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연쇄살인범들에게 ‘사이코패스(반사회적성격장애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망상이나 환청에 사로잡혀 현실감각이 없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정신병자(사이코시스)와 달리 사이코패스는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고 분명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정상인’이다.

다만 이들은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양심이 결여된 고장난 인격’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뇌에 대한 PET(양전자단층촬영)영상은 충동조절과 사고능력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의 대사 작용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지루함이나 따분함을 느끼는 ‘낮은 각성(low arousal)’상태이며, 극단적 자극과 쾌락을 좇고 위험한 일을 즐기는 경향도 있다.

이런 사이코패스는 유전적 기질과 후천적 문제가 결합돼 나타난다. 특히 유아기와 아동기 같이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학대당하거나 가정폭력을 보는 것 등으로 충격(trauma)을 겪게 되거나 애정과 관심 부족으로 욕구체계와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파악된다. 생후 3개월 간 양육자가 바뀌거나 모성이 불안정한 경우 발생하는 ‘애착 외상(attachment trauma)’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가학성 등 ‘품행장애’를 드러내다가 체벌이나 징계 등 제재를 당하게 되면 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본성을 감추는 ‘위장술’을 터득한다. 중고등학교 이후 만나는 친구나 이웃 등은 위장된 겉모습만 보고 이들에 대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성실하고 조용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기 십상이다. 간혹 돌발적인 폭력이나 기망, 절도 등 범죄행동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순간적인 실수나 흔히 있는 일탈행동으로 치부된다.

삶의 의미, 사회와 인간관계, 진정한 사랑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는 목표달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오직 이익과 쾌락만을 추구하고 남들이 자신의 가치와 매력을 인정해 주기만을 기대한다. 그 결과 좌절과 실패, 거절 등을 겪게 되고 현실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런 좌절된 욕구를 달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술이나 성매매, 폭력, 살육, 음란을 소재로 한 만화나 게임 등이다. 이마저도 양에 차지 않게 되면 성폭력이나 살인 등 범죄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첫 범행에 성공하면 그 쾌감과 완전범죄를 저지른다는 성취감, 남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에 도취되어 범행을 반복하는 ‘범죄중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이코패스는 끔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범행을 거듭할수록 현장에는 이들의 ‘행동증거’가 더 많이 남게 된다. 이러한 행동증거를 포착하고 분석해 범인의 윤곽을 그리는 이들이 바로 ‘프로파일러(Profiler)’다.

범죄심리수사기법과 과거 사건분석 등으로 특수훈련을 받은 프로파일러들은 기존의 수사기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이상범죄나 연쇄범죄 수사에 투입돼 수사방향 설정과 용의자 범위 축소 등의 지원 역할을 하게 된다. 용의자가 검거된 뒤에는 이들의 성격과 심리적 특성에 맞는 신문기법을 사용해 여죄를 파악하고 자백을 이끌어낸다.

2001년 서울에서 발생한 4세 여아 납치피살 사건 범인은 프로파일러의 활약이 두드러진 사례다. 당시 외부 전문가들은 고도의 지능범이 저지른 범죄라 추정했고, 법의학적 소견에서는 정육점 종사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프로파일러는 다른 가능성을 내놓았다. 납치된 아이 부모에게 특별한 원한 관계가 없고, 납치범이 돈을 요구하지 않아 ‘성적인 목적’으로 납치를 시도했다고 본 것이다. 또 시신이 납치된 지 1주일만에 냉동된 채 발견됐고, 손으로 호흡기를 막아 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게 한 것에서 ‘인근에 혼자 사는 남자’로 범인의 범위를 좁혔다. 프로파일러의 의견에 따라 수사를 집중한 결과, 프로파일링과 일치하는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청은 최근 기존의 ‘심리적 프로파일링’에 덧붙여 ‘지리적 프로파일링’시스템을 구축했다. 연쇄범죄 범죄 장소의 특성과 관계를 분석해 용의자의 거주지와 활동 근거지, 다음 범행 예상 장소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부산 성폭행 살인범 역시 이러한 지리적 프로파일링에 의해 그 도주은거 범위가 좁혀졌고 이에 따른 경찰의 집중 수색에 결국 걸려들었다.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옛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사이코패스든 아니든, 연쇄범죄자는 ‘꼬리가 길면 잡힌다.’

글 : 표창원 경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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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2일 새벽, 서울 강변북로의 원효대교 부근. 회사원 A(47)씨가 차에 치어 처참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목격자 10여 명을 찾았지만, 이들은 어두운 밤에 고속으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목격했기 때문에 뺑소니 차량에 대해 어떤 사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사고 현장 부근의 CCTV 녹화 테이프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보름이 지나도록 수사에 진전이 없자 경찰은 목격자 중에 가해차량 번호를 일부 흐릿하게 기억하는 30대 여성을 대상으로 최면수사를 실시했다. 그녀는 최면 상태에서 차량 번호 4자리와 차종, 색상 등의 특징을 정확히 기억해 냈다. 경찰은 해당번호로 수도권에 등록된 차량 3대를 찾아내 정밀 감식했고, 1대의 차량에서 혈흔을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 혈흔을 감정한 결과 피해자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통보받았다.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뺑소니 교통사고의 범인을 최면수사로 잡은 것이다. 최면수사는 이렇듯 분명히 보거나 들었지만 시간 경과나 충격, 너무 짧은 기억 시간 등의 이유로 제대로 회상하지 못하는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 심리학자 게일스만과 말코비츠가 38명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연구에서도 55.3%인 21명이 같은 내용의 기억을 최면상태에서 더 잘 회상해 냈다. 보통 아동성폭행 같은 충격적인 경험에 관한 기억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어기제에 의해 억압되어 잘 회상하지 못한다. 헐만과 샤츠토우의 연구에서는 연령퇴행(age regression) 최면을 통해 억압을 해제하고 기억을 복원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최면수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많은 한계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최면수사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미국에서도 최면수사를 통해 기억을 회상한 목격자의 진술을 법정증거로 채택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미국의 여러 판례에서
최면은 실제 경험한 사실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 내용을 기억으로 오인하거나 상상, 들은 이야기, 책이나 영화 등에서 본 내용 등을 마치 실제 경험한 것처럼 잘못 기억할 가능성이 지적된 것이다.

이후 목격자를 상대로 한 최면수사 결과를 진술증거로 제출하려는 검사나 변호인은 그 과정과 전후사정을 모두 공개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주로 치료 목적으로 최면을 사용하는 정신의학계에서도 최면수사의 과학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최면수사 전문가들은 치료 목적 최면(Hypnotherapy)과 수사 목적 최면(Forensic Hypnosis)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수사 최면은 치료 최면과 달리 증거법 원칙에 부합하도록 객관적, 몰감정적, 제시와 유도 금지, 전 과정 녹화 등의 엄격한 절차와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최면수사로 확보한 진술을 증거로 채택하지는 않는다. 최면으로 복원한 기억은 단서를 찾고 그 단서를 통해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수사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최면수사 기법의 발달과 전문가 양성은 더 많은 미제사건 해결로 이어질 수 있어 한국 경찰 최면수사요원들이 학회를 조직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하고 있다.

<연쇄살인과 여러 대형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과학수사 및 프로파일러,그리고 탐정 등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대상자의 의식을 해제한 상태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억을 불러내는 최면과 달리 분명한 의식 상태에서 연상작용을 통해 기억을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재생하도록 돕는 수사 기법이 있다. 바로 ‘인지면담(Cognitive Interviewing)’ 기법이다.

미국 심리학자 피셔와 가이즐맨이 개발한 인지면담 기법은 종래의 수사관 중심 신문기법과 달리 인간 기억의 특성을 기반으로 고안한 목격자 중심 면담기법이다. 조서 양식이나 법정 증거라는 형식에 맞춰 6하 원칙을 직접 묻고 답하던 종래의 신문으로는 기억나지 않던 구체적인 상황이 인지면담을 통하면 명확하게 기억난다는 것이다.

최면수사의 효과성을 연구했던 게일스만과 말코비츠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최면수사(평균 38가지 기억)보다 인지면담(평균 41.3가지 기억)에서 더 많은 사실들을 기억해 냈다. 따라서 인지면담은 최면수사보다 더 효과적이고 신뢰할만하며, 최면수사의 함정(유도와 제시에 취약,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혼동 등)도 피할 수 있다.

인지면담은 목격자에게 사건 당시와 유사한 심리적 및 물리적 상황을 만들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수사관은 주요 연상 요인들을 통해 목격자나 피해자가 사건 당시에 겪었던 감정을 유사하게 느끼도록 해 평상시에는 기억해 내지 못했던 구체적 사실을 기억하도록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수동적으로 이끌리고 일방적으로 유도되는 최면수사와 달리 인지면담은 목격자가 기억을 되살리고 진술을 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된다. 훈련받은 인지면담 수사관은 목격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태도와 언행으로 공감대(rapport)를 형성한 뒤 사건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모든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가로막거나 제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자유진술이 끝나면 보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적절한 질문을 통해 기억의 빈자리가 메워지도록 돕는다. 시간의 역순으로 생각해 보기도 하고,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게 도와주기도 한다. 면담이 끝나면 더 할 말이나 질문은 없는지 확인한 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목격자가 긍정적인 기분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해 준다.

인간 기억작용의 특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고안된 인지면담 기법은 그 효과가 입증돼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 경찰의 공식적인 수사기법으로 채택됐다. 우리 경찰에서도 경찰수사연수원 이윤 경감을 필두로 인지면담 기법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과학의 힘으로 물적 증거를 찾는 CSI와 함께, 과학의 힘으로 기억의 저장고를 뒤져 진술 증거를 확보해 내는 인지면담 기법이 활용되는 대한민국에 더 이상 미제사건은 없다.

글 : 표창원 경찰대 교수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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