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 태안편, 신두리 지리여행(Sinduri Geotravel)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하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과학향기에서 5월부터 새롭게 지리여행을 테마로 한 칼럼을 마련했습니다.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은 평소 익숙한 곳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꾸며 매월 마지막 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서해안 지도를 들여다보면 바다 쪽으로 도드라져 나온 부분이 보인다. 태안반도다. 손으로 따라 그리기도 어려운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예술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굴곡진 해안. 그 속에는 어떤 얘기가 담겨 있을까?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하자.

충남 태안은 볼 곳이 천지다. 530km의 리아스식 해안 전부가 명소다. 드넓은 해수욕장이 30여 개나 있다. 섬도 백 개가 넘는다. 그래서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최근 100km가 넘는 해변길이 조성되면서 사람들이 더 몰려들고 있다.

이런 태안의 해안이지만 이중에도 으뜸은 있다. 원북면에 위치한 신두해변이다(사진 1, 2). 신두해변은 우리가 잘 아는 만리포에서 1시 방향으로 7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 없는 두 가지 볼거리가 있다. 천연기념물인 신두사구(薪斗砂丘)와 람사르습지*인 두웅습지가 바로 그것. 이 둘은 신두리 지리여행의 핵심 콘텐츠다. 신두사구는 국내 최대의 해안사구이며, 두웅습지는 국내 제일의 해안배후습지다.

 


사진 1. 신두사구에서 바라다 본 신두해변의 모습. 광활한 넓이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사진 2. 구글어스에서 본 신두해변과 신두사구의 모습. 신두사구 전체면적 중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지역은 파란색 안쪽 구간이다. 사진 오른편으로 두웅습지와 사구센터가 보인다.


본디 신두해변을 따라 펼쳐진 사구의 전체 길이는 3.5km. 이중 ‘한국의 사막’으로 불리는 천연기념물(제431호, 2001년 지정) 구역은 신두사구 북쪽의 길이 1.5km, 최대 폭 1.3km 구간이다. 최대 높이 19m1를 정점으로 하여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사구가 장관이다(사진 3). 신두사구는 북서풍을 정면으로 받는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북서계절풍이라는 탁월풍이 신두사구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겨울에 이 사구는 성장한다.


사진 3. 신두사구의 모습. 사진 상부의 모래 노출부분은 사구경관의 복원을 위해 인위적으로 식생을 걷어낸 지역이다. 사진 하부에 모래포집기가 보인다.


신두사구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갑자기 신구사구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사구는 보통 마지막 빙기인 뷔름(Würm) 빙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고사구(古砂丘), 그 이후를 현생사구(現生砂丘)라 부른다. 약 1만 년 전부터 쌓이기 시작한 후빙기의 현생사구층이 수십만 년 전 최후간빙기 때 형성된 두터운 고사구층을 덮어 지금의 사구를 만들고 있다. 신두사구도 현생사구 밑에 고사구가 자리하고 있다. 그 증거로 신두사구에서 발견되는 적색 모래층을 들 수 있다.2 적색 모래층은 고사구 모래층으로 현생사구의 밝은 모래층과 구분된다. 모래가 붉은 색을 띠는 이유는 풍화를 받은 산화철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두사구 남쪽에는 해안 배후습지가 있다. 길이 200m, 폭 100m. 수심 3m의 두웅습지다(사진 4). 사구 후면에 발달되어 있어 사구배후습지라고도 불린다. 규모가 작은 두웅습지지만 이 습지는 우리나라 해안사구에 인접한 습지로는 규모가 제일 크고 멸종위기종인 맹꽁이와 금개구리, 표범장지뱀을 비롯한 수백 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람사르습지로 등록돼 있다. 두웅습지는 희귀 야생동식물의 보금자리이자 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둘도 없이 귀중한 생태학습장이다.


사진 4. 신두사구 남쪽에 위치한 두웅습지. 우리나라 제일의 해안 배후습지로 람사르습지로 등록돼 있는 생태계 보고지역이다.


두웅습지 형성은 신두사구 형성과 궤를 같이 한다. 사구가 만들어지면서 모래 속으로 오랜 시간동안 빗물이 들어가 지하수가 됐고, 그 지하수가 지대가 낮은 사구 뒤편으로 모여들어 사구배후습지를 만들었다. 두웅습지를 둘러싼 주변의 낮은 구릉지는 두웅습지로 물을 지속 공급하고 있는 물탱크다(사진 5). 여기서 새로운 사실 한 가지. 1919년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지형도를 보면 ‘두웅’이 아니라 ‘두응(斗應)’으로 표기돼 있다. 만약 발음의 편리상 두응이 두웅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라면 당장 두응으로 바로 잡을 일이다.


사진 5. 두웅습지와 두웅습지 유역 분수계(파란색). 동서로 발달된 유역 하부에 두웅습지가 놓여 있다. 두웅습지는 신두사구 지하수와 연결되어 물을 공급받고 있기도 하다(네이버 지도 사용).


원래 신두사구 주변 지형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림 1(a)에서 보듯 지금은 신두사구 주변이 방조제로 전부 막혀 있으나 1919년 당시만 해도 신두해변 북쪽과 남쪽은 만(灣)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림 1(b)). 해안으로 몰려든 연안류가 자유롭게 신두해변 위 아래로 들락거리며 앞쪽 해안에는 모래를, 뒤쪽 만에는 펄을 쌓아 각각 사빈(sand beach, 강에서 운반된 모래 또는 해안 침식으로 생긴 모래가 퇴적돼 만들어진 모래해안)과 갯벌을 만들었다. 반복된 밀물과 썰물의 분급(分級)작용*이 신두사구를 건강하게 유지, 발달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신두해변 주변에 방조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그림 1(b)의 흰색선). 그 결과 바닷물의 흐름이 막혀 토사의 퇴적환경이 크게 바뀌고 말았다. 만이 사라지는 바람에 펄이 쌓일 장소가 없어져 신두해변에 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사구로 불어드는 모래량이 방해받기 시작했다. 현생사구의 형성 메커니즘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림 1. 신두해변의 현재(a)와 1919년 당시의 과거 모습(b). 원래 신두해변은 바닷물이 위 아래로 자유롭게 입출입 할 수 있는 만(灣)이었으나 1970년대 후반의 간척사업으로 인해 방조제로 막히게 되었다(흰색선). A는 신두리, B는 의항, C는 구룡포, D는 백리포를 나타낸 것이다(다음 지도 사용).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두사구는 버려진 구석진 땅이었다. 공사용 모래더미였다. 모래 선별기가 동원돼 트럭에다 모래를 쓸어 담을 정도였으니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신두사구의 대부분이 사유지인 탓에 천연기념물 지정도 어려웠다. 토지 소유주가 일부러 쓰레기를 투척하기도 했었다. 지금의 신두사구는 이를 이겨낸 민과 관의 합작품인 것이다.

최근 또다시 신두사구 보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사구를 뒤덮고 있는 식생을 걷어내 신두사구를 사구답게 복원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돗토리사구가 멘토다(사진 6). 1994년부터 사구 잡초를 자원봉사자들 맨손으로 걷어내 사구를 훌륭하게 복원시킨 그들의 자부심이 부럽다. 현재 태안군도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사구 후면부의 초지 1/3 가량을 제거, 자연 본래의 사구경관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 6. 일본의 돗토리사구 모습. 해발고도가 98m나 돼 우리나라의 사구와는 경관적으로 차이가 난다.



사실 신두사구 보존의 근본적 문제는 사구의 절대 면적 감소 우려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신두해안에는 모래 포집기를 설치해 모래 알갱이를 모으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사진 7). 올해엔 포집기가 잡은 모래를 사구 후면부로 이동시킬 목적으로 전사구(前砂丘, foredune, 사구의 전면부를 말함)의 식생 일부를 걷어낼 예정이다. 사구 전역에 퍼져있는 곰솔(해송의 일종) 처리도 골칫거리다. 신두사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폐철망과 폐목 등 쓰레기는 차라리 애교다. 사구를 따라 맨땅이 노출된 채 흉물스레 길게 방치돼 있는 옛 차도는 신두사구 복원을 위한 최대 걸림돌이다.


사진 7. 신두해변의 모래포집기. 충남 태안에는 해안사구 보존을 위해 해변 곳곳에 이와 같은 모래포집기가 설치돼 있다. 이는 바람에 의해 운반된 모래를 사구에 쌓이게 할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작년 말 신두사구 초입에 사구센터가 건립됐다. 여행객들이 국가생태관광지로 지정된 신두사구의 자연을 제대로 즐기게끔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도 개관이 지연되고 있다. 사구센터의 콘텐츠가 미비한 탓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거대한 하드웨어가 아니다. 일본의 돗토리 사구센터에서 보듯 아기자기한 손때 묻은 친절히 설명된 자료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모래를 만지며 뛰어 놀 수 있는 체험 사구센터, 우리나라와 세계의 유명 사구를 학습할 수 있는 생태 사구센터로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신두리 지리여행의 핵심은 바로 사구센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용어 해설>
* 람사르습지: 물새 및 생물종 다양성 보존을 위해 람사르협약에 의거, 지정된 습지. 람사르협약은 1971년 이란의 해안도시 람사르에서 맺어진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다.
* 분급작용(分級作用, sorting): 입자 크기가 큰 것은 큰 것끼리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나뉘어 쌓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입자의 침강 속도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인용 자료>
1. 태안군, 신두사구 보전 및 활용방안, p.476.
2. 강대균, 2003, 해안사구의 물질 구성과 플라이스토세층 -충청남도 해안을 중심으로-, 대한지리학회지, 38-4, 505-517.
3. 구글어스 지도
4. 네이버 지도
5. 다음 지도

 


글: 박종관,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http://jotra.com), 문화체육관광부 생태관광컨설팅위원장(MP)
사진: 박종관 교수 제공


[추천 여행지]
태안에는 명소가 많다. 위에서 소개한 신두리해변을 비롯한 만리포, 몽산포, 청포대 해수욕장부터 국내 유일의 소나무 단순림인 안면도 자연휴양림에 이르기까지 볼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그 중 탁 트인 바다와 소나무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태안 해변길을 소개하기로 한다.
태안 해변길은 태안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이원면 만대항에서 안면도까지 태안군 전역에 걸쳐 약 100km, 8개 코스로 조성된 생태 탐방로다. 바라길, 소원길, 파도길, 솔모랫길,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 천사길로 이뤄져 있다.
학암포 해수욕장에서 신두리해변까지 이어지는 바라길은 태안 해변길 1코스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바라길이 시작되는 학암포자연관찰로에서는 다양한 동식물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어,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주요지점으로는 구례포 해변, 먼동해변, 모재쉼터, 신두리해변, 두웅습지가 있다.
소원길은 2007년 원유유출사고로 아픔을 겪었던 장소다. 130만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의 땀과 노력으로 제 모습을 찾은 곳이다. 신두리해변에서 시작해 만리포까지 이어지는 22km의 소원길은 조선시대 성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소근진성, 고깃배가 오가는 의항항, 세계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된 천리포수목원을 만날 수 있다.
넓고 시원한 바다와 울창한 소나무 숲, 넉넉한 풍경의 농어촌 마을은 여행객에게 좋은 휴식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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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유출 사고, 해양 생물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늘날 바다는 유류, 중금속, 방사성물질, 합성 화학물질 등 각종 오염물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 기름은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오염물질보다 관심도가 높다. 원유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이지만,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해상으로 유출되면 해양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독이 된다. 뿐만 아니라 수산․양식업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며, 해양관광 등 해양관련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준다.

지난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만리포 인근 해상에서 선박의 충돌로 인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해양경찰청의 자료에 의하면 사고 당시 원유운반선 허베이스피릿(Hebei Spirit)호에서 유출된 원유는 12,547㎘나 된다. 100만 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걸레를 들고 기름을 닦아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고로 양식장과 어장, 해수욕장이 큰 피해를 입었고, 약 170㎞에 달하는 해안이 기름으로 뒤덮여 생태계가 훼손됐다.

검은 파도가 밀려오던 바닷가를 기억해 보라. 바닷물에 둥둥 뜬 기름은 해안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 놓았다. 파도는 끈적이는 기름으로 하얀 포말을 만들기도 힘겹다. 은빛으로 반짝이던 모래는 빛을 잃고, 바닷가 생명체는 검은 파도의 재앙에 속수무책이었다. 온몸에 시커먼 기름을 덮어쓴 채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바닷새에게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태안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난지 어언 5년이 되어간다. 이 사고는 해양생태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1995년 7월 23일 전라남도 여천군 소리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고의 예에서 태안 해양생태계의 미래를 유추해볼 수 있다. 시프린스호 사고 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조사한 결과 방제 활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피해 지역 중 일부에서는 계속 잔존유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름유출 사고가 나면 해양생물은 어떤 피해를 입을까? 사고 시 유출된 기름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도 있고, 사고 후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나타나는 장기적인 피해도 있다. 직접적인 피해는 기름의 물리적인 특성과 화학적 성분에 의해 발생한다. 물리적인 피해는 원유나 벙커유 등 점성이 큰 기름 때문에 질식하거나 체온이 떨어져 사망하는 경우다. 아가미에 유출유가 달라붙으면 어류는 호흡을 하지 못해 질식사한다. 항온동물인 해양조류는 깃털에 기름이 묻으면 방수성과 보온성이 떨어져 저체온으로 죽는다.

1967년 유조선 토리캐년호 사고로 인해 10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가 사망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해안 석유시설의 파괴로 바닷새 수 만 마리가 죽기도 했다. 한편 해수 표면에 만들어진 유막은 대기와 해수 간에 산소 교환을 방해해 용존산소량을 감소시켜 해양생물의 호흡에 영향을 미치며, 햇빛 투과량을 줄여 해조류나 식물플랑크톤의 광합성을 저해한다.



[그림 1]2007년 12월 기름유출사고 직후 해안선이 오염된 태안반도(좌)와 2011년 6월 태안반도의 모습(우). 사진 출처 : 동아일보

화학적인 피해는 기름에 포함된 방향족 탄화수소 등의 독성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다. 원유와 정제된 기름의 수용성 성분 중에는 생물에게 해를 미치는 각종 유독물질이 포함돼 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방향족 탄화수소는 지방족 탄화수소보다 독성이 강하다. 벤젠이나 톨루엔 등 저분자 방향족 탄화수소는 물에 잘 녹으며 생물의 세포막을 파괴하고 효소나 구조단백질에 영향을 미친다. 지방족 탄화수소는 마취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자량이 적은 화합물은 독성이 강하나, 사고 직후 공기 중으로 빨리 휘발해 버리므로 그나마 다행이다.

원유는 탄소원자를 가진 각종 탄화수소의 혼합물이다. 분자의 구조는 직선형, 가지형, 또는 방향족 탄화수소처럼 고리형인 것 등 다양하다. 원유는 박테리아, 효모나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직선형, 가지형 탄화수소는 비교적 빨리 분해되고 고리형 탄화수소는 이보다 느리게, 분자량이 큰 타르는 아주 느리게 분해된다. 기름 중 탄소수가 적은 지방족 탄화수소나 방향족 탄화수소는 미생물에 의해 수개월 내 분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분자량이 크고 구조가 복잡한 탄화수소는 분해가 늦거나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다.

다환방향족 탄화수소(PAH)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고리가 3개 이상인 것은 분해속도가 느려 오랫동안 잔류한다. 미생물 대신 오염물질에 대한 내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갯지렁이류나 연체동물들에 의해 다환방향족 탄화수소가 분해되는 것이 밝혀진 바도 있다. 이처럼 해양생태계는 기름에 대한 자연정화능력이 어느 정도 있지만, 사고로 다량의 원유가 유출될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기름은 유출되면 해수면에 얇은 막을 만들며 퍼져나간다. 가벼운 기름일수록 유막의 두께가 얇고 빨리 분산된다. 유출된 기름 중에 분자량이 적은 것은 휘발하고, 수용성 성분은 해수에 녹으며,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은 유화되어 작은 방울 형태로 된다. 기름이 유화되면 마치 녹은 초콜릿처럼 보이며, 아주 끈적끈적해 해안으로 밀려오면 조간대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유 성분 중에 무거운 부분은 타르볼(tar balls)을 형성한다.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보일만큼 아주 작은 유화된 기름방울은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가 쉽게 일어난다. 그러나 큰 타르볼은 느리게 분해돼 기름유출 사고가 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영향을 미친다.

1989년 3월 24일 알래스카의 프린스윌리엄즈 해협에서 발생한 엑슨발데즈(Exxon Valdez)호 기름유출 사고의 예에서 보면 10년이 지난 후에도 몇몇 조건대와 조하대에서 유출유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렇듯 엎질러진 기름을 다시 주워 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고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고를 미연에 막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글 :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1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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