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의 자질은 실수?

태연, 입을 씰룩거리며 한참동안 집안을 돌아다니더니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나무젓가락을 꺼내 칼로 날카롭게 깎기 시작한다.

“엄마는 도대체 쇠고기를 구우신거예요, 아님 삼 만년 묶은 고래심줄을 구우신 거예욧! 고기 한번 먹었다가 24개의 이 사이사이마다 빠짐없이 고기가 끼어서 빠지질 않는단 말이에요. 이쑤시개도 아무 소용없고, 제가 오죽 답답하면 나무젓가락 창을 만들어서 이를 쑤시겠냐고욧!”

“아이고, 그러다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나저나 너의 무척이나 무식한 두꺼운 젓가락 이쑤시개를 보니, 네가 혹시 발명에 엄청난 소질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많은 학자들이 인류 최초의 발명품을 이쑤시개라고 주장하고 있거든. 그런데 지금 네가 4~5만 년 전 원시 인류가 하던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으니 말이야.”

“혹시, 지금 저를 원시인 같다고 놀리시는 건 아니겠죠? 제가 원시인이면 아빠도 원시인 아빠라는 걸 잊지 마시라고요. 그리고 뭐, 발명이 별건가요? 아무거나 새로 만들면 되지. 그딴 거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맞아. 발명은 어렵지 않아. 더 편하고 유익한 도구를 새로 만드는 것일 뿐이지. 하지만 발명이 바꿔놓은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엄청난 것이란다. 지렛대와 바퀴의 발명 덕분에 물건을 운반하기 쉬워져 지금과 같은 건축물들이 탄생할 수 있었고, 문자와 인쇄술의 발명으로 지식 전달이 매우 쉬워져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발전할 수 있게 됐지. 또 18세기에 발명된 증기기관 덕분에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그 덕분에 현대문명이 존재할 수 있게 됐단다. 또 전기,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등의 발명이 없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아이고…, 상상도 하기 싫구나.”

“와, 발명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어디서 들은 건데요, 발명을 해서 특허를 따면 돈을 그렇게 많이 번다면서요? 발명 하나로 세계적인 재벌도 될 수 있다던데, 정말이에요?”

“그럼! 대표적인 사람이 발명왕 에디슨이야. 1878년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에디슨 전기회사(Edison Electric Light Company) 창설했는데, 이때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아직까지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모태가 됐지 않냐. 이렇게 발명을 통해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단다.”

“와~!! 드디어 저의 미래 직업을 결정했어요. 저 발명가 될래요!! 그럼 이제 뭐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발명 방법을 좀 가르쳐 주세요. 빨리 빨리요!”

“그래? 그렇담 매년 5월 19일이 ‘발명의 날’로 정해져서 각종 행사가 열리는데, 여기에 출품할 작품을 생각해 보려무나. 발명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관찰’이야. 일단 지금 네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아주 유심히 관찰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발견되면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고민해보렴. 당장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기존의 물건에 뭔가를 더하거나, 빼보거나, 아니면 모양이나 크기, 재료, 용도 같은 걸 바꾸는 식으로 수많은 상상을 해보는 거야.

“에이, 그건 발명이 아니잖아요. 그냥 좀 업그레이드 하는 거지.”

“그렇지 않아. 일반적으로 기존 기술의 20% 이상을 개량할 수 있으면 발명으로 인정한단다. 어쩌면 너처럼 하루 종일 온갖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바쁜 사람이 발명에는 더 맞는 사람일지도 몰라. 또 넌 실수도 많이 하잖아.”

“자꾸만 놀리실 거예요? 제가 무슨 실수를 해요! 전 흠이 없는 여자라고욧!”

“고~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나. 실수가 나쁜 게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보면 실수와 우연을 통해 이뤄진 발명이 진짜 많거든. 대표적인 합성소재인 나일론의 경우를 보자꾸나. 20세기 초, 하버드 대학 강사였던 캐러더스는 연구팀원들과 함께 고분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실험이 끝나고 팀원 한 명이 실험 찌꺼기를 불에 쬐여 떼어내려고 하자, 찌꺼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실처럼 늘어나는 거야. 이것을 본 캐러더스는 인공 화학섬유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결국 나일론을 발명하게 됐단다. 또 1839년 찰스 굿이어라는 청년이 황을 끓이다가 실수로 고무 위에 엎질러 합성고무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고무 타이어의 시작이기도 했지. 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는 전투기 부품을 만들기 위해 레이저 실험을 하다가, 그리고 치클 껌은 고무를 만들다 실패해서 만들어졌단다.”

“우와, 대단해요! 아빠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저는 발명가로서의 자질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일상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이런 건 어떨까요? 컴퓨터 게임 하면서 과자를 먹으려면 엄청 불편하잖아요. 폭풍 클릭을 해야 하는데 과자는 먹어야겠고, 과자 부스러기는 손에 자꾸 묻고. 그럴 때 과자를 대신 먹여주는 로봇을 발명하는 거예요. 또 목욕을 하면서 게임을 할 수 있게 방수 게임기를 만드는 것도 좋겠어요. 어때요, 끝내주죠?”

“에고…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오늘부터 게임 일주일 금지!!”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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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벨이 아니다?

오늘날 통신 세상이 열릴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전화’가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선물이다. 요즘은 휴대전화에 그 자리가 많이 밀렸지만 여전히 전화는 전 세계 가정의 필수품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발명이기에, 누가 최초의 전화 발명가인지에 대한 논쟁은 역사적으로 뜨거웠다.

다음은 영국 태생의 미국 과학자·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과 미국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 입장에서 각색한 것이다.






[그림 1] 1876년 2월 14일, 같은 날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좌)과 엘리샤 그레이(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 제가 바로 인류 최초의 전화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저는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고, 다음 달인 3월 7일 ‘전기 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 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로 특허(번호 174465)를 받았습니다.

굳이 이런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도 길을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세요, 전화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마 열에 아홉은 바로 이사람, ‘벨’이라고 답할 게 분명하다니까요.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돼 있는 저야말로 의심할 여지없는 최초의 전화 발명가지요.


그레이 : 최초의 전화 발명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저 역시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 사무국에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하기 두 시간 전, 벨이라든가 뭐라든가, 아무튼 저보다 덜 유명한 발명가가 먼저 특허 신청을 했다더군요. 결국 특허 사무국은 두 시간 빨리 도착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전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1874년부터 이미 전화를 공개적으로 시연했는데도 말입니다. 단 두 시간 차이로 전 남은 인생을 평생 억울하게 살았습니다.

: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의 목소리를 재생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보컬 생리학이나 연설 수정, 청각장애인 교육에 전문가였던 부친의 영향이 컸지요. 이에 소리를 전달하는 기기를 개발하는데 전념한 결과 전화 발명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레이 : 전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학교를 그만두면서 정식 교육을 많이 받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 ‘전기’가 등장하면서 꾸준히 관심을 가졌어요. 1868년 33살 때 개량 전신 계전기로 첫 특허를 따내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농사일과 전기 실험을 병행했지만 이 특허를 취득한 후 전신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 설립을 도우면서 제조업자 겸 발명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벨이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그의 전화는 단지 이론에 불과했어요. 실제로 특허를 획득하고 사흘 후에나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고요.


: 그래도 전 소송에서 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무리 논란이 많아도 결국 공식적으로 법은 제 손을 들어줬단 말입니다. 이래서 ‘법대로 해~’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1876년 2월 14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는 두 시간 차이로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특허 사무국은 벨에게 전화 발명 특허를 주었다. 이후 미국 전역에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해 10년 후인 1886년엔 15만 가구가 전화를 소유하게 됐다. 오늘날 전화는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전화는 소리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도구다. 말의 음파를 전류, 또는 전파로 바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전달하고 이것을 다시 음성으로 바꿔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벨이 특허를 받은 전화는 자석식 전화기로 전자석에 전류를 흘려주면 자석의 성질을 갖는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송·수화기에는 모두 전자석의 극(極) 근처에 얇은 철로 된 진동판이 있다. 소리가 진동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해 전자석이 끌려갔다 멀어졌다 하면서 진동을 한다. 이 진동이 수화기 끝에서 다시 소리로 재생되는 것이다.

이후 벨은 진동판의 크기와 종류, 자석의 형태 등을 바꿔가며 실험해 1877년 영구자석을 사용한 전화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현재의 수화기에 가까운 모델이다. 같은 해 5월에는 5개 은행이 가입한 세계 최초의 교환국(交換局)이 설립됐다.

[그림 2] 엘리샤 그레이와 벨의 전화 발명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는 자료. 흰색 박스 안은 그레이가 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청에 제출한 비밀 서류로 발명 특허권 보호 신청서 3쪽에 실린 도안 중 일부. 바닥의 노트는 그레이엄 벨의 실험 노트 중 1876년 3월 9일자의 기록으로 미국 특허청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세계 최초로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 종전까지는 벨이 전화 발명자로 알려졌으나, 이탈리아의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1808~1889)가 최초의 전화 발명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무치는 자석식 전화기를 발명한 뒤 특허를 내기 위해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Western Union Telegraph Company)와 의논하는 동안 설계도와 전화기 모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벨이 무치가 발명한 것과 비슷한 전화기로 특허를 취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2002년 6월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안토니오 무치를 최초의 전화 발명자로 인정했다. 이로써 최초의 전화 발명가라는 타이틀은 126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아직까지도 최초의 전화 발명가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벨을 떠올린다. 전화 발명 특허 사건은 인류는 맨 처음 최초라고 밝혀진 사람만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또 그 인식이 오래도록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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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팬티도 특허였다고?! 별난 발명이야기

“이거 또 오디션 열풍이구만! 매회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는다던데? 우리는 뭐 색다른 거 없나?”

KHBS 제작팀의 분위기가 또 심상치 않다. 경쟁사들이 금요일 저녁에 방송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때 천진난만하기로 소문난 허특 PD가 자신만만하게 기획안을 내놓는다. 제목은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이다.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 이거 뭐야? 이젠 경쟁사 프로그램 이름까지 따라해? 허 PD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여기저기서 이럴 줄 알았다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 허 PD 때문에 기획회의로 밤을 샐지도 모르겠다.

“예, 국장님! 발명이나 특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뭐 바꾸셔도 될 것 같고요. (긁적긁적) 여하튼 발명이야기 재미있습니다!”
“뭐가 재밌다는 거야?!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재밌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발명을 알고나 싶어 하겠어?”
“아, 저는….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것도 특허 받은 제품이 많고, 또 특허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도 꽤 재미있어요.”

허 PD의 해맑은 표정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김 국장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우선 들어나 보자.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나 특허라고 하면 전화기나 전구의 발명처럼 굉장히 거창하고 유명한 이야기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 또 일회용 밴드, 삼각팬티, 옷핀(안전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사용하는 것도 발명품입니다.
“그래?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도 발명품이었어?”
“네. 원뿔형태의 아이스크림콘은 1903년 12월 13일에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치오니(Marchiony)가 특허권을 획득한 것인데요. 이 사람은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수레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답니다. 처음에는 그릇에 담거나 종이에 둘둘 말아서 아이스크림을 줬는데 뒷처리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와플조각 같은 빵 과자로 아이스크림 아래를 감싸는 콘을 생각해 냈죠. 마르치오니는 아이스크림콘에 대해서 곧바로 전매특허를 내고 아이스크림 세계에 새 역사를 열었던 거예요. 어때요? 다들 잘 모르셨죠?”

이이스크림콘처럼 간단한 것에 특허가 있을 줄은 잘 몰랐다. 하지만 특별한 사례 하나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김 국장은 다른 것은 없냐고 허 PD를 보챘다.

“물론 있죠! 삼각팬티와 일회용 밴드, 옷핀이 발명된 이야기들은 좀 감동적이에요. 우선 삼각팬티는 1951년 일본에서 특허출원 됐어요. 발명자는 놀랍게도 손자를 돌보던 사쿠라이 여사였어요.
“할머니가 삼각팬티를 발명을 했다고? 왜?”
“사쿠라이 여사는 늘 손자를 돌보고 있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손자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고 있는 걸 본 거예요. 당시에는 속옷이 반바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겉옷 입기에도 불편하고 더운 여름에는 특히 더 불편했다고 해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사쿠라이 여사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죠!”
“그게 뭔데?”
“속옷은 단지 가리기만 하면 된다.”

풉!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굴할 허 PD가 아니었다.

사쿠라이 여사는 데드론이라는 천으로 만든 헌 자루를 싹둑 잘라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내고 꿰매서 삼각팬티를 만들었어요. 가볍고 편리한 훌륭한 속옷이 탄생한 거죠. 사쿠라이 여사는 이 팬티의 특허를 받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삼각팬티로 갈아입었어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대히트를 친 거예요!”
“정말 대박특허가 됐겠구만. 아이디어는 작은 거였지만 말이야.”

일회용 밴드는 아내에 대한 사랑 덕분에 탄생한 거였어요.
“아내에 대한 사랑?”
“네, 1920년대 미국에 얼 딕슨(Earle Dickson)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요. 딕슨의 아내는 유난히 요리에 서툴러서 손을 많이 다쳤다고 합니다. 딕슨이 그때마다 붕대와 반창고를 가져와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죠. 하지만 자신이 없을 때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아내의 손에 붕대와 반창고를 붙였던 경험을 살려서 치료용 테이프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안에 거즈를 작게 접어 가운데 부분에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치료용 테이프가 너무 끈적끈적해서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깨끗이 떨어지지도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직물인 크리놀린을 찾아냈습니다. 표면이 매끄러워 테이프가 깨끗이 떨어지고, 빳빳해서 보관하기도 좋았어요.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당시 딕슨이 다니던 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상품화하게 됐어요. ‘밴드에이드(Band-Aid)’라는 이름으로요.
“허허. 그거 참 대단한 아내 사랑이구만.”

“에이, 그 정도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특허권으로 벌 돈보다 애인을 선택한 ‘로맨스 발명’도 있는 걸요!”
“특허권과 애인을 바꾸다니? 대체 어떤 발명품인가?”
“바로 옷핀이에요. 1840년 12월 영국에 월터 헌트(Walter Hunt)라는 청년이 옷핀을 발명한 사람인데요. 그는 헤스타라는 아가씨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해요. 헌트는 헤스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헌트는 물러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헤스타의 아버지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 발명품 만들라는 건가?”
“아뇨. 10일 안에 1,000 달러를 벌어 오라는 거였어요. 헌트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눈앞이 막막했죠. 밤새 궁리해도 특별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한 핀’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갑자기 웬 안전한 핀인가?”
“당시 미국인들은 부활절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 핀으로 리본을 꽂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바늘 핀은 리본을 단단하게 고정시키지도 못하고, 찔릴 위험도 있었어요. 헌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9일째 되던 날 헌트는 안전핀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는 헤스타의 손을 잡고 특허출원을 마치고 리본가게로 안전핀을 팔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1,000 달러를 받고 특허를 팔았죠.”
“저런…. 안전핀 특허를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부자가 됐을텐데!”
“헌트에겐 특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던 거죠. 결국 두 사람은 약속대로 결혼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도 백만장자가 됐다고 해요.”

허 PD가 말을 마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박수가 나왔다. 발명과 특허 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허 PD, 재밌게 잘 들었네. 결국 ‘필요’가 아니라 ‘사랑’이 발명의 어머니였군. 이런 이야기를 잘 소개할 수 있는 포맷은 없을까? 그거 고민해서 가져와. 그러면 설날 특집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자네도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발명해야 할 거 아닌가? 허허허.”
“와! 정말요? 국장님, 감사합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 허 PD가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있다. 김 국장은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발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그대는 모두 발명가가 아닌가 말이다. 기특한 허특 PD 덕분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발명’을 꿈꾸게 되면 좋겠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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