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을 풀어주는 매듭론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바로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TV도 보고 영화도 보는 요즘, 이어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인 것이다. 하지만 주머니나 가방 속 이어폰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제멋대로 꼬여버리는데 꼬인 이어폰 줄을 푸는 것도 쉽지 않다. 이쪽으로 줄을 빼면 풀어질 것 같다가도 다른 쪽이 꼬여버리는 장면은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하루에 한 번쯤은 겪는 이런 당혹스러움은 오랜 옛날부터도 골칫거리였던 모양이다. 동방 원정을 시작하기 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쿨하게 칼로 잘라버렸다는 고르디아스의 매듭 설화도 있고, 엉킨 실타래는 복잡하게 꼬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비유로 종종 사용되곤 했다.

주머니 속에서 벌어지는 이어폰 줄의 조화를 이해하는 데 수학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바로 매듭을 분류하고 이들의 변형을 연구하는 매듭론 덕분이다. 매듭론은 위상수학의 한 분야로 순수수학치고는 꽤나 구체적인 현실을 다룬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매듭이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매듭과는 약간 다르다. 흔히 접하는 매듭은 그저 실을 꼬아서 묶는 것을 일컫지만, 매듭론에서 다루는 매듭은 처음과 끝을 이어놓은 실, 즉 완전한 폐곡선(closed curve) 형태를 말한다.

■ 매듭론의 기원, 소용돌이

매듭론이 폐곡선 형태의 구체적인 대상을 다루는 이유는 그 기원이 물리학의 소용돌이(vortex)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소용돌이란 흔히 생각하듯 물이나 공기가 뱅뱅 돌며 휘몰아치는 그 소용돌이가 맞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소용돌이는 유체의 일부가 원운동을 하는 부분을 이르는 말로 별다른 방해가 없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폐곡선을 따라 영원히 회전한다.

인스턴트 커피에 물을 붓고 휘저을 때를 생각해 보자. 잔속의 물은 한 덩어리로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찻잔에 가까운 부분의 커피 분말은 물을 따라 회전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뱅뱅 맴도는 경우가 있다. 물의 흐름 근처에 작은 크기의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산속 개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물가의 나뭇잎이 하류로 떠내려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를 더욱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는 유체(fluid, 액체와 기체를 합쳐 부르는 용어)들도 미세한 소용돌이의 연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체계화한 이론이 바로 유체에서의 소용돌이 이론, 흔히 보텍스(vortex)라고 말하는 이론이다. 보텍스 이론은 미세한 소용돌이가 최소 단위를 이루고 이들이 모여 커다란 유체의 움직임을 구성한다고 본다. 따라서 단위 소용돌이의 성질과 변화를 분석하면 전체 유체의 흐름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유체에서의 보텍스 이론은 독일의 과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가 체계화하고 영국의 과학자, 켈빈 경(Lord Kelvin, William Thomson)이 다듬어 완성했다.

켈빈 경은 오늘날 절대 온도를 뜻하는 켈빈이라는 단위에 이름을 남긴 과학자다. 전기와 열역학 연구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이 위대한 과학자는 정작 원자론에는 재능이 없었는지, 원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그가 원자의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 바로 소용돌이로, 보텍스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화학 체계를 구상할 심산이었다. 켈빈 경은 원자는 단단한 입자가 아니라 특정한 모양과 고리의 개수를 지니는 소용돌이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으며, 소용돌이의 모양과 구조에 따라 물질의 성질과 화학반응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켈빈 경이 원자의 소용돌이 이론의 기본 골격을 만들었다면 동료인 피터 테이트(Peter G. Tait)는 세부 아이템들을 채워 넣었다. 테이트는 원자를 대체할 매듭의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매듭을 종류별로 분류했다. 켈빈의 이론에서는 매듭이 원자를 대체했으므로, 이는 곧 각 물질의 성질에 대응하는 구조의 매듭을 하나하나 지정하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 현실을 설명하는 수학, 과학을 바꾸는 수학

매듭은 그것을 이루는 실이 서로 교차돼 꼬인 부분이 몇 개인지에 따라 구분한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매듭은 교차된 부분이 없는 원형이다. 원형매듭을 중간을 끊지 않은 채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아 놓아도 꼬인 부분을 신중하게 풀어나가면 끈을 자르지 않고도 원래의 원형으로 되돌릴 수 있다. 이때 원래의 원형 매듭과 복잡하게 꼬아 놓은 매듭은 동일한 매듭이다. 실뜨기 놀이를 할 때 고리로 묶어 놓은 실의 모양이 다양하게 변화하지만 손에서 빼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원래의 원형 고리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된다.



가장 기본적인 매듭인 원형 매듭(왼쪽)과 그 변형(오른쪽). 두 매듭은 얼핏 달라 보이지만 원형 매듭을 적당히 꼬아 놓으면 오른쪽의 매듭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매듭의 중간을 자르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두 매듭은 같은 매듭이다. (출처 : wikipedia)


그렇다면 복잡하게 얽힌 두 매듭이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를 설명한 사람이 독일의 수학자 쿠르트 라이데마이스터(Kurt Reidemeister)다. 이름에 마이스터가 들어간 사람답게 그는 매듭론의 기초를 이룰 중요한 개념을 정립했다. 라이데마이스터는 하나의 매듭이 같은 종류의 다른 매듭으로 변할 때 세 가지 변형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막상 그림으로 보면 맥 빠지게 간단하고 자명해 보이는 개념이지만, 이를 통해 하나의 매듭이 어떤 매듭으로부터 변형된 것인지 증명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라이데마이스터 변형으로는 결코 변하지 않고 보존되는 수학적인 양이 있어, 이 양에 따라 매듭을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매듭이 꽤나 매력적인 주제였는지 많은 수학자들이 매듭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대수구조를 이용하여 매듭을 함수 형태로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체계화됐으며, 이 과정에서 땋임(braid)과 통합된다. 땋임이란 머리카락을 땋듯 몇 가닥의 실을 꼬아 놓은 모양을 일컫는다. 매듭과 달리 양쪽이 연결되지 않은 실 여러 가닥이 얽힌 모양이다. 땋임을 연결한 형태는 특정한 대수적 구조인 군(群)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를 땋임군이라고 한다. 땋임군의 구조를 매듭에 적용하면, 서로 땋인 실의 아래쪽과 위쪽을 서로 연결할 때 매듭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별 걸 다 연구한다 싶겠지만 의외로 매듭과 땋임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복잡한 3차원 구조를 수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변형이 가능한지 예측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분야가 바로 분자 생물학이다. 분자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 중 하나가 DNA다. 유전 정보를 담은 DNA는 평소에는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빽빽하게 꼬인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 유전정보를 복제하거나 단백질을 만들어내야 할 때 잔뜩 꼬인 나선 구조를 풀어야 하는데, 효소가 가장 효율적으로 꼬임을 풀 수 있도록 DNA의 적당한 부분을 끊는다. 매듭이론은 이 과정을 분석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세 가지 유형의 라이데마이스터 변형. 첫 번째 그림의 1종 변형은 한 가닥, 두 번째 그림의 2종 변형은 두 가닥, 세 번째 그림의 3종 변형은 세 가닥의 실이 있을 때의 변형 방법이다. 세 경우 모두 왼쪽의 실을 중간에 자르거나 다시 붙이는 일 없이 적당히 변형시키면 오른쪽의 형태를 얻을 수 있으며 화살표 양쪽의 매듭은 수학적으로 서로 동일하다. (출처 : wikipedia)


생물학 외에도 매듭론은 여러 분야에 응용된다. 국내에서 발표된 것 중 중요한 사례로는 땋임군을 이용한 암호 이론이 있다. 이는 세계에서 최초로 한국의 연구자가 개발한 독자적인 암호 체계로 후속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다. 물리학의 최전선인 양자장 이론에서도 매듭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활용 범위가 넓은 만큼 매듭 이론은 현대 수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가 이 분야에서만 여러 명 나왔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연구자들이 매듭론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단순한 고리에서 시작된 연구가 세상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열쇠가 된 것이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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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전기신호를 소리로 바꾼다! 스피커 만들기

바야흐로 멀티미디어의 시대다. 우리는 TV와 라디오, PC는 물론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영상․음악 콘텐츠를 즐긴다. 멀티미디어의 필수품 중 하나는 바로 ‘스피커’다.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는 건 스피커나 이어폰 덕분이다.

스피커(speaker)는 전기로 된 신호를 음성신호, 즉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변환해 주는 장치다. 우리말로 확성기라고도 부르며, 스피커를 휴대용으로 작게 만든 것이 이어폰이다.

오디오에서 만들어진 소리 정보는 전기신호 형태로 전선을 통해 스피커까지 전달된다. 스피커에 들어있는 코일에 소리의 전기신호가 흐르면 자기장의 작용에 의해 코일 사이에 있는 철 조각이 움직인다. 이 진동이 진동판에 전해져 소리가 발생한다. 소리 신호와 자기장, 전기, 진동판이 있다면 스피커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간단한 재료를 사용해 직접 스피커를 만들어 보자.


[교과과정]
초등 3-2 자석의 성질
초등 5-1 전기 회로
초등 6-2 자기장

[학습주제]
전기와 자기의 관계 이해하기
스피커의 원리 이해하기
자기장을 이용한 스피커 만들기

<실험 방법 및 원리>



<실험 동영상>



* 실험 참고사항 :
• 에나멜선, 네오디뮴 자석은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에나멜선의 끝부분 코팅면을 벗기기 위해 라이터를 이용할 경우, 손을 데거나 다른 곳에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 플라스틱 컵 대신 종이컵을 사용해도 됩니다.
• 오디오용 전선 대신 한쪽이 고장 난 이어폰을 잘라내어 사용해도 됩니다.

※오디오용 전선 표면의 피복을 벗겨내면 안에 전선이 3개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빨간색, 검은색, 니크롬선), 이 경우 빨간색과 검은색의 전선은 다시 벗겨 두 개를 꼬아 묶어준다. 두 개를 묶은 전선과 니크롬선에 각각 전선을 연결하면 된다.


플라스틱 컵에서 소리가 나오는 비밀

전류는 전자가 이동하면서 흐른다. 전자의 움직임은 자기장도 함께 만들어 내는데, 이 때문에 전류가 흐르는 전선 주변에는 자기장이 발생한다. 이와 반대로 원형 전선 안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전선에 전류가 발생한다. 이처럼 전기와 자기는 늘 함께 존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음악이나 음성신호는 디지털화 또는 아날로그화해 매체에 기록된다. 실험에서는 그 매체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재생하면 디지털 또는 아날로그 신호가 추출돼 전기신호로 전송된다. 이 전기신호는 오디오용 전선과 에나멜선을 따라 흐르는데, 이때 생긴 전류의 변화가 자기장을 만들고, 이 자기장이 네오디뮴 자석의 자기장과 함께 작용해 플라스틱 컵을 진동시킨다. 이 진동이 소리를 만들어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이다. 소리의 높낮이와 크기는 전기신호의 주파수와 전류의 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다양한 스피커의 개발

앞에서 소리 신호와 자기장, 전기, 진동판이 있다면 스피커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독특한 형태의 스피커를 개발한 사례도 종종 발표된다. 2004년 일본에서는 꽃병 바닥에 도넛 모양의 자석과 코일을 부착한 ‘꽃잎 스피커’를 선보였다. 오디오에 연결하면 전기신호가 꽃줄기를 거쳐 꽃잎을 진동시키고, 이를 통해 소리를 듣게 되는 원리다. 일반 스피커가 한 방향으로만 소리를 전파한다면, 이 꽃잎 스피커는 사방으로 소리를 전파한다.

일반 유리창에 진동 장치를 붙여 소리를 내는 특수한 스피커 ‘사운저볼’도 있다. 진동 장치에서 나오는 진동이 유리 표면을 흔들면 표면 진동이 공기를 울려 소리를 전달하는 원리다. 진동 장치를 붙일 수 있는 넓은 면만 있다면 어떤 물체라도 스피커로 사용할 수 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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