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노벨의학상이 선정한 유도만능줄기세포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최근 세계 생명공학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 성과에 돌아갔다.

우리 몸의 조직은 사용하면서 마모되거나 손상을 입는다.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조직 세포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고나 질병 등으로 손상이 심각한 경우 조직세포의 세포분열만으로는 완전한 복구가 어렵다. 특히 신경세포처럼 재생이 어려운 세포들은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로 분화하기 전단계의 세포, 미분화 세포를 말한다. 다른 세포와는 달리 세포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210여 가지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복제할 수 있으며 정맥으로 투여했을 때 손상 부위로 스스로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

줄기세포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환자의 자연치유력만으로 복구가 불가능한 손상을 치료할 수 있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뇌성마비나 척추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와 같은 영구적 장애도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줄기세포는 난치병 치료와 파괴된 기관 복구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는 10여 년 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진행돼 왔다. 그렇다면 이번 노벨상을 수상한 줄기세포 연구는 기존 연구와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선정된 걸까. 노벨상위원회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존 거든 교수와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를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이미 성숙하고 분화된 세포를 미성숙한 세포로 역분화해 다시 모든 조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라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거든 교수는 이미 1962년 개구리 난세포의 핵을 소장 세포에서 얻은 핵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면서 핵 이식과 복제 분야의 개척자로 인정받았고, 야마나카 교수는 2006년 생쥐의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삽입해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iPS세포는 기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문제, 즉 수정란에서 발생하고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iPS는 사람의 수정란이나 난자 대신, 피부세포에 유전자 변형을 가해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분화 특성을 갖는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iPS가 환자의 치료에 실질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기술이다. iPS가 기존 줄기세포 연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줄기세포는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피가 만들어지는 뼈의 골수, 마모된 융털 세포를 생성하는 소장벽과 위벽, 정자와 난자가 탄생하는 생식선이 대표적인 곳이다. 여기에는 기관을 이루는 조직의 세포로 발달할 수 있는 줄기세포들이 있어 주변의 어떠한 세포가 손상되더라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다. 이러한 세포들을 성장이 끝난 성체에서 볼 수 있는 줄기세포라고 해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라 한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들은 특정한 조직의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골수에서 혈액 속의 혈구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들은 신경세포나 근육세포로 분화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장벽의 세포들도 융털을 이루는 상피세포로 발달할 수는 있지만 혈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반면 수정이 완료된 배아에 있는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는 몸을 이루는 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하나의 배아로부터 태아를 이루는 모든 세포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 초창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줄기세포치료의 장점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난자를 채취해서 인공적으로 수정시킨 후 배아를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연구와 활용을 위해서는 생명 윤리와 관련된 논란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적용범위가 좁다는 약점이 있음에도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윤리적 제약이 적고 임상 적용이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 치료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난치병으로 은퇴했던 경주마 ‘백광’에게 줄기세포 치료를 해 경마계에 성공적으로 복귀시킨 사례가 유명하다.

<줄기세포기술의 종류와 장단점>

종 류 장 점 단 점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이식거부반응 없음
·이론상 환자맞춤형 이식 가능
·황우석 박사가 시도했던 방법
·아직 성공사례 없음
·난자가 대량으로 필요해 윤리문제 발생
·인간복제 가능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다양한 세포로 분화 가능
·다양한 연구성과 축적
·줄기세포 은행을 만들면 면역거부 반응 어느 정도 해결 가능
·수정란 사용으로 생명윤리문제 상존
·면역거부반응
·암이 발생할 수 있어 현재 임상 적용 불가능
유도만능
줄기세포
·수정란을 사용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 없음
·다양한 세포로 분화 가능
·암이 발생할 수 있어 임상적용 어려움
·분화과정에서 조기 노화가 나타나 분화 및 증식능력 제한
성체줄기세포 ·수정란줄기세포 다음으로 연구 활발
·다양한 연구 성과 축적
·면역거부반응 없음
·안전성 입증돼 임상적용 중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분화성능 낮으나 최근 다분화능이 입증
·채취 부위에 따라 줄기세포 능력 제한

어찌됐든 줄기세포 연구의 목적은 안전하게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얻는 것이다. 기존 배아줄기세포의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iPS세포다. 윤리적인 논란을 피하면서도 체세포에서 배아줄기세포처럼 만능인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줄기세포 연구방향도 iPS세포로 모아질 것이다. 윤리적 논란과 의학적 이용 가능성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으니 남은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얼마나 안전한 줄기세포를 얻을 것인가’일 것이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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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머리카락 색깔은 갈색이고 키는 175㎝ 이상인 남자 아기로 낳게 해주세요. 저처럼 당뇨병은 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원하는 아기를 얻을 수 있을까. D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 아데닌(A)·구아닌(G)·티민(T)·시토신(C)에서 이름을 딴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 부모는 원하는 유전형질을 갖게끔 조절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다. 이렇게 태어난 ‘맞춤형 아기’는 좋은 직업을 얻고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시험관 시술이 아닌, 정상적으로 태어난 ‘신의 아기’는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하여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 가타카는 시험관 아기의 부정적인 면과 유전자 결정론을 묘하게 결합시킨 영화다.

그런데 10월 5일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시험관 아기의 아버지’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버트 에드워즈 명예교수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수많은 부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불임 치료의 길을 열었다”고 에드워즈 교수의 업적을 평가했다. 에드워즈 교수와 함께 시험관 아기 기술을 개발한 패트릭 스텝토 박사는 1988년 사망해 수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시험관 아기 기술이 생겨난 때를 이야기 하려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9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 모두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뒤늦게 아내의 나팔관이 막혀 수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당시 생리학자이던 에드워즈 박사와 부인과 의사였던 패트릭 스텝토 박사를 찾았다.

에드워즈 박사와 스텝토 박사는 여성의 난소에서 꺼낸 성숙한 난자와 남성의 정자를 작은 시험관 속에서 인공 수정시켰다. 수정란은 시험관 안에서 세포분열을 거듭했고, 여러 번 세포분열한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했다. 그리고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덤 종합병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20여 일 일찍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건강하게 자라 2004년 결혼한 그는 3년 뒤 시험관 수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현재 32세인 루이스 브라운은 영국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그해 10월 인도에서 두 번째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1980년 호주에서 세 번째 시험관 아기가 세상의 빛을 봤다. 미국에서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시험관 아기는 점차 보편화됐다. 한국에서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팀의 도움으로 1985년 10월 12일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상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이번 수상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늘날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불임환자가 2002년 10만 6,887명에서 2006년 15만 7,652명으로 50%가량 늘어났다.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환경호르몬·스트레스·잦은 음주 등 다양하다. 가령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려면 정액 1mL 안에 2,000만 개 이상의 정자가 있고, 그 중에서 활발하게 운동하는 정자 수가 60%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정자의 활동성을 낮춰 불임을 일으킨다. ‘정상 정자’라고 해도 정자가 나가는 길(정관)이 막혀있으면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난자의 배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나팔관이 막혀 있어도 아이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기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008년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30년 뒤에는 인공 정자, 난자, 자궁으로 100세 노부부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구승엽 교수는 “시험관 아기가 지금이야 보편화됐지만,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선 성공률이 30%로 낮은데 반해 비용이 커 살림이 넉넉지 않은 불임부부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는 점이다. 약물로 과배란을 유도하면 보통 10여개의 난자가 배란된다. 이 중에서 실제 시술에 필요한 난자 수는 3~4개. 나머지는 냉동 보관하거나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사용된다. 한 달에 한 개씩 배란되는 난자를 인위적으로 과배란 시킨 것에 대한 후유증(과배란 증후군)을 앓을 수도 있고 난자가 다른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적인 불임률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시험관 아기로 아이를 얻으면 당장은 인구증가율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는 또 다시 불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결과적으로는 불임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맞춤형 아기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현재 산부인과에서는 체외 수정으로 얻은 수정란의 유전정보를 검사해 정상적인 수정란만 자궁에 착상시키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PGD)’이 쓰이고 있다. 부모가 갖고 있는 유전병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오·남용되면 맞춤형 아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의 빛이 됐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박수치는 것과는 별개로 앞서 언급한 시험관 아기의 ‘그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험관 아기에 열광할 때 가타카가 그리는 ‘우울한 미래’는 더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글 :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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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노인 같은 외모를 가진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벤자민의 괴상한 외모에 놀란 아버지는 그를 낳다가 아내마저 목숨을 잃자 ‘노인 아이’를 도시의 한 양로원 앞에 버립니다.

열두 해가 지난 어느 날, 60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벤자민은 할머니를 찾으러 양로원에 온 6살 꼬마 데이지를 만납니다. 수차례 만나고 헤어진 뒤 벤자민과 데이지는 함께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벤자민은 날로 어려지고 데이지는 늙어만 갑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가 돼 죽음을 맞는다는 상상력으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늙는 것일까요. 답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 ‘텔로미어’에 있습니다.

사람의 체세포는 46개 염색체(상염색체 44개+성염색체 2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각각 23개씩 받죠. 염색체는 유전정보 DNA를 담고 있고, DNA는 다시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됩니다.

문제는 이들 네 가지 염기만 있을 경우 염색체가 온전하게 복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ATGCGGTAG라는 DNA가 염색체에 담겨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DNA 복제효소가 각 염기를 지나며 A→G 방향으로 복제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복제는 끝에 있는 G염기 앞에 있는 A염기까지만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염기가 없어 효소가 G염기를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G염기를 복제하려면 해당 염기 뒤에 또 다른 염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염색체의 가장 마지막에 있으면서 온전한 복제를 도와주는 부분이 ‘텔로미어(telomere)’입니다. 텔로미어는 ‘끝’을 뜻하는 그리스어 ‘telos’와 ‘부위’를 가리키는 ‘meros’의 합성어로 DNA 양 끝에 붙어있는 반복 염기서열(TTAGGG)을 말합니다.

다시 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DNA는 AATGCGGTAG에 텔로미어가 붙어 AATGCGGTAG-TTAGGG-TTAGGG-TTAGGG-TTAGGG로 이뤄졌습니다. 덕분에 필요한 마지막 염기까지 온전히 복제할 수 있습니다.

세포분열(DNA 복제)이 한 번, 두 번 반복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집니다. 텔로미어라 해도 마지막 염기가 복제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언론에서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진다’고 말하는 의미입니다. 물론 세포의 생존이나 활동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람 체세포에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보통 5~10kb(1kb는 DNA 염기 1000개 길이)이고,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50~200bp(1bp는 1염기 길이)만큼 짧아집니다.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 부분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염색체의
완전한 복제를 돕는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세포 차원에서 더 늙게 된다는 뜻이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텔로미어가 짧아지다가 그 길이가 노화점(사람의 경우, 1~2kb) 이하로 떨어지면 세포는 복제를 멈추게 됩니다. 노화 상태에 빠지는 거죠. 결국 세포는 죽습니다. 요약하면, ‘세포분열→텔로미어 길이 짧아짐→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분열 멈춤→세포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입니다. 데이지가 늙는 것도 텔로미어라는 ‘노화 시계’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의 85%는 세포분열을 격렬하게 해도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암세포는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할 수 있습니다. 텔로미어 관점에서만 본다면, 노화와 암은 반대의 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이는 암세포에만 있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 때문입니다. 텔로머라제는 텔로미어 길이를 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끝에 계속 염기를 붙여주거든요. 과학계에서는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활성을 떨어뜨리면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암세포의 죽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암은 보통 3가지 방법으로 치료합니다. 외과수술로 암 덩어리를 잘라내던가 항암제로 암세포를 죽이거나 방사선으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몸 안에 있는 암세포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항암제로 사용하는 물질은 주로 몸 안에서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는 세포를 죽이도록 디자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암세포를 많이 죽이는 것뿐이지 다른 세포들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근세포는 세포분열이 왕성하거든요.

하지만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효소를 줄여 암세포를 자연사시키면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텔로머라제는 암세포에만 있기 때문에 이런 효과는 암세포에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세포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죠.

암세포 정복이란 동전을 뒤집으면 장수(長壽)의 꿈이 반짝하고 빛납니다. 체세포에 텔로머라제가 작동하도록 하면 체세포의 텔로머라제 길이가 노화점 아래로 짧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영생(永生)을 누리고자 했던 진시황의 불로초가 텔로머라제에 있는 셈입니다.

글 :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과학전문기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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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 코넬대 인근 어느 미장원에서 미용사와 “긴 머리가 좋으냐, 짧은 머리가 좋으냐”를 놓고 장시간 철학적 토론을 나눈 끝에 자기 머리를 바짝 올려 짧게 깎아달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다음날 교정은 발칵 뒤집어 졌다. “여자 머리가 저게 무슨 꼴이냐”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고 난리가 났다.

게다가 다른 여학생들은 모두 치렁치렁한 긴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농과대학에 다니던 그 여학생만은 야외실습 때 치마를 바지로 수선해 고쳐 입고 다녔다. 옥수수 밭에서 일할 때마다 긴 치마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여학생이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바라 매클린톡이다.

매클린톡은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조금 앞서서 했을 뿐인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마치 그녀가 과학계에서 이룩한 업적에 대한 주변 과학자들의 냉담한 반응과 비슷했다. 왜 그녀의 이야기는 한동안 무시 받고 미친 소리로까지 취급받은 것일까?

1960년대 말까지 과학자들 사이에는 유전자가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열쇠라는 점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의 배열 방식에 대해 그녀와 대다수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옥수수 세포 속 유전자 가운데 원래 자리를 이탈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튀는 유전자(jumping genes)’를 발견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차곡차곡 쌓인 벽돌처럼 늘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믿었다. 생명체의 정보는 언제나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흘러가므로 DNA에서 비롯된 정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정된 자리를 지키던 유전자가 갑자기 대열을 이탈해 다른 자리로, 심지어 개별 염색체들 사이로 이리저리 옮겨간다는 매클린톡의 주장은 상식 밖의 발상이었다. 더욱이 매클린톡은 이런 유전자를 스위치에 비교해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끄고 켠다고 설명했다. 유전자를 끄고 켜는 조정능력 때문에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1951년 매클린톡은 유전학 심포지엄에서 자신이 발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참석자들은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를 밝히면서 유전정보는 DNA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된다는 중앙통제론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그녀의 연구 성과는 계속 폄하될 수밖에 없었다.

매클린톡은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매우 놀랐고 크게 실망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을 포기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도달한 결론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이 분야의 해박한 지식이 필요했지만 옥수수 유전학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면서 관련 연구자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매클린톡은 ‘생명의 느낌’에 충실한 과학자로서, 평생을 옥수수 유전연구에만 몰두했다. “싹이 나올 때부터 그 식물을 바라보잖아요? 그러면 나는 그걸 혼자 버려두고 싶지가 않았어요. 싹이 나서 자라는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해야만 나는 정말로 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밭에다 심은 옥수수는 모두 그랬어요. 정말로 친밀하고 지극한 감정이 생겼어요. 식물들과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는 게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지요.”
<바바라 맥클린 톡>

그 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박테리아의 게놈에서 일부 유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이 별난 유전자의 활동은 틀림없이 매클린톡이 관찰한 유전자의 조정능력을 암시했다. 기존의 중앙통제론으로 복잡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동물에서도 유전자의 일부가 옮겨 다니는 현상이 관측됐다. 쥐의 혈액 가운데 항체를 만드는 DNA는 무수히 다양한 형식으로 유전자가 재배열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항체의 생김새가 다양한 까닭은 유전자의 무한한 재배열 덕분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암의 발생도 염색체의 구조가 바뀐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체의 면역계가 수많은 종류의 항체를 만드는 것도 유전자가 뒤섞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각종 질병 치료에 매클린톡이 발견한 튀는 유전자 개념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어느덧 황당한 여자가 꾸며낸 헛소리로 치부되던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이론으로 정립됐다. 점차 매클린톡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은둔자로서의 그녀의 삶은 깨지기 시작했다.

1978년 미국 브랜다이스대는 “매우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매클린톡 박사는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인정을 받거나 명예를 얻은 적이 없었다”며 그녀에게 로젠스틸상을 수여했다. 또 1979년에는 미국 록펠러대와 하버드대에서 각각 그녀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헌정했다.

마침내 1983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그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바바라 매클린톡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방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노벨상 역사상 여성 단독 수상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연구실에는 전화벨이 하루 종일 울렸다. 하지만 그녀는 라디오를 끄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책을 하며 떨어져 있는 호두열매를 주웠다.

오히려 유명인사가 되는 바람에 차분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속상해 했다는 매클린톡은 노벨상 수상식에서도 그녀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평소 입었던 푸른 작업복과 낡은 구두차림으로 들어섰던 것. 평생 독신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여든 한 살의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글: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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