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2.29 기억을 위한 시간, 잠
  2. 2009.12.09 그들이 못 자는 이유! 수면장애를 아세요? (1)
기억을 위한 시간, 잠

"나는 잠들어 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자 있는가 없는가."
(셰익스피어, ‘리어왕’)

잠은 왜 잘까? 낮 동안 깨어 활동할 힘을 얻는 쉬는 시간일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잠은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소극적인 휴식이 아니다. 뇌를 일깨우고 다음 날 다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적극적인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잠은 뇌가 낮 동안 수집한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잠은 크게 렘(REM) 수면과 비(非) 렘(non-REM) 수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깊은 수면을 의미하는 비렘 수면 중에는 느린 뇌파 수면 일명 ‘서파 수면(slow-wave sleep)’이라는 단계가 있다. 대뇌피질에서 약 1Hz 정도의 느린 뇌파가 뇌 전반에 흐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흥미롭게도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뇌가 어떤 활동을 하고 나면, 바로 그 부위에서 이 뇌파가 특히 늘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뇌파가, 낮 동안 활동하면서 얻은 기억을 뇌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즉 뇌는 낮에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억을 얻고, 밤에는 이 기억을 편집하거나 기억 중추(해마)에 전달해 저장한다는 것이다.

낮 동안 어떤 사건의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생각해 보자. 촬영이 끝나면 용량이 큰 파일을 하나 얻겠지만, 그 안에는 온갖 불필요한 부분이 섞여 있고 내용도 뒤죽박죽이라 결코 제대로 된 영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촬영 뒤에는 항상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고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는 편집 작업이 필요하다. 나중에 찾기 좋게 내용을 분류하고 저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기억도 마찬가지인데, 뇌가 기억을 편집하고 저장하는 시간이 바로 잠을 자는 시간이다. 실제로 전체 수면 시간 중 서파 수면 시간 비중이 늘어나면 잠의 질이 높아지고 기억도 잘 하게 된다. 2013년 1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UC버클리 브라이스 맨들러 박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젊은이가 어른보다 기억력이 좋은 이유 중 하나도 서파 수면 때문이다. 이마 부분에 위치한 뇌의 전전두엽 부위가 서파 수면과 관련이 있는데, 나이가 들면 이 부위가 퇴화해 질 좋은 서파 수면을 누리지 못하고, 기억력도 줄어든다.

혹시 어른도 인공적으로 서파 수면 시간을 늘려 주면 기억력이 좋아질 수 있을까. 같은 달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제로 뇌에 전극을 꽂아 인공 서파를 만들어 주는 연구가 있고, 그 중 일부는 기억력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꼭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잠을 푹 깊이 잘 수만 있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켄 팔러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극을 쓰지 않더라도 운동 등 잠을 푹 잘 수 있게 할 방법은 많다."라고 했다. 기억력 감퇴가 의심스럽다면 먼저 잠을 편히 잘 잘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왜 잠을 잘 자야 기억력이 좋아지는지를 설명하는 또 다른 설명도 있다. ‘시냅스(뇌세포 사이의 연결) 항상성’이라는 가설은 잠을 칠판지우개와 같은 존재로 본다. 잠을 통해 시냅스가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도록 ‘리셋’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의대 치아라 키렐리 교수팀은 2011년 6월, 초파리의 시냅스가 잠을 자면 더 작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내 그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시냅스는 낮에 활동을 하면 수가 늘어나고 크기도 커진다. 기억이 새로 만들어져 시냅스의 형태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정 커질 수는 없으므로, 적당한 시기에 불필요한 시냅스를 정리해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밤에 잠을 자는 이유라는 것이다. 키렐리 교수팀은 초파리에서 밤에 시냅스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까지 찾아내, 이 가설에 한층 힘을 실어줬다.

잠을 통해 기억을 없앨 수 있다면, 혹시 나쁜 기억을 없애는 수면 처방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잠의 편집 기능은 수면 의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기억력을 높이는 서파 수면은 나쁜 기억을 없애는 기억의 ‘청소부’ 역할도 해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의대 카테리나 하우너 박사팀은 서파 수면 처방을 통해 나쁜 기억에 시달리는 환자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3년 9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냄새가 기억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공포 기억을 지닌 사람에게 그 기억과 연관이 있는 냄새 자극을 주고 서파 수면 처방을 했더니, 서파 수면 처방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공포를 빨리 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해마와 같은 기억과 관련이 있는 뇌 영역의 활동에도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뇌가 이 과정에 깊숙하게 관여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기억은 단순히 암기력에 관련되는 두뇌 능력이 아니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기억이 사라진다면 극단적으로는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속 박사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 덕분에 우리는 늘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기억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잠은 삶의 3분의 1을 잠식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새로운 기억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삶의 필수 요소다.

글 :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숲 속의 공주님은 그간 잠잔 시간이 아까워 마음이 바쁘다. “백 년 동안이나 자다니,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공주님은 인터넷 검색으로 뉴스를 샅샅이 뒤지고, 밀린 영화보기와 잡지 읽기 등 세상 읽기에 바쁜 일정을 시작했다. 한편으로 그간 못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낮에는 말 타기, 밤에는 춤추기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잠자는 시간만큼 아까운 게 없다니까.”

밤에도 궁전의 조명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놓고, 며칠씩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매끈매끈 우윳빛 피부는 사라지고 눈 밑은 거뭇하고 낯빛이 흑색이었다. 최근 들어 무기력하고 짜증도 늘었다. 공주는 궁중 마법사를 불렀다.

“공주님, 밤에는 주무셔야 해요. 푹 주무시고 나면 다시 아름다운 얼굴색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최근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공주는 마법사의 조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누우며 이리저리 뒤척거리다보니 날이 밝고 말았다.

‘아니, 백 년 동안 잠을 잔 내가 하룻밤을 제대로 못 자다니!’

거울 속 공주의 모습은 더욱 초췌하다.

“저런, 공주님! 잠을 설치셨군요. 그간 밤에 활동을 너무 많이 하셔서 생체리듬이 깨진 거예요. 주ㆍ야간 교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겪는 수면장애지요. 최근 카페인과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과하게 드셨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 어떻게 하면 내가 다시 잠을 제대로 수 있을까? 다시 사악한 마녀를 불러야 하는 걸까요?”

건강하게 잘 자는 사람들은 며칠 못 자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기 쉽다. 잠의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잘 자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기면발작, 폐쇄성수면무호흡증, 아프리카수면병, 치명성가계불면증 등 잠을 ‘제대로’ 못 자게 하는 증세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해도 그렇다.

특히 아프리카수면병은 연간 50만 명이 감염되고 그 중 5만 여명이 숨질 정도로 치명적인 질병이다. 또 치명성가계불면증은 불면증으로 시작해 공포와 환각을 경험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희귀병이다. 광우병처럼 프리온으로 알려진 방어성 세포 단백질이 뇌의 시상 부분을 공격해 잠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이 병의 원인이다.

건강한 사람은 잠을 잘 잔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잠을 못 자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무척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질 낮은 수면과 수면 부족 등을 겪는 사람이 감기에 대한 저항력조차 낮았던 것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팀이 21~55세의 건강한 남녀 153명을 대상으로 연속 14일간 수면시간과 수면효율, 피로도 등을 조사한 뒤 이들을 격리하고 라이노 바이러스가 든 액체를 코에 분무한 뒤 5일간 감기 발생 여부를 감시했다. 그 결과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미만인 집단은 8시간 이상인 집단에 비해 약 3배가 더 감기에 걸렸다.

큰 병에 걸리면 고통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게 통념이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고통이 더욱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멤피스의 암연구네트워크 에드워드 스테판스키 박사팀이 암환자 1만 14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면에 문제 있는 환자는 통증, 피로, 우울감을 더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울증에 걸렸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수면장애 자체가 일종의 정신질환이며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는 파격적인 연구도 나오고 있다. 수면부족이 체내 호르몬에 영향을 끼쳐 스트레스 조절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수면장애가 원인이라면 정신질환 약이 아니라 수면치료와 수면제를 복용하는 걸로 치료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수면장애와 정신질환 사이의 연관성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잠의 중요성을 알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아픈가, 아프기 때문에 잠을 못 자는가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걸로 보인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잠들지 못한다. 도시를 대낮처럼 밝히는 조명, 다양한 밤 문화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한 야간이동, 스트레스,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과 각종 약물의 복용 등 현대인의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성인의 반 정도가 단기 불면증을 겪고, 10%는 급성 불면증을 겪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수면장애 환자는 5만 1000명에서 22만 8000명으로 4.5배 증가했다. 수면장애에 의한 건강보험 진료비도 해마다 늘어나 2001년 44억 원에서 2008년 194억 원으로 증가했다. 수면장애 환자가 연평균 20% 이상 증가하므로 앞으로 사회가 지불해야 할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수면장애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액손발데스 호의 알래스카 해안 기름 유출사고,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인도 보팔 화학공장 가스노출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모두 0시를 넘은 심야 시간이었다. 이 치명적인 재앙에 관리자의 수면 부족과 순간의 졸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질 나쁜 수면과 수면부족은 각종 질병과 사고의 원인이 되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게 만든다. 자신의 건강과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오늘밤 하던 일과 걱정을 모두 접어두고 깊이 잠들어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글이 유익하셨다면 KISTI의 과학향기를 구독해 보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 
BLOG main image
생활에 밎줄 긋는 과학이야기♡ -KISTI의 과학향기-
by 과학향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78)
과학향기 기사 (892)
과학향기 이벤트 (1)
과학향기 독자참여 (1)
이런주제 어때요? (1)

달력

«   2017/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istory!get rss Tistory Tistory 가입하기!
Clicky Web Analytic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