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버섯도 ‘존재 이유’가 있다!

“얘야, 이것은 독버섯이야!”

아버지가 버섯 하나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독버섯으로 지목된 버섯은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러자 동료 버섯은 그를 위로하며 ‘사람들의 논리에 따르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식탁에 오를 수 없다고 버섯 고유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자기 이유’를 가지라며 인용한 이 동화는 개인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잘하는 것이 있고 해야 할 역할이 있으므로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이유에 따라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게 신 교수의 메시지다.

이런 다양성의 가치는 비단 사람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앞서 독버섯이라 불렸던 버섯도 생태계의 분해자로서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몰랐을 뿐 세상의 어떤 생물도 귀하지 않은 건 없다. 매년 5월 22일을 생물다양성의 날로 정해 그 가치를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식물만 해도 그렇다. 식물은 인간보다 훨씬 일찍 지구에 나타나 지구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존재들이다. 인간은 세상에 널린 다양한 식물 중 어떤 것은 먹고, 다른 것을 옷을 만들거나 집을 짓는 데 썼다. 식물이 다양할수록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나는 건 물론이다.

식물이 가진 유전적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거나 기존의 품종을 개량하는 ‘육종’이 대표적인 분야다.1962년 12월 미국 식물학자 휴 일티스 박사는 페루 안데스 고산계곡에서 끈적끈적한 잎을 가진 작은 식물을 발견했다. 그는 이 식물이 야생 토마토의 일종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동료들과 함께 말린 식물표본을 만들기 위해 몇 개를 수집했다.

버찌보다 크지 않는 녹색 빛의 하얀 줄이 쳐져 있는 식물을 수십 개 수확한 일티스 박사팀은 씨를 건조시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토마토 유전학 전문가들에게 보냈다. 전문가들은 이 씨를 재배실험장에 뿌리고 14년 동안 돌봤다. 그 결과 이 식물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야생 토마토이며 우리에게 이로운 식물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야생 토마토로 교배한 토마토 종은 과일당이 풍부해 연간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 기업인 (주)고추와 육종도 야생 고추를 통해 탄저병에 저항성을 가지는 품종을 만들었다. 10년 넘게 탄저병에 저항성을 가지는 고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윤재복 대표는 남미의 야생 고추인 ‘캅시쿰 바카툼’에서 답을 찾았다.

이 품종이 탄저병에 강하다는 것을 파악한 윤 대표는 우리 고추인 ‘캅시쿰 아눔’과 교배시켜 잡종을 만들었다. 이 교잡종을 다시 우리 고추와 몇 차례 교배시킨 결과 탄저병에 강하고 우리 토양에 맞는 신품종이 만들어졌다.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옥수수는 1년생 식물로 가을에 열매를 만들고 죽기 때문에 매년 새로 심어야 한다. 농부들이 한 번만 심어도 되는 다년생 옥수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식물학자들은 새로운 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줬다. 1978년 발견한 ‘테어신테’가 옥수수와 가까우며 다년생이라는 점을 이용해 두 종을 교배시킨 것이다. 그 결과 농부들이 원하는 다년생 옥수수가 탄생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몇 가지 곡물과 채소 등 주요작물과 육류를 위한 가축 몇 종류만 있으면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곡식과 고기 역시 모두 자연생태계에서 골라져 육종된 것이다. 생물다양성이 없다면 처음부터 쌀이나 밀 같은 작물도, 소나 돼지 같은 가축도 없었을 것이다.

토마토나 고추, 옥수수 같은 사례는 모두 지구에 다양한 종의 생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에 다양한 식물종이 있기 때문에 하나씩 찾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동식물을 ‘유전자원’이라 부르며 다양한 종을 수집해 보유하려는 이유도 모두 여기에 있다.

천연약물 대부분도 식물과 곰팡이 같은 생물에서 나온다. 이들은 땅에 붙어살면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수십만 가지의 천연물질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몇몇 생물에서 나온 물질을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이런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실제 치료약물이 개발한 사례도 많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정한 유일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중국 토착식물인 ‘스타아니스’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었다. ‘로지 페리윙클’이라는 열대우림 식물에서 얻은 ‘빈크리스틴’과 ‘빈블라스틴’이라는 물질은 백혈병 환자 치료율을 높였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약 중 하나인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물질로 만드는데 이 물질은 버드나무류 껍질과 서양 조팝나무에 들어 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두 식물이 열과 고통을 줄여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세기 초 과학자들이 살리실산의 구조를 발견하자 이 물질을 화학적으로 제조해 팔 수 잇게 됐다. 뒤이어 1899년 바이엘사의 화학자들은 살리실산은 모방해 만든 뒤 개선시킨 ‘아세틸살리실산’을 합성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아스피린인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가 생태계에서 얻어 쓰고 있는 것은 많다. 최근에는 생물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얻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모두 다양한 생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다양한 생물을 보존하는 게 인간에게도 유리하다. 지금 멸종 위기에 있는 종이 언제 어떻게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숙련되고 훌륭한 유전학자라도 4억 년 동안 식물과 동물이 진화하면서 생겨난 다양성을 다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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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향기 속에 숨은 무서운 진실!

매년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이 날만큼은 전국 곳곳에서 나무 심기 행사가 열린다. 인류가 지구라는 땅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나무를 비롯한 식물과 공존해야 한다. 때문에 식물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식물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강인한 생명체다.

식물은 동물처럼 직접적으로 으르렁댈 수 없는 대신 뿌리나 잎줄기에서 나름대로 해로운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이 화학물질은 이웃해 있는 다른 식물(같은 종이나 다른 종 모두)의 생장이나 발생(발아), 번식을 억제한다. 이런 생물현상을 알레로파시(allelopathy)라 하며 우리 말로는 타감작용(他感作用)이라 한다. 그리스 어로 ‘alle’는 ‘서로/상호(mutual)’, ‘pathy’는 ‘해로운(harm)’을 의미한다.

보통 고등식물 말고도 조류(algae), 세균, 곰팡이들이 내놓는 화학물질을 타감물질(allelochemicals)이라 한다. 이 본바탕은 에틸렌(ethylene), 알칼로이드(alkaloid), 불포화 락톤(unsaturated lactone), 페놀(phenol) 및 그 유도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른곰팡이들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인 페니실린이 다른 세균들을 죽이는 것도 타감작용의 한 예다.

식물들이 타감물질과 관계없이 단순히 양분이나 물, 햇빛을 놓고 다툴 땐 타감현상이라고 하지 않고 ‘자원경쟁’ 정도로 구분해 설명한다. 밭에 심은 채소들이 띄엄띄엄 나 있으면 바랭이나 비름 따위의 잡초가 쳐들어오지만, 촘촘히 난 열무나 들깨밭에는 잡초가 자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촘촘하게 심어놓은 열무를 마냥 그대로 두면 튼실한 것이 부실한 것들을 서슴없이 짓눌러버리고 몇 놈만 득세해 성세를 누린다.

먹이와 공간을 더 차지하려고 약육강식, 생존경쟁이 불길 같다. 동물들도 하나같이 넓은 공간을 차지해 많은 먹이를 얻고, 여러 짝과 짝짓기를 해 많은 자손과 더 좋은 씨를 받고자 죽기 살기로 으르렁댄다. 나무나 풀과 같은 식물도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푸른곰팡이부터 잔디밭의 클로버까지, 타감물질을 분비하지 않는 식물은 없다. 구체적으로 알려진 몇 가지 타감작용을 살펴보자. 소나무는 뿌리에서 갈로탄닌(gallotannin)이라는 타감물질을 분비해 거목 아래에 다른 식물은 물론이고 제 새끼 애솔마저 거의 살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는 관목(떨기나무)의 일종인 살비아(Salvia leucophylla)는 휘발성 터펜스(volatile terpenes)를, 북미의 검은 호두나무(black walnut)는 주글론(juglone)을, 유칼립투스(eucalyptus, 유칼리나무)는 유카립톨(eucalyptol)을 식물체나 낙엽, 뿌리에서 뿜어내 토양 미생물이나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밖에 다양한 식물들이 타감물질을 분비한다. 한마디로 식물 중 타감물질을 분비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잔디밭 한구석의 토끼풀이 잔디와 끈질기게 싸우면서 삶터를 넓혀가는 것도 클로버가 분비한 타감물질인 화약(火藥) 탓이다.

상쾌한 향기로 인해 흔히 실내에서 많이 키우는 허브(herb, 푸른 풀이라는 뜻)나 제라늄(geranium)과 같은 풀도 타감작용을 한다. 평소에 가만히 두면 아무런 향이 나지 않지만 강한 바람이 불거나 인위적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별안간 역한(?) 냄새를 풍겨낸다. 침입자를 재빠르게 쫓아내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그 냄새를 좋아하지만 실은 ‘스컹크’가 내뿜는 악취 나는 화학물질과 다르지 않다. 감자 싹에 들어 있는 솔라닌(solanine)의 독성이나 마늘의 항균성 물질인 알리신(allicin)도 말할 것 업이 모두 제 몸을 보호하는 물질이다. 어느 식물이든 자기방어 물질을 내지 않는 것이 없다.

병원균에 대한 식물의 방어 과정도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병원균이 식물의 세포벽에 납작 달라붙어 유전물질(DNA)이나 효소를 끼워 넣는 날이면, 빛의 속도로 체관을 통해 비상 신호물질을 온 세포에 흘려보낸다. 상처부위는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물질을 유도해 세포벽 단백질의 용해를 막으면서 세포벽에 딱딱한 리그닌(Lignin) 물질을 층층이 쌓는다. 파이토알렉신(phytoalexine)과 같은 항생물질까지 생성한다.

이렇듯 식물은 화학물질로 말을 한다. 나방의 애벌레인 송충이는 솔잎을, 배추흰나비 유충인 배추벌레는 배춧잎을 갉아먹으며 산다. 그런데 벌레들이 달려든다고 나무와 풀이 가만히 앉아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일단 벌레들의 공격을 받은 소나무나 배추는 서둘러 상처부위에서 테르펜(terpene)이나 세키테르펜(sequiterpene)과 같은 휘발성 화학물질을 훅훅 풍겨낸다. 이 신호물질의 냄새를 맡은 말벌들은 이게 무슨 향긴가 하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뿐만 아니라 말벌은 유충의 침과 똥에서 나는 카이로몬(kairomone)이라는 향내를 맡고 유충을 낚아채기도 한다. 즉, 소나무와 배추는 자기를 죽이려 드는 천적을 어서 잡아가 달라고 말벌에게 일종의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남미에 자생하는 콩과식물의 일종에는 항상 진딧물이 들끓는다. 그런데 느닷없이 메뚜기 떼가 달려들어 이 식물의 부아를 돋우면 개미에게 ‘어서 와’ 하고 연거푸 메시지를 날린다. 개미는 진딧물의 분비물을 먹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받으면 식물 쪽으로 달려온다. 억센 개미들이 들끓으면 메뚜기가 도망간다는 것을 콩 식물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적이 달려들면 이내 이파리의 맛을 떨어뜨리거나 움츠려 시들어버리는 내숭을 떠는 식물들도 있다.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쓰는 것이다. 식물은 인류보다 먼저 지구에서 살아온 대단한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글 :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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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린 식물은 수동적이고 동물은 능동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식물 역시도 동물과 거의 비슷한 세포조직을 가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고, 비록 느리긴 해도 주위 환경에 따라 치밀한 생존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늪지대의 식충식물처럼 아예 내놓고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도 있고 여름철 담쟁이넝쿨은 게코 도마뱀처럼 엄청난 속도로 담벼락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버드나무 같은 식물은 씨앗을 멀리 날리는 공중전, 몇백 년 세월을 한 자리에서 버텨내는 육상전 그리고 수중전에다 지하대전까지 동물들로선 감히 상상을 초월한 입체 전략을 구사한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겨울나기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동물 중 많은 수가 추위가 닥치면 우선 줄행랑 전법을 구사한다. 철새들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로 순록처럼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식물로서는 이런 전략은 불가능하다. 대신 재빨리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북극권에 가까운 툰드라에는 키 큰 나무는 거의 없고 순록의 주 먹이원인 지의류나 이끼, 작은 들풀만이 사는데, 이들은 겨울철에 겨우 생존만 유지하다가 여름철 잠깐 따뜻해지는 틈을 타 온갖 화려한 꽃을 피워 대지를 갑작스레 수놓아 버린다.

줄행랑 전법 중엔 이런 것도 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거나 장거리 이동에 익숙하지 않은 텃세권을 가진 동물들은, 마치 식물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즉 겨울잠을 잔다. 식물의 겨울철 뿌리와 같이 따뜻한 땅 밑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그렇게 겨울을 보낸다. 동면 쥐나 개구리처럼 완전한 식물 형의 겨울잠도 있고, 너구리나 곰처럼 반 가사 상태로 지내기도 한다. 식물 측에선 겨울철에 바깥에 조금 나와 있는 살아있는 잎인 ‘로제트’를 만드는 질경이나 민들레가 반 가사 상태로 겨울을 나는 식물이라 하겠다. 이들은 따뜻한 기운만 받으면 겨울에도 성장하고 봄엔 어느 식물보다 빨리 성장 가도를 달릴 수가 있다.

체내 순환계의 부동액으로 체액을 얼지 않도록 지키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남극의 차가운 바다에는 펭귄 말고도 다양한 물고기들이 산다. 우리나라에도 유난히 겨울에 활발한 물고기들이 있는데 바로 ‘빙어’이다. 이 남극의 물고기들이나 빙어는 몸 안 순환계에 부동액을 만들어 몸 안 체액이 전혀 얼지 않게 만들 수 있고 영하의 물속에서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다. 복잡한 순환계를 가진 포유동물로서는 이 부동액성 혈액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채택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식물에선 체액 보존으로 겨울나기는 아주 보편적이다. 소나무나 주목 같은 상록수가 겨울철 내내 푸를 수 있는 것도 기온 하강에 따라 농도 진한 부동액으로 수액 전환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복잡한 신경조직이나 순환조직이 없는 식물로선 계절에 따라 체액조성을 달리해도 생활에 거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 겨울은 얼지 않도록 진하게, 여름은 순환이 잘 되게끔 묽게, 봄에는 에너지가 높은 달짝지근한 수액을 만들어내고 가을엔 낙엽이 지도록 흐르는 양을 살짝 줄이기도 한다.

털이 많은 동,식물들은 털을 이용해 겨울나기를 한다. 북극곰이나 여우는 겨울이 오기 전 이미 따뜻한 털옷으로 단장하고 추위를 이겨낸다. 식물은 어떨까? 물론 이런 단순한 전략은 식물에겐 너무나 평범한 일이다. 목련은 겨울철에 유난히 꽃눈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꽃눈들은 두터운 털옷을 미리 갈아입고 겨울철에 그 속에 커다란 꽃망울을 숨긴 채 포근하게 겨울을 보내다 봄이 되면 일제히 꽃망울부터 터트린다.

꽃눈이 작아서 그렇지 벚꽃이나 개나리 역시 마찬가지다. 마로니에나무도 커다란 꽃눈을 가지고 있는데 겨울철 내내 완벽한 방한이 이루어지는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아교양 물질을 만들어 이 꽃눈을 촉촉이 감싼다. 식물의 꽃눈이나 잎눈은 이미 여름부터 가을까지 준비되고 동물들의 털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고 계절에 앞서 차분히 준비된다. 여름털은 겨울부터 서서히 만들어진다. 생물의 모든 것은 이렇듯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털갈이, 꽃눈 어느 것 하나라도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겨울 이겨내기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바로 건강의 척도다. 건강하지 못한 동식물은 겨울철을 견뎌 낼 수가 없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모든 동식물은 거의 자기 능력의 100% 이상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나기는 이미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여름부터 가을에 거쳐 준비되어야 한다. 청설모는 부지런히 도토리 같은 식량을 모아 두어야 하고, 곰도 평소 잘 먹지 않는 동물성 먹이인 연어를 먹어 몸을 두 배 이상 살찌워야 한다. 고구마나 감자 역시 겨울을 나기 위해 땅속줄기나 뿌리를 급속히 살찌우는 것이지만 인간은 이 식물의 전략을 교묘히 파고들어 식량으로 이용한다.

때론 과감한 희생도 필요하다. 낙엽 활엽수들은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모든 잎을 떨어내야 하고, 들풀들 역시 대부분 땅 윗부분 전체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극단적이 비유 같지만 동물들도 동상으로 썩은 팔다리는 즉시 없애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면 큰 틀에서 동물이나 식물이나 환경에 대처하는 생존 전략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겨울나무를 꼭 껴안아주면 그도 어느 정도 따뜻함을 느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글 :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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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울 근교 야산에서 마을 주민이 풀로 덮여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시신은 많이 부패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유기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많이 훼손되어 얼굴 형태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신분증이 있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발견된 곳은 풀이 사람의 허리까지 자라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에 대한 부검 결과 교통사고에 의해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누군가 교통사고를 내고 피해자를 그곳으로 유기한 후 도망한 것으로 보였다.

주변을 지나던 목격자의 신고로 용의차량이 수배되었고 용의자가 잡혔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의 차량에 대한 감정과 동시에 그의 옷 등도 압수되어 정밀한 분석이 실시되었다. 감정 결과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을 할 수 있었는데 물론 목격자의 신고가 큰 역할을 하였지만 더욱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의 옷과 차량에서 발견된 씨앗이었다. 그의 옷과 차량의 깔판에서 쇠무릎의 씨앗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낸 뒤 피해자가 숨진 것으로 판단하여 사고 지점과 가까운 인적인 드문 곳에 피해자를 유기하고 도망친 것이다.

위의 사건과 같이 범인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 또는 범죄에 사용된 차량 등에 식물, 식물편, 씨앗, 꽃가루, 이끼류 등 다양한 형태의 식물류 등이 부착될 수 있다. 피해자 또는 용의자와 관련된 물건에서 채취한 이런 증거물들을 분석하여 현장의 식물 등과 동일성 여부를 감정하거나 연구하는 분야를 수사식물학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분야의 전문가가 거의 없는 형편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었고 관련 전문 서적도 많은 편이며 다양한 사건에서 범죄를 입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위의 사건이 만약 봄에 일어났다면 범인의 옷에는 그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식물의 꽃가루 등이 묻었을 것이다. 꽃가루는 특히 봄에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이들 꽃가루를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면 종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양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범인의 옷 등에 묻은 꽃가루를 채취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어떤 식물의 꽃가루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관찰된 것을 현장에 주로 분포하는 꽃가루의 모양과 비교하면 범인이 그곳에 갔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종자(씨앗)가 옷 등에 잘 달라붙는 경우도 많은데,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쇠무릎 같은 식물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이들의 종자들은 옷 등에 쉽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고 세탁을 하더라도 어딘가에 일부라도 남아 있기 때문에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습한 곳이라면 이끼 등이 항상 존재하는데 범인이 그곳에 접촉을 하였다면, 신발의 틈과 옷 등에 이끼 등이 묻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들을 채취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동일한 종류의 이끼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끼와 관련해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야산에서 자살한 것 같은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여러 가지 분석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자살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수사관은 나무 밑동에 이끼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변사자가 자살을 했다면 그 나무를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그 이끼가 변사자의 신발에 묻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변사자의 신발에서 나무 밑동의 이끼와 같은 종류의 이끼가 발견되는지를 분석 의뢰했다. 감정 결과 그의 신발에서는 나무 밑동의 이끼가 전혀 검출되지 않아 타살로 확신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물론 자살 타살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이 있지만 이러한 감정도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유용한 방법 중 하나이다.

식물의 잎 및 줄기 등의 일부가 발견된 경우는 어떡해야 할까? 가을, 겨울과 같이 잎이 없는 때 또는 이미 말라버린 낙엽 또는 마른 풀에서도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를 알 수 있을까? 이 경우도 어떤 종의 잎 또는 줄기의 일부인지 또는 마른 것일지라도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봄, 여름뿐만 아니라 가을, 겨울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사식물학에도 유전자분석 방법이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다. 식물분류를 위해 DNA 분석이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같은 종 내에서의 개체식별은 그렇게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유전자분석을 통한 개체 식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범죄사건에 적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잃어버린 고가의 소나무를 유전자분석을 통해서 찾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수사식물학은 우리 주위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는 식물류들을 분석함으로써 과학수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범행을 증명하고 범인을 확인하는 과학수사 분석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증거와 모든 분석 결과가 과학수사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글 : 박기원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실장)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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