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탄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11 메탄올을 가솔린으로~ 꿈의 제올라이트
  2. 2008.10.22 화가들의 녹색 요정, 압생트
겨울의 어느 오후. 태연은 엄마의 스카프를 목과 머리에 어설프게 두르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창밖으로 쓸쓸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태연아, 뭘 보고 있니?”

“아빠, 송곳 같은 겨울바람이 제 가슴에 숭숭 구멍을 뚫고 있어요. 문득 유치원 때 달님반에 있던 그 멋진 남자아이 생각이 나요. 코딱지를 맛있게 떼어먹으며 살짝 날려주던 그 살인미소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아빠,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다. 네가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니까 불현듯 제올라이트가 떠오르는구나. 사랑이란 제올라이트가 아닐까?”

“에엥?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거나, 사랑은 행복이라거나 뭐 그런 말을 해주셔야지 제올라이트가 다 뭐에요. 정말 낭만제로야!!”

“아니, 그건 네가 제올라이트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제올라이트는 수nm(나노미터, 1nm=10-9m) 지름의 극도로 작은 구멍이 스펀지처럼 송송 뚫려있는 돌이란다. 18세기에 처음 이 돌을 발견한 크롱스테드라는 과학자는 돌을 가열할 때 구멍 속에 들어있던 물이 끓어 수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는 ‘끓는(zeo) 돌(lite)’ 즉 제올라이트(zeolite)라는 이름을 붙여줬지.”

“음, 구멍이 숭숭 뚫린 건 제 마음과 비슷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랑을 제올라이트라고 말하는 건 좀 오버 아니세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렴. 제올라이트는 무한변신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단다. 구멍 안에 온갖 물질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가 서서히 배출시키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어떤 물질을 넣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든. 예를 들어 미세한 제올라이트에 은나노 입자를 넣은 다음 그걸 섬유에 붙이면 항균효과가 뛰어난 옷을 만들 수 있고, 양분을 넣으면 토양강화제로 쓸 수 있고, 반도체를 넣으면 광통신에 쓸 수 있는 식으로 말이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니까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거지.”

“헉, 아빠한테 그렇게 철학적인 면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게다가 제올라이트는 촉매로 가장 많이 활용된단다. 촉매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그 반응이 수십 수백 배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을 말해. 예를 들어 탄소 덩어리인 원유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반응하는 힘이 세져서 휘발유를 아주 손쉽게 분리해낼 수가 있지. 또 제올라이트의 구멍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크기를 조절해서 촉매효과를 강화하기도 한단다. 사랑에 빠지면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잖니? 사랑이 공부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처럼 제올라이트도 아주 많은 화학반응에서 촉매로 활용된단다.”

“와~ 정말 우리 아빠 맞아? 넘 멋져 보여요!!”

“그게 다가 아냐, 쓸모없는 물건을 깨끗이 없애주기도 해. 플라스틱은 가볍고 튼튼해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만, 쓰임이 끝나고 나면 썩지도 않는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되는 거 너도 알지? 태우자니 환경오염이 너무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폐플라스틱에 제올라이트를 넣으면 간단히 물과 이산화탄소로 플라스틱이 분리돼 버려. 당연히 환경 걱정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어지지. 사랑 역시 여러 쓸데없는 잡생각을 싹 없애주는 능력이 있으니 ‘사랑은 제올라이트’라는 말이 딱 맞지 않니?”

“아빠, 오늘부로 아빠를 존경하기로 했어요. 과학적 상식과 철학적 사고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벽한 이론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계셔요!!”

“너 역시, 오늘은 정말 놀랍도록 똑똑하게 말을 하는구나. 자랑스럽다 내 딸!”

그러나 아빠와 대화를 할수록 태연의 눈엔 의심이 가득해진다. 심지어는 사냥감을 만난 늑대처럼 코까지 벌렁거린다.

“그런데 아빠가 무척이나 의심쩍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빠 가슴이 지금 제올라이트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구멍들이 어떤 사랑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얼마 전에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렇다면 아빠의 제올라이트 가슴엔 지금 엄마대신 첫사랑이 있다는 것이로군요!!”

“허걱! 빨리 병원에 가보자. 어쩐지 너답지 않게 지나치게 말을 잘한다 했어. 그렇게 허무맹랑한 억지를 쓰는 걸로 봐서 너의 뇌는 지금 제올라이트 상태가 틀림없어. 구멍이 뚫린 거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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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는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와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의 동성애적 사랑을 그린 영화로 유명하다. 지금에야 ‘미드나잇 카우보이’나 ‘왕의 남자’처럼 동성애에 대한 영화가 흔하지만, ‘토탈 이클립스’가 개봉되던 1995년만 해도 프랑스의 두 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파괴적인 동성애 행각은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또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천재 시인 랭보로 등장한 것 역시 적잖은 화젯거리가 되었다.

영화에서 랭보로 분한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는 녹색의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다. 이 녹색 술이 19세기를 풍미했던 압생트(Absinthe)란 술이다. 이 술은 1750년대에 스위스에서 처음 제조되어 19세기 중엽에는 전 유럽에서 인기있는 술이 되었다. 모파상, 마네, 피카소, 고흐 등 낭만주의 시인과 화가, 소설가들이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압생트가 이토록 인기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과 사과 맛 브랜디라는 압생트 특유의 멋도 있지만, 이 술 안에 투존(Thujone)이라는 환각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투존은 중추신경에 심각한 장애를 동반하며, 지각장애와 정신착란 그리고 간질과 유사한 발작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성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압생트의 환각성분은 화가들의 예술적 정서를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었다.

물에 희석해 마시는 압생트는 탁한 녹색을 띠며 쓴맛이 난다. 압생트 애호가들은 이 쓴맛을 해결하기 위해 ‘압생트 숟가락’이라는 특별한 은수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먼저 압생트 숟가락을 잔에 걸치고 그 위에 각설탕을 올려놓는다. 이 위로 압생트를 조금 부은 후에, 차가운 물을 서서히 부으면 각설탕 녹은 물이 흘러내려 녹색의 압생트와 섞여 불투명한 액체가 된다. 술의 도수를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쓴맛도 제거해주는 셈이다. 화가들은 흔히 이 절차를 예술 또는 신성한 종교의식에 비유했다. 이처럼 독특한 압생트 희석 방법도 예술가들이 압생트에 매료되는 데에 한몫을 했다.

그 때문에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소설과 그림을 살펴보면 압생트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여럿 찾아낼 수 있다. 19세기 파리에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일과 후 카페로 몰려가 늦은 시간까지 압생트를 마시곤 했다. 그래서 늦은 저녁 시간을 ‘녹색의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알버트 간트너(Albert Gantner)라는 화가는 압생트의 금지를 희화하는 ‘녹색요정의 종말(The end of the Green Fairy)’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는 압생트를 즐겨 마신 나머지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다.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르펜(terpene) 유도체가 함유되어 있다. 고흐의 그림에서는 후기로 갈수록 시각장애나 알코올 중독, 정신착란의 징후가 발견되는데 이처럼 독특한 고흐의 색감에 압생트도 한몫한 셈이다. 특히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머물렀던 아를(Arles)에서 탄생한 그림들에는 기묘하게 혼합된 노랑과 파랑이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고흐는 물감희석용으로 쓰이는 테레펜틴(turpentine)을 마시려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테레펜틴에 압생트 성분 중 하나인 투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압생트의 중독 성분 때문에 유럽 각국은 20세기 들어 대부분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던 압생트가 20세기에 들어 잊혀진 술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압생트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즉, 압생트가 화가들을 괴롭힌 치명적인 중독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 영국, 미국의 국제공동연구진은 압생트에 들어 있는 투존이 이러한 증세의 원인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생트가 치명적 독성을 띠고 있다는 소문이 난 데에는 압생트 판매량이 와인 판매량을 초과하자 이를 경계한 프랑스의 와인 제작자들의 로비가 한몫을 했다고 한다. 압생트 제조가 금지되던 20세기 초에는 과학적 분석을 통해 투존의 함량을 측정하기보다는 적당히 예측한 경우가 많았다. 이 당시 화학자들은 압생트의 투존 함유량을 350mg/L(여전히 독성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양이 아님)이라고 추정했는데, 현재의 기술로 같은 압생트의 투존 함량을 정확하게 측정해보면 고작 5mg/L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압생트에 든 독성의 다른 원인을 찾기 위해 메탄올과 알코올, 알데히드의 양을 기체 크로마토그래피로 측정하고, 원자 흡수 분광법으로 구리를, 플라즈마 질량분석기로 안티몬의 양을 측정했다. 이 결과 역시 비교적 깨끗하며 불순물의 양이 거의 없었다. 압생트를 사랑했던 예술가들이 건강을 잃었던 이유는 압생트의 독성 때문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던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와 압생트 팬들의 청원에 힘입어 1988년 마침내 압생트 금지법이 폐지되었다. 이와 함께 일반적인 주류에는 35mg/L 이하의 투존 함유가 허용된다. 2007년에는 마침내 미국에서도 압생트 판매가 자유로워졌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에는 파리의 카페 푸케(Fouquet’s)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라비크와 조앙은 이 카페에서 처음 만나 압생트를 나누어 마신다. 푸케는 파리 샹젤리제에 실제로 있는 카페다. 화가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압생트를 실제로 한번 마셔보는 건 어떨까.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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