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찜통더위 속에서 운동장을 열 바퀴나 뛰고 돌아온 태연이는 집에 오자마자 물 한 병을 다 마시고 바닥에 널브러진다. 몽몽이가 태연의 찝찌름한 얼굴을 맛깔스럽게 핥아대는데도 태연은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한다.

“에고, 여름엔 운동 강도를 평소보다 10~20% 낮춰야 해! 높은 기온 때문에 땀이 발산되기 어려워서 체온이 급상승하고, 심박수도 높아져 위험할 수 있다고! 운동을 끝낸 다음에도 그렇게 털썩 누워버리면 심장에 몰린 혈액이 근육 쪽으로 순환되지 못해 급격히 맥박이 떨어지고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도 있단다. 어서 정리운동이라도 좀 해!”

“아빠… 헥헥…. 삼복더위에 살 빼려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친구들에게 전해주세요.”

“태연아, 아무리 워터파크 비키니를 위한 초스피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해도 이건 아니지. 왜냐! 결과적으로 살이 빠지지 않거든. 흔히 운동을 하면 바로 지방이 연소돼 살이 빠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뇌의 뇌하수체에 있는 체중조절 중추가 그렇게 내버려 두질 않아요. 체중이 일정하게 유지(setting point)되도록 끊임없이 조절을 하거든. 굶어서 단시간에 살을 뺐다가도 곧바로 요요현상이 오는 것도, 체중조절 중추가 예전 체중으로 돌려놓아 버리기 때문이란다.”

“그럼 이렇게 운동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단 말씀이세요?”

“아니지!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니까 당연히 좋고, 장기적으로 보면 다이어트 측면에서도 아주 도움이 많이 돼요. 운동을 하면 근육량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기초대사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살이 덜 찌는 체질로 바뀌게 된단다. 다시 말 해 체온유지, 심장박동, 호흡, 근육의 긴장 등 생명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을 하는데 남들보다 훨씬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는 체질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야.”

“와, 그거 짱인데요? 얼마나 운동하면 기초대사량을 팍팍 늘릴 수 있어요?”

“그거야 근육 생성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일 년 정도 꾸준히 근육량을 늘리는 운동을 하면 확실히 기초대사량을 높일 수 있단다.

“네에? 아 진짜, 지금 농담하세요? 친구들이랑 워터파크 가기로 한 날이 딱 5일밖에 안 남았단 말이에요. 안되겠어요. 이젠 밥도 아주 쪼금, 병아리 눈물만큼만 먹을 거예요.”

“아이고, 그렇게 굶었다간 점점 더 살찌는 체질로 바뀌게 돼요. 우리 몸은 음식 섭취량이 크게 줄어들면 급격히 위기감을 느끼면서 지방 축적률을 높인단다. ‘어? 왜 밥을 조금만 주지? 큰일 났다. 최대한 지방으로 많이 축적해 두자! 그래야 버틸 수 있어!!’ 이러는 거지. 심지어는 기초대사량까지도 크게 떨어뜨려서 버린단다. 그래서 굶는 다이어트를 자주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초대사량은 낮고, 지방축적률은 높아요. 굶을수록 더 살찌는 체질로 바뀌어서 평생 살과의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거지.

“그래도 아빠, 삼겹살 같은 지방 충만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좀 낫지 않을까요?”

“아이고, 그렇지 않아요. 미국 보스턴아동병원의 카라 이벨링 박사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지방을 안 먹는 다이어트를 하면 저당(低糖) 또는 저단백질 다이어트를 할 때보다 평균 기초대사량이 220Cal나 줄어든다고 하는구나. 지방을 지나치게 적게 먹으면 기초대사량이 줄어 오히려 살찌는 체질이 된다는 거지.”

“지방만 안 먹으면 살이 빠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살찌는 체질이 된다고요? 엄청 의외인걸요. 암튼 그래도 지방은 나쁜 거잖아요. 콜레스테롤이 있으니까.”

“콜레스테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콜레스테롤은 체내에서 세포의 안정성과 막 투과성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 담즙산 등 스테로이드 계열 호르몬을 합성하는 원료가 되는 매우 중요한 성분이란다. 그런데 콜레스테롤이 전혀 없는 식품만 먹으면 몸속의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크게 낮아질까? 그렇지 않단다. 적게 섭취하면 간에서 많이 합성하고, 많이 섭취하면 덜 합성하는 식으로 일정수준의 콜레스테롤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간이 활동을 하거든. 그래서 채식만 하는 스님들의 콜레스테롤도 일반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란다.”

“엥? 지방을 많이 먹으면 그게 몸속에 쌓여서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져서 심장병 같은 거에 걸리는 게 아니었어요?”

“이미 공식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졌어요. 지난 2010년 농촌진흥청은 “식품으로 섭취된 콜레스테롤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발표했단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고. 물론 지나치게 많은 지방을 섭취하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적당한 섭취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얘기야.”

“아, 정말. 그럼 어쩌라고요! 운동은 일 년씩 해야 된다 그러고, 굶었다간 살찌는 체질로 변한다고 하고, 지방을 안 먹는 것도 소용없다 그러고. 그럼 어떡하란 말이에요! 아빠 닮아 두툼하게 늘어진 이 뱃살들을 커버할 수 있는 비키니 수영복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욧!”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당분 섭취를 줄이는 건 크게 도움이 되지. 당은 포만감을 거의 주지 않기 때문에 과식을 유도하는데다, 체내에서 지방으로 매우 쉽게 전환되거든. 그러니까 당이 많은 탄산음료나 흰쌀밥, 빵 같은 음식의 섭취를 확 줄이면 확실히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지. 하지만 그것보다 비키니를 안심하고 입을 수 있는 훨씬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 있단다.”

“지, 진짜요? 그게 뭔데요? 빨랑 알려달라고요!!!”

“너처럼 푸짐한 배 둘레 타이어를 가진 여자가 이상형인 남자를 찾으면 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힘들 테고, 어디 케냐나 우간다 혹은 알레스카 쪽에는 있지 않을까? 물론 거기에도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말이야.”
“아빠!! 증오해버릴테야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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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맛을 잡아라! 당도 높이는 법‘추석’ 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송편이 있다. 하지만 추석 때 송편만큼이나 많이 먹는 것이 바로 사과, 배 등의 과일일 것이다. 차례상에도 올릴 만큼 추석에는 과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올해 2011년은 비 온 날도 많고 물론 강우량도 많아서 과일의 맛이 떨어질 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일의 알이 한창 굵어지는 6, 7월에 강우 일수가 예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기 때문이다. 이틀에 한번 꼴로 비가 내리면서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예년의 70%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과일의 당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강우뿐만이 아니다.

과일의 당도는 과일 맛을 결정하는 주요 인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도가 높은 과일을 좋아한다. 과일의 당도는 100g당 과일 내 당 성분의 함량을 퍼센트(%)로 표시하거나 당도계로 측정한 값을 도(°Bx, Brix)로 표시한다. 

과일의 당도를 좌우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일의 품종이다. 품종에 따라 당도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과일이 성숙하는 시기에 따라 제철에 충분히 잘 익은 품종이라야 맛이 좋다. 둘째, 수확하기 2주일 전부터 3일 전 정도까지 햇빛이 좋으면 달고 맛있는 과일이 된다. 셋째, 토양 환경이 양호하고 잎이 병해충 피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잎도 많이 달려야 하는데, 햇빛이 충분하다 해도 과일 한 개당 잎 수가 부족하면 당도가 높아질 수 없다. 당이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잎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잎은 햇빛을 통한 광합성 작용으로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 과일의 당은 탄수화물 중에서도 용해성이 높은 형태로 잎에서 생겨나 과일로 전류된 것이다. 때문에 잎이 많을수록 당을 많이 합성할 수 있다. 잎에서 생성된 탄수화물은 과일뿐만 아니라 뿌리, 줄기 등 식물체의 모든 기관에 전해져 과일, 줄기, 뿌리, 잎 등의 생장에 이용된다. 


[그림 1] 사과, 배 등 과일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햇빛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탄수화물 중에서 물에 쉽게 녹는 형태로는 자당, 과당, 포도당, 젖당, 소르비톨 등이 있다. 이들이 과일의 단맛을 좌우한다. 잎에서 생산된 탄수화물은 주로 자당이나 소르비톨 형태로 과일로 전해지며 이 당은 과일을 비대하게 하는 데 이용된다. 과일이 성숙함에 따라 과일 세포 안에 있는 액포에 당이 축적되면서 과일의 당도가 높아진다. 

강우가 많은 장마기에 과일의 당도가 낮은 이유는 강우량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비 오는 시기에 일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식물의 잎에서 광합성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탄수화물이 적게 생산되기 때문에 과일의 당도가 낮아진다. 실제로 밤에 비가 오고 낮에는 햇빛이 충분한 기상 상황에서는 과일의 당도가 떨어지지 않고 높게 유지된다. 

장마기 이후에 햇빛이 충분하면 과일 당도는 곧 회복된다. 구름이 많이 끼지 않는 청명한 날씨면 충분하다. 과일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복숭아와 같은 과일은 수확 전 짧게는 3∼5일간 햇빛을 충분히 쬐기만 해도 당도가 많이 올라간다. 사과나 배는 수확 전 2주일 정도 햇빛을 충분히 쬐면 당도가 높아진다. 포도의 경우도 2주 가까이 필요한데, 당도를 높이는 것과 더불어 착색이 충분히 이뤄지기 위해선 일조량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늦가을에 수확하는 과일의 경우 여름철 강우 일수가 많아 일조량이 부족하면 과일 크기가 작아진다. 

그렇다면 과일의 당도는 자연적인 햇빛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농가에서는 과일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배의 경우 나무에 햇빛이 잘 들도록 겹쳐진 가지를 솎아낸다. 사과는 나무 밑에 반사 필름을 깔아 햇빛을 반사시켜서 부족할 수 있는 광량을 보충해주고 있다. 감귤의 경우 나무 아래를 다공질필름으로 덮는다. 이는 빗물이 땅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해 당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포도는 송이 당 충분한 잎 수를 확보하기 위해 잎이 충분하지 않은 곳의 송이를 솎아낸다. 

우리나라의 추석은 9월 상순부터 10월 상순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는데 올해 추석은 9월 12일로 이른 추석에 속한다. 예년에 비해 한두 주 앞당겨져 생산 농가에서는 추석에 소비자들에게 맛있는 과일을 공급하기 위해 이른 추석까지 충분히 잘 익은 품종을 주로 출하할 예정이다. 과종별로 품종을 보면 사과는 조생종인 선홍과 홍로 등이 있고 배는 원황, 황금배, 화 
산이 있다. 복숭아는 장호원 황도, 포도는 캠벨얼리, MBA, 거봉 등이 있다. 

8월 상순까지는 잦은 강우로 과일의 크기를 키우기 어려웠지만 추석 이전까지 날씨에 따라 얼마든지 당도가 높고 맛있는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다행히 8월 중순 이후부터 9월 초까지 맑은 날이 지속돼 당도가 충분히 높고 맛있는 과일들을 만날 수 있겠다. 사과나 포도는 색이 충분히 드러난 것이, 배 역시 색이 잘 나고 투명한 듯한 발색일 경우 비교적 당도가 높다. 

최근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당도측정계로 당도를 확인하거나 시식을 한 뒤 과일을 구입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생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생산자가 당도 높은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당도가 충분히 높은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적인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으니, 기상 상태에 구애받지 않고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글 : 황해성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과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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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배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배우 나향기 씨. 빼어난 미모와 내밀한 감정 연기, 폭넓은 연기세계, 게다가 명석한 두뇌까지! 빠지는 게 없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영화감독들은 다들 그녀의 탁월한 기억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의학 분야나 사극처럼 전문용어, 고어가 난무하면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대사 외우는 게 쉽지 않은데, 향기 씨는 어떤 역을 맡겨도 걱정이 없죠. 전문직, 사극 캐스팅 1순위는 항상 나향기 씨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촬영 1시간 전에 ‘쪽 대본’이 나와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나향기 씨라면 완벽하게 소화를 해내니까요.”

까칠한 영화감독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나향기 씨의 이 탁월한 기억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신은 왜 이 사람에게 빼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기억력을 동시에 주신 것인가? 나, 과학기자는 오늘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보려 한다.

“향기 씨,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은 이미 영화계에 소문이 자자한 향기 씨의 뛰어난 기억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탁월한 기억력의 비결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호호. 과장된 소문이에요. 제가 급한 대사를 잘 외우는 편이지만 평소 기억력은 형편없어요. 사람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하고, 뭐든 잘 잊어버리는 걸요. 대사 외우는 건 학교 다닐 때 벼락치기 하는 거랑 비슷해요. 연기하고 나면 금방 다 잊어버리죠. 방금 녹화하고 온 대사도 지금 기억 안 나는 걸요.”

과학 기자는 ‘벼락치기’라는 말에서 번쩍하고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그거야말로 제가 궁금한 것입니다. 다들 시험을 앞두면 벼락치기를 하지만 사람마다 효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혹 남들과 다른 벼락치기 비법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학교 다닐 때는 벼락치기 잘하지 못했어요. 성적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죠. 연기는, 곧 카메라가 켜지고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NG가 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집중력이 좋아지더군요. 배역에 감정이 이입된 상태라서 무심결에 외워지게 되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잔뜩 긴장해서 대사를 외우고 나면 엄청나게 피곤해요. 한 페이지 넘어가는 긴 대사가 있는 촬영을 하고 나면 속도 쓰리고. 연기 생활 덕분에 만성 위궤양을 앓고 있어요.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저 말고도 배우 중에 위궤양 앓는 사람들이 많아요.”
‘벼락치기와 스트레스라…’

과학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마감 증후군’이다. 글을 쓰거나 시험을 볼 때 막판에 몰리면 교감신경활성도가 올라간다. 즉 스트레스와 유사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는 뇌가 각성하면서 일시적으로 집중력이 올라간다.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벼락치기 상황이 되면 우리의 뇌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공부를 하든 대사를 외우든 최고의 능률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우들은 감정을 이입해서 대사를 외우는데, 감정을 자극하면 더 잘 외워진다. 두려움을 느끼는 등 감정을 자극하면 편도체가 반응한다. 편도체는 소리나 자극에 반응하여 정서가 기억되는 역할을 하는 대뇌부위다. 이 편도체에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하는 기관 ‘해마’가 붙어 있다. 그래서 감정이 이입되면 편도체와 해마의 상호작용에 의해 해마가 자극을 받아 더 쉽게 기억되는 것이다.

벼락치기로 외웠다면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뇌는 해마에 의해 학습한 정보 중 기억해야 할 것만 대뇌피질로 보낸다. 이때 신경세포들 사이에 새로운 회로망이 생성된다. 입력된 정보가 장기기억 되려면 ‘반복’이 꼭 필요한 것이다. 벼락치기로 습득한 정보로는 장기기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티졸은 장기기억을 방해한다. 부신에서 분비되는 코티졸은 해마의 신경세포들을 줄어들게 해 기억력을 둔화시킨다. ‘네이처’ 지에 실린 캘리포니아대학 신경생물학센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에게 코티졸을 투여했더니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기억력에 도움이 되지만, 스트레스가 과도해지면 해마가 코티졸 때문에 수축하면서 오히려 기억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사는 잘 외우지만, 평소 기억력은 형편없다는 나향기 씨의 얘기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장기기억력을 높이려면 벼락치기를 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미 벼락치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소용이 없다. 나, 과학기자만 해도 마감이 임박해야 간신히 글을 쓰지 않는가? 사람들은 왜 벼락치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할까? 쾌락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인 측좌핵은 벼락치기를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곳이다. 도파민은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경마나 도박, 마약 등 중독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고통을 받다가 그 순간이 끝나고 얻는 보상심리와 만족감은 실로 크다. 담배나 술뿐 아니라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하는 것도 중독이 된다.

과학기자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나향기 씨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대사를 외우는 저만의 노하우랄까 그런 게 있긴 한데요. 징크스 같은 거랍니다. 전 급한 대사를 외울 때 항상 빨간색 옷을 입어요. 처음 사극 할 때 붉은 치마를 입은 날은 대사가 더 잘 외워지고 푸른 색 치마를 입은 날은 신통치가 않더라고요. 그때 생긴 버릇이지요.”

이럴 수가! 과학 기자는 무릎을 쳤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경영학과 루이 주 교수팀은 최근 사이언스지에 빨간색이 단기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빨강과 파랑 배경에 적힌 36개의 단어를 2분 동안 208명에게 보여 주고 20분 뒤 이를 기억하는 정도를 알아봤는데 빨간 바탕에 쓰인 단어를 본 사람들은 36개의 단어 중 20~21개를 외웠지만 파란 바탕에 적힌 단어를 본 사람들은 그보다 적은 6~17개를 기억했다.

“혹시 대사 외울 때 단 음료도 드시나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단맛을 내는 당 성분은 세포 내의 여러 과정을 거쳐 글루코스를 만듭니다. 뇌 세포는 글루코스만을 사용해 살아가죠. 글루코스가 뇌 속에서 순환하면서 기억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설탕을 섭취하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설탕이 함유된 음료가 최소 24시간 동안 단기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또 다른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럼 제가 저도 모르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대사를 외우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이거 참 재미있는데요. 호호.”

글 : 이소영 과학칼럼리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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