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역사]프리스틀리, 과학을 위해 살고 과학을 위해 죽다

산소의 발견으로 유명한 과학의 선구자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의 공식적인 직업은 신학자이다. 1752년부터 1755년에 디벤트리에서 신학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과학을 공부하고 1755년부터 목사 생활을 했다. 프리스틀리와 같은 신학자가 자연과학 분야에서 빼어난 업적을 냈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다.

현재도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자연과학과 신학은 아주 동떨어진 분야로 생각한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살던 때는 신학과 의학, 법학이 가장 명망 있는 학문으로 인정을 받아 많은 천재들이 신학에 도전했다. 특히 당시 신학자들은 자연 현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 이유는 자연 현상에서 신의 전지전능함을 입증해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신학생들이 자연 과학에 종사했는데 그들을 ‘자연 신학자’라고 부른다.

프리스틀리는 워링턴에 거주할 즈음부터 과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763년부터 1765년까지는 리버풀의 의사인 터너(Matthew Turner)의 화학 강의를 들었고 1765년부터 해마다 한 달씩 런던에 체류하여 첨단 과학 분야를 섭렵했다. 적은 급료에도 공기 펌프나 과학 기자재를 사들여 실험했다.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1764년부터 1775년까지 영국에 체류하면서 미국의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시간을 내여 활발한 과학 강연을 했는데, 이때 프리스틀리는 그의 강연을 꼬박꼬박 들으면서 과학에 대한 소양을 키워나갔다. 1767년부터 프리스틀리는 그동안 각계의 학자들이 발표한 자료와 자신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전기학의 역사와 현황>을 출간했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켜 곧바로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천되었다. 한마디로 천재가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과학 연구가 화학 분야에 집중된 것은 우연히도 그의 집 근처에 양조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양조통에서 공기가 발생하는 것을 관찰하고 이산화탄소(당시는 ‘고정공기’라고 불렀다)에 눈을 돌렸다. 발효된 맥아의 표면에 염산을 가하여 고정공기를 만들어낸 뒤 이를 물에 녹였더니 상큼한 맛을 내는 거품이 발생했다. 그는 거품이 생긴 물이 발포주를 만드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공기로 선원들이 앓는 괴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틀렸다. 그렇지만 그의 이 실험은 청량음료 산업의 시초인 탄산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영국왕립학술원’은 그의 공적을 인정해 1773년 그에게 코플리 메달을 수여했다.

프리스틀리를 불후의 과학자로 만들어준 것은 1774년의 연구 때문이었다. 그는 기체를 모을 때 사용되는 수은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다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수은을 공기 중에서 가열하여 산화수은을 얻은 후 이 화합물을 시험관에 넣고 볼록 렌즈로 모은 태양빛을 쪼이자 어떤 기체가 발생했다. 이 기체 중에서 가연성 물질이 밝은 빛을 내면서 활활 탔다. ‘산소’의 발견이었다.

그는 수소와 산소의 혼합물을 연소시키면 가스가 모두 소비되고 나중에 물방울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실험은 물이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이며 원소는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하기 전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기체는 고정 공기, 탄산가스 그리고 수소 등 세 가지뿐이었다.

그에게 불후의 명성을 가져다준 산소의 발견은 ‘또 다른 기체는 없을까?’하는 의문으로 발전했다. 그의 예상대로 암모니아, 염화수소, 일산화탄소(연탄가스) 등을 비롯해 10종류의 새로운 기체를 추가로 발견했다. 식물이 큰 틀에서 탄소를 먹고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 원리도 발견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산소의 발견이 과학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발견으로 화학혁명을 촉발시키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즉 산소를 발견함으로써 화학반응에서 원소, 화합물, 물질의 보존을 새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개념들을 통해 오늘날 염료, 플라스틱, 비료, 마약이 탄생했다. 프리스틀리 본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생전에 과학 혁명의 태동을 본 것이다.

프리스틀리가 많은 기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작고 다루기 손쉬운 장치를 직접 제작하여 소량의 시료로도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기체를 연구하기 위해 물로 밀봉한 유리관으로 기체를 분리했는데, 이 방법은 기체가 물에 녹지 않을 때만 가능했다.

그런데 프리스틀리는 물 대신 수은으로 봉하여 기체를 수집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암모니아와 염화수소처럼 물에 잘 녹는 기체가 있음을 발견토록 한 것이다. 그가 과학사에서 크게 인정받는 것은 산소와 같은 기체를 발견한 공로도 있지만 이런 정밀한 실험 기구들을 만들었고, 이것이 후배들의 연구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했음에도 처음엔 그것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1774년 프랑스 파리에 들려 화학자 라부아지에를 만났다. 프리스틀리는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공기(산소)에 대해 설명했고, 그 말을 참고해 라부아지에는 추후의 실험에서 그 기체가 비금속 물질과 반응해서 산(acid)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기체를 ‘산을 만드는 원리’라는 뜻에서 ‘산소’로 명명했다.

그러나 산소의 발견은 프리스틀리가 처음은 아니다.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약사인 칼 빌헬름 셸레가 2년 전에 이미 산소를 발견했지만 발표는 프리스틀리가 빨랐다. 사실 프리스틀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산소를 발견한 것이다.

영국 국적의 프리스틀리는 1791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2주년 기념파티의 주최자로 앞장섰다. 이 사실을 영국 국교와 왕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알고 그의 집과 연구실을 기습하여 불태웠다. 그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그때 수많은 연구 자료들이 불타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1794년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하자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화학 교수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노섬벌랜드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손을 대는 것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현재 세계인들을 즐겁게 만드는 청량음료의 아이디어를 집근처 양조장의 이산화탄소(고정 공기)를 보며 도출했고 얼떨결에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산소를 발견한 것은 물론 암모니아, 염화수소와 같은 새로운 기체를 발견했다.

또한 우연히 물 위에 매달아 놓은 밀폐된 유리그릇 안에 박하 묘목이 멀쩡히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식물의 광합성 원리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동물이나 식물은 신선한 공기가 없는 공간에 오래 갇혀 있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광합성의 발견은 중요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지우개를 발명하기도 했다. 문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구상에서 지우개가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보면 그의 과학적 업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리스틀리는 1804년 2월 6일, 71세로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 원인은 산소를 발견하며 화학 실험에 몰두할 때 마시게 된 일산화탄소와 수은 중독 때문이다. 일산화탄소는 과거에 많은 한국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일명 연탄가스이다. 연탄가스는 한국의 자랑이기도 한 구공탄의 부산물이기도 하며 현재 야외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착화탄(일명 번개탄)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가 평생 화학을 위해 바친 희생이 그를 특별히 빛나는 존재로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다. 그는 사망하기 한 시간 전까지도 받아쓰기를 시켜 원고를 수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글 :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참고문헌
『문명의 불을 밝힌 과학의 선구자들』, 이세용, 겸지사, 1993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피크닉』, 조 슈워츠, 바다출판사, 2002
『신과학사』, 박상준 외, (주)북스힐, 2002
『틀을 깬 과학자들』, 오진곤, 전파과학사, 2002
『유레카』, 레슬리 앨런 호비츠, 생각의나무, 2003
『사이언스 퍼스트』, 로버트 E. 아들러, 생각의 나무, 2003
『생물학과 생물학자 이야기』, 강건일, 참?과학, 2004
『이타적 과학자』, 프란츠 M. 부에티츠, 서해문집, 2004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까치, 2005
『한권으로 보는 인물 과학사』, 송성수, 북스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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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맛을 잡아라! 당도 높이는 법‘추석’ 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송편이 있다. 하지만 추석 때 송편만큼이나 많이 먹는 것이 바로 사과, 배 등의 과일일 것이다. 차례상에도 올릴 만큼 추석에는 과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올해 2011년은 비 온 날도 많고 물론 강우량도 많아서 과일의 맛이 떨어질 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일의 알이 한창 굵어지는 6, 7월에 강우 일수가 예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기 때문이다. 이틀에 한번 꼴로 비가 내리면서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예년의 70%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과일의 당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강우뿐만이 아니다.

과일의 당도는 과일 맛을 결정하는 주요 인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도가 높은 과일을 좋아한다. 과일의 당도는 100g당 과일 내 당 성분의 함량을 퍼센트(%)로 표시하거나 당도계로 측정한 값을 도(°Bx, Brix)로 표시한다. 

과일의 당도를 좌우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일의 품종이다. 품종에 따라 당도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과일이 성숙하는 시기에 따라 제철에 충분히 잘 익은 품종이라야 맛이 좋다. 둘째, 수확하기 2주일 전부터 3일 전 정도까지 햇빛이 좋으면 달고 맛있는 과일이 된다. 셋째, 토양 환경이 양호하고 잎이 병해충 피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잎도 많이 달려야 하는데, 햇빛이 충분하다 해도 과일 한 개당 잎 수가 부족하면 당도가 높아질 수 없다. 당이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잎이기 때문이다. 

식물의 잎은 햇빛을 통한 광합성 작용으로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 과일의 당은 탄수화물 중에서도 용해성이 높은 형태로 잎에서 생겨나 과일로 전류된 것이다. 때문에 잎이 많을수록 당을 많이 합성할 수 있다. 잎에서 생성된 탄수화물은 과일뿐만 아니라 뿌리, 줄기 등 식물체의 모든 기관에 전해져 과일, 줄기, 뿌리, 잎 등의 생장에 이용된다. 


[그림 1] 사과, 배 등 과일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햇빛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탄수화물 중에서 물에 쉽게 녹는 형태로는 자당, 과당, 포도당, 젖당, 소르비톨 등이 있다. 이들이 과일의 단맛을 좌우한다. 잎에서 생산된 탄수화물은 주로 자당이나 소르비톨 형태로 과일로 전해지며 이 당은 과일을 비대하게 하는 데 이용된다. 과일이 성숙함에 따라 과일 세포 안에 있는 액포에 당이 축적되면서 과일의 당도가 높아진다. 

강우가 많은 장마기에 과일의 당도가 낮은 이유는 강우량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비 오는 시기에 일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식물의 잎에서 광합성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탄수화물이 적게 생산되기 때문에 과일의 당도가 낮아진다. 실제로 밤에 비가 오고 낮에는 햇빛이 충분한 기상 상황에서는 과일의 당도가 떨어지지 않고 높게 유지된다. 

장마기 이후에 햇빛이 충분하면 과일 당도는 곧 회복된다. 구름이 많이 끼지 않는 청명한 날씨면 충분하다. 과일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복숭아와 같은 과일은 수확 전 짧게는 3∼5일간 햇빛을 충분히 쬐기만 해도 당도가 많이 올라간다. 사과나 배는 수확 전 2주일 정도 햇빛을 충분히 쬐면 당도가 높아진다. 포도의 경우도 2주 가까이 필요한데, 당도를 높이는 것과 더불어 착색이 충분히 이뤄지기 위해선 일조량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늦가을에 수확하는 과일의 경우 여름철 강우 일수가 많아 일조량이 부족하면 과일 크기가 작아진다. 

그렇다면 과일의 당도는 자연적인 햇빛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농가에서는 과일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배의 경우 나무에 햇빛이 잘 들도록 겹쳐진 가지를 솎아낸다. 사과는 나무 밑에 반사 필름을 깔아 햇빛을 반사시켜서 부족할 수 있는 광량을 보충해주고 있다. 감귤의 경우 나무 아래를 다공질필름으로 덮는다. 이는 빗물이 땅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해 당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포도는 송이 당 충분한 잎 수를 확보하기 위해 잎이 충분하지 않은 곳의 송이를 솎아낸다. 

우리나라의 추석은 9월 상순부터 10월 상순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는데 올해 추석은 9월 12일로 이른 추석에 속한다. 예년에 비해 한두 주 앞당겨져 생산 농가에서는 추석에 소비자들에게 맛있는 과일을 공급하기 위해 이른 추석까지 충분히 잘 익은 품종을 주로 출하할 예정이다. 과종별로 품종을 보면 사과는 조생종인 선홍과 홍로 등이 있고 배는 원황, 황금배, 화 
산이 있다. 복숭아는 장호원 황도, 포도는 캠벨얼리, MBA, 거봉 등이 있다. 

8월 상순까지는 잦은 강우로 과일의 크기를 키우기 어려웠지만 추석 이전까지 날씨에 따라 얼마든지 당도가 높고 맛있는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 다행히 8월 중순 이후부터 9월 초까지 맑은 날이 지속돼 당도가 충분히 높고 맛있는 과일들을 만날 수 있겠다. 사과나 포도는 색이 충분히 드러난 것이, 배 역시 색이 잘 나고 투명한 듯한 발색일 경우 비교적 당도가 높다. 

최근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당도측정계로 당도를 확인하거나 시식을 한 뒤 과일을 구입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생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생산자가 당도 높은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당도가 충분히 높은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적인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으니, 기상 상태에 구애받지 않고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글 : 황해성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 과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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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면서 온산의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다. 2010년 전국 단풍 홍보대사를 뽑는 날, 단풍잎들은 서로 자기가 더 예쁘다며 자신을 홍보대사로 추천하는데….

단풍잎 : 가을을 대표하는 절세미인 하면 푸른 잎을 붉게 물들인 나 단풍잎이지!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묘사할 때 쓰이는 ‘녹빈홍안(綠鬢紅顔)’이라는 사자성어 들어봤지? 윤이 나는 검은 머리와 고운 얼굴이라는 뜻인데, 오죽하면 고운 얼굴을 붉을 ‘홍’자로 표현했을까~
은행잎 : 흥, 노랗게 물들인 내 잎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은근하고 우아한 멋으로는 나를 따라올 상대가 없다고! 게다가 초봄에 새로 싹트는 어린잎도 거의 노란색으로 일생을 시작한단 말이야. 참, 초봄의 새싹도 단풍이라고 하는 거 몰랐지? 자고로 홍보대사를 하려면 나처럼 상식도 풍부해야 한다고!

단풍잎과 은행잎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 할아버지가 말했다.

소나무 : 허허~, 그러지 말고 너희 둘이 힘을 모아 함께 홍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잊지 말거라, 너희들은 함께할 때 훨씬 아름답단다.

만산홍엽(滿山紅葉). 말 그대로 온 산의 나뭇잎이 붉게 물드는 계절이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풍은 어떻게 드는 것일까?

단풍(丹楓)은 기후 변화에 의해 나뭇잎에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녹색 잎이 붉게 변하는 현상을 말하며, 광범위하게는 황색 및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까지도 포함한다. 단풍은 나무가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 만들기’를 준비하면서 만들어진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뭇잎에 들어 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파괴되면서 양이 줄게 되고, 결국 나뭇잎의 녹색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대신 종전에는 녹색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른 색의 색소가 더 두드러져 나뭇잎이 다양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색깔별로 살펴보면 붉은 단풍은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당)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이동이 느려지는데, 액포에 당이 많을수록 안토시아닌과 당이 결합해 단풍색이 훨씬 더 밝아진다. 당은 일교차가 클수록 잘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을 일교차가 클수록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이밖에 황색 및 갈색 단풍은 각각 노란색의 카로틴 색소와 크산토필 색소에 의해 자신의 색을 띄게 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들은 밤에는 호흡으로 당을 소비한다. 기온이 낮으면 호흡량이 줄어 상대적으로 당이 많아지는 것이다. 또한 잎자루 아래에 떨켜가 생겨 잎에서 만들어진 당이 줄기로 내려가지 못하고 잎에 쌓이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도 단풍이 드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단풍에 대한 특이한 연구결과도 있다. 뉴욕 콜게이트 대학 연구진은 ‘단풍의 붉은색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독이자 방어막’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단풍나무처럼 붉게 물든 나무들은 주변에 다른 종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독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다른 색의 단풍과는 달리 붉은 색의 단풍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단풍나무의 붉은 잎과 파란 잎, 너도밤나무의 노란 잎과 녹색 잎을 채취해 각각 상추 씨앗 위에 뿌려 발아 정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단풍나무의 붉은 잎이 다른 색의 잎들에 비해 상추 씨의 발아율을 크게 감소시켰음을 밝혀냈다.

붉은 단풍의 색소는 다른 성분이 파괴된 뒤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성하는 일종의 독이자 방어막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가을에 붉은 단풍잎이 떨어지면 안토시아닌(antocyanin) 성분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토시아닌이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풍의 그 화려한 아름다움 속에 이처럼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숨겨진 이면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결과들이 연구자들에게는 단풍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도록 하며, 우리에게는 단풍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 2010년 단풍 절정기 Tip! <자료제공 : 기상청>
- 오대산 : 10월 17일
- 설악산 : 10월 20일
- 지리산 : 10월 21일
- 치악산 : 10월 24일
- 북한산 : 10월 31일
- 계룡산 : 10월 31일
- 한라산 : 10월 31일
- 주왕산 : 11월 1일
- 속리산 : 11월 2일
- 내장산 : 11월 11일

글 : 과학향기 편집부

※ 과학향기 제360호 ‘생존을 위한 킬러본능-단풍(2005년 10월 28일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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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 떠올려보자. 깜깜한 지하세계, 박쥐들이 사는 무서운 곳, 신비로운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는 공간, 여름철 시원한 관광지 등 사람마다 동굴에 대한 느낌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지하의 컴컴한 공간을 모두 동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하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만이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동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동굴은 강원도나 충청북도에서 발견되는 ‘석회동굴’과 제주도의 ‘용암동굴’, 그리고 바닷가에서 파도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해식동굴’이다. 이런 동굴을 탐험하다 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위험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동굴 내에 발달된 통로의 형태가 너무 다양한데다 동굴 내부에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동굴마다 환경이 달라서 어떤 동굴은 다른 동굴보다 덥기도 하고, 혹은 더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동굴 속 온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지하에 발달한 동굴 속 기온이 1년 내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즉, 동굴 내부의 온도가 변하는 게 아니라 동굴 바깥의 온도가 계절에 따라 심하게 변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동굴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동굴의 내부 기온이 1년 내내 일정한 이유는 동굴 내의 온도가 그 지역 동굴 외부의 평균 온도를 항상 간직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평균 기온은 오랫동안 유지됐기 때문에 주변 암석에 기록돼 있다. 계절에 따라 대기 온도가 많이 변해도 암석은 거의 평균 기온을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암석 내에 위치하는 동굴 속 기온이 암석의 온도와 일치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물론 동굴 바깥에서 많은 물이 흘러들어가서 흐르게 되면 동굴 내부의 온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유럽에 있는 오스트리아나 슬로바키아에는 1년 내내 얼음이 존재하는 동굴들이 많다. 동굴 속에 항상 얼음이 있어서 얼음동굴이라 부르는데, 오스트리아의 ‘아이스리젠벨트 동굴’이나 ‘다크스타인 동굴’은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얼음이 있는 동굴은 대부분 석회동굴인데, 이곳에 얼음이 많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동굴 내부의 평균 온도가 섭씨 0도보다 낮기 때문에 동굴 속에 흘러들어간 물이 얼어서 1년 내내 얼음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얼음이 존재하는 동굴은 동양에도 있다. 만주지역에 수직으로 발달한 동굴을 약 20m 내려가면 얼음으로 된 수많은 석순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몇몇 지역에서 ‘얼음골’이 존재한다. 바깥기온은 섭씨 30도가 넘는데, 동굴 속에는 얼음이 있다니 어찌된 일일까? 이런 현상은 대기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표면은 항상 중력의 영향을 받으므로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아래에 존재하려고 한다. 물이나 공기도 마찬가지여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차가운 물이나 공기가 항상 아래에 있으려고 한다.

만약 추운 겨울에 사방이 막혀 있는 골짜기에서 차가운 공기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 공기는 골짜기에 갇혀 그 자리에 남게 된다. 여름이 와도 차가운 공기가 더운 공기보다 무거우므로 그 자리를 지키게 되고, 이 공기의 영향으로 얼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굴에 수직으로 발달한 통로만 있고, 다른 통로 없이 막혀 있으면 동굴 내부는 1년 내내 항상 차갑게 유지될 수 있다. 중국의 석회동굴에서 여름에 얼음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차가운 공기가 동굴 속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동굴의 입구가 여러 곳에 있으면 그 형태와 위치에 따라 계절별로 공기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학자들은 남한에만 1,000개 이상의 천연동굴이 분포한다고 추정한다. 이 중에서 내부가 아름다운 동굴은 관광지로 개발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강원도 영월의 고씨굴, 삼척의 환선굴과 대금굴, 태백의 용연동굴, 동해의 천곡동굴, 정선의 화암동굴, 충청북도 단양의 고수동굴, 온달동굴, 천동굴, 경상북도 울진의 성류굴이 개방된 석회동굴이며, 제주도의 만장굴, 협제-쌍룡굴, 미천굴이 일반인에게 개방된 용암동굴이다.

이런 동굴들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생활에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석회암과 종유석 같은 동굴생성물은 과거의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고, 동굴 내에 살고 있는 희귀생물은 난치병 치료약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항상 깜깜하게 유지되는 독특한 내부 환경이 동굴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물을 살 수 있게 했고, 이런 생물이 가지는 다양한 유전물질이 앞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치료약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석유 자원도 동굴과 관련이 있다. 지하에 발달한 동굴은 석유가 저장되는 아주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석유자원의 절반 정도가 석회암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동굴을 명상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동굴에 음식물을 저장하기도 한다. 단양의 일부 동굴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많이 발견돼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이렇게 동굴은 여러 면에서 가치 있는 지하의 자연세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굴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동굴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동굴생성물을 손으로 만지고 동굴에 쓰레기를 버린다. 사람이 만지는 동굴생성물은 검게 색이 변하며, 버려진 쓰레기는 동굴생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런 행동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동굴마다 규모와 내부 환경이 다르므로 동굴이 개방되면 이곳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해 내부 환경이 잘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개방된 국내 동굴 대부분은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아 내부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동굴 내에 설치된 조명 아래에는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나 식물이 자라고,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먼지는 동굴벽면을 검게 만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동굴을 관리하는 기관에서도 개방된 동굴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모른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관리자는 표만 팔 뿐 동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개방동굴은 그저 다른 관광지의 하나처럼 단지 돈을 벌 수 있는 장소일 뿐이다.

다행히 최근에 개발돼 공개된 강원도 평창의 백룡동굴은 새로운 관광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동굴을 관람할 수 있는 인원이 동굴 환경에 따라 제한되며, 동굴 내에는 조명시설이 거의 없다. 또 사람들은 동굴탐험복을 입고 깜깜한 동굴을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관람한다. 조명시설이 없으니 동굴 내부는 잘 보전되며, 가이드가 동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있어서 천연동굴에 대한 소중함을 관광객에게 교육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패턴인 것이다.

2007년에 제주도의 용암동굴 5개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금수강산의 가치를 전 세계에서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동굴 환경은 관리 소홀로 점차 훼손되고 있다. 소중한 동굴 환경을 단지 깜깜하고 여름에 시원한 피서지로만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의 문화수준이 아니다. 이제라도 동굴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 : 우경식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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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스며들 듯 사는 거다. 천천히, 이끼처럼 들러붙어 사는 거다.”

2009년 인터넷을 달궜던 인기 만화, ‘이끼’의 주인공 유해국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간 마을에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마을에 머물겠다는 자신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마음에 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정확하게 조사하지 않는 것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그는 이끼처럼 이곳에 들러붙어 살기로 결심한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익숙한 존재로 생각하게 됐을 때 이 마을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장 천용덕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끝없이 의문을 품으며 다가오는 유해국에게 마을이 가진 비밀을 감추려 최선을 다한다. 이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는 독자들을 끌어당겼고, 마침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2010년 7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끼’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80회에 걸친 만화에 이끼가 등장하는 것은 위의 대사 하나뿐이고 이야기도 이끼와 관련된 것이 아닌데, 왜 이끼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혹시 이끼의 생태에 대해 알면 그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 이끼에 대해 몇 가지를 알아봤다.

이끼는 원래 ‘물기가 많은 곳에 나는 푸른 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츰 바위나 나무, 작은 식물 등에 달라붙어 사는 식물 전체를 부르는 용어가 됐다. 그러다보니 이끼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실제로 이끼가 아닌 것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물이끼인데, 이는 이끼류가 아니라 녹조류에 속한다. 또 괴불이끼나 바늘이끼라 불리는 것은 양치식물에 속한다. 산성과 염기성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종이를 만드는 리트머스이끼도 이끼가 아니라 지의류이다.

이끼는 원시적인 식물이라 꽃이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뿌리는 헛뿌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 관다발도 발달되지 않아 물과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끼는 크게 자라지 않고 1~10cm 정도로 키가 작다. 하지만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녹색식물로 분류된다.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육상 식물이다. 그러다보니 살아가는데 반드시 물기가 필요했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주로 자라게 됐다. 집 주변의 돌담이나 그늘지고 축축한 마당, 습기가 많은 숲 속 등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끼가 살고 있다. 계곡의 바위나 늪의 가장자리, 물 속 등 다른 식물이 뿌리내리기 힘든 물가에서도 이끼는 잘 자란다.

이끼가 자라는 데는 빛의 양과 습도, 온도가 중요하다. 빛이 많고 온도가 높으면 대기 중 습도가 낮아지므로 이끼가 살기에 좋지 못한 환경이 된다. 이끼의 광합성 활동은 보통 25℃ 정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약 400Lux의 빛(맑은 날 해가 뜨거나 질 때의 밝기)에서 잘 성장한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물을 증발시켜 이끼를 말라죽일 수 있기 때문에 이끼는 그늘지고 서늘하며 습한 곳을 선호한다.

이끼는 비록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지만 자연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흙이 무너지거나 공사 등으로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나타나 정착하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끼가 자라면서 생긴 부식토 덕분에 식물들이 뿌리내릴 수 있고, 이끼 스스로가 작은 동물에게는 안식처와 음식을 제공한다. 결국 이끼가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비를 저장하고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이끼는 세포 속에 대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평균적으로 자기 몸무게의 5배 정도의 물을 몸에 가둬둘 수 있다. 특히 이탄이끼(Peat Moss)의 경우에는 그 양이 최고 25배에 달한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비가 왔을 때 이끼는 많은 물을 저장해 홍수와 강의 침식 등을 막고, 비가 잘 내리지 않을 때는 저장했던 물을 내놓아 피해를 줄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숲의 홍수와 가뭄 방지 기능을 이끼도 함께 하는 것이다.

생수태(Sphagnum Moss)는 물 저장력이 뛰어나 상처를 감싸는 붕대로 만드는 데 이용됐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이탄이끼를 지혈을 위한 외과치료용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줄기와 잎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이끼의 종류인 선류(蘚類)를 식물기름과 혼합해 습진이나 베인 상처, 화상 등을 치료하는 데 이용했다. 선류의 추출물은 기관지염이나 심혈관 질환, 이뇨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끼는 의약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연구결과 화학적 성분도 어느 정도 입증됐다.

이밖에도 이끼는 과거 유럽에서 침대의 속재료와 건축 재료로 사용됐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인들이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 데도 이용되는 등 세상에 이롭게 사용됐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이끼처럼 어둡고 습한 곳에 살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이끼처럼 맨 먼저 도착해 마을을 세웠던 유해국의 아버지, 유목형은 마을에 모여든 결함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장과 함께 마을을 꾸렸고,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제 몫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은 이끼와 달리 자신들의 환경만 신경쓸 뿐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영화 이끼를 보며, 또 진짜 이끼의 생태를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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