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어느 오후. 태연은 엄마의 스카프를 목과 머리에 어설프게 두르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창밖으로 쓸쓸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태연아, 뭘 보고 있니?”

“아빠, 송곳 같은 겨울바람이 제 가슴에 숭숭 구멍을 뚫고 있어요. 문득 유치원 때 달님반에 있던 그 멋진 남자아이 생각이 나요. 코딱지를 맛있게 떼어먹으며 살짝 날려주던 그 살인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아빠,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다. 네가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니까 불현듯 제올라이트가 떠오르는구나. 사랑이란 제올라이트가 아닐까?”

“에엥?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거나, 사랑은 행복이라거나 뭐 그런 말을 해주셔야지 제올라이트가 다 뭐에요. 정말 낭만제로야!!”

“아니, 그건 네가 제올라이트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제올라이트는 수nm(나노미터, 1nm=10-9m) 지름의 극도로 작은 구멍이 스펀지처럼 송송 뚫려있는 돌이란다. 18세기에 처음 이 돌을 발견한 크롱스테드라는 과학자는 돌을 가열할 때 구멍 속에 들어있던 물이 끓어 수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는 ‘끓는(zeo) 돌(lite)’ 즉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이름을 붙여줬지.”

“음, 구멍이 숭숭 뚫린 건 제 마음과 비슷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랑을 제올라이트라고 말하는 건 좀 오버 아니세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렴. 제올라이트는 무한변신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단다. 구멍 안에 온갖 물질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가 서서히 배출시키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물질을 넣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든. 예를 들어 미세한 제올라이트에 은나노 입자를 넣은 다음 그걸 섬유에 붙이면 항균효과가 뛰어난 옷을 만들 수 있고, 양분을 넣으면 토양강화제로 쓸 수 있고, 반도체를 넣으면 광통신에 쓸 수 있는 식으로 말이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니까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거지.”

“헉, 아빠한테 그렇게 철학적인 면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게다가 제올라이트는 촉매로 가장 많이 활용된단다. 촉매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그 반응이 수십 수백 배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을 말해. 예를 들어 탄소 덩어리인 원유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반응하는 힘이 세져서 휘발유를 아주 손쉽게 분리해낼 수가 있지. 또 제올라이트의 구멍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크기를 조절해서 촉매효과를 강화하기도 한단다. 사랑에 빠지면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잖니? 사랑이 공부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처럼 제올라이트도 아주 많은 화학반응에서 촉매로 활용된단다.”

“와~ 정말 우리 아빠 맞아? 넘 멋져 보여요!!”

“그게 다가 아냐, 쓸모없는 물건을 깨끗이 없애주기도 해.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해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만, 쓰임이 끝나고 나면 썩지도 않는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되는 거 너도 알지? 태우자니 환경오염이 너무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폐플라스틱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간단히 물과 이산화탄소로 플라스틱이 분리돼 버려. 당연히 환경 걱정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어지지. 사랑 역시 여러 쓸데없는 잡생각을 싹 없애주는 능력이 있으니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말이 딱 맞지 않니?”

“아빠, 오늘부로 아빠를 존경하기로 했어요. 과학적 상식과 철학적 사고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벽한 이론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계셔요!!”

“너 역시, 오늘은 정말 놀랍도록 똑똑하게 말을 하는구나. 자랑스럽다 내 딸!”

그러나 아빠와 대화를 할수록 태연의 눈엔 의심이 가득해진다. 심지어는 사냥감을 만난 늑대처럼 코까지 벌렁거린다.

“그런데 아빠가 무척이나 의심쩍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빠 가슴이 지금 제올라이트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들이 어떤 사랑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얼마 전에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렇다면 아빠의 제올라이트 가슴엔 지금 엄마대신 첫사랑이 있다는 것이로군요!!”

“허걱! 빨리 병원에 가보자. 어쩐지 너답지 않게 지나치게 말을 잘한다 했어. 그렇게 허무맹랑한 억지를 쓰는 걸로 봐서 너의 뇌는 지금 제올라이트 상태가 틀림없어. 구멍이 뚫린 거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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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하다 보면 여러 번 헹궈도 뿌연 물이 계속 나올 때가 있다.
도대체 세탁이 제대로 된 건지, 깨끗하게 헹궈진 건지 찝찝한 느낌이 들면서도 딱히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기계로 세탁을 하면 손으로 빨래를 하는 것보다는 때가 깔끔히 빠지지 않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제는 세제다. 세제 속의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성분은 불용성 물질이기 때문에 물에 완전히 녹지 않는다.

제올라이트는 물속에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을 공극 안에 포집하여 센물을 단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바로 경수연화 작용이라 한다. 제올라이트는 환경에 대해서도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수에서의 퇴적량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고 하수처리 과정에서 방해가 되지 않으며 활성오니(活性汚泥) 처리단계에서 오니에 흡착·제거되어 수중생물에 대해서도 나쁜 영향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올라이트는 다공성의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액상성분을 함유하게 함으로써 분체가 잘 흐를 수 있도록 하고, 분말 입자끼리 엉키지 않도록 하여 세제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와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올라이트는 분말 세제에 있어서 필수적인 원료이지만 반면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제올라이트의 미세입자가 물에 녹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 헹굼과정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아서 소비자들은 여러 번 헹구게 되는 불편을 겪고 있으며, 미처 못 헹궈진 제올라이트는 건조 후 미세한 먼지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세제제조 회사에서는 제올라이트의 함량을 점차 줄여 왔으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세계적인 세제 회사인 독일의 헨켈에서도 의류에 잔류물로 남는 제올라이트를 줄이기 위해 2004년부터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 전 세계최초로 국내 세제제조 회사에서 제올라이트를 대체하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여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였다. 단순히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 프로세스까지 바꿔 제품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제올라이트가 없으면 분말 세제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제조 프로세스도 바꿔야 했던 것이다.

새로운 소재는 고분자전해질로써 물에 쉽게 녹아 물속에 있는 +2가 이온인 금속이온(주로 칼슘, 마그네슘 이온)들과 먼저 이온결합을 하여 음이온 계면활성제가 +2가 금속과 이온결합 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렇게 되면 음이온 계면활성제는 금속이온과 결합하지 않게 되어 본래의 기능인 계면장력을 낮추는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고 계면장력이 낮아지면 잘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성분이 잘 섞이게 된다. 즉, 옷에 있는 때가 잘 빠지고, 빠져나온 때는 물과 잘 섞이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고분자전해질을 이온 강도가 높은 성분으로 물에 쉽게 녹게끔 만들어 물과의 친화성을 높였다. 또한 적절한 혼합 모노머를 사용해서 이들의 비율과 분자량의 조절을 통하여 물속에 있는 이온들과 잘 결합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제올라이트보다 경수연화 효과가 2~8배까지 좋아졌고 제올라이트 양의 1/8로도 충분히 제올라이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고분자전해질은 드럼세탁기의 열교환기에 생길 수 있는 스케일의 발생을 방지해준다. 열교환기는 온도가 높은 조건에서 빨래를 하는 드럼세탁기에 부착되어 물의 온도를 높이는 기능을 하는데, 이때의 온도 변화로 인해 열교환기 표면에 스케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 스케일은 물에 있는 칼슘, 마그네슘과 같은 성분과 세제에 있는 성분들이 결합하여 탄산칼슘, 황산칼슘과 같은 물질을 만들고 이 물질은 물에 녹지 않고 열교환기 표면에 단단하게 부착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스케일이 누적되면 열교환기의 효율을 떨어뜨려 과열과 에너지 낭비의 원인이 되며 세탁기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올라이트 대신 고분자전해질이 첨가된 세제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옷이 말끔히 헹궈지도록 하고 세탁기를 보호하는 효과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제는 뿌옇게 나오는 헹굼물을 보면서 찝찝해하지 않고 안심해도 되는 것이다. 깨끗이 세탁하는 방법! 이것은 앞으로도 세제를 만드는 회사나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제이며, 더 좋은 세탁 세제가 개발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글 : 오영기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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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재료에서 표면적이 크면 기체나 액체를 흡착하거나 반응할 면적이 늘어나므로 작은 량으로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 재료의 특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료 분야의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높은 표면적을 갖는 재료의 합성 및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론적인 계산과 실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과연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의 표면적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기능성 재료가 나노화될 경우 양자화 효과에 의해 기존의 재료와 대비하여 전기적, 자기적, 광학적, 기계적 특성 등이 크게 변화될 수 있어 응용성이 확대될 수 있다. 여러 유형의 나노소재 가운데 가장 표면적이 큰 나노소재는 물질 내부에 나노크기의 동공을 갖는 나노세공체일 것이다.

이미 자연계에서는 아주 높은 표면적의 광물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분자 크기의 규칙적인 동공구조를 갖는 제올라이트(Zeolite)라고 하는 결정성 알루미노실리케이트 광물이다. 제올라이트 1g에 100~300㎡의 표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니 제올라이트 동공 내에 아파트 1채 정도의 면적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1960년대부터 인공적으로 합성이 가능한 합성 제올라이트가 개발되어 현재 150여종의 다른 구조가 알려져 있으며, 정유 및 석유화학산업에서 양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촉매로서 알려져 있다.

결정성은 아니지만 무정형의 메조세공 실리카, 메조세공 탄소, 에어로젤 물질들도 개발되었는데 이것들의 표면적은 1g에 1000~2000㎡의 범위에 속한다. 최근에 새로운 유형의 초고표면적 물질로서 금속이온과 유기카르복시산의 배위화합물의 3차원 구조로 합성된 결정성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MIL-101로 명명되는 크롬 테레프탈레이트 물질과 MOF-177로 명명된 아연 테레프탈레이트 물질이 BET식에 의한 표면적이 1g에 4000~4500㎡, Langmuir식에 의한 표면적이 1g에 6000~6500㎡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어 현재까지 가장 최고의 표면적을 지닌 물질일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 수치는 액체 질소온도 1기압 이하의 압력 조건에서 질소의 물리 흡착량을 측정하고 흡착식에 의해 계산된 값으로서 과연 기존의 흡착식이 이러한 초고표면적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지와 표면적 수치가 물리적으로 타당한 값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국제규격의 축구장 최소 면적이 길이 100m, 너비 64m로서 면적이 6400㎡이므로 초고표면적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 1g이 흡착할 수 있는 질소의 부피는 질소 분자가 축구장의 겉표면을 덮을 수 있는 양에 근접하는 표면적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넓은지 비교가 될 것이다.

최근에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프랑스 그룹과 공동으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흡착소재, 에너지 절약형 차세대 수분 흡탈착 제어 소재 및 화학 촉매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 가능한 초고표면적 결정성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의 표면 기능화 신기술을 개발했다. 이번의 결과는 프랑스의 공동연구자인 제랄드 페레이 그룹이 2005년에 개발하여 사이언스지에 게재했던 초고표면적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MIL-101)의 표면 기능화 신기술로서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나노세공체 등의 다량합성 및 정제법, 표면기능화 및 응용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나노세공체는 넓은 표면적과 구조유연성을 가져 이산화탄소의 흡착량이 176 중량% (31℃, 50기압, 1g에서 흡착할 수 있는 중량%)로 세계 최고수준으로 나타났다.

과학향기링크또한 100℃ 이하에서 다량의 표면탈수가 가능해 산업용․가정용 제습기, 건조기 등의 기존 상업용 수분흡착제 보다 에너지 효율이 1.8배 이상, 흡착량은 4배 이상의 효율을 나타낼 수 있다. 기존에 개발된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의 경우 수분에 대한 안정성이 취약하고 값비싼 유기리간드 화합물을 사용하여 대량생산에 제약이 많았으나, 이번에 개발된 나노세공체는 물속에서 수열합성법 또는 마이크로파 합성법에 의해 합성되어 수분안정성 문제가 해결되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폴리에스테르 고분자 모노머를 원료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수분 및 기체 흡착제, 환경오염 방지용 흡착제, 메탄, 이산화탄소, 수소 등의 기체 저장소재, 촉매 및 기능성 나노소재로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나노세공체 표면기능화 기술을 이용하면 금속, 산화물, 고분자, 바이오분자 등 다른 소재와의 복합화가 가능해 새로운 유형의 나노복합체, 고선택적 분리막, 박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장종산 박사(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리파이너리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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