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의 세계② 창과 방패로 얽힌 도청·방지기술

타인의 통화나 정보를 빼내어 ‘도둑처럼 몰래 듣는다’는 뜻의 ‘도청(tapping)’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불법으로 녹음되거나 기록된 정보는 법정에서 정식 증거로 채택될 수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7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8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으로 허가되는 도청도 있다. 1993년에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은 우편물뿐만 아니라 전화, 전자우편, 무선호출 등 전자식 전기통신물에 있어서도 도청을 금지했지만, 범죄를 계획한다고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도청을 실시할 수 있다.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의 허가 요건(제5조)’과 ‘국가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제7조)’에 합법적인 도청 즉 ‘감청(monitoring)’이 가능한 조건이 명시돼 있다.

도청과 감청은 통신망에서 오가는 유무선의 신호를 가로채서 엿듣는 행위다. 유선전화를 엿듣는 도청은 전화선(wire)이 연결된 단자(tap)에 장치를 부착하기 때문에 영어로 태핑(tapping) 또는 와이어태핑(wiretapping)이라 불린다. 방이나 차량 안에 녹음기나 마이크를 설치해서 사람의 음성을 직접 빼내는 경우는 ‘엿듣기(eavesdropping)’라 하지만 역시 도청의 일종이다.

지금은 무선통신 주파수를 잡아내 엿듣는 와이얼리스 태핑(wireless tapping) 또는 라디오 인터셉트(radio intercept)에 이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인터넷망을 이용해 주고받는 내용을 빼내는 데이터 태핑(data tapping) 또는 웹태핑(webtapping)까지 등장했다.


▪ 통신의 발전과 함께해온 유선 도청 기술

1876년 인류 최초의 전화기가 발명된 이후, 도청 기술도 함께 발전해왔다. 1890년대에 전화선에 연결하는 녹음기가 개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선 도청은 미국에서는 기술적, 법적 문제 때문에 대통령 직속기관이 비밀리에 실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유선 도청은 사람이 직접 선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특정 인물이 전화를 걸면 대기 중이던 교환수가 전화선을 정상적인 라인으로 보내는 동시에 도청용 장치에도 접속시키는 것이다. 통화가 끝나면 전화선을 원위치시킨다. 그동안 비밀요원들이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기록해 증거를 수집하는 식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전자식 교환기가 등장하면서 교환수를 통한 유선 도청이 불가능해졌고, 광통신망이 보편화되면서는 교환기와 전화선 사이에 비밀 라인을 삽입해 자동적으로 정보를 빼내는 새로운 기술이 쓰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디지털 방식의 교환기가 설치되면서부터는 도청이 오히려 쉬워졌다. 디지털 신호는 손쉽게 증폭과 변조가 가능해서 중간에 정보를 빼내더라도 들킬 염려가 적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도청 장치가 가동되면 잡음이나 소음이 들린다고 알고 있지만, 디지털 기술이 쓰이는 지금은 탐색장비를 연결해도 도청 여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전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화국에서는 통화시간과 양쪽의 전화번호를 자동으로 기록하기 때문에 이를 도청 내용과 연결시키면 더욱 정확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통화기록장치(pen register)를 가동시키면 전화국에 “통화 내역을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특정 인물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전화를 걸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도청은 개입 정도에 따라 크게 ‘적극적 도청’과 ‘소극적 도청’의 2가지로 나뉜다. 적극적 도청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비해 소극적 도청은 통신망 자체에 장치를 연결한 채 불특정 다수들이 주고받는 정보를 자동으로 녹음하거나 기록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사람의 힘을 빌리는 적극적 도청 행위는 작업의 번거로움 때문에 특정 인물의 전화 통화에만 적용된다. 전화기나 전화선에 특수장치를 연결해서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빼내는 적극적 도청은 지금도 기업과 가정 등에서 암암리에 실행되고 있다.

한편으로 자동화된 디지털 통신 장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원격으로 다수의 정보를 채집하는 광범위한 소극적 도청의 시대가 열렸다. 정보기관이 컴퓨터 조작만으로 일반인의 통화기록과 내용을 빼내고 이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이 빈번하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자국 내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통화내역과 관련정보를 수집해온 ‘프리즘(PRISM)’ 프로젝트가 들통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프리즘 프로젝트에는 ‘프리즘 프로그램’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사용됐다. NSA와 FBI가 미국의 주요 IT기업과 손을 잡고 자국민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것이다. 이들은 자국 내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 중앙 서버에 직접 접속해 영화, 오디오, 사진, e메일, 문서와 같은 콘텐츠를 비롯해 각종 로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사용자들의 스카이프 영상 대화, 아웃룩닷컴을 통한 e메일 채팅 정보, 스카이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 정보 등을 NSA에 제공했다.


▪ 오가는 주파수 잡아채는 무선 도청도 성행

유선 도청이 단자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었다면 무선 도청은 공중에 떠도는 주파수를 분석해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얻어낸다. 무선 도청은 무선전화와 무전기의 일반 주파수, 와이파이(Wi-Fi)라 불리는 무선인터넷 주파수, 휴대전화의 암호화된 주파수를 가로채 풀어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무선전화나 무전기는 진폭변조(AM) 또는 주파수변조(FM) 방식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혼선이 발생하기 쉽고 내용 유출 가능성이 높다. 가정용 무선전화는 단순한 장치만으로도 손쉽게 도청이 가능해서 민감한 정보나 개인사항을 전달할 때는 가급적 유선전화 또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무전기의 주파수도 쉽게 가로챌 수 있다. 경찰서나 소방서에서 사용하는 초단파(VHF) 또는 극초단파(UHF) 무전기 중 아날로그 방식은 소형 장비로도 도청이 가능하다. 교통사고 현장에 경찰차보다 견인차가 먼저 도착하는 이유도 경찰의 무전을 엿듣기 때문이라 의심된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장의업체가 소방서 무전을 도청하다 적발된 경우가 있다.

무선인터넷도 도청이 어렵지 않다. 유선인터넷과는 달리 보안이 허술하기 때문에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각종 비밀번호와 사용내역이 노출된다. 특히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카페, 지하철, 공항 등에서는 중요한 비밀번호를 함부로 입력하지 않는 편이 좋다.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는 가정용 인터넷전화도 도청에 속수무책이다.

도청 기술은 휴대전화도 피해갈 수 없다. 일반 휴대전화의 음성통화를 도청할 때는 사용 주파수만 제대로 찾아내면 도청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에는 스파이웨어(spyware)라 불리는 비밀 프로그램을 설치한다.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위장해서 보냈을 때 별 생각 없이 클릭을 하면 그 순간부터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문자메시지 수발신, 인터넷 사용, 위치 추적, 동영상 촬영, 주변 소음 녹음 등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주인 몰래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전원을 꺼놓아도 도청이 가능하다.


▪ 방지기술을 만들면 새로운 도청기술이 탄생한다

도청 기술이 지능화되면서 도청 여부를 알아내거나 막는 방법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청을 막는 방법은 도청 기술에 따라 다르다. 목소리를 엿듣는 도청은 주변에 강력한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라디오 장치를 켜두는 것으로 해결한다. 특히 방안의 음악 소리를 높이거나 100데시벨(dB) 가까운 소리를 내는 소음발생기를 켜놓으면 음성 도청에 대한 우려는 웬만큼 해결할 수 있다.

1km가 넘는 원거리에서 레이저를 발사해 음파를 잡아내는 도청도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 민감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원격 도청을 방지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소음을 여기저기로 동시에 발산하는 음향 트랜스듀서(acoustic transducer)를 설치하는 것도 보안에 도움이 된다.

무선전화나 무전기 도청은 가급적 민감한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 것 이외에 큰 해결책이 없다.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방식을 이용하든가 3단계의 암호화를 거치는 테트라(TETRA) 방식의 국제보안표준을 채택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로 도청을 막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스마트폰의 경우는 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스마트폰 이용자 10대 안전 수칙’을 검색해서 숙지하고 검증된 국가기관에서 배포하는 보안 점검 프로그램을 설치해 도청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중국 초나라 때의 상인은 어느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아내는 방패를 동시에 판매해서 ‘모순’이라는 한자성어를 탄생시켰다. 도청기술과 방지기술도 창과 방패처럼 어느 한쪽이 무조건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는 도청 전쟁에서는 정확한 정보에 기반해서 보안수칙을 지키는 것만이 피난처가 될 뿐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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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전쟁이 벌어진다…“700MHz를 확보하라”

‘주파수’ 확보를 놓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주파수 전쟁’은 주로 이동통신회사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국가의 공공재인 주파수를 기업에 할당하는 방법으로 2011년부터 ‘경매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통신회사들은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기도 했다. 일단 좋은 주파수만 손에 넣으면 타사보다 더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에 쓰던 주파수와 비슷한 대역을 낙찰 받으면 시설투자비도 아낄 수 있다.

이러한 ‘주파수 대전’에 최근 방송업계들도 뛰어들었다. 새롭게 등장한 고화질 방송, 울트라HD(UHD) TV 때문이다. UHD TV는 현재 화질이 가장 좋다는 풀HD TV보다 화소(화면을 전기적으로 분해한 최소 단위의 점. 화소수가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은 화면을 얻을 수 있다)의 숫자가 4배나 더 많아 영화관용 디지털 화면과 비슷한 해상도를 자랑한다. 이 정도의 해상도를 30인치 크기의 TV로 보면 실물과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송보다 훨씬 많은 전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TV 방송을 가정까지 보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지상파 방송처럼 방송국 안테나를 통해 보내거나, 인공위성을 이용하거나, 이용자의 집까지 케이블을 까는 것이다. 케이블 방식은 직접 선을 이용해 송출하기 때문에 용량이나 속도 면에서는 다른 두 방법보다 편하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에게 UHD-TV를 보라고 유료 케이블을 까는 건 다소 어폐가 있다. 앞으로 UHD-TV가 점점 더 보편화 되면 이를 전파에 실어 보낼 대역을 확보해야 한다.

전파란 고속도로와 같다. ‘한 시간에 얼마나 많은 차를 보낼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건 제한속도보다는 도로의 너비다. 16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에 지나갈 수 있는 차량 숫자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이동통신기기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주파수보다는 대역폭(전파의 폭)이 중요하다.

AM 라디오와 FM 라디오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AM 방송은 잡음이 많고 음질도 좋지 못한데 반해 FM 방송은 생생한 스테레오 음질로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FM 방송이 주파수가 더 높아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대역폭 때문이다.

예를 들어 KBS2 FM 라디오는 주파수로 89.1MHz를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89.0~89.2MHz를 쓴다. 즉 0.2MHz의 폭만큼 넓은 길에 전파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 AM 라디오의 대역폭은 0.009MHz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겨우 사람 목소리 정도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도 대역폭 확보가 중요하다. 고용량 사진, 동영상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데이터 요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파수는 어떻게 배분하는 걸까. 나라마다 주파수별로 다양한 전파기기를 사용해야 하니 국제적으로 쓸 수 있는 주파수의 대역도 서로 약속을 해서 정한다. 우선 주파수가 0.3MHz 이하로 낮은 초장파, 장파 등은 해상통신, 표지통신, 선박이나 항공기의 유도 등 비상용으로 많이 쓰인다. 0.3~800MHz 정도의 주파수는 단파방송, 국제방송, FM 라디오, TV방송 등에 고루 쓰인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 몫으로 할당되는 건 보통 800MHz부터다. 3GHz(기가헤르츠, 1GHz= 1,000MHz) 이상이면 직진성이 매우 강해져 인공위성이나 우주통신 등 특별한 경우에만 쓰인다. 결국 개인용 이동통신에는 약 800MHz~3.0GHz 사이의 전파만 쓰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이 주파수 내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서비스를 해야 하는 ‘제약’에 묶여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규칙에 변동이 생길 여지가 생겼다. 이동통신 업계들은 구식 아날로그 TV 방송 종료 후 정부가 회수해서 가지고 있는, 700MHz 인근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한다면 전파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방송과 통신업계 양 진영에서 연달아 세미나를 개최하며 ‘700MHz 주파수는 우리가 사용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급속한 스마트폰 보급과 4세대 이후 이동통신 서비스 등장으로 새로운 주파수 대역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대로 방송통신업계에서는 ‘아날로그 TV 방송에 쓰였던 700MHz대 주파수를 디지털 방송용으로 할당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양측의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은 ‘공익성’이다. 방송 측은 주파수가 공공재인 만큼 자신들이 활용해야 더 국민편익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TV 같은 뉴미디어는 훨씬 고도의 영상압축 기술이 필요하기에 반드시 여유 주파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통신사 측은 더 값싸고 좋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다며 경제성을 무기로 내 세우고 있다. 정부는 주파수를 기업들에게 판매하지 않고 임대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주파수 전쟁’은 이동통신과 방송 시장이 새로운 기술로 재편될 때마다 벌어질 전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2013년 말까지 3,162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1년 1월 기준 5,496TB(테라바이트, 1TB=1,024GB)였던 국내 무선 데이터 전송량은 2015년에 8.7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다. 전파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효율적이면서도 대중을 위한 정부의 전파활용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 : 전승민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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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기내식 맛없는 이유는 소음 탓? 소음의 역할

흔히 항공기의 기내식은 맛이 없다고 평가된다. 이용자들은 항공사에 맛있는 음식을 요구하지만, 항공사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소음’ 때문이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앤디 우드 교수는 2010년 10월 ‘음식품질과 선호(Food Quality and Preference)에 실린 논문에서 소음과 맛의 관계에 대해서 밝혔다. 그는 소음이 증가할수록 음식의 맛을 사람들이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앤디 우드 교수는 48명의 실험자의 눈을 가린 뒤 이들에게 비스킷과 감자 칩과 같은 맛있는 음식을 주고 헤드폰을 쓰게 하면서 소리에 따라서 맛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

실험자들은 소리가 커질수록 단맛이나 짠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소음이 많은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를 뒷받침해 준다. 통상적으로 조용한 가정집의 음식보다 시끌시끌한 식당의 음식이 단맛이나 짠맛이 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맛이 강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느낄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소음은 사람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당장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하며 두통이나 불안과 초조함, 불면증, 착란증을 일으키고 정신분열증이나 편집증은 물론 심혈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소음이 완전히 없어도 안 된다. 미국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의 실험실에 있는 ‘무향실(anechoic chamber, 외부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 음향측정용 방)’에 사람들이 들어가면 45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아예 소음이 없으면 사람들은 감각의 혼란이 생겨 버리기 때문이다.

소음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6월 미국 컨슈머리서치 저널에 발표한 미국 일리노이대의 라비 메타 교수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조용한 공간보다 소음이 있는 공간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험자들에게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라거나 평소에 익숙한 물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하라고 과제를 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환경(50dB)에 비해 소음이 있는 환경(70dB)에서 참가자들이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70데시벨(dB)은 청소기나 TV, 커피숍에서 트는 음악 소리 정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접근하던 방식이 방해를 받으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면서 보통은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러나 85dB 이상에선 창의력이 떨어졌다. 또한 음악이 있는 매장에서 신제품이 팔렸다. 이는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창의성을 증가시킨 것이라는 맥락이다.

친환경적인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는 소음이 환경오염을 덜 시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내연기관이 아니라 모터를 사용하고 그 모터의 소리마저 흡음재가 흡수한다. 하지만 소음이 없어서 오히려 위험한 차가 돼 버렸다. 일반 보행자도 그렇지만 시각장애인이나 어린이들이 자동차가 접근하는지 판별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일반 휘발유 자동차의 경우 8.5m 밖에서 차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지만 하이브리드차는 2.1m 앞에 올 때까지도 감지가 불가능 했다. 그래서 한 스포츠카 회사는 가짜 소음을 만드는가 하면 범퍼에 스피커를 달기도 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고주파보다 저주파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저주파는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두통과 불면증, 만성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위궤양, 고혈압, 당뇨병, 암까지도 발생시킨다. 소리 없이 사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저주파다. 더 시끄럽다면 사람들이 이를 피하거나 방지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시동을 걸 때 나는 소리는 크지만 불쾌감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렁차게 나야 사람들은 기분 좋게 느낀다. 길거리의 빗자루 소리도 경쾌해야 깨끗해진 듯싶고 청소기는 소음이 있어야 청소가 잘 되는 것 같다. 칫솔 역시 시원하게 소리가 나야 잘 닦이는 듯싶다. 변기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슬그머니 없어지기만 한다면 찜찜하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해야 하고 홈 쇼핑 채널은 진행자가 호들갑을 떨어야, 쇼핑센터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려야 제 맛이다.

청량 음료수의 캔을 딸 때 소리가 없다면 시원한 맛이 덜할 것이다. 기름으로 튀겨낸 스낵 봉지를 열 때나 튀김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맛이 덜할 것이다. 맥주를 따랐을 때 시원하게 올라오는 거품의 소리는 술 마실 맛을 나게 한다. 폭포에는 폭포소리가 나야 하며, 도마에서는 칼과 도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야 한다. 시끄러운 아이들의 소리는 잔칫집에서는 제 맛을 준다. 좌판에서 엿을 쪼개며 두드리는 가위 소리는 주택가에서는 짜증이지만 축제 행사장에서는 더욱 정겹다. 이런 곳에서는 조용한 클래식보다 시끄러운 트로트가 더 어울리고 기분도 낸다. 이른바 감성 소음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음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기도 한다. 특히 본인에게는 잘 들리는 음악이지만 거리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노이즈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잘 들리는 주파수는 3500㎐ 대역인인데, 이보다 낮아지면 음량의 폭이 가늘어져 소리 크기는 작아지지만 훨씬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음이 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들려주면 소는 젖을 잘 만들어낸다. 일본의 연구에 따르면 젖이 2~3%늘고 젖의 질도 좋아졌다고 하는데 돼지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완전한 공유가 이루어진다면 소음이라는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미국 코넬대학 심리학과의 로렌 앰버에 따르면 옆 사람의 대화 내용이 짜증을 일으키는 이유는 대화 내용이 드문드문 들리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뇌가 피로해지는 결과라고 했다.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옆 사람의 대화가 소음으로 들리는 이유다.

이렇듯 지나친 소음은 우리를 괴롭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소음은 우리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글 :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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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또 담배 피세요? 이제 그만 끊으시라니까요.”
이크, 철수 녀석 잔소리가 시작됐다. 난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담배 든 손을 황급히 밖으로 뻗었다.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꼭 베란다에 나와서 피고 있지만 그래도 담배에 관해 지적받으면 할 말이 없다. 샐쭉한 표정을 하고 째려보는 철수 녀석을 피하기 위해 난 말을 돌렸다.

“이 담배 연기 색이 어떻게 보이니?”
“어떻긴. 흰색이죠. 아빠, 말 돌리시지 마시고…”
“땡~! 정답은 ‘파란색’이야. 잘 보렴.”
“엑? 자세히 보니 그러네. 담배 연기 흰색 아니었어요? 아님 담배를 바꾸신 거예요?”
넘어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담배를 바꾸다니~. 원래 담배 연기는 파란색이야. 왜 이럴 것 같니?”
“글쎄요. 담배 안에 들어간 성분 때문 아닌가요? 몸에 안 좋은 그 뭐더라~. 니코틴에 타르에~.”
역시 우리 아들, 말꼬리를 늘려가며 비아냥대는 폼이 만만치 않다. 난 철수의 반격을 피해 90년대 히트 드라마 주인공마냥 손가락을 살짝 흔들며 재빨리 대답했다.

“니코틴이나 타르에겐 색을 변하게 할 재주가 없어. 탄소 입자와 빛의 산란의 만남이 바로 주인공이지.”
“산란은 배운 적이 있어요. 빛이 구 형태의 작은 입자에 부딪혀서 여러 방향으로 반사되는 현상이죠?”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가르치나) 우리 철수 똑똑한데~. 우리가 보는 빛은 파장과 주파수가 다른 여러 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무지개가 여러 색으로 보이는 이유지. 빛의 산란은 주파수에 비례해. 붉은색이나 노란색은 파장이 긴 대신 주파수가 작고 파란색이나 보라색은 파장이 짧고 주파수는 크단다.”
“그럼 파란색이 붉은색보다 더 잘 산란되겠네요?”
“그렇지. 담배 연기에 있는 탄소 입자가 빛을 통과하면 파장이 짧은 파란색이나 보라색이 산란돼. 그래서 담배 연기는 파란색을 띤단다. 연기 안의 탄소 입자 크기에 따라서 짙은 청보라색이나 아주 밝은 파란색을 띠는 경우도 있어.”
담배를 한 번 빨며 철수를 보고 싱긋 웃었더니 녀석은 손사래를 쳤다. 담배 냄새 난다는 사인이다. 최대한 먼 방향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난 말을 이었다.

“빨리 피고 끌게. 그건 그렇고, 내가 뿜은 연기는 어떠니. 흰색이지?”
“앗. 정말 그러네요.”
“왜 이런 것 같아?”
“글쎄요. 니코틴이나 타르 같은 나~쁜 성분들이 몸에 다 흡수돼서가 아닐까요.”
이 녀석, 말에 뼈가 있다.

“몸에 빼앗겨서가 아니라 무얼 하나 더 달고 나온 탓이지. 담배 연기가 지나가는 기관지나 폐에는 수분이 많아. 이 수분은 탄소 입자를 핵으로 삼아서 아주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내. 작다고는 해도 가시광선의 파장보다는 크기 때문에 모든 빛을 다 반사하지. 빛이 다 합쳐지면 하얗게 되지? 그래서 한 번 빨아들였다가 다시 뿜은 연기는 흰색이란다. 구름이 하얀 것도 같은 원리야.”
“우와. 아빠, 과학 선생님 같아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철수를 보며 난 다시 우쭐한 기분이 됐다. 너무 우쭐한 나머지 담배가 다 타들어간 것도 몰랐다가 손을 델 뻔 했지만. 담배를 황급히 비벼 끄고 손가락을 호호 불다보니 철수의 표정이 다시 ‘아빠 한심’으로 바뀌었다.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듯 입을 여는 녀석을 보고 난 황급히 말을 꺼냈다.

“손가락은 괜찮으니 걱정마라. (‘걱정 안 해요’ 철수가 툴툴거렸다) 어쨌든! 이런 산란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어. 대표적인 것이 하늘색!”
“아, 그건 저도 학교에서 배웠어요. 태양빛이 공기 중의 먼지나 작은 입자들 때문에 산란되죠. 이 가운데 파란색이 가장 산란되기 쉽기 때문에 우리 눈에 가장 잘 들어와요.”
“이야~ 우리 아들 만물박사! 대단해!”
박수를 치며 칭찬해주자 철수 녀석은 부끄러운지 “에이 참, 학교에서 배운 거라니까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 수줍음이 많은 건 날 닮았다니까.

“하지만 아침이나 저녁에는 붉게 물들잖니. 그건 왜 그럴까?”
“그것도 산란 때문! 이라고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저녁에는 산란되는 색이 바뀌는 건가요? 이유가 뭐죠?”
“낮에는 해가 머리 위에 있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지면 근처에 있어. 이때는 태양빛이 공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길기 때문에 여기저기로 산란되는 파란색보다 산란되지 않고 직진하는 붉은색이 눈에 더 잘 보인단다. 노을이 아름다운 붉은색을 띠는 이유야.”
담배 한 대를 더 꺼내서 무심코 입에 물었다. 시선을 느껴 돌아보니 철수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붕붕 젓고 있다. 차마 불을 붙이지는 못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시의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봐. 지금 보는 하늘은 뿌연 붉은색이지? 저건 산란 때문에 일어난 ‘광공해’ 현상이야.”
“밤에도 산란이 일어나요? 해도 없는데?”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는 불빛 때문이지. 밤에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빛이 하늘로 향하다가 공기 중의 먼지를 만나면 산란된단다. 이렇게 산란된 빛이 모여 만든 거대한 막은 수천~수억 년을 날아온 별빛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아예 막아버려. 보통 대기오염 때문에 도시에서 별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광공해도 큰 몫을 한단다.”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본 밤하늘을 떠올리며 난 감상에 젖었다. 온갖 풀벌레 소리가 들리던 마당의 작은 평상. 시원한 수박을 먹고 드러누워 하늘을 빼곡하게 메운 별을 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는데…. 난 한숨을 내쉬며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것만 피고 들어가야겠다.

“아빠,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도 답례로 중요한 거 하나 알려드릴게요. 사실 이거 말하려고 나왔던 거였는데, 아빠 얘기에 정신 팔리는 바람에….”
“에끼 이 녀석아, 날 핑계대면 안 되지. 어쨌든 고맙다~.”
“들으시면 별로 안 고마우실 건데…. 담배 안 끊으실 거면 아예 들어오시지 말래요! 엄마 전언!”
뭐, 뭐라고?! 망연자실한 날 남겨두고 철수 녀석은 “전 먼저 들어갈게요~”하며 쪼르륵 가버렸다. 그래. 생각해보니 담배 때문에 아내나 철수에게 계속 걱정만 끼친 것 같다. 이게 마지막 한 대다. 이후부턴 눈 딱 감고 끊는 거야! 광공해로 덮인 밤하늘에 파란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내 몸으로 들어갈 마지막 파란색이다. 내일 밤하늘엔 하얗게 반짝이는 별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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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생신 때문에 목포에 있는 처가로 가는 길, 빠르게 스쳐가는 창밖 풍경이 어지럽다. 아내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내려갔고, 난 학교에서 돌아온 철수와 함께 후발대로 가는 중이다. 역에서 산 도시락은 이미 먹었고 식후 커피 한 잔도 즐겼다. 창에 반사되는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고 따스하다. 그래서인가 졸리다. 너무 졸리다. 눈꺼풀이 무거워….

“졸리시면 주무세요. 도착하기 전에 깨워드릴게요.”

책을 보던 철수 녀석이 씨익 웃으며 말을 건다. “졸리긴 누가 졸려”하고 너스레를 떨어봤지만 녀석의 다 안다는 표정에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담배 한 대만 딱 피면 잠이 깰 것 같은데. 하지만 기차는 전체가 금연이다. 거기다 난 지금 금연 중이다. 사나이 오나전, 가족과 한 약속을 깰 수 없다!

“아빠 지하철 안에서도 조시죠? 어쩐지 ‘헤드뱅잉’을 열심히 하실 것 같은데.”
“이 녀석, 난 창문에 머리 붙이고 얌전하게 자.”

철수 녀석이 던진 질문을 계기로 난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입과 머리를 움직이면 잠이 깨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지하철에서 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사실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에이. 또 핑계 대려고 그러시는 거죠?”
“누가 들으면 내가 매일 핑계만 대고 사는 사람인 줄 알겠다! 사람들이 지하철만 타면 자는 이유에 대해 연구한 과학자들이 실제로 있단 말이야.”
“그걸 연구해요? 그냥 아침에는 잠이 부족해서, 저녁에는 피곤해서 조는 거 아니에요?”
“물론 그런 것도 이유 중 하나지. 그렇지만 낮에 자는 사람들은? 다 전날 밤을 새거나 잠을 설쳤을까?”
“음 그러고 보니 그렇네. 이유가 대체 뭐죠?”
일본철도기술연구소에서 조사했더니 지하철의 진동수가 2Hz로 나타났단다. 1초에 두 번씩 진동한다는 얘기지. 그런데 2Hz로 흔들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가장 잠들기 쉽다고 해. 그러니 지하철에서 다들 꾸벅꾸벅 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란다.

으아. 자는 얘기 하니까 더 졸립네!

“요즘에는 흔들침대라고 하던데, 요람 알지? 흔들의자처럼 왔다 갔다 하는 아기용 침대. 거기 누우면 잠이 솔솔 오는 것도 같은 원리지. 바다가 잔잔한 날의 배도 마찬가지야. 물론 배멀미가 심한 사람은 별개겠지만. 기차나 버스도 지하철만큼 딱 맞는 진동수는 아니지만 꽤 흔들리잖니? 사람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잘 자는 이유야.”

말 끝나기가 무섭게 기차가 ‘덜컹’하며 멈췄다. 얘기하는 중에 역에 들어선 모양이다. 자다가 깨서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부산스러운 와중,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반가웠다. 조금은 잠이 깨는 것 같다.

이산화탄소도 사람을 재우는 중요한 요소지. 이산화탄소가 늘면 뇌로 가는 산소량이 줄어들어 나른하고 졸립단다.
“아…. 기차나 버스처럼 사람이 많고 좁은 공간에는 이산화탄소가 많겠군요.”

이런 내가 할 대사를 미리 해버리면 어떡해. ‘이래야 대화가 이어지죠’라는 표정으로 싱글거리는 철수 앞에 할 말을 잠시 잃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사했더니 기차는 1,400~2,200ppm, 고속버스는 2,500~3,500ppm까지 나왔단다. 1ppm은 100만 분의 1이야. 버스나 기차 같이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의 허용기준인 1000ppm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지. 사람이 많은 좁은 공간에서 환기를 잘 안 해서란다. 산소가 부족하고 이산화탄소가 너무 늘어나면 사망할 수도 있어. 그래도 버스나 기차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죽을 정도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렴.”

얘기를 하며 계속 이산화탄소를 만들어서 그런가, 다시 잠이 쏟아졌다. 아 안 돼. 아들 앞에서 얘기하다 잠들어버리는 ‘주말의 게으른 아버지’상을 보여줄 수 없지. 할 수 없다. 입을 다시 움직여라 오나전. 네가 아들 앞에서 체면 구기지 않을 길은 그것뿐이다.

“기차나 버스에는 잠을 방해하는 요소도 분명히 있어. 저주파 소음이라고 들어봤니?”
“저주파? 주파수가 낮은 소음인가요?”
“맞아.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범위는 20~2만Hz인데, 저주파 소음은 주파수가 200Hz 이하인 소리란다. 주파수가 너무 낮아 잘 안 들리거나 아예 들을 수 없지만 몸은 느낄 수 있어. 저주파 소음에 계속 노출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처럼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나오고 심장 박동과 호흡수가 바뀌지. 잠도 푹 잘 수 없단다.
“그럼 기차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건가요?”
“응.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 고속버스, 지하철, 기차에서 다 저주파 소음이 나왔어. 그것도 차 밖보다 안이 훨씬 심했단다. 적게는 95dB부터 많게는 110dB까지 측정됐어. 그러니 기차 속에선 듣지 못 한다 뿐이지 굉장히 큰 소리에 노출돼 있는 거야. 귓가에서 록밴드가 연주하고 있거나 코앞에서 트럭이 고속으로 지나간다고 생각해보렴.”
“으… 생각만 해도 괴롭네요. 차 안에서 자고 일어나면 몸이 아픈 이유가 저주파 소음인 거군요.”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잔 탓도 있겠지만, 저주파 소음도 무시 못 하겠지. 아무래도 버스나 기차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개운하지 않잖니.”

한참 떠들었더니 잠이 달아났다. 이제 슬슬 과학 얘기는 그만두고 철수의 학교생활 얘기를 들어볼 때다. 그러고 보니 요전에 아내가 ‘철수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 것 같다’고 귀띔했었지. 요즘 초등학생은 참 조숙하단 말이야.

“아빠…”
“응?”
“죄송해요. 나 졸려요~.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뭐라?”

얘기하느라 잠이 다 깼는데 이제 네 녀석이 자면 어쩌란 말이냐! 절규하는 사이 철수 녀석은 잠이 들었다.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녀석이니 그냥 포기하자. 흑.

어느새 캄캄해진 창가에는 가로등 불빛만이 빠르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뭔가 먹는 꿈이라도 꾸는지 입맛을 쩍쩍 다시는 철수를 편하게 누이고는 나도 눈을 감았다. 희미한 진동을 느끼며 부자끼리 나란히 저녁잠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종착역에 도착하면 승무원이 깨워줄테니 마음 편히 자도록 하자. 저주파 소음 때문에 피로해진 몸은 오늘밤 목포의 바닷바람이 달래줄 게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 과학향기 제633호 ‘차만 타면 꾸벅꾸벅, 대체 왜?(2007년 7월 27일자)’를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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