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원천으로 떠오른 동물, 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우리 조상들의 낙천성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무엇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결하게 돼 있다는 긍정성이 담겨 있다. 이가 없으면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잇몸으로 씹어 넘길 수 있고, 스포츠 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빠진다고 반드시 지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이 나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긍정성’을 가지라는 게 속담이 전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2013년 계사년의 주인공인 ‘뱀’은 이 속담이 가진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생물이다. 뱀은 애초에 다리 없이 태어나지만 네 발, 혹은 두 발 달린 다른 동물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 다리 없이 껍질로 사는 법을 터득한 덕분이다.

뱀 껍질도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의 피부나 털이 하는 역할을 한다. 온몸을 둘러싸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껍질은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이뤄져 습도 변화에 대응하기 좋다. 젤라틴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몸 밖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잘 막고, 몸에 있는 습기도 잘 뺏기지 않는다. 그 덕분에 뱀은 습도에는 큰 상관없이 서식할 수 있다.

언뜻 뱀 껍질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하나씩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비늘 사이에는 주름이 잡혀 있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통째로 삼키면 비늘 사이의 주름이 늘어나서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소화시킬 수 있는 구조다. 비늘이 모두 연결된 덕분에 뱀이 벗어놓은 허물도 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뱀 비늘은 이동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리가 없는 뱀은 온몸을 지면에 밀착해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땅이나 물에 비늘이 직접 닿는다. 효과적으로 이동하려면 각종 표면과 맞닿은 비늘의 마찰력을 조절해야만 한다. 또 늘 어딘가에 닿는 비늘이 잘 닳지 않도록 신경도 써야 한다. 뱀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미세한 표면 구조를 발달시켜 해결했다.

잘 이동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몸통 각 부분의 마찰력을 다르게 만든 것이다. 뱀은 직진만 하는 성질을 가졌는데 이는 뱀의 배 비늘이 앞으로 갈 때는 마찰력이 가장 작아서다. 뒤쪽이나 옆쪽은 마찰력이 강해서 온몸을 움츠렸다가 펴면 앞으로 나가도록 이뤄졌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공대 데이비드 후 교수팀은 뱀 몸통의 마찰력을 측정해 2009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싣기도 했다. 연구진은 작고 온순한 뱀인 ‘퍼블란 밀크 스네이크’를 마취시켜 몸통을 앞과 뒤, 그리고 옆으로 기울여 각 방향의 마찰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앞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작고 옆 방향의 마찰력이 가장 컸다. 마찰력이 큰 몸통 옆쪽은 브레이크 장치처럼 작용해 뱀이 S자 곡선을 그리면서 이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뱀 비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일정한 형태의 무늬가 잘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무늬는 뱀 비늘이 지표면에서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마찰을 최소로 줄이고, 대한 덜 닳도록 도움을 준다.

이런 뱀 껍질의 구조는 사막에 사는 도마뱀인 ‘샌드피시’와 비슷하다. 샌드피시는 모래 속을 파헤치고 다니면서도 반짝거리는 껍질을 유지하는데, 이는 껍질 표면이 마이크로미터(μm·100만 분의 1m) 에서도 매끄럽고 미세한 칸막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작은 칸막이에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등이 담기는데, 이는 샌드피시나 뱀이 윤활제로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뱀은 모래 표면에서도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고, 오랫동안 바닥에 닿아도 껍질이 쉽게 닳지 않는다.



[그림]뱀이 움직이는 힘은 껍질의 독특한 무늬에서 나오는데, 서식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샌드피시(좌)와 보아뱀(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뱀이 사는 환경에 따라 표면 무늬는 조금씩 달라진다. 사막이 아닌 동남아시아처럼 습기가 많은 환경에 사는 뱀은 표면에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무늬뿐 아니라 나노미터(nm·1nm=10억 분의 1m) 크기의 작은 돌기도 발달시켰다. 이렇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표면은 물기를 머금게 되면 뱀 비늘과 물이 맞닿는 부분에 충격이 줄어든다. 그 덕분에 뱀이 이동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며 비늘도 덜 닳게 되는 것이다.

결국 뱀은 다리를 가지지 못한 대신 껍질의 마찰력을 조절하고 독특한 무늬를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처럼 날쌔게 달리지는 못해도 이동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껍질도 많이 상하지 않게 됐다. 이들이 ‘다리 없음’을 극복한 지혜는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레인보우 보아뱀 껍질을 마이크로미터와 나노미터 크기에서 관찰해 표면의 무늬를 찾아낸 문명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계산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런 표면을 자동차 엔진 등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자동차 엔진에 있는 실린더는 마찰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 표면을 뱀 비늘에 있는 무늬처럼 만들면 마찰이 작고 마모가 거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한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부분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서 비슷한 효과를 얻기도 했다.

또 1년에 2~3차례 허물을 벗으며 아예 새로운 껍질을 가지게 되는 원리도 새로운 영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내 벗겨낼 수 있다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닳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은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전략으로 살아남은 뱀이 주인공인 해다. 올해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잘 될 거라는 긍정으로 헤쳐 나갈 수 있길 빌어본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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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꿀벌이 큰 뱀보다 더 무섭다고?

산등성이 하나를 구름처럼 뒤덮은 새하얀 벚꽃의 향연, 산들산들 부는 바람 따라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 부드럽게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 모든 게 완벽한 봄날이었다.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엄마가 아침부터 맛있게 싼 도시락을 먹으며 강아지 몽몽이의 재롱을 보는 것 까지도 완벽했다. 시원하고 달달한 사이다를 한 모금 캬~ 마시다가 실수로 옷에 쏟기 전까지는 말이다.

“앗, 몽몽아. 언니한테 그렇게 달려들면 어떡해! 사이다 다 쏟았잖아.”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불쑥 튀어나온 말벌 세 마리, 특유의 무시무시한 윙윙 소리를 내며 태연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태연, 손을 마구 휘저어 말벌을 쫒는다. 아빠, 위급한 목소리로 태연을 말린다.

“태연아 안 돼!! 네가 그러면 벌이 더 심하게 공격한단 말이야!!”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아야!” 소리와 함께 태연의 손등이 금세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아빠, 잽싸게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더니 손등을 바깥쪽에서부터 세게 밀에서 독침이 피부 밖으로 밀려나오게 한다. 그리고는 얼려온 물병을 물린 곳에 대고 수건으로 고정시킨다. 언제나 과체중 몸매를 과시하듯 거북이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느렸던 아빠, 오늘은 슈퍼맨 보다 빠르다.

“앙앙~~ 아파, 아프다고!!”

“좀 참어! 그러니까 벌한테 덤비지 말라니깐! 그리고 꽃놀이 갈 땐 사이다나 콜라같이 벌이 좋아할만한 달달한 음료는 가져가지 말라고 어제 아빠가 그랬지! 이 벌침을 그대로 두면 2~3분 이상 독을 계속 품어내기 때문에 증상이 훨씬 악화된단 말이야. 그래서 카드나 칼등 같은 납작한 물건으로 밀어내서 빼야만 한다고. 또 곤충의 독이 더 이상 퍼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얼음찜질을 하는 것도 좋은 응급처치 방법이야.”

아빠의 넘치는 지식과 빠른 몸놀림에 엄마는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감탄과 애정의 눈길을 마구 보낸다. 말벌에 물린 태연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어머, 여보는 정말! 어쩜~ 그렇게 해박한 건지~~. 독이 있는 곤충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어요?”

“크흠, 내 박학다식이야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아무튼! 독이 있는 곤충에는 나비나 나방종류, 노린재류, 개미류 그리고 벌 종류(꿀벌, 개미벌, 쌍살벌, 말벌)가 있어요. 그 중 가장 독성이 강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태연이를 쏜 벌 종류에요. 특히 장수말벌은 우리나라 벌 가운데 가장 크지요. 꿀벌이 1cm 정도에 불과한 반면 이놈은 3cm가 넘고 덩치로 보면 꿀벌의 열 배쯤 돼요. 머리가 큰데다 배마디는 노란색이고 각 마디에 1개의 검은 띠를 두르고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죠.”

“어마, 무서워라!”

“꿀벌의 경우 침이 작살처럼 생겨서 한 번 쏘면 침이 피부에 박혀 내장까지 다 빠져나오기 때문에 결국 죽게 되죠. 그래서 꿀벌은 사람이 잡으려고 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공격을 잘 안 해요. 하지만 장수말벌은 침이 송곳같이 생겨서 피부에 박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쏠 수 있어요. 게다가 공격성까지 대단해서 한 번 공격을 시작하면 계속해서 반복공격을 하죠. 독성도 꿀벌보다 15배나 강하기 때문에 장수말벌에 쏘였을 땐 침을 빼내고 무조건 병원에 가는 게 최선이에요. 심한 벌독 알레르기가 있거나 40~50차례 이상 반복해서 장수말벌에 쏘였을 때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죠. 독성 곤충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가 뱀에 물려 사망하는 사람보다 20배나 높다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니, 곤충 독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만하죠?

“어쩜, 어쩜~~. 말벌 같은 곤충에 쏘이면 어떤 증상을 보이는데요? 증상을 알아야 급히 병원에 가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일단 온몸이 가렵고 열이 나며 두드러기가 생겨요. 입이나 혀가 붓고 숨을 잘 못 쉬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배가 아픈 등 여러 증상을 겪게 돼요. 평소에 아토피성 피부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앓던 사람은 증상이 더 심할 수 있어요. 체질적으로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위험하고요.”

아빠와 엄마가 박학다식한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태연의 손등은 물론 온 몸 군데군데가 두드러기로 호빵만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저, 저기요. 두 분~. 아빠가 똑똑한 것도 좋고… 헥헥… 엄마가 똑똑한 아빠를 좋아하는 것도 알겠는데요… 헥헥… 제가 지금 바로 그 증상이걸랑요… 헥헥”

엄마, 여전히 태연은 쳐다보지도 않고 의기양양한 아빠만 바라본다.
“알았어, 태연아. 엄마가 이따가 약 발라 줄게. 태연 아빠, 그래서요? 그럼 어떡해야 해요?”

“아, 쫌!! 제발 저 좀 봐달라고요. 뱀보다 20배나 무섭다는 그 곤충 독에 감염된 사람… 헥헥... 여기 있다고요!! 부부 금슬도 좋지만 가끔은 딸도 좀 살려가면서 사랑하시라고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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