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2.23 마음이 답답한 당신-숲으로 가라
  2. 2008.10.22 화가들의 녹색 요정, 압생트
바야흐로 짝짓기의 계절인 봄이 왔다.

짐승들은 짝을 찾아 헤매고 식물은 꽃을 피운다. 벌써 양지바른 산등성이에는 개나리와 산수유가 한창이고 성급한 진달래도 얼굴을 내밀어 곳곳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있다.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식물들이 굳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곤충에게 보내는 말 없는 호소이다. 식물은 색깔로 모양으로 곤충과 대화한다. “내 화려한 꽃을 보세요. 꽃가루가 많답니다. 어서 오셔서 맘껏 드세요.” 대신 곤충은 꽃의 수분을 도와준다.

꽃에 이끌리는 것은 곤충만이 아니다. 봄이 오면 사람들도 꽃구경을 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가꾸어진 화단보다도 숲을 더 좋아한다.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꽃 이상이기 때문이다. 우거진 숲에 가면 사방이 죽은 듯 조용하다. 이것을 고요라고 한다. 곧 상쾌한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숲이 좋은 이유는 숲에는 생명이 있고, 숲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숲의 주인은 뭐니 뭐니 해도 나무! 나무는 숲의 주인이지만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도 주위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또 다른 식물이나 곤충들과 대화를 나눌 일도 있다. 식물은 색깔과 모양 그리고 화학물질로 곤충과 대화한다. “난 아직 익지 않았으니까 손대지 않은 게 좋을 거야!” “나에겐 독이 있는 걸!” 이렇게 대화를 하기 위해 내 놓는 화학물질을 페로몬이라고 부른다.


식물과 주변 생물들의 대화가 언제나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녀석들이 있다. 이 녀석들은 식물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식물을 병들게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가 그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들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피톤사이드(Phytoncide). ‘식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Phyton’과 ‘죽인다’는 뜻의 ‘-Cide’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서 ‘식물항균제’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신문 기사에서는 ‘피톤치드’라고도 한다.)


피톤사이드는 어떤 특정한 분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페놀 화합물, 알칼로이드, 당분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페로몬과 마찬가지로 테르펜(Terpene)이라는 화합물 종류가 주요 성분이다. 테르펜은 C5H8을 기본단위로 하는 탄화수소로서 대분분의 식물향, 색소, 수지, 고무가 여기에 속한다.

피톤사이드는 말 그대로 포도알균, 사슬균, 디프테리아 따위의 미생물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햇빛이 많고 온도와 습도가 높을 때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런 환경에서 미생물들도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각종 동물의 시체와 배설물로 역겨운 냄새가 나야 할 숲에서 오히려 상쾌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살아 있는 숲이 배출하는 피톤사이드 때문이다. 피톤사이드는 냄새의 원인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피톤사이드는 미생물은 죽이지만 동물과 인간들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삼림욕을 할 때 느끼게 되는 향긋한 냄새는 피톤사이드의 주성분인 테르펜이 공기 속으로 휘발하면서 나는 것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긴장을 주어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이나 음식으로는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삼림욕은 스트레스의 해소에 큰 도움을 준다. 테르펜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Cortisol)의 분비를 감소시킴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또 심폐기능을 강화시켜 주고 피부를 소독하는 약리작용도 갖고 있다. 따라서 수목의 생육이 왕성한 초여름부터 가을사이에 깊은 숲 안쪽에서 숲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삼림욕은 우리의 심신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열대 지방의 음식에는 여러 가지 향신료가 쓰인다. 이는 맛과 향을 내는 작용뿐만 아니라 덮고 습한 지역에서 활발하게 번식하는 여러 가지 미생물을 죽이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도 숲에서 나는 향기에 관심이 많았다. 동의보감에는 소나무가 ‘허리를 치료하고 기의 부족을 채우며 특히 솔잎은 오장을 편하게 해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피톤사이드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한 데, 특히 한국산 침엽수인 편백(Chamaecyparis obtusa)의 미생물 억제효과에 관심이 높다.

산림욕과 피톤사이드의 효능이 알려진 후 이것을 이용한 치약, 샴푸, 방향제 심지어 생리대와 기저귀도 개발되었다. 자연 현상을 생활에 응용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피톤사이드 산업이 숲을 대신할 수는 없다. 숲이 파괴되면 미생물들이 창궐하게 될 것이다. 중국 광동성에서 창궐했던 사스(SARS)도 숲이 황폐화된 결과가 아닐까라는 물음은 과연 과학자들의 막연한 지레짐작일 뿐일까? (글 : 이정모-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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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는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와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의 동성애적 사랑을 그린 영화로 유명하다. 지금에야 ‘미드나잇 카우보이’나 ‘왕의 남자’처럼 동성애에 대한 영화가 흔하지만, ‘토탈 이클립스’가 개봉되던 1995년만 해도 프랑스의 두 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파괴적인 동성애 행각은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또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천재 시인 랭보로 등장한 것 역시 적잖은 화젯거리가 되었다.

영화에서 랭보로 분한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는 녹색의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다. 이 녹색 술이 19세기를 풍미했던 압생트(Absinthe)란 술이다. 이 술은 1750년대에 스위스에서 처음 제조되어 19세기 중엽에는 전 유럽에서 인기있는 술이 되었다. 모파상, 마네, 피카소, 고흐 등 낭만주의 시인과 화가, 소설가들이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압생트가 이토록 인기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과 사과 맛 브랜디라는 압생트 특유의 멋도 있지만, 이 술 안에 투존(Thujone)이라는 환각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투존은 중추신경에 심각한 장애를 동반하며, 지각장애와 정신착란 그리고 간질과 유사한 발작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성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압생트의 환각성분은 화가들의 예술적 정서를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었다.

물에 희석해 마시는 압생트는 탁한 녹색을 띠며 쓴맛이 난다. 압생트 애호가들은 이 쓴맛을 해결하기 위해 ‘압생트 숟가락’이라는 특별한 은수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먼저 압생트 숟가락을 잔에 걸치고 그 위에 각설탕을 올려놓는다. 이 위로 압생트를 조금 부은 후에, 차가운 물을 서서히 부으면 각설탕 녹은 물이 흘러내려 녹색의 압생트와 섞여 불투명한 액체가 된다. 술의 도수를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쓴맛도 제거해주는 셈이다. 화가들은 흔히 이 절차를 예술 또는 신성한 종교의식에 비유했다. 이처럼 독특한 압생트 희석 방법도 예술가들이 압생트에 매료되는 데에 한몫을 했다.

그 때문에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소설과 그림을 살펴보면 압생트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여럿 찾아낼 수 있다. 19세기 파리에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일과 후 카페로 몰려가 늦은 시간까지 압생트를 마시곤 했다. 그래서 늦은 저녁 시간을 ‘녹색의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알버트 간트너(Albert Gantner)라는 화가는 압생트의 금지를 희화하는 ‘녹색요정의 종말(The end of the Green Fairy)’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는 압생트를 즐겨 마신 나머지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다.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르펜(terpene) 유도체가 함유되어 있다. 고흐의 그림에서는 후기로 갈수록 시각장애나 알코올 중독, 정신착란의 징후가 발견되는데 이처럼 독특한 고흐의 색감에 압생트도 한몫한 셈이다. 특히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머물렀던 아를(Arles)에서 탄생한 그림들에는 기묘하게 혼합된 노랑과 파랑이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고흐는 물감희석용으로 쓰이는 테레펜틴(turpentine)을 마시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테레펜틴에 압생트 성분 중 하나인 투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압생트의 중독 성분 때문에 유럽 각국은 20세기 들어 대부분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던 압생트가 20세기에 들어 잊혀진 술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압생트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즉, 압생트가 화가들을 괴롭힌 치명적인 중독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 영국, 미국의 국제공동연구진은 압생트에 들어 있는 투존이 이러한 증세의 원인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생트가 치명적 독성을 띠고 있다는 소문이 난 데에는 압생트 판매량이 와인 판매량을 초과하자 이를 경계한 프랑스의 와인 제작자들의 로비가 한몫을 했다고 한다. 압생트 제조가 금지되던 20세기 초에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투존의 함량을 측정하기보다는 적당히 예측한 경우가 많았다. 이 당시 화학자들은 압생트의 투존 함유량을 350mg/L(여전히 독성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양이 아님)이라고 추정했는데, 현재의 기술로 같은 압생트의 투존 함량을 정확하게 측정해보면 고작 5mg/L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압생트에 든 독성의 다른 원인을 찾기 위해 메탄올과 알코올, 알데히드의 양을 기체 크로마토그래피로 측정하고, 원자 흡수 분광법으로 구리를, 플라즈마 질량분석기로 안티몬의 양을 측정했다. 이 결과 역시 비교적 깨끗하며 불순물의 양이 거의 없었다. 압생트를 사랑했던 예술가들이 건강을 잃었던 이유는 압생트의 독성 때문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던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와 압생트 팬들의 청원에 힘입어 1988년 마침내 압생트 금지법이 폐지되었다. 이와 함께 일반적인 주류에는 35mg/L 이하의 투존 함유가 허용된다. 2007년에는 마침내 미국에서도 압생트 판매가 자유로워졌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에는 파리의 카페 푸케(Fouquet’s)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라비크와 조앙은 이 카페에서 처음 만나 압생트를 나누어 마신다. 푸케는 파리 샹젤리제에 실제로 있는 카페다. 화가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압생트를 실제로 한번 마셔보는 건 어떨까.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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