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색깔 논쟁,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드레스 한 벌 때문에 각국의 인터넷과 SNS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명인이 입어서도 아니고 귀하고 비싼 제품이어서도 아니다. 가격도 수십 수 백 만원이 아닌 8만원 정도고 브랜드도 평소에 별로 들어보지 못한 ‘로만(Roman)’이라는 회사다. 세계적인 스타들까지 가세해 품평회를 할 만한 상품은 못 되는데도 논평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품질이나 디자인이 아닌 ‘진짜 색깔이 무엇인지’ 가려내기 위해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직접 찍은 사진까지 있는데도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색이라고 우겨댔다. 연예인과 패션전문가뿐만 아니라 사진가, 광학연구자, 인지과학자, 심리학자까지 총동원돼 드레스에 대해 그리고 기묘한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 이른바 ‘드레스 논쟁’이다. 

사건의 출발은 이러하다. 영국 북서부의 외딴 섬 콜론시(Colonsy)에 사는 케이틀린 맥닐(Caitlin McNeil)은 스코틀랜드 전통음악 밴드 ‘카나(Canach)’의 싱어로 활동 중이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연주를 해주기로 친구와 약속했는데, 어느 날 사진을 한 장 보내오며 의견을 물었다. 어머니가 피로연에서 입겠다며 의견을 물어왔는데 어떻게 보이냐는 것이다. 파란색과 검은색의 레이스가 가로 줄무늬로 겹쳐 있고 소매 부분이 풍성한 원피스 드레스였다. 

케이틀린은 무심결에 “파란색-검은색 드레스네” 하고 대답했다가 친구로부터 면박을 들어야 했다. “무슨 소리야. 흰색-금색이잖아.” 이때부터 논쟁이 시작됐다. 멀쩡히 사진이 찍혔는데 전혀 다른 색으로 이야기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텀블러(Tumblr)’라는 SNS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네티즌의 의견을 구했다. “이 드레스 색깔이 흰색-금색인가요, 파란색-검은색인가요?” 
 

색깔 논쟁 드레스 (출처 : SNS Tumblr Swiked.)



그런데 사람마다 의견이 달랐다. 어떤 사람은 파란색이다, 다른 사람은 아니다 흰색이다 대답이 제각각이었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사진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삽시간에 지구촌으로 퍼져나갔다.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케이틀린의 SNS 사이트를 찾아왔고 세계적인 팝 스타들도 트위터를 통해 논쟁에 가세했다. 해외 인터넷 투표에서는 파란색-검은색이라는 의견이 30%, 흰색-금색이 70% 정도였다. 우리나라 네티즌들도 논쟁을 벌였다. 인터넷 게시판마다 드레스 색깔에 대한 주장과 다툼이 이어졌다. 의견과 분석도 제각각이었다. 상대를 비난하고 인신공격을 하는 글까지 등장했다. 

같은 물건을 찍은 사진을 보고 어떻게 사람마다 다른 색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래 드레스의 색깔은 파란색-검은색이 맞다. 하지만 흰색-금색이라고 대답한 사람들도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뇌가 눈에 보이는 색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같은 색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3가지의 불일치가 작용한다. 

사람이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 덕분이다. 다양한 종류의 빛 중에서 물체에 부딪혀 반사될 때 380~780nm(나노미터)의 파장 길이를 가지는 광선을 가리킨다. 파장의 길이가 짧아져 380nm에 가까워지면 보라색이 되고 780nm에 다가갈수록 빨간색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는 흔히 알고 있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이 들어 있다. 

우리 눈의 망막에는 빨간색(R), 초록색(G), 파란색(B)의 3가지 색을 느끼는 원추세포가 있다. 빛의 종류에 따라 세포의 활성화 정도가 달라지면서 뇌로 전달되는 전기신호도 다양하게 바뀌며 이를 판단해서 색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빨간색을 보여주었을 때 모든 사람의 뇌가 동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빛의 파장도 동일하고 원추세포의 움직임도 동일하지만 뇌는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하는 것이다. 

외부의 물리적 자극을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을 때 사람마다 다른 신호를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모두가 똑같이 “노란 꽃이다” 하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교육과 합의에 의한 결과다. 특정 물체에 반사돼 눈으로 들어오는 색채에 누군가 이름을 붙였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명칭을 가르쳐줌으로써 공통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같은 개나리꽃을 보더라도 나와 상대의 뇌 속에는 서로 다른 신호가 오가는 셈이다. 이것을 ‘지각색(知覺色)’이라 한다. 여기서 첫째 불일치가 생긴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지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빛의 세기가 달라진다. 가장 큰 광원인 태양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빛이 강렬해지기도 하고 어스름해지기도 한다. 빛이 달라지면 물체의 색도 달라진다. 동일한 물체를 들고 다녀도 운동장 한 가운데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서로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색채 현시(顯示, 나타내 보임)’라는 현상이다. 여기서 둘째 불일치가 생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체의 색이 변했다”고 하지 않는다. 밝은 곳에서도 어두운 곳에서도 개나리꽃은 여전히 노랗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환경 변화에 상관없이 물체의 색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뇌의 기능을 ‘색채 항상성’이라 부른다. 사과를 파랗고 하얗게 칠하는 인상파는 색채 항상성 대신에 색채 현시를 강조하고, 자신만의 지각색으로 표현한 사람들이다. 

자주 보던 물체라면 빛의 특성과 세기를 감지해서 색채 항상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처음 접하는 물체는 판단이 쉽지 않다. 꽃의 색이 원래 노란 것인지 빛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때 각자의 판단이 개입된다.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물체의 색을 유추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억색’이다. 같은 물체라도 사람마다 경험이 달라서 서로 다른 색으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셋째 불일치가 생긴다. 

물리적인 가시광선의 파장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 드레스 논쟁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 ‘포토샵’을 만드는 어도비 사(社)는 사진을 컴퓨터로 분석해 “파란색과 검은색이 맞습니다” 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색채 현시만 고려했을 뿐 사람마다 지각색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다. 당연히 논쟁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색에 의존해 색채 항상성을 발휘한다. 드레스의 원래 색깔이 파란색-검은색이라 하더라도 일부의 눈에는 하얀색-금색으로 보일 수 있다. 옷에 내리쬔 조명이나 실내 환경을 나름 고려해서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의견을 내세워 소수의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진 드레스 논쟁은 의외로 여러 가지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시각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웠고, 물리적인 정보에 근거했어도 타인의 의견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맨 처음 사진을 올린 영국 시골의 21세 소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미국의 팝스타들과 친해졌고, 문제의 드레스를 제작한 로만 사(社)는 연이은 매진 사례에 즐거워하며 흰색-금색 버전의 새 드레스까지 내놓았다. 지구촌은 온갖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부딪히기도, 타협하기도 하며 다양성을 배우는 장소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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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친구 영해와 송년파티를 하기로 한 윤미. 무엇을 사갈까 고민하다가 고른 것이 우아한 보랏빛이 감도는 와인이었다. 혹시 깨질까 조심조심 들고 가느라 힘들지만 와인 한 잔하며 2009년을 보낼 생각에 가슴이 들뜬다.

“오, 윤미 왔어~ 어서 들어와. 파티를 시작해볼까? 호호~”
영해는 와인을 받고 신이 났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보졸레 누보였기 때문이다. 보졸레 누보는 햇포도로 만들어 바로 출시된 와인이다.

“네가 좋아해서 사오긴 했다만 와인은 어느 정도 숙성이 된 게 더 좋아. 숙성기간 동안 와인에서 떫은맛이 사라지고 깊은 맛이 우러나거든.”
“떫은맛이 사라지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응, 그래. 사실 레드와인을 만들기 위해 발효시키는 포도즙 안에는 포도알뿐 아니라 껍질, 씨까지 들어 있어. 껍질하고 씨 안에는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아닌 색소도 있지만 떫은맛을 내는 탄닌도 있단다. 발효가 끝난 뒤에는 와인을 어둡고 시원한 곳에서 참나무통에 넣어 두는데, 이때 탄닌과 안토시아닌이 서로 적절히 조화하면서 색이 짙어지고 거친 맛이 부드러워지는 거야. 바로 숙성이지.”

“우와~ 윤미는 와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구나. 하지만 이건 모를 걸? 내가 얼마 전에 화장품을 하나 샀는데, 와인으로 만든 것이더라. 너 와인 화장품 써 봤니?”
“응, 물론이지. 혹시 와인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어 피부와 건강에 좋은지 알고 있니?”
영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하지만 어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와인과 건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지? 프렌치 패러독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처럼 고지방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서도 심혈관질환이 적은데, 그 이유가 하루에 레드와인을 꼭 한 잔씩 마시기 때문이래. 과학자들은 안토시아닌, 탄닌, 카테킨, 레스베라트롤 같은 폴리페놀계 화합물 덕분이라고 설명한단다. 그중에서도 레스베라트롤은 혈청 콜레스테롤 양을 낮추고 항산화 작용을 해 뇌졸중, 고혈압 같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

“이 맛있는 와인이 건강에도 좋다니 정말 감동이야.”
영해는 얇고 기다란 와인 잔의 다리를 잡고 살며시 잔을 흔든다. 반쯤 찬 보랏빛 물이 흔들흔들 돌고 그 안에 비친 조명도 뱅글뱅글 돈다.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향기가 퍼져온다.
“오~ 떫으면서도 시큼하고 약간은 씁쓸한 맛. 삼킨 뒤에 남는 단맛의 여운까지! 와인은 정말 감미롭다니까!”

<이제 와인을 마시기만 할 것이 아니라 화장품으로 바르고, 드레스를 만들어 있는 시대가 왔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와인을 마시고, 바르고, 입으며 색다르게 보내면 어떨까. 사진제공 동아일보.>


“영해야, 와인을 이용해 친환경 드레스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니?”
“와인으로 드레스를 만든다고? 와인처럼 묽은 술로 어떻게 드레스를 만들어? 그 안에 밀가루라도 넣어 찌는 거야?”
“크크, 아니야. 와인만 가지고 드레스를 만드는 거야. 힌트를 주자면 와인은 아세트산 발효를 시키면 비니거(식초)가 되는데….”

“아하! 와인에서 비니거가 탄생할 때 발효가 되면서 와인이 천처럼 변하는구나.”
“응, 거의 맞았어. 와인을 비니거로 만드는 주인공은 아세트산균(Acetobacter xylinum)이야. 이 균이 와인을 발효시킬 때 면섬유와 닮은 셀룰로오스(섬유질)가 생긴단다. 아세트산균과 셀룰로오스가 서로 엉겨 붙으면 면처럼 탄력이 생겨. 이 특성을 이용해 천을 만드는 거지.”

“음, 비슷한 얘기 들어본 것 같아.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와인 맛이 시어질까봐 외부 세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얘기 말이야. 그게 아세트산균이었구나.”
“그렇지.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의 게리 케스 교수가 이끄는 마이크로비(Micro‘be’) 연구팀은 일부러 와인에 아세트산균을 넣어 셀룰로오스를 얻는단다. 그 다음 일반 마네킹보다 몸집이 큰 마네킹에 위에 붓고 말리고, 붓고 말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 호주에서는 2007년부터 와인드레스 전시회를 해마다 열고 있대.”

“오~ 정말 신기하다. 와인드레스를 입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들은 바로는 와인드레스를 입으면 물에 젖은 옷을 입은 느낌이 들거나 마치 피부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대. 그만큼 와인드레스 감촉은 아주 부드럽고 가볍다더라. 게다가 짙은 보라색이 우아한 느낌을 주고, 깊은 와인 향이 우러난대.”

“그런데 와인을 마네킹 위에 붓는 방법으로 만든다면 옷 모양이 몇 개 안되겠네~.”
“응, 처음에는 그랬대. 올해 거대한 사각형 틀 안에 와인을 붓고 말려서 와인 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더라. 레드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로웠던 화이트와인으로 천을 만드는 것도 성공했대. 그래서 이제는 예쁜 패턴을 짜거나 다양한 디자인의 옷으로도 지을 수 있대.”

“와아~ 기회가 있다면 나도 입어보고 싶다. 그런데 와인을 여러 번 말려 만든 옷이라면 아무리 탄력성이 있다 해도 잘 찢어지지 않을까? 옷을 예쁘게 빼입고 나갔는데, 사람들 앞에서 옷이 뜯어진다면 망신이잖아.”

“하하. 움직일 때마다 찢어질 정도로 약하지는 않아. 하지만 면이나 화학섬유로 지은 옷에 비해 와인드레스가 약한 건 사실이야. 면섬유는 길이가 길어 서로 얽혀 있지만 셀룰로오스는 길이가 짧아 엉킴의 정도가 적거든. 얼마 전 어느 기사에서 연구팀이 한 말을 읽어보니까 셀룰로오스를 길게 만들어 더 튼튼하고 질긴 옷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하더라. 와인드레스는 화학섬유로 만든 옷보다 친환경적이고 몸에도 무해하기 때문에 계속 발전시킬 거래.”

“윤미야, 우리 내년 여름에 호주로 여행가는 건 어때? 와인드레스 전시회에 꼭 가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직접 와인드레스를 입고 패션쇼 무대에 서도 되고!”
“그래, 열심히 돈 벌고 다음 휴가 때는 꼭 와인드레스 패션쇼에 도전해보자. 하하.”

글 :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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