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가 유출된 기름을 분해한다?

지난 설날 아침, 전남 여수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설레고 북적였다. 떡국과 함께 나이 한 살씩 더 먹은 아이들은 고운 설빔을 입고 세배를 드렸고, 어른들은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고 있던 중이었다. 화목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졌다.

오전 10시경, 여수시 낙포동의 GS칼텍스 원유2부두에 접안을 시도하던 싱가포르 유조선 ‘우이산(WU TI SAN)’호가 무슨 일인지 잔교에 설치된 송유관과 충돌해 순식간에 시꺼먼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이 사고로 인해 약 75만ℓ(리터)가 넘는 원유 및 유독성 화학물질들이 유출됐고 여수 앞바다는 일순간에 시꺼먼 기름띠와 유독한 휘발성 악취들이 넘쳐나는 고약한 곳이 돼버렸다.

사람들이 유정(油井, 석유의 원유를 퍼내는 샘)을 파고 원유를 대량으로 퍼 올리고 난후, 이와 관련된 사고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분야에 있어서 최악의 사고로 불리는 것은 2010년 4월 20일 미국에서 발생한 ‘딥워터 호라이즌’ 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세계 최대의 석유 업체인 British Petroleum(이하 BP)의 석유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호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다. 바닷속에 연결했던 시추 파이프가 부러지며 해양 유전에서 심해로 엄청난 양의 원유가 유출된 사건이었다. 땅 속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원유를 퍼 올리는 데는 엄청난 압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러진 시추 파이프는 토해내듯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원유를 바닷속으로 유출시켰다.

시추공을 막기는커녕 가까이 가기도 어려웠기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았다. 시추 파이프는 1일당 3만 5천bbl(배럴), 다시 말해 약 556만ℓ의 원유를 뿜어냈고, 사태가 일단락되기까지 약 490만bbl(약 7억 7860만ℓ)의 원유가 멕시코만으로 흘러들어갔다. 일단 원유가 새어나오는 모든 시추공들을 막음으로 인해 더 이상의 원유 유출은 잡았지만, 이미 막대한 양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상태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유조선이나 시추선의 사고는 치명적인 환경 오염을 일으킨다. 기름 성분들은 물보다 비중이 낮아 해수면으로 떠올라 광범위한 유막(油膜, oil slick)을 형성한다. 유막은 바닷속으로 유입되는 태양광과 산소를 차단시켜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들 뿐 아니라 산소 호흡을 하며 살아가는 생물체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원유 유출 지역의 해양 생태계는 마치 밀봉된 검은 비닐에 둘러싸인 것처럼 질식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BP사는 바닷물 위에 뜬 유막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피워 기름을 태웠고(약 4,925만ℓ를 태움), 대규모 오일 스키머(oil skimmer, 물에 뜬 기름을 유착 벨트 등에 흡착시켜서 제거하는 것) 선박을 이용해 해수에서 기름을 걸러 냈다. 또한 Corexit라는 유화제를 대량으로 투입해 원유 농도를 희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에 유출량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이런 물리학적, 화학적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던 순간, 과학자들은 희미한 빛줄기를 발견했다. 당시 사고를 조사하던 미국 테네시대학교의 테리 하젠(Terry Hazen) 박사는 사람들이 제거한 양 이상의 원유가 ‘저절로 사라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 보고했다. 이 기적의 마법을 부린 주인공은 바로 심해에 서식하고 있던 박테리아, 일명 ‘기름 먹는 박테리아’들이었다. 이들은 ‘유류분해 미생물’로 불린다. 하젠 박사는 ‘해양 환경 내 석유 오일과 분산제의 환경적 거동(Environmental Fate of Petroleum Oils and Dispersants in the Marine Environment)’이라는 보고서에서 이 ‘기름 먹는 박테리아’들은 이틀마다 1gal(갤런)의 원유를 제거할 정도로 매우 효율이 좋으며, 지금까지 유출된 490만bbl 중 적어도 40만bbl 이상의 원유를 이들이 제거했다고 보고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박테리아가 인간이 일부러 유전자 조작을 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에 하젠 박사는 먹잇감이 극히 부족한 심해 지역에 자생하는 생물체 중에는 탄화수소를 이용해 살아가는 세균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심해 유정에서 원유가 뿜어져 나온 것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자체 정화 기능을 담당했다고 추정했다.

원유는 탄소가 85~87%, 수소가 10~14%에 약간의 질소와 산소, 황이 섞인 형태이므로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서는 훌륭한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미생물들은 이상적인 환경에서는 원유를 완전히 분해해 이산화탄소()와 물()으로 변환한다. 현재 원유와 같은 유류를 분해하는 미생물은 의외로 많아서 현재 총 66속(屬, 생물 분류상의 단위) 이상이 밝혀졌으며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런 유류 분해 미생물들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유류 분해능을 더욱 높인 미생물들을 개발해 산업적으로 이용하고자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미생물들을 이용해 독성 화합물을 정화시키고 유해한 폐기물에서 발생되는 물질들을 제거, 감소, 변형시키는 것을 ‘생물정화(bioremediation)라고 한다. 생물정화의 유용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40년대로, 당시 미국 텍사스 주에서 유정 근처의 오염 정화에 처음 이용됐다. 또 하나의 커다란 재앙이었던 엑손 발데즈(Exxon Valdez) 호 사건에서도 유류 미생물들이 사용되어 상당히 효과를 거두었는데, 일각에서는 알래스카 일대에 잔존 원유의 50%를 이들이 정화했다고 보고 있다.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정화는 원유 오염 지역 정화나 유정 근처 토양 정화 뿐 아니라, 오폐수 속에 든 질소 성분을 탈질소화 한다. 미생물이 수질을 정화하고 메탄 산화 세균이 메탄을 제거해 대기를 정화하기도 한다. 또한 금속 이온 고착 미생물이 중금속을 제거해 토양을 정화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들 생물정화 방법은 기존의 물리적, 화학적 정화에 비해 경제적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자-소비자-분해자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나지 않아 추가적인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파괴로 인한 2차 피해가 적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생물정화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하잘것없이 보이는 미생물들이 깨끗이 정화시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인간들이 간과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겸손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정신적 효과도 있는 셈이다.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1)1989년 3월 24일, 미국 알래스카 주 프린스 윌리엄사운드 일대에서 일어난 해상 원유 유출 사고로, 약 4천만 ℓ의 기름이 유출되어 일대의 해양 생태계가 초토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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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은 구식, 이제 박테리아로 체질 분류해!

“제발, 그만해, 그만! 알았다고!!”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친구들 험담을 늘어놓는 태연에게 아빠는 완전 질린 표정이다.

“아냐, 아빠가 몰라서 그래요. 엊그제 운동회 때 말자가 순자한테 모래 뿌려서 넘어졌었잖아요. 말자가 원래 O형이라서 승부욕이 엄청나거든요. 한마디로 물불을 안 가려요. 그런데 순자는 진짜 A형답게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 되고 또박 또박 바른 멘트를 날리는 거예요. 그러고선 온종일 숨어서 홀짝홀짝 울었어요. 더 기가 막힌 건 B형 경잔데, 순자가 우는데도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고 행동하고 그러더라고요.”

지난 달 머릿니 사건을 극복이라도 하려는 듯, 태연은 혈액형에 관한 온갖 지식을 습득하고는 하루 종일 혈액형으로 친구들 분류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그래서, AB형인 넌 뭘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우아하게 관조의 자세를 유지했죠. AB형은 원래 자신이 다른 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태연아, 아빠가 혈액형별 성격 구분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니. 물론 A, B, O, AB형 혈액형 분류가 성별, 인종, 나이 등을 초월한 인류 최초의 생물학적 분류체계인 건 맞아. 하지만 이제 그건 구식이라고.”

“네에? 저 혈액형 공부한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벌써 구식이면 어떡하란 말이에욧!”

“이제 몸속에 사는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서 사람을 분류할 수 있게 됐거든.”

“엥? 박테리아라면 사람의 장이나 위에서 주로 사는 그 단세포 미생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인간의 몸속에는 약 100조개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단다. 인간 세포가 10조개 정도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지. 그래서 그동안 몸속의 박테리아를 전면적으로 조사하는 건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었어. 그런데 얼마 전 독일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이 그 엄청난 일을 해냈단다. 덴마크, 일본, 미국 등 6개 나라 39명의 몸 안에 사는 1,151종의 박테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거야. 그 결과 몸 안에서 지배적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가 박테로이데스, 프레보텔라, 루미노코쿠스 이렇게 세 가지라는 것을 밝혀낸 거지.

“에이, 겨우 39명 분석한 걸 가지고 어떻게 인류 전체를 분류했다고 그러세요. 암튼 킹왕짱 뻥이시라니깐!”

“아이고, 너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370명을 더 실험에 참가시켰는데도 결과는 똑같이 나왔어. 그리고는 지배적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한 체질 분류에 ‘장형(腸型·enterotypes)’이란 이름을 붙였지. 이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박테리아가 많은가를 가지고 인간을 분류할 수 있는 세상이 드디어 온 거란다.”

“그럼 혹시 혈액형처럼 박테리아 종류별로 수혈을 따로 해야 된다던가, 성격이 다르다던가 뭐 그런 것도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장형별로 체질을 알 수는 있단다. ‘박테로이데스’ 유형에서는 ‘비오틴’이라는 비타민이 많이 만들어지고 ‘프레보텔라’ 유형에서는 ‘티아민’이라는 비타민이 많이 생성된다는 식으로 말이야. 비오틴은 피부나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가꿔주는 아름다움의 비타민이라고 알려져 있어. 티아민은 ‘피로회복 비타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이나 집중력 저하 등을 막아주는 비타민이란다.”

“어머, 그럼 난 100% 박테로이데스 유형이겠네? 난 아름다우니깐!!”


[그림 1] 사람의 체질은 장 속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사진은 프레보텔라 박테리아. 사진 출처 : 룩포다이아그노시스
“암튼 다행인 건, 박테리아는 혈액형과는 달리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의견이 많아. 태어난 직후 장을 지배하는 박테리아 종류에 따라 장내 생태계가 3가지 유형 중 하나로 발전해간다는 거지. 아무리 거울을 봐도 아빠는 박테로이데스 유형은 아닌 것 같은데…. 너한테 유전이 안 됐으면 하는 게 아빠의 간절한 바람이란다.”

태연, 평소와는 달리 자신을 낮추고 딸을 엄청나게 배려하는 듯한 아빠의 말투에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아빠의 얼굴이 유난히 검고 어두워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혈액형을 알고 있듯이 머지않아 자신의 장형도 알고 사는 세상이 될 거야. 그러면 대장이나 위에 생긴 병을 치료할 때 어떤 박테리아를 많이 갖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서 그에 맞는 체질별 치료를 할 수 있겠지. 아니면 아예 병원균이 발붙이지 못하는 박테리아 생태계를 인체에 조성시킬 수도 있겠고. 또 대다수의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이른바 ‘슈퍼박테리아’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될 가능성도 커졌단다.”

“와, 아픈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겠어요. 또 아파도 체질별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 금방 나을 수 있고. 특히 아빠처럼 평생을 ‘장트러블타’로 살아 온 분들에게 정말 희소식이네요. 그런데 아빠! 지금 저의 뇌수를 미친 듯 흔들고 지나간 이 끔찍한 냄새의 정체는 뭐죠?!”

“아까부터 계속 장이 안 좋아서 말이다. 장트러블타의 결과물들이 어느새 항문을 빠져나와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지 뭐냐. 난 정말 네가 이 아빠의 박테리아 유형을 닮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나 혼자 오염시켜도 온 집안에서 퇴비 냄새가 가득한데, 너까지 내 장속 박테리아를 닮아 가스를 분출해댄다면 네 엄마는 정말 방독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건 너희 엄마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잖니?”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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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과학수사대입니다. 저 과학탐정은 과학사에 여러 억울한 일들을 바로잡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열심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학계의 여러 분이 저를 찾아오시지요. 어찌나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들이 많은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답니다.

“똑똑”

“아, 또 오셨군요. 이제 상담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내 이름은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라오.”

“아~ 휘트스톤 경이라면 영국의 물리학자가 아니십니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흠흠. 과학을 좀 아는 친구로군. 그렇다면 얘기하기가 쉽겠어.”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전기학이론 ‘휘트스톤 브리지’의 발명가이시고, 3차원 입체 영상을 관측하는 데 쓰이는 장치를 개발하셨죠. 그야말로 과학자로 발명가로 종횡무진 공이 많으시니까요.”

“으흠, 내가 온 것도 그 때문인데. 내가 좀 욕심쟁이로 비칠까 걱정이 되긴 하네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지 싶어서. 자네 혹시 플레이페어 암호(playfair cipher)라고 아는가?”

“영화 ‘내셔널 트레저:비밀의 책’에 나오는 바로 그 암호 기법이 아닙니까? 그건 왜요?”

“실은 그걸 내가 발명했다네. 1854년의 일이지. 날짜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1854년 3월26일이었지.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름은 플레이페어 경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어. 이름을 바로 잡을 방법이 없겠나?”

“그런데 어쩌다 플레이페어 경의 이름이 붙게 된 겁니까?”

“내 암호법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사용되지 않았네. 2차 보어전쟁이나 세계 1차 대전에서 이 암호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플레이페어 경의 공일세. 이상한 것은 플레이페어가 이 암호법을 공표했을 때, 원래 내가 발명했다고 밝혔는데도 이름은 플레이페어 암호가 되었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

“참 이상하고, 애석한 일이네요. 하지만 플레이페어 암호를 휘트스톤 경이 만들었다는 진실만큼은 세상이 알고 있으니,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 과학사의 세계에선 휘트스톤 경보다 훨씬 억울한 일을 당한 과학자도 많답니다.”

그렇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본인의 이름을 걸지 못하고 사라져간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과적인 업적에 스스로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학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하지만 과학법칙의 이름이 처음 그 법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으로 붙여지지 않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심지어 시카고대학의 통계학 교수인 스티글러는 ‘어떤 과학상의 발견도 원래의 발견자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는다.’라고 천명했다. 바로 스티글러의 명명법칙(Stigler’s law of eponymy)이다.

가우스분포라고 불리는 정규분포는 1733년 드무아브르가 처음으로 발표했고, 1812년 라플라스가 그 결과를 확장해서 발표했다. 물론 가우스도 이 법칙에 공헌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실험 오차가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가정하에 최소제곱법의 정합성을 증명해냈다. 하지만 그것은 드무아브르의 첫 발표가 있고 나서도 한참 뒤인 1809년의 일이다.

예는 이뿐이 아니다. 식중독균인 살모넬라 엔테리카는 1885년에 발견되었다. 이 박테리아의 이름은 발견된 실험실을 운영하던 다니엘 엘머 살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실제로 그는 이 발견에 기여한 것이 없다. 실제 발견자는 티오발트 스미스라는 젊은 연구원이었다. 더 유명한 과학자에게 덜 알려진 학자의 공까지 몰려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게하르트 아르마우어 한센은 1873년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였다. 그는 하지만 이 박테리아를 배양하거나 실제로 나병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한센은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많은 샘플을 알베르트 네이서에게 주었는데 네이서는 이 박테리아에 대한 생체 염색을 수행해 1880년 나병의 원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한센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1870년 이후 수행한 연구에 대한 긴 논문을 발표했다. 결국 학계는 한센의 공로를 인정하고 네이서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19세기 말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사이먼 뉴컴은 작은 숫자로 시작하는 숫자들이 9나 8로 시작하는 숫자들보다 자주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숫자들에게 각 숫자가 첫 자리에 나오는 빈도를 계산할 수 있는 수학적 법칙을 만들었다. 이 논문은 1881년에 발표되었다. 이로부터 무려 57년 뒤에 물리학자 프랭크 벤포드가 첫 자리 숫자의 특이한 빈도 분포에 대해 발표했다. 벤포드는 뉴컴의 논문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최초의 발견자는 뉴컴이었지만, 법칙은 벤포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이처럼 과학 법칙에 최초의 발견자가 아니라, 그 발견의 가치를 높인 후대의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초의 발견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명명되더라도 더 유명하고 지위가 높아서 눈에 잘 띄는 사람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전구의 발명가는 에디슨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1년 전에 영국의 물리학자 조셉 윌슨 스완이 최초의 전구를 발명했다. 에디슨은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발명했다.

“과학탐정, 자네 얘길 듣고 보니 연구 성과에 자기 이름을 걸지 못하는 과학자가 한둘이 아니겠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방법이 있겠는가?”

“하하.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연구 결과가 쏟아져 어떤 사람이 최초의 발견, 발명자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적자생존의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논문은 종의 기원이 나오기 1년 전 1858년 러셀 월러스가 발표한 논문이었습니다. 표절이라는 설도 있지만, 동시에 연구가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지요. 열역학 제1법칙에 해당하는 에너지 보존법칙 역시 로베르트 마이어, 헬름홀츠, 제임스 줄 등에 의해 1840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발표가 있으면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공평하게 법칙의 이름을 정하기란 어려워집니다.”

“오호, 그런 경우는 법칙에 사람 이름을 넣을 수가 없겠군. 마이어-헬름홀츠-줄 에너지 보존법칙은 너무 길어서 곤란하겠지.”

“네, 게다가 과학적인 발견은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묻혀 있는 경우가 많지요. 아시다시피 멘델의 유전학 연구는 발표된 지 34년이 지난 뒤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후대에 법칙의 이름이 정해질 경우 원래의 최초의 발견자가 누구였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잘못된 이름을 붙이기 십상이지요. 누구든 이름을 정하는 사람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갈 과학사의 발견들이니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이름을 붙이길 빌 수밖에요.”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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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밤하늘을 보면서 과학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엄마가 얘기해주는 과학 이야기는 정말 실감 나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나는 얼른 밤이 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세상엔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물도 있다는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요즘도 학교에서 우유 잘 먹고 있니?”
“응. 그런데 가끔 깜박하고 안 먹으면 다음 날 우유에 건더기가 생겨. 왜 그런 거야?”
“상해서 그렇단다. 바로 우유 속에 있는 세균 때문이지.”
“세균? 우유 속에? 난 못 봤는데… 막 꿈틀거려?”
“아니~ 세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그래서 미생물이라고 그러기도 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물?”
“그렇지.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생물.”
“어디에 있어? 지구에 있어?”
“지구에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 외에도 다양한 자연환경이 존재한단다. 예를 들면 남극 기온은 영하 60도 이하로 내려가고 심해저 열수분화구 주변의 수온은 100도가 넘거든. 이렇게 춥고 뜨거운 곳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이 없는 곳은 없어.”

“으아~ 생각만으로 춥고 뜨겁다! 그냥 안 춥고 안 뜨거운 곳에서 살면 안 돼?”
“그 생물들은 그들이 있는 환경이 최적이라고 느끼는 거겠지. 80도 이상 되는 고온 환경에서만 잘 자라는 초고온균 얘길 해줄까? 초고온균이 생산하는 단백질은 100℃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중온성 미생물이 고온에서 오염되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도 중온균이 생산하는 효소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중온균 효소들이 변성을 일으키는 극한 환경에서 안정하기 때문에 신기한 것이지.”

“음… 좀 신기한 균이네?! 다른 종류 또 있어?
“신기하지? 세균은 원래 중성(pH 7)에서 잘 자라는 성질이 있어. 그런데 호산성균이라는 세균은 산성 환경을 좋아하고, 호염균은 알칼리성 환경을 좋아해서 소금 농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 살아.”

“잠깐! 종류가 많으니까 헷갈려~”
“이렇게 생각하면 돼. 심해저에서 서식하는 호압균의 경우, 압력을 좋아하니까 호압균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 균은 수심 6,500m에서 650기압이 되는 높은 압력을 좋아하는데, 650기압이라면 1㎠ 크기에 650㎏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거든. 정말 대단하지? 그럼 퀴즈 하나 내볼까? 암석에서 사는 균을 뭐라고 할까?

“암석에서 사는 균? 그럼 호암석균인가?
“으하하~ 반은 맞았다. 암석 안에서 자라는 암석균이 있고, 독성물질이 있어야 사는 내독성균도 있어. 건조내성균은 생명의 필수요건이라는 물이 거의 없는 곳에서만 사는 미생물이고. 다 외우려고 하면 어려워.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지금도 계속 이런 미생물들이 발견되고 있거든.”

“그러면 이 생물들을 다 미생물이라고 부르는 거고 세균은 안에 포함되는 거야?
“천천히 설명해줄게. 이렇게 극한 환경에서 사는 미생물의 발견이 늘어나자 미생물의 분류방법도 바뀌게 되었단다. 즉 핵막과 기관이 없다는 점에서는 세균(박테리아)과 비슷하지만 세포막의 구조나 DNA와 단백질을 합성하는 방법은 진균류(곰팡이)와 비슷해. 그래서 극한미생물을 아키아(Archaea)로 따로 분류하게 되었어. 이제 미생물에는 세균, 아키아, 진균이라는 세 개의 도메인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돼.”

“응. 세 개의 도메인이라…”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머릿속으로 분류해 보았다.
“새로 발견된 다른 미생물이 있는지 인터넷에서 같이 찾아볼까?”
엄마는 냉장고에서 간식을 가져오시면서 나를 컴퓨터 앞으로 부르셨다. 나는 미생물에 대해 점점 관심이 깊어졌다. 엄마는 미생물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시다가 나를 향해 반갑게 소리치셨다.

“이것 봐.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한복판에 있는 2만 8천 년 된 타르에서 박테리아가 발견됐대!”
“엄마. 타르가 뭐야?”
“타르란 물질을 태울 때 발생되는 모든 형태의 점액질을 지칭하는 대명사야. 목재에서 휘발성 물질을 제거하고 남은 물질을 나무 타르라고 하고 담배가 탈 때 생기는 점액물질을 담배 타르라고 하지. 그리고 석유나 석탄에서 휘발성 물질을 제거하고 남은 찌꺼기를 콜타르(Coal Tar)라고 하는데 이것이 아스팔트로서 도로포장에 사용되거든. 로스앤젤레스 도심에 있는 타르는 바로 도로포장에 쓰이는 아스팔트야. 그동안 이 거대한 타르에서 무수히 많은 동식물 화석이 발견되었단다.

“어떻게 발견한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견했나?”
“하하. 도심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 중유 찌꺼기인 타르에서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몇몇 과학자들이 관찰했대. 기사에 따르면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의 환경과학자 데이비트 크롤리 교수와 그 연구팀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김종식 박사가 함께 관찰했다고 하는구나. 연구팀이 거품의 정체를 추적한 결과, 거품은 아스팔트를 먹고사는 박테리아가 배출하는 메탄가스임이 밝혀졌지. 타르 구덩이에서 박테리아 수백 종을 발견한 거고.

“우웩, 아스팔트가 맛있을까? 그걸 먹고살게~”
“덕분에 우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잖아. 이 아스팔트를 먹는 박테리아의 DNA 염기서열까지 해독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연구팀은 아스팔트를 먹는 박테리아에서 석유를 분해하는 효소 세 가지를 발견했대. 이 효소들을 이용해 토양이나 해양에 유출된 기름으로 인한 오염을 제거할 수 있어. 그리고 신약을 발명하고 바이오연료를 제조하고 석유 회수율을 높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 거야.

“음… 그렇게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다른 박테리아도 더 많이 발견됐으면 좋겠다!”
“맞아. 이 박테리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극한미생물들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어.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
“엄마, 앞으로는 어떤 신기한 박테리아가 우리 앞에 나타날까? 생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렇지?”
“응, 나도 그래.”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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