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열공포, 해열제로 해소되나?!

아이를 둔 많은 부모들이 늘 해열제를 집에 구비해 둔다. 아이가 열감기에 걸렸을 때 체온이 급격히 올라 행여 경기를 일으키거나 뇌가 손상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한 모습이지만, 사실 이는 부모의 ‘발열공포’에서 비롯되는 부적절한 행동이다. 지나친 해열제 사용은 아이의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아이를 더 괴롭게 할 수도 있다. 

■ 직장체온 39℃ 미만은 대개 치료가 필요 없다 

열이 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정상적인’ 면역반응이다. 우리 몸이 바이러스나 세균 등에 감염되면, 면역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열이 난다. 바이러스 감염은 대개 미열이 2~3일간 지속되고 세균 감염은 고열이 3일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열이 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면역세포에서 분비된 ‘사이토카인’이 뇌혈관 세포에 작용한다. 여기서 몇 가지 효소가 만들어지는데, 이 효소들이 작용해 ‘프로스타글란딘 E2’라는 물질을 합성한다. 이 물질이 뇌 조직 속으로 확산되면, 체온조절중추가 자극돼 체온이 오른다. 감염됐을 때 체온이 오르는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몸이 바이러스나 세균과 싸우는 과정에서 화학적으로 열이 난다는 가설이 있고, 일부 연구자는 “백혈구나 면역 세포가 체온이 적당히 상승한 환경에서 더욱 활발한 항균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열제는 어떤 원리로 열을 내리는 걸까. 해열제는 몸에 열이 나게 하는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 E2의 생산을 억제한다. 열과 통증, 그리고 식욕부진과 같은 증상이 동시에 완화된다. 하지만 증상을 완화시킬 뿐, 열이 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을 치료하는 건 아니다. 

만성질환이나 선천성 장애가 없고 평소 건강한 아이가 직장체온이 39℃ 미만이라면 대개 치료가 필요 없다. 직장체온이란 항문에서 6cm 이상 들어간 곳에서 측정한 온도로, 직장체온을 표준체온으로 정했지만 항상 이렇게 잴 수 없어서 겨드랑이나 귀 온도를 대신 측정한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38.3℃ 이하의 미열이면 특별한 처치를 하지 않고 기다려도 된다. 체온이 41℃를 넘어가면 ‘고체온증’으로 반드시 즉각적으로 처치해야 하지만, 대개는 시상하부가 체온을 잘 조절하기 때문에 41℃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36개월 미만의 영유아는 얘기가 다르다. 면역기능이 미숙하기 때문에 발열 초기라도 심각한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3개월 미만의 아이가 38℃ 이상인 경우라면 반드시 병원 진찰을 받아야 한다. 

■ ‘발열공포’가 아이를 괴롭힌다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가 열에 대해 과도한 공포심을 갖고 부적절하게 대처한다는 점이다. 이를 ‘발열공포(fever phobia)’라고 부른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바턴 슈미트가 1980년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됐다. 그는 논문에서 “81쌍의 부모를 조사한 결과, 부모의 52%가 ‘아이가 40℃ 미만의 열로도 심각한 신경학적 부작용을 겪을 것’이라고 응답했다”며 “무려 85%의 부모가 아이의 체온이 38.9℃가 되기도 전에 해열제를 먹인다”고 밝혔다. 발열공포라고 정의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런 우려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런 발열공포는 어디에서 유래된 걸까. 일부 전문가는 과거 경험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인간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던 과거 말이다. 지금보다 생활환경이나 의료 수준이 열악했던 시절, 특히 심각한 뇌수막염으로 많은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리다 귀가 멀고 뇌손상도 입는 등 심한 후유증을 겪었던 기억이 우리에게 열에 대한 공포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백신이 개발돼 심각한 세균에 감염되는 경우가 예전에 비해 줄었으며, 의료 수준이 높아져 설사 감염되더라도 치료에 실패하는 확률이 줄었다. 즉, 요즘 아이들이 열이 나는 원인은 대부분 3~4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호전되는 바이러스 질환인 것이다. 

하지만 김진선 조선대 의과대학 간호학과 교수팀이 올해 4월 <아동간호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부모들의 발열공포는 여전하다. 연구 대상자의 절반이 37.8℃를 발열의 최저기준 체온으로, 38.9℃를 고열의 최저기준 체온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발열과 고열은 각각 38.0℃ 이상, 40.0°C 이상으로 정의한다. 또한, 74.8%가 열이 나는 아이를 미온수로 목욕시킨다고 응답했다. 78.1%는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거나 뇌손상을 일으킬까 봐 ‘매우 걱정 된다’고 답했다. 그 결과, 소아 외래나 응급실을 불필요하게 자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열제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74.2%가 잘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복용시킨다고 답했다. 심지어 6%는 아이가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문을 통해 좌약 형태의 해열제를 투여하고 있었다. 열이 나는 아이에게 부모가 가장 조치하기 쉬운 게 해열제 투여다 보니, 남용이 심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의료진조차 최신의 과학적 근거를 수용하지 못한 채 잘못된 방법으로 소아 발열을 관리하고 있다”며 “의료인의 발열공포가 부모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세균감염 위험 먼저 살펴야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열에 대한 지나친 공포로 해열제를 잘못 써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해열제 자체로는 열성경련을 막을 수 없다. 열성경련 예방을 목표로 해열제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물론 해열제를 먹이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아이의 체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해열제를 먹이지 말고, 열 때문에 너무 힘들어할 경우에만 고려하라는 것이다. 이은혜 경희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체온이 38℃가 넘으면 아이가 보채고 힘들어하기 때문에 해열제를 적절한 용량으로 사용해 편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보통 해열제의 사용간격은 4~6시간이다. 아이가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계열의 약을 섞어 자주 먹여서는 안 된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상태를 잘 살피는 것이다. 3일 이상 고열에 시달린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 교수는 “아이가 열이 날 때 뇌막염이나 요로감염, 패혈증 등 심각한 세균감염인지 단순한 바이러스성 질환인지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열에 대한 공포로 ‘해열’에만 지나친 관심을 쏟는 태도는 아이의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아이를 더욱 괴롭힐 수 있다. 
 

(TIP) 열에 대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상식 

Q. 아이 체온이 38℃를 넘었어요! 뇌가 손상되면 어쩌죠? 
A. 단순 감기로 인한 열 때문에 뇌가 손상된다는 건 근거 없는 오해랍니다. 

Q. 아이가 열성경련 경험이 있어요. 빨리 해열제 먹여야겠어요. 
A. 해열제는 열 증상만을 완화할 뿐, 열성경련을 예방하지 못합니다. 병원을 찾아 열이 나는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해요. 

Q. 열이 떨어지지 않아 곤히 자는 아이를 깨워 해열제를 먹였어요. 
A.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열이 나더라도 아이가 잘 놀고 잘 잔다면 해열제를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보채고 힘들어 할 때만 체중에 맞게 해열제를 주세요. 

Q. 병원에서 미온수목욕을 시키라는데, 아이가 울고 소리를 질러요. 
A. 미온수목욕은 해열효과가 일시적입니다. 최근에는 추천하지 않는 처치법이죠. 아이가 추워서 몸을 떨면 열이 생산돼 체온을 오히려 올릴 수 있어요!  



글 : 우아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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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지만 다른 감기와 냉방병

 

태연과 아빠 엄마, 오늘도 아침밥을 먹자마자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름 하여 뱅크피서를 위해서다. 하루 종일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 아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책도 보고 옥수수도 뜯으며 더위를 피하는 뱅크피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강 넉살을 가진 아빠는, 몹시 염치없는 이 상황에서도 경비아저씨와 절친까지 맺었다. 

“그러니까 이런 증상이라는 거지? 두통이나 피로감, 어지러움과 함께 소화불량, 복부팽만감, 그리고 복통과 설사가 수시로 반복되고,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는 데다, 집중도 안 되고, 어떨 때는 팔다리가 욱신욱신 쑤시면서 허리까지 아프다 이거잖아.” 

“헐! 족집게셔. 어떻게 딱딱 알아맞히나 그래?” 

“감기인 듯 감기 아닌 감기 같은 증상이지? 낮에는 심하다가 저녁에 집에 가면 덜하고.” 

“흐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다니, 혹시 그동안 스토킹 한 거 아닌가?” 

“김경비는 어쩜, 오버하는 것까지 딱 내 스타일이이란 말이야. 허허. 암튼, 지금까지 얘기한 증상들은 몽땅 냉방병에 관한 걸세. 이렇게 추운 데서 일하려니 냉방병을 피하기 어려웠겠지.” 

“역시, 친구가 과학자니까 참 좋구먼. 그런데 시원한 데 있으면 몸도 정신도 더 짱짱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짱짱해지기는커녕 몽롱해지는 이런 병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거야?” 

안과 밖의 온도가 5~8°C 이상 벌어지는 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말초혈관이 빠르게 수축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요.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드니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기운 없으면서 졸리게 되지. 또 위장으로 가는 혈류량도 줄어 소화기 쪽도 영 시원찮고 말이야. 거기다 자율신경계 기능에도 변화가 생겨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여성의 경우 생리가 불규칙해지기도 해요. 근육이 뻐근하게 쑤실 때도 잦고.” 

“아, 이제야 싹 다 이해가 되는구먼. 남들은 시원한 데서 일한다고 날 부러워하지만, 냉방병이라는 슬픈 직업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그런데 대체 우리 몸은 온도 차이에 왜 이리 예민한 건가?” 

“우리 몸은 빠른 변화를 아주 싫어한다네. 세포 하나하나를 재정비해가며 변화에 적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 환절기만 되면 감기 같은 각종 감염병이 늘어나는 이유도, 인체가 빠른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라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는 한 달 동안의 계절변화에도 쩔쩔매는 데, 하루에도 몇 번씩 5~8°C씩 온도가 오락가락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사람은 이래서 배워야 하는 걸세.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감기인 줄 알고 며칠째 종합감기약만 열심히 챙겨먹었지 뭔가.” 

“많은 사람이 감기와 냉방병을 헷갈리는데, 이걸 구분하는 팁을 하나 줌세. 기침이나 가래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감기, 없으면 냉방병일 가능성이 높고. 그리고 냉방을 하지 않을 때 증상이 호전되면 냉방병,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 증상이 이어지면 십중팔구 감기라네. 알겠나?” 

“오호, 아주 명쾌하구만! 그럼, 끝으로 하나만 더 물어봄세. 대체 이 냉방병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가 있나?” 

“음, 묘약이 딱 하나 있긴 하지. 에어컨을 끄고 하루 이틀만 지나면 금방 몸이 좋아진다네.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마사지를 해서 혈액순환을 도와주면 더 빨리 호전되고 말이야. 또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지 말고 가끔 20~30분씩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도 냉방병을 예방하는 훌륭한 방법이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네에겐 그림의 떡일 테니, 긴팔 옷을 입거나 목에 작은 수건 같은 걸 둘러서 체온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막는 게 최선일 것 같구먼.” 

“음, 그런데 미안하지만, 사실 내 병은 냉방병이 아니네.” 

“아니 여태까지 듣고는, 갑자기 무슨 냉방병 걸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사실, 나의 두통이나 근육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복통, 설사는 실내외 기온 차 때문이 아니라네. 달랑 의자 10개가 전부인 작은 은행지점에 자네 가족이 벌써 사흘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을 치고 있다는 게 내 병의 근원이야. 위에서는 어떻게 좀 해보라고 자꾸만 나를 닦달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하도 스트레스가 쌓여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네. 이보게 친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만 나가주면 안 되겠나? 친구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말일세. 흑흑.” 

“난 또 뭐라고. 성격이 왜 이리 급한가? 우물가서 숭늉 찾겠구먼. 허허. 조금만 더 참아보게, 나도 이제 휴가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참말로 뻔뻔하구먼. 벼룩도 갖고 있다는 그 낯짝이 왜 자네에게만 없는 것인가. 흑흑”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더 격렬하게 아무 말도 안 들린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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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쳐도, 모자라서도 안 되는 ‘소금’


우리 속담에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라는 말이 있다. 소금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길래, 그 좋다는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가 더 좋다고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런 속담이 생겨난 것을 보니, 예전의 소금이 황금과 맞먹는 귀중품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의 소금은 어떠한가? 성인 질환을 일으키는 대표적 식품으로 꼽히면서, 그 존재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건강을 위해 음식에는 가능한 한 소금을 적게 넣거나, 아예 넣지 말고 무염식으로 먹는 것도 괜찮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어쩌다 소금의 신세가 불과 몇 백 년 만에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혹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소금이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진짜로 사람에게 해로운데도, 예전에는 몰라서 그렇게 보물처럼 여겼던 것일까? 이제 소금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을 파헤쳐, 소금의 진짜 정체를 알아봐야겠다. 

■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던 소금 

인류 역사상 소금만큼 인간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소금을 먹어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금은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음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사용돼 왔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소금을 활용했다. 소금으로 이를 닦는 것은 물론, 혀에 백태가 끼거나 발가락에 무좀이 생겼을 때 소금을 바르거나 문질렀다. 또한 치통이나 피부병이 발생했을 때도 소금으로 닦고 씻는 등, 소금을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겼다. 

실제로 한의학에서는 소금을 중요한 약재로 사용했다는 기록들이 나온다. 명나라의 대표적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총 75종의 소금을 활용한 처방이 수록돼 있고, 또한 세종대왕 시절에 편찬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도 소금 치료법만 수백 가지가 넘게 실려 있다. 

이 외에도, 소금은 병을 걸리게 하는 귀신을 쫓는 주술 행위에도 많이 사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줌을 자주 싸는 아이에게 키를 씌워서 소금을 얻어오는 풍습이다. 해독과 살균작용이 있는 소금이 오줌의 냄새를 없애고, 어린이들의 야뇨증을 방지시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때는 만병통치약이자,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까지 여겨졌던 소금이 최근 들어서는 성인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까지 몰리며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냉장고의 등장과 각종 약품의 개발로, 보존제 및 치료제로서 사용되던 기능마저 이제는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 소금의 면역력 강화 기능이 새롭게 밝혀져 

소금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고혈압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금을 구성하는 나트륨이 세포 속으로 들어가면, 세포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분을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세포막이 팽창하면서 근처에 있는 혈관을 압박하는데, 이런 현상이 바로 혈압을 상승시키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소금의 임장에서 보면 억울한 점이 많다. 지금도 소금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성인병을 일으킨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식탁에서 퇴출될 위기로까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금은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적게 먹어도 탈이 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마라톤이나 축구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할 때다. 우리 몸은 일정 수준의 염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소금 섭취를 거의 하지 않은 채 물만 마시게 되면 체내 염도가 떨어져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적게 먹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체내 염도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소금이 면역력 증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동안 몰랐던 소금의 효능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독일과 미국의 연구진이 저명한 학술지인 <셀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 최근호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소금이 사람의 몸에 침입한 세균을 파괴할 수 있는 면역력을 기르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의 요나단 얀취(Jonathan Jantsch) 교수와 미국 밴더빌트대의 옌스 티체(Jens Titze) 교수가 이끄는 공동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소금 섭취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던 중에, 상처가 난 피부에서 고농도 소금이 축적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같은 현상에 흥미를 느낀 연구진은 대식세포(몸에 침입한 세균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를 서로 다른 조건에서 배양해 보았다. 즉 대식세포를 배양하는 2개의 배지에 대장균을 감염시킨 후, 한 쪽에만 소금을 첨가해 본 것이다. 

그 결과 소금을 첨가한 배지에서 자란 대식세포가 훨씬 빠른 시간에 대장균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실험쥐를 대상으로 한 소금 섭취 실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소금을 많이 먹인 쥐들이 적게 먹인 쥐들보다 세균의 감염으로부터 더 빨리 회복된 것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공동 연구진은 “항생제도 없고, 수명도 짧았던 조상들에게 짜게 먹는 것이 세균 감염을 물리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소금을 많이 먹을수록 면역력이 따라서 증가하는 것은 아닌 만큼, 소금을 ‘먹는’ 용도 보다는 ‘바르는’ 용도로 바꾸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피부가 세균으로 감염됐을 때 먹는 소금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소금을 함유한 수액이나 젤 등을 발라서 피부의 염분 농도를 상승시키자는 것이다. 

아마 공동 연구진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속담을 염두에 두고, 소금을 바르는 용도로 사용해 보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이 말처럼, 연구진은 이 제안을 통해 소금이 지나쳐도 안 되지만, 모자라서도 안 되는 존재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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