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역사]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운의 여객기, 콩코드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3년 11월 26일, 스물일곱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존재가 있다. 동료들에 비해 속도가 2배나 빠르지만 식성도 2배가 넘으며 너무 시끄러워서 요주의 대상이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는 격찬을 받았으면서도 결국엔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다.

콩코드의 삶을 들여다보기 전에 에어라이너(airliner), 즉 여객기의 역사부터 잠깐 살펴보자.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동력에 의해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기계를 최초로 발명하고 1906년 특허를 획득했다. 그로부터 8년밖에 지나지 않은 1914년, 러시아는 최초로 ‘여객기’를 개발해 16명의 승객을 태우고 상업적인 운항을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같은 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지만 이후로도 여객기의 개발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1919년에는 독일이 최초로 금속을 이용해 동체를 제작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일이 가능해졌다.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도 이에 질세라 더 크고 더 무거운 비행기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중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뤄낸 나라는 미국이었다. 1932년에 이미 두 겹의 날개로 된 기존의 쌍엽기를 탈피, 윤기가 흐르는 현대적인 단엽 여객기를 개발했고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인력과 장비를 수송하는 데 여객기를 투입해 전투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를 제작하고 세계 여객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미국의 비행기 산업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항공기법인(BAC)과 프랑스 쉬드아비아시옹(Sud-Aviation)사는 1962년 11월 29일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적으로 다툼이 그치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지만 미국의 독주를 막고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이듬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비행기의 이름으로 ‘조화, 협력, 화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 ‘콩코르드(Concorde)’를 제안했고, 영국의 의견을 반영해 결국 끝의 e가 빠진 영어 단어 ‘콩코드(Concord)’로 확정됐다가 나중에 다시 e가 붙었다. 양국의 풍성한 지원과 연구진의 왕성한 의욕이 만나면서 콩코드 개발도 구체화됐다. 1966년 최초의 시험용 모델 ‘콩코드 001’이 탄생했고 1969년 3월에는 29분 동안의 비행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 한 달 후에는 두 번째 모델 ‘콩코드 002’도 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보다 몇 달 앞선 1968년 12월에 러시아의 초음속 여객기 ‘투폴레프(Tupolev) TU-144’가 140명의 승객을 태우고 음속보다 2배 빠른 마하2의 속도를 돌파하자 콩코드 연구진의 마음이 급해졌다. 개발을 서두른 끝에 1969년 10월에 마하를 돌파하고 11월에는 마하2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식 항공기는 1971년 9월에 등장했다. 두 대의 버전 중 ‘콩코드 101’은 영국에서, ‘콩코드 102’는 프랑스에서 사이좋게 제작됐으며 1973년 시험비행도 나란히 무사통과했다. 이름 그대로 양국의 조화와 협력 하에 최고의 초음속 여객기가 탄생한 것이다.

마침내 콩코드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1973년에는 ‘콩코드 001’이 기존 비행기가 가지 못하는 고도 2만m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고, 1974년에는 ‘콩코드 101’이 마하 2.23에 도달했으며, 1976년 1월 21일에는 세계 최초로 초음속 여객기의 상업 운항을 시작하는 등 기존의 기록을 속속 갈아치웠다. 안전성 면에서도 세계 최고였다. 1979년 착륙 중에 조종사의 실수로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을 제외하고는 심각한 기체 결함이나 사고를 겪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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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974년 콩코드여객기의 외관(위)과 내부(아래) 모습. 몸체가 좁은 까닭에 내부는 가로로 4개의 의자만 배치시킬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콩코드의 특징적인 모습으로는 화살처럼 기다란 몸체와 삼각형 모양의 날개가 꼽히기도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구부러진 앞코 부분이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부분을 길게 설계할 수밖에 없었는데 활주로에 뜨고 내릴 때는 시야를 가리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착륙 때는 아래쪽으로 구부러지는 형태로 만들었고 콩코드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콩코드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일반 비행기보다 2배 빠른 속도로 2배 높이 날아올라 평균 8시간 넘게 걸리는 파리~뉴욕 구간을 3시간대에 주파했지만 비싼 요금이 문제였다. 몸체가 좁고 길어서 이코노미 좌석 4개를 옆으로 간신히 배치시킬 여유밖에 없어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데도 요금이 일반 항공편의 퍼스트클래스보다 3배 이상 비쌌고 이코노미석 요금의 15배에 달했다. 돈이 아깝지 않은 부자들이나 시간에 쫓기는 글로벌 기업의 CEO만 타는 비행기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위기는 2000년에 찾아왔다. 7월 25일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출발하던 뉴욕행 콩코드가 이륙 중 갑작스레 폭발해 100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몇 분 전 출발한 비행기가 떨어뜨린 금속 조각이 활주로를 달리던 콩코드의 타이어를 파열시켰고, 이때 튀어나간 조각이 연료통에 구멍을 내어 결국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의 실수로 보기 어려운 우연이었지만 100명에 달하는 고위층과 부자들이 한날한시에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세계 언론의 관심이 쏠렸고 부정적인 시각이 급팽창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2001년 9월 11일 콩코드는 운항을 재개했으나 승객 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한 영국항공(BA)과 에어프랑스(Air France) 세계 각국의 항공사를 대상으로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고, 결국 2003년 11월 26일 영국 브리스톨 공항 착륙을 마지막으로 상업 운행에서 물러나 은퇴의 길에 들어섰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로 정상의 지위를 누리던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 한창 때의 몸값이 2,300만 파운드로 우리 돈 2천억 원에 달했지만 27년이라는 짧은 청춘을 마친 지금은 영국, 프랑스, 미국의 박물관에 전시된 채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화성으로 사람을 보내는 프로젝트까지 진행되는 시대지만 콩코드의 뒤를 이을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의 등장은 기약이 없는 상태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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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프오, 실은 X-비행체였다?

2012년 6월 16일 새벽, 미국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소형의 삼각날개를 가진 길이 8.8m, 너비 4.5m 정도의 소형 비행체가 착륙했다. 이 비행체의 정체는 보잉사에서 개발한 무인우주왕복선 ‘X-37B’. 궤도시험기 2호(Orbital Test Vehicle-2)로 불리는 X-37B는 우주에서 15개월 머물고 귀환했는데, 임무는 비밀에 붙여졌다.

X-37B는 2011년 우주왕복선이 모두 은퇴한 미국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유일한 우주비행체다. 추후 군사용으로 발전할지, 민간용으로 사용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주 비행체의 확실한 정보는 아직 ‘실험용’이란 것이다. X-37B에서 X가 이것을 의미한다. X는 ‘eXprimental’에서 따온 이니셜로 1945년 미 공군과 미항공자문위원회(NACA)가 항공우주분야의 기술 발전을 위한 실험용 비행체를 연구하면서부터 붙여졌다.

이번 X-37B의 경우, 사실 1957년 러시아에 의한 스푸트니크1호 위성 발사 이후 미 공군이 독자적으로 준비한 군사용 우주선 ‘X-20’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이나 소어’란 애칭을 가진 이 우주선은 X-37B처럼 삼각형의 날개를 가진 우주비행체로 정찰, 지상 폭격, 적의 위성 공격 등 다가오는 우주전쟁을 대비한 우주 비행체다. 유인으로 운영되는 X-20의 비행을 대비해 1960년에 8명의 ‘우주 군인’이 선발됐는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세계 최초의 달 착륙 우주비행사인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선발됐었다는 것이다. X-20의 중단으로 공군에서 NASA로 소속을 옮기는 바람에 닐 암스트롱은 훗날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만약 X-20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그의 비행기록은 비밀에 부쳐졌을 것이고 아폴로우주선에도 탑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X-20 계획은 몇 년간 책상에서 설계도만 그려지다 예산부족으로 폐기됐다. 그 후 1970년대에 ‘X-24’와 같은 항공역학적인 모양을 가진 ‘리프팅 바디’(Lifting body, 동체가 날개의 역할인 양력을 만드는 비행체)형의 우주 비행체 연구를 걸쳐 마침내 1980년대 우주 왕복선의 탄생에 이르게 된다.

아폴로 우주선이나 소유즈 우주선 같은 캡슐형 우주선은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전혀 조종을 할 수 없어 동력장치를 별도로 부착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착륙할 수 없다. 리프팅 바디 기술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이다. 즉 리트팅 바디형 우주선은 양력을 만드는 우주선 모양 때문에 특별한 동력이 없어도 우주선을 원하는 곳에 착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착륙형 비행체의 꿈은 결국 우주 왕복선의 탄생을 낳게 된다.

이렇듯 미래 항공우주기술의 시험장인 X-비행체의 시작은 ‘X-1’으로, 당시만 해도 넘을 수 없는 비행의 벽 이었던 초음속을 돌파하기 위한 로켓기였다. 그 유명한 테스트 파일럿인 척 예거(Charles Elwood Yeager) 조종사가 탑승해 초음속에서도 비행조종이 가능함을 기술적으로 증명했으며, 이는 현대 초음속 비행기의 시초가 됐다.

1958년 미항공우주국(NASA)이 NACA를 흡수하면서 현재 X-비행체의 연구는 주로 미 공군이나 미 국방부 선진연구프로젝트국(DARPA)과의 협력을 통해 모하비 사막의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위치한 NASA 소속의 드라이덴 비행연구 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X-비행체는 실전에서 사용될 비행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매우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아마 사막에서 X-비행체를 본 사람이라면 UFO라 부를 만큼 기괴한 것들이 많다. 날개가 없거나 이상한 패턴으로 비행하는 등 일반적인 비행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X-비행체는 조종사보다 컴퓨터가 비행을 대신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도입할 차기 전투기 사업 후보 중 하나인 F-35도 X-35 계획을 통해 수직이착륙기의 초음속 순항과 같은 첨단 기술을 테스트한 바 있다.

X-비행체에서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X-15’다. 마하 6이라는 극초음속을 돌파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극한의 속도에 도전하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4년에는 스크램제트(초음속의 공기를 빨아들여 연소하는 제트엔진)를 이용한 극초음속 비행기 ‘X-43’을 통해 무려 마하 9.8이란 경이로운 속도에 도달했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은 추후 서울에서 LA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극초음속 여객기 탄생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X-56’까지 진행되고 있는 X-비행체의 최근 연구추세는 무인 비행기에 집중하고 있다. 무인 폭격기(X-45), 항모 탑재형 무인전투기(X-46, 47), 수직이착륙 무인기(X-50) 등이 대표적이며 X-37B도 완전 무인 우주왕복선이다. 이런 무인형 X-37B가 군사적으로 이용될 경우 매우 유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의 첩보위성으로는 긴박한 분쟁이 일어난 지역을 신속히 감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궤도 변경을 위해 자신의 연료를 소모할 경우 위성의 수명은 대폭 줄어들게 되고 결국 우주에서 폐기되고 만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처럼 재활용이 가능할 경우 임무가 끝난 X-37B를 지구로 귀환시켜 연료를 충전시키고 다시 우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예산을 많이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X-37B의 경우 화물칸이 있어 고성능의 탐지 장비들을 실을 수 있다. 심지어 레이저와 같은 공격무기를 실을 수 있게 된다면 킬러위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미래 우주전쟁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러시아나 중국을 자극할 것이고 이들 나라도 X-37B와 비슷한 무인 우주왕복기 개발을 서두르게 될 것이다.

앞으로 X-37의 기술은 군사적 목적 외에도 제 2의 유인용 우주왕복선 개발로 이어질 전망이다. X-37의 제작사인 보잉은 X-37B의 크기를 180%정도까지 키워 6명의 우주인이 탑승할 수 있는 유인형 궤도시험기 ‘X-37C’로 발전시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우주인을 실을 나를 수 있는 유인형 우주왕복선을 제작, 보잉사가 가진 소모성 발사체인 아틀라스-V를 이용해 우주로 발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1960년대에 날개를 접은 X-20, 다이나 소어의 완벽한 부활이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50년 전 X-20의 제작사가 바로 X-37B의 제작사인 보잉사이다. 국립 연구소도 아닌 하나의 기업이 성과가 보장되지 않은 미지의 기술에 이렇게 오랫동안 관련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연구개발비를 투입하는 미국의 저력이 부러워지는 동시에 한국형 X-비행체의 탄생도 기대해 본다.

글 : 정홍철 과학칼럼니스트(스페이스스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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