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들이 꼽는 위대한 스승, 자연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활약했던 화가이자 과학자이자 공학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자연모사공학, 또는 생체모방에 딱 들어맞는다. 자연모사공학이란 말 그대로 생물들의 생태나 신체구조를 모방하거나 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기술 조류를 일컫는다.

과학과 공학에서 자연모사공학이 주목받은 것은 최근이지만, 최근에야 그 이름이 붙었을 뿐, 사실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자연모사공학의 출발점은 재닌 M. 베니어스(Janine M. Benyus)다. 그녀는 1997년 생체모방이라는 책에서 자연의 설계와 프로세스를 모방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이 책에서 베니어스가 이름붙인 생체모방은 그대로 공학의 한 분야, 나아가서는 방법론을 일컫는 이름이 됐다. 이후 생체모방협회를 설립한 베니어스는 수많은 강의와 컨설팅을 통해 과학자와 공학자, 기업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자연모사공학은 이미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신칸센이 있다. 신칸센은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로 일본 첨단 기술의 상징이자 비행기에 밀려 저평가되던 철도 산업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장본인이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신칸센이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꼽힐 만큼 일본인들의 관심과 애정도 대단하다.

[그림 1] 현대 일본을 상징하는 이미지인 후지산은 일본의 자연과 전통을, 그 앞을 내달리는 신칸센은 현대 일본의 역동성과 발전상을 상징한다. 신칸센의 소음 문제는 물총새 덕분에 해결됐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림 2] 먹잇감을 발견한 물총새는 수면의 요동을 최소한으로 일으켜 목표물이 도망가지 않도록 한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일본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신칸센에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소음이었다. 신칸센 열차들이 좁은 터널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면 터널 내 공기가 갑작스럽게 압축되면서 압력이 높아진다. 열차가 터널에 깊이 들어올수록 압축은 점점 더 심해져서 음속에 가까운 압력파가 발생하고, 이 파동이 터널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면서 강력한 저주파 파장을 발생시켜 굉음을 낸 것이다. 때문에 터널 주변에서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신칸센의 엔지니어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물총새였다. 물총새는 수면 위 1.5m 정도 높이에서 물속으로 빠르게 다이빙하며 물고기를 잡는다. 저항이 약한 매질(공기)에서 강한 매질(물)로 빠르게 진입하는데도 물이 거의 튀지 않아 먹잇감이 뭔가를 눈치 챌 겨를도 없이 사냥 당하고 만다. 물총새만의 고요한 사냥 비법은 바로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에 있다. 날개를 접고 다이빙할 때의 물총새는 앞쪽이 가늘고 길게 튀어나온 탄환 모양이 되며, 이 덕분에 수면에 진입할 때 파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총새를 본뜬 디자인이 적용돼 탄생한 것이 바로 500계열의 신칸센이다. 1996년에 개발된 500계 신칸센은 이전의 모델들과 달리 뾰족하게 튀어나온 앞머리와 항공기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특유의 멋진 디자인 덕분에 터널에서의 소음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500계 신칸센의 디자인은 이후 모델들에 계승돼 현용 최신 모델인 E6계열도 머리 부분이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그림 3] 물총새의 머리 모양을 최초로 적용한 500계 신칸센(좌)과 이를 계승한 최신형 신칸센 E6(우).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기대를 모으는 풍력발전기에도 동물에게서 얻은 지혜가 적용됐다. 혹등고래는 이름 그대로 등과 지느러미에 혹과 같은 돌기가 잔뜩 나 있다. 물속에서 생활하는 동물이라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부가 매끈해야 할 것 같은데 이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을 지닌 이유가 무엇일까?

혹등고래 앞지느러미의 앞쪽에 난 작은 혹들은 유체의 흐름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지느러미 표면 부분에는 소용돌이가 생기는데, 이들은 지느러미에 물이 착 달라붙어 흐르도록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지느러미에 가해지는 유체 압력이 증가해 양력이 커지고, 이로 인해 혹등고래는 거대한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캐나다 풍력에너지 연구소에서는 혹등고래의 지느러미에서 힌트를 얻어 풍력발전기의 회전날개에 요철을 더했다. 실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요철을 적용한 회전날개는 같은 속도의 바람에도 이전의 풍력발전기보다 두 배의 회전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항력도 줄어들어 효율이 크게 개선됐다.

고속철도와 풍력발전기 이외에도 물을 튕겨내는 연잎의 표면구조를 응용한 발수소재, 어디에든 달라붙는 게코 도마뱀에서 영감을 얻은 흡착 소재, 홍합의 결합조직에서 힌트를 얻은 접착제 등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있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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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막는 슈퍼맨 강철 피부가 현실로!

저녁시간, 아빠와 엄마가 약상자를 들고 야단법석이다. 부엌칼에 엄마 손가락이 살짝~, 아주 살짝 베인 것이다.

“허걱, 피가 나잖아! 벌써 세 방울이나!! 응급실에라도 가야 할까? 지혈이 잘 안 되는 거 아냐? 버들잎같이 여리고 여린 내 아내의 손가락을 베다니, 이 나쁜 식칼!!”

태연은 5살 꼬마처럼 엉뚱하게 식칼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아빠를 기막힌 듯 바라본다. 아빠의 아내 사랑이 끔찍하기로는 대한민국 1등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좀 심하다.

“아이고, 피가 다섯 방울 났으면 아주 입원을 시키셨겠네요~. 저번에 내가 무릎 까졌을 땐 쳐다보지도 않으시더니만, 아빠 정말 너무하신 거 아녜요? 그럼 버들잎 같은 엄마 피부를 강철처럼 튼튼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시든가….”

“맞아! 그러면 되겠구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거미줄을 이용해서 엄마 피부를 강철로 만드는 거야!”

“엥? 뭔 말씀이세요. 전 그냥 농담을 한 거라고요. 아무리 엄마가 다쳐서 속이 상하시더라도 정신줄을 놓으시면 안 돼요. 아빠~.”

“아냐, 얼마 전에 네덜란드에서 거미줄을 이용해 강철같이 튼튼한 실험용 피부를 만들고 거기에 총알을 발사하는 실험을 진짜로 했었단 말야. 실험 결과 정말로 총알이 뚫고 지나가지 못했고. 진정한 방탄피부가 탄생한 거지. 연구진은 우선 염소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무당거미처럼 단백질로 꽉 채워진 젖을 생산하게 했어. 그 다음 이 염소젖에서 뽑아낸 단백질을 엮어 직물을 만들고 5주에 걸쳐서 이 직물 둘레에 실제 피부 층이 자라나게 했다는구나. 그렇게 거미줄과 염소젖을 이용한 방탄피부를 만들어 낸 거지.”

“초, 총알도 뚫지 못한다고요? 그럼 실험용 피부 말고 실제 살아있는 사람 피부도 그렇게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그래. 인체에는 피부를 견고하게 하는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 있어. 이 케라틴을 거미줄 섬유의 단백질로 대체하면, 즉 방탄피부와 인간피부를 섞으면 방탄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거지.

“와~, 영화에서 보면 총알을 튕겨내는 초인들이 가끔 나오잖아요. 슈퍼맨처럼요. 그런 일들이 실제로 가능하다니 너무 신기해요. 방탄피부가 되면 군인들은 방탄복을 입을 필요가 없고, 일반인들도 테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요. 또 엄마처럼 칼에 베일 염려도 없잖아요. 완전 짱인데요!! 그런데 아빠, 거미줄이 그렇게 튼튼한 줄은 몰랐어요. 도깨비 팬티보다 더 질길까요?”

“노래에 나오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어서 수천 년 입어도 까딱없다는 그 도깨비 팬티 말이냐? 음…, 도깨비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 못해서 그건 잘 모르겠다만, 암튼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10배나 강하면서 유연성과 탄력성도 좋아서, 이런 특성을 활용해 첨단 신소재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상당히 많단다. 거미줄을 철사 정도의 굵기로만 뽑아낸다면 피아노도 천장에 너끈히 매달 수 있을 거야.”

“거미줄은 하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본떠서 첨단과학 기술을 개발한다니 엄청 신기해요.”

바로 이런 걸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이라고 한단다. 살아 있는 생물의 행동과 생김새, 생산 물질 등을 모방해서 첨단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지. 잠자리 날개를 본뜬 헬리콥터 프로펠러, 상어의 미세돌기를 본 딴 전신수영복, 벽 타기 선수인 개코도마뱀의 발바닥을 본뜬 특수테이프 등등 아주 많지. 자연처럼 완벽한 건 없다는 걸 과학자들도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요즘엔 생체모방공학이 ‘미래 세계를 먹여 살릴 10대 기술’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단다. 거미는 그 중에서도 과학자들이 가장 자주 모방하는 대상 중 하나지.

“와~, 이제 거미를 다시 봐야겠어요. 징그럽다고 피하거나 괜히 심술 나서 거미줄을 막 끊어놓고 그랬는데 이제 진심으로 거미를 존경하려고요. 그런데 존경해 마지않는 그 거미님께 인간은 또 어떤 기술들을 본뜨고 있어요?”

“최근에 개발된 몇 가지만 말해주마. KAIST 이상엽 교수 연구팀은 거미의 실크 단백질을 대사공학으로 개량한 대장균을 이용해서 강철보다 강한 거미 실크 섬유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고려대학교 이상훈 교수 연구팀은 지름이 100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 분의 1m) 이하로 극히 미세한 극세사(極細絲)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단다. 이 극세사에 간세포, 섬유세포, 신경세포 등을 심으면 인공 간, 인공 근육, 인공 신경 등의 재료로 쓸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니? 또 독일의 라이프니츠 연구소는 거미줄을 이용해 몸속에서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수술용 실을 개발하기도 했단다.

“정말 과학자들은 대단해요. 못하는 게 없다니깐~. 근데요 아빠, 거미줄을 이용해 엄마 피부를 강철로 만들면 다치지도 않고 참 좋긴 하겠는데, 촉감까지 강철 같으면 어떡하죠? 아님 도깨비 팬티보다 더 질긴 촉감이 된다거나. 그렇게 돼도 엄마를 사랑할 수 있으세요?”

“물론 사랑할 수 있고말고… 가 아니라,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내 버들잎 아내를 강철로 만드는 건 안 된다고! 방탄피부 취소, 절대 취소!!”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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