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톤치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9.11 솔잎이 없으면 송편이 아니다?
  2. 2010.02.23 마음이 답답한 당신-숲으로 가라
솔잎이 없으면 송편이 아니다?

매년 추석이 되면 시골 할머니 집에는 두 개의 보름달과 수백 개의 반달 그리고 날카롭게 거꾸로 찢어진 초승달이 함께 뜬다. 이게 무슨 넌센스 퀴즈냐고? 아니다. 이건 100% 리얼이다! 휘영청 밝은 하늘의 보름달과 추석만 되면 더욱 동그랗게 살이 오르는 아빠의 각 없이 너부데데한 얼굴이 보름달이고, 찜통 가득 향긋한 솔잎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익어가는 송편이 반달이고, 아빠를 째려보는 엄마의 쪽 찢어진 눈이 바로 거꾸로 뜬 초승달이다.

“어머니…, 송편은 그냥 맛보기로 몇 개만 만드셔도….”

“아니, 어멈아. 그게 뭔 소리여. 아범이 송편을 얼매나 좋아하는디. 송편 몇 개 먹드니 벌써 보름달마냥 뽀얗게 살이 올랐잖여. 긍께 한 삼백 개는 만들어야 하지 않겄냐.”

“그, 그럼… 솔잎이라도 깔지 말고 찌면 안 될까요? 하나씩 떼 내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서요.”

“그건 어멈이 몰라서 그려. 솔잎을 안 깔믄 그게 어디 송편이여? 걍 떡이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할머니 댁에만 오면 갑자기 간에 살이 쪄버리는 아빠는 심각한 마마보이 근성을 드러내며 엄마의 초승달 눈을 더욱 길게 찢는다.

“엄마 말이 맞아. 송편의 송이 소나무 송(松)자인 건 알지? 편은 떡을 점잖게 표현한 우리말이고. 그러니까 풀어서 말하면 소나무떡이란 얘긴데, 솔잎을 안 쓰면 그건 송편이 아니라고. 우리 엄마 진짜 똑똑하다. 앙, 엄마 좋아!”

“우쭈쭈, 우리 아범, 엄마가 좋아쪄유?”

“응, 좋았쪄요! 또, 소나무 잎에서 피톤치드(phytoncide)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여보가 알아? 피톤치드는 식물이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발산하는 살균물질인데, 공기 중의 세균이나 곰팡이를 죽이고, 해충, 잡초 등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뿐만 아니라 피톤치드는 사람 몸에도 완전 좋아요. 병실 바닥에 전나무 잎을 놓으면 공기 중의 세균이 1/10로 줄어든다는 연구나, 결핵균이나 대장균이 섞인 물 옆에 상수리나무의 신선한 잎을 놓으니까 몇 분 안 돼 세균들이 거의 다 죽어버렸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거든. 또 얼마 전에는 KBS의 한 방송에서 피톤치드를 많이 마시면 암세포를 죽이는 자연살해세포(NK-cell)들이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실험을 한 적도 있어.”

“소나무 이파리서 나오는 그 피똥싸구인가 먼가가 암도 잡는겨? 워매, 참말로 대단하구먼.”
“더구나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침엽수에서 훨씬 많이 나오고, 특히 소나무는 보통의 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한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이렇게 좋은 피톤치드를 포기하고 맹숭맹숭한 떡만 만들어 먹는다는 게 말이나 돼? 송편을 먹으면서 산림욕 효과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솔잎을 안 쓰는 게 말이 되냐고. 안 그래 엄마?”

“그람, 말이 안 되지. 근디 우리 아범은 워째 이리 똑똑한겨?

“엄마 닮아서 그렇지~~.”

“아이고, 귀여운 것! 그래서 옛날부텀 구더기나 바퀴 같은 벌레를 없앨라믄 소나무나 전나무 이파리를 뜯어다 그물망에 넣어놓고 그랬던 것이구먼! 나는 그게 피똥싸구 덕분일 줄은 오늘에사 첨으로 알았구먼.”

“아니 엄마~, 피똥싸구가 아니라 피․톤․치․드! 암튼, 그래서 소나무 옆에서는 퇴비도 안 만들잖아. 세균이 근처에 오지를 못하니까 퇴비가 잘 썩지 않아서 그랬던 거더라고.”

“그랬던겨어? 아들이 과학자니께 별거를 다 배우는구먼!”

“송편에 들어가는 녹두, 밤, 깨 같은 고물은 대부분 상하기 쉬운 음식재료잖아. 그런데 송편은 추석기간 내내 두고 먹어야 하는 음식인데다, 추석 날씨는 알다시피 꽤 덥단 말야. 그래서 똑똑한 우리 조상님들이 찜통에 솔잎을 깔았던 거야. 피톤치드가 세균을 막아줘서 송편이 잘 상하지 않거든. 어때, 여보야. 이제 송편 찔때 꼭 솔잎을 깔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어?”

“근데 삼백 개씩이나 만들 솔잎을 어디서 따온담…. 당신이 뒷산 가서 따다 줘요.”

“알았어, 내가 따올게! 괜히 아무 솔잎이나 쓴다고 다 좋은 건 아니거든. 지난해 9월, 남부지방산림청이 2년간 산림병해충 방제를 위해 영남지역 2800헥타르(ha)의 소나무에 포스파미돈, 아바멕틴 등의 고독성 농약을 주사했다고 밝혔던 거 기억나? 솔잎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등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 건데, 농약의 독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솔잎에 농약성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거든. 농약을 처리한 지역은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또 약제를 주사한 소나무는 지면에서 높이 50cm 이내에 주사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이런 솔잎은 피해서 따야 한다는 말씀~.”

“그런데 어머니, 송편을 많이 만들었다가 남는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나중에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있어요. 냉장고에 넣으면 딱딱해져서 못 먹겠더라고요.”

“어멈아, 그게 뭔 소리여. 떡이나 밥은 절대 냉장고에 넣어두면 안되는구먼! 차라리 냉동실에 넣어야 혀!

“맞아 맞아, 울 엄마 말이 맞다구! 떡이 ‘노화’된단 말이야. 떡이나 밥의 주성분인 녹말은 물에 끓이거나 쪘을 때 쫀득쫀득 점도가 높아지고 색이 반투명하게 변하면서 소화하기 쉬운 상태가 되는데 이걸 ‘호화’라고 해요. 쌀은 딱딱한데 밥은 말랑말랑 맛있는 게 바로 호화현상 때문이지. 그런데, 이렇게 호화된 녹말이 온도가 낮은 곳에서 수분을 빼앗기면 원래의 딱딱한 상태로 되돌아가거든. 이걸 ‘노화’라고 하는데, 노화현상이 가장 잘 일어나는 온도가 딱 냉장실 온도(0~5℃)란 말야. 그러니까 떡이나 밥을 냉장고에 넣는 건 노화돼라, 노화돼라, 노래를 하는 거랑 같은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냉동실에 보관해뒀다 녹여 먹는 게 좋아요. 노화단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랑말랑 맛있어 지거든.”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송편 삼백 개가 아니라 사백 개 만들어 줄 테니께 걱정일랑 붙들어 매, 알았징? 냉동실에 꽉꽉 쟁여놓고 먹어라, 내 새끼~~.”

“응응응!!”

명절 때마다 아빠는 바보가 되는 게 틀림없다. 할머니 치마폭에 머리를 파묻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르는 저 행태 뒤에, 어떤 엄마의 보복이 뒤따르는지 너무나 잘 알 텐데도 언제나 저 버릇을 고치지 못하신다. 드디어 엄마의 눈에서 거꾸로 뜬 초승달마저 사라져버리고 이글이글 거친 불길이 타오른다. 이제 아빠는 끝장난 거다!

“어머님이랑 여보가 그리 좋다고 하시니까 송편 삼백 개 만들어 볼게요. 솔잎 듬뿍 깔고 푹푹 쪄볼게요. 느낌 아니까…. 아! 그런데 태연이 외가에 갈 때는 아범한테 된장, 고추장 담으라고 하고 집안 대청소까지 시켜도 되죠? 아, 그리고 추석 끝난 다음에 아범한테 명품가방 두 개 사놓으라고 윽박질러도 되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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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짝짓기의 계절인 봄이 왔다.

짐승들은 짝을 찾아 헤매고 식물은 꽃을 피운다. 벌써 양지바른 산등성이에는 개나리와 산수유가 한창이고 성급한 진달래도 얼굴을 내밀어 곳곳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있다.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식물들이 굳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곤충에게 보내는 말 없는 호소이다. 식물은 색깔로 모양으로 곤충과 대화한다. “내 화려한 꽃을 보세요. 꽃가루가 많답니다. 어서 오셔서 맘껏 드세요.” 대신 곤충은 꽃의 수분을 도와준다.

꽃에 이끌리는 것은 곤충만이 아니다. 봄이 오면 사람들도 꽃구경을 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가꾸어진 화단보다도 숲을 더 좋아한다.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꽃 이상이기 때문이다. 우거진 숲에 가면 사방이 죽은 듯 조용하다. 이것을 고요라고 한다. 곧 상쾌한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숲이 좋은 이유는 숲에는 생명이 있고, 숲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숲의 주인은 뭐니 뭐니 해도 나무! 나무는 숲의 주인이지만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도 주위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또 다른 식물이나 곤충들과 대화를 나눌 일도 있다. 식물은 색깔과 모양 그리고 화학물질로 곤충과 대화한다. “난 아직 익지 않았으니까 손대지 않은 게 좋을 거야!” “나에겐 독이 있는 걸!” 이렇게 대화를 하기 위해 내 놓는 화학물질을 페로몬이라고 부른다.


식물과 주변 생물들의 대화가 언제나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녀석들이 있다. 이 녀석들은 식물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식물을 병들게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가 그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들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피톤사이드(Phytoncide).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Phyton’과 ‘죽인다’는 뜻의 ‘-Cide’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서 ‘식물항균제’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신문 기사에서는 ‘피톤치드’라고도 한다.)


피톤사이드는 어떤 특정한 분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페놀 화합물, 알칼로이드, 당분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페로몬과 마찬가지로 테르펜(Terpene)이라는 화합물 종류가 주요 성분이다. 테르펜은 C5H8을 기본단위로 하는 탄화수소로서 대분분의 식물향, 색소, 수지, 고무가 여기에 속한다.

피톤사이드는 말 그대로 포도알균, 사슬균, 디프테리아 따위의 미생물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햇빛이 많고 온도와 습도가 높을 때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런 환경에서 미생물들도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각종 동물의 시체와 배설물로 역겨운 냄새가 나야 할 숲에서 오히려 상쾌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살아 있는 숲이 배출하는 피톤사이드 때문이다. 피톤사이드는 냄새의 원인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피톤사이드는 미생물은 죽이지만 동물과 인간들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삼림욕을 할 때 느끼게 되는 향긋한 냄새는 피톤사이드의 주성분인 테르펜이 공기 속으로 휘발하면서 나는 것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긴장을 주어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이나 음식으로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삼림욕은 스트레스의 해소에 큰 도움을 준다. 테르펜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Cortisol)의 분비를 감소시킴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또 심폐기능을 강화시켜 주고 피부를 소독하는 약리작용도 갖고 있다. 따라서 수목의 생육이 왕성한 초여름부터 가을사이에 깊은 숲 안쪽에서 숲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삼림욕은 우리의 심신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열대 지방의 음식에는 여러 가지 향신료가 쓰인다. 이는 맛과 향을 내는 작용뿐만 아니라 덮고 습한 지역에서 활발하게 번식하는 여러 가지 미생물을 죽이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도 숲에서 나는 향기에 관심이 많았다. 동의보감에는 소나무가 ‘허리를 치료하고 기의 부족을 채우며 특히 솔잎은 오장을 편하게 해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피톤사이드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한 데, 특히 한국산 침엽수인 편백(Chamaecyparis obtusa)의 미생물 억제효과에 관심이 높다.

산림욕과 피톤사이드의 효능이 알려진 후 이것을 이용한 치약, 샴푸, 방향제 심지어 생리대와 기저귀도 개발되었다. 자연 현상을 생활에 응용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피톤사이드 산업이 숲을 대신할 수는 없다. 숲이 파괴되면 미생물들이 창궐하게 될 것이다. 중국 광동성에서 창궐했던 사스(SARS)도 숲이 황폐화된 결과가 아닐까라는 물음은 과연 과학자들의 막연한 지레짐작일 뿐일까? (글 : 이정모-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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