇠똥구리가 은하수를 기준으로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자들은 쇠똥경단을 닮은 커다란 공을 가져와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고학상에는 캐나다의 브라이언 크랜달(Brian Crandall) 박사팀의 연구가 뽑혔다. 연구 목적은 포유동물이 어떤 뼈를 소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인데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다. 실험 참가자에게 설익은 뾰족뒤쥐를 삼키게 한 뒤 분변을 받아 어떤 뼈가 나왔는지 조사한 것. 이 결과로 인류 거주지에 남은 뼈 화석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받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공중보건상은 잘린 음경을 다시 붙이는 수술을 선보인 태국 의료진에게 돌아갔는데, 이 또한 이그노벨상다운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평화상은 2011년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금지한 벨라루스 대통령(알렉산드르 루카셴코)과 손이 하나뿐인 남성을 체포한 남성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시상식장에서는 한 팔을 몸에 붙인 채 두 사람이 나머지 한 손만으로 박수를 치려 낑낑대는 장면이 연출됐다. 물론 이건 평화상을 받은 두 사람을 비꼰 행동이다.

올해 수상자들은 상금으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 원)를 받는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하지만 기준 화폐가 미국 달러가 아닌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한바탕 크게 웃겼다. 짐바브웨 달러는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경제개혁 실패로 화폐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2009년 사용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를 우리 돈 4,000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으니 10조 짐바브웨 달러는 많은 돈이 아닌 것이다.

연구결과뿐 아니라 시상식 전체를 소소하게 재미와 기발함으로 무장한 이그노벨상. 널리 알려진 것을 거꾸로 보고(심리학상), 더 깊게 파고들고(화학상), 쓸데없어 보이는 생각을 발전시키는(물리학상) 등의 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어떤 발상도 하찮은 건 없다. 중요한 건 어떤 눈으로 보고 대하느냐다.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발상이지만 도전해서 성과를 이뤄낸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자세를 배운다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일궈낼 수 있지 않을까.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2013 이그노벨상 수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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