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벨 과학상의 주인공은 누구?

매년 10월이면 전 세계인과 연구자들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행사가 열린다. 특정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거나 중요한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을 골라서 거액의 상금을 전달한다. 선정위원이 모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각국에서는 기쁨의 박수와 아쉬움의 한숨이 뒤섞인다. 시작된 지 114년이나 됐지만 갈수록 인기와 권위가 동시에 높아지는 이 행사의 주인공은 바로 ‘노벨상’이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이 만들었다. 노벨은 거대한 폭발력을 가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바람에 ‘죽음의 상인’이라고도 불렸다.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던 그는 재산의 90% 이상을 노벨상 제정과 수상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 5년이 지난 1901년부터 물리학, 생리의학, 화학 등 과학 분야와 문학, 평화를 합쳐 5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스웨덴 중앙은행이 경제학상을 추가 제정하면서 이제는 매년 10월이면 6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을 선정해 12월 시상식에서 각 10억 원이 넘는 상금을 전달한다. 

올해 노벨상은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이, 마지막으로 12일에는 경제학상이 결정됐다. 선정일이 다가올수록 각국 언론에서는 예상 수상자를 점찍어두고 분석 기사와 관련 자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하루하루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곳곳에서는 환호와 탄식의 목소리가 교차됐다. 

노벨상 중에서 과학 분야의 수상자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생리의학상은 투유유 중국 전통아카데미 주임교수, 오무라 사토시 일본 키타사토대학교 명예교수, 윌리엄 캠벨 미국 드류대학교 명예연구원 등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저개발국가에서 주로 유행하는 감염성 질환을 퇴치하는 성분을 찾아낸 공로가 인정됐다. 투유유 교수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오무라 사토시 교수와 윌리엄 캠벨 연구원은 사상충증과 림프사상충증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말라리아는 주로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데 전체 환자 수가 2억 명을 넘고, 사망자만 매년 수백 만 명이 넘는다. 환자의 90%가 아프리카에 거주하고 80%가 5세 이하일 정도로 경제적 취약계층을 주로 괴롭히는 질병이다. 투유유 교수는 길가에 흔하게 피어나는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신 성분을 추출해내 중국 남부와 베트남의 말라리아 확산을 막았다. 박사학위도 없고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데 고대 의학서적 속 전통재료를 연구한 것만으로 노벨상을 받아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흑파리에게 물려서 기생충이 감염되는 사상충증도 피해자 대부분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동에 거주한다. 사상충이 눈의 망막으로 침투해 시력을 잃기도 하고 림프사상충이 온몸에 퍼져 팔다리가 붓고 피부가 썩어 들어가기도 한다.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집 근처 흙 속에 사는 스테렙토마이세스 박테리아에서 50여 가지의 항생제 원료를 얻어냈다. 당시 미국 제약회사 머크(Merck&Co., Inc.) 소속이었던 윌리엄 캠벨 연구원은 그중 이버맥틴이라는 성분이 기생충 감염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저렴한 가격의 사상충증 치료제를 개발해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물리학상은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와 아서 맥도널드 캐나다 퀸즈대학교 교수가 함께 받았다. 이들은 우주의 기본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성미자는 타우, 뮤온, 전자 등 3가지 종류가 있으며 1cm3 공간에 초당 1천억 개가 지나갈 정도로 우주 어느 곳에든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고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도 하지 않아 물체에 부딪혀도 튕기지 않고 그대로 통과해 지나간다. 그래서 질량은커녕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일도 어려워서 유령입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지타 교수는 1km 깊이의 지하에 설치된 슈퍼가미오칸데 검출기를 이용해 1998년 중성미자 간의 관계를 밝혀냈다. 지구 대기권 내에서는 중성미자가 뮤온과 전자의 두 상태 사이에서 계속 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맥도널드 교수는 캐나다 서드버리 관측소에서 중성미자의 변환을 확인했다. 태양의 핵융합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중성미자가 지구에 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중간에 상태가 바뀌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중성미자가 직접 검출되지 않는다면 상태가 바뀐 것이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중성미자는 우주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지금도 매초마다 수십 조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생활한다. 중성미자의 비밀을 풀어낸다면 지금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연구 성과와 새로운 개발품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측된다. 

화학상은 토머스 린달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명예소장, 폴 모드리치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 아지즈 산자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 등 3인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일부 손상된 DNA가 스스로를 치료하는 과정을 밝혀낸 덕분에 유전자 차원에서 암을 치료하는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네 가지 염기체의 서열에 의해 특성이 달라진다. 어떤 순서로 결합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DNA의 염기체는 태어날 때부터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독성물질에 노출되거나 가혹한 환경에서 거주할 경우 DNA가 손상돼 각종 질병이 생기고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린달 소장은 DNA 스스로 잘못된 염기체를 잘라내고 새로운 염기체로 대체하는 현상을 발견했고, 모드리치 교수는 한 쌍으로 이루어진 DNA가 서로의 염기체 중에서 짝이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는 현상을 규명했다. 산자르 교수는 자외선으로 손상된 DNA는 염기체뿐만 아니라 뉴클레오티드 성분까지 복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 전체의 거대한 시각에서 수상자들의 연구는 하나의 조그만 성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난치병 극복과 우주의 기본구조 규명이라는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줬다. 올해도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학문 자체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저절로 영예가 주어지지 않을까.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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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노벨 화학상, 컴퓨터 프로그램이 주역?

2013년 노벨 화학상은 복잡하고 큰 분자의 화학반응을 컴퓨터에서 계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생화학 및 화학과의 아리에 워셜 교수를 비롯해 하버드대 화학과의 마틴 카플러스 교수, 스탠퍼드대 구조생물학과의 마이클 레비트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특별히도 이번 수상자 중 아리에 워셜 교수는 지난 10월 28~29일 고려대에서 진행한 미래과학콘서트에 초청돼 국내 예비 과학도들과 뜻깊은 만남을 갖기도 했다.

세 과학자는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도 고분자의 움직임과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참(CHARMM)’을 개발했다. 참은 화학은 물론 생명과학과 소재공학 분야에 실로 큰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이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기에 노벨 화학상의 영광을 안겼을까.

포켓볼 열다섯 개가 당구대 위에 놓여 있다. 큐대를 들어 흰 공을 치면 열다섯 개 공이 어떻게 움직일까. 분자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원자들은 당구대 위의 포켓볼처럼 복잡하고 어지럽게 움직인다. 수천, 수만, 때로는 수백만 개의 공이 3차원 공간에 놓여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X-선 회절기, 핵자기 공명 분광기, 극저온 고성능 전자현미경 등 실험기기가 개발되면서 간단한 결정과 나노 구조체는 물론 단백질이나 핵산 같은 복잡한 생체 분자의 구조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포켓볼로 치면 처음에 공이 놓인 위치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을 쳤을 때 전체 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문제다. 분자의 구체적인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전체 원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예측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분야에서 첫 번째 큰 업적이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과의 존 포플 교수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의 월터 콘 교수가 만든 ‘가우시안’이다. 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양자화학 수준에서 화학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분자구조만 알면 가우시안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전자들의 상태와 에너지를 쉽게 계산할 수 있어 지금도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개발자들은 19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우시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양자역학으로 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원자가 100개 이하인 경우에만 문제를 풀 수 있다. 생체 분자 중에는 원자가 수만 개 이상인 고분자가 수없이 많다. 이런 고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1970년 하버드대 카플러스 교수 역시 이런 새로운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 카플러스 교수는 산소 분자와 헤모글로빈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었다. 헤모글로빈은 9,500여 개의 원자를 가진 고분자다. 헤모글로빈과 산소가 결합할 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지만, 기존 가우시안으로는 불가능했다.

카플러스 교수는 고분자 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를 방문했다. 당시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분자가 상호작용할 때 생기는 포텐셜 에너지 변화를 연구하고 있던 워셜 교수는 양자역학과 뉴턴역학을 프로그램에 나눠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전자인 파이(π) 전자에는 양자역학을 적용해 분석하고, 원자 간 결합에 이용되는 시그마(σ) 전자와 원자핵에는 고전물리학의 뉴턴역학을 적용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1972년 카플러스 교수와 워셜 교수는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 분석방식을 발표했다. 이번 화학상의 업적인 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라이소자임 반응을 연구한 레비트 교수와 워셜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1976년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분자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모델을 발표했다. 이로써 닫혀있던 새장을 활짝 열어준 것처럼 참은 훨씬 광범위한 연구분야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즈음이면 참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지만 아직 이름이 없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고만 불렸다. 참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붙은 건 1983년 카플러스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현재 분자구조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연구실에서 참을 사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부터 단백질이나 핵산, 생체막과 같은 생체 분자 연구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탄소나노튜브와 같은 나노 구조체의 분자 모델을 만들거나 실리콘 웨이퍼의 증착 반응을 연구하는 데도 참은 꼭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컴퓨터 안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필자를 비롯해 하버드대 카플러스 교수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과 연구원 대부분이 참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참의 초기 버전을 발전시켜 앰버(AMBER), 그로모스(GROMOS), 엑스-플로어(X-PLOR)와 같은 분자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유사한 프로그램들의 기초를 제공했다. 현재까지 연구자 80여 명이 소스코드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고, 50여 개 연구실이 참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참 개발 회의에서 참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있다.

컴퓨터가 발전하는 만큼 참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연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70년대 중반에는 원자 892개로 이뤄진 BPTI라는 효소 억제제를 연구했다면 지금은 원자 10만 개가 넘는 리보솜을 연구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한양대는 미국국립보건연구소와 하버드대, 미시간대와 함께 참을 개발하고 유지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필요한 경우 분자를 적절히 분할한 다음 병렬로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분산처리 할 수 있는 코드가 이미 개발돼 있다. 공동 연구를 통해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코드를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은 컴퓨터 메모리가 허용하는 한 분자계의 크기에 제한받지 않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다. 유기체의 모든 원자들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물분자, 이온까지 포함해 실제에 가깝게 분자들의 화학반응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DNA 합성효소, RNA 합성효소, 이온 채널, ATP 분해효소와 같은 인체 내 다양한 생명 반응 또한 연구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하면 세포 내 소기관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 연구에도 참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참이 앞으로 또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글 : 원영도 한양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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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연구 이그노벨상, 올해의 주인공은?

“Please Stop, Im bored!(그만둬요, 너무 지루하다고요!)”

8살 남짓한 여자 아이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연구자에게 다가와 두 마디의 말을 날린다. 주어진 60초의 시간을 모두 썼으니 멈추라는 의미다. 시상식장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고, 당황한 수상자의 반응은 웃음소리를 더 키운다. 재밌고 기발한 연구를 골라 상을 주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다운 장면이다. 연구자가 수상소감을 그만둘 때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스위티 푸(Ms. Sweetie Poo)’의 활약은 매년 행사를 더 즐겁게 만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위티 푸와 함께 신나는 이그노벨상이 돌아왔다.

미국 하버드대의 잡지, ‘기발한 과학 연구(AIR)’는 2013년 9월 12일 하버드대 선더스 극장에서 제23회 이그노벨상 시상식을 열었다. 수상 목록을 보면 황당하고 우습지만 이런 연구가 영 엉터리는 아니다. ‘처음엔 사람들을 웃기지만, 그런 뒤에 생각하게 하는(first makes people laugh, and then makes them think)’ 연구라는 원칙으로 선정되기 때문이다.

올해 심리학상을 수상한 연구는 일상과 가까운 ‘술’에 대한 연구라 더욱 흥미롭다. 우리는 흔히 술을 마시면 안 예쁘던 여자도 매력적이고, 못 생겼던 남자도 멋져 보인다고 말한다. 이른바 ‘비어 고글(beer goggle)’ 현상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로랑 베규(Laurent Bègue)와 미국의 브래드 부시맨(Brad Bushman) 등으로 이뤄진 공동 연구진은 이와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놨다. ‘술 취한 사람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술 취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발표하게 했다. 그러자 맨 정신일 때보다 훨씬 똑똑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게 드러났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술에 취하면 사랑을 고백하기 쉬운지도 모른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의학상은 심장을 이식한 쥐에 오페라를 들려준 일본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그냥 두고, 다른 쪽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들려줬다. 그 결과 음악을 듣지 않은 쪽은 평균 1주일 뒤에 죽었지만 오페라를 감상한 쪽은 3주 넘게 살았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음악이 동물의 면역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상식장에서 이들이 생쥐로 분장하고 ‘라 트라비아’를 부르는 바람에 관객들은 더 크게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만 선정되는 노벨상과 달리 이그노벨상은 사망한 과학자에게도 주어진다. 올해 안전공학상을 받은 미국의 발명가 구스타노 피조(Gustano Pizzo)도 2006년 타계한 사람이다. 그는 비행기 납치범을 낙하산에 묶어 경찰에게 내려 보내는 방법을 고안해 1972년 미국 특허를 받았는데, 이것이 올해 안전공학상 부분에 뽑혔다.

이 시스템은 납치범을 함정에 빠뜨린 뒤 캡슐에 넣고 비행기 밖으로 떨어뜨리도록 설계됐다. 캡슐은 추락하면서 전파를 보내 현재 위치를 알리고 낙하산을 펼쳐 무사히 착륙한다. 그러면 미리 도착한 경찰이 캡슐 속 납치범을 체포하게 되는 것이다. 특허를 받은 지 한참 지났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피조의 발명품은 이그노벨상 덕분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을지 연구한 이탈리아 알베르토 미네티(Alberto Minetti) 교수팀은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에 따르면 지구 중력(중력가속도 9.8㎨)의 16% 정도인 달의 중력에서 사람이 물갈퀴를 부지런히 구르면 물에 빠지지 않는다. 만약 달에 호수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는 결과보다 실험 과정이 재미있다. 사람을 인공장치로 매달고 물갈퀴를 신겨 어린이 수영장 수면 위에서 직접 달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인공장치는 줄의 세기를 조절해 중력을 줄였고, 물갈퀴는 가라앉기 전에 물을 박차는 데 도움을 줬다. 중력을 줄여 가벼워진 인간은 바실리스크도마뱀처럼 수면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건 ‘말도 안 된다’고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이 연구가 보여줬다.

화학상은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 나는 이유를 보다 자세히 밝힌 일본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지만 연구자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덕분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양파의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마지막 단계를 담당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괜한 수고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논문은 네이처에 실릴 정도로 학술적인 의미를 인정받았다.

앉아 있는 소가 누웠다가 일어나는 시간을 측정한 연구는 확률상을 받았다. 영국의 버트 톨감(Bert Tolkamp) 박사팀은 암소 73마리의 다리에 센서를 붙이고, 앉았다 서는 변화를 컴퓨터로 측정해 통계를 냈다. 그 결과 암소는 누운 지 15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일어설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서 있는 암소가 언제 누울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호기심을 채우려 너무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연구는 암소의 발정이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데 쓸모 있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이그노벨상 취지에 꼭 맞게 우습지만 의미 있는 연구인 셈이다.

생물학-천문학 통합상을 받은 주인공은 쇠똥구리를 연구한 스웨덴의 마리 데크(Marie Dacke) 박사팀이다. 쇠똥구리는 주로 일직선으로 움직여 자신이 만든 쇠똥경단을 빠르게 옮기는데, 이때 태양이나 달을 보고 방향을 찾는다. 그렇다면 달이 없는 밤에는 어떻게 할까. 데크 박사팀은 이런 상황에서 쇠똥구리가 은하수를 기준으로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자들은 쇠똥경단을 닮은 커다란 공을 가져와 재밌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고학상에는 캐나다의 브라이언 크랜달(Brian Crandall) 박사팀의 연구가 뽑혔다. 연구 목적은 포유동물이 어떤 뼈를 소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인데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다. 실험 참가자에게 설익은 뾰족뒤쥐를 삼키게 한 뒤 분변을 받아 어떤 뼈가 나왔는지 조사한 것. 이 결과로 인류 거주지에 남은 뼈 화석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받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공중보건상은 잘린 음경을 다시 붙이는 수술을 선보인 태국 의료진에게 돌아갔는데, 이 또한 이그노벨상다운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평화상은 2011년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금지한 벨라루스 대통령(알렉산드르 루카셴코)과 손이 하나뿐인 남성을 체포한 남성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시상식장에서는 한 팔을 몸에 붙인 채 두 사람이 나머지 한 손만으로 박수를 치려 낑낑대는 장면이 연출됐다. 물론 이건 평화상을 받은 두 사람을 비꼰 행동이다.

올해 수상자들은 상금으로 10조 달러(약 1경 860조 원)를 받는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다. 하지만 기준 화폐가 미국 달러가 아닌 짐바브웨 달러라고 밝혀 한바탕 크게 웃겼다. 짐바브웨 달러는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경제개혁 실패로 화폐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2009년 사용 중단된 100조 짐바브웨 달러를 우리 돈 4,000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으니 10조 짐바브웨 달러는 많은 돈이 아닌 것이다.

연구결과뿐 아니라 시상식 전체를 소소하게 재미와 기발함으로 무장한 이그노벨상. 널리 알려진 것을 거꾸로 보고(심리학상), 더 깊게 파고들고(화학상), 쓸데없어 보이는 생각을 발전시키는(물리학상) 등의 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어떤 발상도 하찮은 건 없다. 중요한 건 어떤 눈으로 보고 대하느냐다.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발상이지만 도전해서 성과를 이뤄낸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의 자세를 배운다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일궈낼 수 있지 않을까.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2013 이그노벨상 수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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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노벨의학상이 선정한 유도만능줄기세포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최근 세계 생명공학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 성과에 돌아갔다.

우리 몸의 조직은 사용하면서 마모되거나 손상을 입는다.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조직 세포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고나 질병 등으로 손상이 심각한 경우 조직세포의 세포분열만으로는 완전한 복구가 어렵다. 특히 신경세포처럼 재생이 어려운 세포들은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로 분화하기 전단계의 세포, 미분화 세포를 말한다. 다른 세포와는 달리 세포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210여 가지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복제할 수 있으며 정맥으로 투여했을 때 손상 부위로 스스로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

줄기세포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환자의 자연치유력만으로 복구가 불가능한 손상을 치료할 수 있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뇌성마비나 척추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와 같은 영구적 장애도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줄기세포는 난치병 치료와 파괴된 기관 복구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는 10여 년 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진행돼 왔다. 그렇다면 이번 노벨상을 수상한 줄기세포 연구는 기존 연구와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선정된 걸까. 노벨상위원회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존 거든 교수와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를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이미 성숙하고 분화된 세포를 미성숙한 세포로 역분화해 다시 모든 조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라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거든 교수는 이미 1962년 개구리 난세포의 핵을 소장 세포에서 얻은 핵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면서 핵 이식과 복제 분야의 개척자로 인정받았고, 야마나카 교수는 2006년 생쥐의 피부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삽입해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iPS세포는 기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문제, 즉 수정란에서 발생하고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iPS는 사람의 수정란이나 난자 대신, 피부세포에 유전자 변형을 가해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분화 특성을 갖는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iPS가 환자의 치료에 실질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기술이다. iPS가 기존 줄기세포 연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줄기세포는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피가 만들어지는 뼈의 골수, 마모된 융털 세포를 생성하는 소장벽과 위벽, 정자와 난자가 탄생하는 생식선이 대표적인 곳이다. 여기에는 기관을 이루는 조직의 세포로 발달할 수 있는 줄기세포들이 있어 주변의 어떠한 세포가 손상되더라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다. 이러한 세포들을 성장이 끝난 성체에서 볼 수 있는 줄기세포라고 해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라 한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들은 특정한 조직의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골수에서 혈액 속의 혈구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들은 신경세포나 근육세포로 분화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장벽의 세포들도 융털을 이루는 상피세포로 발달할 수는 있지만 혈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반면 수정이 완료된 배아에 있는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는 몸을 이루는 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하나의 배아로부터 태아를 이루는 모든 세포가 발달하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 초창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줄기세포치료의 장점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난자를 채취해서 인공적으로 수정시킨 후 배아를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연구와 활용을 위해서는 생명 윤리와 관련된 논란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적용범위가 좁다는 약점이 있음에도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윤리적 제약이 적고 임상 적용이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 치료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난치병으로 은퇴했던 경주마 ‘백광’에게 줄기세포 치료를 해 경마계에 성공적으로 복귀시킨 사례가 유명하다.

<줄기세포기술의 종류와 장단점>

종 류 장 점 단 점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이식거부반응 없음
·이론상 환자맞춤형 이식 가능
·황우석 박사가 시도했던 방법
·아직 성공사례 없음
·난자가 대량으로 필요해 윤리문제 발생
·인간복제 가능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다양한 세포로 분화 가능
·다양한 연구성과 축적
·줄기세포 은행을 만들면 면역거부 반응 어느 정도 해결 가능
·수정란 사용으로 생명윤리문제 상존
·면역거부반응
·암이 발생할 수 있어 현재 임상 적용 불가능
유도만능
줄기세포
·수정란을 사용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 없음
·다양한 세포로 분화 가능
·암이 발생할 수 있어 임상적용 어려움
·분화과정에서 조기 노화가 나타나 분화 및 증식능력 제한
성체줄기세포 ·수정란줄기세포 다음으로 연구 활발
·다양한 연구 성과 축적
·면역거부반응 없음
·안전성 입증돼 임상적용 중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분화성능 낮으나 최근 다분화능이 입증
·채취 부위에 따라 줄기세포 능력 제한

어찌됐든 줄기세포 연구의 목적은 안전하게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얻는 것이다. 기존 배아줄기세포의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iPS세포다. 윤리적인 논란을 피하면서도 체세포에서 배아줄기세포처럼 만능인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줄기세포 연구방향도 iPS세포로 모아질 것이다. 윤리적 논란과 의학적 이용 가능성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으니 남은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얼마나 안전한 줄기세포를 얻을 것인가’일 것이다.

글 :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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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성, 준결정…기존 이론 뒤집은 2011 노벨상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왔어 그냥 웃었어…”

가수 백지영의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의 클라이맥스 부분.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슬픔을 애절한 가사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처음에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부정한다. 한동안 긴가민가 이어지던 ‘아닐거야’ 라는 생각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근거’를 듣고 난 뒤에야 슬슬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토대로 또 다른 앞날을 준비한다.

기존에 믿어왔던 이론을 뒤집은 연구라는 점, 이것이 바로 2011년 올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의 공통점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을 때 동료 과학자들은 그 이론을 믿지 못했다. 아니, 믿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상식’을 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벨물리학상 - 우주 팽창 이론을 바꾼 ‘초신성’ 연구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11년 10월 4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솔 펄머터(52), 호주국립대 브라이언 슈밋(44), 미국 존스홉킨스대 애덤 리스(42) 교수 등을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과학원은 “우주가 느리게 팽창한다는 지난 100년간의 오랜 예측을 보기 좋게 깨뜨려 우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고 평가하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많은 과학자들은 140억 년 전 ‘빅뱅(대폭발)’이 일어난 이후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천재 과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텅 빈 우주에 물질이 존재한다면 우주 자체의 중력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팽창 속도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허블이 가까운 우주를 관측해서 발견한 우주 팽창의 역사도 그랬다. 우주는 언젠가는 다시 빅뱅 초기의 모습인 ‘점’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1998년 3명의 과학자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포문을 연 것은 펄머터 교수였다. 1988년부터 ‘초신성’을 관찰하던 펄머터 교수는 지구에서 100억 광년 떨어진 초신성을 관찰하던 중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초신성에서 나오는 빛이 지구에서 점점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이론대로라면 빛이 멀어지는 속도는 점점 줄어들어야 한다.

펄머터의 연구결과에 전 세계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곧 이어 슈밋과 리스 교수팀도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를 증명했다. 이는 우주에 있던 어떤 ‘물질’이 갖고 있는 척력(밀어내는 힘)이 인력(당기는 힘)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암흑에너지’라고 이름 지었다. 암흑에너지의 존재는 우주의 가속 팽창설이 나온 1998년 이후 가설로만 존재하다가 200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우주 초기모습을 공개하면서 입증됐다. 같은 해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라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은하 25만 개의 분포를 분석하면서도 암흑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주에 존재하는 별, 행성, 가스 등은 우주의 4%에 불과하며 23%는 암흑물질, 73%는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암흑에너지가 과연 어떤 물질인지, 입자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암흑에너지의 비밀을 풀 수 있다면 노벨상 몇 년 치를 몰아줄 정도의 업적이라고 얘기한다. 우주의 가속팽창은 증명이 됐지만 그 이유로 알려진 암흑에너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과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노벨화학상 - 결정의 개념을 바꾼 ‘준결정’
2011년 노벨화학상은 200년간 변함없던 결정의 정의를 바꾼 연구가 수상했다. 1982년, 미국 표준국(현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국방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특이한 물질을 찾고 있던 이스라엘 과학자 다니엘 셰흐트만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알루미늄과 망간의 합금을 관찰하던 셰흐트만은 기존의 결정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 구조를 발견했다. 규칙이 있는 듯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규칙이 없는 구조였다. X-선 현미경으로 바라본 회절패턴은 규칙적이지만 원자의 배열은 패턴이 반복되지 않는 구조였다. 200년간 쌓아온 결정의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학계에서는 이를 ‘미친 소리’라고 일축했다. 셰흐트만의 논문은 물리학 분야 유명 학술지인 ‘응용물리학 저널’ 게재를 거부당했고 연구그룹 책임자는 결정학 공부를 다시 하라며 결정학 교과서를 셰흐트만에게 줬다고 한다. 게다가 팀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같지 않던 연구가 여러 근거를 통해 확인됐고 후속 연구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결정의 개념이 원자들의 주기적인 배열에서 분명한 회절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셰흐트만은 그 이후로 줄곧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정의 개념은 바뀌었지만 아직 준결정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분야는 미비하다. 준결정은 결정질보다 구조가 촘촘하지 않기 때문에 마찰력이 적어 단단한 반면, 결정질과 비결정질의 중간물질이기 때문에 쉽게 깨지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단독으로 쓰이지는 못하고 마그네슘과 같은 가벼운 금속에 준결정을 넣어 강도를 높인 뒤 자동차나 비행기의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기존의 이론이 깨지면 그 이론을 토대로 연구하던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떤 과학자는 연구의 방향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연구 자체를 다시 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은 점차 성숙하고 인류는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글 : 원호섭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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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은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바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꿈의 신소재 ‘그래핀(graphen)’이다.
그렇다면 그래핀은 얼마나 얇을까? 그 두께는 0.35nm(나노미터)로, 고작 원자 한 층 밖에 안 되는 두께다. 10억분의 1m 두께인 1nm에 그래핀을 3장 정도나 쌓을 수 있다.

그래핀은 탄소 나노소재로,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의 육각 구조를 이루면서 한 층으로 펼쳐져 있다. 사실 탄소 나노소재에는 공 모양의 풀러렌(fullerene)과 둥근 기둥 모양의 탄소나노튜브가 더 있다.

이렇게 탄소 나노소재에는 삼형제가 있다.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순으로 엄연히 서열도 존재한다. 풀러렌이 1985년, 탄소나노튜브가 1991년, 그리고 그래핀이 10살도 넘는 터울을 지고 2004년에 태어났다.

그래핀은 탄소 삼형제 중 막내이긴 하지만 ‘형보다 나은 아우’다. 그래핀이 등장하기 전까지 둘째형 탄소나노튜브는 정말 잘 나갔다. 한때 ‘꿈의 신소재’ 하면 탄소나노튜브만 떠들어댔을 정도. 그래서 나노과학에 관심을 좀 가진 사람들이라면 탄소나노튜브를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탄소나노튜브의 기세를 꺾고 현재는 그래핀이 최고로 각광 받는 꿈의 신소재가 됐다.



▲육각형 벌집구조를 이루는 탄소가 고작 한 층만 있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소재 ‘그래핀’. 이 그래핀을 말면 탄소나노튜브가, 둥글게 만들면 풀러렌이 된다.

그렇다면 그래핀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주목받는 것일까. 우선 전기적인 특성을 보자면, 그래핀은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나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빛이 98%나 통과될 정도로 투명하기까지 하다. 열전도성도 탁월해 구리보다 10배나 더 열을 잘 전달한다. 강도는 강철보다도 100배 이상 강하다. 또한 자기 면적의 20%까지 늘어날 정도로 신축성도 좋다. 게다가 완전히 접어도 전기전도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소재로서 어디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그래핀은 그 자체만으로도 쓰임새가 다양하다. 반도체 트랜지스터부터 투명하면서도 구부러지는 터치스크린, 태양전지판까지 앞으로 각종 전자장치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그래핀이 플라스틱과 만나면 플라스틱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에 1%의 그래핀만 섞어도 전기가 잘 통하게 된다. 또한 플라스틱에 고작 0.1%의 그래핀을 집어넣으면 열에 대한 저항이 30%나 늘어난다. 그러니 얇으면서도 잘 휘어지고 가볍기까지 한 새로운 초강력 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 많은 그래핀에 과학자들이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핀에 노벨상이 수여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우보다 못한 맏형 풀러렌이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둘째형 탄소나노튜브는 해마다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곤 했으니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두 물리학자가 그래핀을 얻어낸 방법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기발했다. 신소재 개발의 도구라고 하기에 무색한 ‘스카치테이프’가 동원된 것이다.

사실 그래핀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1947년에 최초로 연구되었다. 연필심으로 쓰이는 흔한 물질인 흑연은 그래핀 여러 장이 켜켜이 쌓여있는 구조다. 이런 탄소 층상구조 덕분에 연필은 우리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잘 떨어져나가며 글씨가 잘 써진다. 하지만 흑연에서 단지 한 장의 그래핀만을 얻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최첨단 나노기술까지 활용했지만 이번 노벨상 수상의 두 주인공이 나서기 전까지는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핀 분야에 노벨상이 수여된다면 한국 최초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던 미 컬럼비아 대학의 김필립 교수도 10장 정도까지밖에 분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4년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교수는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 일을 해냈다. 흑연에 붙였다 떼어낸 스카치테이프를 10~20번 정도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더니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그토록 애써 얻으려고 했던 그래핀이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그것도 상온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래핀은 고작 원자 한 층으로 되어 있어 쉽게 부서지고 말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매우 안정적이기까지 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얻은 그래핀은 고작 마이크로미터(1㎛= 1m의 100만분의 1m) 크기에 불과했다. 이 작은 그래핀으로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여러 과학자들이 그래핀의 우수한 특성들을 조금씩 밝혀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놀랍고 신비로운 특성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그래핀에서 전자는 빛처럼 행세한다. 빛이 진공에서 초당 30만 km라는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듯, 전자는 그래핀에서 초당 1,000km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그래핀에서 특이한 터널링 현상을 보인다. 터널링 현상은 입자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으로 양자세계에서만 나타난다. 터널링 현상은 벽의 높이가 높을수록 적게 나타는데, 그래핀에서의 전자는 이런 벽도 허물어버린다. 마치 벽이 가로막고 있지 않은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그래핀이 기묘한 양자세계에 속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들인 풀러렌과 탄소나노튜브가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소재로서 우수하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기대를 모았던 김필립 교수가 빠진 건 너무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그래핀 응용 면에서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은 위안을 삼을 만하다. 실제로 그래핀 상용화 ‘세계 전쟁’에 불을 붙인 곳은 우리나라다. 홍병희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가 그래핀으로 가로세로 약 2cm의 휘어지는 투명필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2009년 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 연구는 ‘신축성이 좋아 늘리거나 접어도 전기전도성을 잃지 않는다’는 그래핀의 특성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 첫 사례였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퍼듀대 등이 앞다퉈 그래핀으로 투명필름, 트랜지스터 등을 만들면서 상용화 연구에 속도를 더했다. 게다가 2010년 6월에는 홍 교수 연구팀이 그래핀으로 30인치 크기의 터치스크린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마이크로 크기만 했던 그래핀이 이제 무려 70cm 정도까지 커진 것이다.
앞으로 그래핀이 우리의 미래생활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기대가 된다.

글 : 박미용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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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머리카락 색깔은 갈색이고 키는 175㎝ 이상인 남자 아기로 낳게 해주세요. 저처럼 당뇨병은 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원하는 아기를 얻을 수 있을까. D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 아데닌(A)·구아닌(G)·티민(T)·시토신(C)에서 이름을 딴 영화 ‘가타카(GATTACA)’에서 부모는 원하는 유전형질을 갖게끔 조절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다. 이렇게 태어난 ‘맞춤형 아기’는 좋은 직업을 얻고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시험관 시술이 아닌, 정상적으로 태어난 ‘신의 아기’는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하여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다. 가타카는 시험관 아기의 부정적인 면과 유전자 결정론을 묘하게 결합시킨 영화다.

그런데 10월 5일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시험관 아기의 아버지’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로버트 에드워즈 명예교수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수많은 부부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불임 치료의 길을 열었다”고 에드워즈 교수의 업적을 평가했다. 에드워즈 교수와 함께 시험관 아기 기술을 개발한 패트릭 스텝토 박사는 1988년 사망해 수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시험관 아기 기술이 생겨난 때를 이야기 하려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9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 모두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뒤늦게 아내의 나팔관이 막혀 수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당시 생리학자이던 에드워즈 박사와 부인과 의사였던 패트릭 스텝토 박사를 찾았다.

에드워즈 박사와 스텝토 박사는 여성의 난소에서 꺼낸 성숙한 난자와 남성의 정자를 작은 시험관 속에서 인공 수정시켰다. 수정란은 시험관 안에서 세포분열을 거듭했고, 여러 번 세포분열한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했다. 그리고 1978년 7월 25일. 영국 올덤 종합병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20여 일 일찍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 건강하게 자라 2004년 결혼한 그는 3년 뒤 시험관 수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현재 32세인 루이스 브라운은 영국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그해 10월 인도에서 두 번째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1980년 호주에서 세 번째 시험관 아기가 세상의 빛을 봤다. 미국에서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시험관 아기는 점차 보편화됐다. 한국에서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팀의 도움으로 1985년 10월 12일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상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된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이번 수상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늘날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불임환자가 2002년 10만 6,887명에서 2006년 15만 7,652명으로 50%가량 늘어났다.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환경호르몬·스트레스·잦은 음주 등 다양하다. 가령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려면 정액 1mL 안에 2,000만 개 이상의 정자가 있고, 그 중에서 활발하게 운동하는 정자 수가 60%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정자의 활동성을 낮춰 불임을 일으킨다. ‘정상 정자’라고 해도 정자가 나가는 길(정관)이 막혀있으면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난자의 배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나팔관이 막혀 있어도 아이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기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008년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30년 뒤에는 인공 정자, 난자, 자궁으로 100세 노부부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구승엽 교수는 “시험관 아기가 지금이야 보편화됐지만,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선 성공률이 30%로 낮은데 반해 비용이 커 살림이 넉넉지 않은 불임부부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는 점이다. 약물로 과배란을 유도하면 보통 10여개의 난자가 배란된다. 이 중에서 실제 시술에 필요한 난자 수는 3~4개. 나머지는 냉동 보관하거나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사용된다. 한 달에 한 개씩 배란되는 난자를 인위적으로 과배란 시킨 것에 대한 후유증(과배란 증후군)을 앓을 수도 있고 난자가 다른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적인 불임률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시험관 아기로 아이를 얻으면 당장은 인구증가율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는 또 다시 불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결과적으로는 불임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맞춤형 아기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현재 산부인과에서는 체외 수정으로 얻은 수정란의 유전정보를 검사해 정상적인 수정란만 자궁에 착상시키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법(PGD)’이 쓰이고 있다. 부모가 갖고 있는 유전병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오·남용되면 맞춤형 아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시험관 아기가 전 세계 수많은 불임부부에게 희망의 빛이 됐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박수치는 것과는 별개로 앞서 언급한 시험관 아기의 ‘그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시험관 아기에 열광할 때 가타카가 그리는 ‘우울한 미래’는 더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

글 :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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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어느 날, 한 청년이 자신의 중학생 시절 수학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편지 맨 마지막 줄에 3√6064321219라는 괴상한 날짜를 적어 보내 수학 선생님을 난처하게 했다. 3√a은 세 번 곱해서 a가 되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3√8은 세 번 곱해서 8이 되는 수, 즉 2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3√6064321219 를 계산하면, 세 번 곱해서 6064321219가 되는 수는 약 1823.5908이다. 따라서 편지를 작성한 해는 1823년이다. 나머지 소수점 이하는 1년을 단위로 하였을 때의 소수이기 때문에 날짜로 고치면 365×0.5908=215.64일이 된다. 소수점이하를 반올림하면 1823년에서 216일째 되는 날, 즉 편지를 적은 날짜는 1823년 8월 4일이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두뇌를 지녔던 이 청년은 바로 ‘아벨상’의 주인공 아벨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아드리안이 “수학자로 200년 동안 할 일을 했다”며 “이 젊은 노르웨이인 머리에는 과연 어떤 것이 들어 있을까”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일찍이 천재성을 꽃피운 닐스 헨릭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은 1802년 노르웨이의 핀도에서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나 수학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수학자로서 그가 이뤄낸 성과 중 가장 손꼽히는 업적은 ‘5차 이상의 방정식은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방정식은 아벨의 주 분야였다. 중학교 수학을 배운 사람은 1차 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방정식의 일반해는 처음 1차에서 시작하여 2차, 3차, 4차 방정식으로 차수를 한 단계씩 높여가며 구해졌다. 2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는 방법이 발견되자, 수학자들은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해 3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고, 또 4차 방정식의 일반해는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했다. 이런 식으로 하여 4차 방정식까지 근을 구하는 공식을 알아낸 것은 16세기쯤이다.

이쯤 되면 5차 방정식의 일반해도 4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하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5차 방정식에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기라성 같은 수학자들이 5차 방정식의 일반해를 찾는 데 도전했지만, 근을 구하는 방법은 좀처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씨름하기를 무려 300년. 그러나 19세기 초가 되도록 5차 방정식의 일반해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수학자들을 지치게 만든 5차 방정식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뜻밖에도 22세의 젊은 수학자, 아벨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식을 찾는 데 매달려 있을 때, 아벨은 ‘과연, 근이 존재할까? 혹 근의 공식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 문제에 접근했다. 그 결과 “5차 방정식을 푸는 근의 공식은 없다”라고 결론짓고,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아벨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즉 어떤 법칙이 정의돼 있는 집합의 원소에 임의의 두 원소를 결합해 그 결과 역시 그 집합의 원소가 될 때, 이를 ‘군’(群, group)이라 하는 이론이다. 이 군이론은 오늘날 통신, 공개 키 암호, 양자학 등에 응용되고 있다. 어쨌든 아벨은 이로써 약 3세기 동안 수학의 난제였던 5차 방정식 난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1824년 아벨은 5차 방정식의 일반해가 없음을 증명한 논문을 출간해 당시 수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가우스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 논문은 읽혀지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져, 한낮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당시 가우스는 ‘5차 방정식의 해는 반드시 존재한다’라고 생각했었다. 5년 뒤 아벨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곁에서 죽음을 슬퍼했던 수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가 죽은 뒤 되살아났다. 아벨이 죽은 지 이틀 후에 뒤늦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아벨의 천재성을 인정한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그를 교수로 채용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 이듬해엔 프랑스 학사원에서도 학사원상을 수여한다는 통보가 왔다. 이미 늦은 일이었지만 세상이 아벨의 천재성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또 아벨은 노벨상과 견줄 만한 아벨상의 제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의 상이 없다. 천재 수학자 아벨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아벨상은 매년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학자에게 수여된다. 노르웨이 정부는 아벨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2002년 3백억원의 기금으로 아벨상을 제정하고, 2003년부터 순수ㆍ응용수학 분야의 심도 있고 영향력 있는 연구성과에 대해 아벨상을 주고 있다. 연령에 관계없이 매년 1명에게 수상하는 것이 원칙이나, 공동 연구로 큰 성과를 낸 경우 공동 수여할 수 있다. 상금은 92만 달러(약 8억4000만 원)이다.

살아있을 때는 다른 수학자들에게 번번이 묵살돼 불운한 삶을 살았던 수학자 아벨은 아벨상과 함께 ‘아벨의 적분’ ‘아벨의 정리’ ‘아벨 방정식’ ‘아벨군’ 등 많은 수학용어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불행하고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오히려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셈이다.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ndsl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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