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오른 김정호?!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 당빌(DAnville)은 <황여전람도>를 참고해, <조선왕국전도>를 만들었다. 이것은 조선을 독립 국가로 인정한 최초의 유럽 지도다. 크기가 40cm×58cm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보다 130여년 앞선 지도다. 당빌과 김정호의 공통점이 있다. 당빌은 프랑스에서 한 발자국 나가지도 않고, 당시로서는 가장 정확한 세계지도를 만들었고, 김정호는 각종 지도와 지리서를 연구해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냈다. 

■ 대량생산이 가능한 대동여지도 

조선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1861년)는 크기 6.7m×3.8m로 조선시대 지도학을 완성시킨 성과물이며,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치밀하고 정확하다. 1985년 보물 제850호로 지정됐고, 2008년에는 대동여지도의 목판이 보물 제1581호로 지정됐다. 

대동여지도의 한 면은 가로 80리, 세로 120리로 총 227면으로 구성돼 있다. 대동여지도 전체로 보면 가로 1,520리, 세로 2,630리다. 두 개의 면이 한 판으로 제작돼 가로로는 19판, 세로는 22판으로 배열된다. 대동여지도는 세로 22개로 나뉘어 ‘첩’이라 불리는 책자 형태로 돼 있다. 한 개의 첩은 약 20cm×30cm 으로 휴대하기에도 용이하다. 총 22개의 첩은 표지에 각 첩에 담긴 주요 지역이나 지명을 표기해, 필요한 부분만 들고 다닐 수 있게 했다. 
 

보물 제850-3호 대동여지도(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대동여지도는 오류를 최소화하고,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목판으로 제작됐다. 현재 남아 있는 목판은 총 12장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11장, 숭실대기독교박물관에 1장이 있다. 

■ 옛 지도를 근대화한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김정호가 제작한 <동여도>, <청구도> 모두 100리를 1척(尺)으로, 10리를 1촌(寸)으로 한 백리척(百里尺) 축척(縮尺, 지도에서의 거리와 지표에서의 실제 거리와의 비율)의 지도다. 하지만 당시의 1촌 1보(步)가 지금의 몇 cm를 나타내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는 1리를 약 0.4km로 환산해서 계산하는데, 이것은 구한말 이후에 도입돼 정해진 것이다. 

현재의 계산법대로 하면 축척이 1:160,000이다. 하지만 <대동지지>나 <속대전>의 기록(주척(周尺)을 쓰되 6척은 1보이고 360보는 1리이며 3600보는 10리로 된다)을 토대로 계산하면 1:216,000으로 볼 수 있다. 후자의 계산법이 실제 대동여지도의 축척도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주요 도로를 표기하고 10리마다 점을 찍어 지역 간의 거리를 알 수 있게 했다. 도로는 직선으로 표시돼있는데. 곧은 길 점의 간격이 넓었고, 꼬불꼬불하거나 가파른 산악지형은 점 간격을 좁게 표현했다. 지도를 살펴보다 보면 곡선이 한 줄기로 돼 있는 것이 있고, 두 줄기로 돼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은 물길을 표현한 것으로 한 줄기는 배가 다닐 수 없는 길이고 두 줄기로 표시된 것은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다. 또한 지도상에서 글씨를 줄이고 기호를 사용해 능, 역, 산성 등을 표기했다. 산은 산줄기로 이어져서 표시했으며, 선의 굵기로 산의 높이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대동여지도는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내용을 간소화 했고, 옛 지도를 근대화 했다. 또한 여행할 때 길의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전통적인 지도 제작법을 따르면서도 확대와 축소를 할 때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가미해 정확성을 높이기도 했다. 

김정호는 세 개의 지도, 즉 대동여지도, 동여도, 청구도를 제작했다. 청구도는 필사본으로 제작됐고, 동여도는 대동여지도를 목판에 새기기 전에 제작한 선행지도로 현존하는 지도 가운데 가장 자세하다. 

■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여덟 번 오르다? 

김정호는 본인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아 그의 생애는 증언과 기록으로 추측할 뿐이다. 김정호는 1804년 무렵 황해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양으로 이사한 후에는 남대문 밖 만리재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19세기 대표 실학자 최한기가 쓴 청구도의 머리말에 보면 김정호는 18세부터 지도와 지지(地誌)에 관심에 많았다고 한다. 또한 조선 말기의 문인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 보면 김정호가 어렸을 때부터 지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나와 있다. 그래서 김정호는 정확하지 않은 기존 지도들에 크게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또한 본인이 직접 지도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김정호는 팔도를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올랐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곧 흥선대원군에 전해졌고, 이것을 전달 받은 흥선대원군은 크게 노했다. 괜히 이런 것을 만들면 나라의 비밀이 노출됨을 우려한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1934년 발행한 <조선어독본>에 있는 내용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정호의 신분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기록이나 증언으로 봤을 때, 중인 신분으로 추측된다. 당시 중인의 신분으로 팔도를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여덟 번을 올랐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선어독본⟫에는 조선의 지도가 정확하지 않다고 하고 있으나, 사실 당시 지도학은 매우 발달해 있었다. 그래서 김정호는 기존에 있던 지도와 지리서들을 연구해 장점들을 모아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최한기가 쓴 청구도의 머리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호는 어렸을 때부터 모은 지리서와 각종 지도의 장점을 모아 집대성 했을 것이다. 

■ 독도가 빠진 대동여지도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10만원권 화폐 뒷면에 대동여지도를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문제로 10만원권 화폐의 발행은 무기한 연기됐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표기돼 있지 않아서였다. 독도를 그리겠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기존 대동여지도를 훼손한다는 의견도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대동여지도 이전에 제작한 청구도에는 독도가 표기돼 있는데, 대동여지도에는 빠져있다. 지도에서의 거리와 실제의 거리 비율에 맞는 곳에 독도를 표기하기가 어려웠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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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산 폭발, 백두산은 안전할까?

최근 일본은 지진과 토네이도, 화산 폭발까지 잇따른 자연재해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일본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활화산 사쿠라지마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난 데 이어, 9월 7일에는 과학전문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일본 동쪽 해저에서 슈퍼화산이 발견됐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다행히 이 슈퍼화산은 활화산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접국 일본의 화산 폭발 소식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불안감은 한층 높아졌다. 몇 년 전부터 구체적으로 흘러나오는 백두산 폭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천지에 쌓여 있는 만년설의 양이 지난 10여 년간 급격히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백두산 아래 150km에 걸쳐 분포하는 마그마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이에 지난 9월,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언제쯤일지, 또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 예측하기 위해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중국과 첫 공동 연구에 나섰다. 한․중 양국이 본격적으로 공동 연구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주시하고 있는 백두산은 천지 아래 2~3km 지점부터 용암이 끓고 있는 활화산이다. 지금까지 백두산 화산 활동 연구는 대부분 지진파 측정이나 화산재 관찰 등 지표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폭발 시기나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공동 연구팀은 지하로 접근하는 연구방법을 생각해 냈다. 백두산 지하 깊숙이 커다란 구멍을 뚫어 마그마에서 나오는 각종 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면서 폭발 시기와 규모를 예측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윤수 박사는 2016년까지 중국과학원(CAS)과 현장 조사를 벌여 최적의 시추 위치를 설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부터는 마그마를 직접 시추해 분석할 예정이다. 마그마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가스의 압력은 어느 정도인지 종합적으로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하 관측은 지상의 관측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땅 속의 엄청난 열과 압력, 습기 등의 극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적 시추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인 ‘국제 대륙지각 시추 프로그램(ICDP)’에 인력과 기술 지원도 요청할 예정이다. 과학 시추 제안서를 제출해 검증을 받고 공동 연구팀은 한국 과학자 30여 명, 중국 과학자 수십여 명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백두산 화산 활동 예측을 위해 북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13일 북한이 백두산 화산 움직임 관측을 위해 4명의 국제연구팀을 구성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보도됐다. 미국과 영국 과학자 3명, 독일 비영리단체 관계자 1명으로 구성된 국제연구팀은 8월에 북한을 방문해 화산 폭발 탐지용 광대역 지진계 6대를 설치했다. 이를 이용해 화산 폭발의 전조가 되는 땅속 움직임을 관측하게 된다.

또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내년에 두 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해 화산 활동 조사와 산림복원 학술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은 이미 2011년 북한 측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화산 학자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 연구는 2000년대 나온 백두산 화산 재분화설과 관계가 깊다. 2002년 6월 중국 지린(吉林)성 왕청현(汪淸縣)에서 규모 7.3의 지진으로 백두산 일대의 지진 빈도가 10배로 증가하면서 주민들이 불안에 시달렸다. 2010년 2월에도 백두산 인근에서 규모 6.9의 강진이 발생해 지하 마그마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해몬드 교수는 “10여 년 전과는 달리 2000년대 중반부터는 백두산 화산 마그마의 활동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며 “현재 백두산 화산의 재분화 시기를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중국과 국내 일부 학자는 2015년경 백두산 화산이 다시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물론 앞으로 10년간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발표도 나오는 등 폭발 시기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분분하다.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예보의 역할은 막대하다. 우리나라와 북한이 함께는 아니지만 각자 여러 나라와 힘을 합쳐 공동연구팀을 꾸리고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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