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무드셀라 증후군?!

“너! 를! 나만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꿈이 생긴 거야~”

TV를 보며 신 나게 몸을 흔들어대는 아빠. 그런 아빠가 못마땅한 태연은 한 마디를 한다.

“아니, 가요 프로그램은 5초 이상 보지 않는 아빠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요? 게다가 육중한 몸으로 춤까지…, 지진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TV엔 최신가요가 아닌 90년대 음악인 터보의 ‘나 어릴 적 꿈’이 흘러나오고 있고, 9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아빠는 본인 말로는 ‘잘 나갔던’ 시절을 회상하며 몸을 흔들고 있다.

“태연이 니가 몰라서 그렇지, 아빠가 대학교 때는 엄청 잘 나갔어요~. 내가 신촌 바닥 좀 쓸고 다녔지.”

“네?! 아빠가요? 저렇게 뚱뚱한대? 90년대엔 뚱뚱한 사람이 잘 나갔나? 도대체 9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TV엔 온통 90년대 이야기뿐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TV엔 온통 90년대 이야기뿐이다. 90년대 사람들, 90년대 노래와, 90년대 패션…. 2003년도에 태어난 태연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땐 이 몸이 아니었지~, 그땐 말이다, 태연아, 아빠에겐 젊음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으며, 자유로움이 있었지. 날 따르는 여자 후배들도 많았고, 난 누구나 꿈꾸는 멋진 선배였지…. 아~! 아름다웠었는데.”

“아름다웠다고요? 아빠가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빠가?!”

“그러엄~! 그땐 모든 게 다 아름다웠단다, 딸아~.”

아빠, 너무 아름다운 기억만 갖고 계신 거 아니에요? 아빠,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같아요.

“무…, 무드? 무슨 무드?!”

“그냥 무드가 아니라 무드셀라 증후군이요.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며,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인간의 심리를 말하죠. 즉, 일종의 퇴행 심리예요. 아빠의 대학생 시절에 분명 암흑기가 있었을 텐데, 아빤 그런 기억은 다 지우고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무드셀라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과거의 일을 떠올릴 때,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즉 기억왜곡현상을 나타내는 것이죠.

“아냐~. 태연이 니가 몰라서 그렇지 내 젊음은 정말 아름다웠다고! 너야 말로 모르는 걸 왜곡하지 마!”

“아빠는 지금 무드셀라 증후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예를 들어 친구랑 대판 싸웠는데, 시간이 흘러 싸운 기억은 모두 잊고 재밌게 놀았던 기억만 갖고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낸다면, 그것은 무드셀라 증후군의 장점이겠죠. 하지만 지금 아빠는 과거의 좋았던 기억만 갖고 현실은 도피하려는 무드셀라 증후군의 단점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아빠는 지금 2015년에 살고 있다고요~, 정신 차려요, 아빠!”

“흠…, 난 현실을 도피하려는 게 아냐. 그냥 나의 젊은 시절이 아름다웠고,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뿐이며, 시간이 이렇게 벌써 흐른 게 아쉬울 뿐이라고!”

“적당히 해야죠, 적당히~. 벌써 며칠 째예요? 봤던 거 또 보고, 봤던 거 또 보고…. 이제 제가 다 외우겠어요! 무드셀라 증후군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우울할수록 더 잘 나타난대요. 흑흑, 아빠, 제가 앞으로 잘 할게요. 어서 돌아와요. 흑흑….”

“아이~, 참,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울긴 왜 울어?! 아빠는 맘대로 추억에 빠지지도 못하냐?!”

증후군이란 단어로 돼 있어서 질병이 아니라고…, 본인은 괜찮다고…, 그렇게 아빠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래요. 하지만 그건 본인 위안일 뿐이라고……, 흑흑.”

“에휴, 알았다, 알았어, 돌아왔다, 돌아왔어. 짠~! 아빠 돌아 왔어요~,”

추억에 잠시 빠지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기도 하지만, 너무 과하면 문제가 돼요. 현실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해요. 자~, 이제 저를 받아들여 주세욧.”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우리 딸, 언제 이렇게 똑똑했었나?! 무드셀라 증후군 같은 어려운 단어도 척척 설명하고 말야.”

“아빤 뭐, 제가 매일 놀고, 먹고, 자고…, 그러는 줄 아세요? 저도 다 알건 안다고요!”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내가 딸 하나는 잘 키웠다니까!”

딸의 간곡한 부탁에 훌훌 자리를 털고 나가는 아빠, 감춰둔 휴대전화를 꺼내는 태연은 혼잣말을 한다.

‘큭큭, 이젠 EXO 오빠들 실컷 볼 수 있겠네~! 역시 사람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해!’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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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시간, 잠

"나는 잠들어 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자 있는가 없는가."
(셰익스피어, ‘리어왕’)

잠은 왜 잘까? 낮 동안 깨어 활동할 힘을 얻는 쉬는 시간일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잠은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소극적인 휴식이 아니다. 뇌를 일깨우고 다음 날 다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적극적인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잠은 뇌가 낮 동안 수집한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잠은 크게 렘(REM) 수면과 비(非) 렘(non-REM) 수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깊은 수면을 의미하는 비렘 수면 중에는 느린 뇌파 수면 일명 ‘서파 수면(slow-wave sleep)’이라는 단계가 있다. 대뇌피질에서 약 1Hz 정도의 느린 뇌파가 뇌 전반에 흐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흥미롭게도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뇌가 어떤 활동을 하고 나면, 바로 그 부위에서 이 뇌파가 특히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뇌파가, 낮 동안 활동하면서 얻은 기억을 뇌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즉 뇌는 낮에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억을 얻고, 밤에는 이 기억을 편집하거나 기억 중추(해마)에 전달해 저장한다는 것이다.

낮 동안 어떤 사건의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생각해 보자. 촬영이 끝나면 용량이 큰 파일을 하나 얻겠지만, 그 안에는 온갖 불필요한 부분이 섞여 있고 내용도 뒤죽박죽이라 결코 제대로 된 영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촬영 뒤에는 항상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고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는 편집 작업이 필요하다. 나중에 찾기 좋게 내용을 분류하고 저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기억도 마찬가지인데, 뇌가 기억을 편집하고 저장하는 시간이 바로 잠을 자는 시간이다. 실제로 전체 수면 시간 중 서파 수면 시간 비중이 늘어나면 잠의 질이 높아지고 기억도 잘 하게 된다. 2013년 1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UC버클리 브라이스 맨들러 박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젊은이가 어른보다 기억력이 좋은 이유 중 하나도 서파 수면 때문이다. 이마 부분에 위치한 뇌의 전전두엽 부위가 서파 수면과 관련이 있는데, 나이가 들면 이 부위가 퇴화해 질 좋은 서파 수면을 누리지 못하고, 기억력도 줄어든다.

혹시 어른도 인공적으로 서파 수면 시간을 늘려 주면 기억력이 좋아질 수 있을까. 같은 달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제로 뇌에 전극을 꽂아 인공 서파를 만들어 주는 연구가 있고, 그 중 일부는 기억력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꼭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잠을 푹 깊이 잘 수만 있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켄 팔러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극을 쓰지 않더라도 운동 등 잠을 푹 잘 수 있게 할 방법은 많다."라고 했다. 기억력 감퇴가 의심스럽다면 먼저 잠을 편히 잘 잘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왜 잠을 잘 자야 기억력이 좋아지는지를 설명하는 또 다른 설명도 있다. ‘시냅스(뇌세포 사이의 연결) 항상성’이라는 가설은 잠을 칠판지우개와 같은 존재로 본다. 잠을 통해 시냅스가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도록 ‘리셋’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의대 치아라 키렐리 교수팀은 2011년 6월, 초파리의 시냅스가 잠을 자면 더 작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내 그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시냅스는 낮에 활동을 하면 수가 늘어나고 크기도 커진다. 기억이 새로 만들어져 시냅스의 형태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정 커질 수는 없으므로, 적당한 시기에 불필요한 시냅스를 정리해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밤에 잠을 자는 이유라는 것이다. 키렐리 교수팀은 초파리에서 밤에 시냅스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까지 찾아내, 이 가설에 한층 힘을 실어줬다.

잠을 통해 기억을 없앨 수 있다면, 혹시 나쁜 기억을 없애는 수면 처방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잠의 편집 기능은 수면 의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기억력을 높이는 서파 수면은 나쁜 기억을 없애는 기억의 ‘청소부’ 역할도 해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의대 카테리나 하우너 박사팀은 서파 수면 처방을 통해 나쁜 기억에 시달리는 환자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3년 9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냄새가 기억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공포 기억을 지닌 사람에게 그 기억과 연관이 있는 냄새 자극을 주고 서파 수면 처방을 했더니, 서파 수면 처방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공포를 빨리 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해마와 같은 기억과 관련이 있는 뇌 영역의 활동에도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뇌가 이 과정에 깊숙하게 관여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기억은 단순히 암기력에 관련되는 두뇌 능력이 아니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기억이 사라진다면 극단적으로는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속 박사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 덕분에 우리는 늘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잠은 삶의 3분의 1을 잠식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새로운 기억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삶의 필수 요소다.

글 :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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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는다는 것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은 휴가나 주말이 더 바쁘다.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국내외 곳곳을 누빈다. 울퉁불퉁한 유럽의 돌바닥에서도 유모차 끌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그 곳에 갔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아동 기억상실증’이다.

기억은 성인이 되서도 잃는다. 흔한 예가 만취 상태에서 한 말이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술이 깬 뒤에 아무리 기억해 보려 애써 봐도 술자리의 시작만 기억날 뿐이다. 또 머리를 부딪치거나 충격적인 일을 겪었을 때,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으로 기억을 잃기도 한다.

기억 상실은 드라마나 영화 속 설정일 뿐 일상에서는 낯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 드문 일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기억을 잃고 살아가는 걸까.

■ 뉴런 교체와 함께 기억도 굿바이?

우리가 잊은 가장 첫 번째 기억은 어린 시절이다. 자신의 돌잔치가 기억나는 사람이 있을까. 기억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 3살 이전에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라진 기억은 대부분 어디에서 누군가와 무엇을 했던 것과 같은 추억이나 젓가락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걷는 법과 같이 몸으로 익힌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는 왜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어렸을 적 기억이 생존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진화적 이론부터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아주 어린나이에는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기억이 저장되지 못했다는 설명도 있다. 언어학적으로는 언어 인지 능력이 부족해 기억을 체계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있다.

최근 주목받는 이론은 뉴런의 일부가 새로운 뉴런으로 바뀌면서 기억도 초기화 된다는 것이다. 원래 뉴런은 한번 만들어지면 재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예외적으로 해마, 특히 해마의 일부분인 치상화는 새로운 뉴런이 계속 만들어진다. 특히 출생 후 몇 년 동안은 빠른 속도로 생성된다.

뉴런은 오감을 통해 받은 외부 자극을 해마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해마는 기억이 저장되는 1차 장소로 이후 기억은 대뇌피질에 최종 저장된다. 뉴런은 신경세포체와 신호를 받는 수상돌기, 다른 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축삭돌기로 이뤄져 있는데 두 신경돌기가 서로 맞닿아 신호를 주고받는 부분이 시냅스다. 문제는 새 뉴런이 기존 뉴런을 대체하면서 기존의 뉴런과 연결돼 있던 시냅스들이 끊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 과정이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이론을 제시한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의 쉬나 조슬린 교수와 폴 프랭크랜드 교수의 실험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연구팀은 새끼 쥐가 특정한 상자에 들어갈 때마다 전기 자극을 줬다. 쥐들은 점차 이를 기억하고 상자를 피했다. 이후 실험쥐의 절반에게 뉴런의 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수 처리를 하고 4주 뒤 다시 상자를 보여줬다. 그 결과, 정상적으로 뉴런 교체가 일어난 쥐들은 과거를 잊고 다시 상자 안에 들어가는 반면 뉴런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쥐들은 여전히 상자를 피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는 시점은 언제일까? 이는 7~8세 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파트리샤 바우어와 마리나 라르키나 교수팀은 5살 된 어린이 83명을 대상으로 최근 몇 개월 내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게 했다. 그리고 수년 후 같은 아이들에게 3세 때 이야기 했던 경험을 다시 떠올려보도록 했다. 그 결과, 5~7세 아이들은 3세 때 이야기했던 경험의 63~72%를 기억하는 반면, 8~9세 아이들은 35%만 기억해 냈다. 7세를 기준으로 3세 이전의 경험했던 일들을 기억하는 능력이 50% 이상 크게 떨어진 것이다. 연구팀은 아동은 성인에 비해 뇌의 신경 작용이 적기 때문에 조각으로 나눠진 정보를 기억이라는 형태로 구성하기 쉽지 않아 기억을 더 빨리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술은 해마도 취하게 한다

성인이 기억을 잃는 가장 흔한 경우는 과음으로 인한 단기 기억 상실이다. 의학 용어로는 ‘블랙아웃’이라고 하는데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나가면 작업 중이던 문서가 날아간 것처럼 술이 들어가면서 기억이 날아가는 현상을 비유한 용어다.

알코올은 시냅스의 활동을 방해해 신호 전달 매커니즘에 이상을 일으킨다. 외부 자극이 기억으로 저장되기 위해 해마로 가는 길목을 막아버린 것이다. 또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세트알데히드는 해마의 활동을 둔하게 하고 신경 세포의 재생을 방해해 기억 저장 기능을 떨어뜨린다. 해마를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술이 컴퓨터 본체는 물론이고 컴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줄(시냅스)까지 고장 내는 것이다.

다행히 뉴런과 해마의 기능은 술이 깨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계속 과음을 할 경우, 뇌가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억이 끊기는 단기 기억 상실증이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알코올성 치매와 베르니케-코르사프 증후군이다. 알코올성 치매에 걸리면 뇌세포가 죽으면서 뇌가 쪼그라들고 뇌 중앙에 위치한 뇌실이 넓어지면서 폭력성과 기억상실 증상이 나타난다. 베르니케-코르사프 증후군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병이다. 알코올은 비타민 B1(티아민, thiamine)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는데, 티아민이 결핍되면 얼굴근육 마비와 보행 장애가 나타나다가 결국에는 뇌세포가 파괴되면서 기억을 잃게 된다.

■ 잊었다는 것조차 잊었다면 알츠하이머

노년에도 기억상실을 경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감소돼 건망증을 유발한다. 건망증은 단순 건망증과 병적 건망증으로 나눈다. 단순 건망증은 정보를 기억하는 상황에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게 저장돼 생긴다. 이야기를 대충 흘려듣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상황에서 주의가 분산될 때 주로 나타난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리려 했을 때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 내긴 어려워도 연관된 정보를 주면 내용을 바로 기억해 낸다.

반면 병적 건망증은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의 초기 증상으로 새로 알게 된 정보나 지식이 아예 해마에 입력되지 않아 힌트를 주어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식사를 하고 상을 치운 뒤 식사를 깜박했다며 다시 상을 차리거나, 방금 한 이야기나 질문을 되풀이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처음에는 단기기억상실 증세를 보이다가 점차 저장된 기억도 사라져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원인은 학습과 기억에 필요한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신경 세포가 빠른 속도로 죽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신경세포가 줄어들면 뇌는 쪼그라들고 시냅스가 약해지면서 신경세포의 기능도 떨어진다. 시냅스를 통해 전달되던 외부 자극도 해마로 전달되지 못하면서 기억을 만들지도 저장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알츠하이머병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적어도 15~20년 전부터 조금씩 신경세포 기능이 마비되는 만성 질환이기 때문에 생활 습관만 고쳐도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은 다음과 같다. 과음이나 흡연을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우울증이 심해지면 알츠하이머 진행이 빨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체력에 맞는 적절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도 중요하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알츠하이머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 중 하나가 됐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다른 병에 비해 통증이 심한 건 아니지만 평생을 기억을 잊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평생의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평생 만들어온 나를 잃는 느낌이 아닐까. 기억을 잡고 싶다면 지금 내 생활 습관을 돌아보자. 아직 늦지 않았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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