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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이달의 역사] 우리의 글자 ‘한글’에 담긴 세계적 창의성
[이달의 역사] 우리의 글자 ‘한글’에 담긴 세계적 창의성


세상에는 온갖 언어가 존재한다. 국제하계언어학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에스놀로그(Ethnologue)는 세계 곳곳에 현존하는 언어를 7천 개 이상으로 파악한다. 언어를 글자로 표현한 문자의 방식도 그만큼 다양하다.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본따서 그려 넣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록하지만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라틴문자 다음으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아랍문자, 아무리 복잡한 요소도 하나의 칸 안에 집어넣어 글자를 만드는 중국의 한자, 진흙판에 쐐기 모양을 찍어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와 같이 창의적인 글자들이 많다.

문자는 사람이 발명해서 사람이 사용한다. 많은 민족과 국가가 나름의 글자를 만들어 쓰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낸 창제자와 창제 연도가 명확하게 기록된 사례는 하나뿐이다. 우리나라의 글자 ‘한글’이다.

한글의 본래 이름은 ‘언문’이었다. 평민이 쓰는 글자라는 뜻이다. 조선왕조 세종실록 중 1443년의 맨 마지막 기록인 음력 12월 30일 편에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다. 3년이 거의 지난 1446년 음력 9월 30일 편에서야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 책이 완성됐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훈민정음은 글자의 명칭이면서 책의 제목인 것이다. 훈민정음은 이후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불렀다가 1910년대에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한나라글’과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자를 창제한 원리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책은 세계 언어 중에서 훈민정음이 유일하다. 훈민정음은 세종 대왕이 직접 사용법을 설명한 ‘예의’와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 원리를 설명한 ‘해례’로 구성된다. 그러나 1940년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고택 다락방에서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한글의 창제 원리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만이 나돌았다. 일제 강점기 때는 격자무늬로 돼 있는 창살을 보다가 ㄱ, ㄴ, ㅁ, ㅂ의 모양을 떠올렸다거나 인도와 몽골의 고대 글자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주장이 나돌았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자음과 모음은 왜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지, ㄱ은 왜 꺾인 모양인지, 모음은 왜 조합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상세히 설명돼 있었다. 창제 당시 최만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이 거센 반대를 했던 이유도 밝혀졌다. 한글이 만들어진 과정과 원리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엄밀한 법칙과 획기적인 창의성이 담겨 있었다.

한글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의 글자인 ‘한자’를 사용해 왔다. 한자는 실제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낸 상형문자에서 출발했다. 이후에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한 지사문자, 상형과 지사를 합쳐 새로운 뜻을 나타낸 회의문자, 뜻 부분과 음 부분을 결합시킨 형성문자, 본래의 의미가 달라져 새 글자로 쓰인 전주문자, 발음이 비슷해 다른 용도로 차용된 가차문자 등이 덧붙여졌다.

이처럼 한자는 ‘모양’과 ‘소리’와 ‘뜻’이라는 3가지 개념을 한데 엮어서 하나의 글자로 만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상형, 지사, 회의는 모양과 뜻이 일치하고 형성, 가차는 소리와 뜻이 일치한다. 그러나 모양이 소리와 일치하는 경우는 없었다. 글자의 모양만 가지고 발음을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글이 창제되면서 모양과 소리를 일치시킨 표음문자 체계가 탄생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이두’와 ‘향찰’은 한자의 소리를 가져다 쓰거나 뜻을 바꿔 사용했을 뿐 완전히 새로운 문자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글은 자음과 모음 모두가 입 안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서 만든 완전한 표음문자,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음소문자다.

최만리는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용음합자는 옛것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용음합자(用音合字)’는 ‘소리를 이용해서 글자를 만든다’라는 뜻이다. 모양과 소리를 일치시키는 이 방식은 한자에는 존재한 적 없기 때문에 성리학자로서 반대한 것이다. 한글의 원리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글은 어떤 점에서 한자와는 전혀 다른 원리를 가졌다는 것일까. 우선 자음부터 살펴보자. 훈민정음 해례본은 자음을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의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아음(牙音)’은 발음하는 데 혀뿌리가 쓰인다. 아음 중에서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설명한다. 아음에는 ㄱ 이외에 ㄲ, ㅋ, ㆁ(옛이응)이 있다. ‘설음(舌音)’은 혀끝이 발음에 사용된다. 해례본은 ㄴ에 대해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ㅁ, ㅂ, ㅃ, ㅍ 등 ‘순음(脣音)’은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모양이다. ㅅ, ㅆ, ㅈ, ㅉ, ㅊ 등 ‘치음(齒音)’은 앞니에 혀끝이 닿았다 떨어지면서 소리가 난다. ㅇ, ㆆ(된이응), ㅎ, ㅎㅎ 등 ‘후음(喉音)’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다. 발음의 원리뿐만 아니라 발음 기관의 형태까지 감안해 모양과 소리를 일치시킨 것이다.

특히나 라틴문자에서는 완전히 다른 글자인 m(ㅁ), b(ㅂ), p(ㅃ)를 순음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고 비슷한 형태를 부여했다는 사실은 음성학의 수준이 현대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도 한다. 된소리를 표현할 때는 ㄱ, ㄷ, ㅂ, ㅅ의 자음을 반복해서 ㄲ, ㄸ, ㅃ, ㅆ을 만들었다. 거센소리를 나타낼 때는 획을 추가해서 ㅋ, ㅌ, ㅍ, ㅊ으로 기록한 것도 놀라운 수준이다.

모음도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땄지만 성리학과 음양오행 사상까지 결합시켰다. 중국 고전서 ‘주역’은 하늘, 땅, 사람을 ‘천지인 3재(天地人三才)’라 해서 철학의 기본 요소로 놓았다. 세종 대왕은 자음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려면 모음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천지인의 기본 요소를 이용해서 모음 11자를 만들었다.

중심이 되는 ㆍ(아래아)는 ‘혀가 오그라들고 소리가 깊으니’ 제일 처음에 존재한 하늘을 뜻한다.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들고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아 평평하니’ 땅을 가리킨다. ㅣ는 ‘혀가 오그라들지 않고 소리가 얕으니’ 그 다음에 생겨난 사람을 나타낸다. 3재를 결합해 ㅏ, ㅓ, ㅗ, ㅜ, ㅑ, ㅕ, ㅛ, ㅠ까지 합하면 모두 열한 글자의 모음이 된다.

한글이 다른 문자와 더욱 차별화되는 점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한 음절을 하나의 글자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음절의 첫 자음인 ‘초성’, 모음인 ‘중성’, 끝 자음인 ‘종성’을 한 칸에 담아서 글씨를 쓰도록 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획기적인 발상이다.

훈민정음 덕분에 사람들은 한자처럼 글자에 담긴 뜻을 생각하는 일 없이 주변의 소리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정인지가 훈민정음 해례의 후서를 작성하면서 “바람 소리, 학과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기록한 것도 한자의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렇다면 한글은 세종 대왕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발명된 것일까. 중국 명나라의 영락제가 펴낸 ‘성리대전’이 세종 원년에 전래됐는데, 그 중에서 권7부터 권13까지 일곱 권이 음성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범어(梵語)’라 불리던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함께 논의됐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음성학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산스크리트어나 성리대전의 음성학에 관심을 보이고 깊이 연구해 마침내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어낸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 게다가 왕이 직접 공부하고 명령을 내려 국가 차원의 문자 창제를 진행함으로서 완전한 표음문자 체계를 만들고 전파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세종 대왕의 업적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10월 9일은 2006년부터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이다. 여느 휴일처럼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미 560년 전에 언어의 비밀을 터득한 세종 대왕과 학자들의 놀라운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세종대왕을 기리고 한글 창제를 축하하는 갖가지 행사들이 한글을 사용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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