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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4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 서울편, 인왕산 지리여행(Inwangsan Geotravel)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 서울편, 인왕산 지리여행(Inwangsan Geotravel)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하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과학향기에서 5월부터 새롭게 지리여행을 테마로 한 칼럼을 마련했습니다.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은 평소 익숙한 곳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꾸며 매월 마지막 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일이니깐 지난 주 토요일이다. 1년 만에 인왕산(仁王山, 338m)을 다시 찾았다. 학생들과의 산행은 늘 신경 쓰인다. 암산(岩山)을 오를 때는 더욱 그렇다. 인왕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암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 위험하다. 특히 인왕산 같은 화강암산에서는 석영(石英) 알갱이를 조심해야 한다.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림 1. 인왕산 답사 코스(S: 시작점, E: 종착점). 화살표는 답사 궤적을 의미한다.



사직공원 9시 반. 가을 아침 햇살이 무척 따갑다. 그냥 산에 오르자니 재미없을 듯해 이름 붙은 여러 바위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번 지형학 답사 주제는 ‘화강암 풍화’. 인왕산 주봉인 매바위를 비롯해 모두 11개의 바위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해 보기로 했다. 인왕산은 서울 근교에서, 아니 전국에서도 짧은 시간 안에 화강암 풍화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 둘도 없이 좋은 장소다. 답사 코스로는 ‘사직공원-선바위-정상-기차바위-수성동계곡’을 택했다(그림 1). 4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인왕산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은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 지금으로부터 1억8천 년 전의 중생대 화강암이다. 회색빛 대보화강암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암석이다. 지하철 역사에 깔려 있는 게 바로 대보화강암이기 때문. 사직단을 뒤로 하고 오르니 이내 황학정이 보인다. 구한말 고종이 세운 국궁의 맥을 잊고 있는 중요한 장소다.

천천히 올라가니 한양성곽 길 주변이 온통 돌가루로 가득하다. 화강암은 석영, 장석(長石), 운모(雲母)라는 광물로 구성된 화성암(火成岩). 땅 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어 굳어진 돌이 바로 화강암이다. 화강암이 풍화를 받으면 보통 모래 알갱이만 남게 된다. 그래서 화강암산에 가면 굵은 모래 알갱이가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장석이 풍화를 받으면 점토광물로 바뀌며 모습을 감추게 된다. 침식저항력이 제일 강한 석영만이 끝까지 남아 우리 곁에 남게 된다. 강이나 바닷가에서 모래를 볼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림2 . 그림 1의 A 지역을 확대한 그림. 선바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름의 풍화지형들이 몰려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학생들과 나누다 보니 벌써 선바위 갈림길이다. 인왕산 남쪽 능선은 인왕산 내에서도 화강암 풍화지형의 극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그림 2, 사진 1). 큰 능선과 작은 능선을 따라 기괴하게 생긴 화강암반이 제각기 이름을 갖고 줄지어 서있다. 능선부에 이런 암괴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은 비, 바람에 의해 토층이 깎여 나갔기 때문. 능선에서 깎여나간 토립자가 쌓인 계곡 기슭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으나 능선엔 정작 암괴만이 돌출돼 있을 뿐이다.

화강암산에서 경치를 잘 감상하기 위한 비법은 간단하다. 절리만 제대로 보면 된다. 전 세계 어디서나 화강암 경관을 잘 감상하기 위해선 절리를 잘 관찰해야 한다. 절리(節理, joint)란 바위에 간 금을 말한다. 10km 정도 땅 속 깊은 곳에 있던 화강암 덩어리가 지표 침식으로 인해 짓눌렸던 압력으로부터 해방되면 바위에 금이 생기게 된다. 부피가 팽창한 탓이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단층과 습곡운동 때문이다. 지층이 어긋나고 휘면서 일정한 방향을 갖는 절리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진 1. 인왕산 남쪽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화강암 풍화지형(① 선바위, ② 와불, ③ 얼굴바위, ④ 해골바위, ⑤ 모자바위, ⑥ 달팽이바위, ⑦ 범바위)



그럼 인왕산의 풍화지형을 본격 감상해 보자. 절리를 구경해 보자는 말이다. 인왕산 풍화지형의 백미는 단연 선바위(사진 2). 장삼을 걸쳐 입은 스님의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세로로 뻗은 발과 빨판 모양이 언뜻 문어처럼도 보인다. 자세히 보니 두 개의 절리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에 벌집 모양으로 숭숭 뚫린 구멍은 풍화혈(風化穴). 영어로 타포니(tafoni)라 불리는 풍화 미지형이다. 입상붕괴(粒狀崩壞)라고 불리는 화학적 풍화작용이 타포니를 만들었다.
 


사진 2. 선바위. 화강암의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생긴 미지형이다. 두 개의 방향으로 절리가 지나가고 있다(사진 1의 ①).



인왕산 곳곳에는 기괴한 모양의 타포니들이 수없이 많다. 가히 타포니 천국이다. 생긴 모양도 절대신(絶對神)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타포니는 토테미즘의 숭배물이 되었을까? 선바위와 국사당을 중심으로 한 이곳은 민간신앙의 온상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구천에 떠도는 혼령들이 이곳에 제일 많이 모여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갑자기 이곳이 더 궁금해진다.
 


사진 3. 와불. 흰색은 수평절리를 노란색을 수직절리를 나타내고 있다. 1-2와 3-4 방향으로 발달된 수직절리가 와불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사진 1의 ②).



사진 3은 선바위 위쪽에 놓인 와불을 찍은 것이다(그림 2). 우선 절리를 찾아보자. 화강암 풍화지형의 시작은 절리라 했으니 차분히 뜯어보는 거다. 자세히 보니 진짜 많이도 보인다. 수평으로 2개, 수직으로 7개. 재미난 건 판상절리(수평절리)1와 수직절리들이 거의 같은 방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와불 옆으로 1-2의 수직절리가 3-4의 방향으로까지 이어져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4를 살펴보자. 얼굴바위다. 별로 규칙성이 없는 듯하지만 3개의 판상, 수직절리들이 평행하게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찰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것이 지리여행의 묘미다. 자연은 솔직해서 거짓말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어깨를 쫙 펴고 아래를 굽어보는 모양이 친근하다. 머리 부분이 많이 위태로워 보인다. 언젠가는 굴러 떨어질 기세다. 화강암산에서는 늘 낙석의 위험이 상존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언제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4. 얼굴바위에 발달된 절리들(사진 1의 ③).



이상의 것들이 그림 2의 큰 능선(주능선)에 있는 풍화지형들이라면 작은 능선(보조능선)에 있는 풍화지형도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사진 5와 6은 해골바위를 찍은 것이다. 해골바위란 이름은 타포니 덕분에 생긴 명칭이다(사진 5). 해골바위를 좀 더 멀리서 보면 해골바위를 이루는 전체 암괴의 오른쪽 모서리를 중심으로 3개의 판상절리가 지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사진 6). 해골바위는 산사면에 우뚝 솟은 일종의 토어(tor)2인 것이다.
 


사진 5. 해골바위의 타포니


 


사진 6. 해골바위를 옆에서 본 모습. 판상절리와 수직절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찾아보길 바란다. 3개의 판상절리가 보일 것이다.


 


사진 7. 모자바위와 달팽이바위의 절리들것이다.


 

그림 3. 인왕산 정상 부근의 풍화지형들(그림 1의 B 참고).



사진 7은 모자바위와 달팽이바위에서 발견되는 절리를 나타낸 것이다(그림 2의 ⑤, ⑥). 이제는 굳이 필자가 선을 긋지 않아도 잘 보일 것으로 믿는다. 이 말에 미소 짓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전부 시커먼 바위 색깔 속에서 유독 왼쪽 바위가 허옇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절리를 따라 암괴가 떨어져 나간 비교적 신선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속살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림 3은 인왕산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에서 볼 수 있는 바위들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그림 1의 B 부분). 이곳의 바위 이름들은 화강암 돔(dome) 지형에서 발견되는 특징에서 비롯됐다. 사진 8은 범바위와 매바위를 찍은 것이다. 범바위(그림 2의 ⑦)는 인왕산 정상부의 매바위로 향하는 도중의 돔 지형을 말한다(사진 9). 사진 8에서는 절리가 그리 발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사진 9의 범바위는 그야말로 절리 투성이다. 괜히 계단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사진 8. 범바위(좌)와 매바위(우). 매바위는 인왕산 주봉을 말한다.


 


사진 9. 범바위. 사진 8과는 다른 모습이다.



매바위로 향한다. 드디어 인왕산 정상인 것이다. 벌써부터 여학생들은 범바위에서 그냥 하산하자고 난리들이다. ‘교수니~임~!’ 하며 말끝을 흐리며 애원하는 표정들이 귀엽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초등의 꼬마아이들 보기가 창피하지도 않냐며 앞장선다. 히죽 웃는 남학생들 웃음 사이로 날라 오는 여학생들의 원망스런 눈초리에 뒤통수가 따갑다.
 


사진 10. 매바위 남쪽 사면에 발달된 절리



매바위로 향하다 보니 사진 10과 같은 근사한 절리가 눈에 들어온다.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만큼의 훌륭한 절리경관이다. 한마디로 절리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6개의 평행 수직절리가 판상절리와 맞닿은 안쪽으로 가로 방향의 홈이 깊게 파여 있다. 이곳을 보고 있노라니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 뒤쪽의 눈썹바위가 생각난다. 갑자기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사진 11. 인왕산 정상의 삿갓바위



드디어 정상이다. 이곳은 늘 338m의 기쁨을 만끽하려는 이들로 붐비는 곳이다. 삿갓바위라 이름 붙은 정상에 올라 그간의 등정을 보상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무 한그루 없는 이곳은 강렬한 햇빛을 고스란히 받는 곳. 자외선을 피할 길이 없어 대개들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하산 길에 나선다. 햇빛이 싫으면 사진 11에서와 같이 그늘진 성벽에 몸을 숨겨야 한다.
 


사진 12. 수직절리가 만든 책바위



자~! 우리에겐 아직도 구경할 바위들이 세 개나 더 남아있다. 조금 더 힘을 내야한다. 사진 12는 인왕산 정상에서 기차바위 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책바위를 찍은 것이다. 수직절리가 두꺼운 책 두 권을 세워놓은 것 같이 만들었다. 작품이 따로 없다. 가까이 가보니 거대한 암괴다. 갑자기 독일어가 들린다. 가족등반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의 인왕산 때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인왕산이 국제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 외국의 어느 수도(首都)에서 인왕산처럼 평상복 차림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산 전체가 최고의 뷰포인트 아니던가? 우리는 축복 받은 민족임에 틀림없다. 갑자기 정도전 선생이 고맙게 느껴진다.
 


사진 13. 치마바위. 그루브가 만든 치맛주름이 멋지다. 뒤쪽으로 범바위가 보인다.



그런 우리를 시기해서였을까? 사진 13의 치마바위 왼쪽으로 이상한 자국들이 선명하게 보인다(빨간색 화살표). 이것은 다름 아닌 일제가 ‘천황폐하만세’ 운운하며 새겨놓은 글씨를 벗긴 자국들. 지금 생각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건만 우리 어른들은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치마바위는 그루브가 만든 걸작품. 그루브(groove)란 빗물이 암석에 깎아놓은 가늘고 긴 물길자국을 말한다. 사진 13에서 판상절리 위에 발달된 그루브가 점차 뜯겨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노란색 화살표). 상처 난 부위에 새살이 돋아 딱지가 떨어져 나가는 딱 그런 느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사진 14. 기차바위의 위용



사진 14는 기차바위를 찍은 것이다. 바위 정상부의 절벽 능선 한가운데로 놓인 길 모양에서 따온 이름이다. 기차바위는 인왕산 정상에 오른 보람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칭얼거렸던 여학생들도 이곳의 절경을 보곤 잘 올라왔다며 멋쩍게 웃었을 정도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기차바위 정상에서는 두께 2m 정도의 판상절리와 그 위에 새겨진 그루브를 볼 수 있다. 물론 지형을 아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사진 15. 수성동계곡에서 바라다본 인왕산 매바위의 모습. 이곳에서 조선의 명화가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수성동계곡은 청계천의 상류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계곡 역시 절리가 침식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드디어 하산이다. 모두들 환성을 내 지른다. 남학생들도 은근히 반기는 눈치다. 하긴 가을 뙤약볕에 남긴 물도 없이 암산을 걷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 수성동계곡으로 내려와 앱을 들여다보니 예정시간 보다 1시간이 지난 5시간 동안 5km를 걸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모두들 다치지 않고 견뎌내 준 게 고맙다. 수성동계곡은 잘 알려진 계곡이다. 조선 영조 때의 명 산수화가인 겸재 정선 선생이 바로 이곳에서 그린 그림 덕분이다.
 


사진 16. 인왕산 주봉인 매바위. 이 사진에서 절리를 찾아보고 어떤 방향성을 보이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정답은 아래의 사진 17을 보면 된다.



이곳에 서서 인왕산 주봉을 망원으로 담아본다(사진 16). 이제껏 15장씩이나 되는 사진을 보며 지루하도록 절리만을 말해 왔으니 이제 한번쯤은 독자들이 말해볼 차례다. 그래서 퀴즈 하나. 위의 사진 16을 보고 절리의 특징을 말해보길 바란다. 정도전의 우백호(右白虎)와 무학대사의 주산(主山) 다툼이 정도전의 승리로 끝나면서 한양의 호랑이가 된 인왕산. 허옇게 드러난 화강암 돔(dome)은 호랑이 몸체요, 화강암이 풍화를 받아 변색된 검은 줄은 영락없는 호랑이 줄무늬다. 이런 잘 생긴 호랑이를 갖고 있는 우리가 더없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 호랑이는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민족의 수호신인 것이다.
 


사진 17. 사진 16의 정답. 매바위라 불리는 인왕산 주봉에는 ①번의 수평절리를 기준으로 상부와 하부의 수평, 수직절리가 각기 다른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각주>
1. 판상절리(板狀節理, sheeting joint)란 암석에 발달된 수평방향의 절리를 말한다.
2. 토어(tor)란 풍화작용의 결과 형성된 우뚝 솟은 암괴를 말한다. 주로 산 정상부나 능선부에서 잘 발견된다.

글 : 박종관,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http://jotra.com), 문화체육관광부 생태관광컨설팅위원장(MP)
사진, 그림 : 박종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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