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휘파람이 절로 나올 것 같은 흥겨운 노래, 가사에서처럼 벚꽃이 폴폴 휘날리는 분홍빛 거리,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4월의 동물원은 사랑스러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태연이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무척이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태연아, 왜 그래? 동물원 가자고 그렇게 조르더니. 무슨 일 있어?”

“아빠, 작년 말 미국 갤럽이 전 세계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감 설문에서 한국이 97위를 기록했다는 사실 아세요? OECD 국가 중에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된지는 이미 오래고, 이제는 통계가 잡히는 나라 가운데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돼 버렸죠.”

아빠는 태연의 말에 깜짝 놀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왕따가 아이들을 자살로 내몬다는 뉴스가 나오는 세상 아닌가!

“무슨 일 있어? 혹시 하루 종일 조증 걸린 사람처럼 헤헤 웃고 다닌다고 애들이 왕따 시키냐? 그러게 적당히 좀 웃으라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 배고파요! 그것도 베리 어~엄청!! 아빠는 ‘동물원 나들이도 식후경’이란 얘기도 못 들어보신 거예욧?”

“그럼 너의 극단적인 우울함이 단지 배가 고파서였단 말이냐? 넌 어쩌면 그리도 단순하고, 말초적이며,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냐.”

“저만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 낙타, 이구아나, 구렁이도 모두 먹을 거 하나만 생각하고 살잖아요!”

“세상에, 별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같은 얘기를 다 들어보는 구나. 동물은 먹을 것만 생각하지 않아. 감정이 아주 풍부하다고. 예전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동물학, 뇌 과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동물의 의식과 감정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데다 PET, MRI 같은 뇌 영상 기술 덕분에 동물의 뇌도 인간처럼 희로애락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단다. 다시 말해서 표현방법이 다를 뿐 동물 역시 감정을 느낀다는 거야. 실제로 기니피그의 어미와 새끼를 떼어놓을 때 이들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뇌 부위는 사람이 슬픔을 경험하는 뇌 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는 실험결과도 있단다.”

“정말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심지어 조너선 밸컴이라는 저명한 동물행동연구학자는 동물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단다. 즐거움을 느끼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거야. 너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애기는 들어봤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체계가 무너져 쉽게 병에 걸리지만, 반대로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오피오이드(opioid)나 엔도르핀(endorphin) 같은 스트레스 감소 물질의 분비가 촉진돼 면역력이 강해지고 어지간한 병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되지. 동물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한다는구나. 즐거움이야말로 진화와 생존을 위한 최고의 원동력이라는 거야.”

“와, 진짜 신기하다!!”

“저 앞에 있는 이구아나를 한 번 보자꾸나. 햇볕 있는 쪽으로 꼼짝도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지? 이구아나 같은 변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햇볕을 쪼여야 하는데, 저렇게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 기분까지 좋아진단다. 실제로 햇볕을 쬘 때 활성화 되는 뇌의 영역은 인간이 쾌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거의 일치하지. 또 얼마 전 파우나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협회는 고양이가 만족스러워 할 때 보이는 그르렁거림에 무의식적인 치유 효과가 있어서, 부러진 뼈와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촉진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도 내놓았단다.”

이구아나가 햇볕 좋아하는 게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것이고, 그 덕분에 면역력이 좋아지고, 그러면 생존에 더 유리해지고…. 저 행동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흔히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만이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글이라고 생각하지. 수많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강한 놈만 살아남는 동물의 세계를 봐 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야. 하지만 조너선 밸컴은 동물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즉 면역력이 강한 신체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애와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고 주장한단다.”

“와~ 동물의 세계는 놀랍고도 신비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여자들에게 좋아하는 이성 타입을 물어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뇌의 입장에서 보면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가 보다 많이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더 탄탄한 면역체계를 갖췄을 테니, 더 강한 녀석일 가능성도 높은 거야. 어쩌면 우리의 똑똑한 뇌가 더 강한 녀석을 배우자로 삼기 위해 웃긴 사람을 좋아하도록 일부러 조종하는 건지도 모르지. 아빠 생각에 태연이 넌, 아마 나중에 숙녀가 되면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많을 거야.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웃고 있잖니. 네가 어지간하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 게 다 웃음 덕분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그래서 아빠도 매일 웃고 계신 거였구나. 지난번에 엄마랑 엄청 싸우고 쫓겨나신 날도, 정말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셔서 참 신기했었어요. 밖은 영하 10도인데 그 추위 속에 벌벌 떨면서도 그렇게 맑은 미소를 짓고 계시다니, 그게 다 면역력을 강화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셨군요?”

“무, 물론이지!!”

“근데 엄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아빠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웃는 상이라서, 별명이 ‘고사상의 웃는 돼지’였다고 하시던데요? 초상집에 가서도 계속 웃고 계셔서 상주한테 주먹질을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시던데….”

“우하하하하~! 너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으니 또 다시 웃음이 나는구나. 오~ 콸콸콸 넘쳐나는 나의 엔도르핀이여!!”


관련서적: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조너선 밸컴.
ISBN : 9788972202172 (8972202177)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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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대륙의 아델리펭귄 루카리는 자못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젊고 패기 넘치는 펭귄 한 마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남극에 있는 우리들이야 아직 그럭저럭 살만하지만, 다른 곳의 펭귄 친족들은 사정이 말이 아니래요. 남아프리카 케이프 주(州)에 살고 있는 케이프펭귄은 유조선이 흘리고 다니는 기름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죠. 뉴질랜드의 노란눈펭귄은 인간이 들여온 육식 포유류에게 생존을 위협받고 있어요. 남극에 산다고 우리가 안전한 것도 아니지요. 이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거야 이미 우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무슨 수가 있겠어요? 알다시피 지구는 인간들이 좌지우지한지 오래지요. 우리가 모여서 얘기해본들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펭귄은 ‘새’라는 겁니다. 날 수 있는 새 말입니다!”

선언처럼 젊은 펭귄의 말이 울려 퍼지자, 루카리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펭귄 무리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새인 건 맞긴 맞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기러기처럼 날아서 서식지를 옮기기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저렇게 영양가 없는 소리는 알에서 나오고 처음 듣네.”

대놓고 무시하는 펭귄들도 있었지만, 생존의 위협을 몸으로 느껴봤던 펭귄들은 몸에 바짝 붙은, 이제는 날개라고 할 수 없는 지느러미를 흔들며 나는 시늉을 해보았다. 펭귄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우리가 과연 날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날 수 있었던 과거가 있긴 있었던 걸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의 조상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어요. 이젠 오히려 인간들이 펭귄에 대해 우리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지경입니다. 여러분, 펭귄의 색을 알고 계신가요? ‘몸의 색깔은 인간의 턱시도처럼 흑백이다’ 라고 알고 계시지요? 하지만 우리 조상 펭귄 중에는 불그스름한 깃털을 가진 것도 있답니다. 아쉽게도 그걸 밝혀낸 것조차 인간입니다만.”

붉은 털 펭귄이라고? 세상에…. 펭귄들은 이제 젊은 펭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젊은 펭귄은 최근 미국 텍사스주립대 연구진이 사이언스지에 보고한 3억 6천만 년 전의 펭귄 화석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가장 덩치가 큰 펭귄은 키가 122cm에 이르는 황제 펭귄이지요. 하지만 이번에 페루 파라카스 국립자연보존지구에서 발견된 펭귄 화석을 연구한 결과, 키가 150cm나 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름은 ‘물의 왕’을 뜻하는 `잉카야쿠 파라카센시스(Inkayacu paracasensis)’로 붙여졌다고 합니다. 깃털의 색은 불그스름한 갈색과 회색으로 지금의 우리와는 꽤나 달랐지만, 우리처럼 힘차게 수영할 수 있는 지느러미 발과 촘촘한 깃털은 하늘을 나는 것보다는 물속으로 잠수하기에 적합한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이 조상님은 우리보다 더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갔을 테니, 잠수도 더 깊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귀 기울여 경청하던 펭귄무리에서 호기심 많은 어린 펭귄이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3억 6천만 년 전이면 엄청나게 오래 전이지요? 그때 살던 조상님도 우리처럼 물속으로 잠수해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면, 우리 펭귄은 애초에 하늘을 날 수 없었던 것 아닌가요? 저는 우리가 새랑 닮긴 했어도 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박식하기로 소문난 늙은 펭귄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인간들이 우리를 한 때 물고기 취급했다는 얘기가 생각나는구나. 물론 인간들도 우리를 보자마자 별다른 연구 없이도 날지 못하는 ‘새’라는 걸 알았지. 하지만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물고기’라고 우기기도 했단다. 우리 펭귄을 물고기와 연관 지은 것은 대게 단백질 섭취 때문이었어. 새가 아니라 물고기라면 “금요일에는 고기를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거스르지 않고도 당당히 새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1800년 무렵에 인간들은 펭귄을 물고기와 새의 중간쯤으로 여겼고, 새로운 항로와 신대륙을 찾아 항해에 나선 이들은 펭귄들을 무지막지하게 죽였다. 1578년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은 마젤란해협에서 하루에 3천 마리 이상의 펭귄을, 1587년 토머스 캐번디시 경은 배에 실을 식량으로 도합 3톤의 펭귄을 잡아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밖에도 굶주렸던 수많은 항해 선원들이 펭귄 떼를 몰살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경계심이 없고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인간에겐 더 없이 사냥하기 좋았겠지요.”

펭귄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늙고 지혜로운 펭귄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이 한때 날았다는 흔적은 우리 몸에 또렷이 남아 있단다. 우리의 가슴뼈는 새들의 그것처럼 발달되어 있어. 가슴 근육이나 오훼골(척추동물의 흉부를 형성하는 뼈의 하나. 위팔뼈 위쪽 끝의 앞부분에 있으며 어깨뼈, 빗장뼈와 함께 팔 이음 뼈를 구성한다.) 위의 근육이 단단히 붙어 있도록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또 꽁무니뼈도 우리의 조상이 날았다는 증거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어떤 새든 부채꼴로 늘어선 꽁지깃이 있지. 그 꽁지깃을 지탱하는 작은 꽁무니뼈가 있는데, 이것은 공기역학적 효과와 실용성 측면에서 꼬리뼈의 끝부분은 생략되어 작은 돌기모양의 뼈가 되어 버린 것이야. 우리에게도 바로 그 새와 같은 작은 꽁무니뼈가 있단다. 고도로 발달한 정교한 작은 골 역시 언젠가 우리 조상들이 순식간에 방향과 자세를 바꿔가며 고도의 조종 능력을 발휘해 하늘을 날았다는 증거란다.”

수천, 수만, 수백 만 년 전의 펭귄이 진화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까마득한 과거 언젠가 하늘을 나는 펭귄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천, 수만, 수백 만 년의 시간이 또 흐른 뒤 이 지구 어딘가에 마치 TV 광고 속 한 장면처럼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펭귄이 다시 등장하게 될까? 그런 날을 상상해 본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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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성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 주어진 성적 역할로 일생을 살아야 한다. 부인이 겪어야 하는 출산의 고통이 안쓰럽다고 남편이 대신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아내가 정자를 생산할 수도 없다.

이 가혹한(?) 운명은 물속에서 땅 위로 터전을 옮긴 조상들이 선택한 것이자 생태계의 구성원 중 많은 종이 선택한 ‘양성생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 중에는 양성생식을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성별을 바꾸는 종들이 있다. 400여 종에 이르는 어류가 그들이다.

이렇게 성별을 바꾸는 어류가 보이는 성향은 대개 두 가지다.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와 반대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다.

붕어는 성장하면서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붕어는 몸길이가 3~4Cm인 치어일 때 전체 개체수의 70% 이상이 수컷이다. 그러나 6~7Cm 정도로 자라면 수컷의 비율이 40%로 점차 줄어든다. 다 자란 붕어 중 수컷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에 이른다.

수컷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암컷을 만날 수 없는 수컷 붕어가 성을 바꿔 처녀생식으로 알을 부화하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런 성 전환이 붕어의 개체수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리본처럼 몸이 얇고 길어 ‘리본장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도 여기에 해당한다. 리본장어는 청년기까지 수컷으로 지내다 성장이 멈춘 후에는 암컷으로 성을 전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푸른색을 띠던 몸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완벽하게 암컷이 된다.

말미잘 속에서 생활하는 ‘흰동가리’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수컷보다 암컷이 크다. 이들은 텃세가 심해 몇 마리의 새끼들 외에는 모두 자신의 영역 밖으로 쫓아낸다. 그런데 흰동가리 암컷이 죽으면 새끼를 쫓아내지 않고 부부로 맞아들인다. 수컷이 암컷으로 성별을 바꾸고, 새끼 중에 가장 큰 수컷과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감성돔을 포함한 여러 종의 물고기가 비슷한 성향을 보이면서 암컷으로 성을 바꾼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수컷 어류는 크기가 작아도 많은 수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 반대로 암컷 어류는 상대적으로 큰 생식세포를 가지기 때문에 난자 수가 적다. 즉 수컷의 숫자가 많아지면 난자가 정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을 전환해 더 많은 난자를 생산하는 것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을 전환하는 경우는 주로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면서 무리를 지어 번식하는 물고기들에게서 나타난다.

청소놀래기가 대표적인 일부다처제 어류다. 이들은 수컷 한 마리가 여섯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방식으로 무리짓는다. 수컷은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암컷을 보호한다. 그러다가 수컷이 죽거나 없어지면 서열 1위의 암컷이 바로 성을 바꾸기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지나면 외양이 바뀌어 수컷 역할을 시작하고 3~4일이면 완벽한 수컷으로 알을 수정시킨다. 이런 양상은 청소놀래기뿐 아니라 놀래기과의 많은 종에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열대 바다에 사는 라이어테일 또한 수컷 한 마리가 15~20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살다가 수컷이 사라지면 우두머리 암컷이 바로 성을 전환하여 수컷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경우의 물고기들은 암컷 생식소인 난소와 수컷 생식소인 정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암컷은 항상 수컷으로 성전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수컷들끼리의 과다경쟁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강력한 수컷과 경쟁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따라서 재빠르게 암컷으로 변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것이다.

결국 물고기들은 개체수를 유지하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포함한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고 성을 바꾼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왜 물속 생물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물이라는 환경과 물고기의 단순한 생식기관에 있다.

물이라는 환경은 체외수정을 하는 물고기들의 정자와 난자의 건조를 막아준다. 따라서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관은 육지생물처럼 복잡할 필요가 없다. 생식기관이 단순한 형태이므로 변화가 쉬운 것이다. 게다가 물고기의 원시생식세포는 수컷의 정소에 넣으면 정자로 성장하고, 암컷의 난소에 넣으면 난자로 성장하는 특징이 있어 성전환을 해도 특별한 무리가 없다.

생물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 물을 떠난 생물들은 점차 복잡한 신체구조를 가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육지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모든 장기와 생식세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또 다른 생물은 그 나름으로 생존하는 풍경은 우리 인간에게 ‘삶’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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