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침팬지의 냉장고를 부탁해


전래동화 중에 무엇이든 심하게 아껴서 쓰던 자린고비 이야기가 전해진다. 너무 흔들다 닳아버릴까 염려해서 부채는 세워두고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식탁에 앉았던 파리가 다리에 된장을 묻히고 날아가자 아까운 나머지 뒤쫓아 가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소금간이 된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두고 맨밥을 먹으며 쳐다보다가 “아이고 짜다” 하고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반찬을 대신했다는 내용이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먹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하는 음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이른바 ‘먹방’이 유행이다. 내가 아닌 남이 열심히 음식을 먹으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을 쓰고 열광을 하며 심지어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현상이라 외신들도 먹방 현상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식사는 가족, 친구, 동료처럼 친근한 사이끼리만 함께할 수 있는 행동이다. 식당에 가서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밥을 먹게 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경험이 그리워질 때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 먹방을 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매번 다른 요리와 반찬을 즐기기가 어려워진 것도 원인이다. 유명 레스토랑의 음식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인기를 끄는 것도 먹방과 비슷한 현상이 진작부터 시작됐다는 증거다. 

이제는 먹방의 시대를 지나 남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즐기는 ‘쿡방’이 인기다.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이 비법을 전수하고 설명하는 방송이었다면, 지금의 쿡방은 경력이 오래된 요리연구가들을 ‘셰프(Chef)’라 부르며 연예인처럼 동경하고 환호를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요리를 따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만들고 맛보는 장면 자체를 좋아해서 방송을 본다. 생활 속에서 직접 요리를 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경이로움도 한몫을 한다. 

칼과 불을 이용해 원래 날것이던 재료를 변화시켜 맛있는 음식을 탄생시키는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나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요리를 잘하는 쪽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게 당연하다. 18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의 법률가 겸 저술가 제임스 보즈웰(James Boswell)은 인간을 요리하는 동물(Cooking Animal)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으며, 식재료를 지지고 볶고 굽고 찌고 삶고 끓이는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하버드대학교 인류학 교수는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먹음으로써 인류의 진화가 촉진됐다며 ‘화식(火食) 진화설’을 주장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던 랭엄 교수는 주식이 되는 열대과일과 덩이뿌리를 시식했다가 깜짝 놀랐다. 쓴맛이 강하고 질겨서 제대로 씹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600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지금에 이르렀다. 요리라는 고난이도의 과정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면 그 출발점이 궁금해진다. 랭엄 교수는 10년이 넘는 증거 수집 끝에 2009년 요리의 중요성을 담은 책 ‘요리 본능(Catching Fire)’을 펴냈다. 

날것을 그대로 먹는 생식이 몸에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전 세계에서 수렵채집 민족으로 살아가는 부족 중에서 생식을 하는 사례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랭엄 교수는 식재료를 불에 익혔을 때 맛과 영양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실제로 날달걀을 섭취했을 때, 소화를 통해 흡수되는 단백질은 50% 수준이지만 익혀서 먹으면 90% 이상의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생식을 고집하면 낮은 소화 흡수율로 인해 체중이 계속 감소하며 결국에는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 조건이 나빠진다. 

불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 것은 여러 장점을 준다. 첫째로는 소화가 쉬운 상태로 식재료가 변화하면서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 체력적으로 유리하다. 뇌는 근육보다 22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인류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큰 뇌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익혀먹지 않고는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유인원에 가까운 호모 하빌리스에서 뇌 용량이 1.5배 커져 두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불을 이용한 요리가 필수적이다. 

둘째로는 요리는 식재료를 연하게 바꾸므로 섭취와 소화에 필요한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침팬지는 주간 활동시간의 절반에 달하는 6시간을 매일 음식을 씹는 데 소비하지만, 인간은 1시간 정도만 씹으면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요리 덕분에 소화시간도 짧아져 노동시간도 그만큼 더 많이 확보하게 됐다. 셋째로는 음식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식재료를 불에 익히면 영양분이 파괴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성이 제거되는 이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패에 관여하는 세균과 수분을 제거함으로써 보존기간도 늘어난다. 

불에 익힌 식재료가 맛과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면 동물들도 요리된 음식을 선호할까.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랭엄 교수의 주장을 토대로 최근 2년 동안 아프리카 콩고의 야생에서 실제 실험을 진행했다. 날고구마 조각을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흔들며 1분 동안 기다리면 마치 요리가 된 것처럼 익힌 고구마로 바꿔주는 장치를 설치하고 반응을 지켜봤다. 

연구진이 제공한 날고구마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지 않고 1분을 기다려서 익힌 고구마로 바꿔간 침팬지의 비율은 90%에 달했다. 심지어 나중에 요리해 먹기 위해 날고구마를 쌓아두는 모습도 보였다. 침팬지가 맛과 영양을 위해서라면 인내심을 발휘할 줄도 알고, 식재료를 변화시키는 과정과 필요성도 문제없이 이해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등산을 하다보면 ‘산에 사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하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대부분은 불에 익힌 식재료들이어서 섭취와 소화에 편리하다. 그러나 동물은 인간처럼 조리 기구나 요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등산객들이 주는 익힌 음식에 길들여지면 야생에서 생식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 요리는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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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요리하는 엄마는 과학자!

엄마는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공부하는 자녀들을 위해 어떤 요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어떤 음식을 차려 주는 것이 좋을지 항상 고민이다. 무엇보다도 필수아미노산,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균형 있게 포함돼야 하며 비타민의 결핍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의 아침 메뉴가 선정되면 엄마는 잠시 과학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선 실험재료인 식재료를 깨끗하게 세척하고, 이를 화학반응을 위한 용기인 뚝배기에 넣는다. 압력은 1기압, 온도는 섭씨 100도에서 반응 식재료를 넣는다. 식재료의 영양소가 용매에 충분히 우러나도록 하려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용매의 증발을 막기 위해 뚜껑을 닫아 원하는 염분의 농도를 유지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맛있는 쌀밥을 만들기 위해 압력조절이 가능한 밥솥을 준비한다. 밥솥으로 고효율의 화학반응을 일으켜 아주 꼬들꼬들한 쌀밥을 준비했다. 모든 요리가 준비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음식 맛의 향연에 흠뻑 빠진다. 엄마의 정교한 손은 오늘도 재현성 있는 실험을 통해 기존과 같은 맛을 재현했다. 오늘의 음식은 동일한 영양소들로 구성됐고 이는 엄마의 정성과 함께 인체 내부에 원활히 흡수돼 가족들의 건강을 지킬 것이다. 이렇듯 엄마는 가족을 위한 과학자다.

요리는 실제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실험과 유사하다. 연구실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실험장비들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사용하는 조리 도구와 일맥상통한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흥미로운 물리, 화학적 현상이 일어난다. 실제로 요리에서 배울 수 있는 화학반응은 다양하다.

한국인의 식탁이라면 빠질 수 없는 반찬, 김치는 배추에 양념을 해서 만든다. 하지만 같은 김치라도 맛은 가지각색이다. 맛있는 엄마표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배추를 잘 절여야 한다. 엄마들이 ‘배추 숨 죽이기’라고 표현하는 이 단계는 깨끗이 씻은 배추의 반을 갈라 굵은 소금을 뿌려서 한동안 재워둔다. 이 과정에는 삼투압의 비밀이 숨어있다.

삼투압 현상은 농도가 다른 두 용액이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만나면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농도가 높은 쪽으로 용액이 이동하는 현상이다. 반투막이란 용액에서 특정 성분만 통과시키고 나머지 성분은 통과시키지 않는 막이다. 때문에 배추에 고농도의 소금을 뿌려 놓으면 농도가 낮은 배추 속 수분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 과정을 통해 배추가 부드러워진다. 우리의 세포막도 반투막인데, 이 반투막을 통해 세포는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불필요한 노폐물을 배출한다.

화학반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온도(Temperature)와 압력(Pressure)이다. 압력은 온도에 비례한다. 고효율의 화학반응을 위해서는 고온․고압 반응기가 사용된다.



[그림1] 배추를 소금으로 절일 때 일어나는 삼투압 현상.
옛날 어머니들이 밥을 지을 때 사용했던 무거운 뚜껑을 가진 솥은 훌륭한 고온․고압 반응기다. 이는 높은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압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반응시스템을 이끌어낸다. 이를 통해 물의 끓는점 상승효과가 일어나 물이 끓는 속도가 빨라진다. 결과적으로 이런 솥으로 밥을 하면 밥알이 씹히는 맛이 좋아진다.

젤리나 도토리묵, 두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말캉말캉한 이 음식들은 액체라고 하기에는 흐르지 않고, 고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랑말랑하다. 이들은 액체와 고체의 중간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외력에 의해 변형되거나 복원된다. 일례로 젤리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1. 젤라틴과 설탕을 냄비에 담고 약한 불로 가열하며 녹인다.
2. 모양을 만들 주형에 1을 붓는다.
3. 2를 냉장고에 넣고 1시간 정도 굳힌다.

이 요리는 온도가 상승하다가 다시 온도가 하강하는 과정을 거친다. 도토리묵이나 두부를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가열을 해 액체 상태로 만든 물질을 다시 식히면서 굳히는 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모두 물리적인 현상인 젤화(gelation)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고온에서는 졸(sol) 상태의 액체로 존재하다가 온도가 낮아지게 되면 교차결합으로 인해 3차원 그물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높은 탄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라면을 끓일 때도 흥미로운 물리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다. 라면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이라면 쫄깃한 면발과 물의 양, 불의 세기를 들 수 있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면을 넣기 전에 스프를 넣어야 한다. 끓는 물에 스프를 넣으면 순수한 물의 끓는점인 섭씨 100도보다 끓는점이 높아진다. 물의 끓는점보다 높은 온도에서 가열하기 때문에 면이 빨리 익게 되고 스프의 향도 더 잘 배어들게 된다. 두 번째로 면을 넣은 후 식초를 반 숟가락(15mg)을 넣는 것이다. 식초를 넣으면 면의 탄수화물 조직이 치밀해져 보다 쫄깃한 면을 먹을 수 있다.

[그림 2] 라면에 식초를 첨가했을 때 면발에서 일어나는 현상. 면의 주성분인 전분과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이 만나면 면의 조직이 치밀화되면서 면발이 더욱 탱탱해 진다.

끓는 물에 스프를 넣으면 용액의 끓는점이 순수한 용매의 끓는점보다 높은 ‘끓는점 오름’ 현상이 일어난다. 때문에 끓는점이 섭씨 107.6도로 상승한다. 식초를 넣으면 면발이 탱탱해 지는 이유는 식초의 유기산(아세트산) 때문이다. 면의 주성분인 전분과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이 만나 면의 조직이 치밀화되면서 물의 수화작용을 억제시킨다. 수화작용은 수용액 속에서 용질 분자나 이온이 용매인 물 분자와 결합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작용이 억제되기 때문에 탱탱한 면발이 오래 유지된다.

이렇듯 요리를 할 때 발견되는 다양한 현상들은 당연한 것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발생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요리의 맛과 향에 영양을 주는 다양한 물리․화학적인 변수들을 조절하면 우리의 식탁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물론, 전문적인 요리개발 연구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창수 충남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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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점심 메뉴는 매운 제육볶음. 많이 주기로 소문난 집이라 거하게 먹었다. 더부룩한 느낌이 들어서 청량음료도 한 잔. 식후에 커피 한 잔. 아 그런데 역시나, 역시나 또 뱃속이 요란하다.

“김 대리, 또 화장실 가는 거야?”
“네, 점심 먹은 게 아무래도…”
“그렇게 장이 안 좋아서 어째.”
“전 어려서부터 장이 안 좋았어요. 어이쿠, 실례할게요.”

나 김 대리의 장(腸)은 매일 이런 소리를 듣고 산다. 내가 장기들 중에 덩치로는 제일이지만, 솔직히 난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이다. 아니 세상 없이 둔감하더라도 ‘불량품’ 소리를 날마다 듣는다면 기분 좋을 리 없다. 포화 상태까지 잔뜩 먹고, 가스 유발하는 청량음료 마시고 그 뒤에 커피 세례까지 퍼부은 다음 장이 안 좋다고 탓을 하다니. 나는 밀려드는 음식물들을 처리하느라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른 장기들마저 내가 일 처리 느리고 자리만 많이 차지한다고 비웃는 지경이다. 도대체 내 신세가 이게 뭔가. 위란 놈은 ‘난 최선을 다했어.’라며 나에게 음식물을 내려 보내지만 제대로 밑 작업이 되어 있을 리 없다. 이래저래 오늘도 나는 꾸륵거리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하다 안되면 설사로 밀어내거나 가스가 차면 방귀나 뿜어야지. 별수 없다.

“김 대리, 이제 괜찮아?”
“아직도 배가 빵빵한 게 속이 편하지 않네요.”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휴, 말 마세요. 제가 병원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걸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병이 아니라며 그냥 운동 열심히 하고, 평소에 문제 일으키는 음식은 피하라는 식으로 의사들은 쉽게 말한다니까요. 병원 돌아다니다 도리어 우울증 생기기 십상이에요.”
“오래가는 걸 보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아니라 다른 병일 수도 있잖아? 염증이 있거나, 요새는 대장암도 많다고 하니까 안심하는 차원에서라도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지.”
“저도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아봤어요. 혹시 위에 문제가 있나 싶어 위장관 방사선검사, 내시경, X선 조영술부터 대변검사, 혈액검사, 대장경 검사, S자 결장경 검사까지 안 해본 게 없는데요. 다행히 병은 아니래요. 궤양성 대장염은 대부분 직장에 염증이 생기는데 설사 외에도 혈변이나 식욕 감퇴, 체중 감소 같은 증상이 있대요. 복통, 설사와 37.5도 이상의 미열이 있으면 장 결핵이나 궤양성 대장염, 종양 등 다른 병일 가능성이 있지만, 저 같은 증상은 전형적인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네요. 그러니까 증후는 있지만 병은 아니라는 거죠.”

한숨 돌리고 나니까, 이 몸의 주인은 또 대장 탓을 하고 있다. 사실 이건 김 대리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마케팅팀의 이 대리도, 회계팀의 정 과장도, 아까 화장실에서 만난 인턴사원의 장도 나와 동병상련인 처지다. 감기 다음으로 흔한 병이 바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성인의 15~20%가 이 증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모두가 장 탓이오.’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변비를, 어떤 사람은 설사를 하고, 또 어떤 이는 변비와 설사를 번갈아 하고, 방귀, 복부 팽만 등등 증상은 가지각색인데 뭉뚱그려서 다 장이 안 좋은 탓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데 똑똑하다고 으스대는 뇌들이 연구해서 내놓은 답이라는 게 ‘모르겠다.’는 거다. 스트레스나 우유 달걀 고기처럼 소화가 잘 되고 찌꺼기가 남지 않는 음식 탓이 아닐까? 아니면 말고. 이런 식이다. 운동을 하세요. 소식하세요. 배를 따뜻하게 하세요. 스트레스를 줄이세요. 등등 이건 모든 건강 상담에 교과서 같은 답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지난번에 만난 의사는 좀 괜찮았다. 병도 아닌 걸 가지고 병원에 왔느냐고 핀잔을 주지도 않았고, 장이 안 좋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고충을 아는 듯 김 대리에게 장의 기능을 믿고 맡겨보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 의사가 내린 처방은 우리나라 성인은 유당분해효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우선 유제품 섭취를 줄여보라는 것이었다. 김 대리가 이거 하나는 잘 지켰다. 하지만 유제품 만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의사는 먹는 음식에 대해 일기를 써서 어떤 음식이 증상을 악화시켰는지 찾아내는 방법을 써보라고 했다. 김 대리가 오늘 제대로 일기를 쓴다면 매운 제육볶음, 청량음료, 커피가 모두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용의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일기를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 지난번에 삼겹살과 맥주를 먹은 뒤로 크게 고생을 하고 나서 결심을 단단히 하고 음식 일기에 써두기에 이젠 안심이다 했더니, 2주가 지나지 않아 같은 메뉴를 또 들이부었다. 회식이란다. 그래도 음식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만은 칭찬해줄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일기를 계속 쓰다간 김 대리가 회사 근처에서 점심으로 먹을 게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 같은 처지의 장이 많다는 게 약간은 위안이 된다. 머지않아 나의 이 고통도 해결책이 나오리라 믿는다.

참, 이봐 주인. 혹시 자다가 복통 때문에 깰 정도로 배가 아프다면, 그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아니라고. 그땐 얼른 병원에 날 데리고 가줘. 부탁해.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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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약을 지을 때 약사들이 꼭 하는 말. “술은 절대 피하시고, 식사 30분 뒤에 드세요.” 술이야 몸에 좋지 않을 때가 많으니 그렇다 치지만, 술 이외에도 피해야 하는 음식은 없을까. 또 과연 모든 약이 식사 30분 뒤에 먹어야 하는 것일까.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식사 30분 뒤인 이유는 글 하단에)

다행히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약과 음식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라는 책자를 통해 음식과 약의 궁합에 대해 소개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에 인연과 궁합이 있듯 음식과 약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에 따라 먹으면 좋은 음식이 있는 반면, 먹으면 안되는 음식도 있다. 알아두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음식과 약의 궁합에 대해 살펴보자.

■ 우유=우유는 ‘완전식품’이라고까지 불리는 몸에 좋은 음식이다. 그러나 어떤 약은 우유와 함께 먹었을 때 문제를 일으킨다. 대표적인 약이 변비 치료제. 우유는 약알칼리성으로 위산을 중화시키기 때문에 장까지 가야하는 변비 치료제를 위에서 녹인다. 약효가 떨어지고 복통이 일어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항생제와 항진균제 중에도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우유가 약의 흡수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

반대로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좋은 약도 있다. 염증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하는 아스피린 등의 진통제는 위를 자극하기 때문에 우유와 함께 먹으면 위 손상을 줄일 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항생제와 변비 치료제는 우유와 함께 먹으면 좋지 않고, 진통제 종류는 우유와 함께 먹으면 좋다.

■ 과일, 채소=몸에 좋다는 과일, 채소도 예외는 아니다. 자몽은 첫맛은 달콤하고 끝맛은 쌉쌀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규칙적으로 먹는 약이 있다면 조심해야할 과일이다. 정신질환 치료제인 항불안제와 혈액의 지방 성분을 줄여주는 고지혈증 치료제가 이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간이 이들 약을 분해할 때 자몽의 쓴맛 성분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불안제, 고지혈증 치료제와 자몽을 함께 먹으면 약이 분해되지 않아 약효가 과도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항불안제, 고지혈증 치료제를 먹는 사람에게 자몽은 ‘금단의 과일’이다.

주스로 자주 먹는 오렌지도 마찬가지다. 위산을 중화시켜 속쓰림을 줄여주는 겔포스, 알마겔과 같은 제산제에는 알루미늄 성분이 든 것이 많다. 알루미늄은 평소에는 이 성분이 몸에 흡수되지 않고 제산기능만 하고 배출돼 안심이지만 오렌지 주스와 함께 먹으면 흡수될 수 있다. 또 제산제의 역할이 산도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산도가 높은 과일, 탄산음료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오렌지 주스는 제산제로 위장을 달랜 뒤 적어도 서너 시간 뒤에 마시자.

고혈압 치료제 중에 특히 과일, 채소류의 섭취를 잘 조절해야 하는 것이 많다. 여기서 핵심은 칼륨(K)이다. 고혈압 치료제 중에는 칼륨의 양을 늘리는 것이 많은데 여기에 칼륨이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칼륨이 너무 과도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 치료제 대부분이 칼륨 채널과 연관이 있다. 칼륨이 풍부한 음식은 바나나, 오렌지, 푸른잎 채소 등이다. 고혈압 치료제를 먹는 사람은 과일 채소 섭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항응고제는 좀 더 까다롭다. 항응고제는 혈액이 굳지 않게 해주는 약이다. 여기에는 비타민K가 문제가 된다. 비타민K는 혈액을 잘 응고하는 성질이 있어 항응고제와 정반대다. 따라서 항응고제를 먹는 사람은 비타민K 섭취를 피해야 한다. 비타민K가 많은 음식은 녹색채소, 양배추, 아스파라거스, 케일, 간, 녹차, 콩 등이다.

과학향기링크 <■ 고기, 생선=질병에 걸리면 영양 섭취를 위해 단백질이 많이 포함된 고기를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결핵약은 티라민과 히스타민이 많이 든 음식과 함께 먹으면 오한과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티라민이 많이 든 대표적인 음식은 청어, 치즈, 동물의 간 등이고, 히스타민은 등푸른 생선에 많다. 결핵 치료 중인 환자는 단백질이 필요할 때 종류를 잘 가려 먹어야 한다.

티라민은 우울증 치료제 중 한 종류인 ‘MAO 억제제’와도 잘 맞지 않는다. 티라민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평소에는 MAO 효소가 티라민을 분해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MAO 억제제를 복용하는 동안은 티라민이 분해되지 않아 고혈압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즉 고혈압 환자이면서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티라민 섭취를 줄여야 한다.

■ 기호식품, 술=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커피, 콜라, 초콜릿 등의 기호식품은 약과 함께 먹으면 좋지 않다. 정신질환 치료제, 항생제를 먹는 사람은 기호식품에 든 카페인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골다공증 치료제를 먹는 사람에게 탄산음료에 든 인은 뼈의 칼슘을 빼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나쁘다. 술은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약물에서 크건 적건 술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공복에 먹어야 하는 것=식후 30분이 아니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진균감염치료제 중 지용성 약물,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 알레르기 치료제인 항히스타민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음식과 함께 먹었을 때 흡수력이 떨어지거나 약효가 감소한다. 이런 약물은 특별히 주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때 이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음식이건 약이건 위장을 통해 몸 안에 흡수된다. 따라서 이들 간에 궁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먹는 약에 잘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을 알면 약의 효과를 더욱 배가시킬 수 있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먹는 약과 음식과의 상생관계를 점검해 보면 좋을 것이다. 식약청 홈페이지(www.kfda.go.kr→정보마당→식약청자료실→간행물·지침)에서 책자의 원문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다.
(글: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대부분 약이 ‘식사 30분 뒤 복용’인 이유
대부분의 약은 식사 전·후·중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 왜 식후 30분으로 정했을까? 약의 효과는 약 성분의 혈중 농도와 연관이 깊다. 대부분의 약이 효과적인 혈중 농도를 유지하는 시간은 약 5~6시간. 이는 식사 간격과 거의 일치한다. 결국 이 조건은 섭취하는 음식물보다는 잊지 않고 꾸준히 약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크다. 음식과 특별히 함께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 약은 윗글을 참고해 주의하자.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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