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는 세상

한 사람이 성큼성큼 편의점에 들어선다. 물건은 고르지 않는다. 곧장 계산대로 향한다. 웃옷 오른쪽 주머니에서 손을 반쯤 꺼낸다. 오른손은 권총 손잡이를 쥐고 있다. 편의점 종업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턱으로 매장 안쪽을 가리킨다. 강도의 눈길도 턱이 가리킨 쪽을 향한다. 음료수 냉장고 앞에 선 경찰관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강도를 향해 고개를 젓는다. 강도는 경찰관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편의점 문을 향해 내달린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빅데이터의 힘이다. 영화 ‘마이터리티 리포트’에서는 예지몽을 꾸는 세 자매가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징후를 포착했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하지만 영화 같은 일은 나타난다.

로스엔젤레스 경찰청(LAPD)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범죄 발생 가능성을 점치는 범죄 예측 프로그램(Predictive Policing)을 개발했다. 이미 벌어진 범죄 종류와 범행 시간과 장소를 분석해 범죄 발생 확률을 실시간으로 순찰차에 보낸다. 순찰 중인 경찰관은 범죄 발생 확률이 높은 지역을 알아내 그 곳을 집중적으로 순찰했다¹.

경찰이 빅데이터를 순찰 근무에 활용하자 범죄 발생 건수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절도사건은 33%, 폭행 사건도 21%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는 9년 동안 이어졌다. 애초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한 것이다. 경찰이 추구하는 최선의 결과다. 로스엔젤레스 경찰이 꿈을 실현해낸 힘은 빅데이터다.

■ 빅데이터 = 4V

빅데이터(big data)는 말 그대로 엄청나게 거대한 데이터를 뜻한다. 생활이 디지털로 이뤄지면서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쏟아낸다. 2012년 한 해 동안 인류가 만든 데이터 양은 2.8제타바이트(ZB)였다. 그동안 인류가 생산한 모든 데이터보다 많다. 데이터가 너무 많은 탓에 이를 유용한 정보로 가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컴퓨터 성능이 발전하고 클라우드 서비스와 하둡(Hadoop, 여러 개의 저렴한 컴퓨터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묶어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 같은 분석 도구가 상용화돼 대용량 정보를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방대한 데이터 속에 파묻힌 의미를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단순히 데이터가 많다고 모두 빅데이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전문가는 빅데이터가 크게 네 가지 특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물론 크기(Volume)다. 빅데이터는 페타바이트(PB) 정도 크기를 지닌다. 1페타바이트는 1,024테라바이트(TB)다.

두 번째 조건은 다양성(Variety)이다. 빅데이터는 컴퓨터가 손쉽게 분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DB)로 정리된 정형 데이터뿐 아니라 동영상이나 사진, 사람이 쓴 자연어 와 같은 비정형 데이터도 포함한다. 컴퓨터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형 데이터도 DB처럼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어 처리, 컴퓨터 비전, 기계 학습 같은 데이터 처리 기술이 필요하다.

속도(Velocity)가 세 번째 조건이다. 컴퓨터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분석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들면 소용없다. 시간도 비용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해 분석해내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또는 일정 안에 처리해야 한다.

요약해 보자. 빅데이터는 마냥 큰 데이터가 아니다. 그런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해 의미 있는 정보를 얻어내는 기술이다. 그런데 빅데이터가 왜 필요할까.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구슬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자료가 많아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래서 빅데이터가 지녀야 할 마지막 조건으로 가치(Value)를 꼽는 이도 있다. 일명 ‘4V’다.

■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다

빅데이터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분석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장님 코끼리 더듬듯 직감에 의존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대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일을 벌일 수 있다.

빅데이터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분야는 마케팅이다. 광고나 홍보 담당자는 사람들의 숨겨진 욕구를 끄집어 내 물건을 팔기 위해 계속 시장 조사를 벌인다. 빅데이터는 굳이 소비자에게 설문지를 들이밀지 않아도 그 사람의 생각을 엿볼 길을 연다.

감기약 만드는 회사가 광고를 만든다고 치자. 제약 기술이 발전해 약 효능은 다 비슷비슷하다. 결국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 제약 회사는 빅데이터 분석을 의뢰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사람들이 감기 걸렸을 때 올린 글 수 백만건을 수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기 환자가 ‘서럽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감기’와 ‘혼자’가 함께 들어간 문장을 보면 ‘서럽다’는 단어가 나올 확률이 퍽 높아졌다. 이 회사는 자사 제품이 혼자 사는 마당에 감기까지 걸려서 서러운 이를 엄마 손처럼 보듬는다는 광고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다. 홀로 감기에 시달려본 사람은 이 광고에 공감할 가능성이 커진다. 소비자에게 선택 받을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다.

전문가의 ‘촉’에 많이 기대는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도 데이터가 힘을 발휘한다. 미국에서 주문형 스트리밍 방송을 제공하는 넷플릭스(Netflix)는 고객 정보를 철저하게 분석해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공급한다. 처음엔 볼 만한 영화를 추천해주는데 그쳤던 빅데이터 분석 기술은 발전을 거듭했다. 넷플릭스는 자체 분석 알고리즘으로 고객이 무슨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는지 알아내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었다. 유명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다.

스토리와 감독, 배우 모두 고객 입맛에 맞췄다. 심지어 드라마 한 시즌을 몰아보는 고객의 소비 패턴에 맞춰 개봉일 드라마 13화 모두를 공개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덕분에 넷플릭스는 2013년 1분기에만 300만 명이 넘는 고객을 끌어 모았다. 같은 해 매출은 37억 5천만 달러, 창사 이래 최대치였다. 부진한 실적 때문에 한때 나스닥에서 쫓겨날 지도 모를 처지였던 넷플릭스는 빅데이터 덕분에 타임워너에 맞먹는 미디어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글머리에 보여준 로스엔젤레스 경찰처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택시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쏘는 운행 정보를 분석해 구간별 실시간 교통 상황을 전하는 서비스는 이제 당연하게 쓰인다.

■ 모바일에서 웨어러블로…, 살아 숨 쉬는 모든 일이 데이터가 되는 세상

빅데이터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일상생활 속에서 데이터를 만드는 기기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실린 센서는 사용자 위치 정보뿐 아니라 그곳의 온도와 습도도 측정한다. 이런 정보를 모으면 기상청보다 더 정확한 실시간 날씨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애플 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보급되면 더 많은 정보가 쏟아질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에는 맥박이나 혈압 같은 생체 정보를 측정하는 센서가 실린다. 이런 데이터가 쌓이면 무궁무진한 일을 할 수 있다. 보험회사는 고객의 생체 정보를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보험요율(Premium Rate)을 조정할 수 있다. 술을 자주 먹는 고객은 보험료를 올리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고객은 보험료를 내리는 식이다. 음주 횟수가 많아지면 사고를 당할 확률이 커진다는 빅데이터 분석이 전제가 된다. 병원에서는 웨어러블 기기를 찬 환자가 갑자기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변하면 이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역시 특정 이상 징후가 어떤 질병의 전조라는 분석 결과를 활용하는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Gartner, 미국 IT분야 리서치 & 어드바이저리 전문 업체)는 “데이터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 원유”라고 빗대며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만간 빅데이터라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모두가 빅데이터 기술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꾸릴 테니 말이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빅데이터 분석은 컴퓨터가 할 일이지만,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 어디에 활용할지 결정하는 일은 사람이 할 일이다. 통계와 컴퓨터 과학을 아우르면서 사회적인 면도 고려할 줄 아는 통섭적인 인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참고 자료>
1) Predictive Policing 웹사이트 : http://www.predpol.com/

글 : 안상욱 블로터닷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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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와 IT기술의 융합, DNA 컴퓨터의 탄생

1953년 왓슨과 크릭은 유전자의 본체인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다.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전통 생물학은 분자생물학으로 급격하게 재편됐고, 오늘날에는 물리학과 화학, 공학과 융합되면서 가장 촉망받는 21세기 학문분야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DNA가 새로운 컴퓨터의 세계를 열만큼 공학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DNA와 IT 기술 융합이 시도되는 것일까?

1946년 에니악(ENIAC)이 탄생했다.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였지만 무게가 30톤에 성능은 오늘날 싸구려 계산기보다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분자생물학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실리콘 컴퓨터는 지난 60여 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며 체스나 그림처럼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간주됐던 분야까지 잠식해 들어 왔다.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반도체 메모리의 집적도가 증가한데 힘입음 바가 크다. 그러나 실리콘 컴퓨터의 미래가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는 것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 곧 그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DNA 컴퓨터다.

DNA 컴퓨터는 말 그대로 DNA 분자를 이용하는 분자컴퓨터(molecular computer)다. DNA 컴퓨터는 분자들의 결합을 이용한 것인데, 컴퓨터 공학자인 아들만(Leonardo M. Adleman)이 1994년 고안해 냈다. 아들만은 DNA가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마치 컴퓨터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DNA 컴퓨터를 착안해 냈다.

DNA는 인산과 당, 염기로 구성된 뉴클레오티드가 길게 결합한 분자로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사이토신) 4가지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DNA 분자들은 스스로 조립되는 자기조립 능력, 다른 분자를 인식해서 결합하는 분자 인식 능력, 그리고 자기 복제 능력이 있어 정보를 전달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즉 실리콘 컴퓨터에서 ‘0’과 ‘1’을 이용해 2진수로 계산을 하듯 DNA에서는 A, T, G, C의 4개의 염기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한다. DNA의 특징은 A와 T, G와 C가 서로 상보적인 결합을 한다는 점인데 이것을 이용하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DNA 컴퓨터는 폰노이만 구조의 컴퓨터처럼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인 계산방식을 사용한다. DNA 분자 개개의 결합 속도는 느리지만 3차원으로 배열된 엄청난 수의 분자들이 동시에 반응에 참여하는 병렬 연산을 통해 연산 속도를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이는 마치 1,011개의 뉴런이 1,014개의 시냅스 연결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의 뇌가 수많은 뉴런을 동시에 연산에 참여시키는 병렬 연산을 통해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와 같이 기존의 실리콘 컴퓨터가 가지지 못한 인간의 뇌가 가진 장점을 모방한 것이 바로 DNA 컴퓨터다.

또한 건조된 DNA 1g으로 CD 1조 장의 정보를 저장할 만큼 대용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으며 반도체 컴퓨터에 비해 전력소모가 매우 적다는 것도 DNA 컴퓨터의 매력이다. 아들만은 DNA 컴퓨터로 외판원 문제(외판원이 각 도시를 모두 경유하는 최소한의 경로를 찾는 문제)를 해결해 DNA 컴퓨터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아들만 이후 한동안 새로운 개념의 DNA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사실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DNA 컴퓨터를 생각만큼 빠르게 만들기 어렵고 생화학적 분자들을 에러 없이 제어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실리콘 컴퓨터의 발전도 꾸준히 이루어져 실용적인 측면에서 DNA 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DNA 컴퓨터는 단순히 빠른 연산을 하는 것 이상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DNA를 이용하면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재료를 만들 수 있다. 그 재료는 바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이다. 그래핀은 실리콘 보다 100배 이상 전하를 잘 전달하면서도 강도가 우수하기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 재료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원자 하나 두께인 그래핀을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미국의 스탠퍼드대에서는 자연의 분자 조립자인 DNA를 이용해 그래핀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포스텍에서는 백금 이온이 DNA의 인산기와 잘 결합하는 성질을 이용해 ‘DNA-그래핀 하이브리드’ 물질을 개발하기도 했다. 고가의 백금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효율이 좋은 백금촉매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 것은 DNA 분자의 폭이 3.4나노미터(nm)로 미세하면서도 분자를 효과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로봇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DNA 컴퓨터가 보여주는 놀라운 미래의 모습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DNA 컴퓨터는 영화 ‘이너스페이스’에서와 같이 소형 잠수정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가 병을 치료하는 것을 실현시켜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존의 로봇 공학으로는 이렇게 작은 분자 로봇을 만들 수 없었으며 여러 가지 물리적인 이유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도 등장하기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DNA 컴퓨터는 정확하게 프로그램에 따라 세포를 찾아내 명령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세포와 다른 암 세포를 발견하고 죽일 수 있다. 즉 프로그램 된 DNA 컴퓨터가 주사를 통해 사람의 몸속으로 투입되면 암세포를 발견하고 결합한 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DNA 컴퓨터는 사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나노로봇의 개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병에 걸리면 우리 몸에 투입된 수많은 DNA 로봇들이 병균을 격퇴하게 되는 꿈과 같은 일이 DNA 컴퓨팅의 미래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DNA를 만들어 냈고, 인간은 DNA로 새로운 컴퓨터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글 :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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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먹은 사과 로고의 영감을 제시한 튜링은 누구?

1954년 6월 7일, 한 남자가 자신의 방에 쓰려져 있다. 그의 옆에는 베어 먹은 사과가 뒹굴고 있다. 이 사과에는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주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남자는 당대 유능한 과학자로 꼽히던 알란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다.

여기서 잠시, ‘베어 먹은 사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바로 오늘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폰, 아이패드 등에 찍혀 있는 애플사의 로고다. 이 로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알란 튜링을 추모하고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알란 튜링의 가장 큰 업적은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인 모델을 최초로 고안한 것이다. 그래서 튜링은 오늘날 컴퓨터의 아버지, 인공지능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림 1]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 된 ‘튜링머신’을 고안한 알란 튜링. 사진 출처 : 런던국립초상화갤러리
1936년 5월 28일, 튜링은 런던 수리학회(London Mathematical Society)에 <계산 가능한 수에 대해서, 수리명제 자동생성 문제에 응용하면서(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한다. 이 논문에는 현대 컴퓨터의 근본적인 디자인이 실려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 학부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치고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실제 이 논문은 미국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의 증명을 새롭게 재 증명한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괴델의 증명은 기계적인 방식으로는 수학의 모든 사실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튜링은 이를 재증명하면서 간단한 기계부품들로 이론적인 기계를 만들었다.

이 이론적인 기계는 모두 다섯 가지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무한한 칸을 가진 테이프, 테이프에 기록되는 기호들, 테이프에 기록된 기호를 읽거나 쓰는 장치, 그 장치의 상태들, 기계의 작동규칙표가 그것이다. 이 기계에 일정한 작동규칙을 부여해 정해진 계산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 기계의 놀라운 점은 임의로 정한 작동규칙표에 따라 무한한 칸을 가진 테이프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동규칙표는 테이프에 표현된 기계의 정의를 이해하고 그 동작을 그대로 흉내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이로써 하나의 컴퓨터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컴퓨터의 핵심 능력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기계는 수학 원리로 구성된 가상 기계 ‘튜링머신’이다. 튜링머신은 순서에 따라 계산이나 논리 조작을 행하는 장치로, 적절한 기억 장소와 작동규칙표만 주어진다면 어떠한 계산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튜링이 정의한 기계부품들은 현대 컴퓨터에 대입할 수 있다. 테이프는 메모리칩으로, 테이프에 읽고 쓰는 장치는 메모리칩과 입출력 장치로, 작동규칙표는 CPU로 구현됐다. 작동규칙표만 만들어 메모리에 넣어주면 컴퓨터는 그 소프트웨어의 정의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튜링머신은 현대 컴퓨터의 시초가 됐다.


[그림 2] 1943년 제작된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 ‘콜로서스’가 영국 브래츨리 파크에 재건됐다. 사진 출처 : 플리커
튜링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전쟁 당시 암호 해독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암호기계인 ‘에니그마(Enigma)’를 사용해 교신을 하고 있었다. 독일과 대척점에 서 있던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연합국은 당시 악마의 발명품으로 불리던 에니그마의 암호를 풀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영국은 독일의 암호를 풀기 위해 우수한 과학자들을 모았다. 튜링은 이 계획에 참가해 암호를 풀기 위한 기계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결국 1943년 12월에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Colossus)’를 만들어 1944년 봄, 암호 해독에 성공한다.

콜로서스는 ‘거인’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높이가 3m나 되고 진공관 2,400개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1초당 5,000자를 천공할 수 있어 에니그마의 암호와 일치할 때까지 비교하는 방식으로 암호를 해독했다. 콜로서스의 개발은 결국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튜링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튜링은 이렇듯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 이유는 당시 영국사회에서 범죄로 취급받던 ‘동성애’ 때문이었다. 2009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고든 브라운(Gorden Brown)은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받았던 점을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가 죽은 뒤 55년만이었다. 미국컴퓨터협회(ACM)는 1966년부터 매년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에게 주는 상을 ‘튜링상’이라고 부르며 그를 기리고 있다.

여느 비운의 천재 과학자들이 그러했듯, 살아생전보다 죽은 이후 그의 업적이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튜링이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모델을 고안한 지 2011년 올해로 57년, 이제 컴퓨터 없는 일상은 생각할 수 없다. 그에게 새삼 감사를 표한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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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컴퓨터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 게임이론을 창시한 사람, 인공생명체의 가능성을 연구한 사람,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 이 모든 일과 관계된 사람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 주인공이 바로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존 폰 노이만’(1903~1957)이다. 1903년 12월 28일 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디지털 시대는 상당히 늦게 시작됐을 것이다.

노이만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10살 때 김나지움 학교에 들어가자 그의 재능을 알아 본 한 교사가 부다페스트대 출신의 수학자 미차엘 페케테에게 정기적으로 개인교습을 받도록 추천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공동저자로 수학학술지에 논문을 싣기도 했다.

1930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노이만은 미국 프린스턴대학 객원교수의 자격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는 헝가리가 나치의 편이 되는 것을 우려했고 거기에 휩쓸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핵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이 역시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

노이만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수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특히 1944년 오스카르 모르겐슈타인과 ‘게임과 경제행동 이론’을 저술해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창시했다. 그들은 게임에도 최선의 방법이 존재하며 수학적으로 그 과정을 증명해 냈다.

또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아담 스미스의 ‘개인의 최대 이익이 곧 전체의 최대 이익’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입장을 완전히 뒤엎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노이만의 순수연구는 정세가 급박해지면서 점차 응용분야로 확장돼 갔다. 1941년에는 전쟁과 관련된 연구가 전체 연구 시간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는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에 깊이 개입하면서 컴퓨터 개발의 역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기게 된다. 당시 원자폭탄과 관련된 다양한 모의실험을 위해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이만이 제안한 것은 바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다. 노이만은 1944년 애니악(ANIAC) 개발에 참여하다가 컴퓨터에 다른 일을 시키려면 전기회로를 모두 바꿔줘야 하는 불편함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프로그램 내장방식이란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중앙처리장치(CPU) 옆에 기억장치(memory)를 붙인 것인데, 프로그램과 자료를 기억장치에 저장해 놓았다가 사람이 실행시키는 명령에 따라 작업을 차례로 불러내어 처리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에니악 컴퓨터는 작업을 할 때마다 전기회로를 바꿔 끼워야 했지만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에서는 소프트웨어만 바꿔 끼우면 되는 셈이다.

<폰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오늘날 컴퓨터의 발
전에 크게 기여했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도 노이만의 개념에 따라 설계되고 있다. 노이만의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 이 개념은 굉장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컴퓨터 운영은 작업에 따라 계산 알고리듬을 개발하고 이에 맞춰 진공관을 일일이 교체하거나 종이테이프를 이용해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교체하는 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마침내 노이만의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실에서 공부했던 영국 유학생 모리스 윌크스가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에드삭(EDSAC) 컴퓨터를 개발함으로써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방식 컴퓨터가 탄생했다.

노이만은 물리학에도 관심을 갖고 맨해튼 프로젝트뿐 아니라 수소폭탄 개발계획에도 참여했다. 플루토늄의 내파 비율에 관한 그의 계산 방식은 원자탄을 개발한 핵 과학자들이 과거 수차례 실패한 실험을 교정해줬다.

1945년 8월, 이론적인 핵폭탄 위력이 일본에서 대참사로 나타나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류를 위해 이바지한다고 믿었던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인류의 생명을 앗아가는 잔혹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손에 묻은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며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 핵무기 폐기를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했다. 또 핵폭탄 개발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레오 질라드는 아예 전공을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꿔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노이만은 끝까지 핵폭탄 개발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는 “미국이 강력한 무장을 해야 한다”며 “소련에 수소폭탄을 투하해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을 사전에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행동은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 줬다. 노이만은 1957년 골수암으로 숨을 거뒀는데, 그가 수소폭탄 실험에 직접 참관한 것이 암에 걸린 원인으로 알려졌다.

노이만의 게임이론으로 두 나라의 핵개발 문제를 살펴봤을 때 가장 좋은 선택은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알았을 노이만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개발을 왜 옹호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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