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빙글빙글~ 스스로 회전하는 모빌 만들기

아름다운 장식물로 사용되는 모빌은 1932년 미국의 조각가 콜더의 작품이 오브제 모빌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사용됐다. 어느 한 점에 고정해 두면 조각이나 공예품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 가장 흔한 모빌이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손으로 살짝 스쳐주면 움직이지만 과학의 원리를 이용하면 스스로 회전하는 모빌을 만들 수 있다.

[교과과정]
초등 4-2 열전달과 우리생활
초등 6-2 연소와 소화
중등 1 기체분자의 운동

[학습주제]
공기 중에서 열의 이동 이해하기
고체, 물에서 열의 이동 이해하기
전도, 대류, 복사에 대해 알아보기
생활 속에서 열이 이동하는 예 찾아보기

<실험 방법 및 원리>


<실험 동영상>



* 실험 참고사항 : 종이컵이나 나선 도면이 촛불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실험에서 나선 모형의 모빌이 스스로 회전하는 비밀은 ‘촛불’에 숨어있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주변 공기가 데워지면서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따뜻해진 공기는 가벼워져서 위로 올라가고 반대로 차가운 위쪽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온다. 이런 현상을 ‘대류’라고 하며 이런 흐름이 나선 모형을 밀어 올리기 때문에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이다.

대류 현상은 온도에 따라 밀도가 변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대류 현상으로 공기 중에서 열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대류는 기체뿐만 아니라 액체에서도 일어난다.

대류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류현상은 밀도가 높은 것은 아래로, 낮은 것은 위로 가려는 현상 때문에 생긴다. 대기에서는 햇빛 때문에 대류현상이 일어나는데, 지상 주변의 공기는 햇빛으로 가열돼 밀도가 낮아 올라가고 높은 고도에서 차가워진 공기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 때문에 기압 차이가 생겨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기상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방안의 온돌에 의한 난방 방식도 대류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방바닥이 뜨겁게 데워지면 아래쪽의 공기가 따뜻해져 위로 상승하고 위쪽의 찬 공기가 아래로 내려오고, 이런 공기의 순환이 일어나며 방안의 공기가 전반적으로 데워지는 원리다.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곳에서도 대류 현상은 일어난다. 지구의 지각과 핵 사이에 위치한 맨틀이 그곳으로 지구 전체 부피의 82%, 전 질량의 68%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지구 핵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온도차에 의한 밀도변화로 대류현상이 일어난다. 맨틀은 단단한 지각과 달리 점성유체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이 위에 지각이 떠 있는 형태다. 따라서 대류현상이 일어나면 지각의 판이 움직이게 된다.

판의 이동은 대부분 지진이나 화산의 원인이 되는 요소로,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현상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판의 이동은 매우 느리게 일어나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수준이며 화석이나 지질 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겨울철 물고기가 얼어 죽지 않는 이유도 대류 때문이다. 물은 섭씨 4도에서 가장 밀도가 크다. 따라서 수면 온도에 상관없이 바닥은 항상 4도로 유지된다. 수면에 얼음이 얼 정도로 기온이 낮아져도 강 전체가 쉽게 얼지 않는 이유도 대류로 물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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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빛을 휴대하는 법! 휴대용 손전등 만들기

전등의 발명은 인간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햇빛은 정해진 일정 시간동안만 하늘에서 비출 뿐, 인간이 인위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 약 50만 년 전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후에야 불빛을 인위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램프나 양초, 가스등, 석유램프 등이 발명됐지만 낮처럼 활동할 수 있을 만큼 밝고 이용이 편리한 인공 빛은 ‘전구’를 발명한 이후부터다. 최초의 전등은 1808년 영국인 H.데비가 탄소에 전류를 흐르게 해 빛을 밝힌 것이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백열전구는 1879년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빛을 휴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전기를 연결할 수 없는 야외에서 전등을 켤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이 전등을 어디든 휴대하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손전등 탄생의 아이디어는 조슈아 라이오넬 코원이라는 사람이 화분 장식을 위해 전등을 설치한 것에서 시작됐다.

코원은 이 아이디어를 크리스마스 전구 및 기타 전기 제품을 제조하던 회사에 판매했다. 당시 이 회사의 직원이었던 영국인 발명가 데이비드 미셀은 코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1898년 현재의 손전등과 같은 모형을 발명하게 됐다. 그렇다면 손전등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직접 만들어 보자.


[교과과정]
초등 3-2 빛과 그림자
초등 5-2 전기회로
초등 6-1 빛

[학습주제]
인공 빛 이해하기
닫힌회로 구성하기
손전등 만들어 보기

<실험 방법 및 원리>




<실험 동영상>




* 실험 참고사항 : 꼬마전구 밑부분과 전지의 (-)극이 맞닿도록 고정시켜 주세요.
금속판을 너무 오래 누르고 있으면 뜨거워지니 주의하세요.

스스로 빛을 내는 물체를 ‘광원’이라고 한다. 손전등에서는 전구가 광원 역할을 한다. 전구를 전지에 연결하면 빛은 전구 주위의 사방으로 퍼진다. 하지만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은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이유는 전구 주위에 은광필름을 고깔모양으로 만들어 빛을 모아 주었기 때문이다. 이 필름은 다른 방향으로 퍼지려는 빛을 반사시켜서 한 방향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실험에서 전구에 불이 켜지는 이유는 전기 회로가 닫혀 전지의 한쪽 끝에서부터 전구, 다시 전지의 다른 쪽 끝으로 전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에나멜선과 금속판은 전류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에나멜선을 금속판과 맞닿도록 지그시 눌러주면 전기가 흘러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손을 떼면 전류의 흐름이 끊겨 전구의 불이 꺼진다.

전구에 전기가 흐르면 전구 안에 있는 필라멘트가 뜨겁게 달궈져 빛을 내게 된다. 이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너무 큰 전기를 흘려주거나 전구를 오래 쓰면 필라멘트가 끊어져 더 이상 전구를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에서 사용하는 형광등은 필라멘트 대신 형광등 안쪽에 발려져 있는 형광물질이 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손전등은 건전지 두 개가 직렬로 연결돼 있다. 전지 두 개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직렬과 병렬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직렬로 전지를 연결해 전기가 흐르게 하려면 두 전지의 다른 극이 서로 맞닿게 연결해야 한다. 전지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전지 하나를 연결했을 때보다 전구의 빛이 더 밝아진다. 반면 전지를 같은 극끼리(병렬) 연결하면 전지 하나를 연결했을 때와 밝기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대신 직렬로 연결했을 때 보다 더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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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차가우면 변한다, 카멜레온 컵 만들기

무더운 여름,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시원한 물 한 컵 들이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져요. 급한 마음에 얼음을 잔뜩 넣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가는 차가운 기운에 머릿속이 찌릿찌릿해 지지요. 추운 겨울에는 무심코 입을 갖다 댔다가 혀는 물론 목구멍을 데일 정도로 뜨거워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죠. 적당한 온도를 알려주는 컵이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요?

[교과과정]
초 4-1 모습을 바꾸는 물
초 4-2 열전달과 우리생활
중 1 물질의 세 가지 상태

[학습주제]
열의 이동
기온의 변화
상태 변화와 에너지

<실험 방법 및 원리>








*실험 주의사항 : 스티커를 붙일 때는 물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붙여 주세요. 찬물을 붓고 붙이려면 컵 표면에 성에가 끼어 잘 붙지 않는답니다. 섭씨 10도 이하에서 색이 변하지만 그냥 찬물보다는 얼음물을 넣어야 색깔의 변화를 더 잘 관찰할 수 있어요.

실험에 사용한 시온 스티커는 상온에서는 흰색이었다가 섭씨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파란색으로 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때문에 시온 스티커를 붙인 머그컵에 얼음물을 부으면 서서히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요. 그 이유는 얼음물의 냉기가 컵을 통해 전도되면서 시온 스티커에 전달됐기 때문이예요. 일반적으로 열이 전달되는 방법은 전도, 대류, 복사가 있어요. 그중 이번 실험은 고체로 된 물질을 통해 열이 전달되는 ‘전도’ 현상 덕분에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컵을 만들 수 있었어요. 냄비 밑바닥을 데우면 윗부분에 있는 손잡이까지 뜨거워지는 것처럼, 차가운 물의 냉기가 컵의 바깥쪽까지 전달되면서 시온 스티커의 색을 변화시킨 거예요. 시온 스티커가 온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꿀 수 있는 이유는 스티커에 시온 잉크가 묻어있기 때문이예요.

시온 잉크는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잉크예요. 주로 유기화합물을 사용해 만드는데, 온도에 따라 분자의 구조가 달라지거나 분자들의 배열 방법이 달라지는 성질을 이용한 거지요. 예를 들어 온도가 높아지면 특정한 화학결합이 끊어지고, 온도가 낮아지면 끊어졌던 화학결합이 다시 이어지면서 물질에 따라 다른 색을 띠게 되는 원리지요. 이렇듯 시온잉크에는 온도가 높아지거나 혹은 낮아졌다가 원래의 온도로 돌아가면 본연의 색을 찾는 종류가 있고, 한번 색깔이 변하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 종류도 있어요.

시온 잉크는 우리 주변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어요. 머그컵이나 온도계, 프라이팬 등 온도 변화를 손쉽게 알려주는 편리한 제품들이 많이 개발돼 있어요. 업체에서도 신선한 제품임을 알리기 위해 많이 활용하지요. 한 맥주회사는 맥주병에 저온용 시온 잉크 마크를 새겨 맥주가 시원한 상태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고, 한 피자 업체는 배달용 피자 박스에 고온용 시온 잉크로 글자를 새겨 넣어 피자가 식기 전에 배달을 한다고 홍보하기도 했어요.

안전을 위한 목적으로도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어요. 온도계를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기계일 경우, 시온 잉크를 사용해 온도를 감지하지요. 대용량 전기 장치에서 전동기나 변압기, 저항, 스위치, 도선의 접속 부위 등이 과열되면 다양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요. 특정 온도 이상으로 과열되면 시온 잉크의 색이 변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답니다.

그밖에도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의류, 장미, 책, 카멜레온 매니큐어, 전구커버, 펜던트 같은 장식품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되고 있어요.

실험에 사용된 시온 잉크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지만, 이 외에도 전기나 기압, 수분의 정도를 다르게 해 색이 변하도록 만든 물질도 있답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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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엔진 없이 비탈길 오르는 바퀴

우리가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 타는 자전거나 자동차, 비행기 등에는 모두 바퀴가 사용돼요. 바퀴는 6,000여 년 전 지금의 이라크 땅 수메르에서 만들어졌어요. 바퀴가 생기고 나서 물건을 옮기거나 여행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지요.

여기서 잠깐 바퀴의 모양을 살펴볼까요? 크기나 재질은 달라도 모든 바퀴의 모양은 ‘원’이에요. 어느 한 군데 모난 곳 없는 둥근 생김새 덕분에 앞으로 굴러가야하는 바퀴 모양으로는 제격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원 모양이어도 계속 굴러가기 위해서는 힘을 가해줘야 해요. 자동차에는 엔진이 있어 바퀴를 굴려 달릴 수 있답니다.

하지만 엔진 없이도 비탈길을 올라가는 바퀴를 만들 수 있어요. 바로 ‘무게중심’의 원리를 이용하면 말이죠!


[교과과정]
초 6-2 에너지와 도구
중 1 힘과 운동

[학습주제]







무게중심은 물체 각 부분에 작용하는 중력들이 모아지는 작용점을 말해요. 쉽게 설명하면 물체의 무게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공평하게 나눠주는 지점이지요. 무게중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있는데, 바로 중력이에요. 중력이 있어야 무게가 있고, 그래야 무게의 중심이 있겠지요?


무게중심은 아래에 있을수록 안정하답니다. 오뚝이는 아랫부분이 무겁게 만들어져 바닥과 가까운 곳에 무게중심이 위치하지요. 때문에 넘어져도 금방 균형을 되찾고 다시 일어나요. 실험에서 깔때기 모양의 종이 두 개의 입구 부분을 맞붙이면 깔때기가 마주 붙은 중심부가 무게중심이 돼요. 바퀴가 굴림대를 따라 올라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그림]처럼 바퀴의 중심부가 점점 굴림대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바퀴 자체는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지만, 바퀴의 무게중심은 바닥에 가까워져 가는 것이지요. 때문에 동력 없이도 자연스레 경사진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랍니다.


[그림]깔때기 두 개를 붙인 바퀴의 무게중심은 점점 비탈길 바닥에 가까워진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에는 무게중심이 있어요.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 우리가 이용하는 운송 수단도 무게중심을 고려해 설계됩니다. 항공기나 선박은 땅에서 달리는 교통수단보다 몸체의 균형이 대단히 중요해요. 선박은 큰 파도나 폭풍을 만나도 가라앉지 않도록 무게중심이 선박 밑에 위치하게 설계하지요. 무게중심이 잘못 만들어지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바닷가에서도 무게중심을 찾을 수 있어요. 방파제에 가면 삐죽빼죽한 커다란 구조물들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지요. 이것은 4개의 뿔을 가진 ‘테트라포드’로, 파도나 해일을 막아 방파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요. 테트라포드의 뿔 4개를 연결하면 정사면체 구조가 되지요. 그런데 다양한 도형 중 왜 하필 정사면체 구조를 사용한 것일까요? 정사면체의 무게중심은 바닥에 있어요. 정다면체 중 정사면체의 무게중심이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 안정적이기 때문이랍니다.

오리가 걸을 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봐도 무게중심의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오리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날지 못 하는 새가 걷는 모습과 비슷하지요? 이들은 모두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아장아장 걷지요. 머리를 앞으로 움직이는 것은 몸통의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랍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지 않고도 잘 걸을 수 있는 걸까요? 흔히 사람은 팔만 흔들며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목, 어깨, 허리 등 거의 모든 관절을 사용해서 걸어요. 그래서 몸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방법도 체형마다 다르고, 그에 따라 걸음걸이도 달라지는 거랍니다.

[다운로드 : 비탈길 오르는 바퀴 도면1]

[다운로드 : 비탈길 오르는 바퀴 도면2]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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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만 들어가면 사라진다! 마술카드 만들기

물속에 들어가면 유난히 다리가 굵고 짧아 보이죠? 물이 담긴 컵에 빨대를 꽂으면 빨대가 꺾여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빛의 굴절’ 때문이랍니다.

빛은 일반적으로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물질을 통과하는지에 따라 직진하는 속도가 달라지지요. 때문에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 두 물질의 경계면에서 빛이 꺾이는 굴절현상이 나타난답니다. 빛이 굴절되는 정도는 굴절률이라고 해요. 굴절률이 큰 물질을 통과할수록 빛의 속도는 느려져요. 물속에 있는 물체가 원래보다 떠 보이거나, 물에 꽂은 빨대가 꺾여 보이는 이유도 공기와 물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런 빛의 성질을 이용하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신기한 마술을 선보일 수 있어요. 물속에 담그기만 하면 사라지는 마법의 카드! 한번 만들어 볼까요?

[교과과정]
초 3-2 빛과 그림자
초 6-1 빛
중 2 빛과 파동

[학습주제]
빛의 굴절과 전반사 현상 이해




실험에서 물속에 넣은 카드를 비스듬하게 보면 물에 잠긴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 마술의 원리는 바로 ‘전반사’예요. OHP 필름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굴절되지 못하고 전반사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마치 카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된답니다. 카드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관찰해 보세요. 전반사 현상을 잘 관찰하려면 실험을 하는 동안 같은 위치에서 관찰해야 한답니다.

물질의 표면에서는 빛의 굴절뿐 아니라 반사도 함께 일어나요. 간혹 밀도가 높은 물질에서 밀도가 낮은 물질로 빛이 이동할 때 입사각에 따라 빛이 물질 안으로 전부 반사돼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전반사’라고 해요.

전반사는 굴절률이 큰 매질에서 작은 매질로 빛이 들어갈 때 경계면에서 굴절되지 않고 모두 반사되는 현상을 말해요. 빛의 입사각이 특정 각도보다 클 때 일어난답니다. 빛을 조금의 손실도 없이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보내는 광섬유는 전반사를 이용한 대표적인 예지요.

광섬유는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섬유로, 빛의 손실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매우 적어 송수신하는 데이터의 손실률이 낮고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광섬유 중심부에는 굴절률이 높은 유리, 바깥쪽은 굴절률이 낮은 유리로 이루어져 중심부 유리를 통과하는 빛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반사가 일어난답니다. 광섬유 내부에서 전반사되는 빛은 그 모양 그대로 안쪽 벽면을 따라 반사돼요.

또 다른 예로 다이아몬드를 들 수 있어요. 다이아몬드의 반짝이는 광택도 내부에서 전반사된 빛이 만들어낸 마술이랍니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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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전동 윷놀이 만들기

제비 다리몽둥이 와작 부러뜨려 받은 씨앗도 제대로 된 씨앗이긴 한 모양이다. 번쩍번쩍한 기왓장 사이를 넘고 타며 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아따 저 놈들 탐스럽구만, 하나 나눠주면 안 되겠나? 입맛 쩝쩝 다시며 그리 물어오는 이웃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놀부가 대체 어떤 위인인가. 친동생 줄 재산도 없는데 담 넘어 이웃에게 넘어갈 박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대문 꾹 닫아걸고 박 여물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황금 햇살 쏟아지는 어느 가을날 드디어 박을 뚝뚝 따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대박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요놈이 잘 말라야 타지. 말은 그리 하며 창고 안에 꼭꼭 숨기는 세상눈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겠나. 기왓장 걸친 박 넝쿨이 시커멓게 말라 죽어 뚝뚝 떨어지는 정월 초하루에 그제야 두 내외 마당에 고급 비단 턱 하니 깔아놓고 박을 똘똘 굴려 나온다.

드디어 타는구려.
타야지.
뭐가 나올까요.
봐야 알지.

불퉁하게 이야기하지만 내외 입술이 짐짓 실룩대는 것이 기쁘기 한성에 한량없는 속내가 절로 드러난다. 요걸 탈까 조걸 탈까. 느릿느릿 움직이는 놀부 손길에 속 타는 놀부 마누라가 툭 튀어 나와 하나를 들고 자리에 폭 주저앉으니, 늦가을 마당 먼지가 풀썩풀썩. 입 삐죽하게 내밀고 배 실룩대던 놀부도 제 성질은 급한지라 같이 푹 주저앉아 톱을 든다. 박 하나를 슬근슬근 타보자꾸나.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데구루루 굴러 나오니 이것이 무엇이냐?

수수깡?
수수깡일세 그려.

또르르 또르르. 맑은 소리와 함께 구르는 긴 대 하나에 내외는 멍해져서 잠시 손을 멈추고 박 안을 기웃기웃한다. 방금 구른 놈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다시 한 번 표정이 멍해진다. 이것은 꽝인게야. 꽝이겠지요. 서로를 위안하듯 건넨 말을 다시 톱에 싣고 두 번째 놈을 타보자꾸나. 그래 또 박에서 뭔가가 펑 하더니 데구루루 나오는구나.

이 고철 덩어리는 뭣이야?
거 참 작구만.

슬슬 언성이 높아지는 품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으렷다. 손 안에 쑥 들어갈 작은 철 덩어리를 만지작대는 놀부 마누라는 이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그래도 가장입네 ‘커험’ 헛기침을 한 놀부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박 하나를 더 집어 들고 오니 이미 덩어리를 집어 던진 마누라가 째려본다. 아 그래, 가엾은 짐승 하나 해치고 얻은 재물이 겨우 요것이었소? 눈으로 전해지는 말에 놀부가 또 한 번 헛기침을 커험.

내 눈이 어두워 채 여물지 못한 놈을 고른 게지. 이번엔 뭔가 재미난 게 나오지 않겠소?
에잉 나와야지. 안 나오면 내 열불 올라 서방 다리를 고만 똑 부러뜨릴 지경이오.
아이구야 말도 무섭게 하시는구만.
내가 누구 옆에서 살며 심성 다 버려 이렇소.

오가는 말만큼 톱질도 험해지니 박 껍데기를 벅벅 긁어대는 소리만 눈 시리게 찬 하늘 아래 크게 울리는구나. 다시 한 번 펑 하더니 이번엔 여러 개가 우르르.

아이구야 나왔구만.
그런데 이게 또 뭣이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종지 같은 게 하나, 긴 선이 여러 개. 그래 종지야 물 뜨러 갈 때 쓴다 치더라도 요 놈의 선들은 어디 쓸까? 남은 박이고 뭐고 죄다 깨부술 기세로 창고로 달려가는 마누라 치맛자락 붙잡고 놀부가 사정사정 하니 박이 아까워서기도 하고 제 다리가 걱정되기도 해서다. 그 때 뾰로롱 날아드는 놈이 하나 있으니, 까맣고 하얀 깃털 맵시 있게 기른 제비 한 마리다.

성질도 급하게 벌써 타셨소. 제가 늦었네요.

입에 문 덩어리를 내려놓으며 재잘재잘 높은 소리로 소리를 내는데 다리 한 가운데가 볼록한 것이 지난 늦여름 운 없이 잡힌 그 제비가 맞는 듯하다. 놀부가 끄응 하니 마누라도 끄응 하는 것이 저들이 저지른 짓이 기억나기 때문이렷다. 내외가 이러든 말든 제비는 힘차게 뱅뱅 돌며 마당에 내려앉아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맑은 눈빛이 비단 위를 요로조리 훑더니 표정이 더욱 환해진다. 예전에 당한 일쯤 아무 문제없다는 태도다.

윷놀이를 합시다요.
윷놀이?
그렇소이다. 그게 다 윷놀이용 물품입지요.

다리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요리조리 콩콩 뛰며 부리로 재료를 모아댄 제비가 다시 한 번 높은 소리로 재촉을 해댄다. 윷놀이, 윷놀이, 윷놀이를 합시다요. 정월 초하루에 윷놀이 하는 거야 알고는 있다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나 그러했지. 게으르고 일도 안 하면서 식솔만 주렁주렁 늘려가는 흥부네를 보다 못해 내쫓은 날 이후로 윷가락을 본 기억도 없다. 그러던 말던 혼자 쫑쫑 정신없이 오가던 제비 놈은 어디서 칼 하나를 덥석 물어와 턱 내려놓는다. 시퍼렇게 날선 칼날에 놀부 마누라는 제풀에 아이고 비명을 지르는데 제비 눈빛이 부드러운 게 사람 해칠 낯은 아니다.

먼저 수수깡을 잘라야 합니다요. 어서요.
거, 내가 저지른 짓은 말이다.
거 참, 시간 없어요. 정월 초하루 해는 성질이 두 내외분보다 급해서 금세 꼴딱 집니다요. 어서 자르자구요. 그래그래, 그렇게 반쪽으로 자르면 됩니다요.

어찌나 재촉 해대는지 사죄도 후회도 죄다 날리고 일단은 칼을 잡아 본다. 시키는 대로 이래저래 잘라보니 어찌 윷가락 비슷한 놈이 네 조각 뚝딱 나오렷다. 마누라가 정성스레 표시 그려 넣는 새에 가장은 종지에 철 덩어리와 선을 연결하느라 낑낑댄다. 시끄러운 제비 놈이 물고 온 또 다른 덩어리에 연결하니 종지가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깜짝 놀라 놓칠 뻔하기도 한다. 그새 제법 윷가락 형태를 갖춘 수수깡 조각을 들고 온 마누라는 신기한지 종지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제비 말에 따르면 전동기라나.

자 이제 한 번 윷가락 넣고 종지를 휙 뒤집어 보세요. 가만히 있는 종지에 수수깡 조각을 넣고 뒤집으면 조각들은 바닥에 쏟아지겠지요? 다시 전동기를 돌리며 넣어 보면, 아이고 안 떨어집죠. 요 때 딱 전동기를 멈추면 윷가락이 우르르르, 저는 걸이네요. 먼저 가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종지를 들었다 놨다, 윷가락을 떨어뜨렸다 놨다 하는 동안 어디서 찾았는지 먼지 쌓인 말판을 들고 온 것은 놀부 마누라다. 한 십오 년 둘이서 산 게 헛세월은 아니었나 보다. 제비가 걸이오, 놀부가 개요, 놀부 마누라는 윷이라 한 번 더 던져 도요. 한동안 전동기 도는 푸르르 소리만 이어지다가 또 제비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돌아가는 종지 속에 있는 수수깡 윷가락은 처음 움직이던 방향대로 직진하려는 성질 때문에 종이컵 바깥방향으로 힘을 받습니다. 이런 성질을 관성이라 하지요. 놀부가 계속 마음과 달리 심술을 부리고 흥부가 계속 가난하게 사는 것도 생활 속의 관성이랄까. 아이고 요 말은 과학과는 관계없지만요. 그렇게 튀어나가려는 윷가락들을 이 종지가 막아 주고 있기 때문에 튀어나가거나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른 식으로 풀면 원심력과 구심력도 설명할 수 있습지요. 빙글빙글 도는 원운동을 하는 물체는 원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을 받아요. 하지만 원 안으로 향하는 구심력이 또 작용하기 때문에 계속 원 위에 있을 수 있지요. 그러다가 전동기를 딱 멈추면 이런저런 힘도 사라지고 윷가락들은 바닥에 우르르 쏟아집니다요. 고걸 보고 말을 움직이면 되지요.

그 사이에도 말이 차례대로 오가니 조용조용 어느새 놀부 마누라의 승리. 어찌나 조용하게 해갔는지 이긴 사람도 밋밋하고 진 놈도 덤덤하니 슬슬 넘어가는 햇살만 말판을 붉게 비춘다. 이쪽저쪽 눈치를 보던 제비가 이때다 하며 날개를 펄럭이니 내외가 깜짝.

그래 두 분이 하시면 재미없죠잉?
시끄럽다 이 녀석아.
거 원래 윷놀이라는 게 여러 무리가 해야 재미난 법입니다요.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옛적 만주 벌판에 부여가 있던 시절 그 나라 사람들이 각 부족의 가축을 경쟁적으로 키우기 위해 윷놀이를 했다 하네요. 도, 개, 걸, 윷, 모 이게 다 가축 이름이라 이 소립니다요. 이 집에 가축은 많은데 사람은 적으니 도부터 모까지 언제 다 키우실 겝니까. 이왕 하실 거면 사람 많은 집에 가서 같이 즐기시는 게 어떠신가요. 그러니 동생 분 댁으로 가시죠.
뭐라고?
아이고, 말 못 알아들으시는 척 하긴. 거 바로 옆 고을에 있잖습니까. 요새 새로 지어서 그렇게 쾌적하다던데. 정월 초하루에 인사도 할 겸 해서 한 번 같이 가십시다. 저도 신세진 게 있다 보니 같이 인사드리면 좋을 것 같고요.
싫다. 내가 왜.
정월 초하루 하면 새해를 시작하는 커다란 명절이지요. 원래 명절은 가족 친척 모여 인사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허물도 좀 덮어주고 지내다 오는 그런 날 아닙니까요.
사이 나쁘고 척지고 원한 쌓인 이들끼리 그 날 하루만 그러면 뭐한대. 그게 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허상이여.
아 거야 저도 알고 있지요. 그래도 말입니다. 또 마음 상해서 다시 1년 내내 싸우더라도 하루쯤은 다 같이 웃으며 윷도 굴리고 말도 옮기고 머리싸움도 하고 그리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윷가락 종지에 척 하니 모아놓고 혼자 신나게 떠들어대는 제비의 주둥아리 끝은 왜 그리 뾰족한지. 과거의 제 언사가 그대로 돌아와 마음을 찌르는 듯해 놀부 입만 괜히 더 나온다.

동생분만 부자 되니 배알 좀 꼴리셨죠? 아이고 말씀 안 하셔도 다 압니다요. 굳이 그렇게 착한 척 안 해도 척 보면 딱 아니겠소.
요놈의 제비, 주둥아리도 확 부러뜨려줄까.
말씀 그렇게 하셔도 절대 못 하시는 것도 압니다요. 제 다리 망가뜨리시고 계속 마음에 걸려하신 것도 말입죠.
에끼 이 놈 헛소리도 작작….
아 뭐가 그리 어렵습니까. 한쪽 성별 노동력만 쏘옥 빼내서 종일 음식을 만들거나 시댁친정 어디에 먼저가 어디에 오래 있느냐로 언성 높여야 하는 그런 명절이란 이름의 착취도 아니고 그냥 이웃 고을 동생 분 집에 잠깐 인사가서 윷가락이나 좀 던져보자는 건데. 이 기회를 틈타 화해할 방법도 찾아 보시구요. 심술은 좀 있지만 물려받은 재산 잘 보존해 키우신 건 형님이오, 게으르고 능력 없지만 바보같이 착한 태도로 인심 모은 건 동생이니 형제의 힘을 합치면 훨씬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언제까지 시샘하고 부러워하고 또 후회만 하면서 지내실 겁니까.

어서 가시지요, 명절은 그런 날이니까요. 노래하듯 같은 구절을 반복하며 날아오른 제비의 모습은 이미 저 위의 한 점이 된다. 말마따나 성질 급한 해가 꼴딱 넘어가 언덕에 걸리고, 높이 솟아오른 해 마냥 둥글고 통통한 박들도 이젠 반 갈린 바가지로 변해 마당 여기저기서 데구루루. 제비 따라 대문 밖으로는 나왔다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끝을 세워 뒷짐 지고 올려다 본 정월 초하루 하늘은 어느새 밤으로 덮여 간다. 한 발 내밀었다가 뒤로 돌렸다가, 내 발이 말인가, 도와 뒷도만 반복하는구나. 느릿한 발걸음을 따라 혼잣말이 길게 늘어졌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법이라오. 같이 늘어진 마누라의 농에 내외가 함께 피식. 성질 급한 해 덕분에 밤이 긴 것이 그저 다행이다. 어느 쪽이든, 집으로 갈 수는 있을 테니.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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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금모래 만들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작은 제비의 입에 물려 있는 금조각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 조각이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마지막으로 벗어던진 최후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비는 지친 날개를 재빨리 저어대며 날았습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매일 밤 날아다니느라 기력도 쇠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비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지막 금 조각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디작은 뇌를 달콤하게 지배하던 따스한 이집트에 대한 향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의 창가에 내려앉은 제비는 떨리는 부리를 조용히 열어 금 조각을 떨궜습니다. 창가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가난한 과학도의 눈에 띌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말입니다. 깜짝 놀라 반짝이는 조각을 집어 든 과학도는 조심스레 조각을 깨물어 보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 뒤 그 자리에 꿇어앉았습니다. 과학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는 생활고를 잊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도는 눈물로 얼룩진 눈을 들어 창가를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누구신가요, 이런 고마운 성탄 선물을 주신 분은!”

제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떨리는 날개를 모아 쥐고 비틀대는 다리를 어렵게 유지한 채 고개를 갸웃댔을 뿐입니다. 제비를 본 과학도는 다시 한 번 부르짖었습니다.

“오오, 네가 전해준 거였구나!”

제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댔습니다.

“그래, 창가에 앉아 추위에 떨지 말고 잠시나마 들어오지 않겠니? 너를 통해 이러한 선물을 주신 분께 변변치 않지만 작은 선물이나마 돌려 드리고 싶어서 그런단다. 아주 잠시만 기다리거라.”

제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왕자님의 보석이며 금을 온 마을에 뿌려왔지만, 보답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어 창가의 작은 촛불 옆으로 간 제비는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사이에 부스럭대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과학도가 작은 시험관을 내밀었습니다. 제비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었거든요. 이리도 금이 많다면 애초에 나누어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왕자님의 마지막 사랑을 이런 곳에 던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깊은 후회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한 제비 앞에서 과학도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오해하지 말렴, 작은 제비야. 이건 진짜 금이 아니란다. 요오드화납이라는 물질의 작은 결정일 뿐이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따스한 공기에 몸을 맡긴 제비를 보며 과학도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촛불 불빛을 받은 시험관은 아까보다 훨씬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마치 햇빛 속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왕자님의 몸처럼 말이지요.

“네가 몸을 녹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해 주마. 내가 넣은 건 질산납 용액과 요오드화칼륨 용액이란다. 이 두 물질을 물에 녹여 섞으면 요오드화납이 만들어지지. 요오드화납은 아주 강한 노란색을 띠고 찬물에 녹지 않아. 그래서 처음에는 노란 가루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지. 이 용액을 다시 한 번 가열하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물에 점점 녹아들어가면서 용액이 다시 투명해진단다. 그 용액을 찬물에서 재빨리 식히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다시 나타나지. 그래, 찬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이때는 결정이 자라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마치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작은 가루들이 만들어지지. 반대로 천천히 식히면 결정이 커지고 달라붙어서 원래의 노란 덩어리가 나타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과학도는 시험관을 가로로 내밀었습니다. 살짝 날아올라 발끝으로 시험관을 붙잡은 제비는 다시 한 번 과학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환한 촛불 불빛 속에서 마치 은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진짜 금은 줄 수 없지만, 어쩌면 싸구려 눈속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빛나는 계절에 이 작고 초라한 사람 하나를 구원해주신 분도 함께 빛났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거란다. 어쩌면 그 분께 이런 걸 드리는 것부터 누가 될지 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는구나. 혹시라도 너무 무겁거나 들기 버거우면 중간에 버리고 가렴.”

제비는 고개를 저으며 날아올랐습니다. 확실히 아무리 작다고는 하지만 물이 가득한 시험관은 지친 제비가 감당하기에 많이 무겁고, 또 미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제비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발끝에 잔뜩 모으며 시험관을 단단히 그러쥐었습니다. 소중한 마음은 절대 떨어뜨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제비 다리에 끼어 있는 시험관 속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가루가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따스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비가 알고, 왕자님도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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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씽씽~ 증기선 만들기

<실험 보고서>

작성일자 : 11월 xx일
실험 준비물 : 스티로폼, 구리관, 양초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멈췄다. 잠시 고민에 빠진 소년은 쓰던 종이를 구겨 뒤로 던졌다. 제멋대로 날아간 덩어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새 종이 위를 달리는 펜의 소리가 덮어 갔다.

선장님께.
화려했던 단풍도 낙엽으로 변해 바닥을 물들이는 계절입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신지요.
일전에 말씀하셨던 건에 대해 제 나름의 답을 찾았기에 이리 편지를 보내 봅니다. 늘 바다 위에 계시는 분인지라 글이 제대로 도달할지 알 수 없지만, 마법 가루를 사용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의 작은 요정은 성격이 비록 포악하기는 하나 마법 실력은 확실하니까요.

아시겠지만 제가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 몰랐으나 이제와 돌이켜보니 선생이 그리 신통치 않았음을 깨달은 바입니다 - 글 쓰는 실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대체적으로 지루하고 재미없는 졸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선생이 워낙 신통치 않아서 벌어진 일이니 애꿎은 저를 탓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일전…, 이라고 해도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만. 선장님께서 제게 문제 하나를 내셨지요. 그 답을 찾으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셨고요. 그 말마따나 그때가 사실상 마지막 만남이었지요. (그 이후에도 많이 만났다고 하시렵니까. 제 사전에 의하면 그 상황은 ‘만남’이 아닌 ‘다툼’이나 ‘싸움’, 혹은 ‘전쟁’에 가깝습니다.)

10년이라면 굉장히 긴 세월이지요. 적어도 한 문제의 답을 찾기에는 지나치게 긴 시간입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 문제의 답은 굉장히 간단하더군요. 제가 아무리 10살짜리 어린애였다고 해도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아님 선생의 방에 늘어서 있는 책 중 한두 권만 보면 - 선생의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그의 장서만은 훌륭했다고 인정합니다 - 금세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 바로 답을 말씀드렸다면 당신이 떠나지 않았으리라 후회….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거세졌다. 마지막 문장에 줄을 박박 그은 소년은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새 종이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다시 펜을 잡고 원래의 종이 위로 돌아갔다. 새까맣고 질 좋은 잉크 덕분에 완전히 자취를 감춘 마지막 문장 아래 새로운 문장이 이어져 갔다.

그렇지만, 아마 잘 아시겠지만,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정신없이 바빴고 책을 볼 시간은커녕 답을 생각할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 최대의 원인이 선장님이라는 사실은 아마 부정하지 않으시겠죠. 다행히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허비하기 전에 아주 작은 여유를 찾았습니다. 모처럼 휴전을 선포해주신 덕분에 이리 펜을 들 시간이나마 가질 수 있게 된 점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각설하고,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째서 이 작은 스티로폼 판자가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것이 선장님의 질문이었지요. 전 바다의 흐름을 들었고, 바람의 힘이라고도 답했으며,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답은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에너지가 오가고 물질의 상태가 변하며 일어나는 현상 때문이었죠.

스티로폼 판자 위에 꽂은 구리관 밑을 양초로 데우면 안에 있던 물이 끓으며 기화합니다. 물의 상태 변화랍니다. 기체는 액체보다 분자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액체가 기체로 변하면 부피가 확 늘어납니다. 구리관 안을 채운 수증기는 결국 구리관 밖으로까지 나오게 되지요. 여기까지가 1단계입니다.

밖으로 나온 수증기는 뒤쪽으로 밀려 나갑니다. 이 힘에 의해 가벼운 스티로폼 판자는 앞으로 나가게 되지요. 상대에게 힘을 가하는 물체는 자신이 가하는 힘만큼 물체로부터 힘을 받는다, 즉 ‘작용-반작용의 법칙’입니다. 배 가장자리에서 마주 서서 선장님 손을 밀어냈을 때, 제가 선장님의 손을 밀었던 힘만큼 뒤로 밀렸던 것과 같은 이유지요. 성격은 나쁘지만 유능한 요정이 아니었으면 그 기분 나쁜 소리가 나는 악어 입으로 빠질 뻔 했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만, 그건 넘어가지요. 어쨌든 증기선이 움직이는 이유는 저 법칙입니다.

여기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하나 더 붙습니다. 양초가 가진 열에너지는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상태변화에너지로 변화한 뒤, 수증기의 힘으로 앞으로 나가는 배의 운동에너지가 됩니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꿀 뿐 그 총량은 계속 일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닫힌 계 안에서의 이야깁니다만.

정리하자면 물질의 상태 변화, 작용-반작용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 세 가지가 얽혀 그 작은 스티로폼 판자를 근사한 증기선으로 변화시켰죠. 이게 10년 전 내주신 문제에 대한 제 답입니다. 아마도 정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답을 찾을 때까지 크면 다시 연락하라. 선장님의 지령 아닌 지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답을 드렸구요. 그러니

줄줄 이어져 나가던 펜의 움직임이 다시 멈췄다. 종이 끝을 구기던 소년의 손끝도 함께 멈췄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소년은 입술만으로 작게 욕설을 내뱉고는 다시 새 종이를 들었다. 이번 펜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더 격하고 강했다.

당신은 나에게 장난감 증기선 하나만 던져놓고 도망가 버렸지만, 그런 걸 용서 못할 정도로 쪼잔한 인간은 아니다. 솔직히 당신이 가버린 뒤 엉망진창이 된 이 땅을 다스리고 정리하는 데만 해도 정신이 벅찼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까지 일일이 떠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 게다가 난 너무 어렸었거든.

그래, 생각해 봐. 사람을 거뒀으면 적어도 그 놈 정신머리가 클 때까지는 좀 보살펴 줘야 할 것 아냐. 10살짜리 애가 뭘 알겠냐고. 외모고 키고 딱 거기서 성장이 멈춰버린 애라면 더더욱 말이지. 집에서 잘 자던 애를 멋대로 납치한 것까지는 넘어갈게. 나도 여기 와서 나름대로 즐겁게 살았고,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젖 달라고 빽빽거리는 소리가 커뮤니케이션의 전부인 꼬맹이의 미래가 보였다는 둥, 영원히 어린애로 남고 싶은 마음을 읽었다는 둥 그딴 헛소리는 별개로 둘게. 키우는 둥 마는 둥, 제대로 가르친 것도 없는 상태에서 내버려두는 건 또 무슨 짓이야. 그것도 난데없이 적으로 돌변해서!

솔직히 말해 봐. 그냥 버거웠다고. 무슨 중성미자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빅뱅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그런 거창한 문제면 또 모르겠어. 책 좀 뒤지면 바로 나올 간단한 물리 현상을 마치 어딘가의 난제인양 거창하게 던져놓고 ‘다 풀면 또 만날 수 있을 게다’? 장난해? 딱 봐도 애 돌보기 귀찮고 힘들어서 튄 거잖아. 말없이 야반도주하면 더 원망할까 걱정됐어? 차라리 그게 낫겠네. 그럼 그 원망하는 마음만으로 20년은 더 살아. 독하게, 이 악 물고. 당신처럼 애매하게 데려다 놓고 고고한 척 발 빼는 짓보다는 100배, 1000배 낫다고.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해적이 돼 분탕질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심심하면 시비 걸고 여기 애들 잡아 가는 걸로도 모자라 잠깐 친구 삼은 외부 애까지 괴롭히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아 혹시 납치 협의 뒤집어쓸까봐 붙여보는데, 걘 며칠 있다가 집에 다시 보낼 작정이었어! 나 같이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멈춘 불쌍한 인생 또 만들어서 뭐 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한테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일부러 져주는 이유 또한 모르겠지만…. 10년 동안 밖에서 싸돌아다닌 당신 따위 정말 버리고 살고 싶지만….

어쨌든 나는 답을 찾았어. 답을 찾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지? 이번에는 제대로 만나서 내 답을 알려 줄게. 10년 분 쌓인 과한 애정 표현도 함께. 그러니 만나자고. 다툼도, 싸움도, 전쟁도 아닌 제대로 된 만남 좀 갖자고. 아직도 버거워한다면 한 마디만 더 말해 줄게. 에너지는 변해. 그렇다면 당신도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10년간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믿….

티틱. 종이 끝에 펜이 걸렸다. 그게 신호인 듯 갑자기 멈춘 소년이 잠깐 어깨를 떨었다.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 본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조용히 종이를 구겨 던졌다. 마지막으로 한 장 남은 새 종이 위에 짧은 글귀만 휘갈긴 소년은 펜을 집어 던지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문제도 풀었고 마음도 풀었다. 덧붙여 팬티도 늘려 놨다.
망할 후크 선생은 악당 흉내 그만 내고 집으로 돌아올 것. 어서!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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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으로 움직인다! 자벌레 만들기

청량한 숲 향기를 깊이 들이마신 나무꾼은 들이마신 숨 이상으로 깊은 한숨을 뱉어냈습니다. 근심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근심이 없는 것 또한 아니지만, 지금의 한숨은 안도에 가까웠습니다.

“갔다. 나오거라.”

한참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더니 나무가 가득 쌓인 등짐에서 나무 같은 뿔 두 개가 뾰족하게 솟았습니다. 오른쪽으로 뾰족, 왼쪽으로 뾰족 느릿느릿 한 바퀴 돌더니 등짐 앞쪽으로 조심스레 나옵니다. 뿔이 공중을 떠다닐 리는 없으니 그 밑에는 필경 짐승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겁에 질린 듯 눈물을 글썽글썽 매단 호수 같은 눈망울도 둘이 솟습니다. 갈색 반점이 사랑스러운 사슴입니다.

“감사하옵니다. 은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느냐. 너같이 아담한 짐승 한 마리 숨겨주는 것 정도야 별 일도 아니란다.”

길게 뺀 목을 연신 조아리며 감사의 예를 올리는 사슴 앞에서 나무꾼은 그저 무뚝뚝하게 답할 뿐이었습니다. 사슴이 싫어서는 아닙니다. 성격이 고지식하고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치 챈 일이기에 사슴도 과히 싫은 눈치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은인께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 해도 생명을 건져주신 은혜는 은혜. 한낮 미물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천하오나, 그래도 능력을 한껏 발휘해 그 은혜를 갚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그런 거창한 일은 아니라 했지 않았느냐.”
“제가 마음이 불편하옵니다. 부디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사슴의 고개가 거의 땅에 닿을 듯 굽혀집니다. 연신 손사래를 치는 몸이나 거절을 표하는 입과는 대조적으로, 나무꾼의 귀는 저도 모르게 쫑긋 서 있습니다. 이 작은 것이 얼마나 거창한 일을 해주려나. 어쩐지 저 숲속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습니다. 사슴도 눈치 못 챈 바는 아니지만 자못 시치미를 떼며 얌전하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건 어디에서나 같은 법이니까요.

“저 같은 미물의 힘으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선물을 드리려고 하니 그리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작은…, 흠흠. 알았다. 내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천천히 하거라.”

‘미물이 준비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대체 뭘까요. 나무꾼은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표정은 무뚝뚝한 그대로지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것만은 멈출 수 없습니다. 뒤돌아서 부스럭대는 사슴에게는 보이려야 보일 수 없는 광경입니다만.

돌아선 사슴의 주둥이는 은색의 물체가 물려 있었습니다. 크기는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일까요. 기대하고 있던 무언가 - 이를테면 돈이라든가, 예쁜 색시라든가 - 가 아닌 걸 확인한 나무꾼의 표정은 대놓고 구겨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슴은 우물거리는 발음이나마 똑바르게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납작하고 단단한 것이 없겠습니까?”
“아, 여기.”

시큰둥하게 내민 손끝에는 판판한 나무판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사슴은 말없이 주둥이로 물어 올린 은색 물체를 그 위에 툭 떨어뜨렸습니다. 제법 묵직한 무게와 뜬금없는 행동에 놀라서 판자 째로 떨어뜨린 은색 물체는 판자 위에서 홀로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구르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떨었습니다. 그 모습이 또 귀엽기는 합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나무꾼의 머리 위에 다시 발음이 명료해진 사슴의 목소리가 툭 떨어졌습니다.

“혹시 ‘관성’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관상은 들어봤다만. 그 점쟁이 말에 따르면 내가 예쁜 색시를 맞아서 평생 행복하게 살….”
“관상 봐주는 사람은 점쟁이가 아니고, 무엇보다 현재 화두는 관상이 아닌 관성이옵니다. 헛소리 마시고 계속 들으시지요. 물체에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물체가 원래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관성’이라고 합니다.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운동하던 물체는 그 운동을 계속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지요.
“슬슬 말이 거칠어지는구나. 그게 네 본성이냐.”
“저처럼 착하고 고운 미물에게 그 무슨 잔혹한 말씀이십니까. 어쨌든 마차를 타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저 숲 너머 인간 세상에서는 버스라는 마차가 있습니다만, 말 대신 엔진이라는 물건으로 움직입니다. 그 버스를 타면 말입니다, 갑자기 멈춰 설 때 몸이 앞으로 쏠립니다. 버스가 달릴 때 거기 탄 사람들 몸은 버스와 함께 앞으로 향하고 있는데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 몸만 관성에 따라 앞으로 계속 가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버스가 갑자기 출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정지해 있으려 하기 때문에 몸이 등받이나 뒤쪽으로 넘어가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제가 드린 물건의 안에는 단단한 관과 구슬이 들어있사옵니다. 아까 내어주신 판자 같은 넓은 판에 그 물건 - 일일이 물건 물건 하기 귀찮으니 그냥 자벌레라 하겠사옵니다만 - 을 얹고 기울이면 자벌레가 꿈틀대며 계속 혼자 움직이는 걸 보셨지요. 왜 이리 되는고 하니, 자벌레를 기울이면 구슬이 한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벼워진 쪽이 올라갑니다. 구슬은 계속 이동하려는 관성에 의해 가벼운 쪽으로 다시 이동하고 이 움직임은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한 원리이옵니다.”

긴 설명을 끝낸 사슴은 다시 촉촉한 눈망울을 들어 나무꾼을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어때? 신나지? 재미있지? 나 잘했지?’가 가득 담긴 눈망울을 마주한 나무꾼은 어쩐지 거북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며 더듬더듬 말을 꺼냈습니다.

“조, 좋은 말 잔뜩 들었다. 설마 그 말이 선물은 아닐 테고. 이 물건이 선물이냐? 이걸 왜 내게 주느냐?”
“아까 보셨듯이 그 물건의 움직임이 제법 기특하고 또 귀엽습니다. 홀로 지내시느라 쓸쓸하실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보시면 삶이 꽤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준비했사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나무꾼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홀로 지내시느라 쓸쓸하실 때’가 있는 걸 알면 또 다른, 굳이 말하면 자기 몸과 마음을 울리는 그런 욕구를 풀어줄 무언가를 준비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좋다 아니다 말도 없이 한숨만 폭폭 쉬어대고 있는 나무꾼 앞에서 사슴의 눈망울이 다시 울망울망 눈물을 매달기 시작했습니다. 걱정하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 사슴이 머뭇머뭇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어, 마음에 들지 아니하신 겁니까?”
“아니, 선물은 고맙다. 고마운데 말이다….”
“말이다…? 제가 뭘 잘못했사옵니까?”

새침하게 고개를 갸웃대는 사슴 앞에서 나무꾼은 그 날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내 본능은 이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거든?
“허어? 본능이 뭐라고 외치시고 계시는 겁니까?”

사슴의 맑은 눈이 점점 흐려져 갑니다. 하지만 고지식하고 답답할 뿐 아니라 눈치도 꽝인 나무꾼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입을 점점 과감하게 놀려 갔습니다.

“보통 이럴 땐 그 뭐냐, 어여쁜 선녀님을 내 색시로 맞을 수 있도록 이렇게 저렇게 해주는 거 아니었냐? 목욕탕 급습이라던가, 옷을 슬쩍 훔치게 귀띔한다던가, 왜 거 있잖냐.”
“이보쇼.”
“그래, 이보…, 뭐라고?!”

갑자기 돌변한 사슴의 말투에 나무꾼은 잠시 멍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온 얼굴에 띄운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앞발을 까닥거리며 나무꾼을 째려봤습니다.

“내 진짜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혀서 말을 못하겠네. 거 곰방대 좀 주실라우.”
“곰방대?!”
“아 달라면 빨리 주쇼. 뒷다리로 차버리기 전에.”

나무꾼은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슴 앞에 얌전히 곰방대를 내려놓았습니다. 갈라진 앞발굽 사이에 곰방대를 끼운 사슴은 능숙하게 불을 붙이고 힘차게 빤 다음 가득히 토해냈습니다. 어쩐지 포도청 취조실에서 범인과 5시간쯤 공방을 벌이다 휴식을 취하는 포도부장 같은 기세입니다.

“아이고! 이 양반아, 정신 차리시게.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소리를 하고 앉았나. 댁이 하려는 행위를 세간에서 뭐라 하는지 아시우? ‘납치강간’이라고, 범죄라고 이 양반아!”
“버, 범죄?”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쓸쓸할 때도 있고 그런 법이지. 그런데 그걸 왜 자기 힘으로 극복 못 하나. 본인 힘으로 여자 찾아서 장가를 들던가…. 솔직히 불어보쇼. 노력해본 적은 있수?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산에 처박혀 있지는 않을 테고, 좋다는 여자 한 둘은 있었을 거 아뇨?”
“그, 그래! 있었다 왜! 있긴 했지만 다들 박색에 나이도 꽤 먹어서는….”
“아이쿠야. 생각해 보쇼. 댁 나이 몇 살? 재산 얼마? 거기에 얼굴에 나이까지 밝혀? 이 양반 알고 보니 도둑놈이네~.”
“뭐, 도둑놈?!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냐?”

이제 숫제 삿대질까지 해가며 화를 버럭버럭 내는 나무꾼과 대조적으로 사슴의 표정은 점점 침통해져 갑니다. 곰방대를 물고 다시 한 번 깊숙이 빨아올린 사슴은, 그래도 여전히 맑은 눈망울을 먼 하늘로 돌리며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사람이란 말이오, 대저 저가 해온 대로만 하려고 하거든. 이게 참 버스를 탄 것도 아닌데 가던 사람은 계속 가려하고, 멈춰있는 사람은 계속 멈춰 있으려 해. 짝을 찾을 때도 게으른 놈은 끝까지 게을러. 저는 안 움직이고 오는 것만 취하려 들지. 그런데 또 가리는 건 많아.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아온 삶에 긍지가 있으면 말이오,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그 긍지를 당당히 보여주면 될 것 아뇨. 해본 적 있수? 솔직히, 없지?”

사슴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에 실려 함께 퍼집니다. 어쩐지 기세에 눌려, 그리고 또한 사슴의 말이 사실이기에 할 말을 잊은 나무꾼을 다시 쏘아본 사슴은 곰방대를 길게 뻗어 나무꾼의 가슴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뭐?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붙잡아서 평생 같이 살아? 자기 삶 잘 살아가던 여자 인생 하나 깨끗하게 말아먹고 본인만 행복하면 다요? 그것도 같이 알아온 사람도 아니오, 분위기나 배경이 잘 맞는 사람도 아니오, 마음을 맞춰본 것도 아니오. 그냥 예쁘고 날씬하면 장땡이다~하고, 덜렁 붙잡아서 데려가다니 그건 또 무슨 짓이냐고.”

사슴은 곰방대를 바닥에 패대기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닥을 구르던 ‘자벌레’를 입으로 물어 올려 나무꾼 앞에 툭 떨어뜨린 사슴은 뒷발을 구르며 콧김을 내뿜었습니다.

“댁 같은 인간에겐 이게 딱 어울리오. 어디 평생 관성에 따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봤자 좁은 판 위에서 힘 다 떨어져 바르르 떠는 것도 못할 때까지 꿈틀꿈틀 살아보쇼. 난 가오!”

처음의 가련한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힘차게 숲 저편으로 사라지는 사슴의 꽁무니를 나무꾼은 그저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사슴이 일으킨 흙먼지도 희미하게 사라져갈 무렵, 겨우 떨리는 손으로 자벌레를 집어 들어 손바닥 위에 가만히 얹어봅니다. 나무꾼의 손바닥 안에서 이리 꿈틀, 저리 꿈틀 움직이다가 결국 톡 떨어진 자벌레는 숲 저 안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습니다. 마치 사슴을 따라가듯이, 또는 나무꾼을 멀리하듯이. 홀로 남은 나무꾼의 옆에는 그저 못 박힌 채 가만히 서 있는 등짐만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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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이기는 법! 손냉장고 만들기

개미 5호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게 태어난 이유이자 삶의 전부니까요.
베짱이는 오늘도 열심히 노래를 합니다. 그게 태어난 이유이자 삶의 전부니까요.
개미 5호와 베짱이가 만난 것은 태어난 이유도, 삶의 전부도 아니었지만요.

맛난 애벌레의 냄새를 따라 쭉 직진하던 개미 5호의 작은 귀에 시원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소리입니다. 올해 늦봄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직 풀벌레의 소리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개미 5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습니다. 풀 위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녹색 베짱이가 보입니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빛이 뜨겁지도 않은지 고개를 쳐든 베짱이는 날개를 부비며 시원한 소리를 계속 내어갔습니다. 그저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날개를 서로 비벼댈 뿐인데 어쩜 저렇게 좋은 소리가 나는 걸까요. 노래를 하는 베짱이를 한참 바라보던 개미 5호는 자신의 일을 깨닫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집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유충이 한가득입니다. 개미 5호의 긴 그림자를 따라 언제까지고 끊이지 않는 노랫소리만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이틀이 지난 뒤 새 먹이를 찾아 땅 위로 나온 개미 5호는 문득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졌습니다. 다행히 같은 장소에는 같은 베짱이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자신은 이 무더위 속에도 먹이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데 어쩜 저렇게 노래만 부를 수 있을까요. 고개를 갸웃대며 고민하던 개미 5호는 다시 몸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노래만 들을 때가 아닙니다. 오늘은 아직 어떤 먹이도 못 찾았으니까요.

다시 이틀이 지난 뒤, 인간들이 남긴 것 같은 소시지 조각을 물고 돌아가던 개미 5호는 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베짱이를 만났습니다. 여전히 노래만 부르고 있는 중입니다. 개미 5호는 문득 베짱이가 이럴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조용히 풀 위로 기어 올라간 개미 5호는 베짱이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도록 살짝 떨어져 소시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베짱이가 이쪽의 기척을 눈치 챈 듯 고개를 돌렸습니다.

개미 5호는 고개를 갸웃대며 물었습니다.

“너는 매일 여기서 노래만 하는구나. 일은 안 하니?”

베짱이가 날개를 계속 비벼대며 대답했습니다.

“노래가 내 일이야.”
“그럼 넌 가수니?”

베짱이는 계속 노래했습니다.

“아니. 난 다른 메뚜기목 곤충들과 똑같은, 그저 한 마리의 수컷 베짱이일 뿐이야.”

이번에는 베짱이가 물었습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나는 일개미야. 먹이를 모으는 것이 내 일이지.”
“그 먹이는 네가 먹는 거니?”
“아니. 나는 유충을 위한 먹이 당번이야.”
“그럼 네가 먹을 먹이를 네가 잡지 않는 거야? 왜?”
“내 먹이를 모으는 당번은 따로 있어. 그게 우리의 규칙이야.”

베짱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와중에도 날개는 쉬지 않습니다. 개미 5호는 어쩐지 베짱이의 ‘일’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쉬이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듬이를 뒤로 쭉 넘긴 베짱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내가 먹을 먹이는 내 손으로 잡아. 내 짝도 내 손으로 찾지. 그러기 위해서 짝을 찾는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하지만 넌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

개미 5호도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또 인정하기 어려운 말이 나옵니다. 기껏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베짱이의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나는 짝을 찾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여왕님을 제외하고 짝을 짓는 개미는 없으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짝을 찾아야 해. 그게 베짱이의 숙명이지.”

베짱이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개미 5호는 자신에게 없는 날개 대신 더듬이를 살짝 비벼 보았습니다. 더듬이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여왕개미님께 달린 하얀 날개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미 5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짝을 짓는 일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네 일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 그건 내 일과는 다르지만 네게는 몹시 중요한 일일 테지.”
“응. 우린 서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베짱이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개미 5호도 더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저물어 가는 햇살 끝에 연녹색 날개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이틀이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났습니다. 새 먹이를 찾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개미 5호는 베짱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늦더위가 한창인 시기입니다. 햇빛을 빨아들이는 까만 몸을 힘겹게 이끌며 먹이를 찾아오던 길에 더위 탓인지 길을 조금 헤매고 말았습니다. 혼란스러워하던 개미 5호의 옆을 익숙한 소리가 스쳐갑니다. 베짱이의 노래입니다. 풀을 헤치고 나아간 개미 5호의 눈앞에 베짱이가 열심히 날개를 비벼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다른 곳에 앉아 있습니다.

“너구나.”

베짱이는 개미 5호를 알아보고 반색했습니다. 개미 5호도 더듬이를 떨어 인사에 답했습니다. 베짱이는 자신이 앉아 있던 곳에서 다리를 일으키며 더듬이를 까닥여 보였습니다.

“너도 여기 앉아봐.”
“그건 인간의 물건이잖니.”
“그래. 하지만 이건 좋은 거야. 어서 앉아보렴.”

베짱이가 앉아있는 물체는 커다란 비닐봉지입니다. 인간들이 종종 버리는 것과 같은 모습이지만 훨씬 크고, 또 훨씬 통통했습니다. 처음 일을 나갔을 때 먹이인 줄 알고 물어왔다가 얼마나 혼이 났던지 아직도 비닐만 보면 몸을 떠는 개미 5호는, 그래도 조심스럽게 앞다리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일은 중요하니까요.

“물?”
“그래. 그대로 몸을 얹어 봐.”

개미 5호는 머뭇거리면서도 앞다리와 중간다리를 놀려 몸을 얹어 보았습니다. 베짱이가 하던 것처럼 배를 내려놓자 지금껏 느꼈던 열기와 정반대의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쌉니다.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개미 5호는 감탄사를 뱉었습니다.

“와!”
“시원하지?”

베짱이는 더듬이를 까닥이며 날개를 비벼댔습니다. 청량한 노랫소리가 마치 웃음처럼 들립니다. 개미 5호 옆에 나란히 몸을 누인 베짱이는 저무는 노을 속에 날개를 더욱 세게 떨어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개미 5호는 점점 내려앉는 밤의 공기와 배에 닿는 시원한 감촉에 몸을 맡긴 채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풀숲 여기저기서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걸 보면, 베짱이의 친구들도 이곳저곳에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개미 5호도, 베짱이도 몰랐지만 이들이 앉아있는 커다란 비닐봉지는 인간들이 실험을 하다 남기고 간 것입니다. 그 안에는 질산암모늄이라는 약품과 물이 들어있습니다. 질산암모늄은 물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때문에 봉투가 아주 차가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진행되면서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반응을 흡열반응이라고 합니다.

“겨울에는 더운 빛이 없고 공기가 아주 차갑다고 들었어. 하지만 나는 더울 때 태어났고 아직 겨울을 겪은 적이 없지. 그래서 이걸 발견했을 때는 아주 기뻤어. 차갑다는 게 뭔지 알 게 됐으니까 말이야.”

베짱이는 저녁때보다 더욱 높은 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개미 5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차갑다는 느낌을 네게도 나눠주고 싶었어. 널 위한 선물이야.”
“왜 내게 선물을 주는 건데?”“너는 남의 일을 이해해주려고 했으니까. 다른 개미들은 모두 나를 비웃었거든. 하지만 넌 달랐지.”
“그렇구나.”

역시 둘은 모르지만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는 발열반응이 흡열반응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발열반응은 열을 내놓는 반응이기 때문에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변의 온도는 높아지니까요. 겨울철에 사용하는 주머니 난로는 발열반응에 의한 열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것 역시 언젠가 개미 5호의 눈앞에 선물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겨울이 와도 노래를 할 거니?”
“그때까지 짝을 찾지 못하면 노래를 해야겠지.”
“짝은 왜 찾아야 하는 거야?”
“짝을 찾아야 알을 낳고 또 다른 베짱이가 태어날 테니까.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게 내 일이야.”
“그렇구나.”

어느새 태양빛 대신 별빛이 사방에 내려앉았습니다. 배를 대고 있던 봉투도 어느새 주변 공기와 같이 미지근해졌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들의 합창소리만은 더욱 높아져 갑니다. 개미 5호는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지금 돌아가면 상사에게 혼날 겁니다. 솔직히 합창소리에 파묻혀 이대로 밤을 지새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베짱이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데 개미가 자신의 일을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상사에게 혼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나는 갈게.”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렴.”

베짱이는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웅했습니다. 개미 5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봉투에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동료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봉투에 오르기 전 내려놓았던 먹이를 물고 개미 5호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봉투 위에서 날개를 떠는 베짱이는 어쩐지 평소보다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어쩌면 이 밤에 베짱이는 자신의 일을 다 해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주변에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개미 5호는 바삐 발걸음을 놀렸습니다. 집에는 아직 많은 유충들이 자신이 물고 오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더위가 물러나고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풀숲에는 더 많은 노랫소리들이 어지럽게 섞이기 시작했기에 그 속에서 베짱이의 노래를 찾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유충들은 쑥쑥 자라나 번데기가 됐고 여왕개미는 다시 새 알을 낳았습니다. 개미 5호는 새로 깨어나는 유충을 위해 더 많은 먹이를 물어 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틀과 또 이틀과 다른 이틀이 쌓여가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개미 5호는 베짱이를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찬바람이 아주 세게 부는 날, 분명 베짱이가 말한 겨울이 온 날 개미 5호는 더 이상 베짱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늦여름의 더위 속에 배를 감싸던 서늘한 감촉을 떠올렸습니다. 겨울을 나기 전 마지막 먹이 찾기에 나서며 개미 5호는 혹시나 해서 풀숲에 머리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낡고 해진 비닐봉지 위에 베짱이가 앉아있었습니다. 하지만 날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리도, 더듬이도 딱딱하게 굳어 있을 뿐입니다. 개미 5호는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자신의 더듬이를 비벼 보았습니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베짱이의 노랫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베짱이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그게 베짱이의 수명이었으니까요.
개미 5호는 베짱이의 몸을 끌고 와 겨울나기용 먹이로 저장했습니다. 그게 개미의 일이니까요.
베짱이와 개미 5호가 짧은 순간을 함께 한 것은 둘의 수명도, 일도 아니었지만요.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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